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
우렁찬 소리에 고개를 들어 득용을 바라본 솔은, 득용의 손가락이 자신을 향해 있음에 움찔하며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얼굴 왜 그래요? 안 일어나서 태오 형이 때렸어요?”
“김득용 미쳤나. 태오가 그럴 애야?”
“하긴, 우리 태오 형이 그럴 리가 없지.”
득용과 지호의 말에 태오의 어깨가 조금 움찔거렸다. 솔은 황급히 다시 머리카락을 쓸어내려 이마를 가렸다. 긴장감과 집중에 가려져 이마의 멍을 잠시 잊었었다.
“그냥 좀, 부딪혔어요.”
“우와. 멍 완전 대박.”
“솔아, 약은 발랐어?”
“아, 네네. 별거 아니에요. 괜찮아요.”
“완전 아플 것 같은데.”
“어디 좀 봐요.”
갑자기 솔에게로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새삼스레 자신에게 몰리는 네 쌍의 눈동자에 솔은 자라처럼 목을 한껏 움츠렸다. 어찌 되었든 지은 죄가 있었던 태오만 아무 말 없이 팔짱을 끼고 서 있을 뿐, 지호를 비롯한 득용은 스스럼없이 솔에게로 다가왔다.
“머리 좀 잘라야겠다. 가리고 있어서 전혀 몰랐네.”
늦게나마 가려 보았지만 이미 한차례 인지하고 나자 솔은 거울로 제 얼굴에서 그 부위만 눈에 들어왔다. 젖은 머리카락이 얼기설기 이마를 가려 제대로 멍을 가려 주지도 못했다.
“뭘 어디에 부딪혀야 저렇게 되는 거예요?”
“심한데…. 빠지려면 오래 걸리겠어.”
“어제 안 그랬던 거 같은데, 언제 그런 거야?”
자신을 대하는 세 사람의 태도가 무엇인가 아주 미묘하게 달라졌다. 그 위화감과 어색함에 솔은 세 사람의 시선을 피해 얼굴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각자 한 마디씩 해도 세 마디로 돌아왔다. 아직 ‘비운의 무용수’가 활성화되어 있는 상태로 긴장감이 채 가시지 않았는데 저에게로 관심이 쏟아지자 솔은 정신이 없었다. 세 사람의 물음에 대답도 못 하고 솔은 갈 곳을 잃은 아이처럼 갈팡질팡, 발을 굴렀다.
“괜찮대요.”
보다 못한 태오가 끼어들었으나 세 사람의 시선은 여전히 솔에게로 쏠려 있었다.
“하나도 안 괜찮아 보였거든. 근데 솔아, 진짜 머리 좀 잘라야겠다.”
“어…. 그, 나중에 시간 날 때 자를게요.”
“땀에 다 젖었는데, 그냥 묶을래?”
땀에 푹 젖어 뭉친 머리카락과 그 사이로 보이는 이마의 멍이 신경 쓰여 솔이 계속 매만지자 가람이 손목에 차고 있던 고무줄을 내밀었다. 남자애가 왜 이런 걸 가지고 있나 했으나 솔은 조금 긴 가람의 머리카락을 보며 수긍했다. 그간 딱히 별달리 활동이 없어서 못 느꼈는데, 관리가 잘 안 된 긴 머리는 여러모로 불편했다.
예를 들면 지금처럼 땀에 젖어 얼굴에 달라붙어 간지러웠고. 춤을 출 때 크게 움직이면 머리카락이 얼굴을 찔러 따가웠다. 그리고 사실 대인 관계에도 썩 도움이 되지 않았다. 덥수룩하고 너저분해 첫인상을 깎아 먹는 것은 당연했고 늘 어두침침하게 다니니 대화의 단절을 불러오기도 했다. 사실 정확하게 그 용도를 위해 기른 머리였다. 일종의 차단막. 막이 내린 무대 위의 커튼처럼 자신을 가리는 커튼이었다.
강제되었든 무슨 상황이든 간에 어쨌든 이제는 다시 공연을 시작해야 하니 막을 올려야 했다. 솔은 가람이 건네는 고무줄을 잡아 머리를 설렁하게 묶었다. 아무리 길다, 길다고 해도 그래 봤자 간신히 단발이 된 머리카락이 고무줄 사이로 흘러나와 다시 앞을 가렸다. 삐져나오는 머리를 몇 번 쓸어 넘기자 보다 못한 지호가 손을 걷어붙이고 나섰다. 처음 머리를 묶어 보는 손길이 서툴렀다.
“앉아 봐!”
털썩 앉은 지호는 바닥을 손바닥으로 탁탁, 두어 번 두들겼다. 여전히 정신이 빠져 있는 솔은 지호의 부름에 어리바리한 모습으로 다가갔다. 피하기도 전에 덥석 손목을 붙잡혀 그의 앞에 끌어 앉힌 솔은 지호의 손가락이 머리카락 속을 파고들자 목을 쑥 밀어 넣었다. 삐져나오는 머리카락을 싹싹 쓸어 단단히 움켜잡은 지호는 능숙하게 고무줄을 여러 번 휘감았다. 머리를 묶어 주는 지호의 손길은 여러 번 해 본 듯 능숙했다.
“좀 났지? 하아. 속이 다 시원하네.”
지호의 물음에 솔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간 크게 거슬린다 생각하지 않았는데. 땀을 흘린 탓일까 막상 단정하게 얼굴을 드러내고 나니 세상이 환하고 시원한 느낌이었다.
“와…. 근데 진짜….”
그 모습을 바라만 보고 있던 득용이 손으로 제 얼굴을 훑는 시늉을 하며 말을 하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이 형은 진짜 이게….”
“이게 뭐, 말을 끝까지 해 김득용. 사람 오해해.”
“아니, 이 형은 진짜 얼굴이…. 끝장이라고요. 와…. 뭐라 말이 안 나오네.”
계속 반복되는 그의 행동에 보다 못한 태오가 지적하다 득용은 탄성을 내뱉으며 모두의 동의를 구했다. 가람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고 태오는 말없이 다시 팔짱을 꼈다. 솔의 뒤에서 머리를 매만져 주던 지호가 고개를 숙여 재차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사고 이후로 누군가에게 이렇게 얼굴을 조목조목 뜯겨 보기는 처음이라 영 눈을 마주치고 얼굴을 마주하는 게 어색했다.
할 말이 있는데 답답하다는 듯,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득용과 생글생글 웃으며 쳐다보는 지호와 제대로 눈을 마주치지 못해 솔은 연신 눈동자를 굴렸다. 눈에 띄게 불편해하는 게 티가 나자 지호가 이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가 불편해한다는 걸 알면서도 더 빤히, 가까이서 바라본 듯했다. 성격이 퍽 안 좋았다.
“근데 진짜 잘생기긴 했다.”
남자보단 여자가 더 많은 사회에 속해 있었기에 제 얼굴이 퍽 나쁘지 않게 생겼다는 걸 솔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대놓고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칭찬하는 것은 익숙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자신보고 잘생겼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얼굴이 저보다 더 화려한 경우는 쉬이 겪어 볼 수 없는 일이었다.
“아니지. 이건 이쁜 건가?”
“이따가 트레이너 선생님들이 뭐라 하면 그냥 한번 웃어 봐요.”
어색했지만 이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조금 벽이 허물어지고 가까워진 기분. 다만 노골적으로 얼굴에 쏟아지는 시선에 솔은 민망해 이마를 슬쩍 가렸다. 시커멓게 남은 멍이 좋아 보일 리가 없었다.
“웃어요?”
득용의 말에 솔이 특유의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렇게 말고. 지호 형처럼 이렇게 씨익.”
“이렇게요?”
솔은 다시 한번 지호와 득용을 번갈아 보며 웃어 보였지만 득용은 그럴수록 더욱 답답해했다. 지호가 자신을 따라 해 보라는 듯, 아이처럼 방긋방긋 해맑게 웃었다. 따라 하는 솔은 어쩐지 얼굴에 경련이 일 것 같았다.
“와. 이 형. 웃는 거도 연습해야 하나 봐요. 왜 이렇게 어색하게 웃는 거예요?”
득용의 말에 솔의 표정이 더욱 이상해졌다. 매번 이 어색하기 짝이 없는 웃음으로 상황을 넘기다 보니 얼굴에 배어 버렸다. 소리 내 진짜로 웃어 본 게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았다. 얼굴이 뻣뻣한 가죽을 뒤집어쓴 것같이 느껴졌다.
“솔아. 잘 봐 봐. 입꼬리를 이런 식으로.”
“입보단 눈이 문제인 거 같은데.”
지호가 동그랗게 말린 제 입꼬리를 가리키며 말하자 게슴츠레한 눈으로 쳐다보던 가람도 한마디를 거들었다. 지호의 입매는 고양이나 강아지처럼 둥글게 말려 동글동글 귀여운 느낌이 났다. 살면서 짝사랑한다는 주환의 입술도 이렇게 뚫어져라 쳐다본 적이 없었다. 솔은 지호가 시키는 대로 입술 끝에 힘을 주고 끌어 올려 보았다.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세 사람의 표정이 영 떨떠름한 게 그 결과물이 썩 만족스러운 것 같진 않았다.
“얼굴이 아깝네.”
결국 득용이 참지 못하고 속으로 되뇌던 말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 이에 지호도 공감하는지 ‘풉’ 하는 소리와 함께 입을 틀어막았다. 솔의 뺨이 조금 붉어졌다.
“점심시간 이제 끝났어요. 다들 움직여요.”
조금 민망해지려던 찰나, 태오가 타이밍 좋게 끼어들었다. 솔은 고개를 들어 팔짱을 낀 채 서 있는 그를 올려다보았다. 태오는 묘하게 끼어드는 타이밍이 좋았다. 늘 어색해지거나 불편해질 거 같은 타이밍에 파고들어 와 대화의 흐름을 끊었다. 뭔가를 알고 끼어드는 건지, 솔은 미묘한 시선으로 태오를 바라보았다.
“잠깐만, 태오야. 이거 잘하면 까임방지권이 될 수 있다고!”
“그럴 시간에 연습하면 까일 일도 없어요.”
“거. 윤 리더 씨 참 야박하네.”
태오의 방해에 득용과 지호가 아우성을 쳤다. 무슨 까임방지권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가람이 은근슬쩍 뒤에서 솔만 들리게 작게 속삭였다. ‘불리할 땐 웃어요.’
“그나저나 솔이 너도 조심해야겠다.”
“뭘요?”
“사생 같은 거 말이에요. 악개.”
“악개?”
툭툭, 엉덩이를 털며 자리에서 일어난 지호가 솔에게 툭 말을 던졌다. 솔이 지호에게 되물었지만 정작 대답은 득용이 했다. 마땅히 인터넷을 하지도 않았고 무용 학원이 인생 전반을 보낸 공간인 솔에게는 낯선 단어가 등장했다.
“그 예전에 가람 형이….”
“나중에 따로 얘기하고 연습하자.”
솔이 모르는 듯, 고개를 기울이자 득용이 이어 설명했다. 느닷없는 가람의 이름이 언급되어 그를 바라보니 태오가 또다시 끼어들었다. 조금 전엔 다분히 고의로 말을 자른 것이 티가 났다. 솔은 다시금 묘한 시선으로 태오를 바라보았다.
눈을 게슴츠레 뜨고 느른하게 늘어져 있던 가람의 표정이 대번 굳는 것이 보이자마자였다. 그간 사람의 표정을 이렇게 가까이서 빤히 본 적이 없어 미처 깨닫지 못했는데 자신처럼 발끝에서 몰려오는 부정적인 감정에 가람의 몸이 굳는 것이 느껴졌다. 동질감 같은 거라도 느끼는 걸까. 아주 찰나의 반응이었는데 그의 변화가 퍽 익숙한 것이라 그런 듯했다.
“네엡.”
득용도 실수했다는 듯이 냉큼 입을 다물었다. 이 자리에 모인 네 사람 모두 조금 전 화두에 대해 그다지 언급하고 싶지 않은 것이 피부로 따끔하게 와닿았다.
“숙소 가는 길에 설명해 줄게요. 항상 같이 다니면 큰 문제 없을 거예요.”
“어어. 네…. 네. 그, 제가 계속 가운데 서나요?”
“그러는 게 좋을 거 같네요. 센터는 동선까지 다 파악한 거 같던데.”
“얼추요. 대충 다 딴 거 같긴 한데…. 잘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요.”
자신을 올려다보는 솔의 시선을 느꼈는지 태오가 덤덤한 표정으로 상황을 정리했다. 솔은 어수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개를 끄덕일 때마다 통통 튀며 흔들리는 꽁지머리가 어색했다.
“아까 봤다시피 제가 좀….”
모여 있었던 멤버들이 하나둘, 일어나 제 자리로 흩어졌다. 마땅히 뒤를 이을 적당한 단어를 찾지 못한 솔은 말끝을 흐렸다. ‘제가 좀….’ 뒤에 무슨 말을 붙여야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