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애를 뽑고 싶어 (102)화 (102/192)

#102

영 시큰둥한 엄마의 반응에 다시금 화면을 응시한 정은의 앞에 나타난 얼굴은 상대적 오징어가 되어 버린 다른 참가자의 얼굴이었다. 크게 못난 것은 아닌데 조금 전 시력이 좋아질 정도의 미남을 보고 있었던 터라 성에 차지 않았다. 정은은 갑자기 전환된 화면에 짜증을 냈다.

“아니. 전에 나온 애. 얘 말고! 진짜 잘생긴 애 나왔었다고!”

타이밍이 어긋나 난데없이 제 안목을 시험당한 정은은 버럭 큰소리를 냈다. 그냥 24시간 잘생긴 얼굴 클로즈업 샷만 내보내도 참 재미있을 텐데, 제대로 얼굴이나 보여 줄 것이지. 지금 이런 다른 참가자들의 인터뷰가 중요한 게 아니었다. 정은은 지독한 얼굴 만능주의였다. 더불어 그녀의 이 드높은 심미안은 필시 소파에 앉아 다시 시집을 응시하는 어머니에서 비롯된 것이 틀림없었다.

앞서 등장해 대기석에 앉아 있었던 다른 참가자들의 모습이 비쳤다. 첫 촬영을 끝마치고 별도로 딴 인터뷰인지 공간이 바뀌며 참가자들의 개별 인터뷰가 흘러나왔다.

[YC가 나온다고요?]

[깜짝 놀랐죠. 솔직히 YC면….]

[다들 키가 크시더라고요. 역시 YC. YC 상이라고 하잖아요.]

[그분들 너튜브에서 봤어요.]

검은 방에서 각 조끼리 모여 도란도란 인터뷰하는 장면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개중엔 영 떨떠름한 뉘앙스로 ‘YC 엔터테인먼트’를 언급하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참가자도 있었다. 그 고개를 기울이는 동작이 주는 느낌은 앞선 다른 참가자들에게 보냈던 호의와 궁금증과는 거리가 멀었다. 마치 ‘너희가 왜 여길 나왔냐.’ 하는 적대적인 느낌이 들었다. 정은은 화면을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정은이 서바이벌 프로그램, 오디션 프로그램을 싫어하는 이유를 정확하게 보여 주는 장면이었다. 악의적으로 편집하기도 하지만 설사 저런 반응을 실제로 내비쳤다 해도 구태여 방송에 내보낼 필요는 없었다. 이런 반응이 방송을 타면 결국 이런 모습을 보인 본인도 또 그런 반응의 대상자가 된 사람도 서로가 상처받게 된다.

하지만 이런 반응을 보여 주는 것이 못내 속에 숨겨 두었던 감정을 긁으며 자극을 주기도 했다. 그렇게 좋은 감정이든 싫은 감정이든 어떤 감정을 끌어당겨 화제를 끌려고 하는 것이 악의적인 편집이었다. 누가 상처를 받게 되던 화제를 만들어 내 대중의 관심을 끌고 시청률만 나오면 된다는 마인드였다.

그 악의적 편집으로 인해 생긴 오해는 어느 순간 그 사람의 이미지로 남아 버리게 된다. 어떤 사람의 이름을 떠올렸을 때 떠오르는 첫인상처럼 말이었다. 전에는 아무 생각 없이 TV를 보곤 했었는데, 정은 본인이 사회에 치이다 보니 이런 모습들을 보는 게 점점 피곤해졌다.

정은이 눈살을 찌푸리든 말든, 화면이 전환되며 인터뷰에서 언급되었던 너튜브 채널 영상에 관한 자료 화면이 나왔다. 다른 참가자들의 의견에 힘을 보태 주는 듯, 좋은 평이 즐비한 덧글들을 자료로 보여 주고 아직 이렇다 할 만한 무대도 없는 멤버들에게 ‘인기’, ‘화제가 된’ 따위의 수식어를 덧붙였다. 정은은 이때까지만 해도 그저 다시 제대로 얼굴 좀 보자 하는 정도의 가벼운 마음이었다.

다시 화면이 넘어와 무대를 비췄다. 짧은 인터뷰와 자료 화면이 지나가고 나자 순식간에 7조의 이미지가 힘들고 가난한 아이들 사이에 아득바득 끼어들어 온 중산층 아이 같아져 버렸다. 일자로 쭉 늘어선 7조를 지미집 카메라가 첫 번째부터 순서대로 클로즈업했다.

정은의 시선을 순간 사로잡았던 처음 등장한 인물과 다른 참가자였지만 이쪽도 만만치 않은 미모를 자랑했다. 어깨에 닿을락 말락 한 길이의 장발을 방금 샤워하고 나온 것처럼 쓸어 넘긴 일자 눈썹의 미남이 첫 타자였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미남과 미인의 중간쯤이었다.

그리고 그 옆, 정은의 취향은 아니지만 보드라워 보이는 갈색 머리칼에 화면을 보며 웃어 보이는 생기있는 여우상의 미남. 다정하면서도 능글능글 장난을 칠 것 같은 인상이었다. 웃는 입매의 끝이 동그랗게 말려 더욱 그런 분위기를 풍겼다.

카메라가 천천히 이동하며 정은의 시선을 대번에 사로잡았던 그 인물을 비춰 주었다. 검은 머리카락을 반만 깐 헤어스타일. 드러난 이마 아래에 짙은 눈썹이 남자다웠다. 적당히 깊은 아이홀과 높은 콧날이 두말할 것도 없이 미남의 표본 같았다. ‘잘생겼다’라는 말이 반박할 수 없게 절로 나오는 얼굴이었다. 교복을 단정하게 입고 있으니 어른이다 싶으면서도 조금 앳된 구석이 있어 보였다. 교복이 아니라 정장 같은 걸 입고 있었다면 정은은 입을 틀어막았을지도 몰랐다.

“잘생긴 애, 옆에 잘생긴 애, 그리고 더 잘생긴 애.”

“그러게, 예쁘게 생겼네.”

정은의 말에 어느새 시집을 내려놓은 엄마가 맞장구를 쳤다. 저 나이대 아주머니들은 피부가 희고 어리고 제법 생기면 그 외모의 결이 어쨌든 ‘예쁘다’라고 했다.

“이름이 뭐야? 그냥 7조라고만 나오고 그게 다야?”

화면 어디에도 이름을 표기해 주는 자막이나 명찰 같은 것이 없었다. 그저 잘생긴 얼굴이 가득한 화면 구석에 ‘7조 YC 엔터테인먼트’라고 쓰여 있는 게 정보의 전부였다. 그러고 보니 처음 시작할 때 생방송 진출 팀이 될 때까지 멤버 개별 이름은 밝히지 않는다고 사회자가 말했던 듯했다. 그걸 곧이곧대로 듣고 ‘네’ 하며 얌전히 기다릴 인물이 어디 있을까?

대한민국은 IT 강국. 지금은 21세기였다. 검색 한 번이면 모든 것이 해결되는 세상이다. 정은은 핸드폰 화면을 거칠게 두들겼다. 정확히는 두들기려 했다. 그 순간 TV 화면이 휙, 옆으로 전환되며 나타난 얼굴에 정은은 검색을 미루고 잠시 핸드폰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정은은 여태껏 자신의 취향이 남자답게 선이 굵고 아주 진하고 잘생긴 미남이라 확신했다. 하지만 화면엔 그런 취향도 씹어 먹을 비주얼의 요정이 서 있었다.

“와 씨. 여기가 바로 아란델인가?”

정은은 오랜 애니메이션 덕후답게 인기 애니메이션에서 나오는 얼음 왕국 이름을 언급했다. 서릿발 날리는 요정 여왕이 절로 떠오르는 외모가 눈앞에 어른거렸다. 지나치게 길지도 짧지도 않은 화려한 은발. 피부가 어찌나 흰지 탈색한 모발과 함께 어우러져 그야말로 순백이었다. 너무 피부가 하야면 그저 잘 빚어 놓은 밀가루 빵떡이나 달걀귀신처럼 화면에 잡히는 경우가 있었는데 화면을 가득 채운 참가자는 그렇지 않았다.

얼굴이 어찌나 작은지 옆에 살짝 나오는 다른 참가자들과도 그 크기 차이가 났다. 그 작은 얼굴에 빽빽하리만치 이목구비가 가득 들어차 있으니 허여멀건 찐빵처럼 보일 틈이 없었다. 그런 눈처럼 새하얀 비주얼에 서늘한 인상, 굳게 다문 입술은 싸늘함이 느껴질 정도의 냉미인이었다.

“잘생긴 애 다음엔 이쁜 애….”

그냥 좀 이쁜 애도 아니었다. 앞서 나왔던 잘생긴 미남들이 뇌리에 확 잊힐 만큼의 미모를 가진 참가자였다. 정은은 넋을 놓은 채 화면을 바라보며 ‘7조….’를 되뇄다. 어디서 저런 얼굴로…. 감히 아직도 데뷔를 안 시켰다니.

모공까지 보인다는 고화질 초근접 샷에도 굴욕 없이 화면을 가득 채우는 영롱한 얼굴은 좀처럼 미소를 담지 않았다. 냉기 풀풀 날리는 외모에 이바지하던 굳게 다물린 입술이 살짝 벌려지더니 어딘가 불편한 듯 눈가가 찡그려졌다. 서늘했던 얼굴이 순식간에 가련해졌다.

뒤를 이어 짧은 머리카락을 붉은 기 돌게 염색한 매력 있는 남자의 얼굴이 비쳤다. 다소 사납게 생긴 강한 인상에 운동선수처럼 좋은 몸매가 교복 위로도 티가 났다. 묘하게 시선을 사로잡는 매력이 있는 남자였지만 정은의 뇌는 아직 은발 머리의 ‘그’에게 멈춰 있었다.

흔히 말하는 ‘치였다.’, ‘덕통사고’.

말이야 커다란 충격이 있는 것처럼 하지만 사실 그 시작은 늘 ‘얜 뭐지? 이름이 뭐지? 조금 더 찾아볼까?’에서 시작한다. 그러다 어느새 정신 차려 보면 핸드폰 갤러리에 사진이 잔뜩 쌓여 있게 되는 거다.

정은은 조용히 핸드폰을 들어 올려 SNS를 실행하곤 검색창에 ‘마이 아이돌 스타즈 은발 이름’을 입력했다. 하지만 검색 결과는 죄 똑같은 내용뿐이었다.

해물된찌

@So_Delicious

이 은발 미소년 누구시니? 이름 좀 알려주라

(급하게 tv화면을 찍느라 초점이 안맞고 흔들린 사진.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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