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응. 태오 병원 간 거 아니야?”
“몰라요.”
“어…. 그래? 아직도 사이 좀 그런 거야?”
“아뇨. 그런 건 아니고 많이 좋아졌어요.”
“다행이다.”
태오와 병원 이 두 단어가 함께 있는데 퍽 신경이 쓰였지만 은겸이 자연스레 화제를 바꿔 대화가 흘러갔다. 그가 묻는 말에 대답하며 젓가락을 깨작거리던 솔의 머릿속은 온통 ‘병원’이란 단어에 초점이 맞춰져 은겸의 말에 도무지 집중하지 못했다. 일전에 득용이 태오에게 그만두지 말라 했던 말이 떠올랐다.
어디가 아파서 포기하려는 걸까, 그러기엔 지난 며칠간 봐 온 태오는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간절하고 열심이었다. 결국 머릿속을 떠도는 생각에 은겸의 말에 집중하지 못한 솔은 결국 그에게 조심스레 태오에 관해 물었다.
“……태오, 어디 아파요? 병원에 간다고 하셔서요….”
“아. 태오가 아픈 건 아니니까 걱정하지 마.”
“윤태오? 아, 태오네 팀이에요?”
“네.”
“뭐야? 태오…? 그게 누구지?”
솔의 질문에 은겸이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그도 잠시, 옆자리에 앉아 있던 은겸의 그룹 멤버들이 솔의 이야기에 관심을 보였다.
“그 눈썹 진하고 조각상처럼 생긴 애 있잖아. 공개 연습생이었던.”
“아아. 기억났어. 그 교통사고 나서 아버지 돌아가시고, 동생 병원에 있는 걔?”
“…야. 루카! 미안, 솔아. 얘가 좀 그래.”
분홍색 머리를 한, 이국적인 생김새의 남자가 은겸이 이야기하기 꺼리던 일을 기어이 내뱉었다. 멤버에게 말 안 한다는 점은 조금 서운할 수 있지만, 그래도 본인이 밝히고 싶지 않을 수도 있는 안 좋은 일이었다. 좋은 일로 함부로 떠들어선 안 되는 게 이 업계였기에 은겸은 미간은 찌푸리며 루카를 바라보았다. 태오 나름의 생각이 있어 솔에게 알리지 않은 게 분명한데 엉뚱한 사람이 떠벌렸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루카의 이야기를 들은 솔의 눈이 동그랗게 뜨였다. 처음부터 몰랐다면 모를까, 이렇게 듣고 나니 이제 와 모른 척 ‘아, 네. 그렇군요.’ 할 수가 없었다. 솔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놀라자 이마를 짚은 은겸을 제외한 나머지 두 명이 솔의 궁금증에 답을 주었다.
“같은 팀인데 몰랐어요?”
“태오, 유명했는데. 부모님이랑 여동생이 교통사고 크게 당해서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여동생은 식물인간인가 그럴걸. 어머니가 혼자 돌보시고. 그래서 연습 끝나고 매번 병원에 가잖아. 어머니 잠시라도 쉬게 해 드린다고.”
“그만해. 당사자가 말 안 한 데에는 다 이유가 있겠지.”
“회사 사람 다 아는데, 팀원이 모르는 것도 그렇잖아.”
“그것도 그런데…. 넌 태오 누군지도 기억 못 하는 게, 그런 거는 왜 기억하는 거야.”
“그때, 연습생들 사이에서 완전 떠들썩했잖아. 연습생 그만두고 그냥 아무 일이나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애들 엄청 시끄러워서 기억하지.”
“일어나, 김루카. 솔아, 미안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
“네…. 네.”
결국 은겸은 제 음식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는 여전히 떠벌리는 중인 루카의 머리카락을 수확하듯 붙잡아 힘껏, 잡아당겼다. 촉새처럼 떠들던 그가 ‘아파!’ 하는 짧은 탄성을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은겸은 난처한 표정으로 솔에게 인사를 하고는 제 멤버들을 데리고 자리를 떠났다. 홀로 남은 솔은 머리를 망치로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태오를 잘 아는 건 아니었지만 전혀 상상도 못 한 이야기였다. 자신과 동갑인 나이, 그리고 가족에게 일어난 교통사고. 비슷한 사고를 겪었는데 그 뒤를 이은 태오의 삶은 솔과 너무도 달랐다. 뒤통수를 한 대 세게 얻어맞은 듯, 멍한 솔의 뇌리에 방문 하나를 두고 태오가 제 멤버들에게 했던 말들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래서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할 거라고 했구나….”
저녁을 코로 먹는 둥, 마는 둥 한 솔은 내용물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컵라면을 정리하고 연습실로 돌아왔다. 굶은 거나 매한가지였지만 배는 고프지 않았다. 연습하겠다고 남았으나 어쩌다 보니 알게 된 소식에 연습이 손에 잡히지도 않았다.
솔은 덩그러니 연습실 의자 한구석에 앉아 거울에 자신을 비춰 보았다. 머리를 묶으며 얼굴을 환하게 드러냈지만 그래도 얼굴 곳곳에 우울한 기색이 역력했다. 어딘지 힘없이 퀭했고 사람이 풍기는 분위기 자체가 썩 좋지 않았다. 외모가 백날 이쁘다, 멋지다 칭찬받는다고 한들 무엇할까, 그 속내가 썩은 티가 나는데.
본래 사람은 제각각이라 감정을 느끼고, 처리하는 방식도 제각각이다. 당연한 이치였다. 비슷한 일을 겪었다 해도 그에 따른 반응도 각각인 게 당연했다. 태오에게 있었던 일을 듣자마자 솔은 자신도 모르게 자기 모습과 태오의 모습을 비교했다.
사고가 난 직후, 아무것도 감당하지 못하고 모든 것에서 도망쳐 온 자신과 달리 태오는 그 자리에서 꿋꿋하게 버텨 온 것이었다. 묵묵히. 주변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연습생 생활, 누군가는 우습게 볼 수 있겠지만 솔이 며칠 겪어 본 바로는 녹록지 않았다. 인생의 모든 것이 이 건물과 연습실 안에 있는 듯이 굴며, 그렇게 살아야 했다.
멤버 모두가 솔에게 이런 사정을 쉬쉬하고 태오도 말하지 않은 것 따위 아무 상관 없었다. 은겸의 팀원이 솔에게 왜 모르냐 되물었지만, 오히려 모르는 게 당연한 일이었다. 자신도 안 하지 않던가. 하물며 썩 감정이 좋지 않은, 이제 고작 알게 된 지 며칠밖에 안 된 상대에게 그런 개인사까지 말할 이유가 없었다.
솔은 정말 조금도 신경 쓰이지 않았다. 오히려 태오가 이해되었다. 괜히 말을 꺼내 되새기고 싶지 않은 거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야기를 듣고 보낼 동정 어린 눈빛이 싫기에.
누가 더 불행하고 안 좋은 환경에 있었느냐 따져 보자는 게 아니었다. 다만 비슷한 일을 겪고 걸어온 방향이 정반대였다. 며칠간, 열을 띠고 연습하는 태오를 보며 곧다 못해 굳세고 마냥 꿈을 향해 그 단계를 성실히 밟아 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멤버들도 그랬지만, 그 무심한 듯 묵묵히 타인까지, 특히나 골칫덩어리인 자신까지 챙기는 모습이 반짝반짝 빛이나 그런 그림자가 있다고는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었을까? 힘들었을 텐데…. 응당 힘들었을 것이다.
적어도 솔은 힘들었다. 주변이 자신을 바라보는 그 안타까워하는 시선들로부터 벗어나고 싶었고 텅 빈 집에 돌아가고 싶지 않으면서도 돌아가고 싶었다. 자신을 따라다니는 시선에서 벗어나 숨을 곳이 집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동시에 집은 솔을 좀먹고 사고를 되새김질하는 고통의 공간이었다. 그래서 솔은 모든 걸 놓아 버렸다. 하지만 태오는 끝까지 손을 놓지 않은 것이다.
사람은 다르다. 다르다고 수없이 생각해 보았지만 그래도 자신은 그러지 못했는데 그러한 태오가 궁금했다. 물론 거기엔 왜 자신은 그처럼 꼿꼿하지 못했는지에 대한 열등감도 옅게 깔려 있었지만, 그보다는 신기하고 궁금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자신도 태오처럼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공의 사례가 눈앞에 있는 것이다. 시험의 족보나 해설집이 바로 앞에 놓여 있었다. ‘이렇게 하면 이 사람처럼 될 수 있어요.’ 이런 제목일 것이다. 넋이 나간 사람처럼 앉아 있던 솔의 눈에 불현듯 생기가 돌았다. 태오는 기분 나빠할 수 있겠지만, 솔은 그의 존재에서 느끼는 바가 컸다.
매주 날 선 시험대에 놓인 것 같은 상황이지만 자신과 전혀 다른 길을 걸은 사람. 반짝반짝 빛이 나고 자신처럼 색이 바래지 않은 채 꼿꼿한 사람. 그리고 좋으나 싫으나 운명 공동체로 묶여 버린 멤버들. 강제로라도 솔을 움직이게 만드는 퀘스트. 모든 것들이 솔에게 달라져 보라고 속삭이는 것처럼 느껴졌다.
물론 태오와 솔은 다른 사람이기에 같을 수는 없다. 하지만 이토록 명확하게 보이는데, 한 번쯤은 시도해 볼 만하지 않던가. 어차피 늘 그래 왔던 것처럼 무조건 회피만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지난 3일이 솔에게 선사하는 바가 컸다. 물론 쉽진 않을 것이고 몸에 배 버린 이 의식들이 한 번에 달라질 순 없었다.
“그래도….”
그리고 다른 거창한 이유보다도 태오에게 흠집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꼿꼿하게 버텨 온 사람에게 자신이란 오점을 남겨 붕괴시키고 싶지 않았다. 태오가 했던 날카로운 말들이 이제야 다 이해가 갔다. 태오는 자신을 지켜야 했던 거다. 솔이 회피와 은둔, 방황으로 자신을 지켰듯이.
솔은 가방에서 종이 뭉치를 꺼냈다. 보컬 레슨을 받으며 지적받은 것들이나 기억해 두어야 할 것들을 빼곡하게 적은 악보였다. 사실 악보 보는 법부터 배워야 했었다. 아직도 조금 아리송한 것들이 많았다. 다른 멤버들에 비해 기본기가 한참 모자라다 보니 바이브레이션이 들어가야 하는 부분이나 피치가 자주 떨어지는 부분에 솔만 알아볼 수 있는 말들이 쓰여 있었다.
‘외워야 함!!! 꼭!!!’
그리고 악보의 최상단. 기억력에 문제가 있는 솔의 가장 큰 복병이었다. 가사. 종이에 쓰여 있는 글자를 아무리 달달 외워도 막상 부르려 하면 머릿속이 새하얘지며 막막해질 때가 있었다. 솔이 생각하기에 제 노래는 엉망이었지만 태오와 지호는 가사 숙지만 잘하면 그 정도만 해도 될 거라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지호가 한마디 더 덧붙이기는 했다. 첫술에 배부르겠냐고. 그리고 노래마저 금방 따라오면 자신들은 오늘 밤 잠 못 잤을 거라며 웃었다. 너덜너덜하고 구깃구깃해진 종이를 두 손으로 꽉 붙잡은 솔은 주변을 둘러보고 괜히 헛기침했다. 다른 멤버들에 비해 가진 약점이 너무 많다는 것 누구보다 솔이 잘 알았다. 하루하루가 그만큼 더 힘들고 버거우니까.
태오는 이런 버거움을 어떻게 떨쳐 냈을까. 모르긴 몰라도 연습이었을 것이다. 지켜봐 온 태오는 정말 눈을 떠서 침대에 누워 잠이 들기 전까지, 하루가 춤과 노래로 얼룩져 있었다. 밤에 침대에 누워서도 낮에 찍은 연습 영상을 보며 제 몸의 움직임을 점검하고 자는 사람이었다. 어찌 보면 지독했다.
‘연습.’
솔은 구부정하게 숙이고 있던 등을 꼿꼿하게 폈다. 춤을 추며 노래할 때는 그나마 괜찮았다. 잘 부른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큰 음악 소리에 어느 정도 소리가 묻혀서 실수가 도드라지지 않아 덜 부끄러웠다. 그런 요행을 주말 평가에서 바랄 수는 없었다. 자신이 잘해 데뷔하고 싶다는 생각보다 태오를, 지호와 가람과 득용을 이번엔 꼭 데뷔하게 만들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마지못해 억지로 했던 퀘스트에 대한 달성 욕구가 갑자기 샘솟았다.
하지만 막상 혼자 남아 고요한 연습실에서 홀로 노래를 부르려니 입술이 바짝 말라붙었다. 솔은 혀끝으로 입술을 적시고 목을 가다듬으며 가사 한마디 한마디 또박또박 불러 나갔다. 불안하게 흔들리던 음정과 박자가 조금씩 맞아 들어갔다.
조용한 연습실 안을 휘젓는 목소리가 유난히도 크게 들려 어설픈 실력이 고스란히 티가 났다. 지호가 들었으면 웃음을 터뜨렸을 것이다. 목소리 자체는 차분한 미성이었으나 불안감을 감추지 못해 염소처럼 떨어 댔다. 말할 때처럼 자신감 없이 끝 음을 흐리거나 떨어뜨리기도 잦았다.
한번 부르고 나니 화끈거리던 얼굴이 조금 가라앉았다. 솔은 점점 자신감을 잃어 맥없이 떨어지는 음정을 애써 다잡으며 타이르듯 노래했다. 두 번을 연달아 부르고 잠시 목을 축이려 물병을 집어 들었을 때, 연습실의 문이 빼꼼 열리고 은겸의 갈색 머리가 불쑥 끼어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