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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를 뽑고 싶어-51화 (51/192)
  • #51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어제 코빼기도 안 비쳤던 영호가 멤버들을 맞이했다. 각자의 이유로 활기차게 웃으며 아침 안부를 물을 상황이 아니었다. 그건 영호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회사 연습실로 향하는 복도에서 마주한 영호의 복장은 어제와 같았다.

    수염도 까슬까슬하게 자라 있고 머리도 엉겨 붙은 것이 어제 솔과 잠깐 만난 이후로 집에 돌아가지 않은 듯했다. 급한 일이 있다더니 정말로 급하고 바쁜 일이었나 싶었다. 그와 별개로 영호도 나름 솔을 그렇게 보낸 게 신경 쓰였는지 웃으며 질문을 던졌다.

    “솔아, 어젠 잘 들어갔지? 형이 정말 바빴었어.”

    “네. 잘 들어갔어요. 괜찮아요.”

    “그래그래.”

    영호가 멤버들의 앞에 파우치의 지퍼를 벌려 들이밀었다. 늘 핸드폰을 수거해 담아 두는 파우치였다. 늘 아침마다 벌어지는 일이기에 다들 습관적으로 핸드폰을 파우치 안에 집어넣었다. 솔과 가람만 빼고.

    “솔이는?”

    “어…, 숙소에 있는 거 같아요.”

    “정말?”

    “네. 진짜 없어요. 깜빡하고 두고 온 거 같아요.”

    “정말이지? 믿는다.”

    “네.”

    영호가 미심쩍다는 눈으로 솔을 바라보자 솔은 겉옷과 바지 주머니를 뒤집어 보여 주었다. 알림이 울리기도 전에 일어나 버려서 핸드폰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찾아봤어야 했는데, 시간이 지났음에도 숙소 내에서 알림이 울리지 않았으니 숙소 안에 없는 것이 확정되었다.

    ‘어제 넘어지면서 잃어버렸나?’

    분명, 어젯밤 귀갓길에 사용하고 주머니에 넣었던 게 마지막 기억이었다. 그 사람이랑 부딪혀서 넘어지고…… 그 후부턴 핸드폰을 따로 챙기지 않아 알 수 없었다.

    어디 길바닥에 굴러다니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래도 별수가 없었다. 딱히 핸드폰에 중요한 게 들어 있는 것도 아니라 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안에 든 이상한 가족사진이 조금 신경 쓰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건 솔도, 솔의 가족도 아니었다.

    솔이 계속해서 진짜 없다는 의미의 제스처를 취해 보였다. 영호는 어제의 일도 있고 더는 솔을 추궁하지 못하고 마지못해 넘어가 준다는 듯, 한숨을 쉬고 가람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가람아, 너는?”

    “아. 잠시만요.”

    가람은 핸드폰에 시선을 고정한 채 대답했다.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회사에 도착할 때까지 그는 무슨 중요한 연락이라도 기다리는 사람처럼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솔이 그런 가람을 빤히 보자 지호가 가람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쿡 찔렀다.

    “가람아. 그만 보고 빨리 내.”

    “어…. 어어. 알았어, 형. 이것만…….”

    “강가람.”

    결국 태오가 낮게 이름을 한번 부르자 해결이 되었다. 가람은 영 불안한 얼굴로 핸드폰을 끈 뒤 영호에게 내밀었다.

    “이번 주에 워낙 정신없어서 너희한테 신경을 못 썼네. 너희 프로필 사진 찍은 지도 너무 오래됐는데 A&R 팀이랑 조율이……. 요새 회사에 오디션이며 뭐며 일이 많네. 곧 은겸이 솔로 앨범 나오는 거 알고 있지?”

    요즘 도통 보이지 않기에 어렴풋이 바쁜가 보다 했던 은겸의 소식을 영호를 통해 전해 들었다. 어제 늦게까지 위층에 남아 있던 사람도 은겸이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어쩐지 다들 은겸의 소식엔 시큰둥한 반응이었다. 오히려 오디션이라는 화제에 지호가 반응했다.

    “새로 연습생 들어왔어요?”

    “걸 그룹 준비하잖아.”

    “아……. 난 또.”

    “지호, 라이벌 생길까 걱정했구나?”

    “무슨 라이벌이에요.”

    걸 그룹이라는 말에 그는 영호를 향해 손을 휘휘 저어 보였다. 제 코가 석 자인데 여자 연습생에 관심을 둘 여유도 없었고 괜한 관심을 둬서도 안 됐다. 지호는 더 말을 꺼낼 필요도 없고 듣고 싶지 않다는 듯 귀를 틀어막았다.

    “은겸이 솔로 건 어느 정도 정리되면 그때부턴 너희도 제대로 준비해야지. 프로필 사진도 새로 찍고 이참에 솔이는 머리도 좀 관리하고…….”

    영호의 지적에 솔은 치렁치렁하게 내려온 제 앞머리를 슬쩍 쓸어 넘겼다.

    “그런데 솔이는 왜 아까부터 한쪽 눈을 감고 있어?”

    “윙크 연습 중이래요.”

    “아니에요. 살짝 찔려서…. 이제 괜찮아요.”

    득용이 영호의 물음에 대답하고 키득거렸다. 솔은 그제야 자신이 아직도 한쪽 눈을 감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눈을 깜빡였다. 커다란 눈이 끔뻑끔뻑했다, 다행히 큰 불편함은 없었다.

    “자, 오늘도 힘내서 연습! 내일 평가인데 힘내야지.”

    “네. 아자 아자.”

    “화이티잉.”

    예민하고 피곤해 보이는 가람과 태오 사이를 지호와 득용이 제각각의 구호를 외치며 가르고 지나쳤다. 솔도 태오와 가람을 한번 번갈아 보고는 두 사람을 따라 연습실 안으로 들어갔다. 가람과 태오가 바로 연습실에 들어오지 않자 솔은 가방을 내려놓으며 지호에게 물었다.

    “지호 형, 오늘 가람이 좀 이상하지 않아?”

    “왜? 일찍 일어나서?”

    솔의 물음에 지호가 대답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장난스러운 그의 반응과 달리 질문을 던지는 솔의 표정은 어두웠다. 무언가 걸리는 점이 있었다.

    “아니… 계속 핸드폰만 보고… 어딘가 좀 이상해서.”

    “가람 형, 원래 핸드폰 중독인데.”

    “그래?”

    “가람 형 원래 핸드폰이랑 컴퓨터 엄청나게 해요. 그래서 숙소에 컴퓨터 없앴는데.”

    “그런 거면 다행인데….”

    지호 대신 그 옆에서 이야기를 듣던 득용이 끼어들었다. 득용의 말에 솔은 고개를 끄덕였다. 가람에 대해 안다고 말하기엔 함께 지낸 시간이 지나치게 짧았다. 오래 지낸 사람들이 그렇다니 그런 거겠지. 솔이 고개를 젓고 의문을 떨쳐 버리려던 찰나, 지호가 패딩을 벗으며 빼꼼, 고개를 빼 솔을 쳐다보았다.

    “뭐가 이상한데?”

    “아침에, 방에 들어갔더니… 아니다, 그냥 내가 예민하게 생각한 거 같아. 별거 아니야.”

    그의 물음에 답을 하려던 솔은 잠시 망설이다 고개를 가로저었다. 득용의 말대로 본래 컴퓨터나 핸드폰을 자주 했다니 그런 거겠지. 솔이 이곳에 온 뒤로 딱히 가람이 컴퓨터나 핸드폰에 몰두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지만, 오래 지낸 멤버들이 중독이라고 표할 정도면 꽤 몰두하는 편인 듯하니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듯했다. 솔이 웃옷을 벗으며 손을 내저으니 지호도 어깨를 들썩이고 몸을 풀었다.

    “근데 얘넨 왜 안 들어와?”

    지호가 몸을 늘이며 말을 내뱉기 무섭게, 가람과 태오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연습실에 들어오자마자 태오는 피곤한 눈으로 점검하듯 주변을 둘러보았다.

    “온도 조금 올릴게요.”

    “응.”

    “나는 더운데.”

    “몸 풀고 나면 다시 낮출게.”

    가방을 내려놓기 무섭게 태오는 연습실 온도부터 조정했다. 득용은 그 불같은 기세 탓인지 조금만 더워도 땀을 뻘뻘 흘리고 살짝 찬 바람이 불어도 시원하다 말하는 녀석이었다. 그에 비해 솔은 추위에 약하기도 했고, 몸이 찬 상태에서 움직이는 것을 꺼렸다. 연습 전 몸을 풀다 지나가는 말로 몸을 풀 땐 따뜻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더니 그다음부턴 태오가 이런 식으로 신경을 써 주고 있었다. 덕분에 훨씬 수월했다. 피곤한 와중에도 그런 것을 챙기는 태오를 보며 솔은 슬쩍 쓴웃음을 지었다. 그의 그런 챙김과 배려에 고마워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따뜻한 바람이 연습실을 데우자 몸을 움직이기가 한결 수월해졌다. 능숙하게 다리를 늘이고 스트레칭을 한 솔은 거울 가까이 다가가 아주 간단한, 짧은 동작을 펼쳐 보였다. 대공연장에 선 적이 있던 현대 무용 동작이었다. 사소한 동작이었는데 그 움직임과 선이 무척이나 수려하고 우아해 득용이 아이처럼 ‘우와’ 하는 탄성을 내뱉었다. 일부러 뽐을 내려 하는 게 아니라 솔의 춤 선은 타고났다. 같은 동작을 같은 횟수, 같은 조건에서 연습하고 소화해도 손끝 하나까지 남달랐다.

    “솔이 형은 진짜 사기캐인데, 어디 있다가 이제 왔지?”

    “어디 있긴, 무용했다잖아.”

    “저런 형이 여태 안 유명했다는 게 이해가 안 되는데…….”

    득용의 아이 같은 말에 솔은 웃었다. 어디 세계적인 대회나 무용단에 들어가지 않는 이상, 아니 설령 그런다 해도 반짝 화제가 되고 사라질 뿐이었다. 그 바닥에 대한 관심도란 그 정도였다.

    “그렇게 비행기 태워 줘도 나한테 뭐 안 나와.”

    “동생의 순수한 칭찬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형.”

    “정말 순수한 의도였나요? 김득용 씨? 솔이에게 아이스크림을 딜하려 일부러 띄워 주신 것 아니신가요?”

    “아, 아이스크림 안 먹어! 안 먹는다고요!”

    내일 평가에 앞서 득용의 몸무게 체크가 진행될 터라 다이어트에 대한 압박감이 극에 달했다. 까칠해진 득용이 눈을 매섭게 뜨고 지호를 이글이글 노려보았다. 대치하고 선 두 사람의 모습에 솔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문득 오늘따라 말수가 태오만큼이나 없는 가람을 바라보았다. 연습을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지친 얼굴로 의자에 앉아 발목을 돌리고 있는 태오와 멍하니 넋이 나간 가람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둘 다 제 상태가 아니었다. 솔은 두 사람을 보며 머리를 질끈 묶었다. 내일이 주말 평가인데 이런 분위기에 휩쓸릴 수 없었다. 목숨이 걸려 있는 퀘스트 아니었던가. 솔은 다시 한번 흘러내리지 않도록 꽁지머리를 반으로 갈라 쭉 당겨 고정하며 해이해지려 하는 제 마음을 다잡고 처음으로 먼저 시작을 알려 보았다.

    “연습 시작해요.”

    “그 전에 이거부터.”

    늘 태오가 담당하던 연습 시작을 솔이 알렸다. 하지만 가람을 제외한 모두가 솔을 빤히 쳐다볼 뿐이었다. 앉아 있던 태오가 벌떡 일어나 무언가를 주워 들고 솔에게로 다가왔다. 그가 내민 손에는 줄넘기가 들려 있었다.

    아차, 가장 기본적인 줄넘기를 하며 노래 부르기를 깜빡했다. 솔은 민망함에 멋쩍게 웃으며 줄넘기를 건네받았다. 단순 무식하고 원시적이지만 힘든 안무를 하면서 라이브를 소화하기에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그만큼 무엇보다 숨차고 힘들었다.

    솔은 시작도 전부터 질린 얼굴로 혀를 내두르며 태오가 건넨 줄넘기를 건네받았다. 다섯 명이 늘어서서 각자 원하는 노래를 부르며 폴짝폴짝, 줄넘기를 하기 시작했다.

    줄넘기의 줄이 바닥을 일정한 리듬으로 때리는 소리가 딱딱 들어맞았지만, 노랫소리는 제각각이었다. 이내 점점 태오의 줄넘기 소리가 박차를 가했다. 남들 한 번 뛸 때 두 번 더 높이 뛰는 가혹한 리더였다.

    눈앞에 연습실에서의 하루가 시작됨을 알리는 피로도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현재 피로도 1/100]

    [피로도 관리에 유의하세요! 피로도가 70 이상일 경우 페널티가 발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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