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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를 뽑고 싶어-10화 (10/192)

#10

솔의 기준에서야 엉망진창이었지 솔의 움직임은 일반인이 보아도 평범하지 않았다. 움직임 하나하나 몸이 깃털처럼 가벼웠고 매끄럽고, 수려하게 움직였다. 하물며 퍼포먼스를 담당하고 있는 태오의 눈에는 그 잠깐의 짧은 동작에도 솔의 발끝, 손끝 하나의 처리, 그의 몸에 밴 흔적들이 보였다. 솔의 움직임에 집중하고 있었기에 그가 중심을 잃은 것에도 빠르게 반응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궁금했다. 솔이 보여 준 움직임은 아주 오래도록 무용에 충실했던 ‘무용수’가 보여 줄 수 있는 움직임이었다. 순수 무용에 있어 전문가는 아니었지만, 태오의 눈에도 솔은 생각 이상으로 실력이 있었다. 매니저 영호를 통해 무용을 했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이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었다. 그렇기에 이 정도로 몰두했던 일을 그만두고 갑작스레 이 세계에 뛰어든 이유가 더욱이 궁금하여 태오는 넌지시 물었다.

“꽤 본격적이었던 거 같아서 물어본 거예요.”

“……그냥 하기 싫어서요.”

“…….”

예상치 못한 대답이었는지 태오가 입을 다물었다. 솔을 바라보고 있던 네 사람의 눈동자가 빠르게 서로 교차했다. 그 은근한 분위기와 침묵에 솔은 쓴웃음을 지었다. 딱히 틀린 말도 아니었다. 넘어지는 것이, 아픈 것이, 실수하는 것이 무서워져 더 이상 춤을 출 수 없고 그 상황이 싫어져서 포기한 것이니 엄밀히 말하면 무용이 하기 싫어져서 그만둔 게 맞았다.

의학적으로나 기술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니 마음가짐의 문제였다. 정말로 하고 싶고 절박했다면 지금쯤 이를 악물고 재활을 하고 극복하려 안간힘을 썼을 것이다. 딱 그 정도, 이렇게 그만두고 폐인 생활을 할 만큼의 마음가짐이었으니 포기한 것이다. 어색한 침묵에 솔은 더욱 활짝 웃었다.

입꼬리는 한껏 올라갔지만, 머리카락에 가려진 눈은 그렇지 못했다. 아직 가시지 않은 불안감에 까만 눈동자는 촛불처럼 흔들렸고 숨은 여전히 거칠었다.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솔은 다시금 철퍼덕 바닥에 주저앉았다. 손가락 하나 까닥하기 싫을 정도로 피로했고 다리가 말을 듣지 않았다.

“괜찮은 거 맞아요?”

“네. 진짜 괜찮아요. 신경 쓰지 말아요.”

“……일단 오늘은 쉬는 게 좋을 거 같은데, 숙소에 먼저 들어갈래요?”

“제가 영호 형 불러올까요?”

“진짜. 괜찮아요. 그냥 조금 앉아서 쉴게요.”

“그럼 그렇게 해요. 병원 가야 하면 말하고요. 숙소 생활 하면 다 같이 움직이니까 그런 일 없겠지만 앞으로 되도록 어디든 2인 1조나 영호 형이랑 함께 다녀요. 또 시간 약속은 철저하게 지켜 줬으면 하고요.”

“아. 네.”

여러 차례 솔이 괜찮다 거듭 말하자 태오는 여상한 어조로 주의 사항 몇 가지를 알려 주었다. ‘시간 약속’을 언급할 땐 조금 눈초리가 매서웠지만, 솔은 그런 것 따위 신경을 쓸 여력이 없었다. 완전히 지쳐 버린 솔은 고개를 푸욱 숙이고 태오의 말에 대충 고개를 끄덕이는 시늉을 했다.

이마를 타고 흘러내린 식은땀이 그가 머리를 흔들 때마다 똑, 똑 연습실 마룻바닥에 떨어졌다. 누가 봐도 건성으로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에 사나운 인상을 한 디케이의 눈썹이 계속 씰룩거렸다. 그는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입을 삐죽 내밀며 태오의 뒤에서 웃고 있는 지호를 바라보았다. 대화는 없었지만, 눈빛 사이로 주고받는 신호들이 존재했다. 고개를 푹 숙인 솔은 그들의 모습을 보지 못했고 딱히 봐도 별달리 상관도 없었다.

“일단 쉬어요. 그리고 다음부터 몸이 안 좋으면 확실하게 안 좋다고 말해요.”

솔은 고개를 들어 태오를 바라보았다. 잘생긴 얼굴이었지만 그 표정은 지나치게 덤덤했다. 곰곰이 따져 보면 태오는 솔을 은근히 배려하고 신경 쓰고 있었다. 넘어지려 하는 것을 막아 준 것도 태오였고, 조금 전 복도에서도, 아이스 팩을 건네다 손끝이 닿았을 때도, 이상한 솔의 상태를 눈치채고 먼저 피한 것도 태오였다. 그런데도 배려나 걱정시키고 있다는 기분이 조금도 들지 않고 아주 형식적인 일종의 책임감만 느껴졌다.

조금 예민한 부분이 없잖아 있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사실 지금까지 솔이 보여 준 행동은 치기 어린 사내놈을 자극해 싸움질하기 딱 좋았다. 실제로 그의 옆에 서 있는 디케이는 계속해서 눈을 부라리며 계속 바닥을 발로 차며 불만을 표시하고 있었다. 옆에서 도지호가 한 번씩 찍어 누르지 않았으면 치기 어린 열여덟 살은 솔을 들이받았을지도 몰랐다. 실제로 인상도 들이받을 것처럼 생겼다.

“나는 빨리 데뷔하고 싶어요. 더는 멤버 변동이 생기고 데뷔가 미뤄지는 건 사양하고 싶고요.”

“그래서요?”

“그쪽이 또 나가고 새로운 사람이 들어와야 하거나 그런 변동 사항이 생기는 게 싫다는 거예요.”

“제가 나가고 그냥 이렇게 넷이 데뷔하면 되잖아요.”

“그게 됐으면 우리가 왜 이러고 있겠냐고요.”

“득용아. 나중에 얘기해.”

“지호 형도 태오 형도 왜 나한테만 그래요.”

“김득용.”

중간에 디케이의 모난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천방지축으로 날뛰는 강아지를 엄하게 꾸짖듯 지호와 태오가 동시에 그를 보며 ‘득용’이란 이름을 불렀다. 전부터 두 사람이 ‘김득용’이란 이름으로 디케이를 부르는데 아마도 그게 그의 본명인듯했다. 엄한 형들의 꾸짖음에 디케이는 입을 불뚝 내밀고는 털레털레 연습실 구석으로 걸어갔다.

디케이가 사라지자 태오가 다시금 차분히 가라앉은 검은 눈동자로 솔을 빤히 바라보았다. 너무도 빤히 쳐다봐 민망함에 시선을 돌릴 법도 한데 솔은 눈싸움이라도 하듯 오히려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사람보다 차라리 태오 같은 타입이 훨씬 편했다.

화를 내고 종국에 솔의 사정을 알고 나면 동정하며 불쌍해하는 눈빛보다 그냥 이렇게 시종일관 자기중심적인 사람이 상대하기 더 편했다.

솔은 대충 이 팀이 돌아가는 느낌을 알 것 같았다. 아직 치기 어린 디케이가 솔직함을 앞세운 돌발 행동을 하고 그걸 형인 지호와 리더인 태오가 적당히 잡아 준다. 태오는 말 그대로 중재자 같은 느낌이었고 지호는 은근 제 입맛에 맞게 디케이를 이용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가려운 곳을 긁어 주는 효자손 같은 용도로 말이었다.

솔은 이어 가람을 바라보았다. 태오와 비슷한 듯 너무 조용해 아리송했지만 일단 딱히 무슨 일이든 앞장서는 타입은 아닌 듯했다. 솔이 각기 다른 네 사람을 살펴보는 사이 태오가 진지한 표정으로 본론을 꺼냈다.

“아무튼 나는 그쪽까지 포함해 차질없이 빠르게 데뷔하고 싶어요. 어느 쪽으로 보나 다 같이 잘해서 잘되면 좋은 거 아닌가요.”

“그야…. 그렇죠?”

“시간은 충분하지 않고 트레이너 선생님들이 할애해 주는 시간은 짧아요. 댄스 쪽은 내가 틈틈이 봐줄게요. 노래는 지호 형이랑 가람이가 도와줄 거고요.”

태오의 말에 솔은 고개를 끄덕였다. 합당한 말이었다. 솔이 정말 이들과 데뷔를 해야 할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퀘스트가 그들과 얽혀 있는 이상 무작정 도망치거나 주어진 상황을 거부할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솔은 괜히 마음에도 없는 말을 내뱉었다.

담백하고 깔끔해 보이는 태오도 결국 성솔이란 인물을 몇 번 겪고 나면 진저리가 날 것이다. 무책임하고 시간관념 없으며 모든 일을 회피하고 나태한 폐급에 결국 두 손 두 발을 다 들고 철천지원수처럼 굴 것이었다. 자신의 빈정거림에도 무표정한 태오를 보며 솔은 문득 그가 진짜로 분노하는 모습이 궁금해졌다.

“내가 사양한다면요?”

“…….”

삐딱한 솔의 말에 태오는 잠시 생각하는 듯 침묵했다. 화를 내거나 조금 언성을 높이지 않을까 했지만 큰 변화는 없었다.

“협조할 생각 없으면 그냥 이대로 그만둔다고 그쪽이 말해 줬으면 좋겠어요.”

태오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지만 이내 고요한 수면처럼 평정을 되찾았다. 퀘스트가 완료되었는지 안 되었는지 아무런 알림이 없었다. 그만둔다고 말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랬다가 또다시 시스템 종료라도 된다면?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온몸에 공포가 엄습해 솔은 몸을 한껏 웅크렸다.

“그쪽이 무슨 사정이 있고 아이돌이 하고 싶건, 안 하고 싶건 아무 상관 없어요. 딱히 알고 싶지도 않고요. 그냥 따라올 생각만 있으면 돼요.”

솔의 입장에서 태오는 무척이나 합리적이었다. 그가 내민 제안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물론 태오의 뜻처럼 쉽게 되진 않겠지만 솔의 생각에도 당장엔 태오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 외에 더 나은 선택지는 없었다. 기업 총수끼리 협의라도 하는 것처럼 태오가 손을 내밀었다. 큼직한 손을 빤히 쳐다본 솔은 조금 망설인 끝에 태오의 손을 맞잡았다.

악수라 생각하고 태오가 내민 손을 맞잡았는데 일으켜 준다는 의미였는지 태오는 힘껏 솔을 끌어당겼다. 순간 강한 힘에 솔의 몸이 쑥 떠올랐다.

[<튜토리얼 : 댄스 신고식!> 성공]

당신은 춤 실력을 팀원들에게 보여 주고 리더의 제안을 받았습니다! 이상적인 관계는 아니지만, 합리적인 조력자가 생긴 것을 축하합니다! 튜토리얼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아이돌의 길을 걸어 보세요. <마이 아이돌 스타즈>는 앞으로의 당신을 응원합니다.

[능력치 등급 상승권 1장을 획득하셨습니다.]

[튜토리얼 완료 보상 상자를 획득하셨습니다.]

또렷하게 보이는 ‘성공’이라는 두 글자에 솔은 깊은숨을 내쉬었다. 태오에게 손을 붙잡힌 채 그를 마주하고 선 솔은 성공이란 글자 너머로 보이는 태오의 까만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짙은 눈매에 야성적인 느낌이 강한 눈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글자 너머로 보자니 검은 눈동자가 유난히도 반짝거렸다. 솔이 크게 눈을 깜빡거리자 알림 창이 빠르게 사라졌다.

저번부터 무언가를 획득했다는 알림이 뒤따라 붙었지만 이미 퀘스트로도 골치가 아픈 솔이었다. 용도를 알지도 못할 보상 따위 관심도 없었다. 그저 목숨을 건 상황이 일단락되었다는 것 외에 다른 무엇도 솔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게임에도 문외한인 그는 눈앞을 어지럽게 만드는 알림 창을 모조리 지워 버렸다.

태오가 붙잡은 손을 놓아 주자 솔은 땀으로 흥건한 제 손바닥을 바지에 벅벅 문질렀다. 얼마나 긴장하고 시달렸는지 병든 닭마냥 고개를 가눌 수도 없었고 눈이 가물거렸다.

“기본적으로 연습 시간은 10 to 10, 아침 10시부터 밤 10시까지예요. 특별한 일정 아니면 6시쯤부터 차례로 보컬, 안무 레슨 있어요.”

“…….”

“저쪽에서 잠깐 쉬고 괜찮아지면 불러요. 기초 루틴부터 알려 줄게요.”

대답할 기력도 없어 솔은 고개만 대충 끄덕였다. 여전히 고르지 못한 솔의 숨소리에 태오는 눈썹을 살짝 들어 올렸다. 과한 긴장과 트라우마 때문에 아주 짧은 안무였음에도 솔은 한눈에 보기에도 지쳐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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