소설리스트

최애를 뽑고 싶어 (124)화 (124/192)

#124

스태프가 대기실에 찾아와 영호에게 득용의 상태를 물었다. 큰 이상이 없음이 확인되자 잠시 중단되었던 촬영이 재개되었다. 어찌 되었든 여러 사람의 시간을 빼앗았기에 영호를 포함한 모두가 촬영장으로 들어서며 죄송하다는 인사를 했다.

멤버들의 인사를 가장 밝게 받아 주며 도리어 괜찮냐, 크게 다치진 않았냐며 안부를 물어 준 사람은 아이러니하게도 지호를 욕했던 명하였다. 그의 앞을 지날 때, 솔은 좀처럼 웃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대놓고 얼굴을 찌푸릴 성정도 아니었지만, 지호처럼 자연스레 웃을 수도 없는 성격이었다. 솔은 드물게 태오처럼 무표정으로 명하의 앞을 지나쳤다. 뒤통수로 따라붙는 시선에 솔은 고개를 푹 숙였다. 한 번 인지하고 나니 이 공간에 모인 모두가 사실 명하와 같은 속내를 감추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신경 쓰였다.

다들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우리 중 누군가를, 나아가 자신을 비웃고 욕하고 있진 않을까? 하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거북해진 솔은 자리를 꽉 채운 다른 조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 시선을 아래에 두었다.

“멋진 무대를 준비하시느라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여러분.”

솔과 멤버들이 자리에 앉자 진행자가 곧바로 멘트를 쳤다. 사실 멤버들이 뒤늦게 나타난 순간부터 이미 카메라는 돌아가고 있었다. 솔은 최대한 다른 참가자들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 진행자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특히나 명하 쪽으로는 실수로라도 고개를 돌리지 않으려 했다.

“지난번 대면식과 달리 오늘 여러분들이 선보인 1차 미션 무대의 점수는 다음, 2차 미션의 점수와 합산하여 생방송 무대에 진출할 팀을 최종 선정하게 됩니다.”

진행자는 꽤 묵직한 어조로 분위기를 잡았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지난번 무대는 몸풀기였을 뿐이고, 본 게임은 오늘부터라는 말이었다. 이미 지난번 촬영 때도 한 차례 설명했던 이야기이기에 솔은 거의 습관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가 ‘진짜’ 무대에 오르길 원하지만, 모두가 생방송 무대에 오를 수는 없습니다.”

진행자의 무게 잡기는 계속되었다. 참가자들의 가슴을 졸이게 할 대사였지만 솔은 별다른 느낌이 들지는 않았다. 이미 생방송이 아니라 목숨을 건 미션을 매번 반복하고 있다 보니 진행자의 말이 솔을 마음 졸이게 하지 못했다. MC가 한마디를 할 때마다 주변이 과하게 술렁거렸다. 솔의 옆자리에 앉은 지호도 그가 멘트 한마디를 할 때마다 다른 사람들처럼 ‘아….’ 하는 짧은 탄식을 내뱉거나 여러 가지 반응을 보였다.

“자, 그럼. 점수를 확인할 준비가 되셨나요?”

이쯤 되니 솔은 방학식 날 교장 선생님의 훈화 말씀에 반사적으로 대답하는 학생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곳곳에서 대답이 튀어나왔지만, 신경 쓰고 있던 탓일까? 많은 목소리 중 진행자의 말에 엄살을 부리며 ‘아니요. 그냥 다 같이 손잡고 생방송 가면 안 될까요.’라고 대답하는 명하의 목소리가 유독 툭 튀게 들렸다.

자신도 모르게 명하의 목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돌리려던 솔은 빳빳하게 몸에 힘을 주어 무대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 전에, 다음 2차 미션에 대해 먼저 알려 드리겠습니다.”

참가자들의 앓는 소리에 웃음을 터뜨린 진행자는 허공에 손바닥을 뻗어 보였다. 그의 손동작에 맞춰 무어라 글자가 쓰여 있는 판이 무대 위에 등장했다.

“2차 미션에선 두 조가 같은 곡으로 라이벌 경쟁을 하게 됩니다. 오늘 1차 미션에서 더 높은 순위를 차지한 팀부터 순서대로 선곡을 할 수 있습니다.”

MC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옆자리에 앉은 지호가 솔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정확히는 솔을 시작으로 쭉 나열해 앉아 있는 가람과 태오, 득용을 쳐다본 것이었다. 가람은 잘 보이지 않는지, 눈살을 살짝 찌푸려 무대 위에 낯설게 등장한 판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마이 아이돌 스타즈의 참가 팀은 총 일곱 팀입니다. 오늘 1차 미션에서 1위를 차지한 팀은 다른 조와 경쟁이 아닌 단독으로 무대를 꾸릴 수 있는 특권이 주어집니다.”

꽤나 유리한 부상이었다. 아무리 서로 다른 컨셉으로 구성한다 해도 같은 곡을 두고 두 팀이 경쟁하게 된다면 당연하게도 비교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 비교가 좋은 방향으로 작용할 수도 있었지만, 그 반대가 될 수도 있었다. 되도록 단독으로 선곡하여 자신들만 그 곡으로 무대를 꾸리는 것이 유리했다. 진행자는 이 특권을 거부해도 된다는 말을 덧붙였지만 물어볼 것도 없었다. 거부할 승자는 여기에 없을 것이었다.

자신들의 순위가 몇 위가 될지 미지수였지만 모든 경우의 수를 대비해 지금 빠르게 선곡에 대한 논의를 해야 했다. 만일, 1위를 했을 때와 최악의 경우 뒤에서 2위를 차지했을 때, 꼴찌였을 때에 대한 대비는 별 의미가 없었다. 어차피 남은 곡에 들어가야 할 테니. 다른 조들도 피차 마찬가지의 심정인지라 이어지는 진행자의 말에도 다들 집중하지 못하고 저마다 눈치를 주고받았다.

지호가 허리를 숙여 가람과 태오를 바라보았다. 느닷없는 연습생 생활을 하게 되기 전까지 대중가요에 영 관심이 없었던 솔에게는 죄다 생소한 노래 제목과 가수였다. 어쩌면 몇몇 곡은 들어 봤을 수도 있지만 곡과 제목이 매치되지는 않았다. 음악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 솔은 지호처럼 가람과 태오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태오는 제 턱을 손끝으로 살짝 쓸며 ‘음….’ 하며 침음했다. 널찍한 판에 적힌 노래들을 찬찬히 훑어보며 어떤 선택이 자신과 멤버들에게 유리할지 고심했다. 모든 노래가 댄스곡이었다. 빠른 템포의 강렬한 댄스곡. 문제는 최신곡이 아니라 이미 한참 유행이 지나간 과거의 히트곡들이란 점이었다. 개중에는 부모님 세대에서 즐겼을 노래도 있었다.

집중하는 멤버들의 모습에 솔도 자세를 바로 하고 무대를 바라보았지만, 그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간 연습을 계속해 오며 꽤 많은 노래를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제목과 가수명을 아무리 훑어봐도 아는 것이 없었다.

“일단 우선순위를 정하자.”

멤버들의 시선이 몰리는 것을 느낀 태오가 나섰다.

“응. 히트의 첫사랑 어때? 저 중에선 최신곡이잖아.”

“기존의 발랄했던 이미지가 너무 강하지 않을까? 어떻게 편곡해도 원곡의 이미지가 너무 강하게 다가올 거 같아. 차라리 ‘제이비의 금요일 밤’이 나을 거 같아.”

태오의 말이 떨어지자 무섭게 지호가 생각해 둔 바가 있었는지 제일 먼저 의견을 제시했다. 다만 지호의 말을 들은 가람이 우려를 나타냈다. 계속해서 의견이 오고 갔지만, 아는 게 없는 솔은 할 말이 없었다.

차라리 지난번 대면식 때처럼 퀘스트 결과를 미리 알 수 있었으면 좋았을 걸 싶었다. 순위를 미리 알 수 있으면 지금 멤버들의 고민에 조금이나마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잠깐 그런 생각을 했던 솔은 이내 그 생각을 지워 버렸다. 만약 1위를 한다 해도 멤버들에게 뭐라고 말한단 말인가. 우리가 1등이니까 원하는 곡 하나만 고르면 돼! 이렇게 말할 순 없지 않은가? 부질없는 생각이었다.

무엇보다 3위 밑이면 이런 논의도 무용지물이 될 것이었다. 하지만 솔은 크게 걱정되지 않았다. 느낌이 좋았고 전과 달리 자신이 있었다. 1위를 확신할 정도까진 아니지만 그래도 높은 순위를 노려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솔이 혼자 순위를 가늠해 보는 사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는지 태오가 물었다.

“쥬시스의 HUSH는 어때?”

“나쁘지 않아. 아니 제일 나은 거 같아. 그리고 일단 난 클로버는 피하고 싶어.”

“나도 가람 형 의견에 동의요.”

“좋아.”

떠오르는 노래가 없었지만, 태오가 내민 제안에 가람과 득용, 지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팀들도 논의가 한창인지 곳곳에서 숙덕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럼, HUSH랑 금요일 밤을 우선순위로 두고 첫사랑을 그다음으로. 클로버는 최하로 두자.”

태오가 최종적으로 멤버들의 의견을 취합했다. 논의가 마무리되어 가는데도 솔이 아무 말이 없자 멤버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모였다. 갑자기 시선을 받게 된 솔은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어. 나도 좋아.”

이번 미션이 성공리에 끝난다면 음악을 더 많이 들어 보고 공부해야겠다 싶었다. 더 도움이 되고 싶었고 멤버들과 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다른 조들도 의견이 어느 정도 좁혀졌는지 소리가 점점 줄어들었다.

“그럼, 이제 진짜 점수를 확인할 준비가 되셨나요?”

충분한 시간을 기다려 준 진행자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재차 질문을 던졌다. 이번에는 별다른 소리 없이 모두 비장한 표정으로 긍정의 신호를 보냈다. 솔도 제법 굳건한 얼굴로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지난번 무대보다 더 열심히 했다. 그렇다 해서 지난 무대에 가벼운 마음으로 임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 무대는 솔의 의견이 많이 반영된 만큼 더 적극적으로 열성을 다했다.

멤버들도 그런 솔을 많이 도와주고 지지해 주었다. 약간은 사고가 있긴 했지만 그런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솔은 생각했다. 대기실에서 다른 팀의 무대를 지켜봐 왔고 그 결과 솔은 멤버들과 자신이 참가자 그 누구와 비교해도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했다. 아니, 오히려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솔의 눈엔 제 멤버들이 제일 뛰어나 보였다.

‘1위, 우리가 할 수 있어.’

이전까지의 솔답지 않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솔은 속으로 그렇게 굳센 생각을 삼키며 심사 위원을 소개하는 진행자를 바라보았다. 이 모든 것이 이번 무대에 대한 애착과 멤버들에 대한 애정에서 비롯된 자신감이기도 했지만, 특히나 지호에 대해 떠들던 명하의 코를 납작 눌러 주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했다. 모두 다 솔에겐 긍정적인 변화였다.

오늘로 두 번째 마주하는 심사 위원을 쭉 살펴보던 솔은 맨 끝자리에 낯선 인물이 앉아 있는 것을 뒤늦게 발견했다. 궁금함도 잠시, 진행자가 때맞춰 수수께끼의 인물을 소개했다.

“소개합니다. 특별 심사 위원 서승훈!”

우렁한 진행자의 외침에 참가자들이 열띤 박수를 보냈다. 솔은 고개를 기울이며 지호를 바라보았다. 갑자기 쏟아진 박수 소리에 가려 잘 들리지 않았지만, 순간 지호가 무슨 말을 한 것 같았다. 유명한 사람인가 보다, 그저 주변을 따라 눈치껏 손뼉을 치던 솔은 지호에게 몸을 살짝 기울이며 물었다.

“뭐라고 했어? 지호 형”

“미안하다고.”

“응?”

“…….”

뜬금없는 사과에 솔이 되물었지만, 지호는 입을 다물었다. 대신 고개를 살짝 돌려 김명하가 앉아 있던 자리를 바라보았다. 명하는 활짝 웃으며 세차게 박수를 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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