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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를 뽑고 싶어 (99)화 (99/192)

#99

고개를 살짝 숙인 태오는 새카만 눈동자로 솔을 응시했다. ‘가짜 성호’ 별것 아닌 그 단어가 굉장히 위험하게 들렸다. 솔은 어쩐지 얼굴이 화끈거려 태오를 마주 보지 못하고 허겁지겁 그의 동작을 따라 하는 시늉을 했다.

“이렇게?”

솔은 허둥대며 태오가 보여 준 것처럼 손가락을 꼬아 제 반듯한 이마를 살짝 건드리곤 모은 손을 가슴 중앙으로, 가슴께에서 왼쪽 어깨, 그리고 다시 오른쪽 어깨로 움직였다. 동작을 파헤치기 쉽게 아주 천천히 해 보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태오가 성큼, 솔의 뒤로 다가와 팔을 뻗었다. 솔이 손가락을 꼰 모양이 잘못되었는지, 태오는 제 커다란 손으로 솔의 손바닥을 감싸 잡았다. 그러고는 교차한 손가락을 바꿔 주며 천천히 솔의 팔을 이끌었다.

마치 태오가 뒤에서부터 끌어안은 듯한 자세가 되어 버리자 솔은 얼굴을 붉혔다. 그간 멤버들과 친해지며 스킨십이 잦아지긴 했지만 이렇게 숨소리가 바로 옆에서 느껴질 정도로 밀착된 적은 처음이었다.

고된 연습으로 달궈진 몸의 열기와 두근거리며 뛰는 심장 소리까지 마치 제 체온과 심장 박동처럼 느껴질 정도로 가까웠다. 두근두근 엇박자로 울리는 심장 소리 중에 어느 것이 자신의 심장 소리인지 구분하기가 어려웠다.

솔이 갑자기 고개를 푹 숙이자 그 모습을 오해한 태오는 움찔하며 품에 끌어안다시피 했던 솔을 풀어 주었다. 안무에 집중하기도 했고 최근 들어 솔과의 접촉이 부쩍 자연스러워져 미처 그가 불편해할 거로 생각하지 못했다. 태오 자신도 솔과의 접촉을 인지하고 나니 너무 가까워 얼굴을 붉혔다. 코끝에 자신이 쓰는 제품과 똑같은 목욕용품의 향기가 스쳤다. 분명 매일 사용하는 제품인데 유독 그 향이 짙고 머리가 아플 정도로 달콤하게 느껴졌다.

품에 들어왔던 향기가 너무 좋았던 탓일까. 연기가 흩어지듯 온기도 사라지자 태오는 아쉬움을 느꼈다. 태오는 애써 아무 느낌도 없는 척, 솔에게 한 발짝 떨어져 괜히 동작을 다시 보여 주는 시늉을 했다. 뜬금없이 사과하는 것도 어색한 거 같고 솔도 그저 고개만 숙이고 태오가 알려 준 대로 손을 움직일 뿐이었다. 잠깐의 접촉이 흩어져 버린 향기와 온기처럼 흐릿해지고 태오는 다시금 솔이 보여 주는 동작에 집중했다. 여전히 고개 숙인 솔의 하얀 얼굴이 발그레함을 넘어 새빨개졌지만, 태오는 솔의 안무에 푹 빠져 그 변화를 눈치채지 못했다.

고개를 숙이며 길게 뻗어 나온 솔의 목덜미까지 붉어졌다. 솔은 괜히 ‘큼큼’ 헛기침하며 이상하게 열이 오르는 얼굴을 식혀 보려 손부채질했다. 파닥거리는 손바닥이 만들어 낸 알량한 바람은 제법 서늘했다. 솔이 알 수 없는 열기를 가라앉히려 한창일 때, 태오는 거울에 가까이 다가가 동작을 반복했다.

서 있는 각도를 바꿔 보기도 하고, 십자 성호를 그리는 듯한 그 행동을 느릿하게도 해 보았다가 마치 군인처럼 절도 있고 빠르게 해 보기도 했다. 태오의 그 모습에 솔은 고개를 들었다. 하얗고 가느다란 손으로 주먹을 쥐고는 화끈거리는 제 양 뺨을 툭툭 두들겼다.

잘생긴 거야 매일 아침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느끼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나이답지 않게 늘 엄격했던 태오의 얼굴이 평소와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 정말 속내가 따로 있는 악마처럼 한쪽 입꼬리만 비틀어 올린 태오의 모습은 ‘믿음직한 태오’에서 멀어져 거만하고도 치명적이었다. 흔히 말하는 섹시함이란, 괜히 옷을 헐거벗는 게 아니라 이런 걸 말하는 게 분명했다. 그리고 조금 전까지 자신의 등과 어깨에서 느껴졌던 온기와 숨소리. 옅은 스킨 냄새. 보면 안 될 장면을 몰래 훔쳐본 아이처럼 뺨이 화끈거렸다. 저보다 한참 성숙한 멋진 사람에게 동경을 담은 짝사랑 가슴앓이하는 소년처럼.

태오가 계속해서 동작을 반복할 때마다 분명 같은 동작임에도 다른 느낌이 들었다. 솔은 그 모습을 홀린 듯 쳐다보다 태오의 옆에서 그의 동작을 따라 했다. 태오와 같은 동작인데, 두 사람의 느낌은 영 달랐다. 솔은 특유의 서늘하고 예민한 분위기 때문인지, 아니면 나긋한 동작 때문인지 제법 신실한 신자 같은 느낌이었다. 그에 비해 태오는 다소 사악해 보였다.

같은 행동을 반복하는 두 사람의 모습이 단순한 연습일 뿐인데도 극명하게 대비되었다. 꼭 순진하고도 순수한 솔을 태오가 조롱하는 것처럼 보였다.

솔은 흘끔, 태오의 동작을 훔쳐보다 훅 목구멍에서부터 열이 올라옴을 느껴 다시금 손바닥을 파닥거렸다. 왜 이러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솔이 그러는 사이에도 태오는 계속해서 동작을 발전시켜 나갔다. 어느새 취한 듯 그의 움직임을 바라보던 솔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말을 할까 말까 잠시 갈팡질팡 머뭇거렸지만, 조금 전 처음 낸 의견에 칭찬을 해 준 태오의 반응 덕분일까? 솔은 쉽게 용기를 얻었다.

“맨 처음 벌스에서는 이렇게 하고, 두 번째 종소리부턴 이런 식으로 하는 거 어때? 그러면…. 같은 동작인데 변화가 확 느껴지…지?”

솔은 실컷 말해 놓고 마무리엔 말꼬리를 흐리며 태오를 곁눈질했다. 처음엔 조금 전, 자신이 했던 것처럼 순진하기 짝이 없게 가볍게 성호를 긋곤 기도하는 듯 두 손을 얼굴 앞에 모으며 동작을 마무리했다. 두 번째는 막 태오가 한 것처럼, 몸을 삐딱하게 돌리고 어깨를 슬쩍 뒤로 물린 채로. 딱, 태오처럼 정면을 노려보며 성호를 그었다. 내용물 자체는 같은 동작이었지만 그 느낌이 선명하게 달랐다.

“시그니처 안무네.”

태오의 묵직한 목소리에 솔은 움직임을 멈추고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가뜩이나 큼직한 눈이 동그랗게 떠진 게 영락없이 놀란 소동물 같았다.

“어…? 이게? 그 정도까지는 아니고….”

“성솔. 네가 방금 시그니처 안무 짠 거야.”

“아니….”

태오의 말에 솔은 당황한 듯, 눈과 입을 크게 벌리고 손사래를 쳤다.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솔은 태오의 말을 부정했다. 그저 생각나는 대로 지껄이고 움직인 것에 불과했다. 느닷없이 시그니처 안무라니. 솔 스스로 생각하기엔 ‘시그니처 안무’처럼 상징이 될 중요한 파트의 안무로 덜컥 결정짓기엔 제 아이디어가 너무도 형편없다고 생각했다. 솔의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태오는 단호했다.

“멋지다. 마음에 들어. 좋은 아이디어였어.”

“아니…. 태오야.”

태오의 칭찬에 솔은 말문이 턱 막혀 그의 이름을 불렀다. 태오의 곧은 눈빛이 자신을 향하자 솔은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기분? 자신의 아이디어가 칭찬받는데 어찌 안 좋을 수가 있을까? 입꼬리가 자꾸만 씰룩거리고 괜한 뿌듯함이 차오르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득용이나 지호가 낸 아이디어였다면, 그 두 사람은 아주 콧대를 높이 치켜들고 득의양양하게 ‘내가 쫌 해.’ 이런 반응을 내비칠 것이었다. 하지만 솔은 그런 반응을 보이기엔 지나치게 자신감이 결여되어 있었다.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아직도 스스로, 홀로 빛을 내기엔 갈 길이 멀었다. 태오는 여기서 자신이 솔의 말을 들어 준다면, 그가 어물쩍 자신이 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내뺄 것이란 걸 알았다. 그래서 더욱 단호하게 솔이 한 것이라 분명하게 말했다. 그러고는 그가 더는 반박하지 못하게 재빨리 말을 돌려 버렸다.

“근데. 기도하는 동작은 너무 종교적이니까 조금 수정하자.”

“…어떻게?”

태오의 생각이 들어맞았는지, 계속 부정만 하던 솔이 귀를 쫑긋하며 다시금 집중하기 시작했다. 처음보다야 아니지만, 요즘도 이따금 멍하니 있거나 집중하지 못하는 모습을 간간이 보여 주곤 했는데. 안무에 관해서라면 솔은 늘 이렇게 집중력을 칼같이 날카롭게 세우곤 했다. 좋아하는 장난감을 손에 쥔 아이처럼 눈을 반짝이며 말이었다.

태오는 솔이 보여 주었던 동작을 그대로 따라 하되, 좀 더 매끄럽게 다듬고 그가 마지막에 보여 준 아름다웠던 동작에 몇 가지를 추가했다. 솔은 자신이 낸 아이디어가 어설프기 짝이 없고 별 볼 일 없다 생각하겠지만 태오는 오히려 그 반대였다. 솔이 아름답게 표현한 동작에 자신이 괜한 살을 덧붙이는 건 아닌가 싶었다. 춤에 관해선 자신이 있던 태오에게도 그렇게 느껴질 정도로 솔의 동작엔 군더더기가 없었고 경건했다.

“음. 아예 손을 교차해서 위로 올리면 어때?”

“어어…. 좋아. 좋은 거 같아. 더 자연스럽고.”

“지호 형이랑 애들한테 보여 주자.”

“어어? 이걸? …아직 더 수정해야 하지 않을까?”

태오가 수정한 동작에 솔이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긍정을 표했다. 솔이 보기엔 자신이 그냥 툭 던진 동작을 태오가 제 재능으로 멋지게 탈바꿈시킨 거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다른 의미의 동상이몽이었다. 쇠뿔도 단김에 빼랬다고 태오는 솔이 도망을 시도하기 전에 밀어붙였다. 그에겐 쏟아지는 박수갈채가 필요했다. 그의 빛남과 재능을 향한 박수갈채.

“충분해. 멋있고 아름다운 안무였어.”

불안하게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는 솔을 똑바로 보고 태오는 그를 향한 제 진솔한 평을 전했다. 마치 지금 너에겐 이 말이 필요하다고 속삭이는 듯했다. 태오의 그 칭찬이 너무도 진솔하다 못해 직설적이라 솔은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고 이도 저도 하지 못했다. 그가 얼어붙자 태오는 제 할 일에 여념이 없는 멤버들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성솔이 안무를 짰는데. 다들 보고 의견 줬으면 좋겠어요.”

태오의 말에 가람과 득용, 지호가 하던 일을 멈추고 일제히 솔을 바라보았다. 거의 반사적인 행동이었는데, 시선이 자신에게 몰리는 것을 솔이 불편해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는 멤버들이 자연히 재빨리 시선을 태오에게로 옮겼다. 나름대로 배려의 행동이었지만 그 덕에 솔은 태오의 말에 부정하고 변명할 여지를 잃어버렸다.

“내가? 아니…. 나는 그냥….”

“어서.”

태오가 채근했다. 분명 채근의 말이었지만 그 어조는 강압적이지 않았다. 그냥 당연한 사실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늘 그렇듯, 태오답게 덤덤했다. 솔은 쭈뼛거리며 태오의 옆에 나란히 섰다. 가람이 음악을 틀어 주자 두 사람은 이미 여러 차례 무대에서 합을 맞춰 본 댄서처럼 몸을 움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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