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애를 뽑고 싶어-58화 (58/192)

#58

“저희 집에 무슨 일이시죠?”

솔을 뒤로 밀어내고 지호가 앞으로 나서며 재차 어둠 속에 서 있는 상대를 향해 물었다. 캄캄해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상대는 무척 왜소한 체격을 가지고 있었다. 지호의 물음에도 그 사람은 아무런 대답도 없이 현관문 도어 록을 붙잡은 채로 가만히 서 있었다.

“저기요.”

결국 득용이 얼굴을 험악하게 구기며 앞으로 나섰다. 득용이 한 발짝 더 걸음을 내딛자 괴한이 현관문에서 손을 떼곤 오도카니 섰다.

솔은 조금 전부터 어디선가 ‘띠-띠-띠’ 하는 일정한 규칙의 기계음에 신경이 곤두섰다. 소리의 진원지를 찾아 주변을 둘러본 솔은 그 소리가 붉은빛을 발하고 있는 도어 록에서 나는 소리라는 걸 금방 알아차렸다. 불빛 한점 없는 복도에서 유일하게 도어 록의 숫자 패드가 빨갛게 점멸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경보를 울리는 도어 록과 이 이상한 대치, 새카만 낯선 이가 주는 위화감에 순간적으로 솔의 몸이 뻣뻣하게 굳어 버렸다. 절대 호의적일 수 없는 상황과 인물이라는 걸 깨닫자마자 지호와 득용은 솔을 서로의 뒤로 밀쳐 냈다.

“무슨 일로 찾아오셨죠?”

“…….”

“무슨 일로 찾아오셨냐고요.”

“…….”

“계속 대답 안 하시면 경찰에 신고합니다.”

지호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어둑한 복도에 울려 퍼졌다. 늘 생글생글 웃음 짓던 지호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냉정하게 얼어붙은 얼굴이 태오 못지않게 매서웠다. 지호와 득용에게 반쯤 가려진 솔은 두 사람의 어깨너머로 괴한의 모습을 확인했다. 온통 새카만 차림이라 얼굴도 보이지 않았지만, 어쩐지 낯이 익었다. 지호가 다시 한번 같은 질문을 했지만, 상대는 여전히 대답도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솔아, 신고해.”

“…아! 핸드폰!”

괴한을 노려보며 대치하고 선 지호의 말에 솔은 반사적으로 제 주머니를 뒤졌다. 텅 빈 주머니를 두어 번 더듬은 솔은 그제야 조금 전까지 핸드폰을 잃어버린 것에 대해 떠들었다는 사실을 상기했다. 아차 싶어 솔은 탄성을 내뱉었다. 도움을 주지는 못할망정 늘 일만 복잡하게 만드는 자신이 답답했다.

“내 주머니에.”

“잠, 잠깐만.”

지호는 솔을 살짝 돌아보며 눈짓으로 제 바지 앞주머니를 가리켰다. 당황한 솔이 버벅대며 지호의 핸드폰을 주머니에서 꺼내는 그 행동이 영 어설펐다. 지호가 솔의 불안하기 짝이 없는 행동에 잠시 한눈을 판 사이, 득용과 대치하고 있던 괴한이 빈틈을 파고들었다. 계단을 향해 달리는 괴한을 득용이 두 손으로 붙잡아 저지했다.

“아악!”

순간 날카로운 비명이 터져 나오자 득용은 반사적으로 손을 놓았다. 괴한의 목소리는 생각보다 높고 아주 얇았다. 검은색 일색의 복장 덕에 자세히 보지 못했지만 가까워지니 그 왜소한 체격과 눌러쓴 모자 아래로 긴 머리카락이 보였다. 상대가 여성인 것에 당황한 득용이 얼어붙자 괴한은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전력을 다해 솔이 서 있는 방향으로 도망쳤다.

“지호 형, 잡아!”

득용이 재빨리 소리쳤지만, 솔과 핸드폰에 한눈이 팔려 있던 지호의 반응이 한발 늦었다. 마치 세 사람 중에 뚫고 지나갈 수 있는 구멍이 솔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처럼, 괴한은 계단에 서 있던 솔을 밀쳤다. 익숙하지 않은 핸드폰으로 ‘112’를 누르던 솔은 그대로 강한 힘에 떠밀려 비틀거렸다. 어쩐지 낯이 익은, 겪어 본 적이 있는 상황이었다. 서서히 뒤로 넘어가는 몸을 느끼며 솔은 의문이 가득한 눈으로 지호를 바라보았다.

“솔아!”

기우는 몸의 중심을 잡아 보려 디딜 곳을 찾아 발을 두어 번 굴렀지만, 뒤꿈치에 닿는 지면이 없었다. 지호가 재빨리 솔을 향해 손을 뻗었지만, 행동이 굼뜬 탓에 솔은 두 손으로 그의 핸드폰을 꼭 쥔 채 그 모습을 바라만 보았다.

“어…?”

“솔이 형!”

“솔아!!”

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솔에 비해 득용과 지호가 내지른 소리가 건물 복도에 울려 퍼졌다. 두 사람 모두 황급히 넘어지는 솔을 향해 몸을 던지는 사이, 괴한은 계단을 재빨리 뛰어내렸다. 우당탕, 계단을 구르는 소리가 요란했다.

아무런 저항 없이 그대로 뒤로 넘어간 솔의 몸이 계단 위를 굴러 한 층 아래에서 멈췄다. 놀란 지호가 계단을 뛰어 내려왔다. 급박한 발걸음이 계단을 탁탁 때리는 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졌다.

“솔아!”

“아, 아야…. 윽….”

“솔아, 괜찮아?”

벽에 부딪혀 멈춘 솔에게 한달음에 뛰어온 지호는 솔을 머리를 두 손으로 받쳤다. 혹시나 떨어지며 머리를 부딪혔을까 봐서였다. 다행히 오늘은 솔의 두꺼운 새 옷과 가방, 옷가지가 든 쇼핑백이 쿠션 역할을 해 주었다. 그래도 아픈 것은 매한가지였지만 솔은 낮은 신음을 흘리며 제 등 뒤에 깔린 가방을 끄집어냈다.

“지호 형, 솔이 형 괜찮아요?”

지호를 뒤따라 계단을 내려온 득용이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바닥에 누운 솔을 들여다보았다.

“내가 볼게. 득용아 일단 너는 영호 형한테 연락해.”

“내가 더 꽉 잡았어야 했는데… 놀라서.”

“김득용. 연락부터 해.”

상대가 뛰길래 득용도 거의 반사적으로 붙잡았다. 처음엔 그저 괴한이란 생각에 두 손으로 힘껏 잡아당겼는데, 체구가 제 반절밖에 안 될 정도로 작고 내지른 비명이 여성의 것이라 거의 반사적으로 손을 놓고 말았다.

지호는 솔의 옆에 주저앉아 자책하는 득용을 올려다보며 침착하게 말했다. 큰형은 큰형이었고 막내는 막내였다. 지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득용은 그제야 제 핸드폰을 꺼내 들어 전화하기 시작했다.

“솔아, 괜찮아?”

“으윽, 괜찮은 거 같은데….”

“일어나지 말고, 일단 손이나 다리부터 천천히 움직여 봐.”

제 머리를 받친 지호의 물음에 솔은 대번 괜찮다는 소리부터 내뱉었다. 계단을 냅다 굴렀는데 괜찮을 리가 만무했다. 괜찮다는 대답과 달리 솔은 얼굴을 한껏 찡그렸다.

두꺼운 옷과 가방이 아니었다면 정말 어딘가 부러지거나 크게 다쳤을 뻔했다. 솔은 지호의 말대로 천천히 발목과 손목을 돌려 보았다. 구르며 바닥과 충돌해 온몸이 아프긴 했지만, 딱히 움직일 때 큰 고통이 있다거나 그런 이상은 없었다. 천만다행이었다.

“…지호 형, 나 저 사람 본 적 있어.”

제 몸이 괜찮은 것을 확인하자마자 솔은 걱정스러운 얼굴을 한 지호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무언가 낯이 익다고 했는데, 넘어지는 순간 그날의 일이 떠올랐다.

홀로 숙소로 걸어오던 날, 자신과 충돌했던 여성. 그날, 그 복장, 목소리, 체구 모든 것이 눈에 익었다.

“누구? 방금 그 범죄자 새끼?”

“그 사람이야. 나랑 부딪혔던 사람.”

“뭐?”

지호의 늘 둥글게 내려오던 눈썹이 솔의 말에 대번 높게 치솟았다. 지호의 물음에 솔은 여전히 인상을 찌푸린 채 고개를 끄덕였다. 어둠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지만, 웃음기가 싹 사라진 지호의 표정이 무척 싸한 느낌이 들었다.

화가 났구나. 말하지 않아도 그가 풍기는 분위기가 솔에게 전달되었다. 머리를 받친 지호의 손을 거둬 내고 솔이 몸을 일으키려던 찰나, 지호의 뒤로 강한 빛이 뿜어졌다. 무슨 천사가 강림이라도 하는 듯, 너무 환해 지호를 똑바로 바라볼 수 없을 정도로 눈이 부셨다. 솔은 반사적으로 팔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지호 또한 제 등 뒤에서 쏘아진 빛에 인상을 찌푸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강렬한 불빛이 이내 땅으로 향했다. 눈부심이 가시자 지호와 솔은 그 불빛의 주인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계단 끝에 서 있는 건 손전등을 든 가람이었다.

“미안해.”

“가람아.”

그는 고개를 푹 떨군 채 ‘미안해’라는 그 한마디만 남기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느닷없는 사과에 어리둥절해진 솔은 지호와 가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그의 사과에 지호는 대충 짐작 가는 것이 있는지 일어나 가람을 바라보았다.

“…미안해. 무서워서 나올 수가 없었어.”

주저앉은 가람은 손전등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데굴, 손전등이 구르며 두 사람을 향해 쏘아졌던 불빛이 원을 구르며 벽을 훤히 밝혔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울먹이는 가람의 목소리에 솔은 천천히,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켜 앉았다. 어깨가 조금 뻐근한 느낌이 들고 등과 엉덩이가 조금 아팠다.

“가람아, 너… 안에 있었던 거야?”

“미안해…. 미안해. 솔아.”

“아니, 너 괜찮아?”

가람의 말에 솔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낯선 이가, 도어 록에 경보가 울릴 정도로 여러 번 출입을 시도했다. 밖에 누가 있는지, 어떤 목적으로 침입하려 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가람은 불 한 점 켜지지 않은 그 안에 홀로 있었던 것이다.

당장 넘어진 솔은 자신보다 그 어둠과 공포 속에 홀로 있었을 가람이 더 걱정되었다. 솔의 물음에 가람은 대답 대신 울음기 가득한 욕설을 내뱉었다. 누군가를 향한 욕설이 아니라 밖에서 벌어지는 소란을 고스란히 들으면서도 차마 그 문을 열고 나가지 못했던 자신을 자책하는 욕설이었다.

솔은 벽을 짚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도카니 가람을 바라보고 선 지호도, 몸을 일으켜 세운 솔도 선뜻 가람에게 다가가지 못했다. 주저앉은 그 모습이 너무도 슬프고 절망한 듯 보여 차마 함부로 말을 내뱉을 수도 없었다.

반 층 아래에서 전화를 하고 온 득용이 계단을 뛰어 올라왔다.

“영호 형, 지금 바로 온대요. 경찰도요.”

“…미안해, 내가 미안해.”

“…가람아.”

“가람 형?”

웅얼거림에 가까운 그의 사과에 솔이 나지막이 그의 이름을 부르자, 득용도 솔의 시선을 따라 위를 올려다보았다. 시선의 끝엔 완전히 무너져 내려 미안하다는 사과만 반복하는 가람이 있었다.

***

신고를 받고 5분 만에 출동한 경찰은 상황을 듣고 대략적인 조사를 한 뒤 자리를 떠났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일부러 사이렌을 켜고 순찰차로 인근을 한 바퀴 돌아 멀찍이 사이렌 소리가 들렸다.

사이렌 소리를 배경 삼아 덩그러니 밴에 앉아 있던 솔은 제 옆에서 느껴지는 진동에 가람을 흘깃 바라보았다. 영호가 도착해 가람을 일으켜 세울 때까지 멤버들 중 그 누구도 가람에게 선뜻 다가가지 못했다. 잘못 손대면 망가져 버릴 것 같아 손을 대기가 조심스러웠다.

솔은 사시나무 떨듯 온몸을 떠는 가람을 가만히 바라보다 무릎 위에 올려진 그의 손끝을 살짝 붙잡았다. 그제야 가람은 고개를 들어 솔을 바라보았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