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가람아?”
탁-!
어떤 의도가 있어서가 아니라, 예전의 일들이 떠올라 습관처럼 몸에 뱄던 움직이었다. 짧은 솔의 비명에 그제야 가람은 기억에서 벗어나 현실로 돌아올 수 있었다. 딱 솔처럼. 연습을 끝내고 회사 밖으로 나오거나, 편의점이나 카페를 갈 때도.
그 여자가 늘 이렇게 팔짱을 끼거나 팔을 만지며 옆에 나란히 섰다. 따라오지 말라 말해도 일행인 것처럼, 연인 사이인 것처럼 몸을 붙여 오며 어디든 따라붙었다.
처음엔 그런 관심이 고마웠던 때도 있었다. 가수가 되겠다는 생각 하나로 얼떨결에 공개 오디션에 참여했고 눈에 띌 수 있었다. 당시엔 회사에서 어떻게든 아이돌 그룹을 배출하고 싶어 해 상대적으로 기준치도 낮았다. 역대급 규모의 오디션이라며 홍보하고 오디션 참여자들의 모습을 인터넷 방송까지 했었다.
질보단 양이라고 괜찮다 싶으면 무조건 추려 뽑은 것이었다. 춤은 전혀 추지 못했지만 적당한 외모에 괜찮은 노래 솜씨. 나쁠 것이 없었다. 그 자리에 태오도 있었다. 어린 나이였지만 단연 눈에 띄었고 확신의 길을 걷는 것만 같아 보였다.
태오가 조용해서 그와 붙어 다녔다. 아무것도 안 물어보고 말수도 없었고. 제법 반반한 어린애들이 지속해서 노출되니 그것이 짧은 화제를 샀다.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니 어린 마음에 들떴었다. 회사에 들어가면 금방 인정받고 제 노래를 불러 녹음해 진짜 가수가 될 거로 생각해서 신이 났었다. 세상 물정 모르는 철부지 같은 생각이었다.
어른들의 사정은 가람이 생각한 것과 다르게 돌아갔고 그 와중에 가람도 알게 모르게 상처를 많이 받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뜻대로 되는 것이 없음에 지쳤고 따라 주지 않는 몸과 늘지 않는 실력에 꽤 좌절했었다.
공개 연습생이 된 뒤로 간혹 회사 선배 가수들의 뮤직비디오나 방송 무대에 댄서로 얼굴을 비추게 되자 그 소소한 인기가 제법 유지가 되었다. 콘서트장에 견학하거나, 곁다리로 외출할 때면 태오와 가람을 알아보고 사진을 찍거나 따라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데뷔한 선배들이 보면 가소로울 일이었지만 그때는 힘들고 지친 와중에 완전한 타인이 자신을 좋아해 준다는 것이 한 줄기 빛처럼 느껴졌다. 마주칠 때마다 고맙다는 말을 많이 했었다.
회사 연습실에 있는 수많은 연습생 중 하나. 매일같이 지하 연습실에서 자존감이 그 지하보다 더 깊이 하락하고 있을 때, 그런 자신을 알아봐 주고 이름을 기억해 준다는 것 자체가 고맙게 느껴졌었다. 그런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가능성과 희망을 엿보고 안도했다.
그래선 안 됐지만 그러다 보니 자연히 가까워지는 눈에 익는 사람이 생기기 마련이었다. 거창한 사이가 아니어도 회사 앞에서 마주치면 소소하게 ‘고마워요.’, ‘오늘도 왔어요?’같이 안부를 주고받을 정도의 사이. 그때부터였을까? 몇몇 사람이 언제 어디에서나 제 옆에 있게 시작했다. 상황을 인지하고 나서부턴 걷잡을 수가 없었다.
편한 옷을 입고 근처 슈퍼에 가거나 더운 여름에 창문을 열어 둔 채 낮잠을 잔다거나. 이런 소소한 생활까지 침해받기 시작했다. 잠시 휴가를 받아 가족과 시간을 보낼 때도, 사진을 찍고 어떻게 알아냈는지 핸드폰으로 연락이 오곤 했다. ‘이 사진 올려도 돼?’ 그 말이 협박으로 들렸다.
선을 넘는 행동에 거부 의사를 표하고 연락받아 주지 않으면 더 못되게 굴었다. 가족과 가람의 전화번호를 인터넷에서 판매한다거나, 부모님의 직장에 찾아간다거나. 핸드폰을 켤 수 없을 정도로 수많은 전화를 건다거나. 함께 다니던 태오마저 피해를 받았다. 특히나 태오의 가족이 불행한 사고를 당하고 나서부터 가람은 더욱더 큰 압박감을 받았다.
자신 때문에 태오의 그런 사정이 인터넷에서 함부로 화제가 되는 것을 바라지 않았다. 한두 번 답장해 주고 나면 그날은 SNS에 자신만 아는 암호문처럼, 가람과 무슨 연인 사이라도 되는 것마냥 글을 쏟아 냈다.
처음엔 분명 무시할 수 있었는데, 정신을 차려 보니 밤새 핸드폰을 붙잡고 그 사람들이 써 내려간 글들을 찾아보고 있었다. 나에 대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지. 분명 자신의 이야기인데 제대로 알아볼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 같은 한국어를 쓰고 있는 사람이 맞긴 한 건지 별세계에서 자신을 괴롭히러 날아온 외계인들처럼 느껴졌다.
그런 시간이 반복되다 보니 자연히 예민해졌다. 누가 근처에만 조그만 다가와도 날카롭게 반응했다. 예민함이 극에 달아 거리를 걸을 수도 없게 되었다. 누군가 옆으로 다가오기만 해도 밀쳐 버리고 그 자리를 벗어나기 바빴다. 좁은 숙소에 장정 스무여 명이 한데 부대껴 생활하던 시절이었다.
가람은 정말 돌아 버릴 것만 같았었다. 당연히 연습생으로서 성적도 좋을 수가 없었다. 한때는 그래도 나름의 유망주였는데 순식간에 바닥으로 추락해 버렸다. 태오도 마찬가지였다. 병원에 드나들고 연습생 생활을 그만두느니 마느니, 말이 많았다. 공개 연습생으로서의 활동도 사라졌다. 인사하는 사람들에게 혼자 예민하게 반응해 기겁하고 소리를 지르거나 밀치기도 했다. 당연히 사고로 이어지고 인성 문제 같은 것들이 거론되고 욕설이 따라붙었다.
서로 거의 포개어지다시피 누워서 자야 하는 숙소에서 극도로 예민해진 그때 당시의 가람은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숙소도 숙소였지만, 밤이 새도록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를 들여다보았다. 연습생에 관한 이야기나 자신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 곳이면 밤을 꼴딱 새워 파헤쳤다.
그 무렵, 데이블락이 데뷔했다.
은겸이 폭발적인 반응을 받고 떠오르며 회사 앞에는 수많은 팬이 진을 치기 시작했다. 인파를 피해 뒷문이나 지하로 빠져나오면 기다렸다는 듯이, 두세 명이 따라붙었다. 그러고는 옆에서 쉼 없이.
‘데이블락처럼 인기 있는 그룹을 두고 연습생인 너를 좋아해 주는 우리에게 고마워해야해.’
‘우리가 바로 네 팬이야.’
‘너를 좋아해.’
라고 쉼 없이 속삭였다.
팬과 사귀는 연습생, 같은 화제로 가람이 여성과 팔짱을 낀 채 걸어가는 뒷모습 사진이 여러 차례 커뮤니티에 올라왔다. 가람은 그제서야 이런 행위를 하는 사람들을 커뮤니티에서 ‘붙수니’라 부르며 조롱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데이블락의 유례없는 성공에 정신이 없었던 회사도 그제야 가람을 발견했다. 아프다는 핑계로 연습을 쉬고 숙소에 누워 있던 날. [언제 나와?] 라는 문자가 정말 수백 통이 쏟아졌다.
숨고 싶은 기분이었다.
가람은 핸드폰을 끄고 옷장 속으로 기어서 들어갔다. 제대로 빨지 않고 마구잡이로 뒤섞여 쿰쿰한 냄새가 나는 형들의 옷을 모조리 끄집어 바닥에 내팽개치고 옷장 안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잠깐이었지만, 죽고 싶다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다행이라 해야 할지, 무어라 말해야 할지. 그 생각은 길게 이어질 수가 없었다. 누구도 찾아올 일이 없는 시간대에, 숙소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처음에 가람은 매니저 형일 거라 생각했다. 자신이 아프다니까 보러 왔구나.
하지만 아니었다.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긴 코트를 입은 여성 두 명이었다. 아주 익숙한 실루엣이 옷장 문틈 사이로 왔다 갔다 하는 게 보였다. 가람은 경기를 일으키듯 비명을 지르며 옷장 밖으로 뛰쳐나갔다. 자신을 붙잡는 두 여성을 뿌리치고 맨발로 연습실까지 달려갔다.
시체처럼 창백하게 질려 머리를 산발하고, 맨발에 골목을 내달린 가람의 모습에 그제야 회사는 심각성을 인지했다. 경찰을 대동하고 회사 사람들과 숙소로 돌아갔지만 아무런 흔적도 남아 있지 않았다. 가람은 그날 제 짐을 모조리 쓰레기봉투에 처박았다.
회사에선 당분간 치료와 집에서 휴식을 취하라 했지만 가람은 집에 갈 수가 없었다. 그 사람들이 집까지 쫓아올 것만 같아 더 불안할 뿐이었다. 조사가 계속되었지만 뾰족하게 처벌하지는 못했다.
어쨌거나 표면상 팬이었고 가람은 훗날 팬의 관심에 기대야 하는 연습생이었다. 가장 악질범이 벌금 몇 푼 낸 게 고작이었다. 경찰이 매일같이 순찰하고, 출퇴근길을 무리 지어야 하거나 매니저가 번갈아 가며 따라다녔다.
심리 치료를 받고 공개적인 활동이 모조리 중단되었다. 노출이 되지 않으니 연습생에 불과한 태오와 가람에 대한 관심도도 빠르게 사그라들었다. 그사이 가족들은 이사했고, 모두 핸드폰 번호까지 바꿨다. 그렇게 해결되었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제법 흘렀다. 아직도 다들 그 비슷한 기색만 느껴져도 민감하게 반응했지만, 이제는 완전하게 벗어났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조금 안일해졌을지도 몰랐다.
그래서, 그 빈자리를 이 끔찍한 것이 다시 파고들고 있는 것인지도.
“강가람.”
아침에 솔과 가람 사이에서 벌어졌던 일이 또다시 한차례 벌어졌다. 다행히 이번에는 상대가 태오였다. 가람이 반사적으로 휘두른 팔을 그는 가뿐하게 피했다. 충돌이 일어날 뻔한 건 태오였는데 그 옆에서 지켜보던 솔이 더 놀라며 움찔거렸다. 팔꿈치를 어깨선까지 치켜들었다.
“정신을 놓고 서 있어, 왜? 뭐 해. 빨리 안 오고.”
구태여 말을 하진 않았지만 태오는 가람의 행동에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손을 펼쳐 사과의 의미를 전했다. 가람이 옆구리 쪽에서 접근하는 것에 예민하다는 걸 알고 있어 자연스레 나온 반응이었다. 가람은 골목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당장 어딘가에서 그 여자가 튀어나와 와락 자신에게 매달릴 것 같아 소름이 끼쳤다.
“오늘 다들 상태 안 좋네. 솔이는 계속 윙크하고, 태오는 지금 뭐 거의 관에서 일어난 뱀파이어 꼴이야. 가람이는 일찍 일어나더니 아직 뇌는 자는 중인가 봐.”
지호의 말에 득용이 어깨를 으쓱이며 태오와 가람을 번갈아 가며 쳐다보았다. 멈춰 서 있던 가람이 걸음을 옮기자 그제야 일행 모두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가람의 그런 반응을 평소의 태오라면 놓치지 않았겠지만, 오늘의 태오는 타인에게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그도 만신창이였다.
하지만 솔만이 불안한 눈으로 가람을 바라보았다. 익숙한 모습, 자신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 자꾸만 들었다. 어딘지 알 수 없는 동질감에 솔은 계속해서 가람에게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마음 한쪽이 어딘지 불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