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5
“아무 귀띔도 없고…. 동양풍이 문제가 아니라 이쯤 되면 우리 준비 안 돼서 저번 무대 의상 입고 나가게 되는 거 아니야?”
말을 하면서 지호의 얼굴에 점점 미소가 사라졌다. 지호의 말을 헤실헤실 웃으며 남 일처럼 듣고 있던 득용도 점점 웃음을 잃어 갔다.
“지호 형 살벌한 이야기 하지 마요. 진짜 그렇게 되면 어쩌려고.”
“아니면 막 무대 앞두고 옷 없으니 반짝이나 비닐 이런 거 입게 되거나….”
“에이, 설마….”
생각해 보니 제법 그럴싸했다. 그간 방치되었던 전적도 있었고 아직 1라운드는 방송 전이라 실질적인 성과는 없었다. 지원 잘 해 주겠다며 걱정하지 말라 호언장담하긴 했지만 그랬던 적이 한두 번이었는가. 슬슬 정말 불안해진 득용은 흔들리는 눈동자로 지호를 바라보았다. 옆에서 가만히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가람도 가능성이 있다 싶었는지 지호를 보며 물었다.
“영호 형한테 물어볼까?”
세 사람이 서로 시선을 주고받는 가운데에 태오가 쓱, 고개를 들이밀었다. 유독 저음인 태오의 목소리가 세 남자 사이를 갈랐다.
“카메라 자꾸 잊지 마요.”
“헉! 맞다. 우리 막 이상한 말 안 했죠?”
화들짝 놀라며 카메라를 올려다보는 득용의 반응에 솔은 조용히 웃었다. 태오의 지적에 지호가 집게손가락을 턱에 대고 눈썹을 살짝 모았다. 연습하는 모습이 늘 카메라에 녹화된다는 걸 인지하고 있음에도 종종 모여 떠들거나 장난을 치다 보면 자연스레 잊게 되곤 했다.
“……진짜 정신 차려서 조심해야겠어.”
득용의 물음에 지호가 어깨를 으쓱이곤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태오도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주억거리곤 세 사람이 가진 의문에 대한 답을 내놓았다.
“그리고 영호 형이 오늘까지 알려 준다고 했어요.”
태오의 그 말에 솔은 어깨를 움찔거렸다. ‘오늘’이란 말이 솔에게 벼락을 내리쳤다.
‘혹시 이거 시간제한인가?’
모두의 말대로 의상을 준비하기까지 남은 시간이 그리 널널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솔이 ‘오늘’이 지나도록 컨셉 가챠를 뽑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걸까? 솔은 반사적으로 태오가 말한 ‘오늘까지’가 바로 2라운드 컨셉 가챠를 뽑을 수 있는 기간임을 인지했다. 갑자기 생긴 시간제한에 덜컥 마음이 조급해졌다.
정확하게 ‘오늘까지’면 언제까지일까? 자정 전? 혹은 일과가 끝나기 전? 영호가 알려 준다 했으니 영호가 퇴근해 버리면 끝나는 것일까. 곡의 분위기와 맞지 않는 의상만 나오면 어쩌지, 하고 태평하게 고민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솔은 시계를 확인했다. 오늘은 개인 레슨이 있는 날이었고 정규 일과 마무리까지 몇 시간 남지 않았다. 솔은 슬그머니 연습실을 빠져나와 화장실로 자리를 옮겼다. 세면대 앞에 서니 처음 퀘스트에 실패해 쓰러졌던 자리가 신경 쓰였다. 소름이 온몸에 쫙 돋아났다.
자신이 정말 지호의 말대로 반짝이나 비닐 의상을 뽑게 되면 어떻게 되는 걸까? 정말 지금의 곡에 그런 의상을 입고 무대를 해야 하는 걸까. 입기 싫은 건 말할 것도 없고 절대 무대 심사에 좋은 영향을 줄 리가 없었다. 컨셉 뽑기는 순전 운발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단순히 ‘운’에 모든 걸 걸기엔 부담이 컸다. 눈썹을 모아 미간을 찌푸린 솔은 푸념처럼 혼잣말을 내뱉었다.
“물이라도 떠 놓고 빌어야 하나?”
거울에 비친 솔의 표정이 한껏 심각했다. 물 떠 놓고 기도, 못할 것도 없었다. 어차피 순전히 운에 기대야 하는 일이었기에 논리라곤 없는 일이었다. 무난한 의상이 담긴 카드가 나올 확률이나 저번처럼 금빛 카드가 나올 확률, 그걸 넘어서 딱 원하는 카드가 나올 확률은 얼마나 될까?
솔은 세면대의 하수구 구멍을 막고 정말 차가운 물을 받았다. 달밤에 어디 옥상에 올라가 기도할 수는 없으니 이렇게라도 해야겠다 싶었다. 동그란 세면대에 물이 반쯤 차자 솔은 정말 두 손을 모으고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곤 속으로 제발 적당한 카드가 나오기를 빌었다.
눈을 질끈 감고 기도하는 솔의 시야에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2ROUND 하모니 스타 에디션>
★R-★SR 컨셉 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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