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애를 뽑고 싶어 (103)화 (103/192)

#103

***

어깨동무하고 둥글게 머리를 맞대고선 멤버들의 얼굴에 긴장감이 돌았다. 다들 웃고 있지만 눈동자에 서린 불안과 긴장 그리고 기대와 각오가 감춰지지 않았다.

“가자.”

태오의 덤덤한 목소리 그 한마디에 모두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구구절절한 말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았다. 가장 어렵다는 ‘늘 해 왔던 대로.’ 그렇게 하면 될 일이었다. 솔은 경고처럼 눈앞에 재차 떠오른 퀘스트 창을 재빨리 치워 버렸다.

지금 당장은 퀘스트가 설정해 주는 목표에 얽매이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시스템 종료가 두렵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지금 퀘스트 창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면 이 자리에 서 있는 자신이 단순히 퀘스트에 등이 떠밀려 서 있는 것처럼 느껴질 것 같아서였다.

솔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했다. 어디서든 가람이 편곡한 익숙한 간주가 흘러나오면 오르골의 발레리나처럼 춤이 나오도록. 그렇게 한 이유는 시스템이 내린 퀘스트 때문이 아니었다. 자신과 태오가 함께 만들어 낸 안무, 가람이 편곡한 음악, 득용이 몇 번이고 수정해 짜낸 랩, 말을 하기 어려울 정도로 연습한 지호의 노래.

순전히, 오롯이 멤버들과 만들어 낸 무대를 망치고 싶지 않아서였다. 단순하게 퀘스트처럼 누가 더 잘했냐 하는 순위 평가 같은 것을 말하는 게 아니었다. 그간 연습해 왔던 것에 대한 결실을 오늘 무대 위에서 보여 주고 싶은 것이다.

심사 위원과 후에 이 방송을 보게 될 시청자가 아니라 멤버들에게. 무대가 끝나고 내려왔을 때, 멤버들이 모두 환하게 웃으며 자신에게 그리고 서로에게 ‘잘했어!’라고 말하는 걸 듣고 싶었다. 다른 사람들의 인정은 그다음이었다. 저와 함께할 팀의 인정, 친구들의 인정,

열흘간 오늘의 무대를 준비하며 수고스럽지 않았냐 묻는다면 솔은 정말 너무 힘들었고 압박감과 불안감을 느꼈다고 말할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솔은 멤버들을 향해 언젠가처럼 선뜻 먼저 손을 내밀었다.

안정의 포션을 마셨는데도 다리가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처럼 덜덜거렸고 쫙 펼친 손가락도 바들거렸다. 무언가 겁을 먹거나 긴장했을 때 몸이 보이는 반응이지만 멤버들을 보는 솔의 표정은 너무도 화사하기 짝이 없었다. 지금 그들이 서 있는 장소가 무대, 어두운 구조물 안이 아니라 싱그러운 태양 아래인 듯 너무도 화사했다. 솔은 조금 떨리긴 하지만 유례없이 밝고 고양된 목소리로 멤버들의 이름을 하나씩 불렀다.

“지호 형, 태오야, 가람아, 디케이.”

부름을 들은 멤버들이 각기 저마다 다른 반응을 보이며 솔이 내민 손끝을 조심스레 잡아 주었다. 솔의 손은 고작 두 개인데, 그 손을 잡고자 하는 손은 너무 많아 손가락을 하나씩 잡은 모양새가 되었다.

“뭐예요. 솔이 형. 갑자기 왜 그렇게 웃으면서 손 내미는 거예요? 꼭 무슨 작별 인사 하는 사람 같네.”

득용의 말에 솔은 제 피부처럼 희고 가지런한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정곡을 찔렸다.

“형…. 막 도망치고 그러는 거 아니죠?”

너무 솔직해 눈치 없다는 소리를 제법 들었을 막내는 한 번씩 이렇게 날카로울 때가 있었다. 오랜만에 마주한 퀘스트. 최선을 다했지만, 그 결과는 확신할 수 없었다. 퀘스트에 이끌려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고 그 결과에 연연하지 않겠다 마음먹었지만, 솔이 그러든 말든 결과는 그에게 찾아올 것이었다.

성공하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늘 해 왔던 대로 내일을 살게 될지도 몰랐다. 동시에 오늘이 제 손을 조심스레 잡은 멤버들과 마지막이 될 수도 있었다. 만약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면, 멤버들은 다시금 또 자신 말고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될까? 그런 생각이 들자 솔은 커다란 돌멩이를 삼킨 것처럼 가슴이 묵직하니 답답해졌다. 제자리를 찾은 것 같다던 말이 떠올랐다. 여기가 진짜 제자리라면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한번 자리를 잃어 보지 않았던가. 그렇기에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다.

“다들 고마워.”

네 사람이 걱정하지 않도록, 솔은 행복을 가득 담아 웃었다. 지금 그는 정말로 행복했다. 이곳에 와서 새롭게 만난 친구들이 흔들리는 자신을 붙잡아 주려 내민 손과 그 마음에 대한 감사.

“아, 진짜 왜 그래요. 형. 그러니까 불안하잖아요!”

득용이 솔을 보며 울상을 지었다. 입이 불룩 튀어나오고 늘 성이 나 있는 눈썹이 강아지 꼬리처럼 땅을 향해 축 처졌다. 과장된 표정을 한 득용과 솔의 사이에 서 있던 지호가 웃음을 터뜨렸다. 갑자기 잡힌 이 분위기가 지호는 동생들의 소꿉장난처럼 귀여워 보였다.

“솔아, 우리 아직 아무것도 안 했어. 지금 분위기는 거의 뭐 마지막 무대거든?”

갑작스러운 솔의 발언에 가람도 득용의 말처럼 어딘지 불안함을 느꼈는지 솔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솔, 며칠간 많이 힘들었어?”

“그러게. 우리 솔이가 힘들었었나 보다. 감회가 남다르지? 우쭈쭈. 무대 끝나면 형이 특별히 뽀뽀도 해 주고 대성통곡도 해 줄게.”

한번 가람이 솔을 걱정하기 시작하면 솔을 살피며 솔이 한숨만 쉬어도 괜찮냐고 물어보기에 지호가 농담을 던지며 분위기를 바꿔 보려 했다. 하지만 태오가 예의 그 무뚝뚝한 얼굴로 멤버들을 중재했다. 느닷없이 고맙다는 인사를 하는 솔이 무언가 중요한 이야기를 하려나 싶어서 태오는 솔이 제 말을 끝낼 수 있도록 해 주었다.

“다들 일단, 성솔이 하는 말 끝까지 들어 봐요.”

솔은 태오의 개입에 눈짓으로 고마움을 표했다.

“다들 정말 고마워.”

솔은 다시 한번 진심을 담아 제 손을 잡은 멤버들에게 감사를 전했다. 지금 자신의 감정을 전달할 수가 있다면 수십 번도 더 말할 수 있었다. 열흘 동안 그 어느 때보다 진심으로 살아 있었다. 숨이 턱턱 막힐 정도로 열심히 연습해서 그런 걸까? 매일같이 심장은 힘차게 뛰었고 다양한 감정을 느꼈다. 힘들고 보람차고 짜증스럽고 즐겁고 답답했고 수줍었고 행복했다. 새로운 세상을 본 기분이었다.

그를 잠식했던 우울함이 가시고 먹구름이 가득한 하늘에 볕이 드는 것처럼 세상이 환해지는 느낌이었다. 모든 것이 새로워 보였고 제 어깨를 짓누르는 모든 것들에서 해방된 기분이었고 끝나지 않을 것 같은 터널 끝의 불빛을 본 것만 같았다.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는 일은 솔을 즐겁게 했다. 바람이 부는 내리막길을 시원스레 전력 질주 한 기분이 되게 했다.

“나 아이돌 되고 싶어.”

솔은 멤버들의 손과 맞닿은 제 손에 힘을 주었다. 이 온기와 감촉, 분위기와 두근거림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솔은 언젠가 가람이 저에게, 태오가 저에게 물었던 질문을 떠올렸다. 너무 늦은 게 아닌가 싶었지만 그래도 그때와는 다른 답을 돌려주고 싶었다. 생각지 못한 솔의 말에 네 쌍의 눈이 그를 오롯이 담았다.

“솔….”

가람은 순간 울컥하며 벅차오르는 기분에 말을 잇지 못하고 솔을 바라보았다. 다른 멤버들도 피차 마찬가지인지 더 말을 얹지 못하고 솔을 바라볼 뿐이었다. 네 사람의 시선에 솔의 뺨이 발그레해졌다. 새하얀 뺨에 분홍빛이 돌자 수줍게 익은 백도 같았다.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이 눈을 통해 오갔다. 간질간질한 감각에 득용이 주먹을 움켜쥐곤 우렁차게 소리를 질렀다. 괜히 민망해서, 또 아이돌이 되고 싶다는 솔에 말에 안심되고 기뻐서기도 했다.

“아자! TEAM ONE 우승하자!”

파이팅이 가득한 득용의 외침에 지호가 고개를 저으며 웃음을 터뜨렸다. 솔도 마찬가지였다. 무표정했던 태오의 얼굴에도 일순 웃음이 퍼졌지만, 그는 흠흠 헛기침을 두어 번 하곤 다시 진지한 리더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올라가서 보여 주고 오자.”

태오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이제야 모두가 같은 꿈을 가지게 되었다. 동생들의 그 모습을 흐뭇한 얼굴로 지켜보며 지호가 고개를 주억거리며 톡톡 동생들의 등을 두들겨 주었다. 지호의 손길을 받던 득용은 무릎까지 굽혀 저보다 작은 지호의 품으로 들어가려고 꼬물거렸다.

“지호 형 저 갑자기 눈물 나올 거 같아요.”

“오구. 그랬어요? 덩치에 안 맞게 귀엽게 노네. 우리 막내.”

지호의 말대로 너스레를 떠는 득용이 귀여워 솔도 맞잡았던 손을 풀고 지호가 한 것처럼 함께 그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그러자 가람이 답지 않게 그사이에 끼어들며 득용을 흉내 냈다.

“솔, 나도 눈물 날 거 같아.”

“1절만 해. 누가 보면 이미 우승한 줄 알겠다!”

득용에게 했듯이 가람의 등을 토닥여 주려던 솔의 손을 지호가 가로막았다. 그러고는 엄마들처럼 가람의 너른 등을 짝 소리가 나게 내려쳤다. 솔의 다정한 손길을 기대했던 가람은 갑자기 벼락처럼 내린 매운 손맛에 ‘콜록’ 기침을 터뜨렸다. 콩트를 찍는 것 같은 멤버들의 모습에 태오는 고개를 살짝 저으며 말 한마디를 얹었다.

“울 거면… 무대 끝나고 나서 울어. 아직 시작도 안 했어.”

조금 전 얼굴에 머물렀던 웃음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무뚝뚝한 얼굴로 돌아온 그가 내뱉은 말에 멤버들은 장난을 멈추고 서로를 보며 웃었다. 타이밍 좋게 무대의 준비가 끝났는지 스태프가 그들을 불렀다.

성큼 다가온 현실에 멤버들은 웃음을 지우고 마음을 다잡았다. 태오는 보급형 핀 마이크를 고정하느라 뺨에 붙인 테이프를 한번 꾹꾹 눌렀다. 그러곤 스태프가 무대에 올라가란 사인에 서로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천천히 계단을 올랐다.

조명이 꺼진 어두운 무대 위로 올라온 멤버들은 리허설하며 확인해 둔 자신의 자리에 위치했다. 대열의 센터 가장 맨 앞자리는 누구보다 도입부의 느낌을 잘 살릴 수 있는 솔의 자리였다.

가운데 선 솔의 한 발짝 뒤에 지호와 가람. 다시 그 뒤로 득용과 태오가 서서 간주가 시작되기를 속으로 셌다. 하나, 둘, 셋, 넷. 시계가 똑딱이는 듯 작은 소리가 흘러나오자 여러 갈래의 흰 조명이 솔을 밝혔다. 빛 가운데에 천천히 성호를 그리며 선 솔은 그야말로 천사처럼 순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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