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
장난이야~ 나는 너뿐이야 내가 너 1호 팬이잖아ㅎㅎ
보고 싶어
사랑해
나 만나러 와주면 안 돼?
가람이 잠든 사이 쌓인 메시지는 끝이 없었다. 솔과 지호를 따라다니는 것인지 이따금 둘의 사진이 섞여 있었다.
때로는 바로 옆에서 찍은 것처럼 아주 가깝고 또렷하게, 때로는 멀리서 누가 봐도 몰래 찍은 듯 흐릿하고 불안정한 사진이 번갈아 가며 메시지 함을 채웠다. 초점이 엇나간 사진을 보며 가람은 이루 말할 수 없는 불안감과 분노를 느꼈다. 한 번씩 솔에 관해 언급할 때마다 온몸의 피가 끓어올라 분출될 것만 같았다.
너 자꾸 이러면 나 진짜 다른 애 좋아한다?
지호, 디케이, 솔, 태오. 우리 가람이 태오랑 제일 친했잖아 요즘엔 솔이야?
번호 나는 다 알지만 가람이한테만 연락한 거야 난 언제나 널 제일 좋아하니까
다른 애들 번호는 팔아버릴까?
사진 다 올려버릴래
가람이 무엇을 제일 두려워하는지, 알고 있기에 할 수 있는 협박이었다. 제 친구들이나 이쪽 일과는 전혀 상관없는 지인, 가족을 빌미로 가람을 압박하는 것이 가장 그를 뜻대로 움직이기 좋다는 걸 이미 지난번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가람은 뜨거워진 눈시울을 손등으로 거칠게 훔쳤다.
미안해 장난이야 화내지 마ㅠ
너무 보고 싶어 가람아
바득 이를 악문 가람은 더 이상 메시지를 읽어 내리지 못하고 그대로 핸드폰을 힘껏 내던졌다. 거센 힘에 ‘퍽’ 하고 깨지는 소리와 함께 핸드폰은 바닥과 충돌했다. 액정이 완전히 부서져 버린 듯, 바닥에 엎어진 핸드폰 주변으로 유리 부스러기가 떨어졌다. 가람은 몸을 웅크리고 두 팔로 제 머리를 감싸 쥐었다. 우웅- 우웅-, 화면이 깨진 핸드폰이 바닥을 빙글 돌며 여전히 계속 진동했다.
***
오늘 자 YC 사옥 앞에서 죽치는 외퀴가 찍은 남연생 사진
ㅇㅇ(123.123) | 15:28:01
(지호, 득용, 솔 세 사람이 걸어가는 뒷모습.jpg)
(모자를 깊게 눌러쓴 솔이 뒤를 돌아보는 모습을 줌 인 한 사진.jpg)
(셋이 동그랗게 모여 서서 대화하고 있는 사진.jpg)
(모자 쓴 솔의 얼굴을 확대한 사진.jpg 모자 때문에 진 그림자와 멀리서 찍어 화질이 좋지 않다.)
사옥 허벌이고 ㅇㄱ때문에 오늘 외퀴 많았음. 밴타고 어디 가더라
출처 ㅌㅇㅌ
└ 고화질앱 좀 돌려와 봐
└ 다들 키 크네
└ 갈색 머리 ㄷㅈㅎ
└ 맞네 ㅈㅎ네
└ 얘네 차기인가? 언제 나오지??
└ 오늘이야??
└ ㅇㅇ
└ 잘생겼는데
└ 뭐가 보임?
└ 얼핏봐도 연습생
└ 마지막 사진보면 아이홀도 깊고 코도 높고 잘생겼을 듯
└ ㅇㅇ 기럭지도 길고 키도 큰 거 같음
└ 와꾸 ㅎㅌㅊ
└ 진짜 못생기면 화질 구려도 못생김
└ 키 제일 큰 애는 누구지?
└ 버킷 쓴 애 저번에 쓰러진 애다
몽앓이
@moo_ng0619
오늘 옷 사러 갔다가(YC 사옥 근처 매장) 딱 봐도 아이돌 삘 나는 남자애들 셋이 평가, 연습 이런 얘기 자기들끼리 뭐라뭐라함
키 크고 다리 길고 다들 모자 눌러써서 자세히 못 봤는데 잘생겼음 그냥 딱 봐도 연습생 티남 YC 남연생인가?
A2K♡ @AAAATOK
쌤 어디 매장이에요?ㅠㅜㅜㅜㅜㅜ
시월
@OCT_10
YC 18세남연습생유출사진
(득용이 교복을 입은 채 핫바를 한입 크게 베어 먹는 사진.png)
시월 @OCT_10
YC 연습생 22세 [도ㅇㅇ]
(득용과 대화하며 걸어가는 지호의 사진.png)
시월 @OCT_10
YC 연습생 20세 [성ㅇ]
(득용과 지호 사이에서 이야기하며 걷고 있는 사진.png)
Yc 남자연습생들 42 | (KPOP)
조회 1808
(솔이 득용과 지호 사이에서 걷고 있는 사진을 크게 확대한 이미지.jpg)
완전 예쁘고 잘생겼는데
출처 twiti.com/OCT_10
└ 머리 정리 좀... 지저분해
└ 요정 같은 친구... 포지션 뭘까
└ 헐 대박... 그림자에 거의 다 가려졌는데 잘생겼어
└ ㄹㅇ 대박
└ 넘 기대돼.....
└ 아악 궁금해 화질 좋은 사진 없나 ㅠㅠㅜㅜ
└ 미리 사랑한다
└ 그래서 언제 데뷔 하나ㅇ요
└ 얼굴 보니까 갑자기 설레자너
└ 아ㅠㅠㅠㅠ 얘 진짜 내스탈이야ㅠㅠㅠ 언제 데뷔해ㅠㅠㅠ 젭발
└ 그니까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데뷔 대체 언제해ㅠㅠㅠ
└ 대박이다....ㄹㅇ
└ 와 YC상은 아닌데 아묻따 데려올 만 하다
***
“어어. 솔이 형 굴러간다.”
“눈사람 집 간다.”
가진 돈을 털어 롱 패딩을 사 입은 솔을 득용과 지호가 놀렸다. 이렇게 중무장할 생각까진 없었는데, 지호의 잔소리에 못 이겨 구매해 버렸다. 무난하게 검은색으로 하려 했던 솔의 선택은 또다시 득용에게 저지되어 지금 그는 순백색의 패딩에 온몸을 둘러싸인 상태였다.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빵빵하게 부푼 충전재에 푹 파묻혀 걷는 모습이 지호의 말대로 눈사람 같기도 했고 굴러가는 모양새 같기도 했다. 솔을 놀리며 웃고, 그런 장난을 받아들이는 솔도 얼굴이 편해 보였다. 애들은 아니었지만, 애들은 놀면서, 싸우면서 친해진다고 딱 그 짝이었다. 고작 몇 시간 함께 어울려 놀았다고 외출하기 전보다 부쩍 가까워진 기분이었다.
“하, 배불러. 죄악의 맛이었다.”
“죄악의 맛이래. 죄를 범했으니 오늘 밤 벌을 받아야지.”
“지호 형, 저번부터 영 이상한 말만 하는 거 본인도 알고 있죠?”
“나도 배부른데 같이 나갈까?”
“솔이 형이 뭘 먹었다고요. 그리고 형은 그럴 시간 있으면 쉬라고요! 툭 치면 쓰러질 것 같으면서.”
“그 정도는 아니야. 나도 은근 힘쓰거든.”
솔의 말에 득용이 정말 툭, 어깨로 그를 쳤다. 생각 없이 웃으며 득용에게 허세를 부리던 솔은 그와 어깨가 부딪히자 정말 휘청이며 넘어질 뻔했다. 중심을 잃고 비틀거리는 그를 득용이 다시 잽싸게 붙잡지 않았으면 새하얀 새 옷을 입고 바닥에 널브러졌을 것이다.
“걸을 때, 힘 좀 주고 걸어요!”
“아… 나 얼마 전에도 부딪혀서 넘어졌는데.”
“엥, 언제요?”
“저번에 늦게 혼자 들어온 날? 여기쯤에서 사람이랑 부딪혔는데. 완전히 굴렀어.”
별일 아니라는 듯 말하는 솔과 달리 지호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를 바라보았다. 득용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의 부담스러운 시선에 멋쩍어진 솔은 괜히 흘러내린 앞머리를 만지작거렸다.
“다친 데는 없어?”
“어어. 근데 그때 떨어뜨렸는지. 그 후로 핸드폰이 안 보여.”
“핸드폰 잃어버린 거야?”
“그런 거 같은데…. 이쯤이었거든.”
“진작 말하지. 기다려 봐. 전화해 볼게.”
솔이 슬쩍 허리를 숙여 근처 바닥을 둘러보는 시늉을 하자 지호가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꺼져 있거나 배터리가 닳은 건 아닌지 별다를 특색도 없는 수화음이 연이어 이어졌다. 혹시나 누군가 받지 않을까 해 지호는 계속해서 전화를 붙잡고 있었다. 솔은 다시 한번 제 가방을 뒤져 보았다. 그날 정리하고 딱히 안에 있던 물건을 꺼내지 않았으니. 혹시라도 가방 어디에 처박히지 않았을까 해서였다.
“신호는 가는데….”
“잃어버린 거 확실해요?”
“사실 잘 모르겠어. 그러고 집에 왔더니 핸드폰이 안 보여서….”
“그게 여기 떨어졌으면 여태 있겠어요? 누가 주워서 경찰서나 이런 데 가지 않았을까.”
“안에 뭐 중요한 거 안 들었어?”
“딱히요.”
“연락처 같은 거 백업은?”
“그것도 딱히요. 별로 등록해 둔 사람도 없어서….”
“흠…….”
솔이 고개를 끄덕이자 지호는 전화를 끊었다. 계속해서 들리던 수화음은 어느새 끊어지고 음성 사서함 안내 메시지가 나온 지 오래였다.
“계속해 봐요. 지호 형. 집에서 울리면 태오 형이나 가람 형이 받겠죠. 진동으로 해 놨어요?”
“응.”
“아니다. 그냥 숙소 들어가서 같이 찾아봐요.”
숙소가 지척이었다. 득용의 제안에 셋은 숙소를 바라보았다. 일찍 들어간 두 사람이 지금쯤 한참 저녁 식사를 준비하거나 움직일 시간일 텐데 멀리서 보기에 창문이란 창문은 모조리 빈집처럼 깜깜했다.
“가람이랑 태오 자나? 불 하나 안 켜져 있네.”
“어디 나갔나?”
“아. 설마 둘이 저녁 먹으러 간 거 아니겠죠?”
“아닐걸.”
설령 둘 다 피곤함에 지쳐 아직 자고 있다고 해도 거실의 미등이라도 켜져 있었어야 했다. 그런데 멀리서 바라본 숙소는 일부러 불을 다 끈 것처럼 빛 한 점 없이 캄캄했다. 그 이상한 모습에 솔은 고개를 기울이며 부지런히 걸음을 옮겼다. 그 옆의 득용이 손에 든 비닐봉지를 들어 보였다.
오는 길에 득용이 입이 닳도록 맛집이라 떠든 분식집에 들러 가람과 태오의 몫까지 포장해 온 참이었다. 득용의 물음에 지호는 부정을 표했다. 태오, 특히나 두 사람이라면 둘이 따로 나가 그렇게 시간을 보내지는 않을 것이었다. 게다가 요즘 꽤 힘들어 보였으니 차라리 세상모르고 자고 있다는 가정이 좀 더 현실적이었다.
솔은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앞서 걸었다. 팔꿈치에 주렁주렁 걸린 쇼핑백 더미가 그가 걸을 때마다 서로 부딪혀 바스락거렸다. 복도의 센서 등이 나갔는지, 오늘은 숙소 건물 계단에도 불이 들어오지 않았다. 숙소도 그렇고 복도도 캄캄한 것이 정전이라도 났나 싶었다. 긴 다리로 성큼성큼 계단을 올라온 솔은 숙소가 위치한 복도에서 잠시 걸음을 멈춰 섰다.
“형, 안 올라가고 뭐 해요.”
뒤따라 올라온 득용이 솔에게 가로막혀 살짝 부딪혔다.
“…누구세요?”
어두컴컴한 복도, 숙소의 현관문 앞을 바라보며 솔은 미세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그림자 속에 질문을 던졌다. 솔의 물음에 그의 뒤에 서 있던 득용과 지호가 고개를 길게 빼고 복도를 확인했다. 현관문 앞에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검정인 누군가가 서 있었다. 그것도 잠금장치에 손을 올린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