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롤로그
“성솔! 솔아, 그만 좀 울어.”
11시가 넘어가는 늦은 시간, 잘 익은 고기 몇 점이 놓인 불판을 앞에 둔 채 두 남자가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식당 구석진 자리에 앉은 운동복 차림의 남자는 제 앞에 마주 앉아 하염없이 우는 사내를 타일렀다.
치렁치렁하게 기른 머리카락이 얼굴을 반쯤 가려 제대로 보이지는 않았지만, 조금 전부터 그는 펑펑 눈물을 쏟아 내고 있었다.
“그러게, 거길 왜 갔어.”
“…제일 친한 친구니까. 내가 꼭 와 줬으면 한다잖아.”
“어휴. 됐고 고기나 먹어.”
울음을 가득 머금어 먹먹해진 목소리에 남자는 한숨을 내쉬며 성솔의 입에 고기 한 점을 쑤셔 넣었다. 서럽게도 울어 대면서도 솔은 제 입에 들어온 고기를 야금야금 씹어 삼켰다. 빈 입이 다시금 울음을 토해 내자 그의 친구 의찬은 다시금 고기를 집어 솔의 입을 틀어막았다.
“차라리 잘된 일이야. 이참에 너도 깨끗이 정리하고 새 삶을 살자.”
“백의찬, 이게 어떻게 잘된 일이야?”
“솔아, 그 새끼는 자기 자리 찾아간 거야. 그러니까 너도 네 자리로 찾아가야지.”
“내 자리가 어딘데?”
“찾아야지! 성솔, 벌써 6년이다. 나 다음 달에 입대할 거야. 내 마음 좀 편하게 해 줘라.”
“……안 가면 안 돼?”
“나 스물다섯이야. 더 미룰 수도 없다. 솔아.”
“그래. 우리 스물다섯이네…. 스물다섯…. 결혼하기엔 너무 이른 나이 아니야?”
“하아. 그래, 술이나 마셔. 자. 마시자. 마시고 싹 잊어버려.”
“서주환을 어떻게 잊어.”
“어어, 걱정하지 마. 솔아. 너는 잘 잊을 수 있어.”
주변 테이블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흘긋, 솔을 곁눈질하자 의찬은 솔에게 소주잔을 들이밀었다. 그냥 빨리 먹여 아예 뻗게 만드는 편이 나을 듯싶었다. 눈물에 젖은 솔의 머리카락이 소주잔에 빠지자 의찬은 그의 치렁치렁한 머리카락에 손을 넣어 뒤로 확 쓸어 넘겼다.
일순 식당 안이 환해지는 느낌에 사람들의 시선이 성솔에게로 몰렸다. 얼마나 울었는지 눈가가 시뻘겋게 짓물렀지만, 그것이 흉이 되지는 않았다. 오히려 붉은 눈시울이 서늘한 미인을 더욱 애처롭게 보이게 했다. 의찬은 확연히 달라진 주변의 시선에 황급히 커튼을 치듯 머리카락으로 솔의 얼굴을 덮었다.
“머리도 좀 자르고…. 솔아, 나는 아직도 네가 마음만 먹으면 뭐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해. 무용이 아니어도, 너 얼굴 하난 끝내주잖아. 배우나 연예인은 어때? 모델은?”
“…….”
펑펑, 잘도 조잘거리면서 울던 놈이 별안간 입을 꾹 다물었다. 눈앞의 상황과 답답하기 짝이 없는 친구의 모습에 의찬은 한숨을 깊게 내쉬며 소주잔을 기울였다.
성솔은 또다시 소리 없이 눈물만 꾸역꾸역 흘려 댔다. 그 모습이 또 못내 짠하고 이해가 가지 않는 것도 아니라 의찬은 오늘 하루만 이 진상을 묵과해 주기로 했다.
그럴 만했다. ‘모든 것을 잃은 성솔’. 솔은 6년 전 사고로 모든 것을 잃었다. 재능도 꿈도 가족도. 인생이 송두리째 뒤바뀐 것이었다.
연습실 거울에 둘러싸여 반짝반짝 빛이 나던 천재라는 말이 아깝지 않았던 무용수 성솔.
사고만 아니었다면 필시 탄탄대로를 걸었을 것이었다. 그런 성솔은 어쭙잖은 주환을 쭉 짝사랑해 왔다. 초등학교 2학년, 솔이 엄마 손을 잡고 무용 학원의 낡은 마룻바닥을 밟은 날부터. 솔은 어린 시절 온종일을 무용 학원에서 보냈다.
발레, 현대 무용, 한국 무용. 종일 학원에 상주하다시피 있으며 원장 선생님의 칭찬과 고학년 아이들의 질투를 한 몸에 받던 아이였다. 그런 그의 옆에 늘 붙어 있던 동갑내기 친구가 서주환이었다.
열여덟 살, 입시 준비의 마지막 막이 올랐던 그해에 솔은 가족을 잃게 되는 큰 교통사고를 당했다. 그리고 솔이 학원을 떠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서주환 또한 제 부족한 재능에 대한 압박감을 감당해 내지 못해 무용을 포기했다.
결국 학원에 남아 끝까지 입시를 친 건 의찬 혼자였다. 그 이후로도 솔은 주환과 유난히도 붙어 다녔다. 그러니 우정의 탈을 쓴 짝사랑이 깊어지는 건 당연지사였다.
의찬은 서주환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지만, 객관적으로 보았을 때 주환은 솔에게 좋은 친구였다. 사고 이후로 폐인처럼 살며 여러 문제를 겪는 솔에게 남은 사람은 의찬과 주환뿐이었다. 그런 그가 오늘 결혼식을 올렸다.
스물다섯 살 퍽 이른 나이에, 적당히 잘 살고 어여쁜 신부와. 그리고 성솔은 오늘 그의 결혼식에 참석해 웃으며 축하를 건네고 왔다. 이 정도 주사쯤은 부려도 되는 날이었다. 의찬은 테이블 위에 엎어진 솔을 확인하고 말없이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아마 저대로 테이블에 이마를 처박고 한두 시간쯤은 더 울어 댈 것이었다.
의찬은 별말 없이 우는 솔을 지켜보며 모바일 게임을 켰다. 화려하게 조명이 켜진 무대의 일러스트 위로 동글동글한 귀여운 글자가 떠올랐다. <마이 아이돌 스타즈>. 그가 요즘 한참 빠져 있는 리듬 게임 요소가 포함된 아이돌 육성 시뮬레이션이었다. 화면을 두드리는 소리에 솔이 슬쩍 고개를 들어 화면을 들여다보았다.
“뭐야….”
“뭐긴. 넌 계속 울기나 해. 나는 투디 남친이나 키울 거야.”
“……친구가 우는데 너는 게임을 한다고?”
제 진상 주사에 별 관심이 없어 보이는 의찬의 태도에 심통이 났는지. 입술을 삐죽였다. 의찬은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 태연한 얼굴로 게임 캐릭터의 무대 영상을 그에게 보여 주었다. 의찬은 뻔뻔하게 제 취향인 캐릭터를 가리켜 보이며 ‘요즘 내 최애캐’라고 말했다. 솔은 퉁퉁 부은 눈으로 말없이 그 화면을 빤히 쳐다보더니 덥석 핸드폰을 뺏어 들었다.
“얘.”
“뭐. 너도 할래?”
“서주환 닮았어.”
“지럴 no.”
의찬은 솔이 가리킨 캐릭터를 보고 정색했다. 그는 제가 만든 그룹에서 리더 마크를 달고 있는 갈색 머리카락의 캐릭터, ‘은겸’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솔에게 딱 잘라 말했지만, 막상 그 말을 듣고 나니 꽤 비슷한 점이 많아 보였다.
살짝 쳐진 눈꼬리라든가 웃는 상인 입꼬리와 한결같이 몇 년째 고수한 머리 스타일도 퍽 비슷했다. 핸드폰 화면을 붙잡고 눈물을 흘리던 솔이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나도 할래.”
“그래. 다 해라.”
“어떻게 하는 거야.”
“일단 설치부터 해. 얘…. 은겸이 이번에 나온 쓰알 신캐인데… 리세마라 좀 하면 나올 거야.”
“리세마라?”
“어…. 캐릭터를 뽑아야 하거든. 근데 은겸이 나올 확률이 적은 캐릭터라 나올 때까지 리셋하고 다시 뽑고 해야 해. 그걸 리세마라라고 하는 거야.”
의찬은 친절히 설명하며 그의 핸드폰에 <마이 아이돌 스타즈>를 설치해 주었다. 별거 아닌 게임이라 해도 의찬은 솔이 무언가를 하려 든다는 것이 기꺼웠다. 솔은 사고 이후 폐인처럼 지내면서 그 무엇에도 집중하지 못했다.
감정은 기억에도 영향을 준다고 한다. 사고 이후부터 솔은 자신에게 불리한 일이나 기분이 좋지 않았던 일을 지나치게 쉽고 빠르게 잊어버리곤 했다. 얼핏 들으면 좋은 거 아니야? 할 수 있지만, 그 정도가 심했다. 이따금 이 정도면 조기 치매나 뇌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가 싶어질 정도였다. 예를 들자면 본인 마음에 들지 않은 선물을 받으면 그 선물을 받았다는 사실도 잊었다. 이런 문제는 인간관계뿐 아니라 모든 일에 문제를 일으켰다.
스물다섯 살이 되도록 그는 학교를 졸업하지 못했고 마땅한 아르바이트도 할 수도 없었다. 지나치게 기분파가 되었고 그를 ‘상식적인 사람’이라는 틀에서 벗어나게 만드는 행동을 자주 했다. 그 속내를 속속들이 다 알 순 없었지만 오죽 잊고 싶으면 그럴까 하며 의찬과 주환은 솔의 옆을 지켜 주었다. 솔은 의찬이 설치해 준 게임 화면이 뜬 핸드폰을 쥐고 화면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마이 아이돌 스타즈>. 시작하기 버튼을 누르자 로딩 그래프와 함께 캐릭터들의 프로필이 빠르게 지나갔다. 나이, 키, 포지션 같은 것들이 제법 그럴싸한 손 글씨로 쓰여 있었다. 솔은 제 기분을 흘릴 곳이 생기자 언제 울었냐는 듯, 눈물을 그치고 화면에 떠오른 글을 읽어 내려갔다.
[기획사의 이름을 입력하세요.]
[잘나가 엔터테인먼트]
촌스럽기 짝이 없는 엔터사 이름 예시에 솔은 얼굴을 찌푸리고 잠시 고민하다 키패드를 두들겼다. 이런 게임을 딱히 해 본 적이 없는 솔은 적당한 이름을 찾아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의찬과 눈이 딱 마주친 솔은 고민 없이 빈칸에 ‘YC 엔터테인먼트’를 입력했다.
[신규 유저 SSR 확정 지급!! SSR 멤버로 시작하세요!]
[스카우트하기★]
“이거 누르면 유닛 꾸릴 수 있게 캐릭터 5명 주거든. SSR 멤버 이 중에 하나 주는데 은겸이 나올 때까지 다시 하기 하면 돼.”
새롭게 나타난 화면에 의찬이 설명을 덧대었다. 의찬이 각기 다른 머리 모양을 한 캐릭터 하나하나 짚어 가며 누가 좋고 어떤 설정이라며 설명해 주었지만, 솔의 귀에는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의 목표는 오직 하나였다. 서주환을 닮은 ‘은겸’이라는 갈색 머리의 캐릭터. ‘스카우트’ 버튼을 누르자 푸른색 화려한 조명으로 가득한 무대가 나타났다. 검은색 실루엣의 남자가 걸어 나오더니 이내 황금색 빛과 함께 그 형태가 드러났다.
윤기 나는 검은색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입꼬리를 살짝 끌어 올려 비웃는 듯한 표정의 잘생긴 캐릭터. 화면 끝자락엔 노란색 별 다섯 개와 SSR이라는 등급 표기. ‘태오’라는 이름이 쓰여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캐릭터 일러스트를 빠르게 넘겨 보았지만, 그 어디에도 솔이 뽑고자 했던 ‘은겸’은 없었다.
“금방 나와. 인상 쓰지 말고 자, 다시 하기 눌러.”
실망스러운 결과에 솔이 얼굴을 확 일그러뜨리자 의찬은 그가 혹여 다시 꾸역꾸역 눈물만 흘릴까 재빨리 [다시 스카우트하기] 버튼을 눌러 주었다. 반복적인 화면이 한차례 빠르게 지나가고 반짝이는 화면과 함께 다시금 별 다섯 개짜리 캐릭터가 등장했다.
“…….”
의찬은 말이 없었고 솔의 머리는 다시금 테이블 위에 널브러졌다. 벌써 20번도 넘게 다시 스카우트했지만, 의찬의 말과 달리 ‘은겸’의 머리카락조차 보지 못했다. 이 정도면 운명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주야장천 ‘태오’만 나오고 있었다.
빨간색으로 머리를 염색하고 크롭티를 입은 태오. 화려한 야구 점퍼에 배트를 들고 껄렁하게 선 태오. 무대 위에서 조명을 등지고 선 태오. 태오. 태오. 태오! 잠시나마 가챠에 몰입했던 솔의 얼굴에 다시금 울음이 비쳤다.
“서주환. 여기서도 가질 수 없는 거냐.”
“아니, 솔아. 이번에는 진짜 나올 거야.”
“…….”
“그러지 말고 솔아. 일단 시작하고…. 과금, 과금할까? 내가 사 줄게. 은겸이 쓰알 일러 다 뽑아 버리자. 응?”
“…싫어. 내가 반드시 뽑고 만다. 서주환.”
“서주환 아니고 은겸이라고! 그 새끼 이름으로 부르지 마.”
“서주환!!”
“됐어. 됐어. 하지 마! 그만해! 집에 가!”
“서주환! 널 뽑고 말겠어.”
“가자, 솔아 이제 집에 가자고!”
눈물이 가득했던 솔의 눈엔 어느새 눈물이 마르고 일종의 오기와 분노가 일렁거렸다. 슬슬 영업을 마무리하는 식당에서 의찬은 의자에 붙어 버린 솔을 억지로 일으켜 세웠다. 솔은 두 손으로 핸드폰을 꼭 잡고 집착으로 이글거리는 눈동자로 솔은 반복적으로 버튼만 눌러 댔다. 또다시 등장한 캐릭터는 ‘태오’. 이 정도면 진짜 태오와 운명이었다.
의찬과 헤어져 무사히 집에 돌아온 솔은 가물거리는 눈에도 불구하고 핸드폰을 놓지 않았다. 이제는 자신을 비웃는 것처럼 느껴지는 태오의 일러스트가 나올 때마다 솔은 이를 빠득빠득 갈았다. 이 정도면 저주였다.
리세마라의 저주.
서주환의 저주. 감정을 가득 담아 스카우트 다시 하기 버튼을 검지로 여러 번 두들긴 솔은 제 이마에 핸드폰을 올려 두고 그대로 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