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
[보유 아이템 목록]
컨셉 랜덤 티켓 (2)
하급 피로도 회복의 포션 (2)
튜토리얼 완료 보상 상자 (1)
능력치 등급 상승권 (1)
안정의 포션 (2)
“이게 다 뭐야…?”
솔은 눈앞에 떠오른 안정의 포션에 대한 설명 창을 치우며 얼떨떨한 얼굴로 웅얼거렸다. 아이템 목록 창을 치워 내자 조금 전까지 솔의 시야를 채웠던, 이미 한 차례 보았던 시스템 창이 깔려 있었다.
[‘안정의 포션’을 사용하시겠습니까?]
[사용 가능한 안정의 포션 개수 : 2 ]
[ 예 | 아니요 ]
“예.”
솔이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예]라고 표시된 글자에 살짝 빛이 감돌고 새로운 창들이 다시금 떠올랐다.
[안정의 포션을 사용하였습니다.]
[상태 이상 : 고열, 근육통, 현기증이 해제됩니다.]
[트라우마 저항 00:59:59]
글자들을 확인하자마자 솔은 따뜻했던 이마와 무거웠던 몸이 순간 가벼워짐을 느꼈다. 욱신거리던 팔다리가 마치 방금 막 만들어진 새 제품인 것 같았다. 늘 불안하던 가슴도 모처럼 만에 편안했다. 아무런 어둠도 없었던 사람처럼 새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 기분이 도리어 꺼림직했다.
예를 들자면 마치 약에 취해 일시적으로 고통을 잊는 것처럼 말이었다. 다소 현실과 동떨어진 일에 얼떨떨했지만, 어찌 되었든 ‘안정의 포션’이라는 것이 가져온 결과에 솔은 감탄을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아이템의 효능을 사용하고 나니 다른 것들도 궁금해졌다. 하나하나 사용해 볼 요량으로 아이템 목록을 다시 띄워 그 내용을 확인했다.
[컨셉 랜덤 티켓 : 정보 열람 불가. 퀘스트 ‘ㅁㅁㅁㅁㅁㅁㅁㅁㅁㅁ’ 완료 후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하급 피로도 회복의 포션 : 사용 즉시 피로도를 30만큼 회복시켜 주는 포션입니다.]
[튜토리얼 완료 보상 상자 : 튜토리얼을 끝낸 플레이어에게 주어지는 상자입니다. 사용 시 랜덤한 아이템을 얻으실 수 있습니다.]
[능력치 등급 상승권 : 사용 시 능력치의 등급을 한 단계 상승시킬 수 있습니다.]
천천히 설명을 확인한 솔은 그제야 자신에게 보이는 이 푸른색 창들이 단순한 알림 창이 아님을 깨달았다.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많은 것들이 달라질 수 있음을 이제야 인지했다.
진작에 그 용도를 파악했었더라면 어쩌면 이번 주말 평가를 그런 식으로 통과하지 않았을 수 있었을 것이었다. 물론 아이템 개수의 한계가 있기에 신중하게 사용해야 한다는 생각도 함께였다. 그간 보아 왔듯이 퀘스트를 완료하거나 매일 하룻밤을 보낼 때마다 아이템이 주어지긴 했으나 솔이 어떤 것을 받을지 선택할 수는 없었다.
당장 보이는 것 중에서 솔에게 가장 많이,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닌 ‘안정의 포션’이었다. 이것만 있다면 지금의 생활을 좀 더 수월하게 보낼 수 있을 것이었다.
남은 개수 1개.
솔은 방금 막, 그 포션 중 하나를 사용했다는 것에 짧은 후회를 했다. 몸이 아픈 것쯤이야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간 사실 편했던 적이 있기는 했던가? 지금 솔은 사실상 ‘안정의 포션’을 하나 날린 셈이었다. 물론 그랬기에 그 활용도를 파악하긴 하였으나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가벼워진 몸과 정신이 주는 고양감을 잠깐 진정시키고 솔은 방금 막 알게 된 정보들을 머릿속으로 정리했다. 안정의 포션과 피로도 회복의 포션은 퀘스트 실패로 이어질 수 있는 최악의 순간을 빠져나갈 수 있는 키였다. 앞으로 몇 개를 더 얻을 수 있는지 불확실하니 최대한 아껴서 신중하게 사용해야 했다.
컨셉 랜덤 티켓은 그 용도가 무엇인지 파악조차 되지 않았다. 일단은 사용할 수 있는 아이템과 그 개수를 명확하게 해 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솔은 튜토리얼 보상 상자를 사용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솔이 구태여 말을 하거나 속으로 읊조리지 않아도 시스템 창은 솔의 의도를 읽은 듯 알림 창을 펼쳐 보였다.
[‘튜토리얼 완료 보상 상자’를 사용하시겠습니까?]
[ 예 | 아니요 ]
고개를 끄덕이자 눈앞에 투박한 회색 상자의 모양이 나타났다. 상자 안에 생물체라도 들은 것처럼 좌우로 흔들리더니 이내 상자가 열리고 빛무리가 쏟아져 나왔다.
[안정의 포션 X2]
[하급 피로도 회복의 포션 X2]
[능력치 등급 상승권(S 등급) X1]
원하던 물건의 등장에 솔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꼭 움켜쥐었다. 안정의 포션과 회복의 포션. 많으면 많을수록 좋았다. 솔의 입꼬리가 절로 올라갔다.
자신도 모르게 지어지는 웃음에 솔은 화들짝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태오가 통화하며 방을 진작 빠져나가서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허공에 대고 떠들고 웃는 솔을 보고는, 쓰러지더니 정신을 놓았다며 다시 병원에 가야 한다 영호를 불렀을 것이었다.
새로운 발견에 지나치게 몰두해 버렸다. 솔은 괜히 헛기침을 두어 번 하고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아이템보다 몇 글자가 더 붙은 다른 아이템에 시선을 옮겼다.
뒤에 붙은 ‘S 등급’의 의미가 무엇일까, 솔이 궁금해하기 무섭게 시스템 창이 새로운 설명 글을 보여 주었다.
[능력치 등급 상승권(S 등급) : 사용 시 1개의 능력치 등급을 S 등급으로 상승시킬 수 있습니다.]
‘능력치…. S 등급….’
설명 글을 읽자마자 솔은 제법 능숙하게 제 상태 창을 펼쳤다.
이름 : 성 솔
나이 : 20
체력 : C
매력 : S+
가창 : B
춤 : S
연기 : D
행운 : D
특성 : 머릿속의 지우개, 네 바퀴 불신자, 비운의 천재 무용수, 만능 예체능 캐
상태 : 트라우마 저항 00:51:59
그간 계속해서 ‘비운의 천재 무용수’ 특성이 활성화되어 ‘A-’로 표기되었던 춤이 본래의 S로 돌아와 있었다.
처음 상태 창을 부여받은 뒤로 처음 보는 알파벳이었다. 대충 설명 글을 읽어 보니 기존에 가지고 있던 능력치 등급 상승권은 한 단계, 그러니까 C 등급인 체력에 사용하면 B로 상승되는 것이고 능력치 등급 상승권(S 등급)은 어느 등급에서 시작하든 사용 즉시 S 등급으로 만들어 주는 듯했다.
게임의 시스템 자체가 익숙하지 않은 솔에겐 이제부터 알아가야 할 것투성이였다. 어떤 능력치가 올라가야 앞으로 퀘스트를 수행하기 수월할까? 솔은 잠시 고민에 빠졌다. 능력치의 등급이 올라갔을 때 눈에 띄게 달라지는 무엇이 있을지 확인이 필요했다. 솔은 상승권을 한 장 사용하기로 마음먹고 제 상태 창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당장 매일같이 연습하며 버겁게 느껴지는 건 당연히 체력이었다. 그간 폐인 생활을 하며 건강을 너무 방치한 탓이 컸다. 하지만 솔은 선뜻 체력에 능력치 상승권을 사용하지 않았다. 그놈의 특성 때문이었다. ‘비운의 천재 무용수’ 특성이 활성화되어 트라우마 상태에 빠지면 체력이 S 등급인들 아무 소용이 없었다.
고통을 느낄 것이었고 빠르게 피로도가 찰 것이며 결국엔 오늘처럼 상태 이상 엔딩을 보게 될 것이었다. 이번엔 솔직히 요행이었다. 만약 자신이 끝까지 안무를 소화해 내지 못하고 중간에 쓰러졌다면? 다시는 깨어나지 못하고 태오를 비롯한 다른 멤버들은 또 다른 제2의 솔을 기다려야 했을 것이었다.
갑자기 마음이 무겁고 서늘해졌다. 춤은 더 이상 올릴 필요가 없었다. 체력과 마찬가지로 이 거지 같은 특성을 없애지 않는 이상 아무짝에 쓸모가 없었다.
솔은 손을 뻗어 제 턱을 감싸 쥐고 손가락으로 뺨을 토독토독 건드렸다. 덜컥 안정의 포션을 사용했던 때와는 달리 제법 신중했다. 데뷔까지 몇 번의 주말 평가가 더 남아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보아하니 당분간은 계속 주말 평가가 퀘스트로 주어질 듯했다.
체력을 올릴 수 없다면 그다음으로 솔에게 지금 필요한 능력. 바로 보컬이었다. 사실 그간 상태 창을 제대로 확인할 정신도 없었다. 현실로 와닿지 않는 제 상태 창을 보고 있자니 솔은 문득 지호나 다른 멤버들의 상태 창이 궁금해졌다. 자신이 B 등급이면 지호의 가창은 무슨 등급일지가 궁금해졌다.
‘가창…. 그래도 B 등급이나 됐었구나.’
생각보다 높은 알파벳의 등장에 솔은 살짝 미간을 구겼다. B나 A, S 같은 알파벳 등급이 정확히 어떤 수준인지 현실감이 없어 솔은 대충 학점처럼 생각하기로 했다. B 학점이면 그리 나쁘지 않지 않은가? 정작 솔은 대학 생활 내내 그런 학점을 받아 본 적이 없었다.
실제로 솔의 노래를 들어 준 모두가 아쉬운 점과 부족한 점, 그리고 극복해야 할 점들이 있지만 음색 자체도 나쁘지 않다고 전체적으로 좋은 평가를 해 주었었다.
모두가 지적했던 문제들을 되새김질해 본 솔은 결국 가창도 트라우마 상태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춤처럼 등급에 직접적인 반영은 없었다. 연기는 아직 부딪혀 본 바가 없어 D 등급이 어떠한 상태인지 체감되지 않았고 행운은 애초에 능력치 자체가 무슨 효과가 있는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잠시 짧은 고민을 한 솔은 ‘능력치 등급 상승권‘을 가창에 사용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능력치 등급 상승권’을 ‘가창’에 사용하시겠습니까?]
[ 예 | 아니요 ]
고민은 충분했다. 이제 그 효과를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해 확실히 해야 할 때였다. 솔이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상태 창의 B가 A로 변화했다. 상자가 열릴 때처럼 거창한 빛무리도 별다른 느낌도 없었다. 그냥 글자가 하나 바뀐 것뿐이었다.
요란하게 팡파르가 울리거나 빛이 휘감는 그런 거창한 변화가 없어서 다행이라 해야 할지 진짜 뭐가 바뀌긴 한 것인지 의문스러웠다. B에서 A 등급이 된 변화를 몸소 체험해 확인해야 할 솔은 난처함에 머리를 긁적였다. 다들 쉬고 있을 테고 태오는 통화가 한창일 테니 슬쩍 야밤에 노래라도 한 소절 불러 봐야 하나 싶었다.
솔은 혼자뿐인 방 안을 괜히 둘러보고 ‘흠흠’ 헛기침을 하며 목을 가다듬어 보았다. 오늘 미처 평가받지 못한 가창 평가를 방구석에서 혼자서라도 진행해 볼 필요가 있었다. 트라우마 저항도 있고 연습실도 아니고 혼자 남은 혼자만의 공간이라 모든 것이 편안했다. 솔은 조심스레 지겹도록 연습한 노래의 첫 소절을 끄집어냈다.
“눈이 부신 미스터리, 미로같이 깊은 밤은 이제 시작해. 너는 분명 길을 잃게 될 거야.”
강렬한 기타 리프 간주 없이 방 한 칸에서 나지막이 부르는 솔의 핫 트릭은 어쩐지 평소와 퍽 다른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