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솔의 외모는 어디든 노출되면 화제가 되기에 그야말로 완벽한 외모였다. 그간 연습생 생활하며 같은 연생이든 관계자에게든 ‘뭘 해도 될 외모다.’라는 소리를 들었던 태오조차 어제 잠깐 보았던 솔의 얼굴 앞에 무안해질 정도였다.
카메라 테스트에서 성솔이 낮은 점수를 받을 일이 있을까? 흔히들 실물보다 카메라에서 더 잘 잡히는 얼굴이 있다고 말하곤 하지만 그건 어중간할 때나 하는 말이었다. 성솔 정도로 수려하면 사실 카메라든 뭐든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짜증과 조바심이 일었던 것마저 싹 잊고 모두 할 말을 잃게 했던 외모였다.
얼굴 하나로 먹고살 수 있다는 말은 솔 같은 사람을 보고 하는 말이라고 태오는 속으로 감탄했다. 이런 외모를 가진 사람이 그간 연예계에 발을 안 담글 수 있었다는 것 자체가 신기할 지경이었다. 대체 어디서 뭘 하고 살았단 말인가? 그런 솔의 얼굴에 새카만 멍 자국이 나 있었다. 본의 아니게 솔을 쥐어박은 것도 쥐어박은 거지만 태오는 이마의 반이 멍이고 눈썹이 움직여지지 않을 정도로 부어오른 그의 얼굴짝에 더욱 당황했다.
태오의 사과에도 솔의 까만 눈동자가 촉촉하다 못해 흥건해졌다. 눈꺼풀만 한 번 깜빡이면 눈물을 와르르 쏟아 낼 것처럼 물기가 가득한 눈동자에는 원망이 가득 담겨 있었다. 눈앞에 펼쳐진 당혹스러운 상황에 태오가 잠깐 당황한 사이, 솔은 문을 가로막고 서 있는 그를 스치듯 비켜나 성큼성큼 걸음을 옮겼다. 얻어맞은 곳과 이마가 아직도 아파 왔지만, 그보다 더 큰 서러움에 솔은 울지 않으려 눈에 힘을 줘 부릅떴다.
여기선 울어 봤자 제 응석을 받아 줄 주환도 울지 말라고 잔소리를 쏟아 낼 줄 의찬도 없었다. 저를 썩 달갑지 않아 하는 사람 앞에서 울고 싶지도 않았다. 솔은 눈에 더더욱 힘을 주고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드레스 룸의 문을 벌컥 열었다.
짐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제 옷가지를 챙기러 드레스 룸에 들어온 솔은 어제와는 다른 모습에 당황했다. 분명 어제는 의류 매장처럼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는데 하룻밤 사이에 드레스 룸은 태풍이 휩쓸고 지나간 모양새가 되어 있었다. 바닥에 마구 널브러져 있는 옷가지를 슬쩍 밀어내고 솔은 제 짐이 담긴 상자를 뒤적거렸다. 눈을 깜빡이면 손에 든 티셔츠에 얼룩이 생길 것 같았다. 손에 든 옷가지가 겨울옷이라 부르기 무색할 만큼 얇고 부실했다.
“저기요!”
솔이 이를 악물고 상의를 벗어 던진 순간, 드레스 룸의 문이 열리고 태오가 들어왔다. 다급히 방으로 따라 들어왔던 태오는 제 눈앞에 놓인 새하얀 상체에 황급히 등을 돌렸다.
“미안합니다.”
솔에게서 돌아선 태오는 이마를 짚었다. 고작 속살 따위 본 걸 사과하려 따라 들어온 게 아니었다.
“조금 전에 때린 거 말입니다.”
“…네.”
“실수였습니다.”
“네.”
“갑자기 들어온 것도 미안합니다.”
“네.”
태오의 사과에 솔은 앵무새처럼 같은 말만 반복했다. 무어라 말을 더 얹으면 어린애처럼 눈물을 펑펑 쏟아 낼 것 같아서였다. 앵무새처럼 ‘네’만 반복하는 솔의 어조는 그 글썽이는 눈가와 달리 꽤나 단호했다. 솔은 일부러 태오에게 시선의 끝조차 내어 주지 않았다. 언제부터 그리 열심히 했다고 묵묵히 옷을 갈아입는 솔을 태오는 슬쩍 돌아보았다.
“이마 어떻게 된 겁니까?”
분명 어제 연습실에서 만났을 땐 멀쩡했던 면상이었다. 컨디션이 안 좋아 보인다 싶을 뿐, 멀쩡했던 얼굴이었는데 잘못 보았을 리도 없었다.
“뭐가요.”
“병원부터 가 보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괜찮아요. 별로 크게 다친 것도 아니고 내버려 두면 나아요.”
“안 괜찮아 보이니까 하는 말입니다.”
살을 에는 날씨에 얇디얇은 티셔츠 하나를 입는 솔을 보며 태오는 어제 연습실 앞, 화장실을 다녀왔던 그의 모습을 떠올렸다. 옷자락에 묻어 있던 핏자국이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
“다친 거면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게.”
“이봐요.”
“네.”
“저 별로시죠?”
“……좋다고는 할 수는 없죠.”
“제가 그냥 그쪽 데뷔에 걸리적거리지만 않으면 되는 거잖아요.”
태오가 여러 번 했을 잔소리는 흐릿한데 이상하게 그 말만 또렷하게 기억에 남았다.
‘그쪽이 또 나가고 새로운 사람이 들어와야 하거나 그런 변동 사항이 생기는 게 싫다는 거예요.’
솔은 머릿속에 떠오른 태오의 말에, 태오는 솔이 조금 전 뱉은 말에. 두 사람은 얼굴을 와락 구겼다.
실수였던 뭐든 주먹을 내지른 건 제 잘못이 맞았지만, 엄연히 따지자면 지금 이 상황에 짜증을 내야 하는 건 태오였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시작했던 연습생 생활, 좁은 집에 20여 명의 남자와 부대껴 지내던 시절도 있었지만, 그 긴 기간 동안 태오는 단 한 번의 지각도 한 적이 없었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귀한 1분, 1초. 그 시간의 주인이 혼자서 시간을 어찌 보내던 알 바가 아니었지만, 공동체 생활이라면 말이 달랐다. 당장 지금만 해도 성솔의 늦잠으로 태오 자신이 벌써 50분을 손해 보고 있지 않은가. 그래도 최소한의 호의였다. 이대로 솔을 내버려 두고 홀로 연습실에 가고 안절부절못하는 영호에게 ‘성솔? 모르겠는데요?’ 해 버려도 잔소리 몇 마디 듣고 끝날 것이었다.
일어나지 않는 그를 깨우며 인내심이 몇 번 바닥을 치기도 했다. 그럼에도 익숙하지도 않은 숙소와 연습실, 홀로 늦게 일어나 텅 빈 숙소에서 허둥지둥할 그를 배려해, 최소한의 호의로 지금 이 자리를 지키고 서 있는 태오였다. 눈앞에 아픈 사람이 있다면 걱정하는 게 최소한의 도리 아닌가?
태오는 제 공감 능력이 퍽 좋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학습 능력은 있었다. 적어도 사람의 탈을 쓰고 있다면 눈앞에 얼굴 반쪽이 멍든 사람을 보고 괜찮냐고 걱정하는 시늉은 해야 한다고 배웠다. 그 시늉의 대가가 불퉁한 솔의 말이었다.
“그러게요. 다른 친구들 챙기는 게 습관이 되어서.”
몇 가지 되지도 않는 옷을 연신 뒤적거리는 솔의 정수리를 태오는 지긋이 쳐다보았다. 얼굴이라도 마주치면 제 불편한 심사를 한껏 드러내려 했는데 얼굴이 마주치기는커녕, 솔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태오는 자세를 삐딱하게 고쳐 섰다. 태오 딴에는 나름 애를 쓰는 중이었다.
원래 말을 많이 하는 것을 좋아하지도 않고 남에게 구구절절 사정을 설명할 정도로 사근사근한 성격도 아니었다. 다섯 번, 아이돌에게 관심이라고는 조금도 없는 이상한 후보들이 다섯 번, 긴 흉터를 남기고 사라졌다. 조별 과제에 무임승차한 걸로도 모자라 조원을 내쫓는 문제아를 누군가는 컨트롤해야 했다.
조장이라는 딱지를 달고 멘탈 터진 조원들을 추스르고 무임승차라도 좋으니 가만히 타고만 있어라, 멱살을 잡고 끌고 온 게 다섯 번이었다. 날이 선 말을 하루에도 열천 번 쏟아 내고 싶어지는 걸 애써 참으며 친절히 운전대를 잡고 안전 운전을 해 주겠다는데 자꾸만 사람을 살살 긁어 댔다.
“그럼 그쪽 친구들이나 챙겨요. 나한테 괜한 신경 쓰지 말고.”
“얼굴로 먹고살아야 하는데 그 얼굴에 문제가 생긴 거잖아요? 안 걸리적거릴 수가 있나.”
미세하게 찡그려졌던 태오의 눈썹이 금세 제자리로 돌아간 것에 비해 솔의 날 선 표정은 쉬이 풀리지 않았다. 태오의 반박에 할 말이 없어진 솔은 애꿎은 제 옷가지만 흩트렸다. 검은 바지를 움켜잡고 솔은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더 이상 할 말은 없었다. 뭐라도 한마디라도 더 이어 붙이면 정말 울음을 터뜨릴 것 같았다. 무슨 말을 하든 세상 아이처럼 울면 결국엔 유치해질 것 같아 결국 고개를 들어 태오를 노려보았다. 속눈썹이 길어 여리고 서늘한 느낌을 주는 눈에 답지 않게 강한 감정이 실렸다.
“바지 갈아입어야 하니까 나가 주세요.”
“그러죠.”
태오는 두 번 묻지 않았다. 본인이 신경 꺼 달라는데 구태여 괜찮냐며 병원에 가자, 안달복달할 일은 없었다. 퍽 사이가 좋은 것도 아니고 사이가 좋을 만큼 시간을 보낸 것도 아니었다. 솔의 말대로 신경 끄고 비즈니스적으로 대하면 될 일이었다. 지난 몇 년간 사람들을 챙기는데 이골이 났지만 본래 태오에겐 그렇게 형식적인 것이 편했다.
태오는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이 매정하게 드레스 룸을 나섰다. 혼자 남은 솔은 주섬주섬 옷을 갈아입고 거울에 제 모습을 비춰 보았다.
상자에 아무렇게나 처박아서 구깃구깃한 티셔츠, 무릎 나오기 일보 직전인 검은 바지. 단벌 신사나 마찬가지인 솔에게 있는 그나마 깔끔한 옷이었다. 거울 속에 비친 축 처진 남자가 불편한 기색으로 서 있었다. 계절감이라곤 상실한 얇은 티셔츠가 신경이 쓰여 여러 벌 겹쳐 입었더니 옷걸이가 좋음에도 영 모양새가 나지 않았다. 마치 입고 싶지 않은 옷을 꾸역꾸역 입고 선 듯한 모습이었다.
이제부턴 방구석 폐인이 아니라 아이돌 연습생이 되어야 하는데 이런 모습으로 괜찮을까 싶었다. 일말의 양심이랄까, 번듯하고 빛나던 다른 네 명이 떠올라 솔은 엉망으로 흐트러진 머리를 손으로 빗어 가르마를 타 보았다.
가려져 있던 허여멀건 얼굴이 드러나니 조금 전보다는 덜 음침해 보였지만 이마에 커다랗게 남은 멍이 신경이 쓰였다. 새삼 거울에 비춰 보니 태오가 놀랄 만도 했다. 꼴이 영 우스웠다. 멍 자국을 가리려 다시 앞머리로 얼굴을 덮었던 눈이 안 보인다고 했던 지호와 디케이의 말이 떠올라 다시 가르마를 탔다 덮기를 반복했다. 옷 갈아입는다고 축객령을 내렸던 솔은 또 한차례 꾸무럭거렸다.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의 기분을 구태여 알고 싶진 않았지만 걸음을 옮기는 솔의 심정이 딱 그러했다. 연습실에 가는 것 자체보단 혹 연습실에 갔다가 목숨을 건 퀘스트가 새로 진행이 될까 두려운 것이었다.
그런 솔의 마음과 다르게 지각 때문일까, 태오의 걸음은 유독 빨랐다. 솔이 느린 것도 있었지만 지난밤 걸음을 맞춰 주던 가람과 달리 태오는 오히려 더 빨리 걸었다. 아직 길을 다 외우지 못해 혹 태오를 놓칠까 솔은 부지런하게 그의 뒤를 따라 걸었다. 이미 해가 중천이었지만 바람이 차 몸을 둥글게 웅크린 솔은 얇은 점퍼를 여미며 연신 다리를 움직였다.
부지런히 앞서가던 태오가 문득 자리에 멈춰서 뒤를 돌아보자 솔은 자라처럼 목을 움츠렸다. 한 번 얻어맞아 본 자의 자동적인 반응이었다. 생각보다 얻어맞은 자리가 꽤 아팠다. 태오는 솔의 모습을 보고 살짝 인상을 찌푸리더니 제가 쓰고 있던 모자를 벗어 그의 머리에 얹어 주었다. 아무런 디테일도 없는 심플한 검정 버킷 햇이었다.
“다음부턴 모자라도 쓰고 나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