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애를 뽑고 싶어 (107)화 (107/192)

#107

“우리 솔이는 윙크가 참….”

지호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푹 숙였다. 다소 심각해 보이는 모습에 솔의 눈썹이 아래로 축 처졌다. 혼자 열심히 연습한 회심의 한 방이었는데, 반응을 보아 하니 영 아닌 듯했다. 연기 수업하며 요즘 들어 표정이 무척 자연스러워졌다는 칭찬을 받았던 터라 제 어색함을 간과하고 있었다.

솔은 다시 한번 윙크를 해 보려 한쪽 눈을 질끈 감아 보았다. 한쪽 눈만 감는 게 쉬이 되지 않았다. 자꾸만 반사적으로 두 눈을 다 질끈 감아 신경을 쓰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눈 주변에 힘이 들어가고, 집중하느라 입술도 단호하게 앙다물게 되었다.

솔의 표정을 다시금 확인한 지호는 고개를 더욱 깊게 숙였다. 진지한 솔의 모습에 웃지 않으려 애를 써보았지만, 저 진지한 모습이 더 웃음을 자아내게 했다. 홀로 몰래 거울을 보며 연습하고 만족했을 걸 생각하니 귀엽기도 하고 웃기기도 했다.

“난, 정말 솔이 아픈 줄 알았어.”

“아?”

가람이 허탈하다는 듯이 양팔을 축 늘어뜨리며 말했다. 가람의 말에 솔은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나 아파 보여?”

“솔이 형 진짜 거울 안 봐요?”

“보는데….”

“지금 윙크가 아니라 누가 형 발 밟은 표정이에요. 내가 밟은 줄.”

솔의 물음에 단호하게 돌아온 득용의 대답에 그는 눈썹에 이어 어깨까지 축 늘어뜨렸다. 지호나 다른 멤버들처럼 아주 숙련되고 화사한 윙크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윙크라고 부를 정도는 됐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아픈 게 아니라니까 다행이야.”

“응. 갑자기 다들 걱정해서 깜짝 놀랐어.”

어찌 되었든 솔에게 이상이 없었음을 확인한 가람이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한결 편안해진 가람의 얼굴에 솔은 멋쩍게 웃음을 지었다. 제 괜한 짓에 엉뚱한 사람이 마음고생하게 된 걸 보니 미안했다. 아무래도 누구나 객관적인 시선으로 봤을 때 ‘윙크’라고 인식되는 수준이어야지만 시스템도 ‘윙크했다’라고 인정해 주는 듯했다. 보너스 미션을 실패한 원인을 알게 되자 씁쓸했다.

조금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일곱 팀 중 1등이었다. 3위만 넘으면 성공이었는데 무려 1등. 이 정도면 윙크를 인정해 주진 않더라도 초과 달성 보너스라도 있어야 하지 않나 싶었다. 속으로 ‘1위’를 떠올리자 솔은 배시시 웃음이 흘러나왔다. 솔이 웃음 짓자 그를 마주 보고 덩달아 웃은 가람은 저도 모르게 헤벌쭉 풀어졌다가 정신을 다잡았다.

“다행이긴 한데…. 근데 앞으로 윙크 안 하면 안 돼?”

조금 망설이다 내뱉은 가람의 물음에 기어이 지호가 소리를 내어 숨넘어갈 듯 웃기 시작했다. 가람의 말에 담긴 의미에 모두가 공감했다. 앞으로 무대에서 솔이 윙크하는 걸 볼 때마다 두 가지 감정이 양립할 것 같았다. 혹시 어디 아픈가? 하는 생각과 저게 사실은 윙크라는 것에 웃음 참기 챌린지가 시작될 것이었다. 지금도 숨이 넘어갈 듯 웃는 지호를 득용이 툭툭 건드렸지만, 그는 쉬이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

그렇다고 가람의 말처럼 윙크를 아예 안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굳이 무대가 아니더라도 생각보다 자주 하는 표정이었다. 태오는 처음 솔이 어색하기 짝이 없게 웃던 때를 기억했다. 득용의 말처럼 연기 수업이 아예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태오는 돌아가서 신인 개발 팀과 영호에게 솔의 표정 연습에 대해 재차 건의해 봐야겠다고 생각하며 그가 몇 번이나 윙크했었는지 기억을 되새겨 보았다. 태오는 손가락을 꼽으며 정확하게 솔이 윙크란 이름으로 얼굴을 찌푸린 순간을 짚어 냈다.

“등장하고 클로즈업될 때 한 번, 도입부에서 한 번, 1절에서 강가람이랑 위치 바꾸면서 한 번. 엔딩에서 한 번. 총 네 번인가.”

“모르겠는데…. 그냥 최대한 할 수 있을 거 같을 때 했어.”

태오가 솔을 바라보며 확인을 요구하자 솔은 도리질만 했다. 딱히 언제 해야지 계획하고 한 행동도 아니었기에 솔도 일일이 기억하지 못했다. 간신히 웃음을 멈춘 지호가 태오의 말에 질린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윤태오, 너 솔이만 보고 있어?”

지호의 물음에 태오는 입꼬리를 아주 살짝 씰룩였다. 아주 미세한 움직임이었지만 태오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고 있던 솔의 눈에는 그 변화가 또렷하게 보였다. 잠시 침묵하던 태오는 떨떠름하게 대답했다.

“……다른 사람들도 보고 있어요.”

내심 뜨끔한 태오는 지호나 가람에게서 시선을 회피하다 정작 솔과 정면으로 눈이 마주쳤다. 리더로서가 아니어도 본래 성격상 무대에서 일어날 수 있는 변수를 커버하기 위해 두루두루 살피는 버릇이 있었다. 무대 아래에서도 태오는 늘 그랬다. 다만 모두를 공평하게 관찰했냐 묻는다면 그건 아니었다. 유독 눈길이 가는 걸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물론 다섯 중 가장 신경을 많이 써야 하고 손이 많이 가는 인물이 성솔이기는 했다. 하지만 단순히 그런 이유에서라고 말하기엔 낯이 뜨거웠다. 가람의 고백 아닌 고백, 그 속마음을 듣고 난 뒤부터 자신에게도 변화가 생겼다. 자꾸만 눈길이 가고 신경 쓰이는 것을 어찌 막을 도리가 없었다. 막고 싶지도 않았고.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처럼 하얗게 질려서 숨을 헐떡일 때는 얼마나 놀랐던지. 처음 평가를 치렀던 그날처럼 그대로 쓰러져 버리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 모든 게 오해였다니, 가람처럼 허탈하기도 하면서 동시에 괜히 속에서 열이 나는 거 같아 태오는 슬쩍 솔의 시선을 피했다. 피하는 와중에도 놀란 듯 동그랗게 뜨인 입과 눈이 눈길을 자꾸만 잡아끌어 머물게 했다.

“그런데 갑자기 웬 윙크야?”

가람이 불쑥 머리를 내밀어 태오의 시야를 가리곤 솔에게 다정한 어조로 물었다. 태오는 가람의 머리를 피해 몸을 뒤로 물리며 아주 얕게 혀를 찼다. 아주 작은 소리였지만 저도 모르게 혀를 찬 것에 태오 자신이 놀라 입가에 엄지를 가져다 댔다.

들은 이가 없는지 차 안을 휘 둘러보니 솔의 옆에 찰싹 달라붙어 앉아 있는 지호가 은근한 눈웃음을 흘리며 태오를 바라보고 있었다. 별말은 않지만, 그 은근한 시선이 불편해 태오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머리를 넘기고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가람의 질문에 솔은 난감해졌다. 퀘스트의 존재를 설명할 수 없으니 적당한 말을 골라야 했다. 멤버들과 사이가 가까워질수록 이렇게 핑계 대는 것이 불편하고 쉽지 않았다. 가뜩이나 능숙하지 못한 거짓말이 이럴 때면 곱절은 티가 났다.

“다들 그런 거 하는 거 같아서…?”

급격히 자신 없어진 어조와 오히려 되묻는 듯 끝을 흐리며 말꼬리를 올리는 말투. 솔의 그 어색함을 모두가 느끼기도 전에 지호가 와락, 솔을 끌어안았다. 그러고는 지호 특유의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웃음을 터뜨리며 솔의 머리를 마구 쓰다듬었다. 한껏 과장된 행동이었지만 솔과 달리 어색함이란 없었다.

“우리 솔이 귀엽네. 비주얼 센터 역할 톡톡히 하고 싶었어요?”

지호가 혀 짧은 소리를 내며 솔의 뺨을 손등으로 꾹 눌렀다. 지나치게 거리가 가까웠지만, 솔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영호가 주황색 신호등에 속도를 올렸지만 그것도 아무렇지 않았다. 흔들리는 차 안에서 부대끼는 체온이 오히려 안정감을 가져다주었다. 제 윙크에 대해 놀리든 무슨 말을 하든 아무 상관 없었다. 그 안에 담긴 애정과 배려가 가득했다.

“귀여운 건 귀여운 거고 솔이 형 윙크는 연습해야 해요.”

“그건 그래.”

“솔이 형은 윙크 잘할 때까지 윙크 금지.”

득용의 말에 지호가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을 표했다.

“맞아. 솔…. 싫거나 그런 건 아닌데. 아무래도 그 윙크는 볼 때마다 걱정될 거 같아.”

“내 생각도. 다 같이 모니터링 하겠지만, 화면에 나오는 모습이 좋아 보이진 않을 거야.”

쓴소리 같기도, 잔소리 같기도 했고 열심히 연습한 것에 비해 평이 박했지만, 솔은 멋쩍게 뺨을 붉히며 보드라운 구름처럼 웃었다. 각각 내뱉는 말마다 저를 향한 걱정이 담겨 있어서 아무렇지 않았다. 이런 온기가 5년 전에도 있었다면 더 나은 삶을 살았을 텐데. 이렇게 따뜻한 체온들을 그간 왜 거부했었던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자, 마지막으로 다들 이상 없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숙소 주변을 한 바퀴 돌고 방마다 불을 켜고 보일러를 돌린 영호가 물었다. 그 사건 이후로 생긴 영호의 루틴이었다. 영호의 점검이 끝나자 소파에 앉아 피곤한 얼굴을 한 멤버들이 ‘네.’ 하며 다 같이 대답했다.

졸음이 가득한 멤버들의 얼굴을 한번 훑어본 영호는 제법 감정이 벅차올랐는지, 덩치에 안 맞게 두 손을 소녀처럼 가지런히 모으고 멤버들을 쳐다보았다. 이제 시작일 뿐이었지만 스스로의 힘으로 첫 무대를 잘 마무리한 아이들이 영호는 대견스러웠다. 감격스러워하는 영호와 달리 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 득용은 화장이 번지든 말든 눈을 벅벅 비볐다.

“얘들아, 너희가 최고였어.”

“감사합니다. 영호 형도 고생하셨어요. 어서 가서 쉬셔야죠.”

“태오야…. 오늘은 푹 쉬고 내일부터 다시 달리자.”

“네. 조심히 들어가세요.”

“그래, 내일 보자.”

감상에 취한 영호를 그대로 두면 아무래도 말이 길어질 것 같아 눈치껏 태오가 그의 감정을 끝맺었다. 하고 싶은 말이 남았는지 자꾸만 몸을 돌려 멤버들을 바라보는 영호를 태오가 등을 두드리는 척 떠밀었다. 고마운 건 고마운 것이었지만 멤버들의 머릿속엔 지금 당장은 화장을 지워 내고 따뜻한 침대에 눕고 싶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영호가 떠나자 지호와 태오, 가람은 솔과 막내인 득용에게 욕실을 양보했다. 두 사람이 연신 하품하며 맥을 못 썼기 때문이었다.

다음 날 오전, 늘 그렇듯 연습실로 출근 도장을 찍은 솔은 자신을 기다리고 선 은겸을 회사 로비에서 마주쳤다. 은겸은 아주 환하게 웃음 지으며 반가움이 가득한 목소리로 솔을 반겼다.

“솔아!”

“은겸 형.”

여전히 솔로 활동을 지속하느라 정신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는 은겸이기에 무척 오랜만에 마주하는 얼굴이었다. 얼마나 바빴는지 조금 야윈 것도 같았다. 솔이 걸음을 멈춰 세우고 은겸과 인사를 나누자 덩달아 다른 멤버들도 걸음을 멈춰서 선배를 향해 인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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