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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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에서 온통 쓴맛이 났다. 침 한 방울 없이 바싹 메마른 사막처럼 버석거리는 입 안이 껄끄러워 솔을 미간을 찌푸렸다. 뼈 마디마디가 늘어진 듯, 나른하고 몽롱한 기분이었다.
‘실패했나…? 죽은 걸까?’
기억이 나지 않았다. 의찬과는 조금 다른, 백의찬 대표를 마주한 뒤로 기억이 나질 않았다. 눈앞이 붉은 듯 캄캄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죽음 뒤엔 어둠이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붉구나’ 하는 현실감 없는 생각이 들었다. 눈을 감고 있는 것 같았으나, 눈꺼풀이 살과 붙어 버린 듯 떠지지 않았다.
‘끝나 버렸구나.’
허무했다. 갑자기 허탈감이 몰려들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래도 지난 며칠, 사고 이후로 솔의 인생에서 가장 역동적으로 사력을 다해 무엇인가를 해 보려 한 시기였다. 그 노력이 결국엔 물거품이 되어 버린 것 같아서, 결국엔 자신은 이 모든 것을 벗어날 수 없는 답답한 인간이라는 생각에 감정이 북받쳤다.
힘들었다. 꿋꿋이 참고 노력했지만, 솔직히 힘들었다. 그렇다고 마냥 힘들기만 했냐고 묻는다면 조금 설레기도 했었다.
“…흑…흐윽….”
“어? 솔아! 솔아!!”
꾸역꾸역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던 솔이, 억눌린 울음을 흘리자 익숙한 목소리의 주인공이 솔을 흔들었다. 가벼운 손짓이었지만 고열과 근육통 페널티를 받은 몸은 그 사소한 움직임에도 바람에 부대끼는 천 쪼가리처럼 휘둘렸다. 덕분에 마구잡이로 흔들린 솔은 눈물이 쏙 들어가 버렸다.
“솔아! 정신이 들어?”
“괜찮아요?”
귓가에 들리는 걱정 어린 목소리에 솔은 눈물에 젖어 한결 부드러워진 눈꺼풀을 반짝 들어 올렸다. 눈부시게 흰 천장과 유난히 더 투박하다 못해 흙 밭에 구른 것 같은 매니저 영호의 얼굴, 그리고 그 너머로 심각한 표정의 태오가 보였다. 익숙한 얼굴의 등장에 솔은 눈을 껌뻑이고 입을 열었다. 새어 나온 목소리가 관에서 막 살아난 시체처럼 끔찍하게 갈라졌다.
“…평가, 평가…. 저 이거, 계속해요?”
“뭘 계속해? 어디 불편하니, 솔아?”
“이거…. 죽어서도 계속하는 거예요?”
솔이 횡설수설 혼잣말을 웅얼거렸다.
“역시 진짜 게임인가…. 저번에는 안 이랬는데.”
“얘가 아직도 열 때문에 헛소리하나 보다. 그러게, 계속 남아서 연습하고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닌가 싶었다. 내가.”
“이제 와서 그런 거 따져서 뭐 해요. 정 그랬으면 진작 말리든가.”
한숨을 내쉬며 꿍얼거리는 영호의 뒤로 퉁명스러운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가람이었다.
“됐어. 가람이랑 태오. 이제 솔이도 깨어났으니까 돌아가. 솔이는 링거 다 맞는 대로 내가 데려갈게.”
“그냥 있을게요.”
“그럴게요. 어차피 오늘 더 연습도 없으니까 기다렸다가 같이 돌아갈게요.”
영호의 말에 가람은 도리어 솔의 침대에 가까이 붙으며 태오와 나란히 섰다. 하얀 손등과 연결된 수액은 아직 그 튜브가 투명한 액체로 가득 차 있었다. 짐짓 심각한 표정의 가람과 태오의 얼굴을 번갈아 확인한 영호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착하고 성실하고 말 잘 듣는 듯하지만 사실 고집불통에 나이답지 않게 다루기 영 어려운 녀석들이었다.
“…그럴래? 그럼 잠깐 솔이 좀 보고 있어. 나는 최 실장님한테 연락드리고 올게.”
“네.”
“가람아, 예전 생각나는 건 알겠는데 얼굴 좀 펴.”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며 나가던 영호는 잔뜩 굳어 있는 가람의 어깨를 괜스레 툭툭 두들기며 한마디를 던졌다. 연습생 건강 관리 제대로 못 했다고 까이는 건 영호인데 오히려 가람과 태오가 혼난 것 같은 표정이었다.
영호가 사라지자 태오는 방황하는 솔의 눈동자와 제 눈동자를 맞추었다. 눈물이 가득한 눈동자는 여전히 불안정하게 흔들렸다.
“평가는 걱정하지 마요. 첫 주였고 건강 문제도 있으니까, 보컬 평가는 다음 주로 미루기로 했어요.”
“그래. 솔. 안무 평가는 그래도 잘 끝냈잖아.”
“…잘… 끝났다고…?”
“응…. 잘했잖아?”
“기억 안 나요? 안무 평가까진 끝마쳤어요. 대표님이 평 주자마자 쓰러졌고요.”
“……어떻게 했는지 기억이 잘….”
귓가에 들리는 목소리와 낯익은 얼굴이 안심되는 말을 반복해 주자 비로소 상황이 파악되었다. 의식을 잃긴 했지만 퀘스트는 진행되었고 성공한 것이었다. 솔이 상황을 인지하자마자 눈앞에 민트색 창이 떠올랐다. 이 창이 이토록 반가웠던 적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첫 주말 평가를 통과하자!> 성공]
[1차 평가 B 등급 ( 안무 : B | 보컬 : 보류 )를 달성하셨습니다.]
[안정의 포션 2개를 획득하셨습니다.]
[경고! 당신은 현재 트라우마 상태입니다. 안정의 포션을 사용을 권장합니다.]
[상태 이상 : 고열, 근육통, 현기증]
정말 성공이었다. 안도감에 솔의 몸은 일순 긴장이 풀어졌다. 동시에 한꺼번에 와락 튀어나온 민트색 창에 현기증이 일어 솔이 눈을 다시 질끈 감고 인상을 찌푸렸다. 그런 그의 모습에 태오와 가람이 서로 눈짓을 주고받았다.
“일단 지금은 좀 쉬고 나중에 이야기해요.”
“응. 잘했으니까 걱정하지 말고 좀 쉬어. 체력도 안 좋으면서 너무 무리했어.”
두 사람의 목소리가 한결 부드럽게 들리기도 했지만 구태여 둘이 설명해 주지 않아도 시스템 창을 확인한 솔은 안도의 한숨을 깊게 내쉬며 한결 편안한 얼굴을 했다. 꼼짝없이 주말 평가를 망쳐서 모두에게 실망을 안기고 더불어 생도 마감하는 줄만 알았다.
고여 있던 눈물이 질끈 감은 눈가를 타고 흘러내렸다. 그의 눈물이 주말 평가에 제대로 임하지 못한 억울함에 흘리는 것이라 오해한 가람이 살포시 솔의 손등에 제 손을 올렸다. 응원과 위로를 담은 가벼운 터치였다.
“혼자 편하게 쉬게 나가 있자.”
“밖에서 기다릴게.”
긴장이 풀린 솔의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어 댔다. 맞닿은 손등에서 그것을 느낀 가람의 표정이 영 좋지 않자 태오가 그의 어깨에 손을 올리며 등을 떠밀었다. 두 사람의 모습까지 병실에서 온전히 사라지자 솔은 두 손으로 제 얼굴을 가렸다.
“하아, 감사합니다.”
누구한테 감사한 것인지 정작 말을 꺼낸 솔도 알 수 없었지만, 목숨을 부지했다는 것에 감사했다. 적어도 지금은 저 ‘성공’이라는 글자를 내비쳐 주는 시스템 창에도 감사 인사를 할 수 있었다. 정작 감사 인사를 받아야 하는 것은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도 온전히 의식을 놓지 않고 움직여 준 솔의 몸뚱이였다.
“감사합니다….”
얼굴을 가린 손이 벌벌 떨렸다.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보다는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더욱 벅차올랐다. 목숨이 달려 있는데 잘하고 못하고가 무엇이 중요할까. 이왕이면 제대로 기억하고 멋들어지게 평가를 끝냈었다면 좋았겠지만 거기까진 욕심이었나 보다. 어쨌든 성공했다는 것에 솔은 감사했다.
몰려드는 갖은 감정들을 쉬이 떨쳐 내지 못하고 혼자가 되자 솔은 눈물을 펑펑 쏟아 내었다. 온몸을 휘감은 온갖 감정들을 한참 동안 털어 내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며 계속 감사의 말을 읊조렸다.
눈물이 흐르고 온몸이 떨렸지만, 그리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적어도 이곳의 자신이, 스물다섯 살의 현실의 자신보다 조금 더 나은 존재가 된 것 같았다. 발전이라는 것을 한 기분.
그리고 무엇보다 태오와 가람, 지호와 득용에게 실망을 안겨 주지 않았다는 점에서 안도했다. 그렇게 한참을 울고 나서야 간신히 감정을 삭인 솔은 늘 그렇듯 평소처럼 맹한 얼굴로 똑똑 떨어지는 수액 방울을 바라보았다. 문밖에서 영호와 태오의 목소리가 흐릿하게 들려왔다.
‘다행이다.’
그 말을 솔은 속으로 끝없이 되뇄다. 문밖에서 들리는 가람과 태오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들의 목소리에 화음을 얹듯, 속으로 끝없이 읊조렸다. 정말 게임이든 목숨이 걸려 있든, 뭐든 어쨌든 간 이 모든 일들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이 다행이었다.
솔이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땐, 간호사가 제 팔에 꽂힌 바늘을 뽑을 때였다. 횡설수설하고 또렷하지 못했던 전과 달리 이번에는 온전히 또렷한 제정신이었다. 솔이 정신을 찾자 영호가 잔소리로 둔갑한 걱정을 한 다발 쏟아 내었다.
“죄송해요. 그냥 컨디션이 조금 안 좋은 정도인 줄 알았어요.”
“연습 열심히 하는 거 좋고, 다른 애들보다 늦게 시작했으니까 급한 것도 알겠는데. 솔아, 그래도 건강이 먼저지. 너 쓰러져서 진짜 다들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
“걱정 끼쳐서 죄송해요. 진짜 괜찮았었어요.”
“태오랑 가람이, 지호도 득용이도 다들 놀라 가지고…. 어휴. 됐다. 다음부터는 조금이라도 어디 안 좋은 거 같으면 꼭 말해. 우리가 무슨 악덕 소속사도 아니고….”
“죄송합니다.”
정말 이렇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그래도 그간 연습해 오면서 어느 정도 ‘비운의 천재 무용수’라는 특성, 트라우마에 익숙해졌고 나름 버티는 방법을 찾아냈다고 생각했다. 힘들긴 하더라도, 그래왔듯이 오기로 이겨 낼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잠시 정신을 잃기 전까지의 기억을 되짚어 보던 솔은 어쩌면 미친 듯이 피로도가 치솟았던 게 단순히 ‘비운의 천재 무용수’ 특성 때문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피로도 상승은 평소에도 연습할 때도 늘 일상처럼 따라다니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상승 속도가 유난히 빨랐다.
여러 사람 앞에서 춤을 추어서? 자리해 있던 트레이너들 대부분이 일주일간 솔이 연습하며 함께했던 사람들이었다. 솔은 문득 진짜 백의찬과는 다른 대표 ‘백의찬’에 기억이 머물렀다. 그의 존재가 제 생각보다 무척이나 큰 충격이었던 듯했다. 스스로를 단단히 만들 방어벽이 허물어질 만큼.
“지금은? 지금은 좀 괜찮아? 어지럽거나 어디 불편한 곳 없어?”
잠시 생각에 잠긴 솔의 등을 누군가가 살짝 쓸었다. 놀라 뒤를 돌아보니 바로 걱정이 가득 담긴 목소리가 질문을 토해 냈다. 가람이었다. 늘 나른하고 게을러 보이는 무표정한 얼굴이 오늘따라 갖은 감정들을 담고 있었다. 솔의 안부를 묻는 말들도 평소 느긋한 그의 어조에 비해 꽤나 빨랐다.
“진짜 괜찮아. 나 때문에 놀랐지. 미안.”
과분할 정도의 걱정을 담은 시선에 솔은 손을 내저었다.
“사과할 건 없고…. 네가 괜찮으면 됐어.”
“나 말고 너는 괜찮은 거야?”
“나?”
솔은 자신을 바라보는 가람의 얼굴이 어쩐지 저보다 더 창백해 보여 도리어 그의 안부를 물었다. 정말 지금 걱정해야 할 건 자신이 아니라 가람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그는 하얗게 질려 있었고 어쩐지 초조해 보였다.
“어…. 응. 내가 보기엔 네가 나보다 더….”
“지호 형이랑 득용이도 걱정 많이 하고 있어요. 기다릴 텐데 일단 숙소로 돌아가죠.”
가람과 마주 보고 서 있자니 그 시선이 무척이나 불안해 솔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물으려던 찰나, 태오가 끼어들었다. 태오의 말에 그제야 지호와 득용이 떠오른 솔은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