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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를 뽑고 싶어 (78)화 (78/192)

#78

거울 속에 비친 두 얼굴은 그 색감부터가 정반대였다. 적당히 구불거리는 갈색의 머리칼과 부드러운 인상, 아치형 눈썹. 전체적으로 따뜻한 느낌의 지호와 달리 걱정이 가득한 솔은 새카만 흑발에 흰 피부가 대조되어 섬세하게 세공된 유리 조각 같아 보였다. 투명하고 맑지만 시려 보이는 유리 조각 말이었다. 물론 그 안을 채운 내용물은 너무도 무르다 못해 액체 같을지언정.

“너무 걱정하지 마. 그간 계속 촬영도 했었잖아.”

“응….”

아직 안무 커버 영상을 제외하곤 이렇다 할 만하게 올라간 것은 없지만, 그간 셀프 캠을 넘어서 채민주와 함께 촬영을 계속해 왔었다. 적어도 이젠 삼각대 없이 채민주와의 촬영은 잘 견뎌 낼 수 있게 된 참이었다.

솔은 지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제 어깨를 두드리는 지호와 눈을 맞추며 애써 안도했다는 듯 솔이 웃음 지었다. 솔이 웃어 보이자 지호도 활짝 웃어 보였다. 솔의 머릿속에 순간 늘 생글생글 잘 웃는 지호의 얼굴들이 스쳐 지나갔다. 그 속내야 알 수 없지만, 겉보기에 지호는 대다수 시간을 즐겁고 행복하게 보내는 것 같았다.

그간의 상황과 현재 진행되고 있는 모든 일들로 봐선 솔은 이곳에서 지호를 비롯한 다른 멤버들과 아이돌의 삶을 살아야 했다. 이젠 더 이상 회피할 수도, 부정할 수도 없는 사실이었고, 그리고 그 일은 현재 진행형이었다.

‘아주 작은 행복’ 상태. 단순히 상태 창의 글씨가 아니라 돌이켜 보면 정말 그때 솔은 조금 행복했었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고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아주 작은 행복’ 상태가 주는 효과를 알고 난 뒤에 ‘행복한 상태’를 추구하는 게 과연 정말 행복한 걸까? 그저 단순히 그 상태가 주는 이득을 위해 행복해져야 한다는 강박이 생긴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렇게 행복을 추구해서 ‘행복’한 상태가 된다면 그게 정말 행복한 것일까?

머릿속을 복잡하게 누비는 생각들에 솔은 자신이 느꼈던 감정마저 혼란스럽게 느껴졌다. 그가 느꼈던 감정이 거짓이라면 지금 이렇게 지호와 웃고 있는 순간을 포함한 모든 것이 가짜가 아닐까. 머리가 너무 복잡하고 생각이 많아 무게가 무거워진 느낌이었다. 생각에 무게가 있다면 지금 솔은 고개를 가누지 못하고 머리를 땅에 처박았을 것이다. 솔은 잠시 망설인 끝에 그를 답답하게 하게 만드는 이 문제를 입에 올렸다.

“지호 형. 형은 어떤 목적 때문에. 음… 그러니까 필요해서 행복해지려 하는 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응?”

웃고 있지만 한껏 올라간 지호의 눈썹에서 그의 당황을 읽을 수가 있었다. 솔은 거울에 비친 지호의 얼굴을 보다 생각 없이 뱉어 버린 제 질문에 아차 싶었다. 입술을 꽉 다문 솔의 모습에 한껏 위로 올라갔던 지호의 눈썹이 제자리를 되찾아 갔다. 그리고 이내 늘 그의 얼굴에 머무는 특유의 생글거리는 미소가 사라졌다.

“솔아, 너 뭐 철학도니?”

“…아니. 내 질문이 이상했던 거 같아. 잊어 줘, 지호 형.”

“혹시 어떤 종교에 심취해 있니?”

“그런 거 아니야. 미안, 지호 형. 내 말이 이상했어.”

태오 못지않게 심각해진 얼굴을 한 지호의 말에 솔은 제가 한 질문이 부끄러워져 고개를 푹 숙이고 얼굴을 붉혔다. 손을 내저으며 이미 내뱉어진 말을 주워 담아 보려 하는 솔의 모습에 지호가 굳었던 얼굴을 폈다.

“당황했네. 아니 근데, 무슨 질문이 그래? 당연히 행복해질 필요가 있지.”

“아니… 그게 아니라. 음… 음….”

제대로 된 대인 관계를 맺어 본 지 오래인 솔이었다. 당연히 많은 대화를 주고받아 본 지도 오래였다. 어느 날 이 세계에 떨어져 멤버들과 주고받은 대화가 저쪽에서 몇 년간 나눈 대화보다도 많을 것이었다.

애초에 말재주가 있는 편도 아니었기에 솔은 자신이 묻고자 하는 바를 제대로 표현해 내지 못해 버벅거렸다. 무언가 하고 싶은,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는데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 기색이 역력하자 지호는 의자를 끌어와 앉으며 얼마든지 기다려 주겠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천천히 잘 설명을 해 봐.”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즐겁고 기뻐서 행복해지는 게 아니라, 행복해져야 한다. 행복해져야 해. 나는 지금 행복해져야 해…? 이렇게 행복해져야 하길 원하는 거야.”

느슨하게 앉아 고개를 끄덕이는 지호를 보고 있자니 가람이 생각났다. 여유로운 그의 모습과 달리 정작 말을 이어 가는 솔은 전혀 여유가 없었다. 어째 말하면 말할수록 수렁에 빠지는 기분이었다. 자신이 정확하게 지호에게 무슨 대답을 기대하고 이런 말을 꺼냈는지도 몰랐지만, 자신이 뭘 묻고 싶었는지도 오리무중이었다.

결국 솔은 횡설수설한 자신이 부끄러워져 뺨을 붉혔다. 쥐구멍에 숨고 싶었고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조금 전, 그 황당한 질문을 던지기 전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걸까?”

“그러게, 나도 잘 모르겠다.”

솔의 자조하는 말에 지호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솔이 답지 않게 무언가 말을 많이 하기는 했는데, 말을 할수록 더 꼬이는 느낌이었다. 그런 솔을 보며 우리 멤버들은 정말 다들 하나같이 말재주들이 없구나, 앞으로 꽤 험난하겠다고 생각하며 어깨를 들썩여 보였다. 잠시 시간이 흐르고 솔은 자신이 했던 바보 같은 질문이 잊히나 싶어 속을 쓸어내렸다. 빨리 잊고 싶은 솔과 달리 그 질문에 대해 계속 생각하고 있었다는 듯, 지호가 갑작스레 늦은 답을 내놓았다.

“근데, 그건 그냥 누구나 당연한 거 아니야?”

“응?”

“누구나 다 행복해지고 싶어 하지. 행복해지려고 노력하고. 누구나 그런 거잖아.”

갑작스레 머리 위에서 들려온 지호의 목소리에 솔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돌아보았다. 지호는 꽤 진지한 표정으로 턱까지 괸 채 대답을 이어 나갔다. 정작 철학도는 지호가 아닌가 싶어질 정도로 사뭇 진지했다. 그런 지호의 모습에 솔은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그런가?’ 하고 확신 없는 어조로 웅얼거렸다.

“태오나 가람이나, 득용이도 그렇고 나도. 결국엔 행복해지려고 지금 노력하고 있는 거잖아.”

“지금?”

“꿈을 이루면 행복해지는 거지. 꿈을 이루려고 노력하는 중이니까 결국엔 그게 행복해지려고 노력하고 있는 거고.”

“어…어. 그렇긴 하네.”

“우리 지금 무슨 이야기 하는 거야. 무슨 소린지.”

꽤 진지했던 지호의 표정과 단호한 어조와 달리 어쩐지 그도 말하면 말할수록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었다. 솔도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하고 있지만 대체 무슨 이야기인지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이 이상한 상황에 지호는 허탈한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내저었다.

“아, 모르겠다.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건지 모르겠지만 내 말은 어쨌든 사람은 누구나 행복해지고 싶어 하는 법이야. 그냥 당연한 거라고.”

“응.”

지호가 고개를 휘저으며 한 말에 솔은 마음이 편안해졌다. 무언가 명확한 것은 하나도 없었지만, 그냥 그래도 된다고 허락이라도 받은 기분이라 홀가분해졌다. 어쩐지 이 상황이 우스워 솔이 자꾸만 입꼬리를 씰룩거리자 지호도 멋쩍었는지 괜히 말을 돌렸다.

“그런 심오한 생각 말고 당장 촬영에 집중하자. 근데 보스, 치명 이런 키워드를 받은 거치고는 의상이 너무 퓨어한데?”

“잘 모르겠어….”

“모두 흰색이라니. 네 외모에 악당보단 천사나 신성한 존재 이런 거 아니냐고.”

지호는 솔의 모습을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다시 한번 훑어보았다. 하늘하늘한 소재의 흰색 투피스를 입은 솔의 모습은 그가 설명한 키워드와 영 멀어 보였다. 성솔 특유의 분위기와 맞물려 냉해 보이기는 했지만, 너무 순백으로 새하얘 성스러워 보일 정도였다. 전체적으로 심플한 디자인의 의상이었지만 워낙 옷걸이가 옷걸이다 보니 거적을 입혀 놔도 빛이 날 듯싶었다.

지호는 대체 솔을 가지고 은겸이 무얼 하고 싶은 것인지 눈을 흐리게 뜨고 가늠을 해 보았지만, 밖에서 진행 중인 촬영도 그렇고 이 난해한 뮤직비디오의 컨셉을 이해하길 포기하기로 했다. 본인 뮤직비디오도 아닌데 뭐가 어떻게 되었든 간에 내 멤버들이 이쁘고 잘생기게만 나오면 된 거다. 지호는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느릿하게 끄덕였다. 그때, 짧은 노크와 함께 문이 열렸다. 은겸이었다.

다시 봐도 적응이 되지 않는 은겸의 모습에 솔은 눈을 쉽게 떼지 못했다. 주환이 떠오르는 외모로 저리 꾸민 모습을 보니 더욱 묘해 눈이 절로 갔다. 솔의 시선이 너무 뜨거웠던 탓일까, 아니면 애초부터 그럴 목적이었을까. 솔과 눈이 마주치자 은겸은 스타일링이 무색하게 주인을 만난 강아지처럼 활짝 웃었다.

은겸의 대기실 구석에 신세를 지고 있는 처지기도 했고 엄연히 선배이기에 지호와 솔은 그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의상을 갈아입으러 들어온 것인지 은겸과 함께 스태프 여럿이 딸려 들어왔다. 한꺼번에 몰려든 사람들이 정신없이 움직이자 솔과 지호는 더욱더 구석으로 자리를 피했다.

“솔아.”

“네?”

옷을 갈아입던 은겸이 갑작스레 솔을 불렀다. 구석 자리에서 지호 옆에 찰싹 붙어 눈치만 살피던 솔은 은겸의 부름에 화들짝 대답했다. 그 모습이 누가 봐도 선배의 부름에 긴장한 새내기 같아 스태프들과 은겸 모두 부드러운 웃음을 흘렸다.

“너무 긴장한 거 아니야?”

“아, 네. 네.”

또 한 번의 웃음이 터졌다. 보통 이런 물음의 대답은 ‘아니요.’나 ‘괜찮습니다.’인데 얼이 빠진 솔이 대번 인정해 버렸기 때문이었다. 모두가 그런 솔의 모습이 귀여워 웃었지만 정작 그 웃음은 솔을 더욱 긴장하게 했다. 솔은 손가락을 연신 꼬고 잡아당기며 입술을 잘근잘근 씹어 댔다. 그 순간 지호가 솔의 어깨에 자연스레 손을 올렸다.

“선배님, 이렇게 기회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저희는 준비하시는 데 방해되지 않도록 나가 보겠습니다.”

“…지호야.”

“네.”

“그렇게 선배님이라고 부르니까 너무 딱딱하다. 편하게 해.”

“감사합니다. 그런데 그래도 선배님, 이신걸요.”

“연습생 때는 같이 편하게 지냈잖아. 조금 일찍 데뷔한 거 가지고 뭘 그렇게까지 예의를 차려.”

입술을 짓씹던 솔은 지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분명 지호는 활짝 웃고 있었지만 어딘지 싸한 느낌이 들었다. 의상을 갈아입다 말고 지호를 돌아보는 은겸도 마찬가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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