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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를 뽑고 싶어-5화 (5/192)
  • #5

    솔은 제 앞에 내민 커다란 손을 바라보았다. 분명 악수의 의미로 내민 손이겠지만 진짜 맞잡아 주길 원해 내민 것 같아 보이진 않았다. 그의 손은 마디마디가 도드라져 길쭉하고, 예쁘면서도 남자다웠다.

    잡을까, 말까 솔은 잠시 망설였다. 손등에 얼굴이 달린 것도 아닌데 적나라한 감정이 느껴져 저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솔도 어디 가서 작다는 소리를 들을 키가 아니었는데, 그의 앞에 수문장처럼 삐딱하게 버티고 선 태오는 그를 작아 보이게 만들었다. 헐렁한 긴소매 티를 입었음에도 마치 수영 선수처럼 역삼각형으로 잘빠진 몸매가 감추어지지 않았다. 그야말로 조각 같은 몸매였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한 번쯤 뒤를 돌아볼 외모. 이런 외모를 가진 사람이 연예인을 하는구나 하며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상대의 모습에 솔은 말 그대로 순수하게 감탄하며 태오의 손을 맞잡았다. 솔이 웃으며 손과 고개를 끄덕이자 짙은 눈썹이 날카롭게 치켜 올라갔다.

    “아픈 거치고 잘 웃고, 생각보다 멀쩡해 보이네요.”

    “웃고 있긴 한 거야? 얼굴이 안 보여서 알 수가 없네.”

    불쾌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표정에도 잘생김은 여전했다. 태오의 낮은 목소리가 점점 강세를 더해 갈 때쯤, 한 발짝 물러나 있던 갈색 머리의 남자가 그의 말을 끊으며 끼어들었다. 얼빠진 자신처럼 생글생글 웃는 그를 솔은 흘깃 쳐다보았다.

    씩 올린 입꼬리와 인상이 어딘가 여우를 떠올리게 했다. 그렇다고 또 콕 집어 여우상이라고 하기엔 모호했고 여우인 척하는 강아지가 딱 맞은 생김이었다.

    단순한 물음이 아닌 명백한 비아냥거림에 솔은 그제야 손가락으로 주섬주섬 앞머리를 갈랐다. 하는 모양새가 꼭 아침에 일어나 커튼을 치는 꼴이었다. 얼굴의 반을 뒤덮고 있던 머리카락이 사라지자 솔의 시야도, 그를 둘러싼 다섯 남자의 시야도 확 트였다.

    솔은 그제야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다른 멤버들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솔의 드러난 얼굴을 확인한 멤버들도 말이 없었고,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어딘지 익숙한 얼굴을 확인한 솔도 말이 없었다. 대신 솔은 어처구니가 없어 더욱 활짝 웃었다. 서주환 닮은 캐릭터를 뽑겠다고 밤새 자신이 리셋했던 그 멤버들이 제 눈앞에 서 있었다.

    솔은 어쩌면 자신이 이렇게 된 게 순리를 거부해서 생긴 리세마라의 저주 같은 게 아닐까 싶었다.

    ‘태오’. 왜 진작 알아보지 못했을까? 잠들기 전까지 제 이를 바득 갈게 했던 일러스트와 빼다 박아 있었다. 서주환을 닮은 ‘은겸’을 뽑겠다고 눈앞이 가물가물해질 때까지 수없이 많은 태오를 리셋했다. 그리고 그 태오와 함께 매번 뽑히던 다른 카드들. 인제 와서 얼굴들을 확인하니 몰라보려야 몰라볼 수가 없을 정도로 판박이였다.

    솔은 넋이 나가 빤히 태오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야말로 ‘미남’의 정석이었다. 섬세하지만 굵은 얼굴선, 흠집 하나 없는 피부까지. 데뷔만 한다면 많은 팬의 최애픽이 되겠지만 솔에게는 그저 원망의 픽일 뿐이었다.

    게임에서조차 최애를 가지지 못하게 방해하는 방해꾼.

    자신을 뚫어져라 쳐다보는 솔의 시선을 태오가 맞받아쳤다. 그야말로 불꽃이 튄다는 서술이 걸맞게 두 사람은 서로를 맹렬히 노려보았다. 둘 사이에 아슬아슬한 줄타기처럼 팽팽한 긴장감이 맴돌자 눈치를 살피던 영호가 솔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솔아, 너도 인사해야지.”

    “아! 성솔이에요. 안녕하세요. 어…. 어. 그리고 스무 살이요.”

    말아먹은 첫인상에 말아먹은 인사였다. 매끄럽고 능숙하게 인사해도 깎여 버린 이미지에 도움이 될까인데 참 얼뜨기 같은 인사였다. 제 미숙한 인사가 부끄러워 솔은 입을 꼭 다물고 뺨을 조금 붉혔다. 말이 조금이지 사실 숨고 싶었다. 차라리 조금 전처럼 노골적인 적대나 비웃음이라도 튀어나왔으면 덜 민망했을 텐데, 멤버들 모두 아무런 말이 없었다. 결국 중간에 낀 영호가 멤버들의 이름을 하나씩 불렀다.

    “여기는 팀의 제일 큰형.”

    “안녕. 도지호라고 해. 내가 제일 형이야. 스물두 살. 음…. 그리고 일단 네가 메보 가져가는 거 아니면 내가 메인 보컬.”

    “저는 디케이라고 부르세요. 제가 제일 막내고 열여덟 살, 포지션은 랩입니다.”

    제일 맏형인 지호가 선두로 인사를 건네자 그 뒤를 따라 한 명 한 명 차례로 솔에게 인사를 건넸다. 게임 속 일러스트에서 그들은 환하게 웃고 있었는데 지금은 지호를 빼고 누구 하나 웃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나마 웃음을 머금고 있는 지호마저도 딱히 기분 좋은 웃음은 아니었다.

    열여덟 살에 막내라고 자신을 소개한 디케이(DK)는 사실 그다지 어려 보이지 않았다. 태오만큼 커다란 장신이었고 체격도 있는 편에 헤어밴드를 착용해 멀끔히 드러난 얼굴은 조금 날티가 났다. 특히나 조금 그을린 피부색이 건강한 매력을 더해 나이에 비해 더 성숙하고 태오와는 다른 위압감 같은 것을 풍겼다.

    디케이는 길에서 마주치면 눈을 내리깔게 되는, 사람을 겸허하게 만드는 분위기가 있었다. 조금 느슨해졌던 긴장감이 그와 눈을 마주치자 팽팽하게 돌아갔다.

    “스무 살, 강가람이요….”

    마지막으로 땀을 흘리며 멀찌감치 서 있던 가람이 머리를 살짝 숙여 인사를 했다. 가람은 솔 못지않은 하얀 피부에 땀을 흘리고 있는데도 어딘지 톤 다운된 느른한 느낌의 미남이었다. 더군다나 목소리도 차분해 그 분위기가 퍽 독특했다.

    솔은 네 명의 얼굴을 돌아보았다. 게임 일러스트와 똑 닮아있었지만 진짜 사람이었다. 그리고 솔은 재차 이런 사람들이 연예인을 하는 거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다들 하나같이 잘생김과 아름다움이 차고 넘치는 외모였다. 물론 하나같이 표정이 썩 좋지 않았지만.

    가람과 태오가 동갑인 스무 살, 도지호가 맏형, 디케이가 막내. 눈앞에 존재하는 인물과 게임 속 인물들이 매치가 되자 지겹도록 봐 온 네 명의 프로필이 새록새록 생각이 났다. SSR급인 태오가 리더이자 메인 댄서였다. <마이 아이돌 스타즈>의 유닛 리더는 무조건 SSR급이었다.

    강가람이 작곡 특기가 있는 리드 보컬, 지호가 메인 보컬. 막내인 디케이에 대한 기억이 조금 흐릿했지만, 본인이 랩이 특기라 했으니 래퍼일 게 지당했다. 이렇게 두고 보니 자신이 구태여 여기 있을 필요가 없어 보였다. 그냥 이대로 네 사람이 딱 데뷔를 하면 걸맞을 것 같았다.

    형식적이기 짝이 없는 인사가 끝나자 모두 서로의 시선을 피했다. 분위기는 한없이 어색하고 불편했다. 명백하게 드러나는 불편함과 애초에 상대에게 궁금점도 없으니 이어질 대화 자체가 없었다.

    둥글게 모인 다섯 남자가 말없이 서 있자 옆에 있던 영호가 더 안절부절못하였다. 길어지는 침묵을 더 참지 못하겠는지 태오가 땀을 뻘뻘 흘리는 영호에게 할 말이 있다며 그를 밖으로 불러냈다.

    ‘영호 형, 잠시 얘기 좀 해요.’

    허스키한 저음의 목소리가 한껏 깔려 야성적인 태오의 눈매와 맞물렸다. 태오의 뒤를 따라 나가는 영호를 보며 솔은 꼭 선생님에게 혼나는 학생 같단 생각을 했다. 물론 선생은 태오였다.

    태오와 그나마 말을 이어 주던 영호까지 나가자 분위기는 더욱 가라앉았다. 관심을 아예 끄기로 했는지, 가람은 거울을 보며 몸을 이리저리 뒤틀어 스트레칭하기 바빴다. 솔은 꿔다 놓은 보릿자루같이 눈만 말똥말똥 뜨고 멤버들의 눈치를 살폈다. 붙잡고 있던 머리카락을 놓자 다시금 얼굴 위에 검은 커튼이 드리워졌다.

    “형은. 아니지, 그쪽은 앞이 보이긴 해요?”

    “네?”

    평소 다른 멤버들을 ‘형’이라 부르는지 솔을 형이라 불렀던 디케이는 제 입술을 짝짝 치고는 퉁명스럽게 말을 쏘아붙였다. 그런 느닷없는 디케이의 질문에 솔은 어리바리하게 되물었다. 스트레칭을 열중이던 가람도 디케이의 목소리에 거울에 솔을 비춰 보았다.

    “앞이요? 잘 보이는데?”

    “그래요? 머리 내리니까 눈이 아예 안 보여요.”

    “아, 저는 잘 보여요.”

    “…그렇구나.”

    대답하고 나서 솔은 아차 싶었다. 제 사정을 샅샅이 알고 있는 주환과 의찬을 제외하고 타인과 이런 대화를 하는 것 자체가 오랜만이었다. 그러다 보니 아무 생각 없이 의식의 흐름대로 술술 내뱉어 버렸다. 어색한 분위기를 뚫고 디케이가 모처럼 먼저 건 대화인데 단절시켜 버렸다. 솔은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이 어색하고 불편하기 짝이 없는 상황이 솔을 불안하게 만들었다. 곧 끊어질 실처럼 팽팽하게 당겨진 긴장감에 저도 모르게 어깨에 절로 힘이 들어갔고 자꾸만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 어색하기 짝이 없는 분위기를 환기하고 싶어 솔은 생각을 거치지 않고 아무 말이나 내뱉었다.

    “디케이는 예명이에요?”

    “네. 디씨일 리는 없잖아요.”

    “그건 그렇네요. 외국인일 수도 있잖아요.”

    “한국인이에요.”

    “아, 네.”

    “누가 봐도 한국 사람 아니에요?”

    “사람 일은 모르는 거잖아요. 부모님은 한국분이시지만 외국에서 태어났을 수도 있고.”

    “그건 듣고 보니 또 그런데…. 아무튼! 예명이고 한국인이에요!”

    솔은 진지한 얼굴로 퍽 맹한 말을 이어 갔다. 그런 솔의 말에 덩달아 휘말린 디케이도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가 고개를 크게 저었다. 디케이가 버럭 큰소리를 내자 솔은 어색한 티가 나게 ‘하하’ 하며 소리를 내어 웃었다.

    [<튜토리얼 : 연습실 첫 방문!> 성공]

    [성공 보상으로 인물 ‘성 솔’의 정보가 업데이트됩니다.]

    [정보 연동 완료!]

    잠시 잊고 있었던 알림 창의 느닷없는 등장에 솔은 어깨를 움찔거리며 화들짝 놀랐다. 아무래도 이 민트색 창이 갑자기 떠오르는 것에 익숙해지려면 꽤 시간이 걸릴 듯싶었다.

    솔이 알림 창을 확인하느라 말이 없어지자, 다시금 연습실 안에 적막이 감돌았다. 연습실 안이 조용해지자 굳게 닫힌 문 너머로 웅성거리는 목소리가 또렷이 들려왔지만, 솔은 알림 창에 정신이 팔려 그 소리를 제대로 듣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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