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애를 뽑고 싶어 (89)화 (89/192)

#89

연습실 구석, 거울에 등을 대고 쪼그려 앉은 가람은 무릎 위에 노트북을 올리고 하염없이 쳐다보고 있었다.

그의 앞에서 평가에서 선보일 새 안무를 연습하던 태오는 멋들어지게 턴을 해 보였다. 태오에게 눈길도 주지 않는 가람, 태오도 제 뒤에 1시간을 꼼짝도 안 하고 앉아 있는 가람에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음악이 끝남과 동시에 깔끔하게 동작을 마무리한 태오는 땀에 젖은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고 그제야 제 뒤의 가람을 불렀다.

“강가람.”

“…….”

태오의 묵직한 목소리가 조용한 연습실에 울려 퍼졌지만, 가람의 시선은 여전히 노트북 화면에 고정되어있었다. 태오의 부름을 듣지 못한 듯했다.

“강가람.”

몇 번을 더 불러도 대답 없는 가람의 모습에 태오는 그의 옆으로 다가가 앉았다. 바짝 붙어 앉으며 태오의 너른 어깨가 가람을 슬쩍 밀쳤다. 그제야 집중이 흐트러진 가람은 고개를 들어 태오를 바라보았다.

“왜?”

“몇 시에 마무리할 거냐고 물었어.”

“음…. 1시간만 더.”

가람의 대답에 태오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그의 옆에서 가볍게 숨을 돌렸다. 최근 편곡 수업과 악기 수업을 따로 추가로 받으며 가람은 종종 연습실에서 이렇게 노트북을 끼고 앉아 있을 때가 있었다. 태오는 숨을 고르며 시계를 확인했다. 지금쯤이면 모두 숙소에서 쉬고 있을 시간이었다.

시간이 정신없이 흘렀다. 새로운 주말 평가에 제법 익숙해지자 득용은 개학을 맞이했다. 비록 오전 수업만 받고 연습실로 돌아오지만, 어쨌든 등교해야 했기에 득용은 요즘 10시가 되면 칼같이 시간을 지켜 숙소로 돌아갔다. 최근엔 자퇴와 검정고시를 고민하는 듯했다.

더불어 은겸의 솔로 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며 득용을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은 두세명씩 나눠 한 번 정도 은겸과 함께 무대 경험을 했다. 물론 은겸의 입김이 닿는 솔에겐 한 번의 기회가 더 있었다. 멤버들에겐 그저 무대와 방송을 체험해 볼 수 있는 경험의 장이자 기회였지만 솔에겐 아슬아슬한 줄타기와도 같았다.

오늘은 지호와 솔이 은겸의 일정을 함께 소화했다. 아마도 지금쯤이면 숙소에서 쉬고 있을 터였다. 첫 사전 녹화에 참여할 땐 태오와 솔, 둘에게 기회가 돌아왔었는데 태오의 걱정과 달리 솔의 컨디션이 좋아 제법 무사히 끝낼 수 있었다. 모두 포션의 도움 덕이었지만, 그 사실을 알 리가 없는 멤버들과 영호, 은겸과 회사 사람들 모두 솔이 잘 해냈다고 칭찬했다.

모든 것이 순항하고 있었다. 각자의 일정 때문에 모처럼 태오와 가람, 두 절친한 친구가 연습실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태오는 다시금 가람의 이름을 불렀다. 한동안 제 앞가림하기 바빴고 솔을 챙기느라 친구인 가람과 제대로 대화할 시간도 없었다. 스토커 사건 이후로 가람에게 너무 무심했던 것 같아 소소한 근황이라도 물으려 가람을 불렀지만, 가람의 정신은 여전히 다른 곳에 팔려 있었다. 결국 태오는 다시 한번 제 어깨로 친구의 어깨를 툭 건드렸다.

“왜?”

“뭐 하는데 계속 불러도 못 들어.”

태오가 눈썹을 살짝 찌푸리며 묻자 가람은 그제야 등을 쭉 펴고 노트북 화면을 태오에게 보여 주었다.

“이거 보고 있었어.”

그가 보여 준 화면에는 회사에서 운영하는 너튜브 채널이 펼쳐져 있었다. 당연하게도 현재 가장 많이 재생된 동영상은 은겸의 솔로 곡 뮤직비디오와 촬영 비하인드였지만 가람이 재생시킨 영상에는 솔의 모습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채민주가 열심히 촬영하긴 했으나, 지난번 안무 커버 이후로 이렇다 할 만한 업데이트가 없었었다. 하지만 은겸이 솔로 활동을 시작하며 그간 촬영했던 영상들이 편집되어 서서히 올라오기 시작했다. 은겸의 뮤직비디오에서 짧은 등장이지만 압도적인 비주얼로 ‘1:24 요정님, 이름이 어떻게 되시나요?’라는 댓글을 시작으로 관심을 받게 된 솔 덕이었다.

회사에서 의도된 기획 기사를 몇 번 내보내고 나자 은겸이 개인 SNS에 솔을 언급했다. 촬영장에서 추위 때문에 서로 부둥켜안고 방방 뛰던 모습을 언제 촬영했는지, 얼굴도 나오지 않은 그 모습을 배경 삼아 촬영한 셀카를 올리며 ‘귀여운 동생들’이라는 짧은 말과 함께, 너튜브 영상을 링크했다.

짜인 각본순이었다. 그렇게 안무 커버 영상에 유입이 늘자 회사는 그간 촬영했던 영상들을 차례로 올리며 멤버들의 정보를 조금씩 노출시켰다. 가람이 틀어 둔 영상도 그중 하나였다. 언제 촬영했는지 짜깁어 편집되다 보니 촬영일을 알 수 없었지만, 깔끔하게 정돈된 솔의 머리카락과 카메라를 보고 얼추 이야기를 이어 가는 것을 보아 하니 비교적 최근 촬영한 영상인 듯했다.

혼자 연습하다 바닥에 털썩 쓰러지듯 널브러져 숨을 고르는 솔의 모습으로 영상이 시작되었다. 태오도 본 적 없는 개별 레슨의 시간이었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연습하고 트레이너들에게 지적받거나 멤버들과 의견을 나누는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일과를 짧게 보여 주는 듯했다.

[안녕하세요. 솔입니다.]

낮은 삼각대에 카메라를 두고 찍었는지, 영상의 각도가 엉망이었지만 솔의 외모는 빛을 발했다. 메이크업이나 전문가의 손길이라곤 조금도 없는, 그저 아침에 일어나 로션 바른 게 고작에 후드 티를 뒤집어쓴 평소의 모습이었지만 시선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화면에 은겸의 뮤직비디오에서의 그의 모습이 작게 나오고 조용조용한 말소리가 이어졌다.

[갑자기 찍게 되었는데…. 촬영장이 너무 춥기도 했고 다들 바쁘시잖아요. 제가 실수하면 추운데 촬영이 길어지니까 좀 무서웠어요.]

무서웠다고 말하는 그 모습이 퍽 순수했고 정말 겁을 먹은 것처럼 보였다. 분명 뮤직비디오 촬영이 아니라 지금 보고 있는 화면을 촬영할 때도 겁을 집어먹었을 것이다. 그래도 크나큰 발전이었다. 채민주의 자잘한 질문이 이어지고 멤버들에 관한 화제가 나오자 솔이 살짝 미소 지었다.

[제가 긴장을 많이 하거든요. 그래서 실수도 잦고 속상할 때도 있는데, 친구들이랑 같이하니까 힘낼 수 있는 거 같아요.]

그 말과 동시에 새벽 3시, 안무 연습이 한창인 태오와 솔의 모습이 잠깐 지나갔다. 영상을 보는 태오의 머릿속에도 그날의 기억이 짧게 스쳐 지나갔다.

연습생이 노력하는 전형적인 이미지를 보여 주기 위해 화면에 멤버 모두가 함께 있는 컷이 여러 개가 지나가고 다시 솔이 중심인 컷으로 돌아와 어색하기 짝이 없게 카메라를 보며 두 손을 흔들었다.

[고마워.]

솔을 모르는 사람이 보았다면 그저 그가 긴장해 조금 어색해한다고 느낄 만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가람과 태오는 그 영상 속 솔의 모습을 촬영하기 위해 애썼을 채민주와 솔을 익히 알고 있었다.

저 어색하기 짝이 없는 모습을 찍기 위해 아마도 채민주는 거의 대본을 써야 했을 것이었다. 다만 그렇다 해서 솔의 말이 그저 짜인 대사인 것은 아니었다. 말로 전달을 매끄럽게 할 수 없어 도움을 받은 것뿐이지 그 안에 담긴 솔의 진심은 정말로 멤버들에게 고마워하고 있었다.

짧은 영상이 끝나자 가람은 쭉 화면을 내려 댓글들을 확인했다. 여전히 가람은 커뮤니티의 반응에 신경을 많이 썼다. 영어와 태국어, 아마도 은겸으로 인해 유입되었을 은겸의 얼굴을 프로필 사진으로 건 댓글들 사이에 솔을 응원하는 댓글들이 보였다.

뭐든진심러 • 8시간 전

데뷔 기대할게요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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