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애를 뽑고 싶어 (67)화 (67/192)

#67

“조졌다.”

얼굴을 강하게 때리는 조명 아래 서 있는 솔을 보고 득용이 내뱉은 말이었다. 목소리가 큰 편인 득용이 툭 뱉은 말에 스튜디오 안의 사람들이 그를 흘끔 돌아보았다. 지호가 도끼눈을 뜨고 쳐다보자 득용은 황급히 주먹을 움켜쥐어 제 입에 가져다 대었다.

“김득용, 말조심!”

“아…… 디케이!”

“맞다. 나도 말조심.”

득용의 지적에 지호도 주먹으로 제 이마를 내려치려다가 메이크업을 떠올리고 멈칫했다.

“죄송합니다.”

“저도 죄송합니다.”

지호와 득용은 결국 나란히 주변을 향해 허리를 숙이며 사과했다. 둘의 뒤편에서 카메라로 영상을 촬영하고 있던 채민주와 영호에게도 죄송하다는 사과를 했다.

득용의 말에 사실상 동의하고 있던 영호는 무어라 말하지 못하고 안타까운 얼굴로 조명 아래에 서 있는 솔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얘들아…… 아이고, 솔이야.”

찰칵찰칵 카메라 셔터음과 사진작가의 외침이 이어질 때마다 커다란 모니터 속에 새로운 사진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 모든 사진에는 문제점이 있었다. 바로 솔이 악취라도 맡은 듯, 인상을 찌푸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솔의 프로필 촬영을 지켜보던 멤버들과 영호, 채민주 모두가 탄식을 내뱉었다.

“큰일이다. 이래서 사진 한 장이라도 건지겠어?”

“너무 긴장해서 그런 거예요.”

영호가 제 이마를 짝, 소리 나게 내려치며 말하자 가람이 촬영장 안 스태프들의 표정을 살피며 솔을 대변해 주었다. 표정 풀라는 사진작가의 요구가 계속되었지만, 솔은 망부석이 된 것처럼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고개를 살짝 돌려 보라는 말에도 요지부동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서 있는 솔의 모습이 흡사 패닉이 온 사람 같아서 보다 못한 태오가 영호에게 다가가 귀띔했다.

“솔이 잠시 쉬게 하고 다른 사람부터 해도 될까요?”

“그래, 그러자 태오야.”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 기다렸다는 듯이 태오의 말에 영호가 수긍하자 옆에서 같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지호가 먼저 나서 주었다. 워낙에 척척 자기들끼리 알아서 잘해 오던 멤버들만 상대해 왔던 탓인지 영호도 잠시 제 본분을 잊고 있었다.

“제가 먼저 할게요.”

“형이 일단 먼저 양해부터 구할게.”

“네.”

영호가 지호를 챙기며, 답답하다는 어조로 솔에게 이것저것을 지시하는 사진작가에게로 다가갔다. 한가로이 촬영할 때가 아님을 채민주도 느꼈는지, 어느새 그녀도 카메라를 내리고 영호와 함께 심각한 표정으로 사진작가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솔을 지켜보며 서 있던 득용이 커다란 덩치에 안 맞게 발을 동동거렸다.

“어떻게 해요? 솔이 형 완전히 얼어 버렸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래.”

“조명도 세고, 우리도 긴장되잖아. 성솔은 처음이니까 더 긴장될 거야.”

가람과 득용의 얼굴에도 걱정이 가득하자 태오는 두 사람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장신의 세 남자가 일제히 솔을 바라보았다. 프로필 촬영은 사실 이렇다 할 대단한 컨셉 같은 건 없었다. 정말 말 그대로 단순 프로필용이었기에 화려한 스타일링이나 배경도 없었다.

어두운 촬영 부스에 얼굴을 향해서 강한 조명을 때리는 게 전부였다. 촬영 시작 전에 짤막하게 들은 설명으론 개개인의 순수한 매력을 보여 주는 것에 목적을 두었기 때문에 그 점에서 착안하여 서치라이트로 멤버들을 발견한 것처럼 연출한다 했다.

스튜디오에 도착하자마자 쓰러질 듯 위태롭게 차에서 내린 솔이 첫 순서라는 말을 듣자마자 태오는 홀로 인상을 찌푸렸다. 태오가 솔의 상태를 확인하기도 전에 그는 다짜고짜 스태프들 손에 이끌려서 메이크업과 헤어를 다시 정돈 받고 오버핏의 교복으로 갈아입혀져 제법 그럴싸한 모습으로 카메라 앞에 서게 되었다. 그리고 벌어진 결과가 지금의 모습이었다.

조명이 켜지고 사진작가의 카메라가 얼굴 가까이 다가오자 솔은 그대로 굳어 버렸다. 하물며 채민주의 카메라도 동시에 돌아가고 있었다. 그간 주말 평가 때 늘 녹화를 진행했고 연습하면서도 틈틈이 촬영했었기에 카메라가 솔에게 문제를 안겨 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었다. 화사하고 생기가 돌게 메이크업 된 저 발그레한 뺨이 태오의 관찰력을 흐렸다.

결국 굳어서 인형처럼 가만히 서 있는 솔의 촬영이 중단되었다. 사진작가와 얘기하던 영호가 솔에게 오라는 손짓을 계속했지만, 솔은 이해하지 못한 듯 그 자리에 꼿꼿하게 서 있었다. 결국 영호의 손짓이 여러 번 반복되자 지호가 솔에게 다가갔다. 솔은 지호가 다가가자 그제야 바통 터치를 한 것처럼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꾸벅 허리를 숙여 보이고 태오와 가람, 득용이 서 있는 쪽으로 걸어왔다.

털레털레 걷는 발이 곧 꼬여 넘어질 것처럼 불안정했다. 태오는 그가 금방이라도 앞으로 고꾸라질 것처럼 걸어 불안한 마음에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하지만 솔은 잔뜩 굳은 얼굴을 하며 제 발로 멤버들에게 다가왔다. 그러고는 제일 먼저 조금 전 자신의 프로필 촬영에 관해 물었다.

“나 괜찮았어?”

그의 물음에 순간 가람과 득용이 짧은 침묵 사이로 눈빛을 교환했다.

“……응!”

“그럼요. 내가 형은 그냥 웃기만 해도 OK라고 그랬잖아요.”

여전히 펴질지 모르는 솔의 미간에 가람과 득용은 고개를 끄덕이며 솔이 실망할까 애써 긍정의 말을 해 주었다. 하지만 태오는 아니었다.

“아니.”

“아니……구나?”

태오의 대쪽처럼 단호한 대답에 솔의 눈썹이 눈에 띄게 축 늘어졌다. 한눈에 봐도 풀이 죽은 얼굴로 솔은 태오의 눈치를 살폈다. 태오는 자신을 쳐다보는 솔과 얼굴에 ‘냉정한 놈’이라 쓴 가람과 득용을 번갈아 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솔직하게 말해 줘야 해. 그래야 성솔도 덜 고생하고 관계자분들도 수고를 더는 거야.”

태오의 말에 솔이 고개를 가볍게 끄덕이더니 휘청거렸다. 멤버들의 얼굴을 보고 카메라 앞에서 벗어나니 순간 긴장이 풀리며 무릎에 힘이 빠졌다. 비틀거리는 솔을 가람이 살짝 붙잡았다. 샵에서 스튜디오까지 이동하면서 또 체력을 깎아 먹었다. 머리가 지끈거리고 속이 계속 좋지 않았고 그와 더불어 창문 하나 없이 밀폐된 스튜디오의 공기가 너무도 무겁게만 느껴졌다. 태오의 지적에 솔은 애써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태오의 말이 백번 천번 맞았다. 여기 있는 사람 모두 직장에 일하러 온 것이었다. 정확하게 제 문제를 알고 빠르게 수정해야 모두의 시간과 돈을 허비하지 않을 수 있었다. 물론 문제를 알아도 고칠 수 있느냐가 관건이었지만.

“어쩐지 화가 나신 거 같더라.”

“너 긴장하는 걸 넘어서서 불편해 보였어. 인상도 계속 쓰고 있고.”

“많이…?”

“응……. 힘들어? 지금도 숨을 몰아쉬네.”

“정신이 없어서 모르겠어.”

태오가 솔에게 한 발짝 다가서며 가람이 붙잡은 반대편 팔에 손을 가져다 대었다. 양쪽에서 두 사람에게 붙잡힌 모양이 된 솔은 고개를 마구 내저었다. 차에서 내려서 메이크업 수정을 하고 옷을 갈아입는 데까지 얼마 걸리지 않았다.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사람들의 손에 끌려서 정신없이 움직이고 고개를 드니 강한 빛이 얼굴을 정면으로 때렸다.

거기까진 괜찮았다. 그 밝은 빛 사이에 새카만 무언가가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이 또렷하게 보였는데. 바로 카메라였다. 카메라 렌즈가 반짝이며 자신을 따라오는데 그 순간부터 솔은 제대로 사고를 할 수가 없었다. 마치 유리로 된 차단막에 갇힌 듯 세상과 단절된 느낌이었다.

솔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지자 가람이 고개를 살짝 숙여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물었다.

“솔, 어디 아픈 건 아니지?”

“아니…… 아니. 괜찮아.”

걱정이 가득 담긴 따뜻한 눈길에 솔은 고개를 저으며 눈가를 살짝 접어 보였다. 득용도, 가람도, 태오도, 조금 전 자신과 자리를 바꾼 지호도 모두의 눈에서 자신을 향한 걱정을 느낄 수가 있었다. 무거워지는 분위기에 솔은 괜히 소매를 펄럭거리며 딴소리했다.

“셔츠가 너무 커.”

솔이 축 늘어진 셔츠 소매를 펄럭이며 멋쩍게 웃어 보였다. 분명 의상을 건네주며 들은 말은 ‘교복’이었는데 셔츠도 넥타이도 제 사이즈보다 더 컸다. 솔은 속으로 누가 교복을 이렇게 입냐고 생각하며 흘러내리는 소맷단을 걷어 올렸다. 그러자 가람이 그가 끌어 올린 소매를 다시금 가지런히 내려 주었다. 소맷단 밖으로 손가락 끝만 빼꼼 나왔다.

“형, 원래 그런 식으로 입는 거예요. 헐렁하게.”

“응. 원래 이렇게 입는 거야. 패션이야. 유행.”

“이게……?”

얼마 전까지 단벌 신사였던 솔이었다. 옷걸이가 원체 좋아 입혀 놓으니 나름 트렌디해 보였지만 솔은 그 느낌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갈 길이 멀었다. 소매를 늘어뜨리며 멀뚱히 서 있는 솔을 보며 가람이 잠시 고민하더니 솔의 옆에 나란히 서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었다.

“이런 식으로 포즈 취해 봐. 주머니에 손 넣고.”

“미간 찌푸리지 말고요. 형. 형은 워낙 얼굴이 치트 키니까, 그냥 아무 표정도 짓지 마요! 무표정으로!”

“이렇게?”

솔은 가람과 득용이 해 주는 조언대로 두 사람을 따라 해 보았다. 눈앞에 멤버들이 보이니 마음이 한결 편안했다.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이 사람들이 자신을 불편하게 하는 존재였었는데, 이제는 카메라에서 벗어나 멤버들 사이로 들어오니 긴장이 풀렸다. 참 세상일은 모르는 것이었다. 솔이 가람을 한창 따라 하자 태오가 솔의 어깨에 살짝, 손을 올렸다. 솔이 태오를 돌아보니 그는 늘 그렇듯 특유의 무표정으로 솔을 올곧게 응시했다.

“혹시라도 숨쉬기 불편해지거나 어디든 통증이 있으면 바로 손 들고 말해.”

“응. 그럴게.”

태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가람에게로 다시 시선을 돌리는데, 태오가 재차 그의 이름을 불렀다. 이번 부름은 제법 묵직하게 귓가에 머물러 솔은 몸을 돌려 그를 정면으로 바라보았다.

“성솔.”

“어?”

“우리가 도와줄 수 있는 거, 불편한 거 뭐든 있으면 지금 확실히 말해. 그래야 우리도 도와줄 수 있어.”

“어…… 응. 사실 그…… 뭐라고 하는지 모르겠어.”

“지시 사항 같은 거?”

“응. 잘 못 알아듣겠어.”

사진작가가 어려운 단어를 쓰거나 그런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카메라와 조명 아래에 솔이 패닉 상태가 되며 귓가에 들리는 말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해 생기는 문제였다. 지시 사항을 이해하지도 듣지도 못했으니 당연히 오도카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솔의 말에 그가 보여 준 행동의 원인을 파악한 태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태오는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먼저 앞서, 솔을 쉴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마주 보고 선 솔의 가슴팍이 지나치게 크게 들썩였다.

“일단, 좀 앉아.”

“앉을 데가 없어.”

태오의 말에 주변을 휘둘러본 가람이 솔 대신 대답했다.

“저기, 저 의자 가져오면 눈치 보이겠죠?”

득용이 영호와 채민주, 그리고 사진작가 사이에 놓인 플라스틱 의자를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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