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애를 뽑고 싶어-53화 (53/192)

#53

주말 평가는 순식간에 끝이 났다. 엄밀하게 말해 순식간은 아니었지만, 정신없었던 솔에겐 정말 말 그대로 눈 감았다 뜨니 끝나 있었다. 이를 하도 악물어 턱이 얼얼하고 어금니가 욱신거렸다.

트레이너와 신인 개발 팀 팀장, 실장이 내뱉는 평가들도 거의 한 귀로 들어갔다가 와르르 반대편으로 쏟아져 내렸다. 그렇게 끝내고 나니 기억에 남는 것은 하나도 없었다. 실컷 혼낼 거 혼내고, 쓴소리를 늘어놓고는 ‘수고했어.’라는 말 한마디만 남기고 모두가 사라지자 죽음을 기다리며 사시나무 떨어 대듯 떨던 솔은 힘이 빠져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다지 좋은 소리는 듣지 못했다. 그나마 칭찬을 받은 거라곤 지호. 워낙 곡과 분위기가 잘 맞기도 했고 지호 특유의 활기차고 밝은 표정이 돋보였다. 솔만 그런 생각을 한 것은 아닌지, 트레이너와 신인 개발 팀도 ‘때로는 노래를 잘하는 것보다 표정이 이쁘고 시선을 사로잡는 친구들의 노래가 더 잘 들릴 때가 있다’라고 평했다. 하지만 지호는 노래도 잘했다. 그러니 모두의 시선이 내내 지호에게 가 있었던 건 말할 것도 없었다.

가장 타격이 큰 사람은 득용이었다. 아까부터 연습실 구석에 서서 머리를 벽에 쿵쿵 박고 있었다. 춤이나 노래, 이런 문제가 아니라 그를 괴롭히는 몸무게 때문이었다. 그룹 안무가 끝나자마자 모두의 앞에 체중계가 등장했다. 이유인즉, 춤을 추는데 득용의 몸이 부하고 무거워 보였다는 이유서였다.

솔이야 멸치처럼 배짝 골았으니 두말하면 입이 아팠고 다른 멤버들도 적당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득용이 체중계에 올라가는 순간. 바로 그에게 ‘데뷔하고 싶은 거 맞니? 평생 여기서 이렇게 평가만 받다 끝나고 싶어?’라는 말이 돌아왔다.

덩치는 커다래서 사납게 생긴 득용이 그 말 한마디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울지는 않았지만, 코끝과 눈가가 붉어지고 입술을 꾹 눌러 다무는 모습이 조금만 더 건드리면 터져 버릴 것 같았다. 옆에서 같이 서 있던 솔도 덩달아 죄를 지은 사람처럼 주눅이 들었는데 그는 오죽할까.

한참 먹고 싶을 것도 많은 나이였다. 자면서도 잠꼬대로 음식 먹는 시늉을 한다고 지호가 종종 놀려 대기도 했었다. 이내 얼굴이 새빨개진 득용을 앞에 세워 두고 트레이너가 영호를 불러 몰래 뭐 먹는 거 아니냐, 식단 관리 못 시키냐 호되게 쏘아 댔다. 먹는 거로 구박하는 게 가장 서러운 법인데, 무척이나 야박했다.

그런데도 어쩔 수가 없었다. 득용은 모진 말을 쏟아 내는 트레이너 앞에 고개 숙여 제 발치만 바라볼 뿐이었다.

득용이 그간 음식 문제로 얼마나 고생했는지 익히 봐 온 멤버들이었다. 다들 침울해져 있는 그에게 아무런 위로도 건네지 못했다. 요구 사항이 벅찼다. 적당히 보기 좋게 마르면서도 근육이 잡혀야 했다.

말이 적당이지 평가하며 카메라 테스트를 받으면 실물보다 조금 부해 보이게 나왔다. 특히나 솔처럼 피부가 유독 하야면 그 정도가 심했는데, 그럴 경우엔 화면에 보이는 것도 훨씬 더 말라야 했다.

“다들 고생했어요.”

태오의 그 인사를 마지막으로 다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조금 허탈한 기분도 들었다. 솔은 다시 한번 평가가 종료된 후 자신이 마주했던 알림 창을 확인했다.

[<데뷔를 향한 걸음, 제대로 평가받자!> 성공]

[2차 평가 종합 B+ 등급 ( 안무 : A | 보컬 : B )를 달성하셨습니다.]

[성공 보상으로 안정의 포션 2개를 획득하셨습니다.]

간신히 시스템 창이 내어 준 임무를 턱걸이했다. 등급으론 A였지만 딱히 좋은 말을 듣지는 못했다. 비단 솔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평이 각박했다. 아직도 시선 처리가 부족하다느니 관객이 지하에 있냐느니, 비주얼로는 제일인데 눈길이 가질 않는다 등등. 좋지 않은 평가만 쭉 늘어놓아 영락없이 여기서 최후의 엔딩을 맞이하는 줄로만 알았다.

퀘스트 완료 창을 쭉 읽어 내리던 솔은 제 이마를 손바닥으로 ‘탁’ 쳤다. 성공 보상을 확인하고 나서야 저에게 피로도 회복의 포션과 안정의 포션이 있다는 게 비로소 떠올랐다. 이번에야말로 사용하고 임해야지 했는데 까맣게 잊어 먹고 있었다.

시스템과 아이템이란 요소에 익숙하지 않은 탓이기도 했고 이미 회사 문 앞에서부터 극도의 긴장을 해 머리가 안 돌아간 탓이었다. 스스로의 멍청함에 감탄하고 있는 솔의 귀에 득용의 목소리가 꽂혔다.

“혼나서 우는 거 아니고 분해서 우는 거예요.”

아무도 별말 하지 않았는데, 지레 찔린 득용이 코를 훌쩍이며 말했다. 솔이 고개를 돌려 득용의 모습을 확인했다. 여전히 그는 이마를 벽에 박은 상태였다. 우는 줄 모르고 잠시 혼자만의 시간을 가진다고 생각해 내버려 두었는데, 정말 우는 것이었나 보다.

분하고 억울할 만도 했다. 그렇게 음식을 제한하고 매일 연습을 끝내고 운동까지 했는데. 모진 말만 잔뜩 들었다. 차라리 실컷 먹고 싶은 것이라도 먹고 혼났다면 덜 억울했을 것이다.

“역시, 닭 가슴살을 너무 많이 먹었나 봐요. 맛도 없는데 왜 그렇게 많이 먹었지.”

“배고프니까 먹었지.”

“맞아요.”

득용과 지호의 만담 같은 대화에 솔은 시스템 창을 꺼 버리며 ‘풉’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득용의 서러움과 별개로 단순한 반응이 재미있었다.

“됐어. 기분 풀게 영호 형한테 말해서 외출이나 나가자.”

“좋아요.”

“솔이 너도 옷 사러 같이 나갈래?”

“그럴게요.”

지호의 제안에 솔도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이렇게 생활이 이어진다면 적어도 기본적인 옷 몇 벌은 사 놓는 게 맞을 듯했다. 매번 빌려 입을 수도 없고 문득 오늘 이렇게 차려입고 나니 사람이 좀 덜 울적해 보였다.

“우리 막내 울적한데 나간 김에 맛있는 것도 먹고 들어오자.”

“안 먹을 건데요.”

“뭐?”

“다음 주 평가할 땐 확 빼야죠.”

“하루 정도 치팅 데이 한다고 큰일 안 나.”

“과연 그럴까요? 그렇게 생각해요? 지호 형?

지호가 고개를 내저으며 툭 내뱉은 말에 벽에 이마를 박고 있던 득용이 계속해서 반복적인 물음을 던지며 천천히 그에게로 다가왔다. 지호와 솔이 앉아 있는 방향으로 엉금엉금 기어 온 득용은 이내 지호의 코앞에서 제가 원하는 답이 나오길 기다렸다. 흔히 말하는 답정너처럼 답은 정해져 있었다.

“응. 그래. 그렇게 생각해.”

마침내 지호가 제가 원하는 답을 주자 득용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쭉 뻗은 지호의 무르팍에 얼굴을 파묻었다. 아니 정확하게는 들이박듯 했다.

“그럼 짜장면이랑 떡볶이요.”

“하나만 해.”

“피자도요. 아이스크림도요.”

“하나만! 다음 주 평가 때까진 확 뺄 거라며!”

그러고는 쉼 없이 그간 꾸준히도 외쳤던 음식을 나열하기 시작했다. 조금 전, 다음 주 평가를 벌써 준비하며 다이어트 각오를 다지던 사람은 온데간데없고 반찬 투정하는 어린아이가 남았다. 지호가 버럭 소리를 지르자 득용은 그대로 그의 무릎을 베고 벌러덩 누워 연습실 바닥에서 허우적거렸다.

정말 그 모습이 영락없는 마트 바닥에 드러누워 생떼를 부리는 아이와 같았다. 지호에게 제 투정이 씨알도 먹히지 않자 득용은 바닥을 데굴 굴러 그 옆의 솔에게로 다가왔다.

득용은 주저앉아 있던 솔의 다리를 붙잡아 끌어당겼다. 피로도를 낮추느라 옴짝달싹하지 않던 솔은 득용의 힘에 그대로 쭉 미끄러져 연습할 때 바닥에 한데 드러눕게 되었다. 솔이 득용과 바닥에 뒤엉켜 허우적거리는 사이, 지호는 태오와 가람에게도 같은 제안을 했다.

“태오랑 가람이는?”

“셋이 다녀와요.”

태오는 고개를 저었고 그의 대답을 들은 솔과 지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태오는 조금 쉬는 게 좋을 듯싶었다. 무심하고 무던한 얼굴에 피로가 비칠 정도면 아마 너덜너덜한 상태일 것이었다.

“그래. 가람이 넌?”

“난 숙소에서 쉴래.”

말수가 급격히 줄어들어 쪼그려 앉아 있던 가람이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오늘 사실 안무와 보컬로 가장 혹평을 들은 건 가람이었다. 오랜 연습생 생활 탓일까, 그 혹평이 가람에게 그다지 큰 영향을 주진 못한 듯했다. 시작부터 어딘가 넋이 나가 있던 가람은 끝까지 멍했다. 꼭 마치 특성 ‘머릿속의 지우개’가 활성화된 솔처럼 굴었다. 트레이너와 신인 개발 팀이 안 좋은 평을 늘어놓는데도 그는 아무 생각이 없는 졸린 고양이마냥 멀뚱히 서서 고개만 끄덕였다.

가람의 대답에 태오가 슬쩍 그를 쳐다보다 고개를 돌렸다. 태오가 고개를 돌린 순간, 다시 태오를 바라보던 솔과 두 사람이 눈이 마주쳤다. 그저 눈이 마주쳤을 뿐인데 솔에게 무언가 신호가 왔다. 아마도 두 사람이 숙소에서 가람의 최근 이상한 상태에 대해 이야기 나누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들었다.

태오가 가람의 옆으로 다가가 같이 돌아가자 말을 걸었다. 솔은 그 모습을 빤히 쳐다보았다. 둘이 가장 친하다 들었는데, 정작 솔이 오고 난 뒤론 가람도 태오도 그를 챙기느라 오히려 둘이 같이 있는 모습을 보기 어려웠다.

늘 그 두 사람 사이에 솔이 끼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새삼스레 저렇게 보니 제법 그림이 되었다. 둘 다 짙은 흑발에 커다란 키. 조금 닮은 듯 또 분위기가 확 달랐다.

“그럼 이 형이 총대 메고 영호 형한테 허락받아 온다.”

“형님만 믿습니다!”

“응. 다녀와.”

지호가 자리에서 일어나 올라간 후드 티를 끌어 내리며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밝은 갈색의 곱슬머리가 땀에 조금 젖어 무겁게 늘어진 데다 청바지에 흰 후드까지 갖춰 입으니 무척 열혈인 것처럼 보였다.

“그럼 나는 들어갈게.”

“들어가 볼게요. 조심히 다녀오고 이따 숙소에서 봐요.”

지호의 뒤를 가람이 스치듯 지나가자 그 뒤를 태오가 따라갔다. 두 사람 모두 심드렁한 얼굴로 연습실 문을 열자 한 박자 늦게 지호가 둘을 붙잡았다.

“그래. 혹시 필요한 거 없어?”

“딱히 없어.”

“잘 놀다 와요. 득용이도, 솔도.”

“응. 두 사람도 푹 쉬어. 잘 다녀올게.”

“태오 형, 내가 맛있는 거 사 올게요.”

태오의 인사에 솔은 작게 두 손을 흔들자 득용도 그를 따라 손을 흔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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