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logue.
김혜영의 남편은 아들을 품에 안아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처음부터 제 자식에게 애정 한 톨 없던 남자였다. 그에게 제 아들은 한 여자를 감금시키기 위한 도구이자 인질이었을 뿐이었다.
탈출을 안 해 본 건 아니었다. 임신을 하기 전, 겨우 도망쳐서 경찰서에 뛰어 들어간 적이 있었다. 신발도 신지 못하고 뛴 맨발은 피가 철철 났다. 살려달라고 애원했다. 그러나 그들이 선택한 건 남편에게 전화를 하는 거였다.
부부싸움, 집안문제, 성가신 여자.
그들을 감싼 기류에는 그 끔찍한 감상들이 떠돌았다. 경찰서에 찾아온 남편은 제 아내가 정신이 오락가락한다고 했다. 자해도 심하게 해서 어쩔 때는 묶어둘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경찰들은 믿었다. 아니, 그냥 믿는 척 처리해버리고 싶었던 걸 거다. 그녀는 그 지옥으로 다시 끌려 들어가며 절망했다. 가진 것 없는 천애고아가 단 하나 의지할 수 있는 법조차 자신을 구해줄 수 없는 거였다. 희망은 한 줌도 없는 상태에서 이듬해 아기가 태어났다. 평생 정을 줄 수 없을 거라 여겼지만, 저를 닮은 얼굴로 방긋방긋 잘도 웃는 아기에게 그녀는 너무 쉽게 마음을 빼앗겼다.
닫힌 세상에서 그녀가 기댈 수 있는 건 그 핏덩이뿐이었다. 제 모든 애정을 그 아이에게 쏟아 부었다. 사랑한다고 끊임없이 속삭이고, 너 역시 나를 사랑해야 한다고 매달리고, 네가 없으면 엄마는 살 이유가 없다고 조금 무서운 소리도 늘어놓았다.
그녀는 알지 못했던 거다. 폭력과 억압만 없었을 뿐, 제가 아이를 사랑하는 방식이 그 남자와 닮아있었다는 걸.
스무 살 꽃 같은 나이에 남자를 만났다. 고아로 자라 제 생활비 벌어가며 아등바등 사느라 연애 한 번 못 해봤다. 그녀는 건강하게 사랑하는 법을 몰랐고, 건강하게 사랑받는 법을 몰랐다.
그녀 자신이 증오하는 남자를 닮아가는 것처럼, 제 사랑스러운 아기도 그렇게 자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그것은 죽음보다 더한 공포였다. 그 절망 섞인 두려움 속에서 그녀는 생각을 거듭했다. 병들고 곰팡이 슨 사고체계는 현명한 해답을 쉽게 내지 못했다.
아이를 데리고 도망이라도 갈까.
안 될 말이었다. 남자는 자신이 살아있는 한 핏기 터진 눈을 번득이며 죽을 때까지 추적해 올 거다. 평생을 발각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떨며 살게 될 게 뻔했다. 아이는 금방 자라 초등학생이 될 테지만, 학교에도 보낼 수가 없을 거다.
그럼 남자를 죽일까.
그것도 아니었다. 남자는 쉽게 죽어주지도 않을뿐더러, 그를 죽인다 해도 그를 따르는 수많은 사내들이 저와 이이를 찢어 죽일 거다.
그렇다면, 남은 건 제가 죽거나 사라지거나…….
이렇게 사느니 제 아이도 고아가 되는 게 나을 거다. 제가 살아 온 20년의 세월은 고단함으로 점철되어 있었지만, 이렇게 가슴 찢어지는 절망을 수도 없이 맞닥뜨린 적은 없었다. 없느니만 못한 부모는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있었던 거다. 바로 저 자신이었다.
아니, 어쩌면 이 모든 게 다 핑계일 수도 있었다. 그녀는 너무나 지치고 고단했다. 행복해야 할 결혼 생활도, 육아도, 그녀는 너무나 준비 없이 맞닥뜨렸다. 그건 교통사고처럼 온 몸을 바스러뜨리는 충돌과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제 사랑하는 아기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은 하늘 아래 떳떳이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 아기가, 행복할 수 있다면 저는 제 살점을 모두 발라내어 제물로 던질 수도 있었다.
다만, 방법을 모를 뿐이었다. 제 아기를 정말 행복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그 최선의 길을, 자신은 누구에게서도 배우지 못했다.
살 수 있을까. 스스로에게 물어봤지만 머리는 그냥 명했다. 죽어도 살아도 어차피 아이에게 자신의 존재는 독이었다.
그녀는 제 아기에게 말했다. 도망가라고, 틈이 나는 대로 무조건, 엄마도 아빠도 찾지 못할 곳으로 아주 멀리…….
누가 물어보면 이름도 모르고 나이도 모르고 사는 곳도 모른다고. 그렇게 대답하면 고아원에 데려다 줄 테니까. 고아원이 이 지옥 같은 집보다는 나을 게 분명했으니까.
만약 생각보다 빨리 발견되어 운이 좋게 살아난다 해도, 아이의 앞에는 영영 나타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더 운이 좋아 제 마음의 병이 치유 된다면, 멀리에서 가끔 얼굴이나 볼 수 있었으면 더 바랄 게 없을 거다. 후회하지 않을까.
一분명 후회하겠지. 제 아기가 목메게 보고픈 순간마다 고통 속에 뼈마디가 뒤틀리겠지. 소식조차 알 수 없음에 매일 가슴을 치며 울겠지.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그녀는 사랑하는 제 아기가 자라 무사히 탈출하기를, 좋은 양부모를 만나기를 진심으로 빌며 칼을 들었다.
Hidden Track .” After the Caramoor Festive
베네치안 극장에서 호텔까지 어떻게 왔는지 가물가물했다. 오는 내내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굳게 깍지 껴서 잡은 손은 통증이 부대낄 만큼 하얗게 질려 있었다. 인내를 끊어먹으려 드는 충동을 사납게 누르느라 폐에서는 쇳소리가 났다.
객실에 들어오자마자 두 사람은 물어뜯듯 키스하다가 뒤엉켜 넘어졌다. 전력으로 달린 사람들처럼 헐떡거렸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단추를 풀고 지퍼를 내렸다. 에녹은 시계를 풀어 내던지고 열기에 젖은 셔츠를 빠르게 벗어 내렸다.
반쯤 풀어헤쳐지다 만 정난우의 앞섶도 단번에 뜯어냈다. 단추를 튕겨 낸 실밥이 펄럭이며 멀어져갔다. 에녹은 활짝 드러난 상체를 갈팡질팡 매만졌다. 그것만으로도 흥분 수치는 급격히 가파른 곡선으로 떠올랐다. 어디를 건드려도 속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거친 손아귀에 감기는 피부는 축축했다. 끓는 신음을 토해내며 다시 입술로 달려들었다. 로맨틱함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는 키스였다. 에녹은 사냥감을 해체하는 들짐승처럼 턱을 움직였다.
주체할 수 없이 가빠진 호흡이 엉망으로 뒤섞였다. 맞붙은 입술에서는 비릿한 피 맛이 났다. ‘입술 찢어졌어. 아파?’ 에녹은 정난우의 지퍼 열린 바지를 속옷과 함께 끌어내리며 속삭여 물었다. 정난우는 달아오른 얼굴을 흔들었다.
“안 아파요. 더 해 주세요.”
마지 독한 술에 취한 듯 펄펄 끓는 목소리였다. 전신의 피부가 얼얼해 현실감이 떨어졌다. 많은 밤 떠올리다 괴로워하던 것들이 정말로 제 밑에 깔려있는 거다.
에녹은 정난우의 엉덩이를 들어 마저 밑에를 다 벗겨냈다. 급한 마음에 팽팽하게 부푼 제 걸 속옷에서 집어냈다. 활짝 벌어진 가랑이 사이에 프리컴을 치덕치덕 바르다 고개를 내렸다.
다물린 입구를 비집고 들어가는 손가락은 거칠었다. 에녹의 미끈하게 정리된 눈썹이 일그러졌다. 두 달 가까이 손가락 하나 못 품어 본 구멍은 너무 빡빡했다. 무식하게 달려들었다가는 유혈사태가 날지도 모르겠다.
처음 안을 때에 비하면 덜 하지만 그날 정도의 공은 쏟아 부어야 할 거다. 에녹은 다급히 바지 뒷주머니를 더듬었다. 새빨간 귓바퀴의 연골을 잘근잘근 씹으며 지갑을 꺼냈다.
한 손으로 그 안에 든 낱개 콘돔을 꺼냈다. 다른 손으로는 뜨겁게 꿈틀거리는 두 개의 성기를 한 번에 잡아 마찰했다.
정난우는 베네치안 극장의 잔디정원에서부터 달라 올라 있던 몸을 노골적으로 흔들며 보챘다. 빨리 넣어 주세요, 하며 눈물까지 찔끔거렸다.
하고 싶을 때 참도록 놔둬 본 적이 없으니 이러는 거다. 후회하고 싶지 않은 후회가 밀려와 에녹은 괴로웠다.
“착하지. 좀만 참자, 이대로 쑤셔 넣으면 너 다쳐.”
완전히 발기한 두 덩어리가 넘치는 욕망을 대변해 프리컴을 흘렸다. 척척거리는 마찰음이 헐떡임에 섞여들었다.
에녹은 빈손으로 꺼낸 콘돔을 잇새에 끼워, 껍질을 벗겨냈다. 정난우는 또 눈치도 없이 고개를 흔들며 바르작거렸다.
“콘돔 안 할래요.”
“낄 거 아냐. 바를 거야.”
에녹의 관자놀이에 퍼런 핏줄이 불거졌다. 자꾸 조르니까 정말 그냥 넣어버리고 싶어지는 거다. 날뛰는 충동을 가까스로 억눌렀다.
재빨리 콘돔 끼운 손가락을 움찔대는 구멍 안에 쑤셔 넣었다. 번들거리는 윤활제 덕에 삽입은 한층 수월했다. 이 가느다란 것에도 정난우는 벌어진 허벅지를 떨며 엉덩이를 꿈틀거렸다.
“오 분만 참자. 밑에 좀 벌려두고.”
벌건 얼굴에 뺨을 비비며 말하자 정난우는 울상을 했다. 잠깐 아프면 안 돼요? 하는 걸 애써 달랬다. 얼굴을 깨물고 눈썹을 깨물고 코끝도 깨물었다. 통통하게 올라온 입술에 피가 다시 맺혀 핥아주기도 했다.
정난우는 입을 벌리며 혀를 내밀었다. 아, 아. 안달 난 것처럼 목을 울렸다. 머리카락 한 올 볼 수 없었던 시간 동안 정난우 역시 심장을 뜯기는 마냥 아팠던 거다. 온 몸으로 당신이 그리웠다고 말하고 있었다.
이게 참 남자 녹이는 법을 아는구나 싶은데 능글맞게 놀려줄 여유가 없었다. 에녹은 녹아내리듯 뜨거운 숨과 함께 그 혀를 쭉쭉 빨았다. 내벽에 꽂힌 콘돔 속으로 막 손가락 하나를 덧대 넣을 때였다.
정난우가 손을 뻗었다. 그리고 여전히 성기 두 개를 마찰하고 있는 에녹의 손목을 쥐었다. 에녹은 왜, 하며 제 입술을 핥았다. 정난우는 침을 한 번 크게 삼키더니 몽롱한 눈빛으로 말했다.
“저, 그거 먹어 봐도 돼요?”
“오 분, 아니, 사 분만 참으라니까. 실컷 먹여 줄게.”
또 떼를 쓰는 구나 싶어서 에녹은 벌어진 입술을 벌주듯 깨물었다. 작작 좀 해, 나도 참기 힘들어, 그렇게 속삭이는 음성에는 짙은 금속성이 떠돌았다. 정난우가 아니요, 하며 대꾸했다.
“그, 그거 말고…… 당신 거요.”
막 턱 선을 따라 입술을 쓸어내리려다 에녹은 고개를 들었다. 무슨 말인지 언뜻 이해가 안 가 묻는 눈을 했다.
정난우의 목울대가 한 번 힘차게 끄덕거렸다. 뭔가 말이 정리가 안 되는지 눈을 사방으로 굴리다가 상체를 일으켰다. 에녹이 반사적으로 구멍 안에서 손가락을 빼내자, 동시에 정난우가 와락 달려들었다.
흥분해서 반쯤 혼을 빼고 있던 에녹은 쉽게 뒤로 떠밀렸다. 밀착한 거리에서 눈이 마주쳤다. 에녹이 오싹함을 느끼며 긴장하는 순간, 거칠게 못박인 손이 뜨거운 제 것을 감싸왔다.
눈썹이 꿈틀 일그러졌다. 얘가 왜 이래, 생각할 때였다. 위험하리만치 헐떡이는 숨결이 낯가죽을 뜯어낼 듯 달려왔다.
“서툴러도 이해해 주세요.”
“…그러니까 뭘.”
오고가는 목소리는 경쟁하듯 쉬어 있었다. 정난우는 대답 없이 몸을 낮췄다. 에녹의 눈시울이 커다랗게 벌어졌다가 직후 일그러졌다.
“야, 잠깐.”
다급히 제지했지만 정난우는 이미 미끈거리는 귀두를 입술로 감싸고 있었다. 갈라져 피가 맺힌 붉은 입술 안으로 검붉은 음경이 쭉 빨려 들어갔다. 에녹의 목에 화산재 같은 호흡 한 토막이 걸렸다. 얼굴에 피가 몰리고 이마에도 혈관이 꿈틀거렸다.
열탕에 들어온 것처럼 머리가 핑 돌았다. 에녹은 절제할 자신이 없었다. 그냥 밑에 넣어 줄게, 하는데도 들어먹질 않았다.
정난우는 정말 약이라도 집어먹은 사람처럼 아이스크림 녹여먹듯 허겁지겁 빨아 제치고 있었다. 테크닉이라고는 쥐똥만큼도 없이 우물거리지만 그 얼굴만으로도 자극은 극점을 웃돌았다.
에녹은 바짝바짝 타는 입을 혀로 축이며 제 가랑이 사이에서 움직이는 머리통을 내려다보았다. 그 탐나는 얼굴이 제대로 안 보였다. 누워서 감상할까하는 유혹이 고개를 쳐들었다. 하지만 그걸 보면 끝장이었다. 목구멍을 열어 끝까지 삼키게 하고 싶어질 거다. 미친 듯이 흔들다가 그 안에서 파정하고 싶을 거다.
에녹은 큰 맘 먹고 떼 냈다. 정난우는 왜요, 싫어요, 하며 반항했다. 에녹은 꽉 붙든 머리를 놔주지 않았다. 다시 바닥에 눕히며 달랬다.
“한 번만 빼자. 딱 한 번만 빼고, 그 다음에 해. 지금 내가 못 참아서 안 돼. 너 입이랑 목 다 헐어.”
“괜찮은데…….”
쉬, 하며 에녹은 제 입술로 정난우의 맹랑한 입을 틀어막았다. 속살이 닿자 정난우의 눈은 물에 풀어진 물감처럼 또 맥없이 초점을 잃었다. 헐떡이며 열심히 혀를 비비는 행동에 단전 아래쪽은 이미 물어뜯기는 것처럼 고통이 할퀴었다.
콘돔이 빠진 내벽에는 미끈한 윤활제가 남아 있었다. 손가락을 더 넣어 살을 벌리려던 때였다. 잠깐 입술이 떨어진 틈을 타, 정난우가 허리를 띄우며 다리를 한껏 벌렸다.
“그럼 그냥 넣어주세요.”
뭐라도 해 주세요, 정난우는 애가 달은 사람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이쯤 되면 27년 수행한 성직자도 타락하지 않고 못 배길 거다.
수행과 담 쌓은 에녹은 당연히 욕설과 함께 이성을 내던졌다. 더 망설일 것 없이 뻐끔거리는 입구에 귀두를 맞췄다. 무식하게 입구를 쪼개며 곧장 뿌리까지 박아 넣었다. 딱딱하게 솟은 살덩이 하나로 이어진 몸뚱이에 자근자근한 희열의 떨림이 내렸다.
“이제 만족해?”
에녹은 정난우의 얼굴 곳곳에 코끝을 비비며 허리띠를 단번에 빼내 던졌다. 쇠 버클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차갑게 울렸다.
정난우는 고통과 만족감의 경계에서 헤맸다. 일그러진 미간에 음영이 짙어졌지만 고집스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정말 좋아요…….”
“아파 보이는데 자꾸 달려드니까 참기 힘들잖아.”
뿌리까지 먹인 상태에서 에녹은 곧장 안을 휘저었다. 반 정도 빼냈다가 다시 쑤셔 넣길 반복했다. 그 때마다 빠듯한 속살은 물어뜯을 듯이 감겨왔다.
눈가에 열기가 차올랐다. 천국이 따로 없을 감각이었다. 깊이 파묻힌 음경은 물론 두개골 안쪽까지 온통 진득하게 풀어져 내렸다.
“아, 흐으…….”
정난우가 짙은 탄식을 홀렸다. 에녹은 벌어진 다리 한 쪽을 팔뚝에 걸치며 상체를 수그렸다. 가볍게 입을 벌리자 정난우는 혀를 내밀었다.
타액 젖은 살덩이 두 개가 닿았다. 뜨겁고 거친 호흡이 섞여들었다. 에녹은 혀끝을 뾰족하게 세웠다. 그리고 정난우의 혓바닥 위를 주욱 긁으며 밀어 넣었다. 돌아올 때는 입천장을 핥아 올렸다.
에녹은 그간의 갈증을 보상받으려는 듯이 야만스럽게 허리를 찍어 올리기 시작했다. 갈라진 신음소리는 에녹의 혀가 모조리 감아갔다. 정난우는 동굴 속에 버려져 우는 새끼짐승처럼 끙끙거렸다.
“학…에녹…….”
문득 따끔한 감각에 정난우는 소스라쳤다. 사지를 움츠려 에녹의 몸을 감쌌다.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그의 허리를 다리로 조이고,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잔뜩 헤집어놓았다.
에녹은 작정한 듯이 말끔한 몸에 울혈을 씹어 나갔다. 어깨고 쇄골이고 붉은 흔적들이 낭자하게 전염되어갔다.
쉴 새 없이 쪼개고 들어가는 비부는 화염처럼 뜨거웠다. 그곳에서 뻗어나간 열기에 뼈마디가 녹아내릴 것 같았다. 에녹은 펄펄 끓는 신음과 탄식을 여과 없이 쏟아냈다.
만족스럽게 영역 표시를 마친 뒤 고개를 들었다. 마주친 눈은 둘 다 탁하게 흐트러져 있었다. 눈빛이 뒤엉키는 순간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거칠게 맞물린 입술 사이로 헐떡이는 숨결과 비음이 녹아내렸다.
정난우는 비슬비슬 흘러내려오는 타액을 허겁지겁 삼켰다. 세차게 꼬이고 비벼대는 혀를 열심히 빨아먹었다.
맛있었다. 그 어떤 달콤함에도 비할 바가 못 됐다. 그의 몸 안에 있는 액체 한 방울까지 다 제 것이었다. 그가 가진 모든 걸 먹고 싶어 수많은 밤 습격하는 꿈속에서 앓고 또 앓았다. 이제 참지 않아도 되는 거다.
그가 힘차게 허리를 밀고 올라올 때마다 민감한 몸은 일일이 반응했다. 통증이 부스러기처럼 잔재하는 구멍을 조이고 등허리를 뒤틀었다. 에녹은 연신 환희에 떨었다. 느리게 조절하는 법 없이 계속 쾅쾅 찍어댔다.
땀 맺힌 가슴이 맞닿았다. 에녹의 탄력적인 가슴이 거칠게 비벼졌다. 톡 솟아오른 유두가 탄탄한 흉근에 무수히 짓이겨졌다.
눈 꼬리에 열 맺힌 눈물방울이 크기를 부풀려갔다. 팔뚝에 닿은 그의 등 근육들도 피막을 찢고 나가려는 새끼 새처럼 힘차게 꿈틀거렸다.
그의 입술이 종아리 안쪽에 닿았다. 잇자국이 날 만큼 깨물어 그 안쪽을 힘껏 빨아들였다. 불꽃이 옮겨 붙은 듯한 타액 발린 자국 위에서 그의 목소리가 애틋하게 들끓었다.
“나 보고 싶었어?”
“네, 네…….”
에녹은 얼마나, 하고 재차 물었다. 정난우는 가슴을 헐떡이며 대답했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당장 당신한테 날아가고 싶을 만큼이요. 그 안에 섞인 울음은 몽롱한 쾌락과 사무쳤던 그리움으로 얼룩져 있었다.
“당신은요……?”
붉게 부풀어 번들거리는 입술이 느리게 정면을 향했다. 그의 시선은 제가 남긴 자국을 진득하게 쓸어내린 뒤에야 내리꽂혔다. 그의 눈동자엔 검푸른 기가 일렁거렸다.
에녹은 허리 짓의 속도를 한층 죽이며 고개를 내렸다. 눈물 젖은 채 간헐적으로 떨리는 눈꺼풀에 입술을 문질렀다. 그대로 말했다.
“난 당연히 도는 줄 알았지.”
에녹은 혓바닥을 넓게 펴서 정난우의 뺨을 길게 핥았다. 미끈한 살결에선 황홀한 맛이 났다. 정성껏 아랫배를 튕겨 올릴 때마다 헤프게 골반 아래 걸려 있는 슬랙스의 허리춤이 펄럭펄럭 허공을 갈랐다.
에녹은 갈증이 달아나지 않는 제 입술을 혀로 축이며 상체를 일으켰다. 그리고 갈 곳 잃은 두 손에 제 것을 깊이 깍지 껴서 바닥으로 짓눌렀다. 내벽의 곳곳을 골고루 찔러주며 말했다.
“이대로 한 번 진탕 놀자.”
“아…… 싫어요.”
“얘가 또 이러네. 맛있다고 급하게 먹다 체하려고.”
“그냥 빨리 젖게 해 주세요. 저…아읏…….”
정난우가 엉덩이를 조금씩 뒤틀다 뒷말을 이었다. 당신 거 먹어보고 싶다고 말했잖아요, 하며 미간을 좁혔다. 움찔거리며 조이는 내벽의 압박은 더 심해졌다. 에녹은 미소 지은 고개를 내리며 말했다.
“그럼 열심히 애무해 봐. 자극을 줘야 빨리 나오지.”
“…어디를요? 어떻게요?”
“아무데나. 어깨고 가슴이고 등이고 얼굴이고, 어디든 좋으니까. 물고 빨고 만지고 할 수 있는 거 다 해 봐.”
에녹은 깍지 낀 손을 들어 가늘고 투박한 손가락을 쭉쭉 빨았다. 더러워요, 정난우는 기겁하며 빼려 했지만 꼭지까지 흥분한 남자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빨간 혀는 여러 각도를 오고 가며 보란 듯이 핥아댔다.
손가락 하나가 그의 번들거리는 입술로 쭉 빨려 들어가고, 그의 손아귀에 감싸인 성기도 같은 리듬을 탔다. 음미하듯 내벽을 쑤셔대던 움직임도 끔찍할 만치 생생하게 뇌를 두드렸다. 움찔움찔하던 사타구니에서 한 올의 힘마저 빠져나갔다.
제단 위에 오른 제물이 된 기분이었다. 그는 머리카락 한 올마저 녹여 먹을 위대한 포식자였다. 그러나 활짝 벌어진 가랑이에 뜨거운 남성을 묻고서 올라탄 그가 두렵지 않았다. 몸을 짓누른 압도적인 그림자마저도 사랑스러웠다.
최면에 걸린 것처럼 손이 나갔다. 굳은살 박인 손끝으로 유륜을 스치고, 유두를 건드리고, 쇄골을 덧그렸다. 그저 만지는 것뿐인데 목 안쪽이 좀 더 뜨거워졌다. 문득 갈증이 가파르게 치밀었다. 숨이 가쁘고 입술이 말랐다. 헐떡이며 입술을 핥는 순간이었다.
에녹은 희롱하듯 느리게 돌리기만 하던 절제를 예고 없이 풀어헤쳤다. 헉, 하얗게 굳은 숨이 기도를 넘어갔다. 종아리로 꽉 감아 당긴 그의 허리는 낯 뜨거울 정도로 방탕한 동선을 그렸다. 전립선 밑을 노골적으로 공략 당했다. 눅눅하게 풀어진 신경이 단숨에 바짝 민감한 날을 세웠다.
정난우의 눈이 크게 벌어졌다가 이내 왈칵 일그러졌다. 옅게 갈라진 비음이 물컹한 덩어리로 허공에 튀었다.
“학……! 아아, 흐읏!”
에녹은 그 달달한 목소리를 깊이 흡입했다. 콧속 점막과 비강에 들러붙는 신음 가루들은 필로폰처럼 전신의 혈관으로 빠르게 뻗어나갔다. 끈끈한 환락이 눈앞에서 휘몰아쳤다. 단전 끝에서 불티처럼 떠도는 오싹한 감각들이 명치를 스쳐 정수리까지 도달했다.
짙은 한숨을 뿌리자 정난우는 떨리는 혀를 내밀었다. 에녹은 뾰족하게 만든 혀끝으로 그 위를 자근자근 누르고 턱 아래를 그루밍하듯 핥았다.
에녹에게서 땀처럼 뚝뚝 흘러내리는 쾌락의 결정들에 정난우 역시 속수무책으로 젖어들었다. 포화상태에 이른 스펀지가 되어 버렸다. 어느 곳을
건드려도 달콤한 비명과 체액이 흘렀다.
정난우는 탄탄하게 올라붙은 에녹의 가슴 근육을 꽉 움켜쥐었다. 말기 중독자처럼 힘없이 벌린 입에서는 타액이 흘렀다. 극치의 감각을 헤매다 무심결에 손가락을 오므렸다. 짧게 깎인 손톱이 탱탱한 살갗을 주욱 긁어 내렸다.
에녹이 일순 눈매를 갸름하게 좁혔다. 곧이어 짙은 숨결이 절로 목구멍을 역류했다. 따끔한 통증마저 짜릿한 거다. 힐긋 내려다본 가슴 위엔 붉은 실선이 미려한 곡선으로 빠졌다. 마치 예뻐하는 짐승이 앙탈부린 발톱 자국처럼 보였다.
“내가 토끼가 아니라 냥이 새끼를 키웠나. 이제 막 할퀴는 거 보면.”
에녹은 진득하게 휜 입술로 속삭였다. 정난우는 화들짝 놀라 정신없이 눈을 굴렸다. 빨갛게 부은 손톱자국을 발견하더니 안타깝게 미간을 좁혔다. 그리고 축축한 눈을 빤히 부딪쳐 왔다.
“아, 아파요?”
“안 아파.”
에녹은 한 손으로 붉게 열이 찬 눈가를 어루만져주며 대꾸했다. 그래도 주저하는 반응이 돌아오자 가슴 옆까지 밀어올린 무릎 안쪽을 빨았다. 빨간 울혈은 금세 여린 피부 위에 도드라져 올라왔다. 이거랑 같은 건데 뭘, 하며 그 옆의 살도 씹어댔다.
“더 긁어도 돼. 노출 신 이제 없으니까 어차피 또 한동안 너만 볼 거야.”
정난우는 고개를 흔들며 등을 꽉 안았다. 상처 나는 거 싫어요, 흐느끼듯 말하는 목소리에 뼛속까지 진동했다.
“내가 괜찮다고 하잖아. 뼈가 녹을 만큼 좋으니까 맘껏 할퀴어 줘.”
네 거라는 표시, 남기고 싶지 않아?
그가 유혹하듯 고개를 꼬며 물었다. 내리깐 눈빛은 야만스러우면서도 달콤했다. 정난우는 핀치에 물린 사람처럼 눈을 굴렸다. 울렁이는 눈 밑에 그의 새빨간 혀끝이 닿았다. 이내 부서질 것처럼 치받는 움직임에 짓이겨진 몸이 또 사방으로 흔들렸다. 뭉치려던 잡념이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아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정난우는 그저 생리적인 눈물만 뽑아냈다. 진저리쳐질 만큼 안을 들락거리는 뜨거운 기둥을 더 꽉 물했다. 활어처럼 툭툭 튀는 등의 세심한 근육들을 다시금 분별없이 만져댔다.
에녹은 연신 쫑긋거리는 귓가에 둔탁한 음성을 흘려 넣었다.
“아…그래. 더 만지고 더 조여. 조금만 더…….”
어느 순간 정난우가 몸을 뒤틀며 자지러졌다. 마른 허리가 큰 곡선으로 휘었다. 두 팔이 바닥에 툭 떨어지고, 허리를 조이던 종아리도 허공을 향해 번쩍 솟아올랐다.
아아아, 정난우의 얼굴이 발갛게 일그러졌다. 발기한 채 꿈틀거리던 작은 성기가 우윳빛 액체를 툭툭 쏟아냈다.
“윽…아아…… 에녹, 흐으…….”
정난우는 젖은 눈으로 올려다보며 목을 끌어안아왔다. 만져주세요, 하고 조르며 엉덩이를 흔들었다. 꼬리가 있었으면 아마 살랑살랑 물결치고도 남았을 거다.
“밝히기는.”
에녹은 기분 좋게 평하며 말랑하게 죽은 정난우의 성기를 부드럽게 주물러주었다. 무식하게 찍어대던 것도 부드러운 리듬으로 휘돌렸다.
사정의 여운에 젖었을 때 이렇게 안쪽을 틈 없이 자극해 주면 정난우는 꼴딱 넘어가기 일쑤였다. 이번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아, 아아…….”
“좋아?”
정난우는 황홀경에 빠진 얼굴로 고개를 연신 끄덕거렸다. 홀쭉한 아랫배도 경련하듯 오르내렸다. 착착 감기는 속살도 마찬가지였다.
에녹은 정난우가 뿌려놓은 정액을 한 손으로 성의 없이 훑었다. 미끈하게 손끝에 엉긴 액체를 유두 위에 슥슥 문질렀다. 그 야릇한 감각에 밋밋한 가슴은 크게 튀어 올랐다.
“이제 나도 쌀까?”
정난우가 빠르게 고개를 흔들었다. 에녹은 성기를 거의 끝까지 빼냈다가 곧장 뿌리까지 찍어 내렸다. 정난우가 흐윽, 하며 이번에는 어깨를 긁었다. 고개를 돌려 확인하지 않아도 붉은 선이 남았을 거다. 키스마크 대신 이렇게 앙탈 자국을 달고 있는 것도 꽤 괜찮은 것 같았다.
에녹은 제 것을 받느라 주름이 사라진 구멍에도 정난우의 정액을 치덕치덕 발랐다. 번들거리는 살덩이가 벌려놓은 곳에 뽀얀 띠가 둘러졌다.
음란한 절경에 머릿속이 팔팔 끓었다. 드디어 숨죽인 채 몰아치던 절정감이 크게 솟을 기미가 보였다. 에녹은 입술 안쪽을 한 번 힘 있게 씹어 물었다. 그리고 전력으로 제 것을 찍어 올리기 시작했다.
모든 걸 휩쓸어갈 듯한 감각들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그 격정의 해일 아래 두 사람은 정신없이 뒤엉켰다. 숨조차 편히 내뱉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고, 강하고, 사나웠다.
에녹은 빨갛게 달아오른 귓바퀴를 물었다. 금방 나올 것 같아, 가쁘게 고조된 신음 섞어 속삭였다. 대답은 비음과 엉킨 교성이 대신했다.
다리를 높이 벌려 두고, 한 손으로 가랑이 사이를 헤치고 들어갔다. 축축한 아랫배를 점잖지 못하게 쓸어댔다. 남은 정액을 묻혀간 손은 가슴을 타고 올라가 턱을 강하게 쥐었다. 지나간 자리마다 미끈한 액체가 뱀처럼 이어졌다.
정처 없이 허공을 짚던 까만 눈이 느리게 위로 향했다. 비틀린 얼굴은 무너질 듯 말 듯 아슬아슬했다. 한계치를 뚫은 쾌감으로 엉망이었다.
너무 좋으니까 무서워요, 곧 정적 아래로 까라질 것 같은 목소리에 피부가 따끔거렸다. 에녹 역시 제 들끓는 감정들을 포장 없이 쏟아냈다.
“나도 그래.”
정난우는 백치처럼 초점 나간 눈을 멍하니 깜빡이다가 달뜬 숨을 흘리며 팔을 뻗어 왔다. 에녹은 빠른 펌프질을 이어가며 기꺼이 그 몸을 부둥켜안았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접촉의 순간부터 몸을 흔들어 살갗을 부대꼈다. 거칠게 헐떡이는 숨결은 땀과 함께 서로의 몸에 엉겨붙었다.
짐승처럼 들이받아도 정난우는 기꺼이 다리를 벌렸다. 그 고문 같은 행위를 순교자처럼 모조리 품었다. 터질 듯 꿈틀거리는 등 근육 위로 따끔한 감각들이 연신 저릿하게 긋고 지나갔다.
에녹은 민감한 귓가에 쇳소리 같은 신음을 구겨 넣었다. 흠칫흠칫 떨릴 때마다 뜨거운 걸 삼킨 내부는 빨판처럼 감겨왔다. 잔뜩 상기된 뺨을 맞대 문지르고, 콧등을 입술로 물어 말랑한 연골을 우물거렸다.
경련하는 눈 꼬리에서 물기가 맺히더니 이내 관자놀이에 흘렀다. 에녹은 혀를 내밀어 그걸 역방향으로 핥아 올라갔다.
이내 혀끝에 가늘고 풍성한 속눈썹이 닿았다. 증기 같은 정난우의 숨결이 목을 타고 흠뻑 흘러내렸다. 마지막 이성 한 줌마저 녹아내렸다. 열 섞인 시야가 혹서기의 아스팔트처럼 울렁거렸다.
에녹은 정난우의 축축한 뒷머리를 한 손으로 크게 감쌌다. 그대로 끌어와 토실한 윗입술을 잇새에 넣고 혀끝으로 꾹꾹 눌렀다. 정난우는 헐떡이며 혀를 내밀고 정신없이 턱을 핥아댔다.
미약한 현기증이 독한 감기약처럼 혈관으로 뻗어나갔다. 하아, 낮게 갈라진 탄식 뒤로 정난우의 입 안에 제 혀를 깊이 들였다. 고개를 기울여 꽉 맞물었다.
에녹은 팔뚝으로 바닥을 짓누르며 깊이 몸을 내렸다. 유연하고 어설프게 보조를 맞추던 허리가 크게 휘었다. 에녹은 미간을 좁히며 입술 안쪽을 지그시 물었다. 축축하게 젖은 교접부 안쪽을 빠르게 쳐올렸다.
“아…아아! 하악!”
따라가지 못할 속도에 정난우는 진저리를 쳤다. 쉴 새 없이 몰아치는 쾌락의 파도에 검은 눈동자는 완전히 풀려 혼몽하게 물결쳤다. 축축이 젖은 눈이 어룽거리는 시야를 한참 헤치고 헤매다 돌아왔다.
에녹은 파들파들 떨리는 정난우의 한 손을 잡아챘다. 습하고 뜨거운 손바닥 안에 한 쪽 뺨을 묻었다. 혀를 내밀어 푸르게 고동치는 손목을 긁었다. 정난우의 애틋한 어루만짐이 떨림과 함께 피부에 젖어들었다.
정난우가 눈꺼풀을 바르르 떨며 묽은 액을 또 한차례 찔끔 쏟아냈다.
터졌다기보다는 질질 흘린 것에 가까웠다. 흣, 에녹의 미간에 고인 음영이 일순 짙어졌다. 비틀리던 심장에 섬광 같은 화살이 관통했다.
엉덩이 근육이 절로 긴장하며 조여들었다. 퍽 꽂힌 삽입에 정난우는 부서지듯이 몸을 떨었다. 이를 악물고 몸을 쪼갤 듯이 강하게 밀어붙이길 몇 번, 마침내 깊숙한 안 쪽에서 뜨거운 액이 쏟아졌다.
긴 시간 묵혀둔 사정의 순간에도 에녹은 느리고 강하게 펌프질을 계속했다. 귀두 끝에서 쏘아져나간 것들이 앞뒤로 움직일 때마다 성기 전체를 질퍽하게 감싸왔다. 소름 돋을 만치 극렬한 쾌감이 혈관을 휘돌았다.
긴 파정의 끝에서, 에녹은 슬슬 부피가 줄어드는 제 것을 뿌리까지 다시 먹였다. 버릇대로 아랫배를 비벼 온 사방을 마찰했다. 눅눅하게 젖어든 절정의 빈자리는 나른한 쾌감이 가득 메웠다.
에녹은 떨리는 입술에 다시 제 입술을 물려주었다. 고조된 호흡이 거칠게 뒤엉켰다. 젖 찾는 아기처럼 정난우는 무심결에 허겁지겁 빨아댔다.
미끈하게 감겨오는 속살은 위도 아래도 꿀처럼 달았다. 에녹은 오돌토돌한 입천장을 혀로 몇 번 긁어내다가 입술을 떼 냈다. 그리고 속삭였다.
“원대로 흠뻑 쌌어. 오랜만에 먹으니까 더 맛있지?”
정난우는 가물가물한 눈을 맞춰왔다. 그리고 겨우 갈라진 음성을 숨결에 실어 내보냈다.
“네 정말 좋아요. 너무 좋아요.”
에녹은 탈진한 듯 바닥에 늘어진 몸 위를 돌덩이 같은 상체로 짓눌렀다. 맞닿은 가슴이 힘찬 고동으로 오르내렸다. 에녹은 유두 돌기 위를 슥슥 가슴으로 문대며 흐리게 웃었다.
“네 안에 싸고 싶어서 미치는 줄 알았어.”
까맣게 잠기려던 의식을 다시금 솟구치게 하는 주문이었다. 정난우는 가물거리는 눈을 깜빡이며 그의 얼굴을 힘없이 올려다보았다.
부드러운 곡선의 입술과 달리 그의 아름다운 눈동자는 깨졌다 부서진 거울처럼 실금이 비쳤다. 고통이 긁고 간 상흔이었다. 그가 싫어할 게 분명한 미안하단 말 대신, 정난우는 그를 힘껏 끌어안아 주었다. 그 역시 바스러뜨릴 듯이 마주 안아 왔다.
“제 캐리어에 항상 수북하게 들어있는 악보들 있잖아요. 이제 다 쓸모없게 되어버렸어요.”
그가 상체를 조금 일으키며 물었다. 그의 눈빛은 한시도 방황하지 않고 제 동공을 정확히 찔러 내려왔다. 땀이 눌어붙은 손바닥에 입술이 꾹꾹 눌러졌다. 그 부드러운 감촉을 음미하며 천천히 대답했다.
숱하게 올랐던 피의 무대가 격변하던 그 순간을, 이제껏 제가 연주했던 악보들은 모두 다 찢어 없애야하는 지금의 순간을, 그리고 작곡가의 음표들만 깨끗하게 적힌 오선지에 에녹이 덧씌워질 미래의 악보들을.
자신을 원망하고 벌주던 어머니가 무대에서 사라졌다. 한 세계가 무너지는 순간에도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 거기에 에녹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휘청거리면 잡아주고, 넘어지면 일으켜주고, 험한 길은 앞서 나가 발로 잘 정돈해 두고서 기다려주는 그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느린 물처럼 흘러나온 고백은 자잘한 떨림을 동반했다. 단어들이 길게 꼬리를 이을수록 그의 중심을 물고 있는 살이 벌어져간 탓이었다.
훤히 드러난 사타구니가 짧은 경련을 이어갔다. 무심결에 구멍을 조이며 허리를 들썩이자 그의 목에도 더운 신음이 고였다. 그가 상체를 내려 어깨 양 옆 바닥에 팔뚝을 찍어 눌렀다.
그림처럼 아름다운 얼굴이 한껏 밀착했다. 입술도 거의 닿을 듯 말 듯 했다. 그가 코끝을 콧등에 비비며 탁하게 갈라진 언어를 쏟아냈다.
“계속해. 안 움직일 테니까.”
정난우는 에녹의 목소리에 한껏 취했다. 피로가 몰려와 무겁던 눈가에 뜨거운 격정이 차올랐다.
“제 모든 악보에…… 에녹, 당신이 생겼어요.”
딱딱하게 부푼 것이 푹 젖은 내부를 다시금 한계까지 벌려 놨다. 정난우는 그 꽉 찬 이물감에 미간을 흐리며 허리를 뒤틀었다. 에녹은 다시 씨를 뿌릴 준비가 된 제 것을 내벽에 느리게 문지르며 말했다.
“안 움직이려고 하는데 자꾸 자극하면 흔들고 싶어지잖아.”
“아…… 저도 안 그러려고 하는데…… 으…….”
“알았어. 참아볼 테니까, 그래서 그 다음은?”
말과 달리 에녹은 정난우의 다리를 다시금 제 허리에 감았다, 내리꽂히는 눈빛도 달궈진 칼날처럼 각막을 찔러왔다. 언제든 끝나는 즉시 거칠게 몰아붙일 기세였다.
“제 무대에서…… 저와 함께해 주실래요? 허락 안 받고, 그냥 저 혼자 몰래 그러는 건, 왠지 훔치는 것 같아서요…….”
꽉 들어찬 그의 중심이 미미하게 꿈틀거렸다. 예민한 몸뚱이는 반사적으로 아랫배를 조였다.
“무슨 얘기로 끝맺나 기다렸더니만.”
에녹이 제 옆구리를 조인 허벅지를 쓸어 올리며 상체를 세웠다. 숨 막힐 듯이 뜨거운 그림자가 정난우의 몸을 뒤덮었다.
삽입 각도가 바뀌자 뜨끈하게 가라앉아있던 불티들이 금세 몸집을 부풀렸다. 역광으로 어두운 그의 얼굴은 희미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짙푸른 안광이 후끈하게 일렁거렸다.
에녹은 정난우의 한 쪽 허벅지 아래를 붙들어 위로 추켜올렸다. 음란하게 젖은 교접부가 훤히 드러났다. 느긋하게 허리를 돌리며 말을 이었다.
“그런 거 일일이 허락 받지 마. 전에도 말했잖아. 네가 내 일부를 욕심낼 때마다 기분 좋다고.”
정난우는 멍하니 눈을 깜빡였다. 에녹은 달짝지근하게 눈웃음을 쳤다.
“낮에는 정난우 호구, 밤에는 정난우 남창. 내 소박한 꿈인데 어때.”
호구, 남창…….
정난우는 여전히 맹한 표정이었다. 느리게 생각을 기워 맞춰 요점만 간신히 붙들었다. 제가 그에게 모두 다 주고 싶은 것처럼, 그도 그렇다는 소리 같았다.
정난우는 솔직히 말했다. 당신이 너무 손해 보는 것 같다고, 저는 너무 가진 게 없다고. 그러자 에녹이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너는 많은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독점할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독점.
그 단어에 심장이 조여 왔다. 그가 자신을 치밀하고 온전하게 ‘나만의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은 거다.
그가 낮은 목소리로, 사랑한다고 속삭였다. 정난우는 허겁지겁 대답을 건넸다. 저도 사랑해요.
이성을 바스러뜨리던 야만성을 한 번 덜어낸 움직임이 부드럽게 재개했다. 정난우는 아아, 앓는 소리를 내며 얼굴 옆에 딱 붙어 있는 단단한 팔뚝을 한 손으로 움켜쥐었다. 굵은 핏줄이 돋아 있는 팔은 엉망으로 얼굴을 문대고 싶을 만큼 근사했다.
아니, 그에게 근사한 부분이 팔 하나뿐이겠냐 만은.
그는 간간이 짐승같이 끓는 신음을 삼켰다. 유연하게 허리를 움직일 때마다 갈라진 복근에 고인 음영이 현란한 춤을 췄다. 넓고 곧은 어깨와 탱탱하게 올라붙은 흉근도 흠잡을 데 없이 관능적이었다.
정난우는 홀린 듯이 두 팔을 뻗었다. 점차 거칠게 흔들려 엇나가는 것도 개의치 않았다. 손끝에 닿는 부위 모두가 핥아먹고 싶을 만큼 탐스러웠다. 한 번 눌어붙은 눈길도 쉽게 떨칠 수가 없었다.
관능이라는 것의 의미를 이제야 제대로 체감한 기분이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맨 상체가 이렇게 아름다울 수도 있는 거였다.
시야가 몽롱하게 풀어졌다. 더 깊은 곳까지 그가 약탈해갔으면 싶었다. 못박인 손끝으로 그의 가슴을 더듬으며 ‘더 깊이요, 더 세게요.’하고 보챘다. 그러자 에녹은 짓궂게 웃으며 ‘그래, 내가 사모님 극진히 모시는 남창이 돼 준다니까’라고 답했다.
팔뚝이 비틀릴 듯 붙들리고 그대로 일으켜졌다. 흑, 날카로운 숨 한 조각을 내뱉는 사이 그의 허벅지 위에 걸터앉아 있었다.
에녹은 한쪽 팔로 허리를 꽉 조여 안았다. 그리고 위로 튀어 오르지 않도록 다른 손으로 어깨를 아래로 굳게 짓눌렀다.
“오늘 놀러가 볼까? 지옥 같은 천국.”
에녹의 입술이 새빨간 미소를 그렸다. 시린 색의 눈동자에도 푸른 불길이 일었다. 오싹하게 등골이 울리는 순간, 그가 사납게 허리를 튕기기 시작했다.
에녹은 체면을 모르는 짐승처럼 움직였다. 예쁘게 사랑을 확인하기보다는 원초적이고 원색적인 행위였다. 불처럼 타는 그의 살덩이는 규칙 없이 온 사방을 마찰했다. 내벽을 헐고 점막을 뜯어갈 듯 무자비했다.
순백의 무지에서부터 착실히 에녹의 색으로 물든 정난우 역시 마음껏 목청을 열었다. 과장하지도 숨기지도 않은 날 것의 목소리가 젖은 공기에 피처럼 붉게 흐드러졌다.
본능만 남은 날짐승들처럼 뒤엉켰다. 으르렁거리는 탄식과 울부짖는 신음이 하얗게 부서져 하나로 뭉치길 반복했다. 극점을 웃도는 쾌감과 골수까지 물렁하게 녹을 듯한 열기가 우박처럼 쏟아져 내렸다.
에녹이 주도하는 그 행위는 늘 그랬듯 그 무엇보다 난잡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열렬한 숭배를 바치는 성결한 의식이기도 했다.
하얗게 부서지는 시야 속에서, 정난우는 언젠가 그가 말했듯이 악기처럼 온 몸을 울렸다. 수년을 함께 했던 자신의 과르네리처럼 뜨겁고 열정적인 소리를 냈다.
一끝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