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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를 뽑고 싶어 (65)화 (65/192)
  • #65

    “일단 얘들아 어서 준비해, 어차피 머리부터 다 손봐야 하니까 대충 모자 쓰고. 마스크 꼭 챙겨라.”

    “아니, 이렇게 갑자기요?”

    “참, 오늘 세팅하고 나서는 계속 영상 촬영할 거야.”

    “네에?”

    정말 문자 그대로 느닷없이 들이닥쳐 느닷없는 말을 하는 영호 때문에 솔과 태오를 제외한 모두가 계속 ‘네?’만 반복했다. 사전에 귀띔이라도 해 주었다면 이리 놀라지 않았을 텐데 일말의 언질도 없었다. 그런 상황은 영호도 마찬가지인지, 당황한 멤버들의 표정을 확인한 그도 멋쩍게 까슬한 머리를 벅벅 긁었다.

    “너희 연습하는 것도 찍을 거고. 숙소 생활 이런 것도 찍을 거야.”

    “영호 형이 찍어요?”

    “아니, A&R 팀에서 한 분 같이 다닐 거야. 샵으로 바로 오신다고 했는데…. 뭐, 나도 겸사겸사.”

    “당장 오늘부터요?”

    “일단 꼴들이 엉망이니까, 그래도 아이돌 하려는 사람처럼은 보여야 할 거 아니야. 빨리 옷 입어. 지금 밥이 문제니. 얘들아.”

    단순히 프로필 사진을 촬영한다는 게 아니라 예능처럼 평소 모습 전반을 촬영한다는 말이었다. 사내놈들끼리 모여 사는 것치고 지나치게 깨끗한 숙소와 몸가짐이었지만 그래도 그런 식으로 노출되기엔 걱정이 앞섰다.

    영호가 채근하자 당장 지호는 자기 모습부터 확인했다. 돈 아낀다고 한동안 안 자른 머리가 이제 솔한테 잔소리하지 못할 정도로 덥수룩해져 있었다. 곱슬기가 남아 있어 쑥쑥 자라난 머리카락은 한층 더 무겁고 답답해 보였다.

    벌떡 일어서 있던 득용도 뒤늦게 제 모습을 확인했다. 계속 강도 높은 다이어트에 몰두하느라 여간 퀭한 것이 아니었고 지금 몰골도 래퍼나 아이돌보다는 운동광 같은 꼴이었다.

    “진짜 잘해야 한다, 얘들아. 너희들 말만 데뷔 후보조였지 여태 팀으로 뭐 한 게 있었어? 없었지?”

    “…….”

    “아직 확정이다, 데뷔 보장이라고 할 순 없지만, 회사에서도 너희들 잘해 주려고 이러는 거니까. 말 안 해도 알지?”

    지호는 미리 좀 알려 주지 하는 약간의 원망을 담아 영호를 바라보았다가 이내 고개를 저었다. 영호 말이 맞았다. 말이 데뷔조였지 그간 사실 일반 연습생들보다 더 방치되어 있었던 그들이었다. 뭐라도 하는 게 어디인가, 지호는 가스레인지의 불을 꺼 버렸다.

    지금 한가하게 달걀프라이를 먹을 때가 아니라 1g이라도 더 날렵하고 멋있게 찍히기 위해 갖은 수단이란 다 써야 할 때였다. 가람은 아직 그 일이 있고 시간이 오래 흐르지 않아서인지 표정이 어두웠다. 아무래도 걱정이 앞서는 듯했지만, 영호의 말에 그도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것도 안 하고 이렇게 주말 평가만 반복하는 것에 비하면 큰 기회였다. 꽉 붙잡아야만 했다. 태오도 같은 생각인지 지호와 눈이 마주치자 늘어져 있는 솔을 억지로 끌어 일으켰다.

    “성솔, 이제 진짜 일어나야 해.”

    “……일어나는 중이야.”

    말은 그렇게 웅얼웅얼했지만, 솔의 두 눈은 여전히 감겨 있었다. 결국 태오가 늘어진 고양이를 안아 들듯 들어 올리자 그제야 눈을 떴다. 비몽사몽인 그를 욕실에 밀어 넣은 태오는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반쯤 눈을 감고 세안을 마치고 나온 솔은 옷가지를 주섬주섬 주워 입으며 영호와 멤버들이 하는 말에 귀를 기울였다.

    “태오야 워낙 깔끔하고, 가람이야 옷 잘 입는 편이고. 지호 너도 나름 신경 쓰는 티가 나는데 솔이는…… 좀 심각하지.”

    “솔이는 좀…….”

    영호의 말에 지호도 고개를 끄덕였다. 일전에 지호와 함께 샀던 후드 티를 입으며 방에서 나온 솔은 순수한 의문을 담아 모두에게 되물었다.

    “내가? 그렇게 심해?”

    순간 멤버들과 영호 사이에 정적이 돌고 서로 약간의 눈짓이 오가더니 모두가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요즘 마스크까지 쓰니까, 네 잘난 얼굴 중에 공기에 노출되는 부분이 있긴 하니?”

    “솔직히 형은 좀 너무 신경을 안 쓰고 관리 안 한 느낌이 좀 있죠. 그래도 딱 봤을 때 이쪽이다 하는 그런 느낌은 좀 나야죠.”

    “이쪽이다가 뭐야……. 대체 그건 어떤 느낌인 거야?”

    “아, 그니까. 뭐, 형 눈, 코, 입이 안 보여도 머리 완전 작고 다리 긴 거 알긴 아는데 솔직히 거의 폐인의 차림새잖아요.”

    “솔이 그쪽으로 좀 무딘 편이긴 하죠.”

    “무딘 정도냐?”

    “솔은 그냥 기본 아이템만 걸쳐도 어느 정도 핏 나오니까, 그 정도는 아니야.”

    모두의 평이 박했다. 딱 한 명 가람만 슬쩍 솔의 눈치를 살피며 애써 옹호해 주었다. 일전에 몇 번 지적받고 최근 들어 솔 나름 신경을 쓰고 있었다. 너저분한 머리도 되도록 깔끔하게 넘겨 묶고 있었고 그 나름대로 신경 써서 너무 칙칙하지 않게 적당히 몇 벌 안 되는 옷을 조합해 입고 있었다. 제 딴에는 신경 쓴 일이었는데 돌아온 평가가 박하자 솔은 씁쓸한 표정으로 젖은 제 머리칼을 손가락으로 쓸어 넘겼다.

    “……. 그, 렇구나. 조금 충격이네.”

    “충격을 받았어? ……왜?”

    “조금…… 나름 요새 신경을 쓴다고 쓴 거였는데.”

    “……………….”

    “그……래. 그랬구나. 어쩐지. 솔 요즘 달라 보였어.”

    돌아온 솔의 대답에 태오는 더 이상 말이 없었다. 멤버들 사이에서 어색한 침묵이 돌자 가람이 나름의 인정을 해 주었다.

    “가람아, 입에 침 바르고 거짓말해라.”

    “얘들아. 일단 이동하자.”

    “네.”

    하루의 시작인 아침부터 냉정한 여론에 기운이 빠진 솔은 휘적휘적 걸으며 숙소를 빠져나왔다. 그리고 숙소를 빠져나와 몇 걸음 채 옮기지 않아 주차된 밴을 보자마자 자신이 넘어야 하는 난관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득용이 상대적으로 좁은 안쪽 자리에 앉기 싫다며 지호와 짧게 투덕거렸다. 모두가 밴에 오르는 와중에 솔만 그 앞에서 머뭇거렸다.

    “왜 그래?”

    솔의 머뭇거림을 눈치챈 태오가 그를 돌아보며 물었다.

    “아, 맞다. 영호 형, 샵까지 멀어요?”

    “너희 간 적 있는데, 저번에 거기. 그렇게 먼 건 아닌데, 지금 출근 시간대라 좀 걸릴걸.”

    “솔이가 멀미를 심하게 하더라고. 그치? 그래서 그러는 거지?”

    “어어. 응…….”

    이미 한 차례 솔과 함께 밴을 탔었던 지호가 솔의 이상했던 반응을 떠올렸는지 먼저 말을 꺼냈다. 잠시 뭐라 설명해야 하나 망설였던 솔은 지호의 물음에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언젠가는 모든 걸 제대로 설명할 날이 오겠지. 하지만 그게 당장 오늘은 아닌 듯싶었다.

    “창가에 앉는 게 편해?”

    “아니. 아니야. 득용아, 내가 가운데에 앉을게.”

    “아싸, 그럼 나 앞에 탈래요.”

    솔이 가장 좁은 자리를 자청하자 막내가 불편한 자리에 앉아야 하는 것에 대해 부당함을 외치던 득용이 쾌재를 불렀다. 뒷좌석 3인 좌석에 심술 난 얼굴을 하고 앉아 있던 득용은 솔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쏜살같이 튀어나왔다. 옆자리에 앉았던 지호가 그를 붙잡으려 했지만, 며칠간의 다이어트로 몸이 가벼워진 탓인지, 득용의 움직임이 오늘따라 유별히 날랬다.

    솔이 자연스레 득용과 자리를 바꿔 앉자, 그 옆에 가람이 붙어 앉았다. 좌측에 지호, 우측에 가람을 두고 가운데 앉게 된 솔은 크게 숨을 들이쉬고는 눈부터 질끈 감았다. 괜히 창밖에 풍경이라도 보다가 이전처럼 체력이 뚝 떨어지는 것만은 면하고 싶었다.

    “출발한다. 얘들아.”

    “네.”

    유치원생 통솔자라도 된 것처럼 영호가 큰 소리로 외치자 득용이 대답했다. 차가 출발하기 무섭게, 검은 솔의 시야에 민트색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특성 ‘네 바퀴 불신자’가 활성화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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