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애를 뽑고 싶어-37화 (37/192)

#37

조금은 소심하게 독백을 내뱉듯 고요하게 시작된 노랫소리는 아침과는 달리 힘이 있었다.

지호처럼 성량이 좋고 커다란 목소리라는 의미가 아니라 미성이었지만 불안정한 떨림이 사라지고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올곧게 나아가는 목소리였다. 솔의 미성과 곧은 발성이 한데 어우러져 작은 소리임에도 방 안에 울려 퍼지는 그런 힘이 있었다. 정말로 딱 홀로 내뱉는 독백처럼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능력치의 등급이 상승된다 하여도 경험이나 배우지 않은 테크닉적인 부분까지 능숙해지는 것은 아닌지 내뱉은 솔의 노래는 순수했다. 그 변화가 솔의 귀에도 와닿았다. 전문가도 아니고 노래를 배우기 시작한 지 이제 고작 일주일이었지만 전보다 훨씬 소리를 내기 수월하고 제 귀에도 매끄럽게 들렸다.

무엇보다 평소 말할 때처럼 어물쩍 끝 음을 흐리거나 음을 뚝 떨어뜨리는 일이 사라졌다. 물론 사람들 앞에서도 이리 능숙할 수 있을지는 의문스러웠지만 적어도 방 한 칸에서 듣기엔 그래도 가수란 걸 해 보려는 사람다운 노랫소리였다.

빠른 템포의 댄스곡임에도 차분한 미성으로 간주 없이 조곤조곤 부르니 그 분위기가 무척 묘했다. 솔은 침대에서 일어나 방 안을 서성이며 노래를 다시 이어 나갔다. 조금 전보다는 살짝 커진 목소리였다. 본인이 듣기에도 확연히 나아진 노래에 자신감이 조금 붙은 탓이었다.

“뭐야?”

방 안을 서성이며 노래를 부르던 솔은 갑자기 벌컥 열린 문에 놀라 화들짝, 뒤를 돌아보았다. 노크도 없이 열린 문 앞에는 눈을 동그랗게 뜬 지호가 서 있었다.

“뭐…가?”

“방금 노래. 솔이 네가 부른 거야?”

“어어…. 지호 형. 들렸어?”

“응. 거실 정리하다가.”

“미안. 시간 늦었는데.”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라.”

“무슨 일이에요. 지호 형?”

“태오야.”

지호가 조금 복잡한 표정으로 솔의 말을 자른 찰나, 전화 통화를 끝낸 태오가 방으로 돌아왔다. 방문턱 앞에서 대치 중인 두 사람을 본 태오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일 있어요?”

“아니. 일이 있는 건 아니고…. 방금 솔이가 노래를 불렀는데.”

“그래요? 병원에서 며칠은 컨디션 살피면서 쉬엄쉬엄하라고 했잖아요. 오늘은 이쯤 하고 쉬어요.”

“연습한 거 아니에요. 그냥 입에 붙어서 흥얼거린 거였어요.”

“…그래. 일단 쉬고 내일 이야기하자.”

지호는 묻고 싶은 말이 더 있는 듯했지만 덩달아 지쳐 보이는 태오의 표정에 말을 아꼈다. 솔은 내심 속으로 뜨끔했다. 자기 귀에도 제 노랫소리가 퍽 달리 들리는데 솔의 실력을 익히 알고 있던 지호가 듣기엔 꽤 이질적인 변화였는 듯싶었다.

갑작스레 대가 없이 발전한 실력에 대해 내일 지호가 물으면 솔은 뭐라 답을 해야 할지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시스템이나 아이템 같은 걸 줄 거였으면 이런 부분까지 처리해 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었다. 지호가 득용과 가람이 있는 방으로 돌아가자 태오가 방문을 닫고 침대로 기어들어 갔다. 통화를 하러 나가기 전보다 더 지쳐 보이는 얼굴이었다.

태오에게 감사 인사도 하고 싶었고 여러모로 하고 싶었던 말이 있었던 솔이었지만 온갖 감정에 잔뜩 시달린 듯한 태오의 얼굴에 솔은 차마 말을 붙이지 못했다. 늘 무표정하고 무뚝뚝했던 그가 이렇게 대놓고 피곤한 기색을 내비치니 더욱이 어려웠다.

“불 좀 꺼 줄래요?”

“네…, 네!”

군기가 바짝 든 군인처럼 태오의 눈치를 살피던 솔은 그의 부탁에 재깍 반응했다. 포션의 영향으로 몸이 가벼워진 탓도 컸다. 방을 환히 밝히던 등이 꺼지자 솔은 침대로 다시금 들어갔다.

조금 전에는 온몸이 무거워 씻기는커녕 손가락 하나 까닥하기 싫었는데, 숨통이 트이자 샤워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괜스레 찜찜함을 느끼며 솔은 편히 자리 잡지 못하고 침대 위에서 연신 뒤척거렸다. 바스락거리는 소리 사이사이로 태오의 한숨 소리가 끼어들었다. 지난 며칠간 들은 한숨 소리보다 침대에 누워 10분간 들은 태오의 한숨이 더 많았다.

“혹시…. 무슨 일 있어요?”

“…….”

영 불편하게 들리는 태오의 숨소리에 솔이 어둠을 틈타 슬쩍 물었다. 나름 큰 용기를 낸 것이었는데 태오는 대답이 없었다.

“자요?”

“아무 일도 없어요. 몸도 안 좋을 텐데 어서 자요.”

결국 솔이 다시 한번 되묻자 태오는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마지못해 대답했다. 은연중에 그가 지금 누구에게도 그 무슨 말도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 느껴졌다. 솔도 익히 잘 알고 있는 감정이기에 특히나 예민하게 느낄 수 있었다. 결국 대화가 단절되자 솔 또한 입을 굳게 다물었다.

포션의 효과로 상태가 안정되었으니 푹 잘 수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오히려 커피를 들이부어 각성 상태가 된 것처럼 좀이 쑤시고 잠이 오지 않았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어느새 태오의 한숨도 사라지고 방 안에 고요함이 내려앉았지만, 솔의 두 눈에는 말똥말똥 빛이 났다.

잠이 오지 않고 몸이 편하니 자연스레 생각이 많아졌다. 문득 잠시 잊고 있었던 백의찬 대표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묘한 괴리감이 느껴지는 얼굴이 머릿속에 어른거리니 갑자기 가슴이 울렁거리며 기분이 가라앉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상태 창을 열어 보니 아니나 다를까, 1시간이 지나 안정의 포션 효과가 사라진 지 오래였다. 더 생각해 보았자 좋을 것이 없어 애써 잊고 잠을 청해 보았지만 한번 떠오른 생각들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았다.

하루 일과 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백의찬 대표의 얼굴이 떠오르자 그때 느꼈던 두근거림과 기묘했던 감각들, 그리고 자신에게 쏟아진 시선들이 솔의 머릿속에서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한번 떠오른 기억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솔의 뇌를 잠식시켰다. 비어 있던 기억이 지호가 전해 준 이야기로 채워지며 빈자리까지 상상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솔은 눈을 질끈 감고 숫자를 세었다. 어떻게 해서든 생각을 떨쳐 버리려 불면증 환자가 양을 세듯 숫자에 집중했다. 10까지 세었을까 흩어진 집중력에 숫자 대신 늘 기억 속에 존재하는 스포트라이트가 비친 무대가 떠올랐다. 솔은 눈을 꼭 감고 주먹을 움켜쥐었다.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은 솔뿐만이 아니었다. 방으로 일찌감치 들어간 가람도 쉬이 잠들지 못하고 핸드폰을 움켜쥔 채였다. 자신의 변화를 눈치챈 득용이 득달같이 뒤따라 붙어 장난을 걸었지만, 가람은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막내인 동생이 애써 주는 마음은 익히 알지만 아무 말도 하기 싫었다. 솔과 한참을 이야기하던 지호 또한 가람의 그런 마음을 진작 알아챘는지 평소라면 엄마처럼 늘어놓았을 잔소리도 하지 않았다.

모두가 잠든 어두운 방 안에서 가람은 모처럼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오늘 있었던 일들이 안 좋은 기억을 건드려 확인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가람은 익숙하게 핸드폰 화면을 빠르게 넘겼다.

***

오늘 YC 쓰러진애 누구임?

ㅇㅇ(123.123) | 17:24:08

궁금하네

└ 누가 쓰러짐?

└ ㅌㅇ 걔랑 다른 연생이 들고 병원 감

└ 애들 케어 진짜 구린가보다ㅋㅋㅋ 그걸 또 다른 연생이 들고 병원에 갔다니ㅋㅋ

YC 오늘 뜬 애들 차기야? 언제 나올 거 같음?

ㅇㅇ(123.123) | 17:24:57

현역만 ㅈㄴ 밀어주고 남차기 없는 줄 알았는데

연생 몇 년 함? 올해 안에 나오겠지...?

└ 오늘 뜬 애들 두 명은 공개 연생이었던 애들임... 소식 한동안 나간줄;;

└ 올해? yc ㅇㄱ만 존나 밀어주고 차기 데뷔시킬 생각도 안보이던데 ㅋㅋㅋㅋ yc에 데뷔할만한 연생이 있어?

└ 연생플 좋은 편은 아닌 거 같음

└ 현역 반응 있는 거라곤 ㄷㅇㅂㄹ뿐이잖아

yc 로비 오늘 남연생 ㅌㅇ, ㄱㄹ

ㅇㅇ(58.103) | 01:07:51

키 큰애가 ㅌㅇ

머리 좀 긴 애 ㄱㄹ

얘네 둘 다 옛날에 공개했던 애들임

공개할 때 비율 좋고 잘생겨서 유명했었는데 yc가 더이상 연생 공개 안 하면서 잊혀짐

새로운 애들 아니고 ㄷㅇㅂㄹ 나오기 전부터 있었던 애들임

왜 데뷔 못했는지는 모르겠음

└ 쓰러진 애는?

└ ㅁㄹ

└ 이름이 ㅁㄹ야?

└ 모른다고

└ YC 왜 이제 공개안함?

└ 공개할 인재풀이 아니겠지

└ HHN 메보였던 애도 옮겨가지 않음?

***

“가람아, 핸드폰 그만하고 빨리 자라.”

몇 안 되지만 실시간으로 올라온 게시글을 읽어 내려가던 가람은 등 뒤로 들리는 지호의 목소리에 황급히 핸드폰 화면을 꺼 버렸다.

“…응”

“신경 쓰지 말고 자라. 벌써 3년이야. 다 사라지고 다 잊혔어.”

“그렇겠지?”

“그래. 그러니까 자라.”

“잘자. 지호 형.”

지호에게 나지막이 인사를 건넨 가람은 핸드폰을 엎어 베개 밑에 감췄다. 살짝 새어 나온 빛이 배게 밑을 밝혔지만 지호의 말대로 가람은 더 이상 보지 않으려 눈을 감았다. 쉬이 잠이 들 수 없을 듯싶었다.

***

“일어나요.”

“헉!”

몸을 흔드는 손길과 제법 익숙해진 낮은 목소리에 솔은 경기를 일으키듯 기겁하며 벌떡 일어났다. 급하게 몸을 일으킨 탓에 순간적으로 머리가 핑 하며 천장과 바닥이 일렁거렸다. 솔이 지나치게 화들짝 놀라자 태오가 조심스레 그를 건드렸던 손을 떼어 냈다. 알람이 울리는데도 일어나지 않는 거야 그간 솔과 함께하며 익숙해진 일이었지만 오늘은 유난히 그가 죽은 듯 잠들어 있어 선뜻 손을 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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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은 어지럼을 느끼며 눈앞에 떠오른 알림 창을 제대로 읽지도 않고 빠르게 치워 버렸다. 귀찮고 번거로운 알림 창들이었다. 고개를 마구 내젓는 솔의 움직임이 다소 신경질적이었다. 머릿속이 안개가 낀 듯 희뿌옜다.

“왜 이렇게 놀라요?”

“늦었어요? 오늘 평가잖아요…. 나 때문에 늦은 거 아니죠?”

태오의 물음에 솔은 대답 대신 다급한 물음을 토해 냈다. 평소 솔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을 만큼 급박한 어조였다. 하지만 다급한 솔과 달리 태오는 그의 말에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묘한 표정으로 솔을 빤히 바라보았다.

“…….”

“왜 그렇게 봐요?”

“어제 주말 평가 했잖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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