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커헉!”
온몸을 짓이기듯 강타하는 충격에 솔은 그대로 차가운 타일 바닥에 패대기쳐졌다. 쓰러지며 머리를 세게 부딪힌 솔은 머릿속을 울리는 이명과 어지럼에 몸을 제대로 가눌 수가 없었다.
‘119’. 이 통증의 끝이 죽음이라는 것을 솔은 본능적으로 감지했지만 도움을 구할 수 있는 방도가 없었다. 몸은 통제를 잃었고 연락 수단조차 없었다. 심장이 터져 버릴 듯 짓이겨지는 통증이 느껴졌지만, 머리를 부딪힌 솔은 방향 감각을 잃고 바닥을 마구 더듬으며 앞으로 기어 나갔다. 차가운 바닥을 기는 그의 입술 사이로 곧 숨이 넘어갈 듯 꺽꺽대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심장이 짓이겨지는 것 같았다.
인내할 수 없는 커다란 통증에 눈물이 줄줄 흘러나왔다. 이렇게 죽을 거라면 차라리 그날, 터널에서 죽는 편이 차라리 행복했을 것이었다. 죽고 싶지 않았다. 고통도 고통이었지만, 불현듯 ‘성솔’이라는 사람이 이렇게 아무것도 남기지 못하고 허망하게 사라지는 것이 싫었다. 이렇게 죽는다면 너무 비참하지 않은가.
“헉…! 커억…컥, 살려… 주, 세… 헉!”
하얀 타일 위에 핏방울이 떨어졌다. 바닥에 쓰러지며 크게 부딪혀 상처가 생긴 것인지,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제대로 인지할 겨를도 없었다. 그저 감당할 수 없는 거대한 충격과 통증이 마치 추돌 사고처럼 솔과 충돌했을 뿐이었다. 불가항력이란 말이 딱이었다. 한때 죽고자 한 적도 있었지만 실제로 맞이하는 죽음은 너무도 무섭고 화장실 바닥처럼 차가웠다.
“흐윽…. 살려 주세…요…. 허억, 헉…!”
간신히 쥐어짜듯 내뱉은 목소리는 화장실 밖을 넘어가질 못했다. 이명이 울리는 솔의 귓가에도 제대로 닿지 않을 정도로 아주 작고 가냘픈 소리였다. 이렇게 죽는 것이다. 비참하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낯선 공간에서. 눈물이 앞을 가렸다.
불현듯 화장실에 가겠다고 말한 자신을 쳐다보던 태오의 얼굴이 떠올랐다. 팔짱을 끼고 자신이 도망치리란 걸 눈치채고 비웃던 그. 솔이 돌아오지 않는다고 해도 찾으러 오지 않을 것이었다. 시스템 종료, 그 뒤에 붙어 있던 ‘그에 상응하는 고통’은 그저 죽음이었다. 거대한 통증에 솔은 눈앞이 캄캄해졌다.
캄캄한 무대 위, 오롯하게 내려진 스포트라이트. 자신을 따라오는 동그란 빛 안에 갇히는 순간. 솔은 익숙함을 느꼈다. 초등학교 5학년, 처음으로 올라간 대예술회관의 큰 무대에서 솔은 처음이자 마지막 실수를 했다. 무대에 서면 그의 머리 위로 떨어지는 강렬한 조명과 살이 뾰족하게 솟는 긴장감에 관객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일순 머리가 백지가 되며 솔은 다음 동작을 하얗게 잊어버리고 고장 난 기계처럼 엉뚱한 위치에 자리했었다. 난생처음 한 실수에 덜컥 겁을 집어먹는 순간, 캄캄했던 관객석에서 딱 하나의 익숙한 얼굴이 그의 눈에 들어왔었다.
실수한 자신을 비웃거나 실망하지도, 놀라지도 않은 채 반짝이는 눈동자로 자신을 바라보는 엄마의 얼굴. 공연이 끝나면 저에게 안겨 줄 꽃다발을 품고 다소곳하게 앉아 있는 그녀의 얼굴을 마주하자 잠시 길을 잃었던 솔의 궤도가 제자리로 돌아왔다. 이후 솔은 자신이 어떻게 춤을 추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저 몸에 배 버린 동작을 습관처럼 되풀이했다. 무대가 끝나고 눅눅한 노란색의 복도로 숨을 헐떡이며 걸어 나오자 이제 막 열두 살이 되고 첫 무대를 선 아이가 할 수 있는 실수라며 선생님이 어깨를 두들겨 주었던 것만 기억이 났다.
그 후로 솔은 단 한 번의 실수도 한 적이 없었다. 캄캄한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무대에서 섰을 때. 늘 그렇게 반짝이고 애정을 가득 담은 엄마의 얼굴만 보였기에. 그는 반짝이는 제 모습만을 보여 주었었다. 하지만 이젠 그 얼굴이 없었다. 자신이 실수해도 그저 애정으로 지켜봐 줄 얼굴들.
그 얼굴을 잃고 나자 솔은 더는 무대에 설 수 없었다. 그가 무용을 포기한 이유는 무용이 싫었던 것도, 다시는 무대에 설 수 없을 만큼 크게 다쳐서도 아니었다. 깜빡거리는 기억력 탓도 아니었다. 그저 캄캄한 관객석이 보이는 무대에 설 때마다 세상에 홀로 남았다는 것이 재차 각인되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큰 실수를 해도 늘 내 곁에 있어 줄 아군을 잃었다는 사실이 버거웠다.
시스템의 종료와 함께 찾아온 크나큰 고통, 그 뒤에는 오롯이 홀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무대에 올랐을 때의 그 고요함과 숨 막힘이 찾아왔다.
암전.
그렇게 극 ‘성솔’의 막이 내렸다.
[시스템 재가동]
어둠이 내려앉은 무대 위에, 민트색 테두리가 밝게 빛났다. 깊은 골목길 속에 자리한 네온사인처럼 반투명한 알림 창이 환하게 빛을 발했다.
[유저 ‘성 솔’의 특성과 상황 인지력을 고려해 1시간의 시간을 재부여합니다.]
[마지막 기회입니다. <튜토리얼 : 댄스 신고식!> 을 성공하세요.]
[남은 시간 : 00:59:56]
이탈했던 솔의 궤도가 다시금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팟! 하며 정전이 되었다가 다시 전기가 돌아오듯, 몸을 짓이기던 고통이 사라지고 세상이 점점 본래의 색을 찾아갔다. 솔은 가슴을 부여잡고 ‘헉!’ 하는 소리와 함께 거친 숨을 뱉어 냈다. 잠시 끊어졌던 의식이 돌아오자 솔은 고통이 사라졌음에도 온몸을 사시나무처럼 떨었다.
‘시스템 종료’는 곧 죽음이었다. 인정하지 않고 애써 외면하고 있었던 상황이 갑작스레 피부로, 통각으로 와닿았다.
어린아이처럼 겁을 집어먹은 얼굴에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소리도 내지 못하고 하염없이 눈물만 뚝뚝 흘리며 솔은 바닥을 기었다. 통증은 사라졌지만 한번 전원이 나갔던 몸은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마치 걷는 법을 모르는 아이처럼, 실이 끊어졌던 인형처럼 솔은 바닥을 기었다. 벽에 가까이 기어가 몸을 기댄 솔은 세면대에 매달리다시피 하여 몸을 일으켜 세웠다. 의식을 잃고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감각이 없었다.
“죽는 거야…. 시스템이 종료되면 죽는 거라고….”
얼음물에 빠졌다 나온 사람처럼 온몸에 스며드는 오한에 이빨이 딱딱 맞혔다. 세면대를 구명줄처럼 붙잡고 일어선 솔은 여전히 중심을 잡지 못하고 휘청거렸다. 사시나무처럼 떨어 대는 몸이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았지만 움직여야 했다. 조금 전과 같은 일을 또 당하는 것은 사양이었다. 이가 악물렸다.
자신한테 일어나는 이 상황들이 쉽사리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의문과 반발심보다 고통은 차원이 다르게 명확했다. 조금 전 그가 겪었던 시스템 종료는 누구든 한 번 겪어 본다면 두 번 다시 겪고 싶지 않아 무슨 짓이든 할 만한 것이었다. 정말로 끔찍했다. 그리고 이로써 명확해졌다. 끝내 부정하고 인정하지 않으려 했지만, 이 모든 것들이 단순히 꿈이 아닌, 지독한 현실이라는 것이.
솔은 간신히 머리를 가눠 거울에 제 모습을 비춰 보았다. 처음 화장실에 들어왔을 때보다 더욱이 하얗게 질린 얼굴과 쓰러지며 부딪혀 빨갛게 부풀어 오른 이마, 턱을 타고 흐르는 코피가 솔을 한층 더 위태롭게 만들었다.
온몸이 아팠고 무서웠다. 도망치고 싶지만 이젠 그마저도 할 수 없었다. 세면대를 붙잡은 솔의 팔에 힘이 들어가자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것처럼 파들파들 떨렸다. 성큼 다가온 죽음에 오한이 들었다. 솔은 울음을 꾸역꾸역 삼키며 흘러내리는 코피를 닦았다. 차가운 물과 닿은 피가 창백한 얼굴 여기저기로 번졌고 이미 옷자락에 묻은 피는 갈변되어 갔다. 조용했던 화장실 안이 훌쩍이는 소리와 쏟아지는 물소리로 가득 찼다.
코를 훌쩍일 때마다 부딪힌 머리가 아팠고 이명이 울렸다. 조금 전 겪은 일이 너무도 무섭고 서러워 눈물이 빗발쳤지만, 한가로이 울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솔의 머릿속에는 온통 튜토리얼 퀘스트로 가득하였다.
‘성공해야 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성공해야 해.’
얼굴에 번진 핏물을 닦아 내고 젖은 머리카락을 거칠게 비벼 발갛게 부어오른 이마를 가렸다. 떨리는 숨과 울음을 감추려 거울을 보며 여러 번 심호흡했지만, 감정의 동요는 쉽사리 가라앉지 않았다. 방금 죽음을 겪었는데 그 어떤 이가 초연할 수 있을까. 솔은 이를 악물고 떨리는 손으로 제 심장 언저리를 꽉 눌렀다.
‘해야 해. 반드시 해내야 해.’
무언갈 이토록 해야 한다고 다짐했던 적이 언제였을까? 기억이 아득했다. 세면대에 기대고 있던 몸을 곧추세우고 솔은 위태로운 걸음을 내디뎠다. 여전히 통제되지 않는 몸이 바람 앞에 휘청이는 앙상한 나뭇가지처럼 휘적거렸다. 몇 걸음을 떼지 않아 솔은 다시금 벽을 부여잡아야 했다.
너무도 무섭고 서러웠다. 무엇보다 그 어디에도 의지할 곳이 없다는 점이 더더욱 솔의 머리를 얼어붙게 했다. 움켜쥔 손바닥이 식은땀으로 축축했다. 비틀비틀 간신히 제가 도망치듯 뛰어온 길을 되돌아간 솔은 연습실을 빠져나온 태오와 정면으로 마주쳤다. 솔은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다. 얼굴을 반쯤 가린 머리카락이 흐트러지며 붉힌 자국을 완전히 감추어 주었다.
“그렇지 않아도 지금 찾으러 가려던 참이었는데.”
“아, 네. 춤출게요.”
“이봐요. 괜찮아요?”
태오의 말에 솔은 얼빠진 사람처럼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데다 머리로 얼굴을 다 가려 제대로 표정을 볼 수 없었지만, 태오는 솔에게서 어딘가 이상함을 느꼈다. 태오는 자신을 지나쳐 연습실로 향하는 솔의 팔을 붙잡았다. 그리 힘을 세게 쥔 것도 아닌데 솔은 어디에 부딪힌 것처럼 휘청거렸다. 솔의 팔을 잡은 손바닥을 타고 미세한 떨림이 전해졌다.
“무슨 일 있어요?”
“아무 일도요. 춤춰 보라면서요. 춤출게요.”
“피….”
솔은 자꾸만 가라앉는 목소리를 애써 감추며 고저 없이 딱딱한 어조로 같은 말만 반복했다. 어쩐지 꺼림칙한 솔의 반응에 그를 찬찬히 뜯어보던 태오는 그의 상의 끝자락에 묻은 핏자국을 발견했다.
“어디 다쳤어요?”
“아뇨. 괜찮은데요.”
“……이거, 피 아니에요?”
“아닌데요. 춤춰 보라면서요. 그냥 이거 놓고 춤이나 추게 해 주세요.”
연습실 안으로 들어가려는 자신을 태오가 자꾸만 붙잡아 세우자 솔은 짜증스럽게 그의 질문을 받아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