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최애를 뽑고 싶어-2화 (2/192)
  • #2

    느지막한 시간, 잠에서 깬 솔은 눈을 연신 깜빡였다. 이게 바로 ‘몽중몽’이라는 것인가, 하며 연신 눈을 깜빡였지만 그다지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꿈이라기엔 근래 들어 가장 정신이 또렷하고 머릿속이 개운한 느낌이었다. 서주환의 결혼이 너무도 충격적이었기 때문일까. 까맣게 잊을 것이라 생각했던 어제의 기억도 생생했다.

    결혼 후 미국에 갈 거라며 잘 살라고 어깨를 두드려 주던 턱시도를 입은 서주환의 모습과 술에 취해 의찬에게 추태를 부린 모습까지.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 제 눈앞에 떠오른 정체를 알 수 없는 민트색 반투명한 창까지 미칠 듯이 또렷했다.

    [신규 유저 지원 이벤트! 로그인 보너스]

    [1일 차 컨셉 랜덤 티켓 x2]

    [로그인 보너스 수령하기]

    “…수령하기?”

    눈앞을 가득 메운 이상한 창에 떠오른 글자를 솔이 읊조리자 마치 버튼이 눌린 것처럼 [수령하기]에 빛이 들어왔다. 그러고는 붉은색 티켓이 크게 확대되며 자그마한 알림 창이 떴다.

    [컨셉 랜덤 티켓 x2 : R~SR 등급까지의 컨셉을 랜덤으로 획득할 수 있습니다.]

    솔은 지금 이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어제 의찬과 마신 술이 아직 덜 깬 걸까? 아니면 아직 꿈인 걸까. 침대에 파묻혀 눈을 비벼도 보고 연신 깜빡여 보았지만 그다지 달라지는 건 없었다.

    몸을 움직이면 이 이상한 꿈에서 깨어나지 않을까 해 몸을 벌떡 일으켜 보았지만, 이상한 알림 창은 쉴 새 없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튜토리얼 : 당신의 잠재력과 특성을 확인하세요!>

    ‘상태 창’이라고 외쳐 자신의 잠재력과 특성을 확인하세요!

    정해진 시간 내에 성공 시 유저 ‘성솔’과의 능력치 동기화.

    본 퀘스트는 실패 시 페널티가 부과되지 않습니다.

    남은 시간 : 00:09:48

    “상…태 창?”

    솔은 손가락으로 제 입을 틀어막았다. 무언가, 눈에 보이는 글자를 반복적으로 따라 읽는 제 행동이 멍청하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미 그의 입에서 빠져나온 목소리는 명령어로 인식되기 충분했는지, ‘퀘스트 완료! 유저 정보 동기화 중’이라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당황스러운 상황에 눈알을 두어 번 굴린 단 몇 초. 시야를 가득 메우던 여러 가지 창들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깔끔하게 정리된 창 하나가 떠올랐다.

    이름 : 성 솔

    나이 : 20

    체력 : C

    매력 : S+

    가창 : B

    춤 : A-(S)

    연기 : D

    행운 : D

    특성 : 머릿속의 지우개, 네 바퀴 불신자, 비운의 천재 무용수, 만능 예체능캐

    “이름, 성솔. 나이…, 스물. 스물?”

    우당탕, 본인의 이름이 적힌 상태 창을 정독하던 솔은 20이라는 숫자에 황급히 거울 앞으로 다가갔다. 그의 발에 챈 핸드폰이 방바닥을 요란하게 굴렀지만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익숙한 자신의 자취방. 늘 항상 똑같이 제자리에 위치하는 전신 거울. 그 앞에 서자 정말로 스물다섯이 아닌 스무 살의 성솔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창백하게 질려 음울한 얼굴. 인생에서 가장 어둡고 절망적이었던 시절의 자신이었다. 스물다섯 살에는 옅어져 자세히 봐야 보이던 팔꿈치 언저리의 흉터 자국이 그때와 같이 또렷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솔은 뒤를 돌아 제 왼 다리도 거울에 비춰 보았다. 마찬가지로 발꿈치부터 정강이까지 길게 남아 있는 흉터 자국. 모든 것이 기억 속 그대로였다.

    빼곡한 특성란을 쓱 훑어보자니 몇몇 설명이 없어도 어떤 뜻일지 예상이 가는 것들이 있었다. 체력이나 매력, 가창 이런 능력치의 경우는 잘 모르겠지만 특성을 보아 하니 성솔, 본인에 관한 내용이 분명했다. 눈앞에 떠오른 창이 자신의 능력치인 것이 분명했다.

    솔은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사람처럼 멍하니, 조금 어려진 자신을 바라보았다. 기억력에 이어 이젠 환각이나 망상 증상까지 있는 걸까. 불현듯 겁이 덜컥 나, 솔은 바닥에 나뒹구는 핸드폰을 주워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연락하라던 의찬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맴돌았다. 이젠 정말 정신 병원에 가야 할 때인가 싶었다.

    솔은 벌벌 떨리는 손으로 핸드폰을 켜 의찬의 이름을 찾았다. 가장 최근 통화 목록에 있어야 할 의찬이 보이지 않아 솔은 연락처 목록을 확인했다. 그 어디에도 의찬의 이름이 보이지 않았다. 아니 그 전에 솔이 아는 이름 자체가 없었다. 있어야 할 ‘서주환’과 ‘백의찬’의 이름 대신 누군지도 모를 ‘YC 엔터 최 실장님’, ‘매니저님’이라는 이름만 저장되어 있었다.

    [특성 설명을 확인하시겠습니까?]

    [ 예 | 아니요 ]

    당황한 손길로 핸드폰에서 제 친구의 흔적을 찾는 솔의 시야에 새로운 알림 창이 떠올랐다. 솔은 애써 그 알림 창을 무시하며 메시지와 통화 목록에서 익숙한 번호를 찾기 시작했다. 알림 창은 솔의 의사와 상관없이 새로운 창을 띄웠다.

    [특성]

    • 머릿속의 지우개 : 깜빡! 지속된 스트레스 상황에 노출되면 기억을 잃습니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은 다 잊게 됩니다.

    • 네 바퀴 불신자 : 교통사고의 후유증으로 이동 수단에 탑승 시 불안감을 느낍니다. 운전을 할 수 없으며 클랙슨 소리를 들을 시 체력이 -1 됩니다.

    • 비운의 천재 무용수 : 부상 트라우마에 빠진 무용수, 활성화 시 통증을 느끼며 춤 능력치가 일시적으로 저하됩니다.

    • 만능 예체능캐 : 부모님의 선물! 당신은 모든 예체능 과목에서 두루두루 재능을 발휘합니다.

    ‘보고 싶지 않아.’

    제 상태를 구태여 글자로 정리하여 보고 싶지 않았다. 모든 글자가 거슬렸다. 사람 속을 뒤집으려고 적은 거라면 아주 잘했다고 칭찬할 만큼. 지우개, 네 바퀴, 비운, 부모님, 모든 단어가 솔을 예민하게 만드는 것들이었다.

    솔이 부득부득 말로 내뱉지 않아도 명령으로 처리되는지, 시야 가득 떠올랐던 특성 창이 스르륵 사라졌다. 그러고는 솔의 짜증에 보란 듯이 다른 퀘스트 알림을 띄워 댔다.

    <튜토리얼 : 연습실 첫 방문!>

    당신은 YC 엔터테인먼트의 연습생으로 데뷔조의 멤버입니다. 준비된 아이돌의 길을 걷기 위해 연습실에 방문하여 멤버들과 인사를 나누세요!

    정해진 시간 내에 성공 시 인물 ‘성 솔’의 정보 업데이트

    실패 시, 시스템 종료 (혹은 그에 상응하는 고통)

    남은 시간 : 23:59:50

    솔은 핸드폰을 터치하던 손을 멈추었다. 손에 쥔 핸드폰은 제가 쓰던 것이 아닌 새것처럼 아무런 자료도 없었다. 갤러리에 든 가족사진 한 장이 전부였다. 분명 자신과 부모님이 함께 찍혀 있는 사진인데, 정작 사진의 주인공인 솔은 난생처음 보는 사진이었다.

    갑자기 세상이 일그러지고 자취방인 원룸이 거대하게 느껴졌다. 속 깊은 곳에서 치밀어 오르는 역겨움에 솔은 손에 쥐고 있던 핸드폰을 바닥에 패대기쳤다.

    “뭐라는 거야. 진짜….”

    알 수 없는 이 상황에 짜증이 확 일어 두통이 몰려왔다. 솔은 떡진 제 머리카락을 움켜잡고 바닥에 한참을 쪼그려 앉아 있었다. 시야 한구석에 점점 줄어드는 시간이 거슬렸다. ‘YC 엔터테인먼트’. 의찬이 설치해 주었던 게임. ‘잘나가 엔터테인먼트’ 대신 자신이 의찬의 이름을 따 지어 주었던 기획사 이름이었다. 연습생, 데뷔, 아이돌. 그리고 눈앞에 떠오르는 알림 창. 기시감이 느껴졌다.

    덩그러니 방 한가운데에 쪼그려 앉아 시간이 하염없이 줄어드는 것만 바라보던 솔은 내던졌던 핸드폰을 다시 주워 들었다.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솔은 갑자기 실성한 사람처럼 해맑게 ‘하하’ 소리를 내며 웃었다.

    “이게 뭐야. 게임 속에 들어온 것도 아니고. 데뷔조? 누가 한대?”

    혼자뿐인 방 안에서 솔은 허공에 대고 명랑한 목소리로 말했다. 언제 기분이 나빴냐는 듯, 그의 얼굴엔 방긋 웃음이 걸려 있었다. 그러고는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다시금 침대로 기어들어 가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눈을 감았다. 다시 한차례 숙면을 취하고 일어났지만, 솔의 시야 구석에는 여전히 줄어드는 숫자가 존재했다. ‘남은 시간 15:27:01’. 아이러니하게도 기억도 멀쩡했다.

    [튜토리얼 퀘스트를 진행하는 동안에는 ‘머릿속의 지우개’ 특성이 비활성화됩니다.]

    “…….”

    보란 듯이 떠오른 알림창에 솔은 미간을 팍 구겼다. 마치 제 생각을 꿰고 놀리는 것 같았다. 솔은 아무것도 보지 못한 척, 알림 창을 꺼 버렸다.

    “게임도 아니고…. 그래! 게임. 역시 이거 게임이지? 게임 하는 꿈….? 꿈인가?”

    아니 게임이었다. 누가 봐도 이건 그가 잠들기 직전에 했던 <마이 아이돌 스타즈>였다. 솔이 지었던 기획사 이름, 퀘스트. 게임에 영 취미가 없던 솔이었지만 이렇게 대놓고 힌트를 주는 단어들이 즐비한데도 모르쇠로 일관할 문외한은 아니었다. 지금 인간 성솔은 게임 속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부스스 산발이 된 머리를 마구 헤집는 솔의 눈앞에 다시금 퀘스트 창이 떠올랐다.

    정해진 시간 내에 성공 시 인물 ‘성 솔’의 정보 업데이트.

    실패 시, 시스템 종료 (혹은 그에 상응하는 고통)

    성공 시 보상보다 실패 시의 페널티가 더 눈에 들어왔다. 시스템 종료면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건가 싶었지만, 뒤에 흐리게 쓰인 ‘그에 상응하는 고통’이 무척이나 불길했다. 처음엔 너무 당황해 꿈인가 싶었지만, 분명히 꿈이 아니었다.

    뒤죽박죽 엉망인 솔의 감각들마저 이건 진짜 꿈이 아니라고 쉴 새 없이 그에게 각인시키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덜컥 정체를 알 수 없는 알림 창이 시키는 대로 행동하는 것도 이상했다. 스멀스멀 몸속 깊은 곳에부터 강렬한 반발심과 회피 본능이 기어 올라왔다.

    누구든 겪으면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할 이 상황에 솔은 방긋 웃음 지었다. 상태 창에서도 표기되었듯이 S+라는 수치가 붙을 정도의 이름다운 남자가 활짝 웃었지만, 그 웃음은 상황과 맞지 않아 퍽 기묘했다.

    “와, 어처구니없어.”

    솔이 혼잣말을 중얼거린 순간, 핸드폰이 요란하게 울리고 쿵쿵쿵 누군가가 현관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냥 놔두면 문을 부숴 버릴 듯 두들겨 솔은 잔뜩 움츠린 채 현관문을 살짝 열었다. 문틈이 벌어지자 두툼한 팔뚝이 불쑥 들어오며 수더분하게 생긴 남자가 얼굴을 들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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