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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를 뽑고 싶어 (117)화 (117/192)

#117

시시각각, 말 한마디에 표정이 다채롭게 바뀌는 득용의 모습에 솔은 웃음을 터뜨렸다. 득용은 그 특유의 외모와 우렁찬 목소리 때문에 말소리만 들으면 화를 낸다고 오해받기 쉬웠다. 처음엔 솔도 그런 부분 때문에 득용이 말을 걸면 깜짝깜짝 놀라고는 했는데, 함께하면 함께할수록 티 없는 득용 때문에 웃는 일이 많았다.

특히나 지호랑 붙여 놓으면 보고 듣는 재미가 있었다. 둘이 어찌나 투덕거리고 장난을 치는지, 가끔 유치해져 소속사 연습실이 아니라 초등학교 교실 같을 때가 있었다. 둘의 장난질 때문에 솔이 웃음을 터뜨리면 지호와 득용이 일부러 보란 듯이 더 짓궂게 장난을 치곤 했다. 딱 지금처럼 말이었다.

“너는 사람 해, 솔이는 요정 할 테니까.”

“나도 요정 할 건데….”

솔이 웃으니 지호가 장난을 이어 나갔다.

“선심 썼다. 너는 뭐 다이어트의 요정 그런 거 해.”

“와, 서럽다 서러워.”

꼭 한 번이라도 더 웃게 해 주려는 듯 둘은 되지도 않는 유치한 장난을 주고받았다. 그 모습에 태오는 더 이상 딴지를 걸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솔이 오기 전에도 지호는 득용을 상대로 여러 장난을 치곤 했다. 덩치만 커다랬지 아직 속내는 여린 아이여서 득용이 울적할 새가 없도록 일부러 툭툭 건드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도, 특히나 득용이 힘이 없어 보일 때나 하던 일이지 지금처럼 허구한 날 눈만 마주쳤다 하면 이렇게 농담을 주고받지는 않았었다. 이것도 솔이 멤버가 되면서 생긴 변화였다. 그건 태오도 마찬가지였다. 이전 같았다면 이런 장난을 치는 지호와 득용의 등을 떠밀어 이렇게 쉴 틈도 주지 않고 연습을 강행했을 것이다.

태오도 그런 자신이 멤버들을 피곤하고 갑갑하게 만든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이유로 몇 번 지호와 부딪힌 적도 있었다. 대화 끝에 태오가 왜 그리 빡빡하게 굴 수밖에 없는지, 납득한 지호가 수긍하기 전까지 말이었다. 지호는 득용이 어떤 마음으로 유치한 행동을 하는지 짐작이 갔기에, 태오는 빡빡하게 굴기를 잠시 접어 두었다.

지호는 모든 행동이 자연스러웠다. 그를 오래 겪어 본 태오도 자세히 들여다봐야 그가 표정과 감정을 꾸며 냈다는 걸 알아차릴 정도로. 지금만 해도 자신은 포옹 한 번에 세상 모든 변명을 끌어오고도 어색한 기류를 흘리게 했지만, 지호는 저리 자연스레 솔을 안고 있었다. 어제의 일이 떠올라 태오는 괜히 헛기침을 삼켰다.

어제 가람의 반응도 신경이 쓰였고, 지호의 저런 행동에도 질투가 났다. 특히나 솔의 어깨에 턱을 괴고 저를 보며 생글생글 웃는 지호의 표정은 꽤나 신경이 쓰였다. 하지만 하얗고 가지런한 이를 드러내며 웃음을 터뜨리는 솔을 보고 있자니 뭘 하든 상관없어져 버렸다. 저렇게 웃는 게 보기 좋아 태오도 저도 모르게 솔을 따라 웃었다. 순간 여우처럼 실실 웃던 지호의 눈이 놀란 듯 크게 뜨였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반짝이는 은발이 흔들리고 하얀 얼굴에 꽃이 피자, 마치 얼음이 부서지는 것만 같았다.

“우리 이번 무대도 잘될 거야.”

두 사람의 장난에 한참 웃던 솔이 제 허리에 둘린 지호의 손목을 붙잡으며 말했다. 혹 지호의 스킨십이 불편해져 팔을 풀려는 건가 했지만 솔은 오히려 지호의 손목을 잡아 더욱 끌어당겼다.

“갑자기?”

지호의 질문이 솔의 갑작스러운 발언에 대해서인지, 아니면 오히려 더욱 깊이 안기며 제 손을 끌어당기는 솔의 행동을 향한 의문인지 모호했다.

“그런 기분이 들어. 의상도 딱일 거야.”

“당연한 소리죠. 사실 저는 잠옷을 입어도 멋있어요.”

득용이 또 진지하게 실없는 소리를 했다. 그 말에 또 솔은 순진하기 짝이 없게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응’ 하고 맞장구를 쳐 줬다. 지금 이 연습실에 있는 모두가 한마음 한뜻일 게 분명했다. 잠옷을 입고 TV에 나와도 괜찮은 건 성솔, 너뿐일 거라고. 태오는 저도 모르게 그렇게 생각하며 살짝 입꼬리를 씰룩였다. 그 순간 솔과 눈이 마주쳤다.

“앞으로도 내가 더 열심히 할게.”

태오의 표정 변화를 오해한 것일까, 한참 예쁘게 웃던 솔이 얼굴을 비장하게 굳히고 다짐을 해 보였다. 갑작스러운 그의 말에 지호가 고개를 기울여 솔을 바라보았다.

“솔이 지금도 충분히 열심히 하고 있는걸?”

“맞아요. 형, 두 번 열심히 했다간 저번처럼 쓰러져.”

지호와 득용의 말에 태오도 고개를 끄덕였다. 오히려 너무 지나치게 열심히 해서 탈이다. 먹는 것도 영 부실하고 잠은 잘 자는 듯하지만, 여전히 아침에 일어나기를 힘들어했다. 아침에 간신히 일어나 비틀거리며 화장실에 들어가는 솔을 볼 때마다 저러다 욕실에서 쓰러지는 것은 아닌가 조마조마해 문을 벌컥 열고 싶을 때가 있었다. 태오뿐이 아니었다. 아침을 준비하는 지호도 영 불안한지 화장실 쪽을 향해 ‘솔아?’ 하고 여러 번 이름을 불러 확인하고는 했다.

“그래도 괜찮아!”

솔은 웃으며 힘차게 대답했다. 그간 솔이 보여 준 모습 중에 가장 힘차고 의욕적인 대답이었지만 그 내용은 멤버들에게 달갑지 않았다. 태오의 미간이 대번 찌푸려졌다.

“안 괜찮아.”

태오가 단호한 목소리로 차가운 물을 끼얹었다. 그의 반응에 솔은 콧잔등을 찌푸리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태오가 무얼 우려하는지는 알고 있었다. 솔은 첫 평가에서 쓰러진 이후로 멤버들 모두가 저를 건드리면 부서지는 유리 취급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무용을 쉬긴 했지만, 그렇게 단순에 무너질 체력은 아니었다. 다만 그때는 여러 가지 상황이 겹쳐 좋지 않았을 뿐이었다.

지금은 안정의 포션도 최대한으로 활용하고 있고 페널티도 반절로 줄었으니 더욱 하드코어 하게 연습해도 괜찮다고 판단했다. 모두의 걱정대로 설령 쓰러진다 해도 무대에만 지장이 없으면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시 우울증과 무기력에 잊고 있었지만, 무용수로서 솔은 어릴 때부터 쭉 잠시도 쉬지 않는 지독한 학생이었다. 솔과 함께 연습실을 쓰는 사람들 모두가 잘난 애가 독하기까지 하다고 고개를 내저을 만큼. 잊었던 그의 모습이 다시금 살아나고 있었다. 어찌 보면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이니 좋은 일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멤버들의 눈에는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훨 밝아지긴 했지만, 이따금 보여 주는 불안한 눈동자의 움직임이나 넋이 나간 듯 멍하게 있는 모습. 매번 차를 탈 때마다 맥을 못 추는 모습까지. 특히나 몇몇 대화로 솔이 아픔을 가지고 있고 그로 인해 어딘가 망가졌다는 걸 짐작하고 있는 멤버들의 눈에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단순히 무대 하나를 하려는 게 아니잖아. 데뷔가 끝도 아니고, 아이돌로서 계속 활동해야 하는 거야.”

“그럼, 그럼. 태오 말이 맞지. 역시 우리 리더야. 맞는 말만 해.”

“열심히 하는 건 좋아. 그렇지만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건강에 문제가 생길 정도면 곤란해.”

태오는 마지막 한마디를 하며 슬쩍, 솔의 눈치를 살폈다. 솔은 좋은 의도로 꺼낸 이야기일 텐데 자신이 지나치게 단호하게 말하진 않았나 싶었다. 더불어 감추고 싶어 하는 듯한 ‘정신적’을 언급하는 게 조심스러웠다. 솔의 건강 상태에 대해 한 번 더 확인해 보겠다는 영호는 아직 별다른 소식이 없었다. 태오가 보기에도 처음보다 많이 밝아지고 흐릿했던 사람이 비교적 또렷해졌다고 해야 할까. 변화가 느껴졌지만 그래도 솔을 위해서라도 확실히 해 두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맞아요. 그리고 그런 상태면 뭘 해도 재미없을걸요. 그냥 다 때려치우고 쉬고 싶을 거예요. 제대로 된 생각을 할 수가 없다고요.”

장난을 치던 득용도 모처럼 진지한 얼굴로 의견을 덧붙였다.

“이게 다, 우리가 솔이 형을 걱정하고 아껴서 하는 말이니까 너무 무리하면 안 돼요.”

득용까지 한마디 거들자 솔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표정만 굳어도 자신을 걱정하는 멤버들에게 미안하기도 했고, 자신을 너무 배려해 주는 것 같았다. 한 번의 좋지 않은 사례로 바람 불면 쓰러질 연약한 이미지를 가져 버리게 된 솔은 어떻게 이 이미지를 탈피할 수 있을지 고민스러웠다.

‘득용이랑 같이 운동이라도 나가야 하나.’

솔은 매일 밤 운동하러 가는 득용을 떠올리며 잠시 고민했다. 하지만 막상 그를 따라 진짜 운동 나갈 생각을 하니 아득했다. 연습실에서 숙소로 돌아오면 솔은 이미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들 정도로 녹초가 되곤 했다. 솔의 이런 생각을 멤버 중 누구라도 알았다면 자신들이 절대 괜히 솔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고 지적해 주었을 것이다. 끝까지 솔은 제 체력이 그다지 좋지 못하다는 걸 인정하지 못했다.

솔이 생각에 잠겨 있자 혹 열심히 하려 하는 그에게 너무 부정적인 말만 내뱉었나 싶어진 지호가 괜히 또 득용을 건드렸다. 눈치가 없는 듯, 있는 득용은 지호의 속내를 기가 막히게 눈치채고 그에 맞게 반응해 주었다.

“김득용 많이 컸는데, 그런 말도 할 줄 알고.”

“저 원래도 컸거든요. 이렇게 큰 애 봤어요? 이렇게 근육 빵빵 상남자인 아기 봤냐고요.”

“그래 성난 어른이야. 이제 득용이가 큰형 해야겠다. 몸으로 보면 제일 큰형이야. 솔이랑 내가 막내 해야지.”

생각에 잠겨 있는 솔의 몸을 지호가 살짝 흔들었다. 그제야 생각에서 빠져나온 솔은 둘의 장난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맑게 웃었다. 그의 웃음에 득용과 지호가 한술 더 떴다.

“에헴. 막둥이 지호. 형님 어깨 좀 주물러라”

“득용이 형아, 지호는 아기라 손에 힘이 없어요.”

지호가 혀 짧은 소리를 내며 저보다 작은 솔의 뒤에 숨자 득용이 얼굴을 마구잡이로 일그러뜨렸다.

“지호 형, 한 대만 때려도 돼요?”

“형이 동생 때리네.”

“진짜 얄미워.”

주먹을 억세게 움켜쥔 득용은 때리는 시늉만 했지, 주먹은 지호의 근처에도 닿지 않았다. 잠시 경직되었던 분위기가 다시금 풀어지자 타이밍 좋게 가람이 돌아왔다.

“영호 형 왔어.”

연습실 문을 활짝 연 가람의 뒤에는 급히 뛰어왔는지. 이 추운 날씨에도 땀을 뻘뻘 흘리는 영호가 서 있었다. 순간 영호에게로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카드 속 이미지를 알고 있는 솔도, 의상 소식을 그저 하염없이 기다리던 멤버들도 기대감으로 눈이 반짝였다.

“얘들아, 지금 의상 피팅하게 3층으로 올라가자.”

“네!”

모두가 기다리던 소식이 영호의 입에서 흘러나오자 다들 말 잘 듣는 어린이들처럼 한마음으로 입을 모아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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