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솔아! 성솔! 집에 있었구나! 다행이다.”
“…누구세요?”
“나? 기억 안 나니? 저번에 인사한 영호 형이잖아. 아니 그런데 왜 이렇게 연락을 안 받았어! 어제도 연락 안 되고 나는 또 무슨 일이 난 줄 알았네.”
“어… 음… 어…. 그러니까. 그게.”
갑자기 쳐들어온 영호라는 남자의 등장에 솔은 팔을 마구 허우적거렸다. 저를 살뜰히 챙기던 주환과 의찬도 이런 식으로 집에 쳐들어온 적은 없었다. 느닷없는 침입에 오류가 난 로봇처럼 삐거덕거리는 솔을 붙잡은 남자는 그를 끌고 집 안을 누볐다.
바닥에 뒹구는 핸드폰을 챙겨 들고 구깃구깃한 옷가지까지 챙겨 입힌 영호는 간신히 양치만 끝낸 솔을 끌고 밖으로 나갔다. 솔은 바보처럼 ‘어어?’만 반복하며 영호에게 잡혀 종이 인형처럼 팔랑거렸다.
“자! 애들이 기다려. 오늘은 진짜 펑크 내면 안 되니까 어서 타렴!”
“어디, 어디 가는 건데요!”
“어디긴! 연습실 가야지! 다른 애들은 벌써 한참 연습 중이야.”
“저 차는…. 어? 어!”
자신의 앞에 정차된 검은색 밴에 선뜻 오르지 못하고 솔이 머뭇거리자 영호는 그를 쑤셔 넣다시피 밀어 차에 태웠다. 기겁을 하며 차에서 내리려는 솔의 눈앞에 슬라이딩 도어가 쾅! 하는 소리를 내며 굳게 닫혔다. 영호가 제집에 쳐들어온 지 단 10분 만에 납치되듯 솔은 연행당했다.
얼떨결에 강제로 차에 오르게 된 솔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파악해 보려 노력했다. 모처럼 머리가 개운하고 또렷하긴 했지만 달리는 차 안에서 솔이 생각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교통사고 이후로 솔은 차에 타는 것을 무척 힘들어했다. 자신을 납치하다시피 차에 태운 남자에게 말을 걸려 입을 연 순간, 눈앞에 또다시 이상한 알림 창이 떠올랐다.
[특성 ‘네 바퀴 불신자’가 활성화되었습니다.]
새롭게 떠오른 알림 창에 인상을 팍 구기는 것도 잠시, 갑작스레 끼어드는 차량에 영호가 클랙슨을 울렸다. 빠앙, 큰 차가 내뿜는 커다란 소리에 솔은 경기라도 일으키듯 화들짝 놀랐다.
[클랙슨 소리를 들었습니다. 체력 -1]
[현재 남은 체력 : 99]
솔이 탄 차량과 실랑이를 하게 된 차가 영호의 대응에 맞받아치듯 클랙슨을 길게 눌렀다. 클랙슨 소리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솔의 눈앞에 숫자 -1이 쉴 새 없이 떠올랐다. 순식간에 남은 체력이 90이 되자 솔은 컨디션이 급격하게 저하됨을 느끼며 어지러운 머리를 부여잡았다.
털썩, 울렁이는 속과 흔들리는 머리에 솔은 의자 시트 위로 쓰러지듯 엎어졌다. 본의 아니게 얌전히 차에 탑승하게 된 솔을 영호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사람처럼 부지런히 실어 날랐다.
맨정신이어도 혼란스럽기 그지없는 상황에 머리가 돌아가지 않았다. 지금 자신에게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인지 당혹을 넘어 경악스럽기까지 했다. 눈앞에 펼쳐지는 이상한 민트색의 알림 창과 그 알림 내용에 맞춰 달라지는 자신의 몸이 기이했다.
더 깊게 자신에게 주어진 상황에 대한 이해를 시도하려던 찰나, 밴이 복잡한 번화가로 접어들었다. 길목 어귀에서 사고가 났는지 꽉 막힌 도로 위에 늘어선 차들이 울음과 같은 클랙슨을 울려 대고 있었다.
가뜩이나 창백한 얼굴이 더욱더 하얗게 질리고 속이 뒤집힌 듯 토악질이 치밀었다.
의자에 앉아 있던 솔은 본능적으로 몸을 웅크려 동그랗게 말았다. 최대한 안정을 찾아 보려 제 무릎을 힘껏 끌어안아 보았지만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솔은 입을 틀어막고 운전대를 잡은 영호에게 간신히 제 상태를 알렸다.
“토…. 할 거 같아요.”
“엉? 솔아, 너 멀미하니?”
“……네. 우웁!”
멀미가 아니었지만 구태여 설명하고 싶지도 않고 그가 알아야 할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라 솔은 그렇다 고개를 끄덕였다. 솔의 말에 영호까지 덩달아 사색이 되더니 ‘회사 찬데…!’ 하며 무언가를 열심히 찾았다. 제 주머니부터 글로브 박스, 콘솔 박스까지 샅샅이 뒤진 영호는 검은 봉지 하나를 솔에게 내밀었다.
초면에 민망했지만 별다른 선택권이 없어 솔은 영호가 건넨 봉투를 펼쳐 얼굴을 들이밀었다. 회사 차라지 않냐, 불쌍한 직장인을 괴롭히고 싶지는 않았다. 체증이 해결되었는지 밴이 다시 움직이자 솔은 기어이 비닐봉지 안에 얼굴을 처박았다. 다행스럽게도 말간 액체만 쏟아 내었다.
“괜찮니? 솔아?”
“……아뇨. 안 괜찮아요.”
“도착했으니까 내리자. 마스크, 마스크라도 쓸까?”
“마스크를 왜요?”
“혹시 모르니까…. 아니다. 그럴 필요 없겠다.”
비닐봉지에 얼굴을 들이밀고 있던 솔이 고개를 들어 영호를 쳐다보자 그는 고개를 크게 저었다. 축축 늘어진 검은 머리카락이 얼굴의 반절을 다 덮고 있었다. 영호가 에스코트하듯 손을 내밀자 솔은 반사적으로 그의 손을 잡고 비틀거리며 차에서 내렸다.
교통사고 이후로 솔은 차라면 끔찍했다. 차를 타면 10분이면 갈 거리를 40분씩 걸어 다니기도 했었다. 아예 걸어서 갈 수 없는 거리면 외출을 포기하기도 했었다. 신선한 공기와 단단한 바닥에 신발 밑창이 닫자 조금 안심이 되었다.
눈앞에 펼쳐진 번듯한 빌딩에 솔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앞머리가 시야를 가려 슬쩍 갈라 넘겼다. 영호가 연습실에 가야 한다고 말했으니, 알림 창에서 본 내용을 토대로 하면 여기가 바로 ‘YC 엔터테인먼트’인 게 분명했다.
형편없는 중소기업 설정은 아닌지 건물 외관부터가 번쩍번쩍했다. 다만 그의 예상과 달리 주변은 평범한 회사처럼 조용했다. 솔은 자고로 연예인이 드나드는 소속사란, 건물 앞에는 팬 무리가 진을 치고 있는 모양새를 상상했었다. 하지만 그의 예상과 달리 여느 실리콘 밸리처럼 몇몇 외국인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긴 했지만, 생각보다는 조용했다.
그와 별개로 입구 회전문 앞에 큼직하게 달린 ‘YC Entertainment’라는 간판을 마주하니 온몸에 힘이 쭉 빠졌다. 솔은 확 잠겨 버린 목소리로 ‘이게 진짜 존재하는 거구나.’ 하는 혼잣말을 내뱉었다.
‘아까, 튜토리얼? 내용이 뭐였지.’
솔이 생각하기 무섭게 시야에 민트색 창이 떠올랐다.
<튜토리얼 : 연습실 첫 방문!>
당신은 YC 엔터테인먼트의 연습생으로 데뷔조의 멤버입니다. 준비된 아이돌의 길을 걷기 위해 연습실에 방문하여 멤버들과 인사를 나누세요!
정해진 시간 내에 성공 시 인물 ‘성 솔’의 정보 업데이트
실패 시, 시스템 종료 (혹은 그에 상응하는 고통)
남은 시간 : 14:01:01
확인 사살을 시켜 주듯, 남은 시간이 줄어들어 있었다. 딱 영호가 제집에 쳐들어와서 차로 이동한 시간만큼. 솔이 멍하니 알림 창을 바라보고 있는 와중에도 점차 줄어들고 있었다.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아직도 어안이 벙벙하고 당혹스러운 솔이 넋을 놓고 서 있자 영호가 솔의 이름을 반복해서 불렀다.
“이게 진짜 실화일까? 게임은 무슨, 개꿈이지…?”
“하하, 솔아. 그게 무슨 소리야. 그럼 실화지. 너도 이제 YC 엔터의 연습생이야. 그것도 데뷔조!”
“대체 무슨 생각으로요?”
“으응?”
“무슨 생각으로 그런 결정을 했을까요. 대체 누가? 왜?”
솔의 웅얼거리는 혼잣말에 영호가 대답했다. 아무리 꿈이래지만. 대체 어떤 정신 나간 놈이 이런 설정을 짠단 말인가. 솔은 무대에서 춤도 추지 못했고 자동차도 못 타며 치매가 아닐까 의심스러울 정도로 깜빡거렸다.
더불어 사고가 날 때 전두엽이라도 으깨졌는지 얼빠진 짓거리를 할 때가 많았고 딱히 노래하는 법을 배워 본 적도 없었다. 랩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 누가 봐도 결격 사유만 잔뜩인 자신이 아이돌 연습생, 그것도 데뷔조라니. 너무 개꿈이라 헛웃음이 나왔다.
“누구긴…. 우리 백의찬 대표님이지.”
“네? 누구요?”
“대표님….”
“아니 이름이요!”
“백의찬? 솔아 너는 계약서에 사인도 했으면서 대표님 이름도 모르는 거야? 보호자와 충분히 상의하라고 했었잖아.”
“백의찬이라고요?”
“그래! 일단 들어가자.”
귓가를 때리는 익숙한 이름에 넋이 빠진 솔은 차에 탈 때처럼 영호의 손에 이끌려 팔랑거리는 종이 인형같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술에 취한 사람처럼 다리가 꼬여 비틀비틀 걸음을 걸으니 입구를 지키고 있던 보안 요원이 눈에 힘을 주었다. 검은 옷을 차려입은 보안 요원의 시선이 매서워 솔은 괜스레 시선을 피했다.
어째 소속사 주변이 조용하다 했더니 험악한 보안 요원 덕인가 싶었다. 솔은 거세게 머리를 저으며 자꾸 딴 길로 새는 생각을 붙잡았다. 소속사 이름 YC 엔터, 그리고 대표 백의찬. 갑자기 의찬이 너무 보고 싶어졌다.
당장 핸드폰을 열어 통화 버튼을 누르면 익숙한 친구의 목소리가 들릴 것 같았다. 주환이 따위 잊으라며 잔소리를 토해 내면 의찬에게 게임 속에 들어가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고 말할 것이었다.
솔은 다시 한번 제 주머니에 든 핸드폰을 확인했다. 여전히 전화번호부엔 정체 모를 최 실장과 옆에 걷고 있는 김영호뿐이었다.
“참, 앞으로는 회사 오면 핸드폰 반납, 일과 끝나고 숙소로 돌아갈 때 돌려줄게. SNS 계정은 다 탈퇴했지?”
“그런 거 안 하는데요.”
“정말이지? 신인 개발 팀 쪽에서 다 확인해 볼 거야.”
“진짜 안 해요.”
“되도록 가족이랑 연락하는 용도로만 사용해라.”
“…어, 네.”
솔은 영호의 투박한 손바닥에 핸드폰을 올려놓았다. 영호가 말하는 용도에 웃음이 나왔다. 결국 자신에겐 저 핸드폰이 무용지물이란 뜻이었다. 아무짝에 쓸모가 없었다. ‘백의찬 번호라도 생각나면 좋을 텐데.’ 불알친구의 전화번호 하나 못 외우는 멍텅구리가 자신이었다. 순간 솔의 눈이 크게 떠졌다.
“저 매니저님?”
“그냥 영호 형이라고 불러. 솔아.”
“혹시 대표님을 만나 뵐 수 있을까요?”
꿈이든 게임이든 이곳에 있는 백의찬이, 자신이 알고 있는 백의찬인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의찬을 보며 소속사의 이름을 지었고, 그 소속사의 대표가 백의찬이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일이었다.
본래 꿈은 잠들기 전의 일들로 이루어진다고 하지 않던가.
이 상황이 펼쳐지기 전까지 의찬과 <마이 아이돌 스타즈>와 함께했던 솔이었다. 필시 그래서 이런 이상한 꿈을 꾸고 있는 게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