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
태오는 천천히, 솔의 표정 변화를 하나하나 뜯어보았다. 불안하게 움직이는 눈동자와 이따금 경련을 일으키듯 떨리는 눈꺼풀, 쥐락 펴락 하는 가느다란 손가락. 앉아 있는 것 자체가 불안한지 자리를 잡지 못하는 발끝까지 그 모습까지 하나하나 세세하게 눈에 담았다.
조금 전과 달리 여전히 어색하지만 느릿하게 대답하는 솔의 변화가 신기한 민주가 몸을 앞으로 기울이자 오히려 솔은 몸을 옆으로 기울였다. 가람과 어깨가 닿을 정도로 몸을 기울여 민주와 어느 정도 거리를 벌리는 솔을 보며 태오는 대충 그를 긴장시키는 요소들을 돌출해 냈다. 솔은 우선으로 낯선 타인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고 싶은 것처럼 보였다. 너무 가깝지 않게.
멤버들과 처음 만났을 때도 그런 경향이 보이긴 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런 반응들이 잦아들었다. 그마저도 요즈음 들어선 더 이상 찾을 수 없는 모습이 되었다. 아마도 멤버들과 친숙해진 덕인 듯했다. 그게 아니더라도 지금의 몸짓으론 봐선 적어도 채민주보단 멤버들과 붙는 것이 더 편안하다는 이야기였다. 태오가 솔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눈을 떼지 못하자 채민주가 태오의 무릎을 살짝 건드리며 말했다.
“아직 많이 굳어 있긴 한데, 그래도 조금 전보단 나은데요?”
“…….”
태오는 민주의 말에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나아진 것이지 촬영을 매끄럽게 진행할 정도는 아니었다.
“무슨 차이지…?”
두 사람이 나누는 말을 듣고 있던 득용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지만, 그 목소리가 워낙 커 모두의 시선이 그에게 몰렸다. 대답을 바라고 물은 건 아니었지만 자신을 두고 하는 이야기에 솔이 대답했다.
“…나도 잘 모르겠어. 지금은 그래도 좀…. 아까보다는 나은 거 같기도 하고….”
정작 본인도 저 자신의 변화에 대해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옆으로 기울이며 득용과 태오, 채민주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까맣고 커다란 눈이 순수한 의문을 담아 답을 바라는 눈빛이었다.
“삼각대요.”
정답은 태오에게서 나왔다.
“우리 연습 때나 주말 평가 때나 늘 삼각대 놓고 촬영했잖아요.”
“아! 그렇네. 누가 찍어 주는 건 처음이에요.”
태오의 말에 득용이 손바닥을 짝, 소리 나게 맞추며 탄성을 내뱉었다. 옆에 앉아 있던 가람도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솔은 자신도 모르는 원인을 찾아낸 태오를 신기하다는 눈으로 바라보았다.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는 속마음이다. 솔은 물어본 것도 아니고 그저 옆에 조용히 있다가 네 모든 걸 알고 있다는 듯이 물어보고, 도움을 주는 태오가 새삼 신기했다.
“…어떻게 알았어?”
“아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사람이 가까이 다가가면 몸을 피하잖아. 우리랑 녹화할 땐 괜찮았고…. 아마도 가까이 다가오고 거기에 카메라까지 들고 있으니 문제가 되는 거 같아.”
“아….”
태오의 말에 솔이 입술을 살짝 벌리고 탄성을 내뱉었다. 태오의 말을 듣고 보니 그런 것도 같았다. 분명 촬영을 시작할 때는 괜찮았다. 조명이 켜지고 사진작가가 카메라를 들고 가까이 다가온 순간부터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조금 전에도 민주가 카메라를 들어 올리고 시선을 맞추면서 문제가 생겼다.
문제의 원인을 찾은 것에 솔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 사실 처음 퀘스트를 받았을 때만 해도 이번 퀘스트는 그간 고생한 것에 비해 난도가 낮다고 생각했었다. 사실 사진이야 엉망이든 잘 나오든 일단 찍으면 되는 것 아니었던가. 하지만 슬슬 걱정되기 시작한 참이었다. 혹 주말 평가 때처럼 자신이 피로도를 이겨 내지 못해 쓰러진다면? 갑자기 또 생각이 그렇게 흘러가자 눈앞이 아찔해졌다. 그래도 태오 덕에 원인을 찾을 수 있어서 천만다행이었다.
“그렇지만 촬영은 사진작가님이 해 주시는걸요.”
안도도 잠시, 이어진 득용의 말에 태오를 제외한 모두가 ‘아….’ 하는 탄식을 내뱉었다. 거기엔 솔도 포함되어 있었다. 자신만 삼각대를 사용해 찍어 달라 요청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원인은 알아냈지만 타개할 방법이 없다는 것에 가람과 득용, 솔의 표정이 가라앉았다. 옆에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채민주의 표정도 다시 어두워졌다.
“흠…. 삼각대라.”
민주는 삼각대에 설치된 카메라를 바라보며 침음을 흘렸다. 단순히 프로필 촬영만 통과한다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앞으로 수많은 촬영을 모두 삼각대를 이용해 할 수는 없었다. 물론 그럴 수 있는 촬영도 있을 테지만 그런 제약을 가지고 연예인을 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극복되지 않을 문제라면 차라리 빠르게 윗선에 보고하고 더 일이 진척되기 전에 그에 따른 조처를 하는 것이 맞았다.
채민주는 흘깃, 솔을 뜯어보았다. 외모로는 정말 손색이 없었다. 그러나 가장 늦게 합류했으며 극심한 멀미에, 아직 평가 결과도 애매한 편이었다. 물론 연습생이 된 지 얼마 안 되기는 했지만, 이 보고가 들어간다면 아마도 솔을 팀에 남겨 놓자 말하는 사람은 몇 없을 게 분명했다. 민주가 고민하는 사이 가람이 살짝 솔의 손을 잡으며 허리를 숙여 그와 눈을 맞추며 물었다.
“솔, 촬영할 수 있겠어?”
가람과 눈을 마주친 솔은 느릿하지만 크고 단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별것 아닌 움직임이었지만 이전에 비하면 많은 것이 달라진 행동이었다. 물론 타인이 본다면 여전히 굼뜨고 미적지근한 움직임으로 보일 것이다. 그래도 그간 솔을 봐 온 멤버들은 그의 변화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솔은 조금은 태오처럼, 느리지만 곧게 대답했다.
“괜찮아. 할 수 있어. 저 할 수 있어요. 할 거예요.”
솔이 또박또박 말을 내뱉는 일순, 태오의 입가에 아주 작은 미소가 맺혔다가 금세 사라졌다. 솔이 대답하자 멤버 모두의 시선이 채민주에게로 쏠렸다. 잘생기고 이쁜, 네 남자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은 채민주는 자신도 모르게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반짝이는 눈동자들을 마주하고 나니 더 무어라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민주는 잠시 망설이다 두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당연히 해야죠. 데뷔해야죠! 아주 이쁘게 잘 찍어야 해요. 이게 첫걸음인데.”
채민주가 주먹을 쥐고 대답하자 태오가 자리에서 일어나 삼각대 위의 카메라를 분리했다. 민주는 그저 그가 하는 행동을 주먹을 쥔 채 멍하니 바라보았다. 카메라를 든 태오는 민주를 보며 웃음 지어 보였다. 태오 딴에는 나름 친절하고 좋은 이미지, 민주에게 호의를 끌어내고 싶어 한 행동이었다. 그리고 그 행동에 효과는 아주 즉각적이었다.
“저희끼리 해 봐도 될까요?”
“네…! 아니…. 아니, 촬영을요?”
태오가 웃으며 묻자 민주는 그의 얼굴을 바라본 채 고개를 마구 끄덕였다 흠칫하며 되물었다. 민주뿐 아니라 멤버 모두의 시선이 태오를 향해 있었다. 태오는 카메라를 살짝 들어 올리며 고개를 끄덕이고 모두가 들으라는 듯이 대답했다.
“네. 셀프 캠처럼 저희가 저희를 찍어 주는 방식으로요. 일단 솔이 조금 익숙해질 수 있을 때까지만이라도요.”
“음….”
“그러면 되겠다! 솔이 형, 처음 안무 영상 찍을 때도 뚝딱거렸는데, 지금은 괜찮잖아요.”
“저희끼리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것처럼 서로에게 물어볼게요.”
태오의 제안에 민주가 잠시 고민하자 득용이 맞장구를 치며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득용의 말대로 솔은 처음에 안무 영상 녹화하는 것에도 굉장히 뻣뻣하고 어색하게 굴었다. 지금도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니지만 눈여겨보지 않으면 못 느낄 정도로 자연스러워졌다.
득용이 힘을 실어 주자 가람도 그에 동참했다. 모두가 태오의 의견에 동의하자 민주는 자기 턱을 문지르며 의미 없는 생각하는 시늉을 했다. 이미 그녀의 속마음은 태오가 웃으며 물었을 때부터 ‘yes! 뭔들!’이었다.
“그것도 나쁘지 않긴 한데….”
“성솔도, 저희도 그게 더 자연스럽고 편할 거 같아요.”
태오가 솔을 언급하며 그를 돌아보았다. 솔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자신을 위해 모두가 노력해 줌이 고마웠지만, 선뜻 고맙다고도 말하지 못했다. 오히려 이렇게 도와주었는데 멤버들을 실망하게 될까 걱정이 앞섰다. 솔이 무어라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속으로 대답을 고르는 사이 민주가 먼저 선수를 쳤다. 그녀는 흔쾌히, 태오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다시금 생각해 보니 오히려 태오의 의견이 더 좋은 듯싶었다.
“그럼 살짝 해 볼래요? 옆에서 지켜볼게요.”
“네. 감사합니다.”
민주가 고개를 끄덕이자 태오는 다시금 그녀에게 웃어 보였다. 늘 심각하게 굳어 있던 짙은 눈썹이 여유 있게 살짝 둥글어지는 아주 시원한 웃음이었다. 순간 정말로 시원한 바람이 부는 것처럼 느껴지는 멋진 미소였다. 민주는 두 손으로 입을 가리며 살짝 맹하게 태오를 바라보았다. 아무래도 이번 차기 데뷔조는 얼굴이 다 해 먹었지 싶었다. 민주의 허락이 떨어지자 자리에 내내 일어서 있던 득용이 발표라도 하듯 손을 번쩍 들어 올렸다.
“태오 형! 형, 형. 제가 하면 안 돼요?”
아이처럼 방방 뛰며 외치는 득용의 말에 태오는 어깨를 살짝 들썩이고는 선뜻 그에게 카메라를 내밀었다. 카메라를 건네받은 득용은 민주에게 지금 녹화가 되는 것이냐며 어떻게 찍는 거냐 묻더니 이내 솔을 향해 카메라를 들어 올렸다.
“성솔 씨!”
“성솔 씨이?”
“아, 장난. 솔이 형, 머리 자른 기분이 어떠세요?”
“너 그거 물어보고 싶어서 한다고 한 거지.”
득용의 부름에 먼저 반응한 건 가람이었다. 득용의 호칭 선정에 아주 문제가 있다는 듯이, 느른한 표정이 얼굴에서 사라지고 눈을 삐딱하게 떴다. 그러자 득용이 장난스레 웃으며 바로 꼬리를 말았다.
득용이 제법 카메라를 솔에게 가깝게 밀어붙였는데 이번엔 몸을 피하지 않았다. 카메라를 조금 어색하게 바라보기는 했지만 솔은 득용의 물음에 어색하게 제 머리를 매만지며 웃었다.
“머리 자른 거 이상한가?”
“아뇨! 형, 완전 잘 어울려요. 진짜 이뻐요.”
“맞아. 솔, 진짜 잘 어울려. 원래도 좋았지만, 지금이 더 멋있어.”
순간 옆에서 보고 있던 민주도 최고라고 소리를 칠 뻔했다. 모두의 시선이 유일하게 대답하지 않은 한 사람에게로 향했다. 민주도 가람도, 득용도 심지어는 솔의 시선까지 자연스레 태오에게 향했다. 모두의 시선을 마주한 태오는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안 이상하고 잘 어울려.”
마지못해 한 대답 같았지만, 순간 태오의 두 귀가 새빨갛게 타올랐다. 스스로에게도 엄격한 만큼 칭찬에 인색한 태오였다. 그제야 솔도 안심한 듯이 머리를 매만지던 손을 멈추었다. 잠시 숨을 돌릴 틈도 없이 득용이 다시금 질문을 이어 나갔다.
“지금 지호 형이 촬영하고 있는데 사진이 어떻게 나올 것 같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