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6
“솔, 멋있다.”
가람의 칭찬에 솔은 목덜미까지 새빨개졌다. 딱히 손볼 곳이 많지 않았던 태오와 가람은 이미 깔끔해진 모습으로 솔의 뒤를 기웃거렸다. 대단한 변신은 아니었다. 애초에 요구 사항이 ‘너무 꾸민 티 나지 않게 자연스럽게’였던 터라 흔히 TV에서 보는 아이돌들처럼 휘황찬란한 머리카락 색을 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그간 방치했던 머리카락을 깔끔하게 잘라 낸 것뿐인데도 인물이 확 살았다. 가늘고 차분한 검은 머리카락이 적당한 길이에 깔끔하게 손질되자 차가우면서도 섬세한 분위기가 더해졌다.
가람은 멋있다고 했지만 사실 멋있다는 말보다 처음 딱 마주하면 예쁘다는 감탄사가 먼저 나오는 외모였다. 가람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솔에게로 쏠렸다. 누군가 그 말을 해 주기를 기다렸다는 듯, 솔의 머리를 손질해 주던 디자이너가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렇죠? 피부도 엄청 하얗고 얼굴도 작고 지금은 흑발이지만 완전 밝은색 헤어 컬러도 잘 어울릴 거예요.”
확실히 전문가의 손길은 다르긴 달랐다. 평소 솔은 드라이는커녕, 머리도 제대로 털지 않고 대충 벅벅 빗고 나가는 게 끝이었다. 엄마의 손이 한참 닿았던 어린 시절에도 이렇게 깔끔하고 단정한 머리였던 적은 없었다.
스튜디오에 가서 한 번 더 손볼 거라며 간단하게 한 메이크업도 무척 색달랐다. 그간 무용하며 했던 무대 화장과는 다른 자연스러운 메이크업이었다. 모두가 귀신이냐 말할 만큼 혈색 없고 창백한 아픈 기색도 싹 사라졌다. 오히려 분홍빛으로 살짝 혈색이 돌아 솔이 가지고 있던 특유의 음울한 느낌도 가려졌다.
전문가들의 손길에 세팅을 끝낸 솔은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이 어색했다. 꼭 다른 사람이 거울 속에 들어 있는 기분이었다. 짧아진 머리카락이 주는 서늘한 느낌에 솔은 손바닥으로 제 목 뒷덜미를 살짝 쓸어 보았다.
“어디, 어디? 나도 볼래요.”
머리에 수건을 두른 득용과 지호가 뒤늦게 찾아와 솔의 모습을 확인했다.
“…와. 그동안 사람들이 형을 가만히 놔뒀다는 게 신기해요.”
“학교에서 인기 많았지? 솔아?”
“아뇨…. 딱히. 친구가 별로 없었어요.”
“내가 형이랑 같이 학교 다녔으면, 형 성격이 개차반이었어도 좋아했을 듯. 형이 숙제 보여 달라고 말하기 전에 형 거 숙제까지 다 해 왔을걸.”
“나도. 나는 근데 그냥 솔도 좋아.”
득용의 말에 가람이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다. 득용의 말이 정말 말도 안 되는 헛소리에 가까워 솔은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내어 웃었다. 사고 이후로 학교에 가는 것 자체가 싫었던 솔이었는데, 득용의 말을 듣다 보니 그런 학교생활도 꽤 재미있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득용과 같은 친구랑 학교에 다녔으면 재미있고 힘든 일이 있더라도 그리 우울하지 않았을 것도 같았다.
“김득용, 강가람. 너희 그거 위험 발언이야.”
거울에 비친 솔의 모습을 팔짱을 낀 채, 쳐다보던 지호가 득용과 가람에게 고개를 저어 보였다. 무엇이 위험 발언인지 솔이 어리둥절한 눈으로 쳐다보자 지호는 한쪽 눈을 찡긋, 윙크해 보였다.
“아. 혀엉. 이제 득용이라고 부르지 말라고요.”
“득용이를 득용이라 부르지 못하고.”
“지호 형이 제일 문제라고요.”
“득용이가 뭐 어때서 그래.”
“싫어요. 촌스럽단 말이에요.”
“우리 앞으로는 어느 부분이 녹화되어 사용하게 될지 모르니까 지금부터 항시 촬영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주의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득용이 앙탈을 부렸다. 디케이라는 예명을 가지고 있었지만, 막상 지내다 보니 그 이름보다는 득용이라는 본명으로 불릴 일이 많았다. 솔에게도 디케이라고 불러 달라 했었지만 정작 솔도 그 이름은 몇 번 불러 보지 못했다. 득용이란 이름이 워낙 친숙하기도 했고 디케이보다 입에 더 잘 붙었다.
지호가 득용을 놀리자 태오가 중재하고 나섰다. 태오의 말이 맞기에 듣고 있던 솔도 가람도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보다 솔은 득용이가 그렇게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싫다면 조심해 주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알았어. 득용아, 너 부른다. 아니 디케이야.”
“지호 혀엉!”
“빨리 가 봐. 부르시잖아.”
모두가 동의하는 바였지만, 그간 몸에 밴 습관은 어쩔 수 없었다. 득용을 담당했던 스태프가 득용을 찾자 지호는 저도 모르게 또 득용이라 그를 불렀다가 황급히 고쳐 불렀다. 득용이 주먹을 움켜쥐고 아프지 않게 살살 지호의 등을 툭툭 때리며 원망의 눈총을 보냈다. 토라진 티를 팍 내는 막내의 모습에 지호는 웃음 짓고 그를 살살 달래 등을 떠밀었다.
“가람아.”
“네.”
지호와 득용이 메이크업과 헤어스타일링을 마무리하러 불려 가자 영호가 가람을 불렀다. 스토킹 사건 이후로 영호와 가람이 따로 이야기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아무래도 사건 조사에 관한 이야기인 듯했다.
솔의 머리 손질도 마무리되자 세팅을 마친 솔과 태오만이 덩그러니 남았다. 속 이야기를 내비칠 정도로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또 막상 이렇게 단둘이 남으니 뻘쭘한 느낌이었다. 목 뒷덜미와 어깨에 더 이상 머리카락이 닿지 않자 그 생소하고 서늘한 느낌에 솔은 제 목 언저리를 계속 주물럭거렸다. 약간 추운 기분이 들기도 했다. 솔은 조용히 태오의 옆에 나란히 앉아 득용이 머리를 세우는 것을 멀찍이 지켜보았다.
“좀 괜찮아?”
“어? 응. 좀 쉬었더니 괜찮아졌어.”
“그래. 그럼 다행이다.”
득용의 모습을 한창 바라보고 있는데, 문득 옆에서 마음이 차분해지는 태오 특유의 그 저음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괜찮냐는 그 질문에 솔은 거의 반사적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태오의 얼굴에 안도의 표정이 살짝 내비쳤다. 솔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가까이서 봐서일까, 늘 태오의 표정이 덤덤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보니 자신의 말에 내심 안도하는 티가 났다. 걱정을 끼쳤구나 싶어 살짝 웃어 주자 태오가 고개를 획 돌려 정면을 쳐다보았다. 영 어색하고 이상한 태오의 반응에 솔이 커다란 눈을 또르르 굴렸다. 다시금 두 사람 사이에 어색한 침묵이 감돌았다.
나란히, 팔이 닿을 정도로 바짝 붙어 앉아 있었지만 어쩐지 이 상황이 어색해 솔은 발끝을 까딱거렸다.
“메이크업 때문에… 티가 잘 안 나서.”
“아. 진짜 괜찮아. 계속 앉아 있고 아까 따뜻한 물도 주셔서…. 좋아졌어.”
느닷없는 태오의 말에 솔은 고개를 기울였다. 한 박자 늦게 태오가 한 말의 맥락을 깨달은 솔은 목이 떨어질 만큼 크게 고개를 앞뒤로 흔들었다. 평소에 솔이 괜찮다 혹은 아무 말 없어도 그의 변화를 예민하게 캐치하던 태오도 메이크업한 솔이 익숙지 않아서 한 말이었다.
평소 맨얼굴이었다면 창백한 그의 안색을 보고 말로만 괜찮다 할 뿐, 괜찮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렸을 태오지만 오늘은 메이크업으로 혈색이 과하게 도는 것처럼 보여 분간이 잘 안 되어 물은 듯했다.
“메이크업 받으니까 느낌이 조금 달라. …달라 보여.”
“그래? 너도. 너도 더 멋있어졌어. 원래도 멋있었지만….”
무뚝뚝한 듯하지만 세심한 태오의 모습에 솔은 살짝 다리를 흔들며 미소 지었다. 어쩐지 솔은 자신이 걱정되어서보다는 지금 태오가 그저 이 어색한 침묵을 깨고 자신과 대화 한마디를 나누고 싶어 이런 말을 했다는 느낌이 들었다. 솔이 웃으며 어깨를 살짝 들썩여 보였다. 별 의미 없는 아주 작은 친근감에서 나온 몸짓이었다. 솔의 칭찬에 순간 태오의 귀가 새빨갛게 달아오르며 두 귀가 아래로 뚝 떨어지는 것처럼 움직였다.
“태오야, 너 방금… 귀가.”
“귀가?”
“귀가 떨어졌어.”
“아.”
바로 옆에서 그 모습을 본 솔이 입을 살짝 벌리고 태오의 새빨간 귀를 손가락을 가리켰다. 솔의 말에 태오는 재빨리 손으로 제 귀를 움켜잡았다. 큼직한 손바닥 안에 들어온 귀가 따끈한 열기를 뿜어냈다. 표정은 여전히 덤덤했는데 그의 귀만은 제 쑥스러움을 여지없이 뽐내고 있었다.
그 후로도 한참, 태오는 말없이 귀를 부여잡은 채 솔의 옆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영호와 대화를 끝낸 가람이 돌아오기까지 두 사람은 서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모두가 준비를 끝내고 나니 샵 곳곳을 누비며 이것저것 챙기고, 지적하던 낯이 익은 여성이 멤버들에게로 다가왔다. 얼핏 봐서 그저 회사 사람이겠거니 생각했는데, 자세히 보니 주말 평가 때 익히 보던 단발머리의 여성이었다. 이름을 한 번 들은 적이 있었는데 집중하지 못했던 솔은 기억이 나지 않아 살살 눈치만 살폈다.
“안녕하세요. 채민주예요. 일단 일주일간 제가 따라다니면서 이것저것 촬영할 거예요. 너무 꾸며진 모습이어서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너무 편한 모습도 안 돼요. 복장에도 적당히 신경 써 주세요.”
채민주라고 자신을 소개한 여성은 다행히도 짤막한 자기소개와 함께 앞으로 해야 할 일들, 그리고 조심해야 할 것들을 당부하기 시작했다.
“연습하는 모습이나 선배들 곡 커버도 할 거고요. 여러 가지 미션이나 질문, 간단한 인터뷰 같은 것도 할 거예요. 회사에서도 시범적으로 진행해 보는 거라 내부 평가 해 보고, 결과물이 괜찮으면 별도의 너튜브 채널을 운영하려고 해요.”
“너튜브…. 그럼 우리 예전에 태오 형처럼 공개 연습생 그런 거 하는 거예요?”
“음, 새로운 방식의 데뷔 평가라고 생각하면 될 거 같아요. 미리 대중의 반응을 보는 거죠.”
득용이 손을 번쩍 들고 묻자 채민주는 잠시 속으로 말을 고르는가 싶더니 ‘데뷔 평가’라는 단어를 꺼냈다. 결국엔 간부터 보겠다는 의미였다. 인기를 끌고 반응이 올 만한 애들인지 실패해도 비교적 손해가 적은 인터넷 매체를 통해 검증받겠다는 이야기였다. 솔은 슬쩍 멤버들의 얼굴을 확인했다. 이미 여러 번 데뷔가 무산되었던 멤버들의 눈은 말 그대로 의지로 가득 차 초롱초롱했다.
“팀 내부적으로도 기대가 크고, 대표님께서 직접 지시한 일이니까, 다들 좋은 모습 많이 보여 주세요.”
“자, 그럼 차에 어서 타자. 스튜디오로 이동해서 기본 프로필 촬영부터는 민주 파트너님이 촬영해 주실 거야.”
“네!”
“잘 부탁드립니다.”
득용이 신이 난 아이처럼 큰 소리로 대답하자 태오가 뒤를 이어 학부모처럼 채민주에게 진중히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솔은 자연스레 태오를 따라 채민주와 영호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멤버들뿐만 아니라 채민주의 눈도, 영호의 눈도 과할 정도로 빛이 났다. 눈빛에서부터 의욕이 흘러넘쳐 솔은 어쩐지 두 사람을 똑바로 보기 부담스러웠다. 그 열정으로 이글거리는 눈빛이 부담스러워 차마 모두를 똑바로 보지 못해 솔은 고개를 숙여 땅을 바라보았다. 뭔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다는 느낌이 확 들었다. 그러자 보란 듯이 솔의 눈앞에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첫인상 사로잡기!>
당신을 대표할 첫 프로필 사진! 프로필 사진 촬영을 무사히 끝내세요!
성공 시 인물 ‘성솔’ 정보 업데이트, 하급 체력 회복의 포션 X1
실패 시 시스템 종료 (혹은 그에 상응하는 고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