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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를 뽑고 싶어 (104)화 (104/192)

#104

마치 순백의 신부가 웨딩 마치를 시작하는 교회의 종소리처럼 티 없이 맑은 종소리가 뎅뎅 울려 퍼지자 솔은 기도하듯 가슴 중앙에 모은 손을 교차해 높이 들어 올렸다. 모두의 시선이 솔의 손끝에 향함과 동시에 지호와 가람이 앞으로 나오며 솔의 모습을 가렸다.

단정하게 차려입은 교복과 딱 어울리는 봄바람이 일렁이는 듯한 간주와 함께 지호가 맨 앞으로 나섰다. 한없이 다정하지만 어딘지 꿍꿍이가 있는 장난스러운 표정, 크림처럼 부드러운 목소리로 지호가 생글 웃으며 첫 음을 내뱉었다.

“눈이 부신 미스터리, 미로같이 깊은 밤은 이제 시작해. 너는 분명 길을 잃게 될 거야.”

지호의 목소리엔 생기가 가득했다. 지호가 통통 튀는 공처럼 가볍게 스텝을 밟으며 이동하자 가람이 그가 서 있던 자리를 차지했다. 방금 막, 수돗가에서 머리를 적신 남학생처럼 젖은 머리칼을 넘기며 센터를 차지한 가람은 지호와는 달리 차분한 목소리로 다음 소절을 제 것으로 만들었다.

“신비로운 Trick 비밀스러운 Trap. YOU, YOU, YOU, YOU, YOU, Gotcha.”

다 함께 ‘Gotcha!’를 외치며 점프 턴을 했다. 동시에 무대 중심에 모여 있던 멤버들이 넓게 산개하며 수없이 반복했지만 숨이 차오를 정도로 빠듯한 안무가 펼쳐졌다. 서로를 보지 않아도 음악에 맞춰 1초의 어긋남도 없는 정확한 군무가 무대를 가득 메웠다. 어디 하나 빠질 데 없는 다섯 남자가 보여 주는 무대는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 훤히 보였다.

데뷔까진 아직 거리가 먼, 연습생들이 꾸린 무대라기엔 지나칠 정도로 능숙했다. 이미 데뷔하여 활동하고 있는 경력직이라 생각될 정도로 다들 표정부터 몸짓, 노래까지 부족함이 없었다. 아니 오히려 차고 넘쳤다. 대면식 무대가 아니라 콘서트 현장이라 해도 위화감이 없었다.

단정하게 차려입은 교복과 한 번씩 보이는 솔의 어색한 시선 처리가 도리어 무대에 풋풋함과 신선함을 더해 주고 있었다. 대열의 맨 왼쪽에 서 있던 솔이 중앙으로 걸어 나오며 눈웃음을 지었다. 솔은 모르겠지만, 웃음 짓는 솔의 얼굴은 지금 자그마한 카메라 안에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렇게 길게 파트를 가져가진 않았지만, 천사 같은 얼굴처럼 고운 미성이 이 무대를 지켜보고 있을 모두를 사로잡았다. 심사 위원과 대기석에 앉아 있는 경쟁자, 그리고 훗날 TV로 솔을 만나게 될 대중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실제로 무대를 지켜보고 있던 다른 참가자들이 여러 가지 감정이 담긴 탄식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하지만 그 소란은 가람이 만들어 낸 사운드와 무대에 집중한 멤버들에겐 하나도 닿지 못했다.

솔의 파트가 끝나자 지호의 후렴이 이어졌다. 시원한 성량과 가창력. 여유 있는 몸짓과 표정. 지호는 아주 능숙하게 무대를 즐겼다. 그의 옆에 선 가람과 솔도 코러스를 더했다. 지호의 시원하고 매력적인 보이스에 차분한 미성의 소리가 더해지자 자칫 단조롭게 느껴질 수 있는 반복적인 후렴구가 풍성해졌다.

데이블락의 핫 트릭이 강렬하고 거친 느낌이었다면 멤버들이 만들어 낸 핫 트릭은 소년들이 보여 주는 청량감 가득한 합창 같은 느낌이었다.

흐뭇한 미소를 절로 그리게 만드는 후렴구가 끝나자 순간 무대가 끝난 것처럼 간주가 사라지며 오래된 LP판 같은 백색 소음이 깔렸다. 청량감이 가득하게 무대를 때렸던 투명했던 조명이 일순 점멸하며 붉은빛이 깔렸다. 붉은 조명 위로 대비되는 파란색의 조명이 덧대어지자 무대 위엔 긴장감이 맴돌았다.

멤버들은 하나로 포개어졌다. 뒤에 숨겨 놓은 반전이 보이지 않도록. 시작을 열었던 솔이 대열의 가장 앞에서 관객의 시야를 가렸다. 화려하게 부서지는 외모로.

득용의 허스키한 목소리와 태오의 낮은 저음이 주문을 외우는 듯, 음산하게 속삭였다. 태오의 목소리가 워낙 낮은 데다가 속삭이듯 같은 말을 반복하자 스피커를 둥둥 울리는 베이스처럼 들렸다.

“I Want You, I Want You, I Want You.”

집착적으로, 저주와도 같이 들리는 감정이라곤 없는 건조한 속삭임은 조금 전까지의 분위기와는 정반대였다. 급변한 무대의 분위기에 몇 안 되는 관객이 술렁거렸다.

레이저 도트가 표적을 조준하듯, 붉은색 조명이 센터에 서 있는 솔을 향해 모여들었다. 붉은 선이 물결치듯 동시에 움직여 한 인물을 가리키는 모습이 거창한 행위 예술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솔에게 조명이 집중되자 그는 성호 대신 손가락을 펼쳐 제 입술에 가져다 대었다. 무겁게 깔리는 반복적인 속삭임을 반주 삼아 솔은 소년들의 변화에 시작을 알렸다.

“쉿, 도망칠 생각은 하지 마.”

매끄럽게 무대가 이어진다 생각한 순간, 화면을 가득 채우는 솔의 얼굴이 순간 일그러졌다. 눈살을 찌푸리기 무섭게 솔은 허리를 숙여 카메라 앵글에서 사라졌다. 빠르게 턴을 하며 대열의 뒤로 숨자 솔의 뒤에서 몸을 웅크리고 있던 태오가 드라마틱하게 등장했다.

액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점프하며 튀어 오른 태오는 1절의 분위기와 상반되게 도발적으로 머리를 쓸어 넘기며 센터에 나섰다. 달라진 건 곡의 분위기와 조명뿐만이 아니었다. 단정하게 단추를 걸어 잠갔던 교복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한껏 풀어 헤쳐져 있었다. 짙은 남색의 재킷 안에는 몸을 꽉 옥죄는 가죽 스트랩이 채워져 있었다. 더 이상 교복을 입은 귀여운 남학생은 그 자리에 없었다.

태오의 모습이 온전히 조명 아래에 드러나자 속삭임이 끊기고 진정한 서막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분명 시작할 때와 동일한 종소리인데 그때와 달리 긴장감을 유발했다.

솔이 만들어 낸 시그니처 안무. 태오는 아주 거만하고 삐딱한 자세로 몸을 틀었다. 열어젖힌 재킷 안으로 몸에 딱 맞게 핏 되는 셔츠와 가죽 스트랩 때문에 조각과도 같은 몸의 선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특히나 손가락을 꼬아 등 뒤에 두자 어깨가 뒤로 넘어가며 잘 단련된 가슴팍이 앞으로 도드라졌다. 셔츠가 팽팽하게 당겨지며 단추가 끼워진 부분이 울었다. 태오는 카메라를 노려보며 천천히 성호를 그었다.

옭아매는 사슬처럼 꼬인 손가락이 그의 반듯한 이마를 터치하고 곧게 뻗어 높은 콧날을 스치고 아래로 내려갔다. 아슬아슬하게 벌어진 셔츠 사이를 지나 어깨를 툭툭 건드린 태오는 아주 불경한 기도를 올렸다.

태오가 사악한 소악마처럼 입꼬리를 씨익 말아 올리며 긴 다리를 이용해 옆으로 성큼 비켜나자 득용이 앞으로 걸어 나왔다. 붉은 기가 도는 머리카락에 붉은색 조명이 더해지자, 득용의 머리카락은 활활 타오르는 것처럼 붉어졌다. 남색의 재킷 아래에는 정확히 반토막으로 잘린 셔츠가 가려져 있었다.

팀의 막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비주얼과 체격. 가슴팍만 가릴 정도로 짧은 크롭 셔츠가 득용이 안무를 소화할 때마다 펄럭였다. 그 아래로 드러난 복근은 그간 득용이 쏟아부은 노력의 결정체였다.

노래가 끝을 향해 치달을수록 솔은 만족감을 느꼈다. 절도 있게 동작을 끊기 위해 있는 힘껏 팔과 다리를 움직이면 아릿하게 통증이 느껴졌다. 팔이 빠질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솔의 입가에 자연스러운 미소가 걸렸다. 연기 선생과 멤버들의 도움을 받아 만들어 낸 표정이 아니라, 땀을 흘리며 정말 즐거워서 나오는 미소 말이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랐지만 내뱉는 소리에는 흔들림이 없었다. 안무가 격해지면 격해질수록 결승을 향하는 육상 선수처럼 폐가 찢어질 듯 아파져 왔다. 그럼에도 점점 솔과 멤버들은 더욱더 힘차게 움직였다.

클라이맥스에 다다르자 솔은 정말 더는 소리를 낼 수 없을 것처럼 숨이 차올랐다. 지금 입을 벌리면 거친 숨소리만 내뱉을 것만 같았다. 그런 솔을 질책하듯 지호의 쭉 뻗은 시원한 고음이 귓가를 때렸다.

잘 짜인 동선을 따라 아슬아슬하게 스치듯 득용과 태오를 지나친 솔은 함께 코러스를 넣어야 하는 가람과 눈짓을 주고받았다. 가람도 숨이 차긴 피차 마찬가지인 듯했다. 크게 숨을 들이쉬고 솔은 붉은 입술을 활짝 열었다. 솔의 걱정대로 입 밖으로 튀어나온 소리는 그다지 힘 있지 못했다.

잘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솔이 인지하기도 전에 다른 목소리들이 그 모자란 힘을 채워 넣었다. 스치듯 지나치며 솔의 상태를 눈치챈 득용과 태오였다. 모두가 함께 코러스를 넣은 모양새가 되었지만 본래 그렇게 짜인 것처럼 아주 자연스러워 그 누구도 솔의 실수를 눈치채지 못했다.

너무 웃어서도 안 되는데, 솔은 이 힘든 와중에도 자꾸만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눈만 마주쳐도 서로의 상태가 가늠되고 신호를 주고받지 않아도 이루어지는 커버 업이 얼마나 든든하고 따뜻하게 느껴지는지 기분이 좋아 자꾸만 비실비실 웃음이 흘러나올 것만 같았다.

곡의 분위기를 떠올리며 간신히 씰룩이는 입꼬리를 다잡은 솔은 터져 나오는 지호의 고음을 들으며 처음 시작할 때와 같은 대형으로 빠르게 돌아왔다. 이제 마무리였다. 서로의 거친 숨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이 붙은 멤버들은 함께 마지막 소절을 불렀다.

“I will catch you!”

간주가 끝이 나고 화려하게 깜빡이던 조명이 멈췄다. 하지만 카메라는 계속해서 무대를 비추고 있었다.

음악이 끝이 났지만, 솔은 카메라를 응시하며 거친 숨을 내뱉었다. 터져 버릴 풍선처럼 흉통이 부풀어 올랐다. 크게 숨을 들이마셔도 모자란 숨은 쉬이 채워지지 않았다. 솔이 가슴을 부풀리며 헐떡일 때마다 셔츠 위에 두른 가죽 스트랩이 몸을 조여 댔다. 무대를 내려가면 당장 이것부터 벗어 던지고 멤버들에게 몸을 기대고 싶었다. 그리고 차가운 물. 솔이 다시금 눈살을 찌푸렸다.

탁- 소리가 나며 조명이 점멸하자 대기석에 앉아 있던 다른 참가자들과 심사 위원의 박수 소리가 흘러나왔다. 그제야 솔을 비롯한 멤버들은 무대 아래로 내려올 수 있었다. 어두운 계단을 내려오자마자 가람이 솔의 어깨를 붙잡아 돌려세웠다.

“솔, 어디 아파?”

어디 아프냐니, 가람의 질문에 솔은 고개를 내저었다. 마음 같아선 크게 아픈 곳 따윈 없고 다들 대단했다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 솔은 숨을 헐떡거리기만 했다. 숨이 거칠기는 가람도 마찬가지였다. 더불어 그의 얼굴엔 무대가 끝났다는 기쁨과 아쉬움보단 솔을 향한 걱정이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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