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애를 뽑고 싶어-52화 (52/192)

#52

두 번째 주말 평가의 날이 밝았다. 어제가 정말 요행이었다는 듯, 당연하게도 솔은 오늘도 잠에 패배했다. 태오가 끝내 이불 밖으로 억지로 끌어내고 득용과 가람, 지호가 번갈아 가며 방에 들어와 그의 얼굴에 찬물을 튀기기도 했다.

어제는 모처럼 모두가 모여 거의 극기 훈련 수준의 연습을 했다. 춤 선과 대열 모든 것을 최종으로 맞춰 봐야 했다. 제일 늦게, 모두가 준비를 끝낸 시간에 느지막이 일어난 솔은 눈을 뜨자마자 마주한 멤버들의 모습에 오늘의 드레스 코드를 알게 되었다. 청바지와 후드 티, 나름 청량하고 신나는 노래라고 밝고 활동적인 모습을 노린 듯했다.

“어…. 음. 나 밝은색 후드 티 없는데.”

부스스, 머리가 산발되며 일어난 솔은 반쯤 감은 눈으로 그렇게 아침 인사를 했다. 솔의 말에 모두가 다 같이 그를 끌고 드레스 룸으로 사용하는 작은 방으로 갔다. 그제야 솔의 조촐하기 짝이 없는 짐을 보고 지호가 한숨을 내쉬었다. 솔이 보기에도 번듯한 옷이 없었다.

“그동안 벗고 살았니?”

“집 밖에 잘 안 나갔어….”

지호의 물음에 솔은 말꼬리를 흐렸다. 말하고 나니 민망하기 짝이 없었다. 저 스스로 본인이 폐인의 삶을 살았다는 걸 확인시켜 준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처참하기 짝이 없는 옷가지의 상태에 모두가 말이 없었다. 한참 만에 먼저 입을 연 것은 태오였다.

“…내 거 빌려줄게.”

“태오야, 맞겠니? 됐어, 내 거 빌려줄게.”

태오의 말에 지호가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코웃음을 쳤다. 솔도 작은 키는 아니었지만 워낙 말라 키도 더 크고 체격도 좋은 태오의 옷을 입기엔 무리가 있어 보였다. 그나마 체구가 엇비슷한 게 지호였다.

“나는 솔이 형이 맨날 춥다고 춥다고 그래서 추위 엄청 타나 보다 했는데, 옷 보니까 추울 만했다. 형 무슨 더운 나라에서 살다 왔어요?”

“안 챙겨 와서 그래, 숙소에 급하게 들어오느라.”

“…형 짐, 미리 와 있었던 거 알죠?”

득용의 말에 솔은 먹히지도 않을 변명을 했다. 그의 지적에 솔은 말없이 부스스한 뒷머리를 벅벅 문질렀다. 일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언제 한번 시간 내서 쇼핑이라도 나가야겠는데.”

“오, 영호 형한테 말하고 우리 외출해요.”

“그 전에 이번 평가부터 잘해야지.”

지호의 말에 득용이 방방 뛰며 신나 하자 태오가 그의 어깨를 꾹 잡아 눌렀다. 태오의 말에 솔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랬다. 일단 오늘 대망의 퀘스트를 성공해야 지호, 득용과 함께 다 같이 외출하든가 할 것이었다. 당장 실패해 버리면 바로 죽게 될 것이니 말이다.

갑자기 솔은 자신이 퀘스트에 실패하면 멤버들에겐 어떻게 보이고 인식될지가 궁금했다. 화장실에서 경험했던 최초의 죽음을 기준으로 하자면 일단, 숨을 쉬지 못하게 되고 고통에 몸부림치다 쓰러지게 될 것이었다.

그럼 멤버들 앞에서 실시간으로 제 죽음을 선보이게 되는 건가. 입 안이 썼다. 여러모로 끔찍한 일이었다.

“아. 당연히 자신 있죠.”

“응. 노력할게.”

솔의 상념을 깨고 득용이 아주 우렁차게 외쳤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어깨를 들썩이는 득용은 정말로 자신 있어 보였다. 안무의 동작 난이도 자체는 그리 높지 않은 탓일까. 득용은 퍽 자신 있어 했다. 또 중간에 들어 있는 득용의 랩 파트가 문외한인 솔이 들어도 귀에 착 감기고 득용의 곡인 것처럼 꼭 알맞았다. 그간의 노력한 시간도 있으니 자신 있어 할 만했다.

“가람이는?”

문득 지호가 가람을 지적하자, 모두가 그를 일제히 바라보았다. 가람은 꼭 마치 첫날 마주했던 솔처럼 멤버들에게서 한 발짝 물러서 있었다.

“어?… 어. 당연하지.”

“성솔! 일단 어서 씻고 와. 제일 늦게 일어나선…”

한 박자 늦긴 했으나 원하는 답이었는지, 가람의 대답에 지호가 미소를 지었다. 그 묘하게 엄마같이 인자한 미소도 잠시, 둥글게 휜 아치형 눈썹이 매섭게 치켜 올라가고 지호는 솔에게 잔소리를 쏟아 내기 시작했다. 그 등쌀에 밀려 솔은 욕실로 재빨리 몸을 옮겼다.

회사로 향하는 길, 솔의 걸음이 점점 무거워졌다. 걸음이 무거운 이는 솔뿐만이 아닌지, 가람도 자꾸만 뒤처졌다. 어제부터 도통 말이 없는 가람은 조금 멍하니 있을 때가 많아졌다.

솔은 둘이 있을 때, 넌지시 무슨 일이 있냐 물었지만, 가람은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더 캐묻기 난감해 말을 아꼈지만 그런 가람의 모습이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솔도 깊게 신경 쓰진 못했다. 당장 오늘, 자신의 목숨이 결정되는 날 아니었던가.

회사 건물이 점점 다가오자 솔은 가슴을 부여잡았다. 이번에는 정말 독하게 마음먹었는데, 막상 또 현실로 와닿으니 심장이 쿵쾅거리고 속이 울렁거렸다. 자신을 평가해야 하는 사람들 앞에서 춤과 노래를 해야 한다니.

분명 숙소를 빠져나올 때만 해도 득용과 장난치며 나름 득의양양했었는데. 순식간에 그 자신감이 바닥으로 내달았다. 불안한 마음에 솔은 괜스레 시스템 창을 띄워 보았다.

<데뷔를 향한 걸음, 제대로 평가받자!>

이번에는 진짜 제대로 된 주말 평가! 주말 평가에서 안무 A 등급, 보컬 B 등급 이상을 받으세요.

*스타라잇 - 드리머 안무 숙련도 100%

보컬 숙련도 100%

성공 시 안정의 포션 X2

실패 시 시스템 종료 (혹은 그에 상응하는 고통)

솔은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어제 특훈으로 안무와 보컬, 모두 숙련도 100%를 달성했다. 적어도 멤버들끼리의 연습에선 칭찬받을 거란 호평이 자자했다. 이 구성원으로 평가를 치른다면 아무런 문제도 없을 텐데.

어찌 되었든 낯선 타인이 들어올 수 있다고 생각하니 불안했다. 특히나 기억 속에 새카만 얼굴로 기억되어 있는 ‘백의찬 대표’. 아무리 떠올리려 애를 써 봐도 그날의 백의찬 대표 얼굴은 떠오르지 않았다. 분명 이토록 잊고 싶은 이유가 있을 것이었다. 다행히 이번에는 은겸의 일로 자리를 비웠다고 영호가 사전에 전해 주었다.

평가가 치르는 연습실로 들어서기 바로 직전, 솔은 심호흡을 하고 숨을 가다듬었다. 다행히 갖춰진 의자가 조촐했다. 아마도 은겸의 솔로 건으로 모든 인력이 그쪽에 쏠려 있는 탓인 듯했다. 솔은 몸을 풀며 계속해서 끊임없이 속으로 ‘할 수 있다’를 되뇌었다. 이런 것이 효과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래야 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솔은 거울에 비친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제 낡은 청바지에 태오의 버킷 햇을 빌려 썼고 지호의 미색 후드 티를 빌려 입은 자신의 모습이 낯설었다. 솔이 거울을 보며 마음을 다잡는데, 태오가 옆으로 다가왔다. 솔과 나란히 선 태오는 늘 그렇듯 올곧은 시선으로 거울에 비친 그를 응시했다.

“손, 떨고 있어.”

옆으로 다가온 태오는 솔만 간신히 들릴 목소리로 작게 속삭였다. 태오의 지적에 솔은 제 손을 들어 올려 바라보았다. 후드 티 소매를 슬쩍 걷어 올리니 그 아래 숨어 있던 손이 미세하게 파르르 떨고 있었다. 솔 자신도 인지하지 못한 아주 미세한 떨림이었다.

“…. 그러네. 이거 왜 이러지.”

지난번보단 상태가 제법 좋다고 생각했는데, 퍽 그렇지도 않은 듯했다. 솔은 애써 웃으며 제 손가락 끝을 주물렀다. 손가락 끝이 피가 흐르지 않는 것처럼 차가웠다.

“…….”

“이번엔 쓰러지지 마. 아깝잖아.”

“응.”

솔은 괜찮다는 말도 못 하고 말없이 제 손가락을 계속해서 주물럭거리기만 했다. 급격히 어두워지는 솔의 얼굴에 태오가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거울을 응시한 채였다. 태오의 목소리에 솔은 고개를 들었다.

목소리는 바로 옆에서 들렸지만, 솔은 고개를 돌려 그를 직접 바라보지 않았다. 이렇게 거울을 통해 바라보는 것이 좀 더 편안했다. 거울에 보이는 태오의 표정이 조금 이상했다. 무척 부단히도 애를 쓰고 있는 듯한 얼굴이었다. 조금 난감해 보이기도 해 솔은 괜찮다는 의미로 피식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래도 혹시라도 또 쓰러지게 되면, 그때도 내가 받아 줄게. 다치지 않게.”

“고마워해야 하는 거지? 응원 맞는 거지…?”

“…….”

솔의 웃음을 확인한 태오가 답지 않은 농담을 던지자 솔은 흘끗, 그를 곁눈질하며 농담을 받아 주었다. 마냥 무뚝뚝하고 진지하기만 한 태오도 이런 소소한 농담을 하는구나 싶어 맥 빠진 웃음이 나왔다.

한결 긴장감이 가시고 풀어진 솔의 표정과 달리 거울 속 태오의 얼굴은 오히려 더 심각해졌다. 태오의 반응이 어찌 되었든 조금 여유가 생긴 솔은 거울을 통해 연습실 내부를 둘러보았다. 몸 풀기에 여념이 없는 지호와 득용, 그리고 구석에 덩그러니 홀로 앉아 넋을 빼고 있는 가람이 눈에 들어왔다.

“가람이 말이야.”

솔은 조심스럽게 태오에게 가람의 이름을 꺼냈다.

“강가람이 왜?”

“좀 이상한 거 같은데. 못 느꼈어?”

“…. 일단 지금은 이 일에 집중하자.”

“응.”

대답은 하지 않았지만, 태오의 단호한 표정에서 그도 무언가 짐작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태오의 말대로 지금 당장에는 평가가 솔에겐 더 큰 문제였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영호가 문을 열고 들어오고 그의 뒤를 따라 트레이너와 신인 개발 팀이 자리에 앉았다.

문가를 지키고선 영호가 말없이 멤버들을 향해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지호와 득용이 재빨리 제자리를 찾아 섰다. 모두 대열을 맞춰 시작할 준비를 하는데, 가람 혼자만 정신을 못 차리고 넋을 놓고 있자 기어이 태오가 그를 끌고 제자리에 세웠다.

“안녕하십니까!”

이젠 인사의 합도 잘 들어맞았다. 순서대로 짤막하게 이름을 말하는 소개까지 끝마치자 솔도 이제 제법 진짜 아이돌 연습생 티가 났다.

“바쁜데, 빨리 시작하죠. 다들 안녕. 이번에는 컨디션 관리 잘들 했지?”

“단체 안무부터 끝내고 보컬 개별 평가까지 빠르게 진행합니다. 다들 시작해.”

박수 짝짝, 그 두 번의 소리를 기점으로 목숨이 걸린 퀘스트가 다시금 시작되었다. 솔은 크게 심호흡하고 침을 꼴깍 삼켰다. 눈앞에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듯 어질어질함이 느껴졌다. 울렁거림을 느끼며 솔이 가슴을 부여잡는 순간, 등 뒤에서 온기가 느껴졌다.

연습한 대로 대형을 맞춰서자 솔과 태오가 등을 맞대게 되며 어깨선이 닿아 전해진 온기였다. 들썩이며 숨을 내뱉는 움직임까지 고스란히 느껴졌다. 맞대어진 등을 타고 전해지는 태오의 숨과 온기에 솔은 긴장과 불안을 지워 내고 이번 퀘스트는 제대로, 오롯이 제힘으로 성공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차임벨 소리가 울려 퍼지고 솔은 살짝 감았던 눈을 반짝 뜨며 첫 소절을 내뱉었다.

“징징대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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