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애를 뽑고 싶어-42화 (42/192)

#42

활짝 웃는 솔을 보며, 태오는 티슈를 뽑아 그에게 건네고는 덤덤하게 말했다. 솔은 얼굴에 남은 물기를 대충 닦아 내고는 입꼬리를 가지런히 했다. 복도에서 작은 음악 소리와 부지런히 움직이는 발걸음 소리가 났다. 오늘의 대화는 아무래도 여기까지인 듯했다.

태오가 고갯짓을 하자 솔은 긍정의 의미로 눈썹을 살짝 올렸다 내리곤 화장실을 빠져나왔다. 물기가 남은 머리카락을 대충 손으로 툭툭 털며 코너를 돌자마자 득용과 마주쳤다. 부지런한 발걸음 소리가 아마도 그인 듯했다.

득용은 솔을 발견하자마자 그의 팔을 덥석 붙잡았다. 순간 익숙하지 않은 접촉에 솔이 움찔거렸다. 놀라기는 했지만, 전처럼 꺼림직하고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그래도 땀 흘리며 부대낀 보람이 있었다.

“뭐지? 형, 표정 이상해요.”

“표정?”

“왜 그렇게 웃는 거예요? 수상해….”

“어?”

다른 말을 하려던 득용이 솔과 얼굴을 마주하자 대뜸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솔의 표정이 이상하다고 말하는 득용의 얼굴이 더 이상했다. 득용의 말에 솔은 제 얼굴을 손바닥으로 꾹꾹 눌러 보았다. 태오와의 대화 후에 자신도 모르게 웃고 있었던 모양이다.

“이게 아니지, 형! 태오 형 못 봤어요?”

“태오는 왜?”

“아니 이번 평가 곡 안무 따려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안 와서요.”

“아, 화장실에 있던데….”

“됐어요. 형이랑 먼저 하고 있으면 되죠.”

“나랑?”

“네. 형이랑요.”

솔은 자신이 걸어온 뒤편을 손으로 가리키다 이어지는 득용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본래도 큰 눈이 더 커질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솔은 얼이 빠진 표정으로 걸어온 길을 가리키던 손가락을 제 얼굴 앞으로 옮겼다.

득용의 확답에도 솔은 계속해서 자신을 가리키며 ‘나?’ 하고 되묻기를 반복했다. 득용은 솔이 그럴 때마다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걸 왜 계속 묻느냐는 듯한 득용에 표정에 솔은 주변을 휘휘 둘러보았다.

“태오 금방 올 텐데, 태오랑 다 같이 시작하는 게 낫지 않을까?”

“태오 형 버려요. 형도 안무 금방 따잖아요. 형이 먼저 따고 알려 주면 되죠.”

제 앞가림도 못하는 팔푼이인 자신이 누굴 알려 준단 말인가. 득용의 확고한 말에도 솔은 연신 고개를 내저었다. 득용이 자신을 인정해 주고 완전히 팀으로 받아들여 준 것 같아 기뻤지만 기쁨보다도 걱정이 앞섰다.

“그건 그런데…. 그래도 나보다는 태오가 하는 게 더 정확하고….”

“형이랑 먼저 할래요. 빨리요. 빨리 들어가요. 가람 형이랑 아까부터 기다리고 있다고요.”

솔이 어물쩍거리며 계속해서 고개를 젓자 득용이 그의 말을 뚝 잘라먹었다. 그러고는 솔이 도망도 못 치게 그의 팔에 제 팔을 걸고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저보다 덩치도 좋고 커다란 득용의 팔에 꿰어 솔은 연습실 방향으로 질질 끌려가다시피 했다.

“나라도 괜찮다면 열심히 해 볼게….”

득용에게 끌려가며 솔은 작게, 득용에게 잘 들리지도 않을 정도로 작게 웅얼거렸다. 솔의 양 뺨이 조금 발그레해졌지만, 득용은 그 변화를 눈치채지 못했다. 득용에게 끌려 걸음을 옮기던 솔은 문득 우뚝 걸음을 멈추어 섰다.

“근데 우리 이번 평가 곡은 뭐지?”

평가 곡에 대해 들은 기억이 없었다. 솔이 대뜸 내뱉은 말에 득용이 마치 고장 난 로봇처럼 삐걱거리며 뒤를 돌아보았다.

“오전에 말해 줬잖아요.”

“정신이 없어서….”

비어 버린 기억의 공백과 가라앉는 머리 때문에 오전은 정말 날린 시간이었다. 아마도 필시 무거운 머리로 넋을 놓고 있다 한 귀로 흘려듣고 한 귀로 흘려보낸 것이 분명했다.

“스타라잇의 드리머요. 그래도 좀 잔잔한 거라 다행이죠. 핫 트릭 너무 빡셌어요.”

“…….”

“…….”

난생처음 듣는 생소한 가수였고 제목도 마찬가지였다. 득용은 정말 안도했다는 듯, 웃으며 말했지만, 솔이 아무런 반응이 없자 묘하게 싸한 기류에 아예 걸음을 멈춰 솔을 바라보았다. 솔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득용은 그의 반응에서 무언가 눈치를 챈 듯했다. 둔한 사람이 이럴 때만 눈치가 빨랐다.

“일단 들어 봐요. 들어 보면 알 거예요.”

그 순간 잠잠했던 시스템 창이 솔의 눈앞에 새롭게 떠올랐다. 제법 심각하게 웃음기가 사라진 득용의 얼굴 위로 민트색 글자들이 어른거렸다.

<데뷔를 향한 걸음, 제대로 평가받자!>

이번에는 진짜 제대로 된 주말 평가! 주말 평가에서 안무 A 등급, 보컬 B 등급 이상을 받으세요.

*스타라잇 - 드리머 안무 숙련도 0%

보컬 숙련도 0%

성공 시 안정의 포션 X2

실패 시 시스템 종료 (혹은 그에 상응하는 고통)

이제 안정의 포션이 열쇠라는 걸 알게 돼서일까, 눈에 실패 보상보다 성공 보상이 먼저 들어왔다. 지난번 첫 평가 때 받은 미션과 크게 달라진 내용은 없었다. 그저 전에는 없었던 안무와 보컬 등급 조건과 숙련도가 추가된 게 고작이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실패는 죽음이었다.

순간 그날의 고통이 떠올라 솔은 몸을 떨며 진저리를 쳤다. 갑자기 솔이 몸을 떨자 놀란 득용이 그의 팔을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퀘스트가 뜨지 않을 땐 그 고요가 초조함을 주더니 막상 퀘스트가 떠오르니 더 큰 초조함이 찾아왔다.

자리에 멈춰 선 득용을 두고 이젠 솔이 먼저 성큼성큼 연습실을 향해 걸었다. 이번에도 모르는 노래니 다른 멤버들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었다. 솔은 득용을 홀로 남겨 두고 연습실로 뛰어들었다가. 등 뒤로 ‘뭐야, 같이 가요. 형!’ 하고 외치는 득용의 목소리가 들렸지만, 솔은 뒤돌아보지 않았다. 한시가 바빴다.

***

솔은 서늘한 연습실 바닥에 벌러덩 대자로 누웠다. 차오르는 피로도를 낮추기 위해 휴식을 취할 때에는 늘 연습실 한구석에 쪼그려 앉아 있던 때에 비하면 훨씬 자연스럽고 편안해진 행동이었다. 안무 연습으로 열이 오른 몸에 닿는 바닥의 냉기가 적당히 서늘해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거친 숨을 몰아쉬는 솔의 옆으로 가람이 슬쩍 기어와 나란히 누웠다. 가람을 시작으로 지호와 득용이 은근슬쩍, 솔의 두 다리를 베고 누웠다.

[현재 피로도 69/100]

[피로도 관리에 유의하세요! 피로도가 70 이상일 경우 페널티가 발생합니다.]

피로도가 페널티 직전까지 아슬아슬하게 차올랐던 터라 솔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득용의 말대로 이번 평가 곡 ‘드리머’는 비교적 느린 템포의 청량감이 가득한 노래였다. 안무 또한 동작 자체의 난도는 높지 않았으나 발랄한 느낌 탓인지 점프 동작이 유난히 많았고 멤버 모두가 함께 해야 하는 협동 동작이 많았다.

솔이 페널티를 한 아름 안고 쓰러진 날을 기점으로 멤버들과 벽이 허물어진 데다 계속해서 손발을 맞추다 보니 최근 며칠간 다섯 남자는 사이가 부쩍 가까워졌다. 스킨십을 꺼리는 솔이 지금 같은 상황을 거리낌 없이 받아들일 정도로 말이었다.

열심히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 주어 멤버들도 오해를 풀고 솔에게 다가왔고, 함께 보낸 시간과 태오와의 이야기를 나눈 이후로 솔도 더는 멤버들을 밀어내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사이가 좋아질 수밖에 없었다. 같이 자고, 먹고, 온종일 부대끼며 같은 목표를 향해 발바닥에 불이 나도록 뛰고 있는데 사이가 가까워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앗. 차가!”

“악, 내 머리.”

열이 오른 눈을 감고 숨을 연신 고르는 솔의 뺨에 차가운 것이 확 닿았다. 깜짝 놀라 소리를 내지르며 몸을 일으키니 제 하반신을 머리로 짓누르던 지호와 득용이 앓는 소리를 냈다. 차가운 것의 정체는 태오가 건넨 물병이었다.

“물.”

“고마워.”

태오가 건넨 물병을 받아 들며 솔은 아주 작게 웃어 보였다. 아직은 어색한 미소였지만 태오는 솔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피곤해 보인다. 한 번만 더 맞춰 보고 들어가자.”

“조금만, 조금만 더 쉬었다가 하자.”

“그래, 방금 누웠다. 태오야.”

“숨 좀 고르고 해요. 형. 입에서 단내 나요.”

솔이 아직 눈앞에 깜빡거리는 피로도 창을 보며 대답하자 지호를 비롯한 득용이 한마디씩 거들었다. 두 다리로 서 있는 사람은 태오가 유일했다. 모두의 원성에 태오도 마지못했는지, 피식 웃으며 솔의 머리맡에 주저앉았다. 사실 힘들기는 피차 마찬가지였다. 태오가 앉자 솔의 옆에 나란히 누워 있던 가람이 몸을 뒤집어 그를 바라보았다.

“윤태오, 오늘 병원 가는 날 아니야?”

“어….”

가람이 뱉은 말에 순간 득용이 이상한 소리를 내었다. 유리창에 미끄러지는 소리처럼 힘이 빠지는 음 이탈이었다. 순간 솔을 제외한 모두의 시선이 태오에게로 꽂혔다. 멤버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은 태오는 어깨를 한번 으쓱해 보였다.

“솔이도 알아.”

“어? 네가 말했어?”

덤덤한 태오의 목소리에 여전히 바닥에 누워 있던 지호가 몸을 벌떡 일으키며 말했다. 무척 의외라는 투의 물음이었다. 지호의 물음에 대한 답은 태오 대신 솔이 주었다.

“우연히 알게 됐어.”

“하기야, 회사에 비밀이 어디 있냐.”

“일부러 말 안 한 건 아니야. 솔아. 아무래도….”

“알아.”

지호와 가람이 멋쩍어하며 변명하자 이번에는 솔이 어깨를 들썩였다. 조금 전 태오가 한 행동과 똑 닮아 있었다. 지호나 가람, 득용이 태오의 일을 솔에게 말하지 않아 오히려 좋았다. 타인의 아픔을 함부로 떠벌리고 화제로 삼지 않아서. 물론 허물이 무너지며 지금 같은 실수가 나오기는 했지만.

이번에는 모두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쏠리자 솔은 정말 괜찮다는 의미로 웃어 보였다.

“솔이 형, 웃는 거 진짜 안 고쳐지나? 얼굴이 너무 아까운데….”

“나중에 제대로 연습 좀 해야겠어.”

“아직도 이상해?”

“음…. 전보다는 나은 거 같기도 하고…. 뭔가 좀 뚝딱거리지?”

“솔이가 우리 비주얼 멤버인데. 엔딩 요정 하려면 표정 연습 좀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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