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
점점 어두워지는 가람의 표정과 제 주변으로 모여드는 멤버들의 얼굴에 솔은 빨리 제대로 된 대답을 돌려주고 싶었다. 연신 널뛰는 심장과 숨을 진정시켜 보려 했지만, 어쩐지 숨을 잘 쉬어 보려 할수록 더욱 헐떡이게 되었다.
숨을 고르려 할수록 몸에 두른 가죽 스트랩이 더욱 살을 파고들어 불편함을 느낀 솔은 그것을 벗어 내려 팔을 움직였다. 빨리 멤버들에게 자신은 괜찮고 고맙다는 말을 전해 주고 싶었다. 칭찬과 수고의 인사말은 두말할 것도 없었다. 스트랩을 풀기 위해 다급하게 손을 움직였지만 고정된 고리가 어디인지 쉬이 찾을 수가 없었다.
솔이 계속 제 몸을 더듬으며 숨을 헐떡일수록 눈앞의 가람의 얼굴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빨리 말해 줘야 하는데. 솔의 손길이 더 다급해지자 태오가 성큼, 그의 지척으로 다가왔다. 쑥 손을 뻗은 태오는 솔의 재킷 안쪽으로 팔을 밀어 넣었다. 태오의 손바닥이 땀으로 흠뻑 젖은 솔의 등에 닿았다. 축축해진 솔의 등을 더듬던 그는 이내 제 손에 잡힌 스트랩을 강하게 잡아당겼다. 투둑 하는 소리와 함께 고정되어 있던 고리가 끊어져 바닥에 요란한 소리를 내며 떨어졌다.
솔은 몸을 옥죄던 스트랩이 풀어지자 해방감을 느꼈다. 숨은 물론이고 꼿꼿하게 긴장하고 있던 몸이 일순 축 늘어지듯 풀어졌다. 색색, 가파르게 오르내리던 숨이 그제야 제 궤도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솔은 바닥에 떨어진 스트랩과 태오를 번갈아 가며 쳐다보았다.
한결 편안해진 것은 사실이었지만 완전히 끊어져 제 기능을 상실한 가죽 스트랩을 보니 이렇게 할 필요가 있었나 싶었다. 갑자기 벌어진 상황에 솔은 멤버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것도. 무사히 끝낸 무대에 기뻐하는 일도 잠시 뒤로 밀어 두게 되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거칠었던 태오의 행동에 깜짝 놀란 참이었다.
“그냥 풀면 되는데!”
눈을 동그랗게 뜬 솔이 아주 조금 격양된 목소리로 태오에게 말했지만, 돌아온 목소리는 가람의 것이었다.
“어디 아프냐고! 괜찮은 거야?”
“왜 그래? 난 괜찮아.”
가람은 솔의 어깨를 두 손으로 덥석 잡으며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몰릴 만큼 큰소리를 냈다. 늘 언제나 느른하고 느긋한 가람이 다급하게 소리를 치자 솔은 깜짝 놀라 가람을 포함한 멤버들의 얼굴을 확인했다. 모두가 자신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모든 것이 즐겁기만 해 무대를 잘 끝냈다고 생각했는데,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큰 실수라도 한 것일까? 무대를 무사히 끝내고 서로 부둥켜안고 잘했다며 즐거워해도 모자랄 시간이었다. 하지만 그런 감상은 솔 혼자만의 것인 듯했다. 확연히 안 좋아 보이는 멤버들의 표정에 당황한 그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아무렇지 않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가람아, 솔이 놀랐잖아.”
지호가 솔의 어깨에 올린 가람의 손을 밀어내며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잦아들곤 있지만 여전히 숨을 몰아쉬느라 어깨를 들썩이는 솔과 달리 멤버들은 안정되어 보였다. 솔은 형들의 뒤편으로 아무 말도 못 하고 안절부절못하게 서 있는 득용과 눈이 마주쳤다. 득용도 영 표정이 좋지 않았다. 이상해진 이 분위기가 이해되지 않은 솔은 이럴 때마다 든든하게 나서 주는 태오에게 눈짓을 보냈다.
솔과 눈이 마주친 태오의 미간이 아주 살짝 구겨지는 듯하더니, 이내 그가 지호와 가람의 사이를 가로질러 두 사람의 거리를 벌렸다. 그러고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을 한 솔을 바라보며 멤버들의 우려를 설명해 주었다.
“성솔, 너 숨을 제대로 못 쉬고 있었잖아. 무대 중간중간 인상도 쓰고.”
“내…가?”
태오의 말에 솔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켜 보였다. 솔의 행동에 태오는 쐐기를 박듯 고개를 끄덕였다. 솔은 제 발치에 뭉쳐 있는 망가진 가죽 스트랩을 바라보았다. 그래서 고리를 끊어 버린다는 다소 과격한 선택을 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솔은 이 상황이 그저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무대를 하며 인상을 쓴 적은 없었고 아픈 곳도 없었다. 그나마 신경 쓰이는 부분이라면 마무리 직전에 숨이 차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았던 것. 그거 하나뿐이었다. 숨이 찬 거야 격한 안무와 노래를 동시에 소화해야 하다 보니 늘 겪는 일이었다. 간주가 끝나고 나서도 모두 거친 숨소리만 들릴 정도로 다 같이 숨이 차 하지 않았던가. 지금이야 다들 진정되었지만, 이런 오해를 부를 큰 문제는 아니었다.
“나 진짜 괜찮아. 멀쩡해…. 숨이 좀 차긴 했는데 그건 다 그런 거잖아. 다 괜찮았어.”
멤버들의 오해에 솔은 뒤늦게 손을 내저으며 자신이 괜찮음을 설명했다. 솔의 말에 가람이 재차 확인했다.
“정말 괜찮은 거지?”
“나 정말 아무렇지 않아.”
솔이 다시금 확인을 해 주자, 가람은 그제야 안심했다는 듯이 숨을 길게 내뱉었다. 그는 정말 심각하게 걱정했는지 이마를 짚으며 ‘솔…. 숨소리가 너무….’ 하며 중얼거렸다. 가람의 혼잣말에 솔은 제 숨소리가 그토록 이상했는지 고개를 기웃거렸다.
“근데, 왜 그렇게 인상을 쓴 거야. 문제 생긴 줄 알았어.”
“나 정말 인상 안 썼는데…?”
지호도 제 가슴을 쓸어내리며 태오와 똑같은 말을 했다. 그의 너머로 보이는 득용의 표정도 같은 의문을 품고 있는 듯했다. 정말이지 영문 모를 소리에 솔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하지만 솔은 그 영문 모를 질문을 또 한 번 들어야 했다.
스태프들과 관계자들에게 인사를 마친 영호가 헐레벌떡 달려와 솔을 붙잡고 대뜸 어디 아프거나 문제가 생겼냐 물었기 때문이었다.
솔이 고개를 내저었지만, 영호와 멤버들은 솔의 팔과 다리가 제대로 잘 움직이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걱정하는 마음을 조금 덜어 낼 수 있었다. 마지막 무대까지 끝이 났으니 잠시 녹화가 중지되고 팀별로 배정받은 대기실로 돌아갔다. 무대에 서기 전까지 급급하게 의상과 메이크업을 손보느라 어질러졌던 대기실로 돌아오자마자 멤버들은 작은 종이쪽지를 받았다. 가장 인상 깊었던 무대와 가장 별로였던 무대를 꼽으라는 쪽지였다. 멤버들과 상의 끝에 조심스레 숫자를 적은 종이를 제출했다.
아마도 그 종이와 심사 위원들의 점수를 토대로 오늘의 순위가 결정지어지는 듯했다. 오늘의 무대에서 탈락하는 팀은 없다고 했지만 솔에겐 탈락이 존재했기에 조용히 태오의 뒤에서 입술을 짓씹었다. 무대가 끝이 나자 이제야 결과가 신경 쓰였다.
불안해 보이는 솔의 모습에 눈길을 잠시 두었던 태오는 스타일리스트에게 망가진 솔의 가죽 스트랩을 내밀었다. 솔이 불안하게 입술을 자꾸만 씹자 태오는 큰 목소리로 제가 망가뜨렸다고 말했다. 그의 발언에 영호도 스타일리스트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상황이 일단락되자 영호는 멤버들의 어깨를 하나하나 두들기며 잘했다는 늦은 칭찬을 해 주었다. 그제야 멤버들은 서로의 얼굴을 보며 오늘 무대를 끝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지독했던 열흘이었다. 곧 숨이 넘어갈 것 같았던 솔의 모습에 모두 혼비백산해 그 사실을 잠시 잊고 있었다. 대기실 의자에 털썩 앉은 득용이 손과 발을 동시에 높이 들어 올리며 호쾌하게 소리쳤다.
“끝났다!”
득용의 천진난만한 모습에 멤버들은 그제야 의자에 앉아 한숨 돌리며 웃음 지었다. 그간 멤버들이 이번 무대를 준비하는 모습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봐 온 영호도 득용의 의견에 동의를 표했다. 카메라 동선을 확인하느라 덩달아 영호까지 함께 특훈 아닌 특훈을 해야 했었다. 그런 두 사람의 모습에 지호가 집게손가락을 까딱거리며 지적했다.
“순위 발표 나올 때까지 끝난 게 아니지.”
맞는 말이었다. 특히나 솔에겐. 의자 끄트머리에 살짝 걸터앉은 솔은 지호의 말에 애써 웃음을 지어 보였다.
‘제발.’
무대를 한껏 즐기며 끝내고 나면 결과를 떠나서 후련할 거로 생각했다. 하지만 솔의 그런 예상과 달리 조금 전 무대는 너무도 즐거웠기 때문에 미련이 남았다. 준비 과정에서 받는 압박감과 힘듦이 없다면 새빨간 거짓말이었지만 조명이 쏟아지는 무대 위에 혼자가 아닌 멤버들과 함께 서 있는 그 순간은 가슴이 벅차오를 정도로 다양한 감정이 요동치는 순간이었다.
이제야 자신이 춤을 추는 것을 이토록 좋아하고 멤버들과 함께하는 것이 즐겁고 더 많은 것들을 무대 위에서 함께 해 보고 싶다 느꼈는데, 여기서 끝내고 싶지 않았다.
“우린 최선, 최대를 다했잖아요! 그럼 된 거죠!”
득용이 훤히 드러나 어색한 제 복근을 손바닥으로 철썩 내려치며 말했다. 득용의 말이 백번 맞았지만, 솔은 그를 따라 웃을 수가 없었다. 두 손을 깍지 낀 솔은 불안한 시선으로 대기실 구석에 매달린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그런 솔의 모습을 가람이 빤히 쳐다보았다. 가람의 시선을 느낀 솔은 혹 그가 또 과한 걱정을 할까 깍지 낀 손을 풀고 웃음 지어 보였다.
“다들 멋있었어. 마무리 때 목소리가 안 나와서 좀 당황했거든 고마워.”
“난 그때 솔 쓰러지는 줄 알았어.”
“나 그렇게 약하지 않아.”
“약하다는 게 아니라…. 정말 숨소리가 너무 걱정스러웠어.”
자신에게 몰리는 멤버들의 시선에 솔은 활짝 웃어 보려 했지만, 그리 밝게 웃음 짓진 못했다. 순위가, 퀘스트의 성공 여부가 너무도 신경 쓰여 불안했다. 동시에 이 자리가 멤버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마지막 자리가 될 듯싶어 솔은 쥐어짜듯 웃음 지었다. 이 자리가 마지막이라면 더더욱 밝은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다. 너희와 함께해서 정말 행복하고 즐거웠음을 알려 주고 싶었다.
“아무튼, 다들 도와줘서 고마웠어. 그리고 너무 재미있었어. 멋지다. 우리. 그렇지?”
솔이 모두의 얼굴을 한 번씩 둘러보며 동의를 구했다. 솔의 말에 멤버들도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곤 피식 웃음 지었다.
“우리가 무대 찢었어요.”
의자에 반쯤 누워 있던 득용이 벌떡 일어나 두 팔을 벌리고 솔에게 달려들었다. 커다란 덩치의 막내가 두꺼운 두 팔로 형들을 힘껏 짓눌렀다. 그제야 태오도 김빠진 웃음을 흘렸다.
“다들 너무 고생했어요.”
득용의 팔에 깔린 솔과 지호가 버둥거렸다. 그러자 그 위로 가람도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엎어졌다. 가람이 편곡을 하게 되며 전체적인 디렉팅을 이끌어 갔던 터라 적극적으로 임해 준 멤버들에게 감사 인사를 덧붙였다.
“내 의견 들어줘서 고맙고 또 멋지게 소화해 줘서 고마워.”
뒤엉켜 있는 멤버들을 태오가 그저 바라보고만 서 있자 지호가 그를 향해 어서 끼라는 듯 손짓을 했다. 그러자 무뚝뚝하게 보고만 서 있던 태오가 득용이 한 것처럼 팔을 벌리고 멤버들을 향해 뛰어들었다. 가장 장신에 체격이 큰 태오까지 몸을 던지자 다들 ‘윽’ 하며 곡소리를 냈다. 아프고 힘겨워 내는 소리가 아니라 간간이 장난스러운 웃음이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