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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를 뽑고 싶어 (63)화 (63/192)
  • #63

    쓴웃음을 지으며 무거운 이야기를 뱉는 태오는 덤덤한데, 정작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솔이 더 격정적으로 되었다. 솔은 기어이 엉엉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소리를 죽이지도 못하고 울음을 내뱉어 버린 솔에 놀란 태오가 그의 어깨를 잡아 일으켜 앉혔다.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서럽게 우는 솔의 모습에 태오는 눈에 띄게 당황했다.

    덤덤하기 짝이 없던 얼굴에 평온이 깨지고 어쩔 줄 몰라 하며 태오는 솔은 앉혀 두고 허둥거렸다. 솔은 두 팔을 축 늘어뜨리고 아예 목을 놓아 엉엉 울었다. 그 소리에 잠들어 있던 가람이 깨어나 어찌할 바를 모르는 태오를 바라보았다.

    “뭐야? 윤태오.”

    태오는 가람에게 손을 내저어 보였다. 마치 태오가 괴롭혀 울리기라도 한 것처럼 가람이 보기엔 오해하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여지없이 가람의 슬쩍 내려간 눈썹이 매섭게 날을 세웠다. 태오는 가람을 향해 다시금 손을 휘휘 내저었다.

    당황해 어찌할 바를 모르던 태오는 무엇이 그리도 슬픈지 목을 놓아 펑펑 우는 솔을 난처한 얼굴로 내려다보았다. 그러고는 이내 방황하던 손으로 그의 등을 감싸 안았다. 어색하게, 허리는 뒤로 빼 몸이 밀착되지 않게 어정뜬 자세였다. 태오는 조심스럽게 흐느낌이 느껴지는 등을 어설프게 토닥였다. 그러자 솔은 더욱 크게 목을 놓아 울음을 터뜨렸다.

    너무 슬펐다. 태오는 울고 싶지 않았다고 말했지만, 솔은 울고 싶었다. 이렇게 목을 놓아 엉엉 아이처럼 울고 싶었다. 태오가 말한 그 가해자처럼 그냥 무책임한 아이처럼 울고 싶었는데 솔은 그러지 못했었다.

    태오처럼 현실적인 이유보다는 자신 때문에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죄책감에서였지만 그의 말처럼 들어 줄 부모님이 더는 계시지 않으니 이렇게 울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 울음이 터졌다. 부모는 아니지만, 태오가 들어 줄 테니까. 태오의 몫에 자신의 몫까지 더해 아주 더 크게 들으라는 듯이 울었다. 한번 터져 나온 눈물은 걷잡을 수 없이 넘쳐흘렀다.

    “솔, 무슨 일이야. 태오가 뭐라고 했어?”

    “아니야.”

    “아니긴, 그런데 얘가 왜 이렇게 울어.”

    “…오해야.”

    가람은 침대에서 일어나 태오의 품에 안긴 채 목을 놓아 우는 솔에게로 다가갔다. 성큼성큼 걸음을 내딛는 모습이 태오를 한 대 쥐어박기라도 할 듯한 기세였다. 도끼눈을 뜬 가람의 모습에 태오가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솔, 왜 이렇게 울어. 얘가 뭐라 해?”

    솔의 뒷머리를 살짝 쓸어내린 가람은 대답도 못 하고 서럽게 우는 솔을 한번 들여다보곤 태오를 향해 다시 눈을 부라렸다.

    “그만 노려보고 뭐라도 좀 해 봐.”

    “뭘 어떻게 해야 해. 솔, 그만 울어.”

    어색하게 솔을 끌어안고 달래던 태오는 가람에게 뭐든 해 보라며 채근했다. 하지만 정작 가람도 난감하긴 마찬가지인지 솔의 머리만 쓰다듬으며 어색하게 쭈뼛거렸다. 가람은 잠시 솔이 우는 이유를 생각하는가 싶더니 나름의 이유를 도출해 냈다.

    “어제 일 때문에 그래? 네 잘못 아니야.”

    가람은 필시 그가 어제 있었던 일을 아직 자책한다 생각했다. 태오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그와 대화하다 어제처럼 또 스스로를 탓하며 울음을 터뜨렸다고 짐작했다.

    “네 잘못이 아니야. 뭐 해?”

    “뭘?”

    솔의 뒷머리를 살살 쓰다듬으며 ‘네 잘못이 아니다’라는 말을 반복하던 가람은 태오에게 눈을 흘기며 눈치를 주었다. 상황 파악이 안 된 태오가 짙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퉁명스럽게 가람에게 되물었다. 가람은 계속 솔이 보지 못하게 눈짓으로 태오를 채근했다. 결국 가람의 뜻을 알아챈 태오가 그 특유의 낮은 저음으로 가람이 원하는 말을 내뱉었다.

    “네 잘못이 아니야.”

    “솔이 잘못이 아니다.”

    태오의 말이 흡족하다는 듯, 가람은 고개를 끄덕이며 솔의 머리를 무슨 수정 구슬이라도 되는 것처럼 살살 쓰다듬었다. 결 좋은, 얇은 머리카락이 가람의 손에 하도 문질러져 작은 두상에 가지런히, 반들반들 가라앉았다. 효과가 있었는지 솔의 울음이 점차 줄어들어 얕은 흐느낌으로 변질되었다.

    가람은 입가에 안도의 미소를 그렸다. 그리고 허리를 숙여 태오가 그랬듯이, 충분한 여유 공간을 두고 솔을 끌어안았다. 그가 불편해하지 않도록 너무 접촉하지 않되, 또 적당히 온기와 위안을 느낄 수 있도록.

    “너희들 뭐 하니?”

    갈아입을 옷을 챙겨 들고 병원으로 온 영호는 눈앞에 펼쳐진 이상한 장면에 어이가 없었다. 해가 뜨기도 전인 이른 아침부터 커다란 두 사내놈이 솔을 가운데 두고 엉거주춤하게 끌어안고 있었다.

    그 사이에 끼인 솔은 어찌나 울었는지 눈뿐만 아니라 뺨까지 퉁퉁 부어 있었고 눈물로 얼굴이 뒤범벅되었다. 이해할 수 없는 장면에 영호는 얼빠진 얼굴로 가람과 태오를 번갈아 가며 쳐다보았다. 그제야 뒤늦게 민망해진 태오가 ‘큼큼’ 헛기침하더니 솔에게서 멀어졌다.

    그날 오후, 솔은 영호와 함께 퇴원했지만, 가람은 며칠 더 병원에 남아 여러 가지 검사를 받았다. 말할 것도 없이 주로 정신과 관련된 것 같았고 영호는 트라우마를 걱정하는 듯 보였다. 솔은 귀가 따갑도록 앞으로 이런 일이 있을 때엔 반드시 보고하라는 잔소리를 들었고 멤버들 모두 핸드폰 번호를 바꿔야 했다. 짜증스러울 법한데도 누구 하나 싫은 티를 내는 사람이 없었다.

    당연하게도 숙소 비밀번호도 바꾸었고 숙소를 바꿀 수는 없으니 궁여지책으로 현관문 앞에 보안 카메라를 설치했다. 누군가 현관문 앞을 오갈 때마다 영호에게 경보가 갔다. 득용이는 이제 몰래 편의점 가지도 못한다며 투덜거렸고 영호도 차라리 잘됐다며 득용의 머리를 한 대 쥐어박았다.

    가람이 퇴원하고 태오를 제외한 멤버들 모두 몇 차례 경찰서를 방문했고 가람이 꽤 확인해 금방 범인을 특정해 잡을 거로 생각했지만 지지부진했다.

    솔은 이런 상황이 아이러니했지만, 가람은 애초에 기대도 하지 않았다는 듯이 굴었다. 다만 매일 저녁에 경찰차가 순찰 도는 모습을 볼 수 있었고 유치원생 소풍이라도 가듯 다 같이 손잡고 귀가하거나 영호가 아예 출퇴근길을 함께했다. 모자에 이어 마스크도 등장했다.

    365일 감기 환자나 범죄 모의를 하는 사람처럼 모자를 푹 눌러쓰고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다녔다. 어색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는데 그도 반복되다 보니 익숙해 나중엔 오히려 마스크를 안 하면 허전하기까지 했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해프닝이었던 것처럼 시간이 흘러갔다.

    ***

    “실장님, 오랜만이에요. 요즘 많이 바쁘신가 봐요.”

    창가에 앉아 밖을 내려다보며 핸드폰을 하던 은겸은 복도를 지나가는 남자에게 알은체를 했다. 빠르게 지나가던 중년 남성은 은겸의 부름에 마침 잘 만났다는 듯이 가던 발걸음까지 돌려 구태여 그에게로 다가왔다.

    “준비 잘 되어 가고 있지?

    남자는 창가에 비스듬하게 기대어 서서 은겸의 어깨를 툭툭 두드렸다. 가벼운 안부 인사를 던지고 가던 길을 마저 가려 한 사내는 불현듯 떠오른 것이 있는지, 손뼉을 짝 맞추고 다시 은겸을 돌아보았다.

    “참, 은겸아. 루카 입단속 좀 시켜.”

    “입 말고 손을 단속해야죠. 그러니까 걔한테 소통 같은 걸 하라고 시키질 말았어야죠.”

    “손 단속? 손은 또 왜?”

    남자의 말에 은겸은 늘 피곤한 상황을 만드는 제 멤버를 떠올렸다. 늘 촉새처럼 말이 많은 편이긴 했지만 얼마 전에 솔에게 함부로 떠벌린 것도 있고 요즘 영 거슬리는 것투성이였다. 남자의 지적에 은겸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진저리가 난다는 듯 굴었다.

    “걔한테 대놓고 연습생 맞냐고 확인해 달라고 DM 하는 사람도 있는 거 같던데요.”

    “뭐?”

    “데뷔조 애들 있잖아요. 솔이랑….”

    그룹 활동을 할 때도 워낙 잡음을 많이 만들어 내던 멤버였다. 늘 주목받는 은겸에 대한 자격지심인지 무엇인지 몰라도 관심받기에 혈안이 된 그가 요즘 종종 선을 넘는 짓을 하는 것을 몇 번 발견해 주의하라고 경고한 참이었다.

    외국인 팬들과 DM을 주고받는다거나 이런 일들은 전부터 계속해 왔던 일들이라 새삼스럽지도 않았다. 다만 얼핏 지나치며 본 사진이 은겸의 눈을 사로잡아 따져 물으니 웬일로 순순히 대화 내용을 보여 주었다.

    중국인 팬이 보낸 DM에는 최근 SNS에 퍼진 솔과 득용의 사진이 올라와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 적힌 중국어. ‘卢卡,问一下。他是 YC的练习生不?不方便就不用回答。(루카, 물어볼 게 있어. 얘 YC의 연습생이야? 알려 주기 어려우면 답장 안 해도 돼.)’ 다행히도 답장은 아직이었다.

    은겸이 매서운 눈초리로 루카를 쳐다보자 그는 어물쩍 차단하려 했다고 도리어 버럭 성을 냈다. 그간 그를 봐 온 시간을 토대로 짐작하건대 처음 있는 일이 아닌 듯싶었다. 은겸이 무어라 말을 더 뱉기도 전에 루카는 더 큰소리로 ‘알았어. 삭제할게! 차단도 했어. 됐지?’라 말하며 대화 상대를 차단해 버렸다. 오히려 그 과장된 행동이 은겸의 의심을 키웠다.

    “애들 사진 유출된 거 루카한테 들고 와서 연습생 맞냐고 YES OR NO 이런 거 시키던데요.”

    “너는 그걸 보고 있었어?”

    “말렸죠. 대답하지 말라고.”

    “내가 머리가 아프다, 머리가 아파. 김루카 어디 있어?”

    이제 와, 찾아 봤자였다. 그리고 찾아 봤자 그러지 말라 훈계 몇 마디 하는 게 고작이었고 그런 게 먹힐 녀석도 아니었다.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개를 젓는 남자에게서 시선을 돌린 은겸은 창밖을 내다보았다. 계절감 맞지 않는 차림새의 두어 명이 회사 담벼락에 기대어 숨어 있듯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며칠 전에 루카가 일부러 소식을 흘린 뒤부터 저 상태였다. 이렇게 될 걸 알면서 사실 일부러 눈감아 주었다. 적당한 관심과 화제가 독이 될 것이 없는 시기였다. 지금쯤이면 사생이라고 저 둘의 사진 같은 것이 팬들 SNS 사이에서 돌게 분명했다. 그 모습을 내려다보며 손가락으로 제 턱을 톡톡 두들긴 은겸은 여전히 머리를 쥐어뜯는 남자에게 물었다.

    “그런데, 어차피 윤태오랑 강가람은 공개 연습생이었잖아요. 지호도 오디션 출신이고 꼭꼭 숨겨 둘 이유가 있어요?”

    “너도 알다시피, 가람이 걔가 그런 일이 있었잖냐.”

    “그래도 또 어차피 같은 ‘그런 일’ 일어났잖아요.”

    “얘기 들었구나?”

    회사 내에서 도는 소문은 늘 빨랐다. 특히나 안 좋은 일일수록 빠르게 소문이 돌고 저마다 쉬쉬하는 척 수군거렸다.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는 일이었다. 더군다나 은겸도 최근 며칠간 멍청한 루카 때문에 비슷한 일에 시달리고 있었다. 가람은 꽤 운이 안 좋은 사례에 속했지만. 사실 은겸은 그가 자초한 일이라 생각해 별로 안쓰럽다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덩달아 휘말린 다른 멤버들. 특히나 솔의 경우엔 신경이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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