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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를 뽑고 싶어 (74)화 (74/192)
  • #74

    ***

    이미 한 차례의 회의가 끝나고 난 회의실에 두 사람만 남았다. 바로 이어질 다음 회의를 기다리는 은겸과 중년 남성이었다.

    중년 남자는 보란 듯이 책상에 어질러진 서류들을 치우고 새롭게 프린트한 서류를 꺼내 책상 위에 올려 두었다. 첫 장부터 은겸이 안 보고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문서였다.

    “봐도 돼요?”

    결국 은겸은 미끼를 덥석 물은 물고기처럼 첫 장을 집어 들며 중년인에게 물었다. 남성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네 입김으로 시작된 건데, 누가 널 못 보게 하겠어.”

    “에이, 무슨 제 입김이에요.”

    남자의 말에 은겸이 너스레를 떨었지만, 그의 입김이 맞았다. 그 입김으로 대표의 마음을 덥히느라 어지간히도 후후 불어 댔는지 지금 생각해도 진땀이 났다. 그 순간에는 대체 자신이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얼마나 대단한 감사를 받는다고 이런 짓을 자청해 벌이는지 잠시 후회가 들었었다.

    “…….”

    “엄청나지? 대박이지?”

    하지만, 손에 든 서류의 다음 장을 보는 순간. 은겸은 그런 후회 따윈 아무래도 좋아졌다. 그의 입김이 불러온 효과는 헛웃음이 절로 나오는 것이었다. 은겸이 벌어진 입을 다물 줄을 몰라 하자, 남자는 그런 반응을 기다렸다는 듯이 촐싹이며 되물었다. 제가 만들어 낸 역작도 아니고 겨우 말 몇 마디 얹었을 게 고작일 텐데 대단한 생색이었다.

    “이거 보여 주고 싶으셔서 일부러 보라고 하신 거죠.”

    “어디서 이런 애가 이제야 굴러들어 왔나 싶다.”

    “…할 말이 없네요.”

    은겸이 손에 든 종이를 팔랑이며 묻자 남자는 기가 막힌다는 듯, 제 이마를 손바닥으로 때리며 허탈한 웃음소리를 내었다. 은겸이 손에 들고 흔든 것은 솔이 활짝 웃고 있는 얼굴이 클로즈업된 사진이었다. 프로필 촬영장에서 멤버들을 보며 아주 후련하게 웃던 얼굴 말이었다.

    “이게 A컷이에요?”

    “아니 B.”

    “이게요?”

    “너무 환하게 웃어서. 다른 친구들이랑 컨셉은 동일하게 가야지.”

    남자의 말에 연거푸 뒷장을 넘겨 본 은겸은 고개를 끄덕여 동의를 표했다. 솔의 사진만 활짝 웃고 있고 지나치게 클로즈업해서 다른 멤버들의 사진과 달리 이질감이 들었다. 그룹 활동을 하면 이런 점이 불편했다. 나 혼자 잘해서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때로는 ‘그룹’이라는 이름하에 어느 정도 희생이나 타협이 필요했다.

    “…그건 그런데…. 그래도 아쉽네요.”

    “나중에 홍보나 뭐 다른 데 써먹어야지. 엄청난 사진인데 아깝잖아.”

    “확실히요. 스타일링하고 다듬고 나면 태가 날 거라 생각은 했는데,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요.”

    “이하 동문이다. 어디서 이런 애가 튀어나왔는지.”

    보는 눈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닌지, 모처럼 마음이 맞았다. 사실 솔의 사진은 그 어떤 막 눈이 와도 걸작이라 칭할 만했기에 당연한지도 몰랐다. 다만 의외인 점은 은겸이 생각하던 그 이상이라는 점이었다. 그는 잠시 사진 속 솔을 오목조목 뜯어보았다. 이렇게도 웃는구나. 무엇이 그렇게 즐겁고 후련했을까. 꼭 아주 맑은 날에 시원한 바람이 부는 언덕 위에 선 사람 같았다.

    그 수두룩한 앞머리를 걷어 내면 반반한 얼굴이 드러나리라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섬세하게 빗어 낸 듯한 백자 같은 얼굴이 나올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 더군다나 특유의 음울한 기색은 그 웃음처럼 후련하게 날려 버려 더 의외였다.

    “그간 왜 그렇게 움츠리고 다녔는지 이해가 안 된다. 이렇게 방긋방긋 잘도 웃는 애가.”

    “그러게요. 생각보다 웃을 줄 아네요.”

    솔을 두고 계획했을 때, 이런 이미지를 바란 것이 아니었다. 아름답고 가녀린 선은 가져오되 솔이 가진 음울하고 예민한 느낌은 그대로 있기를 바랐다. 정작 스스로를 상처 내는 것은 본인이면서 상처받기 싫어하면서도 상처받는 그런 도움이 필요한 느낌이 좋았다. 하지만 이렇게 웃고 있는 것을 보고 있자니 아무래도 좋아졌다. 오히려 이편이 더 좋은 것 같았다.

    “……진짜 제 뮤비에 투입해 주실 거죠?”

    “그래. 그거 바라고 대표님한테 바람 넣은 거 아니야?”

    그놈의 바람, 당장에라도 이것저것 함께해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자꾸만 바람을 들먹이며 중년 남성이 비아냥거리자 은겸은 짜증이 났다.

    “…하, 지금이라도 철회해야 하나? 오히려 제가 비주얼로 잡아먹히는 거 아니에요?”

    “애 좀 써야 할 거다. 아, 근데 대신 태오랑 다른 애들도 같이다.”

    애써 사람 좋게 웃어 보이며 너스레를 떨자, 남성이 더욱 으스대며 들러리들을 언급했다. 은겸은 성의 없이 서류를 넘겨 다른 멤버들의 사진을 확인하며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최대한 밀어 넣어 볼게요.”

    대충 사람이 한꺼번에 많이 나오는 군중 신이나 군무 신에서 댄서 정도로 박아 두면 되겠지. 은겸은 그렇게 속으로 생각하며 다른 멤버들의 사진 위에 솔의 사진을 덮어 버렸다. 중요한 건 성솔이었다. 은겸은 솔이 외엔 관심이 없다는 사실을 감추려 궁금한 척 남자에게 몇 가지를 더 물었지만, 사내는 말끝마다 태오나 가람 같은 다른 멤버의 이름을 꼭 덧붙였다. 마치 받아 낼 빚이 있는 사람처럼 굴어 짜증스러웠다.

    “그래서 얘네 뭐 해요?”

    “회사 채널에 짤막하게 영상 콘텐츠 올리려고.”

    “커버나 그런 거요? 요즘 하는 애들 많더라고요.”

    “어. 팀 내부적으론 신선하고 친근한 느낌이라 괜찮다는 평인데. 오늘 대표님 최종 컨펌 받아 봐야지.”

    최근 들어 너튜브에 많이 보이는 영상류였다. 아예 대놓고 특정 회사에서 자신들의 연습생을 보여 주거나 은근하게 바이럴로 흥미를 유발하려 얼굴이나 특정될 만한 요소들을 가리고 찍는 경우도 있었다. 척하면 척이라고 대충 어떤 의도인지 알아챈 은겸은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최대한 적은 돈과 품을 들여 홍보하고, 검증도 받고 싶은 것이다. 언제든 엎어져도 큰 타격이 없게. 하지만 은겸은 솔을 그렇게 놔둘 생각이 없었다. 확실한 마침표를 찍어야 했다. 그 속내가 어떠했든, 은겸은 솔이 꼭 데뷔했으면 했다. 그룹이 아니더라도 모델이든 배우든 그 어느 경로로든 카메라 앞에 섰으면 했다.

    “영상 촬영 같은 거 하는 거면, 저도 짧게 나가 볼까요?”

    “그래 주면 좋지. 조회 수 보장이잖아.”

    “따로 한번 자리 마련해 주세요.”

    “자리까지? 무리하는 거 아니야?”

    “아니다. 평소에도 촬영하고 있는 거죠? 그럼 그냥 제가 알아서 분량 챙겨 갈게요. 그편이 더 자연스러울 거 같고.”

    ‘이미지 관리하고 환심 사기엔 더 나으니까.’라는 말을 은겸은 속으로 삼켰다. 대충 후배를 위하는 선배인 척, 간식거리 조금 사 들고 연습실에 찾아가 위로의 말, 응원 몇 마디 해 주면 될 일이었다.

    “얘네들 진짜 잘됐으면 좋겠어요.”

    은겸이 눈매를 둥글게 만들고 웃어 보였다.

    ***

    이렇다 할 만한 소식이 없던 YC 엔터테인먼트의 너튜브 계정에 짧은 영상이 하나 업로드되었다.

    ‘HIGHNEX - UPGRADE 안무 커버 #Shorts’라는 제목으로 업로드된 영상의 시작은 연습실 바닥에 쪼그려 앉은 성솔의 모습으로 시작되었다. 깔끔해진 머리로 등장한 솔은 검은색 마스크를 착용한 채였다. 무릎을 모아 웅크리고 앉은 솔의 뒤로 모자를 쓴 지호가 짧은 율동과 함께 노래를 부르며 다가왔다.

    바로 뒤로 바짝 다가온 지호는 솔의 어깨를 누르며 장난을 걸었다. 별것 아닌 일상의 모습으로 시작된 영상에 멤버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저마다 다들 모자나 마스크를 쓴 채였다.

    헐렁한 후드 티와 바지 차림으로 솔의 주변으로 모여든 네 남자는 쪼그려 앉아 있는 솔을 일으켜 세웠다. 피로도를 회복하려 쉬는 중이었었는지 솔은 태오와 가람이 일으켜 세워 주는 대로 몸을 맡겼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자 어디선가 음악이 나오기 시작했다.

    최근 나와 차트 TOP을 달리고 있는 여자 아이돌의 노래였다. 중독성 있는 안무로 많은 사람이 커버 챌린지를 하며 인기 있는 노래였다.

    노래가 흘러나오자 솔을 포함한 모두가 아주 빠르고 익숙하게 대열을 맞춰 섰다. 늘 연습해 오던 파워풀한 안무가 아닌 다소 부드럽고 웨이브 위주로 구성된 안무였다. 중간중간 작은 손동작을 하는 모습이 귀여운 포인트였다.

    손동작을 하며 통통 몸을 튕길 때마다 짧아진 솔의 머리카락이 찰랑거려 반듯한 이마가 언뜻언뜻 드러났다. 귀여웠던 손동작이 끝나자 대열이 바뀌었다. 솔과 가람의 사이로 지호가 눈웃음치며 앞으로 나왔다. 밝은 표정으로 안무를 소화하며 지호는 멤버들을 둘러보며 웃었다. 모두가 번갈아 가며 센터를 한 번씩 차지하고 나자 노래가 마무리되었다.

    늘 ‘열심히’를 달고 사는 태오 효과일까. 많은 upgrade 안무 커버 영상이 있었지만 그중 도드라지게 힘차고, 열심이었다. 부드러움이 강조된 안무였지만 사력을 다해 추니 그것 자체로 악센트가 되며 어쩐지 귀여움보다는 섹시한 느낌이 들게 했다.

    노래가 끝나자 솔은 다시 냉큼 바닥에 쪼그려 앉았다. 그가 멤버들을 향해 손을 뻗자 네 남자가 그의 손을 잡아 끌어당겨 카메라 밖으로 데리고 사라졌다.

    아주 짧은 영상에 제각각 모자나 마스크를 썼지만 그 외모만큼은 숨길 수가 없었다. 다들 한결같이 큰 키에 뛰어난 비율을 가지고 있기도 했지만 즐거워 보이는 표정과 마스크 위로 보이는 눈매가 이미 훤칠했다. 유명 곡을 커버하며 관련 해시태그를 끌어와서일까, 제법 조회 수와 댓글이 붙었다.

    YC사옥내돈 • 9시간 전

    뭐지? 이렇게 뼈 탈골되게 추는 업글은 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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