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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를 뽑고 싶어-43화 (43/192)

#43

비주얼 멤버, 엔딩 요정. 낯설기 짝이 없는 지호의 말에 솔은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솔의 시선에 지호가 눈썹을 찡긋 올렸다가 내리며 눈매를 샐쭉하게 만들었다. 꼭 여우 같은 얼굴이었다.

“아이돌이잖아. 화면에 네 얼굴이 클로즈업되어서 잡힐 텐데!”

지호가 검지와 엄지를 세워 네모 칸을 만들어 솔을 얼굴에 대보며 본인의 다채로운 표정을 보여 주었다. 한쪽 눈을 찡긋하기도 하고 환히 웃기도, 볼을 부풀리기도 했다. 맏형의 재롱에 득용이 배를 잡고 웃어 댔다. 솔은 그런 지호의 모습에 대답 대신 태오와 가람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걔네들 보지 마. 가람이도 태오도 할 때는 그래도 잘해.”

“태오도?”

솔은 웃는 것도 찡그린 것도 아닌 얼굴로 태오를 올려다보았다. 솔과 눈이 마주친 태오는 민망했는지 휙 몸을 돌려 거울 쪽으로 멀어졌다.

“우리 리더는 확실히 진지, 열정 그쪽 과이기는 하지.”

“며칠 사이에 시선 처리도 좋아지고 촬영하는 것도 이젠 안 어색해하잖아. 점점 더 잘할 거야.”

“맞아. 지호 형 왜 솔이 형 기죽여요.”

“야, 김득용. 네가 먼저 솔이 웃는 거 놀렸잖아.”

“아, 맞네. 내가 먼저 했지. 참.”

지호와 득용이 늘 그렇듯 투덕거리기 시작했다. 솔은 첫날 이후로는 자신에게 느긋한 목소리로 좋은 말만 해 주는 가람을 쳐다보며 웃었다.

***

지난번 태오와 대화 이후로 알게 된 점이라면 자세한 내막과 증상까지는 알지 못하지만 솔에게 무대 공포증과 비슷한 문제가 있다는 것을 모두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런 문제를 안고 있으면서도 어쨌든 밤낮으로 연습하고 성과를 보여 주고 있는 솔을 다들 인정하고 대견해한다는 것도.

지호는 그날 이후로 아무렇지 않은 모습으로 돌아왔다. 미심쩍은 얼굴로 솔을 보지도, 자신의 재능을 비하하지도 않았다. 지극히 평범한 모습으로 열심히, 때로는 솔의 노래까지 함께 봐주고 있었다. 멤버들과 사이가 좋아지며 연습할 때 전처럼 트라우마가 발동해 버거워지는 일은 줄었지만, 완벽히 해결된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평가 때 다른 사람들 앞에서 실력을 보여 줘야 한다는 부담감이 남아 있었지만 솔에게는 이제 ‘안정의 포션’이 있었다. 돌파구가 생기니 마음도 조금 가벼워지고 든든했다.

“왜 우리 형 기를 죽이고 그래요!”

“우리 형? 나는 너네 형 아니냐?”

“아…. 형도 우리 형이긴 하죠.”

지호가 눈을 흘기며 타박하자 득용이 제 덩치에 걸맞지 않게 어깨를 털며 지호를 달랬다. 너른 어깨를 한껏 구기고 조금 사나운 얼굴을 죄지은 강아지처럼 만들고는 아양을 떨었다. 득용의 그런 모습에 솔은 어깨에 힘을 쭉 빼고 피식, 바람 빠진 풍선처럼 웃었다. 적어도 본인이 생각하기엔 그렇게 웃었다. 솔은 지금의 이 분위기가 제법 편안했다.

“와….”

누구였을까, 태오가 건네주었던 물병을 내려놓느라 솔은 누가 먼저 탄성을 내뱉었는지 보지 못했다. 고개를 획 들어 올리니 어느새 네 사람 모두 자신을 빤히 바라보고 있었다.

“왜…? 뭐?”

갑자기 자신에게로 집중된 시선에 솔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모두를 둘러보았다. 자신이 무슨 실수를 했나 싶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불안감이 가득한 눈으로 고개를 마구 내저으니 단단히 묶어 두었던 꽁지머리가 설설 풀렸다.

“…아니. 방금.”

“뭐예요!! 그렇게 웃을 수 있잖아요!!! 왜 그렇게 웃은 거예요!”

가람이 솔을 향해 손가락을 내밀며 입을 여는데, 앞차를 추월하는 난폭 운전자처럼 득용이 끼어들었다. 성난 사람처럼 버럭 소리를 지르자 솔은 자신도 모르게 움찔했다. 득용은 지나치게 흥분하면 목소리가 커지고 말이 빨라지는 경향이 있었다. 다소 사나운 인상과 큰 목소리가 겹치며 오해를 사곤 했는데, 정말 오해였다.

하지만 오해인 걸 아는 것과 몸이 반응하는 것은 별개였다. 지난 시간 매사 조심하며 사람들의 수군거림을 피해 도망치기만 했던 솔에게 갑자기 큰소리를 내며 끼어드는 득용은 그 의도가 어찌 되었든 반사적으로 위축되게 했다. 득용에게 밀쳐진 가람을 보며 솔은 눈치를 보며 더듬더듬 말했다.

“방금? 그냥…. 네가 귀여워서 웃은 건데….”

“이 형은 진짜 얼굴이 끝이라니까! 사기야, 사기.”

“그건 그래. 나는 솔직히 처음에 태오랑 가람이 보고 인류에 얘네보다 잘난 얼굴은 없을 거로 생각했거든?”

“인류까지 언급되는 거야?”

득용의 손에 밀쳐졌던 가람이 다시금 얼굴을 들이밀며 지호를 바라보았다. 솔도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첫 만남이 썩 좋은 이미지였던 것은 아니었지만 솔도 태오의 얼굴을 보며 감탄했었다.

정말 조각상 같은 외모였다. 물론 가람도 마찬가지였다. 지호나 득용이 못났다는 것이 아니다. 두 사람도 어디에서 쉽게 볼 외모는 아니었지만, 나머지 두 사람이 지나치게 뛰어난 나머지 상대적으로 묻힐 수밖에 없었다.

“나도, 나도. 내가 좀 덜 생겨서 형들보고 안심했잖아요.”

“아니, 덜 생겼으면 절망해야 하는 거 아니야?”

“형은 내가 절망했으면 좋겠어요!?”

“그렇잖아! 나는 옆에 서 있으면 오징어 되는 거 아닌가 걱정했어.”

득용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이내 본래 타고난 성량이 크고 목소리가 카랑카랑한 지호까지 얹어지자 시끌시끌했다. 이전에는 묵묵히 연습만 했던 거에 비해 지금은 제법 이렇게 장난도 치고 나이대다운 모습이었다. 솔은 무릎을 세워 몸을 웅크리고 턱을 괸 채 본격적으로 두 사람의 투덕거림을 지켜보았다. 오늘따라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자니 비실비실 웃음이 나왔다.

“지호 형이 오징어 될 얼굴은 아니지.”

“얼굴 이야기 그만하고 이제 연습하게 일어나요.”

이내 복도까지 새어 나갈 정도로 목소리가 커지자 가람과 태오도 끼어들었다. 모처럼 즐거웠다. 이런 상황과 기분이 얼마 만인지. 무용을 그만두고 학원에 나가지 않으면서 이런 것들과 멀어졌다. 솔은 턱을 괸 채 열을 내는 득용과 지호, 그 사이에 낀 가람을 보며 슬쩍 미소 지었다.

순간 세 사람을 말리려 다가온 태오와 솔의 눈이 마주쳤다. 슬쩍 눈치를 살피며 미소를 걸었던 입가가 어느새 솔 자신도 모르는 사이 활짝 피어 있었다. 세 사람을 말리려 다가왔던 태오는 잠시 멈춰서 솔을 빤히 바라보았다.

득용의 목에 핏대가 섰다. 드잡이질을 할 것처럼 목소리를 키우지만 저보다 작은 지호가 머리를 쥐어박으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정수리를 부여잡고 ‘힝’ 하는 소리를 낼 것이다. 솔은 눈가를 곱게 접고 하얀 이를 가지런히 드러낸 채 웃음 지었다. 상황이 어찌 되었건, 게임 속에 들어왔건 어쨌든 지금 당장은 즐거웠다.

“지호 형은 오징어 될 얼굴은 아닌데 나는? 나는? 가람 형 너무하네. 정말. 나는 오징어 될 그런 거다 이거야?”

갑자기 득용의 화살이 가람에게로 돌아가자 가람은 고양이처럼 몸을 쭉 늘리며 흘깃, 솔을 바라보았다. 옆에서 득용이 계속해 추궁하는데 한번 솔에게 시선을 돌린 가람은 그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가람 형, 지금 나 무시하는 거야? 이제 오징어인 나는 쳐다도 안 보겠다 이거지?”

“야! 강가람, 너 나도 안 보냐?”

“…그게 아니라. 솔이 웃으니까 진짜 이쁘다.”

네 사람의 시선 모두 일제히 솔에게로 모여들었다가 이내 득용의 큰소리에 시선이 돌아갔다. 마치 꼭 해변에 기어 나왔다가 밀려드는 파도에 금세 숨어 버리는 게처럼 솔은 눈치채지 못한 빠른 변화였다.

“가람 형 지금 말 돌리는 거 봐. 와…. 진짜.”

“앞으로 솔이를 웃기려면 김득용의 끔찍한 애교를 봐야 하는 거야?

“끔찍? 지호 형…. 나 그래도 풋풋하고 귀여운 막내야!!”

“거울 봐! 네가 맏형이라고 해도 다들 믿어!”

“득용이 귀여운데 왜 그래. 그 정도는 아니야.”

결국 지호의 말에 득용 대신 변명해 주던 솔은 그만 웃음을 참지 못해 터져 버렸다. 처음 득용을 봤을 때, 솔도 느꼈던 그 지점을 정확하게 지적한 탓이었다. 입술을 비집고 튀어나온 웃음에 솔은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한번 터져 나온 웃음은 하품처럼 퍼져 나가 막을 수가 없었다. 얼마 만에 소리 내 진심으로 웃어 보는 걸까? 그간 이렇게 크게 웃으면 안 되는 사람처럼 살아왔다.

“어. 완전히 웃었다.”

“바보야. 그걸 말하면 어떡해. 일부러 말 안 하고 있었는데! 강가람! 이 눈치 없는 놈아!”

“아? 그런 거였어…?

솔이 본격적으로 웃기 시작하자 가람이 손끝으로 그를 가리키며 말했다. 평소보다 투덕거림이 길어진다 했더니, 어쩐지 솔을 웃기려 득용과 지호가 일부러 과하게 반응한 것이었다. 한 박자 느릿하게 말하는 가람의 머리를 지호가 쥐어박았다. 그제야 알았다는 듯, 탄식마저 느릿하게 하는 가람을 보며 솔은 다시 한차례 웃음을 터뜨렸다.

“이제 그만하고 일어나요.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맞춰 보게.”

“그래서 태오는 병원 가?”

“가 봐야죠.”

솔이 간신히 웃음을 멈추자 태오가 손뼉을 두어 번 짝짝 맞췄다. 그 신호에 벌떡 일어나 가람과 솔을 일으켜 세우는 득용과 다르게 지호는 어르신처럼 ‘아이고, 아이고.’ 곡소리를 내며 일어났다. 그런 그의 모습에 별것 아닌데도 솔은 간신히 삼킨 웃음이 다시 튀어나올 거 같았다. 웃음을 참느라 솔은 슬쩍 입가를 가리고 피로도를 확인하기 위해 시스템 창을 확인했다.

[현재 피로도 32/100]

[현재 ‘아주 작은 행복’ 상태입니다. 피로도가 빠르게 감소합니다.]

*스타라잇 - 드리머 안무 숙련도 85%

보컬 숙련도 53%

눈앞에 떠오른 시스템 창을 보고 솔은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우두커니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평소보다 곱절은 빠르게 줄어든 피로도와 처음 보는 문장 한 줄 때문이었다. 그 문장에서도 강조되어 있는 한 단어가 솔에게 놀람을 안겨다 주었다.

‘아주 작은 행복.’

앞에 수식어가 붙긴 했지만, 무려 ‘행복’이었다. 어쩐지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다들 대열을 갖춰 서는 와중에 솔은 혼잣말을 웅얼거렸다.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나 지금 행복한 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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