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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를 뽑고 싶어-29화 (29/192)

#29

“다들 오늘도 고생했어. 이제 하루 남았다. 이번 평가도 잘하자.”

“이제 좀 익숙해졌나 봐요?”

태오의 물음에 지호가 과할 정도로 활짝 웃어 보였다.

“그러게! 솔이 처음보다 동작도 많이 커지고 이제 별로 우리 신경 안 쓰는 거 같아. 그렇지, 득용?”

“저 솔직히 말해도 돼요?”

“네가 언제 그런 거 신경 쓰면서 말했어?”

“저 사실 저 형 얼굴밖에 안 보여서 어떻게 추는지 잘 몰라요.”

“야, 김득용. 그 얼빠 같은 말 뭐야. 솔이 얼굴 말고 다른 거에도 좀 관심을 가져.”

“아니, 근데 솔직히 어쩌다가 보게 되면 눈이 고정되니까….”

지호가 득용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머리 하나는 더 큰 득용은 또 고개를 숙여 그걸 맞아 주었다. 속뜻이 어찌 되었든 결국엔 외모를 칭찬받은 터라 솔의 귓바퀴가 조금 붉어졌다. 이런 식의 칭찬은 도무지 익숙해지질 않았다. 무용을 할 때엔 외모보다는 몸 선, 춤 선에 더욱 신경을 써야 했었다.

동작의 테크닉, 얼마나 완벽하게 구사하느냐. 오히려 얼굴에만 집중 받는 것이 역효과를 불러일으켜 솔은 다들 진하게 하는 무대 화장도 하는 둥 마는 둥 했었다. 그러면 강한 조명에 이목구비가 조금이나마 날아가니까. 물론 그런데도 온전히 숨길 수 없는 이목구비이긴 했다.

모두가 정해진 규칙이라도 있는 것처럼 같은 모습으로 짐 정리를 했다. 기분이 조금 묘했다. 항상 같은 장소에 옷을 벗어 던지는 득용이. 늘 같은 텀블러에 물을 담아 같은 장소에 두는 지호. 늘 같은 순서로 짐을 싸며 태오를 한번 확인하는 가람. 그 특유의 패턴이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그 패턴 내에 솔도 포함되어 있었다.

가람이 며칠 사이 습관이 된 거처럼 가방을 들고 솔에게 손을 내밀었다. 피로도 관리를 위해 늘 앉아 있는 솔을 가람이 늘 이렇게 일으켜 세웠다.

“오늘은 저도 남아서 연습 더 할게요.”

솔의 대답에 모두가 놀란 듯 그를 쳐다보았다. 그 시선에 솔은 민망해져 괜히 얼굴을 손등으로 문질렀다. 땀과 열이 오른뺨을 손등으로 거칠게 문지르니 발그레해진 뺨이 쓰라렸다.

“어…. 그래?”

분위기가 묘했다. 태오를 제외한 세 사람이 서로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잠시 눈짓을 주고받았다.

“그럼 제가 같이 있을게요.”

“어어? 그…. 태오 있으니까, 같이 연습하고 들어갈게요.”

아직도 호칭 정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어색했다. 태오와 가람은 동갑이고 친하니 서로에게 반말을 썼지만, 많이 녹아들었다곤 하나 데면데면하다 보니 솔은 선뜻 이름을 부르기가 애매했다. 그렇다고 동갑이고 같은 팀원인데 ‘씨’를 붙이기도 애매했고.

“괜찮아요. 영호 형 바로 돌려보내면 되니까. 저는 택시 타고 들어가면 돼요.”

“내가 남아도 돼.”

“넌 좀 쉬어.”

자청해 남겠다는 가람의 말을 태오가 끊었다.

“그쪽도 신경 쓰지 말고 편하게 연습해요.”

편하게 연습하라 말하지만, 태오의 표정은 그다지 편해 보이지 않았다. 나름 마음을 다잡아 보려고 심기일전해 뱉은 말이었는데 그 마음이 무색해지는 분위기였다. 괜히 연습을 더 한다고 말해 여러 사람을 불편하게 만든 것인지 눈치가 보였다.

“저 뭐 잘못했나요?”

“아니, 아니야. 솔아, 그런 거 아니야. 연습 좋지!”

이상하게 돌아가는 상황에 솔은 제가 뭘 놓치고 있는지 어리둥절해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지호가 웃는 얼굴로 솔의 어깨를 칭찬하듯 툭툭 두들기자 득용도 말없이 엄지를 치켜들어 보였다. 남아 연습하겠다는 말에 다른 효과라도 있었던 걸까, 아주 조금 더 친해진 기분이었다. 솔은 가방을 둘러메는 가람에게 다가가 슬쩍 자신이 놓친 것에 관해 물었다.

“저기…. 제가 혹시 뭐 실수했나요?”

“?”

“남으면 안 되나요?”

“아, 그런 거 아니에요. 태오가 하루는 연습하고 하루는 개인 사정 때문에 외출해서요. 오늘 외출 날이고 그러면 그쪽 혼자 숙소로 돌아와야 하니까, 그래서 그런 거예요.”

“개인 사정이요? 아니, 저 혼자 들어가도 돼요. 이제 길 외웠어요.”

생각 없이 가람의 답에 되물었던 솔은 고개를 크게 휘저었다. 개인 사정이라는데 당사자도 아닌 사람에게 묻는 게 기분 나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쳐서였다. 가람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져 선을 넘었나 싶어 아차 했지만 정작 그의 입에서 흘러나온 말은 다른 것에 대한 지적이었다.

“혼자 다니지 말라고 했잖아요. 영호 형이 데려다줄 거예요. 아니다. 그냥 출발하기 전에 나한테 연락해요.”

“……핸드폰 번호를 모르는데요.”

“…아!”

“우리 솔이랑 번호 교환도 안 했었나?”

“어…. 그…. 네.”

편안하게 풀어졌던 분위기가 순식간에 어색해졌다. 아마 솔이 하루 이틀 사이에 도망칠 줄 알고 연락처 교환은 생각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조금 상황이 달랐다. 고작 사흘이긴 해도 솔은 체력이 조금 달릴 뿐 성실히 연습에 임했고 멤버들과의 차이도 메꿔 보려 노력해 주었다.

어찌 되었든 이전 사람들과 솔은 확연히 다른 태도를 보여 주었고 골이 생겼던 감정도 조금 누그러진 터라 가람과 지호는 서로 눈을 맞추고 민망해했다. 늦게나마 자신들의 행동이 좀 철없게 느껴져서 그런 것이었다.

“영호 형한테 핸드폰 받아 올게요. 기다려요.”

가람이 황급히 연습실을 뛰어나갔다. 때마침 연습을 끝내고 정리할 시간이어서였는지, 복도에서 영호와 가람이 이야기를 나누는 목소리가 들렸다. 잠시 뒤 가람이 모두의 핸드폰을 챙겨 와 제 주인에게 나눠 주었다.

다섯 사람이 옹기종기 머리를 맞대고 모여 핸드폰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태오를 시작으로 가람, 지호, 득용의 순서로 솔의 핸드폰에 자신의 번호를 입력해 주었다.

“단톡방에도 초대해 주고.”

“네.”

“형은 단톡방 답장도 안 하잖아요.”

“안 익숙해서 그래.”

“저 형 톡 프사에서 지호 형 같은 냄새가 나.”

“왜? 프사 없어서?”

득용의 말에 지호가 새로운 친구 목록에 떠오른 ‘솔’의 프로필을 눌렀다. 기본 배경에 기본 프로필 사진. 정직하게 이름 ‘성솔’ 두 글자를 제외하고는 아무런 정보도 없었다.

“지호 형이랑요?”

“아, 내가 전에 있던 회사는 핸드폰 아예 못 쓰게 했거든. 그래서 핸드폰 잘 안 봐, 안 쓰고. 그러니까 급한 일 있으면 나보단 득용이나 가람이한테 해. 아니면 영호 형이나 태오? 아무튼 나 빼고.”

솔은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연습하면서 얼핏얼핏, 지호가 원래 다른 회사의 연습생이었던 적이 있다는 말을 듣기는 했다.

“먼저 들어갈게요. 연락하면 득용이랑 데리러 올게요.”

“네. 그럴게요.”

잠시간의 소란 후에 세 사람이 먼저 연습실을 떠나자 태오와 솔 단둘이 남았다. 멤버들이 떠난 빈자리에 드문드문 남은 흔적을 태오가 지워 내는 사이 솔은 핸드폰의 전화번호부 목록을 확인했다. 영호와 얼굴 모르는 실장의 번호 외에 네 사람의 번호가 추가되었다. 텅 빈 메신저 창에도 단체 메시지 방이 자리를 잡았다.

DK : 태오 형, 들어올 때 아이스크림 하나만요

멤버들의 메신저 프로필을 하나하나 확인해 보던 솔의 핸드폰에 새로운 알림이 떠올랐다. 득용이 태오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청소하는 중인 태오는 보지 못했다.

“득용 씨가 아이스크림 사다 달래요.”

말을 거는 법을 연습 중이었다. 솔이 먼저 용기를 내어 득용이 보낸 메시지를 태오에게 읽어 주었다. 태오는 잠시 움직이던 손을 멈추고 솔을 슬쩍 돌아보았다. 고요할 정도로 무표정해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영 갈피를 잡을 수 없었다.

“안 된다고 단호하게 말해요.”

솔은 고개를 끄덕이고 태오의 말을 그대로 입력했다.

“태오야!”

영호의 밝은 목소리가 연습실 안을 울렸다. 작은 크로스 백을 멘 영호는 연습실 문을 빼꼼 열고 태오와 솔에게 손 인사를 했다. 태오가 알은체를 하고 부지런히 짐을 챙겼다. 오늘 그의 짐이 뭔가 많다고 했더니 다 이유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오셨어요? 다 했어요. 잠시만요.”

“그래. 솔이 남아서 연습할 거라며? 태오 데려다주고 내가 바로 올게.”

“괜찮아요. 가람…한테 연락하기로 했어요.”

“아, 그래? 애들이 데리러 온대? 그럼 태오도 걱정 없고 좋지.”

“다 했어요. 형.”

“어어, 그래. 시동 걸어 둘게.”

태오가 뒷정리를 끝냈는지, 쇼핑백과 검은 가방을 둘러멨다. 영호는 홀로 남은 솔에게 다시 한번 손을 흔들어 보이고는 자동차 열쇠를 흔들며 먼저 연습실을 나섰다. 입구로 걸어가던 태오가 문득 걸음을 멈춰 솔과 눈을 맞췄다. 눈 마주치는 것이 아직 어색해 슬쩍 시선을 피하자 태오가 말을 이었다.

“……너무 무리하지 말고 적당히 하고 들어가요. 꼭 강가람이랑 득용이 불러서 같이 가고요.”

“그럴게요.”

멈춰 선 태오는 다시 한번 솔에게 당부했다. 알겠다고 솔이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태오는 다시 한번 누차 ‘꼭’ 연락하란 말을 남기고 연습실에서 떠나갔다. 혼자가 되니 연습실이 갑자기 공허하게 느껴졌다. 조금 전까지 열기로 가득 차 있었는데. 솔은 늦은 저녁도 먹고 조금 쉬며 피로도를 낮추었다가 다시 연습할 생각으로 회사에 있는 구내식당으로 걸음을 옮겼다.

대학에 다닐 때도 학교 식당의 법석임이 싫어 다닌 적 없는 솔이었다. 하지만 아직 이곳 지리에 익숙하지 않은 상태에서 돈도 없었고, 함부로 돌아다닐 수가 없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구내식당으로 오니 이미 식당이 마감된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구비된 컵라면이나 레토르트 혹은 배달 음식으로 늦은 저녁 식사를 해결하는 이가 많았다. 그래도 며칠 멤버들과 함께 들락날락하며 이곳에 익숙해진 터라 다행이었다.

솔이 홀로 컵라면으로 끼니를 대충 때우는 중, 어둑한 그림자가 그의 위로 드리워졌다. 커다란 그림자가 드리워지는 것에 조금 위협감을 느낀 솔이 몸을 움찔하며 고개를 들었다.

“안녕. 솔.”

“안녕하세요. 선배님.”

“아니 잠깐만, 얼굴이 왜 이래? 누가 너 패?”

“그런 거 아니고 넘어졌어요. 괜찮아요.”

모처럼 만에 보는 은겸이었는데 역시나 솔의 얼굴을 보자마자 이마의 새카맣게 든 멍 이야기부터 튀어나왔다. 솔은 덤덤히 웃으며 다른 선배 가수들에게 그간 멤버들과 그러했듯이,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했다. 친구 사이에는 어울리지 않는 나름 예의를 차린 인사에 은겸이 이를 만류했다.

“왜 이래, 우리 친구 하기로 했잖아. 이러니까 나 꼰대 같아지잖아.”

“어, 어…. 네….”

“와, 나 얘 처음 봐. 얼굴 진짜 작다.”

“안녕하세요.”

은겸의 말에 솔이 그의 일행의 눈치를 살피며 흐릿하게 미소 지었다. 은겸이 솔의 옆에 앉자 다들 솔에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곤 주변에 둘러앉았다.

“얘넨 신경 쓰지 마. 그런데 왜 혼자야?”

“아, 태오…랑 연습하려 했는데, 일이 있어서 먼저 갔어요.”

“그래? 아, 오늘 병원 가는 날이던가?”

“병원이요?”

솔의 대답을 들은 은겸은 챙겨 온 과일을 집어 먹으며 혼잣말하듯, 웅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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