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애를 뽑고 싶어 (94)화 (94/192)

#94

최 실장의 입을 빌어 나온 말에 영호는 못 들을 소리를 들었다는 듯이 과장되게 눈을 크게 떴다. 아니 크게 뜨려 했지만, 눈썹이 들썩거리는 정도였다.

“그게 갑자기 무슨 말입니까? 실장님.”

영호의 물음에 최 실장은 대답 대신 현재 주가를 올리고 있는 다른 그룹의 이름을 들먹였다.

“영호 너, 디어나인 알지?”

“3사 합작으로 뽑은 걔네요?”

공중파 방송에서 국내 유명 기획사 3사를 심사 위원으로 앉혀 놓고 합동 제작하는 아이돌 그룹을 만들어 낸다는 목표로 진행했던 오디션 프로그램. 자체 오디션을 진행해도 며칠에 걸쳐 기나긴 줄이 세워지는 대형 기획사들의 이름을 메인으로 내건 프로그램이었다.

오디션에 합격하지 못한다 해도 전국구 방송에 얼굴을 내보일 수 있었고, 혹시나 제가 3사의 심사 위원에게 좋은 인상을 남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품기 딱 좋은 기회였다. 당연하게도 지원자는 전국에서 쏟아졌고 많은 지원자 수만큼이나 인재도 많았다.

옥석을 가려내려면 당연히 옥 광산에 터를 잡아야지. 자갈밭에서 찾는다고 찾아지겠나? 그런데 그 옥석들이 알아서 굴러 들어오는 일이었다. 그중에 제일 반질반질하고 깎아 내면 빛이 날 것 같은 애들을 고르고 골라 모아 두니 인기가 없을 리가 없었다.

욕먹기도 많이 먹었지만, 그 욕마저도 화제성으로 받아들이는 업계에서 수많은 팬과 인지도를 쌓고 마무리. 서바이벌에서 살아남은 아홉 명을 묶어 2년이란 기간 제한을 두고 활동하게 된 프로젝트 그룹이 ‘DEAR 9’이었다. 비록 계약 기간이 종료되면 뿔뿔이 본래의 소속사로 돌아갈 운명이지만 현재로서는 이슈의 중심이었고 지표상으론 성공 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자면 관계자 대다수가 고개를 기울였다. 프로젝트 활동이 종료된다면 몇 명만이 살아남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각을 드러내지 못한 나머지는 시간이 흐르고 나면 프로그램에 출연하기 전과 그다지 크게 다를 바 없는 삶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 훤했다.

커다랗게 글씨를 박아 놓고 대단한 우승 보상이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글쎄. 적어도 영호는 회의적이었다. 그런 영호의 생각 따위는 조금도 궁금하지 않다는 듯이 최 실장은 무척 단호하게 말을 내뱉었다.

“그래. 우리 애들도 그런 거 내보내자.”

“네?”

영호는 최 실장을 빤히 쳐다보며 되물었다. 본래 이런 포지션은 자신이 관리하는 데뷔조의 ‘솔’ 담당이었다. 넋을 놓고 있을 때가 많아 무슨 말을 하면 한 박자 뒤늦게 ‘네?’ 하고 눈을 굴리곤 했다. 정확히 솔의 그 모습과 지금 영호의 모습이 일치했다. 물론 그 비주얼은 참담할 정도로 차이가 났지만 말이었다.

“온뮤직넷이 디어나인보고 삘을 받았는지, 자기네도 한다고 난리야.”

“그런데요?”

“그런데요는 무슨 그런데요야. 영호야 우리가 아무리 애써도 3사 따라가겠냐?”

“…….”

최 실장의 이어지는 말에 영호는 키위마냥 짧은 머리카락이 부숭한 제 머리통을 벅벅 긁었다.

“소규모 기획사들 데뷔조 모아서 경연시키고 우승하면 자기네가 밀어주겠다 이거야.”

“걔네가 뭘요?”

“쇼케이스도 열어 주고, 자기네 프로그램 우선으로 다 넣어 주고, 리얼리티도 만들어 주고, 그러니까 한마디로 홍보를 밀어주겠다 이거지.”

온뮤직넷? 국내 최대 음악 방송사는 맞았다. 나름 대중음악계에 많은 기여도 했지만 요즘 보여 주고 있는 행보는 사실 그리 좋지 못했다. 악의적인 편집, 편파. 최근에는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음악프로그램에서 특정 그룹에 점수를 몰아주었다는 의혹도 받고 있었다. 혹시라도 서바이벌에 참여하게 된다면, 최 실장의 말처럼 밀어줘도 문제고 안 밀어줘도 문제였다.

“최 선배.”

영호는 어지간해선 쓰지 않는 호칭을 끄집어내었다. 영호가 이 회사에 발을 담그게 된 것은 온전히 최성효 실장 덕이었다. 고등학교, 대학교 선후배 사이인 두 사람은 사석에서 제법 친한 사이였지만 회사에선 어지간한 일이 아니면 저 호칭을 입에 담지 않았다. 영호는 크게 숨을 내뱉고 다시 한번 최 실장을 ‘최 선배’라고 불렀다. 계급장 떼고 솔직하게 할 말 하겠다는 의미였다.

“저는 애들한테 말 못 해요. 선배가 직접 말하세요.”

“야, 영호야. 나라고 이러고 싶어서 이러냐.”

영호의 말에 최 실장도 조금 전보다는 한결 누그러지고 친밀하게 대답했다. 최 실장의 표정도 썩 밝지는 않았다.

“태오한테 가서 뭐라고 말해요. 너튜브 시작할 때도 이번엔 진짜라고 그러셨잖아요. 저 어제도 애들한테 정말 반응 좋다고 곧이라고 그랬어요.”

최 실장의 말을 듣자마자 영호의 머릿속에 제일 먼저 떠오른 얼굴은 윤태오였다. 멤버들에게 민폐가 될까, 혹 자신을 과하게 배려할까 걱정하면서 힘든 내색도 안 하는 친구였지만 요즘 들어 심리적으로 힘에 부쳐 하는 것이 보였다.

비단 태오뿐이 아니었다. 어설픈 청소년기 때부터 봐 온 아이들이었다. 단순히 회사에서 만나는 비즈니스적인 관계라고 볼 수 없었다. 물론 부족하고 서운했던 점이 없을 수야 없겠지만, 적어도 영호는 매 순간 멤버들을 자기 친동생처럼 대하려 노력했다.

엊그제만 해도 최 실장은 너튜브와 솔이에 대한 반응이 좋다며 칭찬을 늘어놓고 금방이라도 무언가 해 줄 것처럼 굴었다. 늦은 연습을 끝내고 어깨가 축 늘어져 지쳐 보이는 애들에게 기운을 북돋아 주고 싶어 딱 저렇게 말했었다.

‘조금만 더 힘내자, 회사에서 너희 엄청나게 칭찬해. 곧이다. 얘들아.’

그 별것도 아닌 말 한마디에 좋다고 피곤에 찌든 얼굴로 웃던 애들이 아직도 눈에 훤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서바이벌이라니.

“그렇게 나쁜 조건 아니야. 그래, 너튜브 반응 좋잖아. 일단 방송되면 인기 투표야 따 놓은 당상이지. 그치?”

“…….”

“솔직히 우리가 애들 배우고 싶은 거 다 해 준다고 말은 하지만 한계가 있잖냐. 그래도 그런데 나가면 모시기 힘든 유명한 사람들한테 배울 수도 있고 말이야.”

영호가 대답을 않고 뚱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니 최 실장도 양심이 있는지 구구절절하게 이점을 늘어놓았다. 문제는 영호에게 그게 그다지 이점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또, 경쟁하면서 다른 회사 애들보고 견문도 좀 넓히고 그래야 애들도 성장하는 거지. 국내 판은 그래도 온뮤직넷이지. TV에 얼굴 딱 박히는 거니까 이거 기회야. 영호야.”

태오와 가람은 이미 공개 오디션으로 속앓이를 크게 한 애들이었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가람은 그때 못 떨쳐 낸 미친 스토커한테 시달렸었다. 지호도 오디션이란 폐해에 실컷 이용만 당한 케이스였다. 솔이? 이제 막 연습생 생활을 시작한 아이였다. 서바이벌 오디션 프로그램에 나가 생기는 스트레스적인 상황에 솔이가 대응을 할 수 있을지 영호는 불안했다. 또다시 가람이 같은 일을 겪게 되는 것은 아닐까?

다시 생각해도 이건 아니지 싶어 영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최 실장을 쳐다보았다.

“최 선배. 지하 내려와서 애들 연습하는 거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예요?”

“그…. 언제더라.”

영호의 물음에 최 실장은 책상 위에 올려진 달력을 살피며 말꼬리를 흐렸다. 월말 평가 있을 때나 슬그머니 얼굴을 비치지 근래 영호는 아래층에서 최 실장을 본 적이 없었다.

“후우…. 가서 보고 오세요. 그러면 애들한테 서바이벌 나가라는 말 못 할걸요?”

정말 말 그대로 피, 땀, 눈물이다. 적어도 그 모습을 봐 온 사람이라면 그렇게 열심히 하는 애들을 구태여 피해 갈 수도 있는 싸움판에, 구렁텅이에 밀어 넣지 않을 것이었다. 엄밀히 말해 YC는 소규모 기획사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대형에 끼는 것도 민망했지만, 핵심인즉 지금 데리고 있는 친구들을 데뷔시키지 못할 정도로 회사가 어려운 게 아니라는 것이었다.

“왜 이렇게 적대적이냐, 영호야. 얘들이 나가고 싶어 할 수도 있잖아? 물어나 보자.”

“그러니까, 저는 못 물어보겠으니까. 최 선배가 직접 물어보시라고요.”

최 실장이 영호를 구슬려도 보았다. 솔직히 최 실장이 영호에게 이렇게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는 없었지만 친한 동생에게 그냥 쓴소리 내뱉기가 어려워서 달래려 하는 말이었다. 위에서 까라면 까는 거지, 박봉의 월급쟁이가 무슨 토를 달겠는가. 그 사실을 알기에 영호도 상사인 ‘최 실장’이 아니라 ‘최 선배’라 부르고 있는 것이다. 어쨌든 최 실장의 배려에도 영호가 요지부동이자 그는 버럭 큰소리를 내었다.

“야! 김영호!”

“선배, 이거 희망 고문이에요. 선배, 지금 애들 희망 담보로 잡고 고문하는 거라고요.”

“내가 무슨 고문을 했다고 그러냐.”

“나가서 잘 안 되면요? 그때는 또 지하에 그냥 처박아 두시려고요?”

“왜 이렇게 부정적이야. 너 맨날 너희 애들 잘한다고 침 튀기면서 칭찬했잖아. 네 말대로 잘하면 성적도 잘 나올 거고 탈락 걱정 없는 거 아니냐?”

여러 사건 이후로 회사가 아이들을 방치하는 것이 안타까워 매일같이 최 실장 옆에 붙어 알랑방귀를 뀌었었다. 찰싹 붙어 군소리 안 하고 애들이 얼마나 연습하고 있고, 얼마나 준비가 되어 있는지 입이 따가울 정도로 말했었다. 최 실장이 영호를 날카롭게 노려보았다.

“너는 너희 애들 못 믿냐?”

“애들을 못 믿는 게 아니라. 회사를 못 믿는 거예요.”

YC 엔터를, 무엇보다 온뮤직넷을 못 믿는 것이다. 애들이 아무리 잘하고 날고뛰고 기어도 부조리한 커넥션엔 당할 재간이 없기에 걱정하는 것이다.

“야. 김영호. 너 여기서 월급 주는 거야.”

최 실장이 집게손가락으로 책상을 탁탁탁 빠르게 두들겼다. 전형적인 갑질하는 상사 같은 최 실장의 모습에 늘 순박하게 웃던 영호도 정색했다. 대충 생긴 감자 같았던 얼굴이 딱딱하게 굳자 어깨 좀 쓰는 형님들처럼 험상궂었다.

“네. 월급 받고 제가 하는 일이 선배가 지금 싸움판에 밀어 넣는 애들 돌보는 거라고요. 그리고 전 지금 제 일을 하는 거고요.”

영호의 말에 최 실장은 한숨을 푹 내쉬며 노선을 바꿨다.

“내가 신경 좀 써 볼게. 해 보자 영호야. 나도 대표님이 무슨 생각인지 도대체 모르겠다. 그래도 네 말대로 지하에 짱박아 두는 것보단 뭐라도 하는 게 낫지 않냐.”

꼰대 상사처럼 강경했던 어조가 한결 누그러지고 난처한 상황에 부닥친 동네 형처럼 친근한 어조로 영호를 달랬다.

“애들한테 팬이 붙으면 대체 언제 나오냐, YC 일 안 하냐 이런 말이라도 대표 귀에 들어가겠지.”

결국 고개를 숙인 건 영호였다. 뭐 애초에 결론이 정해져 있는 일이었다. 실장실 문 앞에서 대표를 마주쳤을 때부터 좋은 일로 부른 게 아니라는 걸 이미 느낀 영호였다. 영호는 제 까슬한 머리카락을 거칠게 벅 긁고는 마지못해 대답했다.

“…아이씨. 알겠어요.”

결국 눈을 반짝이며 자신을 쳐다보는 애들에게 어려운 말을 꺼내야 하는 것도 영호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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