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애를 뽑고 싶어 (123)화 (123/192)

#123

일단 무대에서 내려가자는 득용의 손짓에 오히려 솔은 더욱 안절부절못했다. 부상이 있어도 무대 위에선 긴장감 때문에 제대로 인지하지 못하다 무대에서 내려오면 그제야 부상이 제법 심각하다는 것을 인지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솔도 익히 그런 일을 여러 번 겪어 보았었다.

괜찮다며 형들의 손길을 뿌리치는 득용을 태오와 가람이 억지로 부축했다. 백스테이지는 어두웠고 무대에 오르내리는 계단은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거기에 전선들이 한 대 뒤엉켜 멀쩡히 눈을 뜨고도 넘어지기 십상이었다. 태오와 가람이 득용을 부축해 무대에서 내려오자 어느새 영호가 없는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달려왔다.

“아, 진짜 괜찮다니까요.”

득용의 말에 지호가 눈을 샐쭉하게 떴다. 살짝 말려 올라간 입꼬리 덕에 늘 웃는 얼굴인 지호가 눈을 가늘게 뜨자 그 모습이 귀가 쫑긋한 여우 같았다. 어린이 만화에 나올 법한 여우 말이었다.

“네가 괜찮다고 하니까 더 수상해.”

지호의 눈빛이 날카롭게 빛났다. 정말 득용이 아무렇지 않았다면 오히려 더 뻔뻔하게 엄살을 부렸을 것이다. 이를테면 지호나 솔에게 아픈데도 참고 했다며 그 큰 덩치를 업어 달라고 하거나, 태오에게 칭찬해 달라 하거나. 가람에게 으스대며 ‘다 계획대로였다.’ 이런 말을 했을 것이다. 지호는 부축도 거절하고 순순히 괜찮다고 말하는 득용이 수상쩍었다.

지호의 말에 태오도 느낀 바가 있는지 삐딱하게 고개를 숙이곤 득용을 빤히 바라보았다. 득용이 설설 태오의 시선을 피했다. 평소답지 않게 주눅 든 그 모습에 실한 감자같이 땅땅한 영호가 득용에게 업히라며 호들갑을 떨었다.

득용은 ‘창피하다고요. 진짜 괜찮아요!’ 하며 버럭 소리를 내면서도 제 팔을 슬쩍 붙잡는 영호의 손을 쳐 내지는 않았다. 영호의 부축을 받으며 대기실로 돌아가는 길. 솔은 들쑥날쑥한 호흡을 애써 가다듬으며 불안한 눈빛으로 득용을 좇았다.

제 욕심 때문에 벌어진 일 같았다. 분명 보컬에 치중해야 하는 미션이기에 보컬 라인의 안정감을 유지하기 위해 안무의 호흡을 느슨하게 하기로 했었다. 대신 감정선과 동양 특유의 정적이면서도 물이 흐르는 듯한 유려함을 살리자 했었는데 막상 태오와 안무를 다듬다 보니 욕심이 생겼다.

점점 적극적으로 의견을 피력하는 솔의 모습에 태오를 비롯한 멤버들도 덩달아 휩쓸렸다. 우물쭈물하던 모습을 누르며 ‘이런 걸 하면 어때?’ 하고 나서며 눈을 반짝이는 솔에게 누가 ‘안 돼.’라고 단호하게 말할 수 있었을까?

본래 단호박 캐릭터는 늘 태오가 담당하던 포지션이었지만, 태오는 요즘 솔에게 유독 유했다. 솔의 기를 살려 줄 필요도 있었고 무엇보다 모여 있는 멤버들 모두 누구보다 욕심이 있는 친구들이었다. 할 수 있는데도 몸을 사리는 건 애초에 그들과 맞지 않았다. 모두의 동의하에 추가된 동작이었지만 솔은 속으로 자신을 탓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어쩌면 이렇게 스스로를 책망하는 버릇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듯싶었다.

솔은 ‘부채’라는 익숙지 않은 도구도 사용해야 했는데 아크로바틱한 동작까지 추가하는 건 제 과욕이었다고 자책했다. 제 과욕에 득용이 다친 거 같아 솔의 얼굴이 펴질 줄을 몰랐다. 득용의 뒤를 따라 걷는 네 사람 모두 걱정으로 표정이 어두웠지만 그중 솔의 얼굴이 가장 어두웠다.

대기실 입구에 다다를 때쯤부터 득용의 걸음이 눈에 띄게 불편해졌다. 영호는 득용을 소파에 앉혀 놓고는 아까 나타날 때처럼 황급히 스태프와 관계자들에게로 달려갔다. 구급상자와 촬영에 양해를 구하기 위해서였다. 영호가 바삐 움직이는 사이 솔은 앉아 있는 득용에게로 다가갔다. 득용의 이마에 두른 머리띠가 땀으로 젖어 흥건했다.

애초에 땀이 잘 흡수되지 않는 재질의 천이었는데, 땀이 어찌나 많이 났는지. 젖다 못해 틈 사이로 땀방울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영 찜찜하고 불편해 보여 솔은 그의 머리띠에 손을 댔다.

“풀어 줄까?”

“메이크업 다 뭉개졌을걸요. 괜찮아요.”

득용은 세차게 고개를 내저었다. ‘괜찮다’라고 말하는 득용은 무언가 어색했다. 솔은 제가 늘 멤버들에게 하는 말을 역으로 득용에게 듣자 어쩐지 침울해졌다. 그제야 솔의 표정이 눈에 들어온 득용은 과장되게 어깨를 들썩이며 큰소리를 쳤다.

“아, 솔이 형이 나한테 멋진 파트 줬는데. 실수해 버렸네.”

‘헤헤’ 하며 멋쩍게 웃은 득용은 땀에 젖은 제 뒷머리를 쓱쓱 문질렀다.

“완전 멋지게 할 수 있었는데…. 미안해요. 솔이 형. 그래도 실수했다고 나 미워하면 안 돼요.”

분명 첫마디는 평소의 득용답게 우렁차게 시작했는데 뒤로 갈수록 목소리에 힘이 빠졌다. 득용을 무어라 타박할 생각도 없었지만,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늘 빳빳하게 들던 고개를 푹 숙인 득용을 보고 있자니 솔은 뭐라 해야 할 말을 찾지 못했다.

“하아…. 짜증 난다. 진짜 멋있게 할 수 있었거든요.”

길게 한숨을 내쉰 득용은 제 머리를 마구잡이로 쥐어뜯었다. 득용은 자신이 있었다. 본래 운동 신경이 타고나기도 했고 솔이 처음 동작을 보여 줬을 때, 정말 너무 멋져 자신이 그 안무를 가져갔으면 했다. 때마침 조건이 딱 맞아떨어져 제 파트가 되었을 때 득용은 솔이나 태오보다도 더 멋지게 해낼 거라 다짐했었다. 제 뜻대로 안 풀린 것도 안 풀린 것이었지만 하필 솔이 짜낸 안무라 득용은 더욱 속이 쓰렸다.

실수 없이 매끄럽게 해내어서 심사 위원이나 다른 조 연습생들, 후에 방송을 보게 될 시청자들한테 솔이 이렇게 재능 있다 인정받게 해 주고 싶었다. 요즘 부쩍 자신감이 붙은 모습을 보고 있자면 더욱이 훨훨 날게 날개를 달아 주고 싶었다. 물론 겸사겸사 멋진 안무에 얻어 타기도 하고.

짜증과 솔을 향한 미안함, 아쉬움이 뒤섞인 득용의 표정에 솔은 아무 말도 못 하고 땀에 흠뻑 젖은 득용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었다. 이미 득용이 여러 차례 쥐어뜯어서 엉망이었다.

“내가 미안해. 너무 위험한 안무였어.”

“솔이 형 그러면 제가 더 미안해지거든요. 형이 짠 안무는 완벽했다구요. 솔이 형 오늘 노래도 완전 잘했는데, 아오! 내가 망쳤어요. 김득용 멍청한….”

득용이 걸걸한 목소리로 짜증스럽게 이야기했다. 끝에 가선 욕이 나올 뻔했는지 태오와 카메라를 흘깃 보고는 말꼬리를 흐렸다. 어조는 툴툴거리며 드셌지만, 그 안에 담긴 민망함과 미안함이 솔에게 고스란히 느껴졌다. 순간 솔의 시야에 푸른빛이 반짝였다.

[2ROUND 보너스 미션 달성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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