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Chapter 06(2권) (7/13)

Chapter 05

진동이 끊임없이 울렸다. 정난우는 몸살 앓는 휴대폰이 에녹 그 자체 인것 같아 조급해졌다. 사인해 주는 손이 자꾸만 미끄러졌다. 흉한 필체에도 만족하는 팬들에게 못내 미안한 마음뿐이었다.

차라리 한태영에게 속 편하게 휴대폰을 맡겨두고 싶지만, 이 극성으로 울려대는 걸 타인에게 떠넘길 수도 없었다. 한태영이 이상하게 생각할 게 분명했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 안달하는 마음마저 제가 가지고 싶었다. 얼룩진 제 탐욕이 부끄럽지 않았다. 그는 어젯밤 뜨거운 몸을 비비적거리며 말했다.

「난 네가 해 주세요please 할 때마다 좀 도는 것 같아. 와 주세요, 곁에 있어 주세요, 화 내지 말아 주세요, 이런 거. 그 please만 빼고, 뭐든 네가 내 일부를 가지고 싶어 할 때마다 기분이 좋아.」

정난우는 20년 가까이를 누군가에게 기대야 생존할 수 있는 인생을 살아 왔다. 이제는 얼굴도 잘 기억나지 않는 친부모와 살 때도, 시력을 잃어 저 혼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청소년기에도, 심지어 눈이 다시 보이게 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 상대는 제가 선택하는 게 아니었다. 누군가 자신을 돌봐주기로 마음을 먹어야 저는 살 수가 있는 거였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번개처럼 땅에 꽂혀 생겨난 에녹이 말하는 거였다.

제발 나를 좀 욕심내 달라고.

노력해보기로 약속했다. 원하는 걸 먼저 말하기, 일단 그것부터.

사인회는 10시 가까이 되어서야 끝났다. 얼른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에녹이 주지시켜 준 대본을 읊었다.

 “태영 씨. 내일 아침 비행기로 제주에 먼저 가 있으세요. 저는 에녹 서울 구경 좀 시켜주고 공연 전에 갈게요.”

 “음? 그래도 우리가 난우 씨 옆에 있어야죠. 우리끼리 제주도 가서 뭐한답니까.”

연애지수 제로인 한태영은 눈치도 없이 고개를 저었다. 파리에서 돌아온 에녹과 정난우가 스스럼없이 눈을 맞추는 것에 충격을 느꼈지만 그걸 다른 방향으로까지 엮지도 못할 만큼 그는 둔했다. 다만 몇 년 옆에 있던 저와는 너무 차별하는 거 아니냐며 농담 섞인 진심으로 불만을 털어놓을 뿐이었다.

정난우는 어설픈 손짓으로 그의 어깨에서 바이올린을 강탈했다.

 “아, 아니에요. 가서 푹 쉬면서 관광 좀 하고 계세요. 에녹이랑 약속한게 있어서 저는 이만…….”

 “…에? 난우 씨?”

정난우는 빨개진 얼굴로 바이올린을 품에 안고서 냅다 뛰기 시작했다. 로비를 가로질러 곧장 주차장으로 내뺐다. 당황한 목소리가 등 뒤에서 화살처럼 날아들었다. 그러나 난생 처음 겪는 고용주의 도주 사건에 그들은 민첩하게 반응하지 못했다.

빠앙一

주차장에 들어섰을 때였다. 날카로운 경적이 어둠을 갈랐다. 위치를 알리듯 매끈한 외제차 한 대가 후미등을 켰다. 그의 렌탈차량이었다.

숨 가쁘게 뛰어가자 보조석 차창이 열렸다. 운전석에 앉은 에녹이 슥 몸을 기울이며 손을 까닥해 보였다.

 “빨리 타.”

그의 말대로 보조석에 올랐다. 바이올린을 뒷좌석 캐리어 손잡이에 걸고 코트를 벗어 허벅지 위에 두는 사이 차는 출발했다. 안전벨트를 멜 틈도 없었다. 쏟아질 것처럼 기운 상체를 그의 손이 받쳤다.

 “안전벨트 매.”

그의 목소리는 낮고 차분했다. 안전벨트를 잠그고 나서야 그의 손이 떨어져나갔다. 손바닥이 누르던 가슴을 물끄러마 내려다보았다. 한기가 그 곳을 집중 공략했다. 차내가 추운 게 아니라 그의 손이 인두처럼 뜨거웠던 거였다.

 “너 진짜 양심 없어.”

에녹이 뜬금없는 소리를 했다. 정난우는 느리게 고개를 돌려 그를 올려다봤다.

 “적당히 좀 하고 나올 것이지. 나 애 태워 죽이려고 작정한 것 같다고.”

 “그, 그런 거…….”

 “아니라는 거 알아. 말했잖아, 그래서 네가 종종 무섭다고.”

정난우는 슬금슬금 관자놀이만 긁었다. 그는 말없이 차를 몰았다. 이상하게 공기가 무거웠다. 눈치만 보다가 결국 기어 쥔 그의 손등을 덮었다. 편안히 늘어져 있던 그의 뼈대가 꿈틀 올라왔다. 움찔해서 잡아 빼려 하자 그의 손가락이 단단히 틈새를 얽었다.

조심히 눈을 들었다. 그의 서늘한 시선은 오늘 눈에 띄게 부산히 움직였다. 전면유리로 향했다가, 룸미러를 봤다가, 사이드미러를 봤다가, 그리고 마지막엔 꼭 겹쳐진 손에서 종착점을 찍었다.

그가 문득 눈썹을 일그러뜨리며 중얼거렸다.

 “쳐다보지 마.”

 “…왜요?”

하, 그가 웃음인지 한탄인지 모를 숨결을 쏟았다.

 “참을 수가 없잖아. 이러다 사고 나. 아직 한 번도 못 해봤는데 억울해서 눈도 못 감아. 그러니까.”

 “네.”

 “자, 창밖을 본다. 실시.”

 “네…….”

정난우는 조금 울적하게 대답하며 고개를 돌렸다. 에녹은 액셀을 밟으며 잠시 착잡한 곁눈을 줬다. 정말 이런 순간에선 눈치도 더럽게 없는 놈인데 왜 하는 짓마다 예쁜지 이해가 안 갔다. 저걸 의도적으로 할 수 있는 인간이 있다면 아마 전 세계에서 못 꼬실 놈이 없을 거다.

말없이 속력을 높였다. 입국 후 나흘 동안 사고라도 칠까봐 조마조마 한 날들이었다. 품에 안아 재우느라 모든 밤은 고통의 연속이었다.

핸들 쥔 왼손 위로 자꾸 상스럽게 핏줄이 불거져 나왔다. 표정관리는 잘 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우뚝 솟은 호텔 건물이 전면유리 안으로 들어왔다. 초조함은 그 때, 절정의 곡선을 찍었다. 하복부에 몰린 열기는 점차 뜨거워져갔다. 호텔 입구에 들어서자 도어맨이 다가왔다. 재빨리 얽힌 손을 풀어 코트단추부터 꿰었다.

막 머플러를 동여멜 때 도어맨이 문을 열었다. 에녹은 운전석에서 내려 발레파킹과 캐리어 운반을 부탁하며 팁을 건넸다. 보조석에서 내린 정난우의 팔을 잡아끌었다.

 “내가 지금 흥분해서 코트를 열어줄 수가 없어. 마음도 급해. 그러니까 알아서 잘 따라와.”

정난우는 대답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에녹의 말대로 걸음은 빨랐다. 허둥지둥 따라가기 바빴다. 체크인은 금방 끝났고 에녹은 벨맨에게 미러 팁을 건네며 안내를 거절했다.

그는 직접 캐리어와 바이올린을 한 손에 한꺼번에 걸고서 엘리베이터를 탔다. 평일이라 그런지 밀폐된 공간에는 단 둘뿐이었다.

늘어져있던 손을 에녹이 잡아챘다. 손등을 바스러뜨릴 것처럼 험악한 악력이었다. 점차 심장 박동이 속도를 올렸다.

그 뜨거운 체온이, 그와 호텔에서 재회했던 지난날을 떠올리게 했다. 정난우는 새삼스런 눈으로 꽉 잡힌 제 손을 내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 때 말이에요…… 우리 뉴욕 호텔에서 만났을 때, 엘리베이터 안에서 에녹 손이 제 손등에 닿았어요.”

 “알아.”

그가 머플러를 풀어헤치며 대답했다. 어, 하며 정난우는 시선을 죽 밀어 올렸다. 완전히 풀어낸 머플러를 캐리어에 대강 말아둔 그가 고개를 돌렸다. 뜨겁게 일렁이는 눈동자가 맞부딪쳐왔다.

 “난 너 첫눈에 알아봤거든. 확신까지는 아니고 의심은 했지.”

 “어떻게…….”

 “여기 말이야.”

그의 손끝이 왼쪽 턱 아래를 살짝 스치고 곧바로 떨어져 나갔다. 불처럼 뜨거운 열기가 궤적처럼 스친 부위를 달였다.

 “열일곱의 너도, 스물여섯의 너도, 그 턱 아래가 까맣게 착색돼 있었어. 그뿐 아니라 내가 기억하는 얼굴이나 골격 같은 것도 비슷했고.”

정난우는 신기한 눈으로 물었다.

 “그걸 다 기억하고 있었어요?”

 “그래. 나 기억력 끝내준다고 했잖아.”

그의 목소리에 녹아 있는 독특한 금속성이 점점 열기를 띄어갔다. 차분하게 끓던 눈동자는 금방 절제를 잃고 어지럽게 얼굴 위를 기어 다니기 시작했다. 그가 뒤늦은 고백을 털어놨다.

 “확인해 보고 싶었어. 정말 네가 맞는지. 네가 그 끔찍한 일을 잘 극복하고 잘 지내고 있는지. 그래서 일부러 따라간 거야. 혹시 엘리베이터에 타면 선글라스를 벗지 않을까 했지만 예상은 빗나갔고. 체온이라도 비벼 보면 네가 날 봐주지 않을까 했는데 그것도 아니었고.”

정난우는 멍하니 눈꺼풀을 움직였다. 조각조각 뇌리에 박혀 있던 마주침의 기억들이 새삼 되살아났다. 떨리는 박동이 목구멍에까지 솟구쳤다. 느린 깨달음에 입술이 조금씩 벌어졌다. 눈이 조금 흔들렸다.

 “아. 그래서…… 할로윈 축제날에도…….”

 “그래. 그 비싸게 꽁꽁 감춰 논 얼굴 좀 보자고 혼자 안달했었지. 그런데 넌 날 무슨 치한 취급하고 말이야.”

그가 슬며시 눈썹을 일그러뜨리는 순간,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에녹은 빠르게 정난우를 끌어당겨 걸음을 옮겼다. 그는 확연히 조급해 보였다. 바닥에 끌리는 캐리어의 바퀴가 위험스레 덜컹거렸다.

카드키 인식이 느렸다. 그 몇 초의 순간조차 불길을 부채질했다. 문 열린 공간은 순식간에 두 사람을 집어삼켰다.

에녹이 들고 있던 짐들이 입구 근처에 아무렇게나 내팽개쳐졌다. 에녹은 카드키를 홀더에 꽂기도 전에 다급히 입술을 부딪쳤다.

쿵, 벽면에 등을 부딪친 정난우의 입술이 자연스레 벌어졌다. 윗입술부터 아프게 빨던 에녹은 ‘미안. 아팠지?’ 하며 카드키를 꽂았다. 센서 조명이 뒤늦게 실내를 밝혔다.

정난우는 고개를 흔들었다. 괜찮아요, 대답했다. 그는 객실 문에 손을 뻗어 DND버튼을 켜 두며 말했다.

 “코트만 벗어. 나머지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그리고 고개를 기울여 입술을 깊이 맞물렸다. 몰아닥치듯 뜨거운 혀가 볼 안쪽을 헤집으며 깊이 들어왔다. 델 것 같은 숨결이 얼굴을 스쳤다. 미끄덩거리는 살덩이는 꽉 얽었다가 그대로 비벼댔다. 샘솟듯 치민 타액이 목구멍에 걸려 꿀꺽 삼켰다.

숨 가쁜 침략에 머리가 어지러웠다. 정신없이 헐떡이며 코트 단추를 풀었다. 손이 떨려 자꾸만 엇나갔다. 반만 겨우 풀어낸 사이 그는 이미 외투를 벗어 내던진 뒤였다.

헤매는 제 손을 대신해 그가 나머지 단추를 끌러주었다. 코트와 재킷이 한꺼번에 벗겨져 나갔다. 그의 두 손이 엉덩이를 터뜨릴 듯 움켜쥐며 들어올렸다.

당황했다. 까치발 든 불안정한 자세가 되자 무심결에 그의 목을 감았다. 학, 토해진 한 줌 숨이 그의 어두운 입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는 괴로운 것처럼 목 안을 진하게 울렸다. 그 미세한 진동은 내장에 열을 지폈다. 그가 더 사납게 안을 파고들었다. 열기 띤 그의 혀는 뱀처럼 꿈틀거리며 온갖 곳을 탐하느라 바빴다.

날카로운 코끝이 뺨에서 짓뭉개졌다. 혀가 잡아 채이고 아프게 빨렸다. 단단한 그의 중심이 예고 없이 치골 아래를 비집고 들어왔다.

순간 어깨가 움츠러들었다. 가까스로 땅을 디딘 발끝이 무너졌다. 그가 체중을 지탱해주려 벽으로 몸을 더 밀어붙였다. 가운데 끼어 으스러질 것처럼 강한 힘이었다.

흐물흐물 무너진 엉덩이는 그의 몸을 내리눌렀다. 벌어진 엉덩이 사이에 모든 감각이 생생했다. 그의 발기한 남성은 슬랙스를 뚫고 나올 것 같았다. 성난 듯 꿈틀거리는 열기에 본능적으로 몸이 떨려왔다.

 “흐……”

신음 녹은 소리가 혀끝에 녹아들었다. 그의 손이 한쪽 허벅지를 들어(1줄 잘림)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같은 온도와 같은 고동을 내뿜었다.

딱 붙은 가슴이 크게 부풀었다. 뺨이 홀쭉해질 정도로 빨아들이는 거였다. 혀뿌리가 아려 눈가가 일그러졌다. 그러자 그의 이가 돌기를 긁으며 빠져나갔다.

젖은 소리와 함께 입술이 떨어졌다. 손톱 두께 하나 사이에서 거친 숨결이 엉켜들었다.

 “후회 안 하지?”

할짝, 그의 혀끝이 입술을 핥았다. 그가 부드럽게 허리를 움직였다. 무서울 만큼 딱딱하게 부푼 아랫도리가 치골 아래를 음란하게 마찰했다. 숨이 꼴딱 넘어갈 것 같았다. 전신이 감전된 듯 간헐적으로 부들거렸다.

얼핏 이해하지 못해 당황한 눈만 엉망으로 굴러다녔다. 그가 잔뜩 흐트러진 표정으로 말했다.

 “처음이라 물어보는 거야. 이 순간 지나면 나 못 멈춰. 자신 없어.”

가까스로 이성을 붙든 그의 목소리는 듣는 사람마저 불안하게 울렁거렸다. 전류 같은 것이 등줄기를 매섭게 긁어내렸다. 온 몸의 솜털이 바싹 일어났다.

그를 안은 팔에 일순 힘이 들어갔다. 겨우 대답하는 목소리는 꺼져 들어갈 것처럼 희미했다.

 “후회, 아, 안 해요.”

겨우 목소리를 쥐어짜내며 흠뻑 젖은 그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했다. 어린애처럼 아무 것도 모르는 저는, 사실 아무 때라도 상관이 없었다. 참은 건 그였고, 자신은 기다렸다.

 “분명히 경고했어. 못 물러줘.”

살갗에 닿는 눈빛이 팔팔 끓인 수증기처럼 풀어졌다. 네, 열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나머지 한쪽 다리마저 들어 제 허리에 감았다. 늘어진 다리는 본능적으로 그와 몸을 뱀처럼 휘감았다.

엉덩이 아래를 그의 팔뚝이 굳게 지탱해 더 끌어올렸다. 벌어진 가랑이 사이로 그의 단단한 복근이 쉴 새 없이 꿈틀거렸다. 어떻게 해야 하는 지 알 수가 없어서 딱딱한 어깨만 으스러져라 감싸 안았다. 가파른 숨이 그의 어두운 금발 위로 번졌다.

열 올라 흐린 눈을 꽉 감았을 때였다. 그의 입술이 셔츠 위를 물었다. 타액 젖은 혀가 가슴 주위의 흰 옷감을 적셔갔다. 무언가를 찾듯이 붉게 젖은 살덩이는 타액을 듬뿍 묻혀 온갖 군데를 물고 핥았다. 등이 움츠러 들었다. 어느 순간 그가 잇새로 유두를 콱 물었다.

 “읏……! 아, 아파요.”

 “안 아프게 할게.”

동그랗게 젖어 속살 비치는 곳에 그의 어두운 욕망이 부서졌다. 커다란 손은 셔츠 끝자락을 빼내 벌어진 공간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움폭 파인 척추를 따라 단번에 쓸어 올렸다. 매만지고 눌러댔다. 굽었던 허리가 튕겨 오르듯 요동쳤다.

 “아, 아아…….”

그는 옷감 하나 사이에서 유두를 빨며 걸음을 옮겼다. 출렁거리는 몸의 체중을 그에게 온전히 기댔다.

그의 혀는 이상하고 음란했다. 그저 핥는 것뿐인데 숨이 기도를 역류해 넘어갈 것 같았다. 비점 아래를 아슬아슬 밑돌던 체온은 순식간에 한계점까지 솟구쳤다.

전력 질주한 듯이 헐떡이는 동안 눕혀진 줄도 몰랐다. 칼처럼 정돈된 시트가 두 사람의 무게를 못 이기고 일그러졌다.

어둠고 짙은 그림가가 덮어왔다. 곧장 키스가 이어졌다.

사납게 입술을 물어오는 행동온 마치 사냥감을 해체하는 맹수의 발톱 같았다. 찢어기기 않을 만큼 깨물고, 그리고 또 극렬한 마찰이 시작됐다. 귀가 녹을 정도로 질척이는 소리가 맞붙은 혀에서 피어올랐다.

그는 손목시계를 풀어 바닥에 내던졌다. 그리고 한 손으로 그의 셔츠 단추를 빠르게 풀어 내려갔다. 다급히 입을 열었지만 꽉꽉 씹어대는 통에 끙끙 앓는 소리만 나왔다. 녹아내릴 것처럼 풀어진 눈길이 왜, 하고 묻는 듯했다.

무언가를 말하려고 해도 목소리가 안 나왔다. 다리가 벌어지고 그 사이로 그의 몸이 꽉 끼워졌다. 맞닿은 중심이 무서울 정도로 뜨거웠다. 그게 그의 열기인지 제 열기인지조차 구분이 안 됐다.

머릿속이 열탕에 녹은 듯 축축 늘어졌다. 그는 입술을 무르는 것과 동시에 상의를 뒤로 내려 벗었다. 사라락. 허물처럼 옷가지가 바닥에 고였다. 그의 상체가 백열등 아래 온전히 드러났다.

섬세하게 빚어놓은 근육들이 살 냄새를 풍겼다. 정작 그는 근육의 부피를 줄인다고 하는데 그림에도 타고난 골격은 감춰지지 않았다.

시각 자극에 둔한 저도 알 수 있었다. 그의 상체를 이무는 곡선은 흠 잡을 데가 없었다. 음영 고인 흠에는 자꾸만 시선이 빨려 들어갔다.

이상했다. 벌어진 다리 사이가 자꾸만 뜨거워졌다. 곽 조인 속옷이 그저 답답했다. 그의 사나운 그림자에 짓이겨진 채, 막 구조된 사람처림 극렬히 숨을 터뜨렸다.

열 오른 뺨에 그의 젖은 입술이 눌어붙었다. 잔뜩 흐려진 이성이 그 순간 뭔가를 떠올렸다. 얼른 고개를 비틀며 입을 열었다.

 “자, 잠깐만요.”

늑골이 진동할 정도로 헐떡이다 말했다.

 “그, 아, 아직…공연하면서 땀…흘려서…….”

그러자 그는 마치 노려보듯 안광을 번득거렸다. 사냥 중인 야생짐승처럼 예리하고 날카로운 눈빛이었다.

본능적인 두려움에 어깨가 굽어들었다. 그의 손은 천천히 다가와 야만스럽게 셔츠를 풀어냈다. 살짝 부어오른 그의 입술이 턱선을 길게 타고 올라와 귀 옆에서 멈췄다.

그르렁거리는 음성이 귓구멍에 진득하게 고였다.

 “일단 맛만 좀 볼게. 한 번 빼내지 않으면 너, 진짜 위험해.”

 “하지만…아직 씻지도…….”

 “괜찮다니까.”

그의 성대는 사포로 비빈 듯 거친 소리를 냈다. 하지만 얼굴 곳곳에 찍어 누르는 입술은 부드럽고 다정했다. 부딪친 자리는 뜨겁고, 자국만 남은 자리는 차갑게 체온을 앗아갔다.

그의 타액이 만든 길은 목을 가르고 가슴에 고여 들었다. 그의 혀가 톡 튀어나온 유두를 긁었다. 새된 신음이 목젖을 뚫었다.

 “안, 안 돼요. 정말 땀 흘려서……윽……!”

떨리는 손을 들어 그의 어깨를 마구잡이로 밀었다. 그 힘없는 저항은 그의 한 손에 가볍게 제압됐다. 큰 손이 양 손목을 한 번에 쥐고서 머리 위로 찍어 눌렀다.

 “내가 괜찮다고 하잖아.”

허락을 구하듯 다가와 눈꺼풀에 입맞춤이 내렸다. 그러나 무어라 대답 할 틈도 없었다. 곧바로 입술이 잡아먹혔다. 또 굶주린 사람처럼 물고 핥아댔다. 애초에 대답을 들을 마음이 없는 거였다.

잠깐만요, 하는 말도 언어가 아니라 신음으로 탈바꿈되어 그의 입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 진동에 그는 더 흥분했다. 노골적으로 하체를 비비는 움직임도 더 빨라졌다.

억센 손아귀가 악관절을 쥐었다. 절로 입이 크게 벌어졌다. 갈급하게 끓는 그의 숨이 벌어진 입 안에 속수무책으로 쏟아졌다.

정신없이 받아 삼켰다. 열기가 머리를 녹인 건지 부족한 산소가 뇌를 바보로 만든 건지 , 한동안 정말 무 것도 인지하지 못했다.

그의 키스는 그만큼 뜨겁고 거칠었다. 입 꼬리가 따갑고, 깨물리고 빨리기 바쁜 혀는 얼얼했다. 어느 순간 아래가 휑해서 늘어진 눈꺼풀을 겨우 올렸을 때였다.

깜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 흐물흐물 녹아있는 사이 발가벗겨져 있었다. 뜨거운 손이 아랫배를 쓸었다. 의아하게 커지던 눈은 이내 화등잔만하게 벌어졌다. 저조차도 화장실에 갈 때가 아니면 만질 일이 없는 곳을 그가 가만히 어루만져 오는 것이다.

절로 허리가 뒤틀렸다. 반쯤 일어서 있던 살덩이는 금방 단단 허리와 등까지 저릿저릿했다.

이상한 감각에 덜컥 두려움이 몰려왔다. 때마침 그가 상체를 세웠다. 다급히 숨을 몰아쉬다 얼룩진 얼굴로 애원했다.

 “이, 이상해요. 만지지, 마요…더……더럽…….”

그러나 에녹은, 그 순간 더 사나워졌다. 지그시 내려다보며 번들거리는

입술을 혀로 길게 핥아냈다.

그가 얼굴에 쏟아 붓는 호흡은 흥분한 짐승이 내뿜는 열기 같았다. 넓고 단단한 그의 어깨도 크게 오르락내리락했다.

평소의 그가 아니었다. 난폭하게 다가와 섬세하게 어루만져주던 그의 습성에서 다정함은 죄 탈색된 듯했다.

그저 전차처럼 밀어붙이고 화염처럼 뜨거웠다. 그가 손 안에서 성기를 주물거릴 때마다 살갗이 벗겨지는 느낌마저 들었다.

하복부로 피가 몰리는 감각에 몸은 계속 바들바들 떨렸다. 무력하게 벌어진 입술 사이로는 연신 비음만 흘렀다. 그가 모든 걸 집요하게 주시하며 말했다.

 “조금만 먹을게. 너무 맛있어 보여.”

흐린 시야를 가득 채우던 그가 밑으로 사라졌다. 결박된 손이 풀리자마자 꼿꼿하게 서 있던 성기 끝을 무언가가 쿡 찔러왔다. 절로 날카로운 비명이 허공에 뻗어나갔다.

본능적으로 버둥거리는 다리는 그의 정강이 아래 깔려 도무지 움직여지지 않았다. 다급히 상체를 세웠다. 하지만 동시에 성기가 그의 입 안으로 쑥 빨려 들어갔다.

 “으…흣…… 그러지, 그러지 마요. 아…아아…….”

허리에 힘을 줄 수가 없었다. 난생 처음 대면한 강렬한 자극에 속수무책이었다.

그의 입 안과 혀가 닿는 부위를 제외한 모든 감각이 말살되었다. 달콤한 점액을 뿌리는 벌레들이 그 곳을 기어 다니고 물어뜯는 것 같았다.

녹아내리듯 몸이 앞으로 거꾸러졌다. 체념과 쾌감에 들썩이는 복부로 그의 보들보들한 머리카락이 닿았다. 아아, 젖은 탄식이 그의 넓은 등에 펴 발라졌다. 어쩔 수 없이 그의 머리를 끌어안았다.

눈앞이 열기로 뿌옇게 달궈졌다. 허리가 파들파들 경련했다. 제 몸이 제 몸이 아닌 것 같았다.

열락같이 피어오르는 그 맹렬한 쾌감은 두렵기까지 했다. 향긋한 샴푸 냄새가 나는 그의 머리카락 속에서 정신없이 얼굴을 비볐다.

 “으윽…….”

결국 눈물이 찔끔 터졌다. 에녹은 굶주린 것처럼 빨고 삼키다가 그 소리에 겨우 반응했다. 애처롭고 가늘게 울리는 울먹임이었다. 달콤해서 삼키고 싶은 목소리였다.

에녹은 불긋한 성기를 느리게 뱉어내며 고개를 들었다. 그 때, 열기 번진 에녹의 왼 쪽 눈 아래로 정난우가 흘려낸 눈물 한 방울이 똑 떨어져 내렸다. 에녹은 그 한쪽 눈만 가늘게 접으며 상체를 들었다.

 “으……!”

어쩔 줄 몰라 하는 얼굴이 매달리듯 목을 끌어안아 왔다. 이렇게 폭삭 안겨 오니 난폭하게 날뛰던 마음이 약해지려 했다. 고개를 붕붕 내젓는 게 싫다는 말을 대신하고 있었다.

에녹은 찌푸리듯 미소를 지으며 마른 등을 감싸 안았다. 이 쪽은 지금 언제 핀트가 나갈지 모르는 상태였다. 그런데 이 눈치 없는 게 자꾸 자극 해오는 거다.

무서워도 안 피하는 눈이나, 잔뜩 흐트러져 무방비하게 숨 쉬는 야한 표정이나, 숨기지 않고 뱉어내는 신음소리나, 남김없이 죄 삼키고 싶었다. 그 모든 게 강렬한 흥분제였다.

에녹은 뺨에 몇 번 입을 맞추고는 고개를 살짝 뒤로 물렀다. 그리고 뜨끈한 얼굴을 어루만지며 달랬다.

 “이상한 거 아냐. 벌써부터 울면 나중엔 어쩌려고 그래.”

다정하게 말했지만 제가 듣기에도 이미 충분히 위험수위를 넘은 목소리였다. 에녹은 정난우의 뺨 길게 핥아 올리며 도로 눕혔다.

밭은 숨을 내쉬는 입술에 달래듯 몇 번 키스했다. 젖은 눈가를 엄지로 꼼꼼히 닦아냈다.

 “나, 나중엔 뭐가 있는데요……?”

정난우는 긴장한 듯 취한 목소리로 물었다. 스스로는 절대 모르겠지만, 그건 마치 보채는 듯한 표정이었다.

괴로운 열기가 단전 아래를 잡아 뜯었다. 프리컴이 또 울컥 새 나와 브리프는 더 묽게 젖었다. 에녹은 뭉툭한 숨을 토해내며 바른대로 실토했다.

 “어린애처럼 울게 될 거야. 말했잖아, 내가 어떤 취향인지.”

키스도 손길도 목소리도 녹아내릴 정도로 달콤해서, 그의 말은 귓전에서 가볍게 튕겨져 나갔다가 느리게 다시 모여들었다. 잦아들었던 두려움이 또 컴컴한 그림자를 세웠다. 아무래도 그게 들어갈 때가 고비라는 생각 밖에 안 들었다.

정말 들어갈까? 얼마나 울어야 들어갈까?

그를 신뢰하고 있었지만 어찐지 불길함이 가슴을 지폈다. 깨끗이 땀을 씻어내며 다시 한 번 살펴볼 생각이었는데 그는 도통 샤워실로 들어갈 틈조차 주지 않았다.

숨만 몰아쉬며 흐린 눈에 초점을 맞췄다. 시야에 새빨갛게 젖은 그의 혀가 느리게 움직이고 있었다. 이미 쏙 들어간 눈물의 잔 가루를 샅샅이 핥아먹고 있는 거였다.

 “엉덩이 좀 들어 봐.”

우물쭈물 망설였다. 그러자 그의 미간이 확연히 일그러졌다.

 “말 들어. 여기 안 보여? 너 처음이니까 지금 겨우 버티고 있는 거야.”

그가 헤프게 벌어진 그의 지퍼 사이를 훑어 올렸다. 그의 손 안에서 마찰되는 진회색의 브리프는 젖어 있었다. 장골 위에 아슬아슬 걸쳐 있는 버클이 달칵 금속 부딪치는 소리를 냈다.

 “준비 없이 이거 안 들어가. 그 정도는 알지?”

그의 탁한 음성은 마치 위협하는 듯했다. 덮어 누른 그림자가 느리게 숨을 쉬었다. 옴짝달싹 못하게 갇힌 기분이었다.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의 말은 맞았다. 절대 안 들어갈 거다. 그 전에 뭔가 해야 하는 건 분명해 보였다.

눈을 딱 감고 엉덩이를 들었다. 살짝 들린 허리 아래로 그의 탄탄한 허벅지가 쑥 밀려들어왔다. 실오라기 하나 없는 고환과 회음 사이에 그의 젖은 브리프가 닿아 왔다.

자세가 이상해졌다. 이건 마치 에녹이 이전에 말했던 섹스 자세 같았다. 본능적으로 허벅지가 오므라들었지만 이미 가랑이에는 그의 몸이 꽉

들어찼다. 그의 허리를 조이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건 없었다.

그의 성기는 벌어진 엉덩이 골에서 소름끼칠 정도로 적나라하게 비벼졌다. 부드럽게 위아래로, 그리고 끈적끈적하게 돌리기도 했다. 그럴 때 마다 그는 잔뜩 갈라진 탄식을 목 안에서 굴렸다.

그 순간, 하나는 완벽히 깨우쳤다. 저 목소리는 사람들이 말하는 관능의 정점에 머무를 거다. 움츠러든 어깨가 으슬으슬 떨려왔다. 생각보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홀린 듯이 눈에서 초점이 풀려 나갔다. 긴장한 허벅지에서도 저절로 힘이 빠졌다.

그가 가늘게 눈매를 좁히며 상체를 숙여 왔다.

 “적응이 빠르네. 기특해.”

학, 어깨가 절로 좁아들고 숨이 또 기도로 넘어갔다. 발가벗겨진 아랫도리에는 여전히 그의 성난 중심이 꾹꾹 뭉개졌다.

뭔가 주체할 수 없는 기분이었다. 소리도 촉감도 모든 게 너무 강렬했다. 충격적인 음악을 들었을 때의 엔도르핀 같은 게 피부 아래 꿈틀거리는 혈관을 급격히 잠식해 들어갔다.

화끈거리는 뺨에 그가 입술을 눌러 왔다. 그는 여유로워 보였지만 닿는 열기는 피부가 뭉개질 정도로 뜨거웠다. 뺨이며 이마며 콧등이며 닥치는 대로 입을 맞출 때마다 뿌려지는 숨도 통제를 벗어나 거칠게 날뛰는 중이었다. 그가 신음처럼 속삭였다.

 “일단 네가 한 번 싸야겠어. 이대로는 무리야.”

무슨 말인지 단번에 이해하지 못했다. 멍하니 있는 동안 그의 손이 성기를 감싸더니 빠르게 주물렀다. 표정이 또 무너졌다. 고개를 흔들었지만 그는 저속하게 중얼거렸다.

 “네 거 말이야. 모양도 색깔도 정말 예뻐 . 진짜 하루 종일 물고 빨라고 해도 할 수 있을 만큼.”

남의 손을 타기는커녕 자위도 한 번 안 했을 성기는 순백이다 못해 선홍빛마저 띄었다. 정확히 기억은 못하지만 제가 열 살 때도 이런 예쁜 빛깔은 아니었을 거다. 불규칙한 리듬으로 주무르고 훑어 올릴 때마다 흉악한 정복욕이 넘실거렸다.

정난우는 입술을 깨물며 어쩔 줄 몰라 했다. 흔들리는 눈이 마구잡이로 움직였다. 에녹은 두려움과 쾌감이 혼탁하게 섞인 그 까만 우주를 깊이 들여다보았다. 매달리는 시선은 살을 떼 내 주고 싶을 만큼 매혹적이었다.

정난우의 떨리는 신음이 허공에 흐드러졌다. 폭죽처럼 터지는 달콤한 음악이었다. 깊이 고개를 꺾어 다시 입술을 맞물렸다. 입천장을 긁어내리는 신음에 제 것도 섞여 들었다.

허우적거리던 정난우는 금방 사정했다. 귀두 부분을 감싼 채 정액을 받았다. 정난우는 턱을 젖혀들려 했지만 집요하게 혀를 물어대는 바람에 실패했다. 에녹은 여운에 떨리는 혀를 쭉쭉 빨며 작고 탄력 있는 엉덩이를 더 위로 올렸다.

미끈거리는 정액을 손가락에 적셔 그대로 구멍을 벌리고 밀어 넣었다. 품 안의 몸이 나른하게 떨다가 일순 굳어들었다.

손가락을 빽빽하게 물고 있는 내벽은 촘촘하고 뜨거웠다. 여유 공간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에녹은 바싹 마른 입술을 빠르게 혀로 핥았다. 두개골 안이 온통 녹아내릴 것처럼 달아올랐다.

제 것은 이 손가락의 몇 배는 되는 굵기였다. 꿰뚫을 때 느껴질 극락의 감각이 자연스레 뇌리에 젖어들었다. 숨이 거칠게 튀어 올랐다.

살갗이 녹겠다싶을 만큼 몸이 끓었다. 시야가 아지랑이처럼 흔들릴 정도로 머리가 어지러웠다. 참을 수 있을 때 충분히 넓혀 둬야겠다는 생각만 들었다. 아득히 멀어지려는 이성을 억지로 잡아챘다.

 “최대한, 부드럽게 해 줄게. 처음이니까.”

그건 정난우에게 하는 말이라기보다는 제게 하는 다짐과 같았다. 이미 터질 듯 부푼 성기와 고환은 살점을 뜯어내는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에녹은 점차 다급해졌다. 이러다가는 삽입도 전에 파정하게 생겼다.

젖 빠는 갓난아기처럼 정난우의 윗입술을 힘 있게 빨다가 고개를 물렀다. 비부 속에 파묻힌 손가락을 빤히 바라보며 움직였다. 연약한 점막을 밀어내고 누르고 휘돌렸다.

정난우는 비명조차 내지 못했다. 생전 처음 느끼는 이물감에 충격 받은 표정이었다. 애써 수습하려 해 보지만 가면처럼 굳은 얼굴로 파들파들 떨어댔다.

 “아, 안 넣는다고…….”

흐린 속삭임은 그의 불투명한 눈빛에서 고스란히 튕겨져 나왔다. 에녹은 대답 없이 그의 입술을 핥으며 느리게 눈만 깜빡거리고 있었다. 그의 탁하고 어둡게 번들거리는 눈동자가 처음으로 오싹했다.

움츠러든 어깨를 그의 빈손이 다정하게 도닥였다. 아래의 이물감은 여전히 고통스럽게 살을 벌리고 있었다.

 “에녹…… 아, 안 넣을……흐윽!”

말미가 뚝 잘렸다. 뻑뻑한 그곳을 무언가가 또 덧대어져 비집고 들어온 탓이었다. 이번엔 정말로 아파서 눈물이 눈 꼬리에 울컥 고였다.

에녹의 혀끝이 찌르듯이 눈물방울을 쓸어갔다. 뜨겁게 바스러져서 쏟아지는 그의 숨에 안구가 화끈거렸다.

 “약속, 했잖아요. 아, 안 넣는다고…… 시, 싫다고 하면, 안 한다고 했으면서, 흐으…….”

꽉 경직한 허리가 부르르 떨렸다. 속눈썹도 찢긴 날개처럼 파르르 경련했다. 아파요, 울먹이며 내뱉었다.

에녹은 흔들리는 눈동자를 핥듯이 응시했다. 무언가에 단단히 홀린 듯 영혼이 반쯤은 나간 행색이었다. 그의 하늘색 눈동자는 이미 밤바다처럼 어둑하게 물결쳤다.

 “내 말을 잘못 이해했네. 그건 이럴 때 먹히는 말이 아닌데.”

그의 입술이 아주 느리게, 미묘한 곡선을 그렸다. 새빨간 입술은 요염하고 또한 잔인한 미소를 품고 있었다.

정난우는 두려움에 떨며 황망히 눈을 올려 떴다.

 “그, 그럼요……?”

 “글쎄.”

그가 희미하게 고개를 기울이며 한쪽 눈을 움찔거렸다. 뭐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그가 제정신이 아니라는 건 분명히 알 것 같았다.

그가 말했다.

 “이건 말로 해서 설명되는 게 아니야. 그냥 내 품안에서 울다 보면 자연히 뭐가 뭔지 알게 될 거거든. 그리고.”

그가 속삭이듯 달콤하게 말끝을 흐렸다. 정난우는 한없이 불안한 얼굴로 그를 올려다봤다. 그는 사납게 번들거리는 눈으로 달콤하게 미소 지었다.

 “안 넣는다는 건 빈말이었어. 발정 난 짐승이 침대 위에서 지껄인 말은 절대 믿으면 안 돼. 몸이 남아나질 않거든.”

목을 울리는 그의 낮은 신음이 속눈썹을 흠뻑 적셨다. 몸이 다시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했다. 달래듯 다정한 키스가 눈가에 번졌다.

아아. 정난우는 짧게 끊어지는 신음을 내질렀다. 온 몸이 딱딱하게 수축해 덜덜 떨렸다. 크게 뜬 눈을 주체할 수 없어 꽉 감았다.

 “아, 아파요…….”

헐떡이는 숨에 갈라진 음성이 섞여들었다. 미끈거려야 될 눈물은 끈끈하게 속눈썹을 적셨다. 눈 꼬리를 타고 더운 물기가 아주 느리게 흘렀다.

관자놀이쯤에서 그의 혀가 그 물길을 끊어냈다. 불처럼 뜨거운 게 그의 살인지 숨결인지 구분할 수 없었다. 그가 또 음험한 목소리로 다정하게 얼렀다.

 “알고 있어. 겨우 다 들어갔으니까, 이렇게 조금만 있자.”

그의 친절한 설명에 그제야 실감이 났다. 밑을 한계까지 벌리고 들어온 것이 제 안을 틈 없이 메우고 있었다.

꿈틀거리는 게 그의 성기인지 제 안쪽인지 모르겠다. 다만 불에 지진 듯한 후끈한 열기와 고통이 그곳에서 전신으로 뻗어나갔다.

도저히 들어갈 것 같지 않던 게 정말 뿌리까지 박혀 있는 거다. 까슬까슬한 음모의 감촉이 아래쪽에서 비벼졌다.

상상했던 최악의 통증은 어긋났다. 관자놀이에 핏대까지 세워가며 참아낸 에녹의 공로라는 건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정말 아프기만 해?”

마치 내심을 꿰뚫은 듯 날카로운 질문이엇따. 정난우는 젖은 누꺼풀을 겨우 밀어 올렸다. 역광에 물든 그의 얼굴은 복잡한 감정들을 담고 있었다.

웃는 듯 찡그린 표정이었다. 만족한 듯 갈급한 눈빛은 혼탁하게 흐려진 채 목적지 없이 얼굴 위를 마구잡이로 기어 다녔다.

 “난 지금 미치게 좋아. 흐물흐물 녹아내릴 것 같거든.”

속삭이는 목소리는 바닥을 긁는 것처럼 낮게 끓었다. 턱 끝에 맺혀 있던 땀이 정난우의 발갛게 부운 입술에 떨어졌다.

숨을 몰아쉬며 할ㅈ아줬다. 유혹하듯 콧대를 비비자 정난우는 망설이다 고개를 흔들었다.

 “저도…… 아픈데, 좋아요.”

 섹스라는 건 이상했다. 그와 닿은 부위가 땀으로 미끈거리는데 그 느낌이 불쾌하지 않았다. 꿰뚫린 곳의 뜨끔뜨끔한 고통마저 기묘하게 충만했다. 연인사이에 왜 이런 아픈 걸 강행하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깊이 연결된 곳에서는 서로의 혈맥이 질퍽하게 뒤엉켰다. 시키지 않아도 서로를 부둥켜 안고 그 뜨거움에 몸을 던지게 되는 건가 보았다.

붕 뜬 허리의 곡선을 그의 손이 받쳐 들었다.  그는 현기증을 느끼는 사람처럼 고개를 세차게 한 번 내저었다.

그 미세한 진동에 정난우는 흡, 하고 숨을 들이켰다. 그를 물고 있는 구멍도 콱 조여들었다. 에녹이 희미하게 미간을 찡그렸다. 

 “그렇게 힘주고 있으면 더 아파.”

 “그럼, 어떻게 해요?”

 “꽉 안아. 닿는 면적이 넓을수록 더 좋아. 그러려면 일단 무릎을 좀 더 벌리고…… 그래. 그리고 다리로 내 허리를 감아 봐.”

잔뜩 움츠린 무릎을 열어 그의 말대로 했다. 종아리에 닿는 그의 근육들이 터질 듯이 꿈틀거렸다.

열린 공간으로 그의 상체가 더 가까이 내려왔다. 그의 손 안은 안타깝게 떨리는 척추 관절을 마디마디 어루만졌다. 마사지하듯 문지르고 눌러대자 근육의 긴장이 정차 흐려졌다.

그가 귓가에 입술을 붙였다. 영화 같은 속삭임이 귓바퀴를 절였다.

 “한 번 젖고 난 뒤에는 덜 아플 거야.”

정난우는 진정된 호흡을 정돈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주친 눈빛이 길게 서로를 쓰다듬었다. 어느 순간 그가 미간을 일그러뜨렸다.

 “되도록 금방 싸 볼게.”

예고 없이 그가 허리를 뒤로 잡아 뺐다. 쑥 딸려나가는 점막의 느낌에 소스라쳤다. 반사적으로 엉덩이가 안쪽으로 모여들었다.

아아, 떨리는 신음은 그의 입 안으로 사라졌다. 그의 입 속 점막이 진동하는 감각마저 생생했다. 그와 동시에 거의 끝까지 빠져나갔던 게 야만스럽게 퍽 꽂혀들었다.

 “으, 아아!”

비명이 샜다. 눈앞이 까맣게 죽어들었다가 불처럼 화끈하게 터졌다. 그가 쥐어짜내듯 목 안을 울리며 굳은 혀를 확 틀어 감았다. 빡빡한 공간을 뜨거운 기둥이 깊숙하게 들락거렸다.

엉덩이뼈가 쪼개지고 살점은 뜯겨나가는 듯했다. 쓸려나가고 짓뭉개지는 그 감각은 몸서리가 쳐졌다. 본능적으로 매달려 그의 등에 손끝을 세웠다.

에녹의 혀는 정난우의 입 안을 거칠게 돌아다녔다. 몽글몽글 솟은 타액을 삼킬 때며다 물고 있는 아래쪽도 빠듯해졌다.

머릿속이 온통 진창이었다. 뜨겁고 흐물거리며 증기가 솟구쳤다. 처음이라 부드럽게 해 주겠다고 다짐했던 건 오작한 쾌감에 이미 깊이 잠식당했다. 이성은 이미 통제의 경계에서 어슬렁거렸다.

에녹은 빠르게 허려를 쳐 올렸다. 무심결에 조이는 감각은 지옥에서 맛보는 선악과처럼 달았다. 인내한 시간들이 아깝지 않았다.

강하게 조이고 휘감기는 점막에 비해 무지한 얼굴은 열기에 녹아 무너질 것 같았다. 습윤하게 반들거리는 검은 눈동자는 벼랑 끝까지 몰린 것처럼 애타게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 명목적인 예정과 신뢰가 사나운 본능을 더 날뛰게 했다.

 “미안 아파?”

묻는 음성은 거칠었고 또한 다정했다. 정난우는 고개를 끄덕였다가 가로저었다가 정신을 못 차렸다. 에녹은 허리를 움직이는 그대로 땀 젖어 달라붙은 이마를 쓸어 넘겨주었다.

 “처음엔 원래 그래. 조금만 지나면, 너도 내 거에 좀 환장할 거야.”

제발 넣어 달라고 울게 해 줄게.

한 번 뚫리고 나니까 정난우는 그 음란한 말을 얼핏 알아들었다. 뭐라 형용하기 힘든 미묘한 고통을 다시 느끼고 싶게 된다고 말하는 거였다. 뭐가 뭔지는 몰라도 고개를 끄덕였다.

 “네…그, 근데, 흐읏…… 조금만. 천천히……아아!”

 “너무 빨라?”

네, 하며 정난우는 서러운 듯 훌쩍 숨을 마셨다. 달아오른 얼굴에 땀과 눈물이 번졌다. 가슴에 뭔가 찌릿한 전류가 흘렀다. 에녹은 얼얼한 머리를 한 번 크게 털어냈다.

 “미안. 내가 지금 좀 제정신이 아니라.”

에녹은 한껏 벌어진 입술을 번갈아 정성스레 빨았다. 날뛰던 허리에 꽉 힘을 주며 리듬을 낮췄다.

부드럽게 내벽을 짓이겨 올릴 때마다 파드득 경련하는 몸을 으스러뜨릴 듯이 품었다. 이미 한계까지 벌어진 구멍을 더 깊이 파고들었다.

에녹은 정난우의 목에 얼굴을 파묻었다.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땀에 젖어 더 농밀해진 체향을 폐부에 한가득 채우고서 상체를 세웠다. 한 손으로 침대 헤드를 손에 쥐고 다른 손으로는 힘없이 덜컹거리는 매끈한 다리를 잡아 올렸다.

교접부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검붉은 성기는 프리컴으로 음란하게 젖은 채 들락거렸다. 축축한 입술이 타올라 혀로 핥았다. 무심코 위로 찔러 올렸을 때였다.

 “학……! 아, 으읏……!”

정난우가 온 몸을 오그라뜨리며 비음을 흘렸다. 미끈거리는 등을 겨우 부둥켜안고 있던 팔도 매트리스 위로 툭 떨어져 내렸다.

물기 젖은 눈동자가 당황으로 흔들렸다. 그 반응을 집요하게 들여다보며 다시 같은 각도로 세게 꽂아 올렸다. 으응, 이번엔 확연히 달콤한 신음이 섞여 나왔다. 시트를 뭉개는 허리도 미꾸라지처럼 비틀렸다.

 “아, 에, 에녹…그, 그거 이…상해요…….”

 “내가 보기엔 아닌데.”

에녹은 유연하게 허리를 돌리며 대꾸했다. 헤드 쥔 손에 체중을 더 옮겨 실으며 상체를 수그렸다. 거뭇한 그림자가 겁먹은 정난우의 몸을 빈틈 없이 가뒀다. 역광에 잠긴 그의 얼굴에서 푸른 눈이 일렁거렸다.

 “방금 오싹했지?”

정난우는 초점 흐린 눈을 정신없이 굴리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소름 돋는 쾌감이 두려웠다. 아니, 그게 쾌감인지 뭔지도 구분하지 못했다.

사정 후 내내 축 늘어져 있던 성기도 다시 발갛게 익어갔다. 눈물 젖은 시야를 겨우 떨어내 애원하듯 올려다봤다.

짓눌러 오는 에녹의 안광은 새파랗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의 입술이 한 순간 짧게 떨리다 멈췄다. 아랫배를 꽉 누르고 있는 그 감각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몸을 비틀자 그가 벌주듯 더 세게 그곳을 공략했다.

 “아아, 그만…에녹, 이상……앗, 응…….”

한쪽 다리를 걸고 있는 그의 팔이 쭉 올라와 턱까지 닿았다. 다리는 위로 더 벌어지고 도리질치는 고개는 그대로 고정되었다. 악관절이 세게 잡혀 입술이 절로 벌어졌다. 짓무른 듯이 화끈거리는 눈 꼬리에 그의 신음이 닿았다.

그런 식으로 울면 올라탄 남자는 눈이 돌아, 은밀하게 속삭인 입술이 한쪽 눈을 덮었다. 잠깐 느리게 조절하던 삽입은 다시 빨라졌다. 귀두 끝까지 빼냈다가 위로 퍽퍽 쳐올렸다.

 “흐…아아! 흐윽…에녹. 아읏……!”

몸이 자꾸만 위로 튀었다. 절제가 끊어진 비명은 교성과 닮았다. 고개를 흔들었지만 강제로 벌어진 입술에선 끈끈한 신음만 흘렀다. 에녹은 위험한 탄식을 연신 흘리며 입술 주변을 샅샅이 핥아갔다.

사지는 늘어져 아무 역할도 못했다. 그가 주는 끔찍한 쾌락에 몸은 시트를 녹이고 땅 끝으로 떨어져 내릴 것 같았다.

울음이 터졌다. 에녹이 장담한 대로 된 거다. 헐떡이는 울림은 점점 젖은 흐느낌으로 변이했다.

세차게 오르내리는 가슴 위로 그의 불같은 키스가 내려앉았다. 한껏 가지고 놀아 뾰족하게 솟은 유두가 또 삼켜졌다. 부드럽고 축축하게 애무당하는 느낌에 자꾸만 앓는 소리가 울음에 섞여들었다.

뜨거운 숨결이 막무가내로 뭉개진 채 젖은 유두 위를 덮었다. 내벽을 찌르는 움직임은 여전히 사납고 열렬했다.

턱을 고정했던 손가락이 뱀처럼 기어 올라와 혀를 꾹꾹 눌렀다. 질척이는 손가락은 아랫니를 당기고 혀를 휘감았다. 타액이 줄줄 샜다.

그는 경련하는 허리를 쓸어 올리며 몸을 세웠다. 삽입 각도는 시시때때로 바뀌었다. 일일이 반응해 민감한 몸은 바르르 떨렸다.

이젠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어느 순간 완전히 묽어진 시선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뜨겁게 물결치는 그의 눈은 기다렸다는 듯이 허공에서 부딪쳐 왔다.

그는 헤프게 풀어진 눈을 빤히 맞춘 채, 잔뜩 젖은 제 손가락을 느리게 핥았다. 그 아래 걸린 제 다리가 흐느적거리며 움직였다.

새빨간 혀는 긴 손가락 틈바구니까지 샅샅이 핥아먹었다. 막연하게 느껴지는 비릿한 메시지가 후각에 훅 밀려왔다.

이미 한참 전에 발가벗겨졌는데, 이번에는 피부까지 뜯겨져 나갈 것만 같았다. 입술을 깨물어 봐도, 그의 팔을 붙들어 봐도, 전신을 불규칙하게 옮겨 다니는 낭자한 느낌은 사라지지 않았다.

축축하게 젖은 손이 다시 유두를 꼬집고 비틀었다. 그가 낮게 쉰 목소리로 물었다.

 “이제 좀 덜 아프지? 좀 살 것 같지 않아?”

침대 헤드를 쥐고 있었던 그의 손은 어느 순간부터 정수리를 다정하게 덮고 있었다. 거칠게 날뛰는 욕구에 쿵쿵 찧는 머리는 그래서 하나도 안 아팠다. 흐린 시야는 하얗게 튀었다가 까맣게 죽었다가 반복했다.

 “아, 안 아프…….”

한 마디도 제대로 못 내뱉었다. 화끈거리는 구멍 안을 들락거리는 성난 흉기는 온 사방을 무자비하게 짓이겼다.

 “응…….”

그냥 고개만 끄덕거렸다. 흘러내린 다리도 그의 것이 빠르게 들락거리는 입구도, 모두 용광로에 녹아 없어질 것 같았다. 등가죽은 전류에 휘감긴 듯 따끔거리는 동시에 폭발할 것처럼 저릿했다.

그가 귓바퀴를 잇새에 물었다. 잘근잘근 연골을 깨물고 입술로 비벼왔다. 그리고 한기 돋는 말을 퍼부었다.

 “살 것 같다는 건 아직 멀었다는 건데.”

에녹은 늘어져 꿈틀거리는 팔을 차곡차곡 들어 제 목에 걸게 했다. 무슨 뜻이에요, 헐떡이며 토막토막 끊어진 질문이 겨우 그의 사고를 침범했다. 그가 또 짐승처럼 목 안을 울리며 대답했다.

죽을 것처럼 좋아야 끝나는 거거든, 탁하게 속삭이는 숨결이 고막을 녹이고 뇌까지 침투했다.

온 몸이 뜨겁게 떨렸다. 그게 두려움인지 기대인지 스스로도 알지 못했다. 구석까지 내몰린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매달리는 것뿐이었다.

 “미, 믿을게요.”

그의 목에 감았던 팔을 아래로 옮겼다. 등을 끌어안아 어깨를 감싸 당겼다. 난잡하게 쑤셔대던 펌프질이 움찔하며 속도를 낮췄다.

그의 끓는 눈빛이 흔들렸다. 천천히 가까워지고, 후끈한 뺨이 콧등에 비벼졌다. 그의 성대에 고인 신음은 한층 낮아져 흩어졌다. 아래쪽은 깊이 박힌 채 얕은 들락거림이 이어졌다.

 “침대에서는 믿을 놈 못 된다니까. 벌써 잊었어?”

정난우는 대꾸 없이 고개를 비틀어 입술을 벌렸다. 그의 땀 젖은 턱을 조심조심 물었다. 그의 눈가가 짧고 가늘게 경련했다. 간신히 혀를 내밀어 땀을 핥아줬다. 끈끈한 숨결이 얼굴에 달려들었다.

 “아무리 애교 부려도 안 봐줘. 피에서도 정액 냄새가 날 만큼 쌀 거니까 꿈 깨.”

거칠게 내뱉었지만 뿌리까지 박혀 일순 떨린 허리가 그의 속내를 고스란히 내비쳤다. 그는 잠시 온화하게 들락거리던 성기를 뒤로 뺐다. 그리고 아랫입술 안쪽을 씹어 물며 곧바로 쑤셔 박았다.

 “흣……!”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빨랐다. 피부를 녹일 듯이 뿜어내는 에녹의 숨결이 거친 흥분으로 날뛰었다.

정난우는 백치처럼 주어지는 자극에만 반응했다. 벌어진 입술에 그가 키스를 퍼부어도 마주 혀를 내밀어주지 못했다. 그저 안쪽을 다 헤집어 놓는 감각이 전부인 것만 같았다.

그럴 리가 없는데, 그의 성기에 돋아난 핏줄의 느낌마저 꽉 물고 있는 내벽에 느껴지는 것 같았다. 아랫배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그 뜨거운걸 무심결에 꽉꽉 조였다.

무서운 파도가 뒤엉킨 육체를 휩쓸었다. 애달픈 호흡이 서로의 젖은 얼굴에 엉겨붙었다. 전신에 뻗어있는 핏줄은 열선처럼 끓어올랐다.

 “난우야…….”

그 달짝지근한 부름은 초점나간 눈을 불러들였다. 눈물로 어룽거리는 시야에 그의 일그러진 얼굴이 보였다. 그의 턱 끝에서 미지근한 땀이 뺨 위로 툭 떨어져 내렸다. 그 부위가 가늘게 떨렸다.

그는 괴로운 듯 호흡했고, 부술 듯이 끌어안았다. 붕 뜬 엉덩이엔 감각이 없었다. 그저 불타는 점막의 떨림만이 생생했다.

 “에녹…….”

동파한 배수관처럼 목소리는 형편없이 부서졌다. 그가 응, 하며 입술을  벌렸다. 타액 묻은 턱과 입 주변을 섬세하게 핥아댔다.

그러나 아래쪽의 움직임은 그 순간부터 깊이 박힌 채 짧게 운동했다. 빠르고 극렬한 감각들이 솜털 한 올 한 올에 불을 붙였다.

 “나 좀 봐.”

그가 낮게 쉰 음성으로 속삭였다. 긴 손가락이 머리카락을 깊이 얽었다. 아프지 않게 움켜쥐고 흔들어 보챘다.

묽게 풀어진 시야를 겨우겨우 짜 맞췄다. 흔들렸다가 제자리로 돌아왔다가 반복하는 시야로 그의 열렬한 눈빛이 쏟아졌다.

 “오르가즘 땐 눈을 맞추는 거야. 응?”

내가 아주 근사한 얼굴을 보여줄게, 에녹은 농담 섞인 진담처럼 말했다. 정난우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빤히 올려다보았다

그는 다시 두 팔로 매트리스를 짚으며 허리를 쭉 끌어올렸다. 늘어진 다리가 허공에서 높이 흔들렸다.

곧 엉덩이가 아릴 정도로 거칠게 부딪쳐 왔다. 이를 갈듯 그르렁대는 그의 턱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무너지고 녹아내릴 것 같은 정신을 겨우겨우 붙들었다.

그가 다급히 턱을 당겼다. 한쪽 눈가가 반쯤 일그러졌다. 퍽퍽, 꽂히던 성기의 끝이 가장 안쪽의 점막에 닿는 순간, 그가 짧게 고개를 튕겨 올렸다. 조명을 머금은 땀방울이 허공에서 짧은 포물선을 그렸다.

짓눌리다 못해 으스러진 신음 한 토막이 그의 거친 성대를 긁었다. 몸의 안쪽 깊은 곳에서 무언가 뜨거운 게 확 터진 것 같았다. 그의 허리가 잘게 진동했다.

그의 살짝 벌어진 입술이 농익은 탄성을 긴 시간 동안 끊어냈다. 토정하는 와중에서도 깊이 박힌 성기는 몸을 밀어내듯 조금씩 앞뒤로 움직였다. 마치 음미하듯이 돌리기도 해서 그 감각은 온통 전해져 왔다.

정난우 역시 눈앞에서 반짝이는 빛 가루들을 보았다. 격렬히 울다 겨우 멈춘 사람처럼 어깨도 가슴도 급박히 들썩였다. 떨리는 온 몸은 끈끈한 쾌감에 젖어들었다. 잔뜩 흐트러진 신음이 샜다.

황홀경에 빠져 초점이 완전히 나간 그의 눈에서는 만족스런 열기가 어른거렸다. 그는 젖을 찾는 갓난아기처럼 입술에 매달려 왔다. 헐떡이는 호흡은 경쟁이라도 하듯이 맞부딪쳤다.

 “예, 예뻐요…….”

정난우는 겨우 목소리를 짜냈다. 쇠 긁는 듯이 갈라진 숨결이 뒤섞여 나왔다. 후들거리는 손으로 그의 뺨을 감쌌다. 땀이 손 안에 스며왔다.

불같은 체온도 함께 휘감겼다.

느리게 깜빡이는 그의 눈에 점차 이지가 돌아왔다. 질서 없는 우주를 헤매다 오는 와중에서도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뒤엉키는 눈길이 뜨겁게 타올라 서로를 휘감았다.

 “너만 할까.”

에녹은 뭉텅이로 젖어 뭉쳐 있는 까만 머리카락을 가만히 손끝으로 빗어 내렸다. 열기가 잔재하는 눈으로 얼굴 곳곳을 애무했다. 발갛게 상기된 피부, 젖은 눈, 벌어진 채 헐떡이는 부푼 입술, 그 모든 걸 낱낱이 담았다.

절정의 끝에서 허우적거리던 정난우의 표정은 기대 이상이었다. 무대 위에서보다 몇 배는 더 매혹적이었다. 배부른 고뇌가 달궈진 뇌리를 축축하게 뒤덮었다.

정말 큰일이었다. 이걸 떼 놓고 어딜 돌아다닐까.

맹인처럼 얼굴을 더듬는 손을 떼어내 굳게 깍지를 꼈다. 고개를 숙여 부운 눈꺼풀에 입을 맞췄다.

 “내 말이 맞지. 처음엔 아파도 나중엔 좋았잖아.”

정난우는 쉽게 대답을 하지 못했다. 끔찍하게 좋았던 것은 맞지만 끔찍한 게 먼저인지 좋았던 게 먼저인지 가늠이 안 됐다. 그냥 온 몸을 고문처럼 조여 대고 감각을 마비시키던 느낌들만 화상자국처럼 후끈하게 남아있었다.

에녹이 피식 웃으며 깍지 낀 손을 아래로 내렸다. 아직까지 교접해 있는 탓에 잔뜩 오그라들어 있는 배 위를 느리게 쓰다듬었다. 뭔가 미끈거리는 액체가 손끝에 엉켜왔다.

 “이거 봐. 안 만져줬는데 너도 쌌어. 내가 극치에서 떨 때 말이야.”

시야에 불쑥 나타난 손끝에는 그의 말대로 뽀얀 정액이 묻어 있었다. 영문을 몰라 그를 다시 올려다봤다. 그는 눈시울을 가늘게 접었다.

 “원래 남자끼리의 섹스에서 방금처럼 넣고 흔드는 것만으로 뻑 가는 건 드물다고 했거든. 특히나 너처럼 처음인 녀석은.”

 “…좋은 거예요?”

그가 녹을 듯이 미소를 지었다.

 “당연하지. 우리가 환상적으로 잘 맞는다는 증거이기도 하고.”

정난우는 가만히 그의 말을 곱씹었다. 잘 맞는다. 뭔가 좋은 어감이었다. 적어도 우린 잘 안 어울리는 것 같다, 라는 말보다는 수백 배 괜찮아 보였다.

하아, 바보처럼 웃음이 샜다. 짓무른 듯한 뜨거운 눈꺼풀이 사르르 내려왔다. 뺨이 자꾸만 제멋대로 움직였다. 뜨끔하게 부운 입술도 통제를 벗어났다.

이윽고 셔터가 내려앉듯 시야마저 가늘게 아래로 좁아들었다. 그 안에 꽉 들어차 있는 에녹의 눈이 일순 희미한 동요로 흔들렸다.

 “이게.”

에녹은 말을 잇지 못했다. 그대로 숨을 멈췄다. 사정 후 나른하게 일렁거리던 가슴에 뭔가 세차게 꽝 충돌해 왔다.

그 충격 아닌 충격에 심박동이 쫓기듯 다급히 내달렸다. 목울대가 위 아래로 한 번 크게 울렁거렸다. 요동치는 눈길이 어지럽게 정난우의 얼굴 위를 헤매고 더듬어댔다.

아, 하며 에녹은 일순 미간을 좁혔다. 고여 있던 호흡이 사나운 기세로 쏟아져 나왔다.

아늑하게 젖은 비부에 푹 싸여 있던 성기가 다시 단단하게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발기하자마자 쌀 것 같은 흥분이 등가죽을 벗겨내려 안달이었다.

에녹은 낮은 탄식으로 목을 울렸다. 제 안에 삽입돼 있는 성기의 변화를 깨닫자마자 그 예쁘게 웃는 얼굴은 자취를 감췄다. 깜짝 놀라 올려다 보는 눈이 아쉬웠다.

제 체액을 깊은 곳에 잔뜩 품었다. 열 오른 눈과 얼굴을 했다. 그리고 선물 받은 아이처럼 환하게 웃는데, 그걸 참 뭐라고 표현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흩어졌던 흥분이 한 순간 꽉 조여든 것만은 선명하게 인지했다.

에녹은 다급하게 달려들어 정난우의 입술을 삼켰다. 목에 핏대가 설 정도로 세게 빨았다. 선명하고 짙은 눈동자가 당혹에 젖어 올려다보았다.

에녹은 희미하게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혀를 내밀었다. 본능적으로 닫고 있는 입술 사이를 진득하게 갈랐다. 고른 치아를 혀끝으로 쓸었다. 정난우는 어설프게 입을 열어 주었다. 침략은 급박했다,

단번에 깊은 곳까지 닿았다. 안에서 잔뜩 웅크리고 있던 혀가 놀란 듯이 튀어 올랐다. 낚아채듯 휘어 감았다. 굶주린 듯 잘근거리고 흡입했다.

정난우는 쫓지듯 반응했지만 느리고 착실하게 혀를 내주었다. 미끈하게 솟은 타액이 좁은 목구멍 속에 계속 넘어갔다.

에녹은 완전히 발기한 성기를 느리게 빼 냈다. 정난우의 눈 꼬리에 붉은 열기가 파드드 흩어지는 순간, 빠르게 다시 찔러 넣었다.

늘어지 있던 몸이 활어처럼 튕겼다. 땀방울이 허공을 날아 달아오른 피부 위에 점을 찍어냈다. 짙게 흔들리는 열기가 정난우의 눈동자에 번져갔다.

에녹의 호흡 역시 급격히 가빠졌다. 위도 아래도 음란하게 이어져 젖은 마찰음을 냈다. 팔팔 끓는 뇌수가 어지러이 골을 흔들었다. 에녹은 덮칠 때처럼 갑작스레 입술을 떼 냈다.

 “일어나 앉자.”

 “하…으읏…….”

정난우는 대답하지 못했다. 에녹은 시트에 쩍 달라붙어 있는 등허리를 한 팔로 감았다. 그대로 끌어올리자 정난우는 가늘게 신음하며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활짝 벌어진 가랑이를 군살 없이 단단한 아랫배에 밀착했다.

 “다리로 내 허리를 꽉 틀어서 조여 봐.”

에녹은 탁한 음성으로 속삭이며 탱탱한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가만가만 두드렸다. 허리는 감질날 만큼 느리게 움직였다. 그 때마다 깊이 교접한 구멍에서 제가 싸 놓은 액이 쿨쩍쿨쩍 새 나왔다.

정난우는 바들바들 떨리는 다리를 애써 움직여 허리에 감았다. 잘했어, 에녹은 기꺼이 칭찬했다. 그리고 팔뚝으로 땀 젖은 등허리를 사선으로 받쳐 들어 지탱해 줬다.

 “아…으…, 힘든, 힘든데…… 너무 꽉…….”

정난우는 본능적으로 매달려 어깨를 감싸 안았다. 체중이 더해진 삽입에 말랑하게 녹아있던 몸은 연신 자지러졌다.

에녹은 잔뜩 풀어진 신음을 내뱉었다.

 “너무 꽉 껴?”

정난우는 얼른 고개를 끄덕거렸다. 얼굴은 먹기 좋을 만큼 달아올라 있었다. 에녹은 혀로 입술을 잔뜩 축이고는 그 농익은 뺨을 깨물었다. 움츠러든 어깨 위로 하얀 빛이 바스러졌다.

에녹은 느긋하게 허리를 움직였다. 정난우의 엄살과는 달리 축축하게 젖은 내부는 찹쌀떡처럼 착착 감겨왔다.

중지로 톡 튀어나온 꼬리뼈를 문지르다 손을 미끄러뜨렸다. 손끝에 닿는 곳은 정액이 흘러 온통 척척했다.

에녹은 제 것이 드나드는 입구를 검지와 중지에 끼워 느리게 문질렀다. 상박을 감싼 팔을 움직여 손 안에서 목덜미를 애무했다.

 “아냐. 이렇게 잘 물고 있는데.”

은근한 의도로 목소리를 낮췄다. 그러자 손 안에 든 목이 파르르 움직였다. 에녹은 가늘게 눈가를 휘었다.

한 번 경험해 보니 이제 대강 제가 내던지는 말이 파악이 될 거다. 요령 피우는 법도 몰라 허세도 못 부린다. 그저 주어지는 쾌감에 솔직하고 무력하게 반응하는 거다.

 “이렇게 부드러운 게 좋아? 아님 세게 할까?”

슬쩍 선택권을 줘 봤다. 정난우는 목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 불규칙하게 눈을 굴렸다. 처음 섹스 자세를 알려주기 전과 그다지 다르지 않은 물음표에 가까운 표정이었다. 아직 덜 컸다.

 “그래. 내가 알아서 할게. 위도 아래도 꽉 잡고 있어. 떨어지지 않게.”

몸을 감싸고 있는 팔다리에 곧바로 힘이 실렸다. 기분 좋은 무게감에 나른한 탄성이 흘렀다. 에녹은 가볍게 숨을 한 번 들이켰다.

빠르게 빼 냈다가 끝까지 박았다. 정난우가 낮은 비명을 질렀다. 머리카락 속에 굴러다니던 땀이 관자놀이를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연달아 거칠게 움직였다. 이를 꽉 물고서 볼록 튀어나온 귀두로 전립선을 집중적으로 긁었다.

가볍게 내리깐 눈으로 바짝 선 귀여운 성기가 들어왔다. 목덜미를 주무르던 손을 내려 가볍게 그것을 쥐었다. 작고 예쁜 색깔이지만 엄연히 딱딱하게 솟아 있었다. 에녹은 떡 주무르듯이 콱콱 손아귀를 움직였다.

정난우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졌다. 한계치를 뚫은 자극에 속눈썹이 또 젖어들었다. 독하게 울지도 않던 게 이렇게 품 안에서 잘 우니 핥아주지 않고는 못 배겼다.

쉴 새 없이 쳐올리며 상체를 숙였다. 허리 조리던 다리에 힘이 탁 풀려 떨어질 뻔했다. 에녹은 재빨리 그 허리를 감아 붙들었다.

 “읏…조심, 하라니까.”

성대에서 갈라진 숨이 툭툭 새 나왔다. 여유롭게 리드하고 있지만 인내는 바닥을 기고 있었다. 혹독하게 몰아붙여 밑바닥을 들어내고, 그 안에 꽁꽁 감춰 둔 사랑스러운 알맹이를 샅샅이 핥아 먹고 싶었다.

거의 눕힐 듯이 몸을 기울이던 에녹은 매트리스를 짚었다. 정액이 잔뜩 묻은 손이 시트를 구겼다. 팔뚝으로 허리만 고정한 채 음탕한 허리 짓을 이어갔다.

정난우는 떨어질 것 같아 필사적으로 팔을 조였다. 울음 섞인 음란한 신음이 뇌리에서 종소리처럼 쩡쩡 울렸다.

에녹은 자꾸만 타 들어가는 입술을 연신 혀로 축였다. 그리고 물기로 번들거리는 혀로 젖혀진 턱 끝을 긁어 올렸다.

 “흐읏…으…응…….”

날카롭던 교성은 점차 묽고 짙게 내려앉았다. 어두운 심해 진흙 속을 늘씬하게 유영하는 물고기처럼 질퍽했다.

눈썹에 맺힌 땀이 눈꺼풀을 갈랐다. 따가운 스밈에도 에녹은 눈 꼬리만 접었다. 축 늘어진 하얀 허벅지는 활짝 열린 채 간헐적으로 떨렸다.

에녹은 잔뜩 웅크린 아랫배를 폈다. 고개를 올려 끈끈하게 젖은 목을 빨다가 귓불을 물었다. 움찔거리는 귓바퀴 안에 거칠게 토해내는 신음만 연거푸 흘러 넣었다.

 “윽……!”

소리에 극도로 민감한 정난우는 몸서리치며 눈을 꽉 감았다. 가지런한 속눈썹은 흠뻑 젖은 채 물기를 매달았다. 에녹은 입술을 모아 그 물기를 거둬냈다.

위아래로 움직이던 허리도 부드럽게 돌렸다. 성기를 감싼 내벽이 거칠게 쓸리며 휘돌았다. 아, 아윽, 정난우는 또 낯선 쾌락의 바다에 침수되고 말았다.

 “에녹…에녹……흐…으으…….”

그 애틋한 부름에, 찌꺼기처럼 부유하던 이성이 모두 증발했다. 에녹은 목에 걸린 팔을 빠르게 풀어냈다.

힘 풀린 몸을 던지듯 시트 위에 던지듯 눕혔다. 정난우는 꿰뚫린 곳만 제외하고 탈진한 듯 사지를 벌리고 있었다.

에녹은 곧장 두 손으로 매트리스를 눌러 짚었다. 동시에 어금니를 꽉 사려 물고서 사납게 허리를 움직였다.

정난우의 눈이 크게 떠진 채 위로 향했다. 그리고 다시 반쯤 일그러졌다. 도리질 치는 고개에서 작은 물기가 허공에 흩뿌려졌다.

에녹은 짐승처럼 신음하며 날뛰듯이 움직였다. 첫 경험에 꽉 다물려 있던 구멍이 쉴 새 없이 수축과 이완을 반복했다. 그 안을 흉기처럼 드나드는 것은 말랑하고 축축한 점막을 모두 자극했다.

에녹의 손이 어지럽게 움직였다. 늘어진 허벅지를 잡아들었다가, 발목을 움켜쥐어 끌어당겼다. 툭 튀어나온 복사뼈를 깨물고 깊이 빨아들였다. 붉은 자국이 꽃처럼 피어 수놓아졌다.

혹사당해 부풀어 오른 유두를 비틀고 군살 없는 허리도 주물렀다. 길어지는 정사는 내면 깊은 곳의 과격하고 거친 본성에 한없이 가까워져만 갔다.

정난우의 두 손목은 어느 새 한 손에 결박되어 까맣게 흐트러진 머리카락 위에 고정되었다. 정난우는 고문당하듯 울었지만 흐느끼듯이 신음했다. 이상해요, 저려요, 성대도 채 못 울린 애원을 샅샅이 핥아먹었다.

에녹이 열병을 앓듯 속삭였다.

 “나 지금.”

날카롭게 긁힌 금속 위를 흐르는 음성이었다. 정난우는 희뿌연 시야에 겨우 그를 담았다. 그가 낮게 헐떡이며 속삭였다.

 “아, 씹…녹아내릴 것 같아. 미치게 좋아.”

너는 어때, 습한 본능을 흡수해 잔뜩 풀어지고 짙어진 눈으로 그가 물었다. 물막에 번진 형태는 모두 일그러졌어도 그 눈빛만은 선명하게 타올랐다.

뜨겁고 열렬한 송곳 같았다. 그 뾰족한 안광의 끝 날이 각막을 뚫어내듯 눈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대답을 재촉하듯 입술이 핥아졌다. 지치지도 않는 허리는 난잡하게 내부를 파먹었다. 점막을 조금씩 뜯어내 거둬갈 것처럼 들쑤셔댔다.

규칙이 무너진 삽입은 파괴적이었다. 소름 끼치는 감각이 몇 번이고 흉폭한 파고를 끌어왔다. 육체도 의식도 모두 다 부서질 것 같았다. 남김없이 가루가 되어 흩날릴지도 몰랐다.

정난우는 속수무책으로 흔들리며 떨리는 입술을 열었다.

 “모, 모르겠……흑…그냥, 몸이 이상……흐……!”

잔뜩 부은 눈가에 눈물이 줄줄 샜다. 발가락이 잔뜩 굽어 바들바들 떨렸다. 사실은 온 몸이 그랬다.

그의 입술이 콧등에 맺혀 왔다. 먹이를 쫓는 포식자처럼 위협적인 숨결을 뿜어냈다. 그게 미치게 좋은 거야, 그가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소리를 중얼거렸다.

 “이번엔, 내 손 안에 싸. 잘 받아 줄 테니까.”

거친 속삭임과 동시에 그가 절정을 향해 움직였다. 그의 손이 감싸 쥐고 나서야, 아플 정도로 당기던 성기를 자각했다.

흠뻑 젖은 눈시울이 한계까지 벌어졌다. 섬광 같은 불꽃과 죽음 같은 암흑이 경쟁하듯 교차로 뇌리를 갈랐다.

 “응…으응…….”

정난우의 신음소리는 아사하기 직전인 새끼 짐승의 그것처럼 흐렸다. 에녹은 프리컴이 줄줄 샌 성기를 빠르게 훑으며 구멍 안을 치받았다.

따라가기 벅찬 자극에 정난우는 이미 무너져 바르작거리기만 했다. 괴로운 듯 간간이 미간을 찌푸리지만 환장할 만큼 좋은 소리를 동시에 냈다.

 “아…하악!”

귀두를 문지르던 엄지에 일순 미끈한 액이 확 터져 나왔다. 그 순간 에녹은 아랫입술을 피 맺힐 정도로 짓씹으며 아랫배를 꽉 움츠렸다.

 “흣!”

눈썹이 절로 일그러졌다. 경직된 허리가 미세하게 휘었다. 검붉은 흉기를 뿌리까지 박아 넣고 엉덩이 근육을 꽉 조였다.

깊고 은밀한 곳에 다시 한 번 제 씨가 뜨겁게 뿌려졌다. 미끈하고 축축하게 꽉 조인 내부는 극락처럼 황홀했다.

에녹은 꽉 막고 있던 숨을 거칠게 개방했다. 다급히 쏟아져 나온 숨결을 몇 번 끊어 내뱉으며 뿌리까지 박아 넣은 성기를 나긋하게 돌렸다. 사정의 순간은 강렬하고 후희는 늘 길었다.

충분히 젖은 내부를 음미하고 나서야 늘어진 한숨을 흘렸다. 아릴 정도로 화끈거리는 눈을 가만히 움직였다.

붉게 상기된 얼굴은 제 아래에 깔린 채 가련하게도 떨렸다. 에녹은 여러 가닥으로 엉킨 숨을 내쉬며 그 뺨에 제 얼굴을 묻었다. 불규칙하게 토막 나는 목소리로 뜨겁게 속삭였다.

예쁘다, 난우. 사랑해.

에녹의 한국어는 외국어처럼 이질적이었다. 그러나 그만큼 달콤하고 다정했다.

혹독하게 몰아갈 땐 잔인하달만큼 사정없더니 마지막엔 이렇게 달콤하게 어르고 있었다. 얼굴을 어루만지는 젖은 손이 온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녹였다.

정난우는 혼이 나간 상황에서도 대답했다. 나도……. 그러나 끝맺지 못한 음성은 심하게 갈라진 성대 안으로 사라졌다. 아슬아슬하게 깜빡이던 눈꺼풀이 완전히 무너졌다.

 “야, 벌써 잠들지 마.”

에녹은 난처한 표정으로 젖은 뺨을 톡톡 두드렸다. 정난우는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발그레하게 달아오른 피부 위로 밤기운의 피로가 내려앉았다. 도리가 없었다. 아무래도 조금 재워야겠다. 에녹은 픽 웃으며 그 몸을 꽉 품어주었다.

무의식중에서도 어깨가 꽉 움츠러들었다. 따끔한 감각이 가슴을 베었다. 죽은 듯이 암전돼 있던 머릿속에 섬광이 비쳤다. 정난우는 심해에서 곧바로 끌어올려진 사람처럼 숨을 들이키며 눈을 번쩍 떴다.

그러나 번쩍 떴다는 건 본인의 의지일 뿐, 부은 눈꺼풀은 한없이 무거웠다. 그리고 정신을 차리자마자 또 울게 될 걸 예감했다. 벌어진 다리 사이에 그가 올라타 있었다.

그의 그림자는 해결되지 않는 습한 욕구를 대변해 온 몸을 가뒀다. 움찔움찔 떨리는 아래 쪽 입구에 그의 미끈한 귀두 끝이 희롱하듯 문질러 졌다.

하으, 저항할 힘도 의지도 없어 숨만 할딱거렸다.

 “왜 이렇게 오래 자.”

그가 달콤하게 갈라진 음성으로 말했다. 그리고 몇 번이고 길을 열어 준 몸을 또 한차례 가르고 들어왔다. 딱딱하게 발기한 성기는 뜨겁게 열 맺혀 부은 점막을 사정없이 밀어붙였다.

 “아…으응…….”

뭔가, 이젠 아픈 것도 모르겠다. 그저 화끈하게 지져지는 느낌이었는데 몸은 절로 뒤틀렸다.

전립선이 뭉개지는 감각에 정난우는 희미하게 미간을 좁히며 신음했다. 몸은 피로로 녹아내릴 것 같은데도 그의 검붉은 흉기를 휘감은 안쪽은 기뻐하듯 꿈틀거렸다. 제 몸 세포는 머릿속과 따로 노는 듯했다.

까슬한 음모가 얼얼한 엉덩이에 닿았다. 그가 나른하게 숨을 몰아쉬었다. 정난우는 가슴을 들썩이며 눈을 들었다. 조명 없이 어둑한 실내로 그의 차가운 색감의 눈동자가 여전히 불타는 궤적을 남겼다.

그 열기가 얼마나 더 지속될지 무서웠다. 그의 단단한 팔뚝을 살며시 붙들며 애원했다.

 “에녹, 우리 언제까지…….”

 “벌써 잊었어? 내일까지 침대에서 나갈 생각도 말라니까.”

내부를 꽉 채운 그의 성기가 이리저리 느리게 찔러 올렸다. 그 때마다 탁 막히는 숨이 기도를 역류했다.

새벽에도 단잠을 자다 깨워졌고, 지금은 아마 이른 아침일 거다. 섹스라는 게 쪽잠 자 가면서 하는 건 줄은 미처 몰랐다.

힘없는 팔을 들어 그의 목덜미에 걸었다. 그의 열띤 눈동자에 흥분 섞인 이채가 스쳤다. 기꺼이 고개를 숙여주는 그의 입술에 가볍게 키스했다.

 “조금만, 봐 주세요. 저…기운이 너무, 없어서…….”

그러자 그가 아련하게 눈시울을 좁혔다. 할짝할짝 입술을 몇 번 핥아 주더니 소름끼치는 말을 했다.

 “무슨 소리야. 너 처음이라 지금 충분히 봐 주고 있는 건데.”

에녹은 하얗게 질리는 얼굴을 사랑스럽게 응시하다 손을 뻗었다. 늘어진 목덜미를 들어 가볍게 고개를 세워주고는, 사이드테이블에 올려둔 잔을 입술에 들이밀었다.

 “한 번만 하고 다시 재워 줄게. 자, 착하지. 일단 이것부터 마시고.”

흐린 눈으로 잔 안에 든 빨간 액체를 내려다보았다.

 “이게, 뭐예요?”

 “아래 내려가서 갈아 왔어. 너 먹이려고. 자, 얼른.”

코끝에 머무는 건 상큼한 자몽 향이었다. 목이 말랐던 건지 금세 침이 고였다. 정난우는 얼른 입을 벌려 그걸 받아마셨다.

옳지, 옳지, 그는 아주 다정하게 속도를 조절하며 주스를 흘려 넣어 줬다. 그 세심한 손길에도 마음은 여전히 불안했다. 그는 한계까지 가랑이를 벌려 놓고서 그 순간에도 음미하듯 허리를 돌리고 있었다.

센 자극은 피하는 터라 주스는 무사히 마셨다. 마지막 반절은 그의 차지였다. 단번에 들이키는 그의 목울대가 위아래로 꺼떡꺼떡 움직였다. 빨간 액이 턱 끝에 맺혔다.

탁.

잔을 사이드테이블에 다시 올려둔 그가 핥아달라며 턱을 내밀었다. 멍하니 보고만 있자 그의 허리가 크게 뒤로 움직였다. 숨이 턱 막힐 정도로 강렬한 삽입이 곧장 뒤를 이었다.

 “흑……!”

 “핥아. 얼른.”

그가 허리를 짓쳐 올릴 때마다 척척 살 부대끼는 소리가 귀를 간질였다. 척추가 저릿하게 울릴 정도로 박아댔다.

또 강제적인 열락이 살가죽을 데웠다. 괴로운 건지 좋은 건지 몸은 절로 비틀렸다. 꺼질 듯한 신음이 폐 속을 가득 채웠다.

 “나 네가 핥아주는 거 너무 좋아. 빨리.”

뭐가 그의 진짜 모습인지 모르겠다. 정액 비린내를 흠뻑 뒤집어진 음란하게 움직이는 것도 그였고, 애정을 갈구하며 머리를 들이밀어 조르는 것도 그였다. 몸은 깨질 것처럼 아슬아슬한데 마음이 기묘했다.

정난우는 가만히 혀를 내밀었다. 그가 낮게 신음하며 제 턱을 그 살덩이 위에 얹었다.

몸이 위아래로 나긋하게 흔들려 자꾸만 빗나갔다. 열심히 혀끝을 움직여 그의 입술에서 턱까지 난 주스 자국을 지워냈다.

 “잘했어. 이제 기분 좋게 해 줄게.”

에녹은 제멋대로 말하며 두 팔을 베개 밑에 짚었다. 상체를 반쯤 기울인 채로 아랫배를 꽉꽉 밀어 올리듯이 들락거렸다.

정난우는 잔뜩 쉰 목소리로 비음을 흘렸다. 느리게 깜빡이는 눈이 젖어드는 모양은 가슴이 아릴 만큼 애틋했다. 에녹의 표정에 어둡고 짙은 정염이 너울거렸다.

 “저기요, 에녹…….”

조금 진정시킬까 해서 입을 뗐을 때였다. 그러자 에녹이 선수를 쳤다. 목 안에 끈끈하게 고여 있던 숨을 내뿜으며 뺨을 비벼왔다.

 “난우야.”

엉덩이가 바짝 들리고 서로의 가슴이 맞닿았다. 피부 감촉은 온 몸이 으슬거릴 정도로 좋았다. 멈칫하던 정난우는 매달리듯 비비적거리는 그의 뜨거운 몸을 바싹 그러안았다.

 “네.”

아래쪽에는 그가 드나드는 곳만 소름끼칠 정도로 감각이 살아 있었다. 부드럽게 삐걱거리던 침대의 소음이 점차 속력을 올렸다.

 “미안. 자제가 안 돼.”

그가 귓가에서 고백했다. 허스키하게 결이 거친 음성이었다.

 “아…… 한 일주일 이렇게 뒹굴었으면 좋겠다.”

정난우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희미하게 웃고 말았다. 풀린 다리에 겨우 힘을 줘서 그의 허리를 감았다. 등허리부터 엉덩이까지 육감적인 곡선을 그리는 그의 단단한 허리는 움푹해서 걸치기 좋았다.

그가 슬쩍 고개를 들었다. 불그스름한 열기가 그의 희고 고운 뺨에 번져 있었다. 손을 뻗어 조심히 어루만졌다. 그는 기분 좋은 듯이 목을 울리며 그 손바닥 안에 얼굴을 비볐다.

 “그렇게, 좋아요?”

그의 입술이 매력적인 선을 그렸다. 퍽, 화답하듯 그가 강하게 찔러 넣었다. 읏, 날카로운 교성이 그의 입술에 뭉개졌다. 거칠게 들어온 혀가 또 야만스럽게 안쪽을 훑어갔다. 자몽 향 섞인 숨결이 뒤엉켰다.

그는 타액 번들거리는 입술에 쪽 입을 맞추며 말했다.

 “죽이게 좋아. 네 체력만 받쳐준다면 몇 시간 연달아 박을 수도 있을 만큼.”

 “그건, 좀 무리…….”

 “나중에 하자. 너 내 거에 익숙해지면, 내가 진짜 지옥 같은 천국을 보여줄게.”

어젯밤에도 새벽에도 충분히 봤다. 하지만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그는 상체를 세웠다.

간다, 단호한 경고가 떨어졌다. 본능적으로 그의 허리를 다리로 더 꽉 옥죄었다. 그의 짙은 눈빛이 내려왔다. 그리고 그대로 퍽퍽 아래를 쳐올리기 시작했다.

 “흣! 아, 아까!”

신음하는 정난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부은 눈이 또 점차 젖어들었다. 따끈한 얼굴이 퍼런 핏줄 돋아난 팔뚝에 비벼져 왔다.

까맣게 흐트러진 머리카락은 시트 위에 어지럽게 움직였다. 에녹은 연신 제 입술을 핥으며 그 모든 걸 집요하게 눈 안에 담았다.

처음 억지로 몸을 가를 때보다 속살은 더 쫀득해졌다. 빡빡함은 여전했지만 거칠게 펌프질을 해도 상처 날 걱정은 안 해도 되겠다 싶었다.

삽입할 때는 희열에 떨듯 울렁거리고, 빠져나갈 때는 안타까운 듯이 물어뜯는 점막의 감촉이 못내 신기했다.

제 테크닉이 그 정도로 좋은 건지 정난우 몸이 타고난 건지 약간 헷갈렸다. 분명한 건 섹스 도중에서 자신은 더 흠뻑 빠졌다.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이렇게 위도 아래도 착착 앵겨 오니 이성이 남아날 리가 없었다.

에녹은 정난우의 두 다리를 어깨에 각각 걸었다. 한 번 찔러 넣을 때마다 경련하듯 떨어대는 몸은 이끄는 대로 유연하게 움직였다. 엉덩이를 하늘로 쳐들고서 사내를 받는 그 자세에, 비부에 묻힌 살덩이는 더 사납게 꿈틀거렸다.

에녹은 얼른 성기를 빼 냈다. 제일 굵은 귀두가 빠져나갈 때 정난우는 간드러지게 앓는 소리를 냈다.

미끈한 프리컴이 구멍 안에서부터 주욱 이어져 제 성기 끝에 매달렸다. 어금니를 사려 문 채 길게 호흡을 가다듬었다.

벌써 싸기는 아쉬웠다. 길게 오래 탐하고 흠뻑 싸 주고, 그리고 다정하게 품에 안아 도닥여 재워 줄 생각이었다.

정난우는 손가락 관절이 하얗게 도드라질 정도로 팔뚝을 움켜쥐어 왔다. 갑자기 휑해진 아래에 쾌감의 잔재가 부스러기처럼 안을 떠도는 거였다.

 “하아…아………”

열기로 뭉그러진 까만 눈동자가 애처롭게 위를 향했다. 움찔거리는 게 구멍 안이 다시 꽉 채워졌으면 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정난우는 조르지 않았다. 아마 제가 사내의 성기를 원하고 있다는 것조차 자각하지 못하고 있을 거다.

에녹은 성감을 잔뜩 짓눌러 두고서 다시 번들거리는 귀두를 구멍 주위에 살살 마찰했다. 농탕질에 흠씬 젖은 정난우의 얼굴은 자연히 달아올랐다. 잠시 잦아든 호흡이 또 고조되기 시작했다.

참 솔직하고 예민한 몸이었다. 의식만 제대로 따라가 준다면 앞으로의 밤들은 날뛰지 않고는 못 배길 거다.

기대감으로 가슴이 요동쳤다. 흥분으로 바싹 마른 입술을 혀로 훔쳤다. 에녹은 다시 미끈거리는 내벽을 제 검붉은 흉기로 벌려냈다. 심하게 마찰되어 잔뜩 화끈거릴 점막이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 들어왔다.

하아, 에녹은 등줄기가 오싹해 무심결에 한숨을 흘렸다. 뿌리까지 묻은 살덩이를 천천히 돌렸다. 헤프게 풀어진 얼굴 여기저기 입술을 눌렀다.

정난우는 키스해 달라는 듯이 혀를 살짝 내밀었다. 이런 사소한 짓거리가 저를 더 미치게 만드는 거였다. 얕고 빠르게 찔러가며 입술을 뾰족하게 세웠다. 살짝 핥아주고 나서 물러섰다.

에녹은 빤히 눈을 맞췄다. 질주하는 야생동물처럼 비릿한 향을 흘리며 속삭였다.

 “아무래도 나, 평생 너랑 후배위는 못 하겠다.”

 “아, …그, 그게 뭐…….”

정난우가 목을 울릴 때마다 성기를 감싼 내벽도 함께 진동했다. 흣, 에녹은 울컥 미간을 좁히고는 역시 헐떡이며 말했다.

 “우리 섹스할 때, 너 엎어놓고, 못 하겠다고.”

엎어놓고?

정난우는 당연히 이해하지 못했다. 어제 호텔에 들어와 짐승처럼 뒤엉키는 동안 많은 체위를 했지만 계속 서로 마주보고 있었다. 당연히 후배위를 알 리가 없었다.

 “이제 이거 없으면, 서지도 않을 것 같아.”

에녹은 꽤 미묘한 예감을 느끼며 정난우의 뜨끈한 얼굴을 어루만졌다.

간지러운 접촉에 붉어진 눈 꼬리가 간헐적으로 움찔움찔 반응을 보였다. 제 밑에 깔려 다리를 벌리고 있는 것만 봐도 아랫배가 아플 정도로 당겼다. 잔뜩 흐트러진 얼굴은 말할 것도 없었다.

백치처럼 맹한 얼굴이지만 창부처럼 흐린 눈을 하고 있었다. 제가 담뿍 묻힌 타액은 입가에 흥건했다. 창백하게 핏기 없던 뺨도 홍조를 피었다.

정난우는 처음 씻겠다고 고집을 부렸던 걸 제외하면 제 모든 걸 날 것으로 열었다. 부끄러워 움츠러들 줄 알았더니 당황해서 우왕좌왕할 뿐이었다. 결국 경험부족만 채워주면 한없이 제 이상형에 가까워질 거다.

풋사과처럼 덜 익은 게 이 정도인데, 나중에 한껏 꽃을 피우고 농익은 뒤에는 더 정신을 못 차릴 게 분명했다.

난우야, 작은 속삭임에 어지럽게 흔들리던 초점이 점차 또렷해졌다. 에녹은 점점 속도를 실어가며 입을 열었다.

 “처음이랑 비교해서, 어때. 내 거 네 안에서 비벼질 때 느낌 같은 거.”

일부러 전립선을 집중적으로 찌르며 가장 깊은 곳까지 꿰뚫었다. 불처럼 뜨겁게 발기한 중간까지만 뺐다가 쉴 틈 없이 찔러 넣었다.

어깨에 올려둔 다리 한쪽이 힘없이 흘러내렸다. 재빨리 발목을 낚아냈다. 무릎 안쪽을 입에 물고서 쭉쭉 빨았다.

정난우가 불분명한 발음을 웅얼거렸다.

 “말로, 잘…흐으…….”

 “설명이 안 돼?”

정난우는 거칠게 위아래로 흔들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깜빡깜빡 눈을 감을 때마다 눈 꼬리가 젖어들었다.

에녹은 뜨끈뜨끈한 탄식을 쏟아내며 아예 두 발목을 한 손에 움켜쥐었다. 모아진 다리를 왼팔에 아무렇게나 걸었다.

점막이 성기를 꽉 문 채 휘도는 게 생생하게 느껴졌다. 그 와중에도 에녹은 눈썹을 살풋 찡그리고는 더 거칠게 움직였다.

꾹꾹 밀려나왔다 제 자리를 찾아가는 내벽이 극렬히 요동쳤다. 정난우는 눈을 크게 뜨며 완전히 자지러졌다.

 “아아! 앗! 흐으!”

에녹은 의지와는 상관없이 돌아누운 턱을 한 손으로 쥐고 입술을 물었다. 발갛게 바짝 서 있던 예쁜 성기 끝에서도 묽은 액이 질금질금 흘렀다. 처음부터 전립선을 자극해 쏟아내는 걸 가르쳤더니 이젠 만져주지 않아도 참 잘 싸는 거다.

열렬한 희열이 에녹의 얼굴에 웃음을 짓게 했다. 맛있게 빨아주고도 싶었지만 이렇게 제가 찔러주는 대로 절정에 다다르는 것도 흡족했다. 묽게 흐르던 정액은 방향을 바꿔 단번에 전립선을 쾅쾅 찧어주자 금세 힘 없는 물줄기처럼 튀었다.

 “아, 에녹…에녹! 저, 그만……흐읏!”

정난우는 갑자기 무서운 사람처럼 몸을 떨었다. 하지만 얼굴에 물든 것은 공포라기보다는 제가 감당키 힘든 쾌감이었다. 에녹의 짙고 예리한 눈은 그걸 선명히 읽었다.

 “이제 그만 쌀까?”

에녹은 선심 쓰듯이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허리는 보란 듯이 난잡하게 돌리며 내벽을 휘저었다. 정난우는 또 어린애처럼 눈물을 터뜨리며 빠르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혓바닥을 넓게 펴서 속눈썹을 핥아냈다. 젖은 마찰음에 연신 예민하게 쫑긋거리는 귓구멍 안으로 음란한 속삭임을 퍼부었다.

 “싸 달라고 해 봐.”

정난우가 크게 숨을 헐떡였다. 사정해서 축 늘어진 성기는 괴로운 쾌감에 꼼틀거렸다. 귓바퀴를 따라 혀끝으로 긁었다. 수치의 개념이 희박한 정난우는 떨리는 입술을 열어 울먹거렸다.

 “이제 그만, 아아……싸, 싸 주세요.”

순간, 에녹은 늑골이 당길 정도로 가슴이 떨렸다. 잔뜩 긴장한 허리가 일순 요동을 쳐댔다. 뜨겁게 안쪽을 휘젓는 성기도 괴롭게 당겨 왔다.

제가 시켜 놓고 싸 달라는 소리를 들으니 머리가 핑 돌았다. 조금 더 듣고 싶었다.

 “어디에?”

 “으…으읏…아아!”

재촉 대신 다시 바로 눕혔다. 모아 쥔 발목을 양 쪽으로 활짝 벌렸다. 점막이 또 크게 돌아가며 뜨겁게 마찰했다. 그 순간 정난우는 몸을 잔뜩 움츠리며 울었다. 비명은 날카롭고 축축했다. 안에다 싸 주세요, 제발 그만해 주세요, 저 무서워요. 그가 원하는 대답을 모조리 뱉어냈다.

하아, 에녹은 현기증을 느끼며 입술을 축였다. 몽롱한 환락이 미간으로 바글바글 몰렸다. 지독한 습성이 불쑥 칼끝처럼 명치를 쑤셨다. 계속 울리고 싶어 심장이 울렁거렸다.

한계치를 뚫은 쾌감에 정난우는 팔을 뻗어 정신없이 매달렸다. 에녹은 고스란히 제 얼굴을 내 주고서 얼굴에 달라붙는 키스를 즐겼다. 아래쪽에서는 이미 제 것도 한계까지 부풀어 빠르게 안을 쑤셔댔다.

 “죽을 것 같지?”

말했잖아. 죽을 것처럼 좋아야 끝나는 거라고.

에녹은 짐승처럼 야만스러운 숨결을 섞어 속삭였다. 잔뜩 굳은 정난우의 허리 아래에 한 손을 끼워 넣었다. 그대로 살짝 들자 전신을 바르르 떨어댔다.

정난우는 목덜미에 매달린 채, ‘네. 죽을 것 같아요.’하며 본능적으로 엉덩이를 흔들었다. 제 딴에는 얼른 끝내 달라고 애원하는 건데 에녹은 더 흐물흐물 녹아내렸다. 거친 한숨이 젖은 얼굴 위로 쏟아져 내렸다.

 “하아…나 아직 끝내기 싫은데.”

정난우는 눈물을 뚝뚝 흘려대며 잡아먹을 듯이 키스했다. 펌프질에 열렬히 흔들리느라 애타는 입술은 어지럽게 움직였다. 말로 안 되니 이젠 몸으로 들이대는 거였다.

아, 이게 첫 날부터 날 죽이려고 작정을 했네.

헤매는 입술은 제가 낚아채 물었다. 그대로 잇새를 파고들어 열렬히 혀를 얽어주었다. 세게 마찰해 타액을 만들고 그걸 목구멍으로 다 받게했다. 헐떡이며 키스한 정난우가 흠뻑 젖은 눈으로 올려다보았다.

에녹의 묽어진 뇌가 시야를 흐렸다. 마약에 중독된 것처럼 온 몸이 떨렸다. 이 무서운 쾌감을 그만 좀 멈춰 달라고 애원하는 거다. 뼛속까지 흐물흐물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

 “알았어. 이제 그만.”

에녹의 숨결도 성난 것처럼 거친 파도를 탔다. 정난우는 안도한 듯이 눈을 꾹 감고서 흐느꼈다. 쉬이, 달래며 상체를 다시 뉘였다. 벌어진 채 흐느적거리던 다리를 양 손에 쥐어주었다.

정난우는 스스로 벌린 허벅지를 쥔 채 제 아래에서 흔들렸다. 땀 때문에 미끄러운 건지 힘이 없는 건지 한쪽 손에서 다리가 흘러내렸다. 에녹은 잠시 움직임을 멈추고 다시 자세를 잡아 주었다.

 “몸 잘 열고 있어. 그래야 싸 주지.”

절정이 가까워 오자 에녹의 목소리는 지극히 낮게 잠겼다. 내리꽂히는 눈빛도 뜨겁게 뭉개졌다. 그 안에 갇힌 정난우는 제 허벅지를 단단하게 움켜쥔 채 고개를 끄덕였다.

에녹은 한 손으로 매트리스를 짚어 체중을 지탱했다. 혀로 흠뻑 축인 아랫입술을 말아 잇새에 물었다.

빈손으로는 하얗게 드러난 엉덩이 한쪽을 붙잡아 벌렸다. 제 성기가 깊이 파묻힌 구멍이 이성 잃은 눈에 들어왔다.

그대로 다시 강하게 처박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순수하게 오르가즘을 불러오기 위한 절차였다. 급격히 치솟았다가 절정에서 오래 머무는 게 제 섹스 스타일이라, 맘먹는다고 금방 나오는 게 아니었다.

정난우는 속수무책으로 떠밀리면서도 제 다리를 한껏 잘 벌리고 있었다. 일그러진 얼굴에는 땀인지 눈물인지 흥건했다.

허리를 더 밀어 올리며 고개를 숙였다. 뾰족하게 세운 혀끝이 마구잡이로 아무데나 핥아냈다.

정난우는 반사적으로 타액 뭉친 입을 벌렸다. 혀를 내밀었다. 쑥쑥 빨아주는 걸로 칭찬을 대신했다.

위에서 아래로 수도 없이 쑤셔 넣었다. 밀어붙이는 대로 흔들리던 몸은 이제 으깨지는 것처럼 경련했다.

아아. 정난우는 몇 번이고 울면서 또 제 걸 세웠다. 아마 자각하지도 못할 거다. 그냥 정신없이 허우적거릴 뿐이었다. 온 몸을 사로잡는 난잡한 쾌감에 늪처럼 끌려들어가고 있었다.

에녹에게도 이성은 한 줌도 남지 않았다. 거친 숨만 연신 뿌려가며 불처럼 뜨거운 눈길을 움직였다.

짐승의 교미처럼 대화가 단절된 순수한 의식이었다. 신음을 먹어치우고 줄줄 흐르는 타액을 혀로 끌어올려 다시 입 안에 담아 주었다. 그때마다 정난우는 잘 받아먹었다.

키스해 달라는 말이 없어도 혀만 내밀면 에녹은 달려들었다. 이로 물고 입술로 빨고 혀를 꼬아 비볐다.

움찔거리는 구멍이 경련하듯 꿈틀거렸다. 한계까지 부풀어 정액이 조금씩 흐르는 게 느껴졌다.

에녹은 잔뜩 풀린 정난우의 눈꺼풀을 엄지로 들어올렸다. 눈 뜨라는 말 대신 다른 쪽 눈을 진득하게 핥아 올렸다.

용케 알아들은 정난우가 힘겹게 눈을 떴다. 약에 취한 듯 몽롱한 눈이 느리게 제 얼굴을 더듬어 왔다.

그 순간 강렬하게 느낌이 왔다. 아직까지 장하게 다리를 벌리고 있던 한 손을 풀어내 깊이 깍지를 꼈다.

관자놀이에 맺힌 땀이 느리게 아래로 흘렀다. 그리고 격렬히 허리를 튕기는 순간 허공에 몸을 던졌다. 우연찮게도 그 작은 땀방울은 울음 섞어 신음하는 빨간 입 속에 떨어졌다.

그 순간 뇌 속에 하얀 섬광이 터졌다. 뜨거운 아랫배가 잔뜩 수축했다. 꽉 조인 엉덩이가 귀두 끝을 깊숙한 곳에 처박았다.

에녹의 목 안에서 진득한 신음이 짧게 터졌다. 짜릿한 감각은 극렬한 오르가즘으로 전신에 길게 뻗어나가 뜨겁게 잔재했다.

아아아, 정난우는 길게 울부짖으며 몸을 떨었다. 예민하기 그지없는 몸은 제 깊은 곳 안쪽에서 뜨끈하게 퍼지는 남자의 정액에도 자극을 느꼈다. 순식간에 발기해 묽은 액을 시트 위에 찔끔 찔끔 내뱉었다.

에녹은 정난우의 젖은 뺨에 입을 맞추며 그 광경을 낱낱이 감상했다. 순백의 무지가 매혹적으로 물들어 가는 거다.

가슴이 뛰다 못해 뒤틀렸다. 사정한 순간부터 다시 발기하라고 해도 할 것 같았다.

에녹은 만족스럽게 신음하며 느리게 제 것을 점막의 사방에 문질렀다. 미끌미끌한 액이 감겨오며 긴 후희를 선사했다.

정난우는 곧 죽을 사람처럼 색색 새된 호흡을 반복했다. 에녹은 부들부들 떨리는 입술에 제 것을 깊이 맞물렸다. 위로하듯 느리게 움직이는 혀가 입천장과 혀와 볼 안 쪽 모두 샅샅이 핥고서 떨어져나갔다.

 “잘 견뎠어. 기특해.”

정난우는 거의 반응하지 못했다. 무너지고 흐트러진 채 숨만 쉬다 그대로 또 수마의 늪 아래로 끌려들어갔다.

 “이번엔 너무 오래 자지 마. 알았지?”

암전되기 직전 그의 다정한 속삭임이 들려왔다. 정난우는 무의식중에서도 몸을 부르르 떨었다. 에녹의 거친 웃음소리가 먼 곳에서 낮게 울리는 것 같았다.

정난우는 누운 채 바이올린을 들고 손을 풀었다. 스케일부터 시작된 연습은 두 개의 레퍼토리를 걸쳐 이번 리사이틀 화제곡인 마왕에 이르러 있었다.

온 몸이 푹푹 까라져서 아무 의욕도 없었지만 10년이 넘게 해왔던 일과였다. 어색하지도 고통스럽지도 않았다.

전 세계를 돌며 연주여행을 다니려면 체력은 필수였다. 그간 꾸준히 피트니스 센터에 출근 도장을 찍은 게 이제야 빛을 봤다.

물론, 제가 설마 난잡한 섹스에서 그 꾸준한 운동의 효과를 볼 줄은 꿈에도 몰랐지만……어쨌든 좋은 게 좋은 거 아닐까 싶었다.

 “내가 할 말은 좀 아니지만. 너 진짜 독하다.”

정난우는 힘없이 미소 지으며 연주에 몰두했다. 열심히 적립해 놨던 체력이 바닥을 기는데도 테크닉은 혀를 내두를 만큼 완벽했다.

에녹은 눈을 가늘게 뜨며 미심쩍다는 듯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내가 네 여우 짓에 속은 것 같아. 기운 없다고 찡찡대던 거 다 뻥이었지? 오늘 밤까지 실컷 뒹굴고 놀아도 되는 거 아냐?”

 “아, 아니에요!”

정난우가 기겁해서 부정했다. 그러면서도 다그닥, 다그닥, 슈베르트의 말발굽은 바이올린 몸통을 가쁘게 울렸다. 소름 돋는 프로페셔널 정신이었다.

정난우는 슬슬 경계의 눈빛을 세우며 중얼거렸다.

 “정말 안 돼요. 저 여기서 더 하면 내일 무대에서 못 서 있어요.”

 “농담이야. 그 정도로 양심 없지는 않으니까 긴장하지 마.”

 “…그건 믿어도 돼요?”

에녹은 바짝 세워 놓은 정난우의 무릎에 얼굴을 비비며 중얼거렸다.

 “야. 내가 너 안을 때 제외하고는 내내 노예처럼 갚고 있는데 그런 의심하면 섭섭하지. 나 예쁘게 좀 봐줘.”

에녹은 한껏 생색냈다. 그럼에도 부정할 수 없을 만큼, 그의 수발이 지극정성인 건 사실이었다.

기절하듯 잠들었다 일어날 때마다 몸도 시트도 항상 보송보송했다. 틈틈이 전신마사지는 물론 밥까지 손수 떠먹여 주니 조금 민망할 지경이었다.

그처럼 강철 체력은 아니어도 숟가락 못 들 만큼 약골도 아니었다. 그러나 괜찮다고 해도 그는 막무가내였다. 결국 엎드려 절 받는 꼴이기는 했다.

에녹은 지금도 다리를 주무르는 중이었다. 근육이 뭉칠 틈도 없이 그 때 그 때 풀어놓은 터라 사실 이럴 필요까지 있나 싶었다. 사실 제일 아픈 건 엉덩이 안 쪽인데 거기는 그냥 시간이 약이었다.

 “그런 거 안 해도 예뻐요. 그러니까 그만 해도 돼요.”

슬쩍 다리를 빼내려했지만 다시 우악스레 붙잡혀 끌려갔다.

 “그렇게 심하게 굴었는데도?”

잠시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에녹은 나른한 눈매를 휘었다. 질픽한 욕구를 맘껏 풀어헤친 그의 얼굴은 보양식 먹은 사람처럼 반짝반짝 윤이 났다.

정난우는 연습 끝낸 바이올린을 만지작거리며 작게 중얼거렸다.

 “그리고 따지고 보면 에녹이 강요한 것도 아니고…….”

몸에 힘이 없어서 그만 했으면 싶다가도, 보채듯이 뜨거운 몸을 겹쳐 오면 결국 심신이 다 녹아났다. 서로의 체액이 뒤엉킬 때의 그 기묘한 두근거림이 좋아 번번이 깜빡 홀린 제 책임도 컸다.

 “저도 좋으니까 다 받아준 건데…… 그렇게 죄 지은 사람처럼 구니까 제가 몸 둘 바를 모르겠는데요…….”

가만히 듣던 그가 갑자기 위로 쑥 올라왔다. 강탈당한 바이올린과 활이 사이드테이블에 안착했다. 곧바로 몸이 포개지고 입술이 맞닿았다.

그도 자신도 운동복 바지만 입고 있었다. 맨살의 감촉과 체온이 자연스레 감겨왔다. 옅은 살 냄새가 머리를 몽롱하게 휘저었다. 꽉 누르는 무게감에 가슴이 떨렸다.

타액 섞이지 않는 입맞춤이 몇 번 이어졌다. 정난우는 조심히 입술을 열어 가볍게 핥았다. 신음처럼 한숨을 지은 그도 살짝 혀를 부딪쳤다.

탁한 음성이 꽉 짓눌린 채 흘러나왔다.

 “알아. 나 정신 놓은 와중에서도 그런 거 다 관찰해. 특히 너는 감정 숨길 줄을 몰라서 투명하게 다 보이거든.”

 “…그랬어요?”

에녹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짜 싫어서 우는 거랑 너무 좋아서 우는 건 안는 사람이 제일 잘 알아. 그래서 네가 엉엉 울 때 흥분한 나머지 좀 심하게 대한 것도 사실이니까, 어색해하지 말고 내가 해주는 거 다 받아 챙겨.”

에녹은 까만 머리카락을 슥슥 빗어내려 주며 속삭였다. 수줍음인지 민망함인지 정난우의 눈가가 한 꺼풀 더 붉어졌다. 그러면서도 쭈렷쭈렷 웃는 걸 보니 심장이 얼얼해져 왔다.

가볍게 들숨 한 움큼을 집어삼켰다. 짙은 향이 빠르게 뇌혈관을 돌았다. 그게 정난우가 색을 알기 시작해서인지, 흠뻑 빠진 제 눈의 콩깍지가 더 두꺼워져서인지는 구분하기 어려웠다.

끈끈한 시선 아래 꽉 갇힌 정난우가 조금 당혹한 표정으로 물었다.

 “저기, 에녹…… 우리 더 안 하는 거 맞죠?”

 “긴장하지 말라니까. 제대로 풀었으니까 내일 밤까지 또 참을 거야.”

정난우는 허벅지에 밀착한 그의 딱딱한 아랫도리가 조금은 불안했다. 침대 위에서 하는 말 믿지 말라고 했는데, 저렇게 장담하니까 믿어도 될 것 같기도 하고, 조금 헷갈렸다.

 “체력이 좋네요. 신기할 정도로…….”

 “체력도 좋고, 정력도 끝내주지, 내가. 테크닉은 말할 것도 없고.”

에녹은 시원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일어나 정난우의 몸을 뒤집었다. 허벅지를 깔고 앉아서 척추 아랫부분부터 꾹꾹 눌렀다. 정난우는 늘 이쯤에서 힘겨워했다.

 “윽…간지럽…….”

 “안 돼. 등허리는 꼭 풀어야 되니까 간지러워도 참아.”

에녹은 단호하게 말하고는 척추를 따라 위쪽으로 꼼꼼하게 지압해 나갔다.

 “아…저 진짜 괜찮은…흐으…아……!”

정난우는 몸을 바들바들 떨며 연신 자지러졌다. 손바닥 안에 만져지는 근육들도 날 생선처럼 팔딱팔딱 뛰었다.

 “아아…빨리 좀…….”

 “알았다니까. 유혹하는 거 아니면 나도 힘드니까 자제 좀 해.”

정난우는 얼른 입을 닫았다. 하지만 끙끙거리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었다. 뒤틀리는 몸도 통제를 벗어나 제 멋대로였다.

에녹의 미간에도 열 섞인 주름이 짙어졌다. 앓는 소리 들으니 저도 자꾸 숨이 가빠 오르는 거다.

이러다 또 사고치지 싶어서 에녹은 빠르게 마사지를 끝냈다. 몸을 다시 뒤집어 주자 정난우는 가볍게 색색거렸다. 후희 뒤에 찾아오는 나른함이 상기된 얼굴 위에 언뜻 서렸다

에녹은 복잡한 심경으로 슬쩍 미간을 좁혔다. 그리고 수도 없이 세뇌시킨 질문을 또 던졌다.

 “누가 이렇게 네 몸에 손대면 어떻게 해야 된다고?”

정난우는 감성만큼이나 감각도 예민했다. 제가 귓속에 쏟아 붓는 신음 소리에도 끈적끈적한 애무에도 일일이 반응해 떨어댔다.

안고 있는 제 입장에서야 황홀할 지경이지만, 다른 놈들도 그 냄새를 맡고 꼬이는 건 아닐까 못내 불안한 심정은 어쩔 수가 없는 거다.

 “피하라고…….”

 “이렇게 올라타면?”

 “거기, 차 버리라고.”

정난우는 착실하게 입을 벌려 대답했다. 그래도 영 마음이 안 놓이는지 내려다보는 그의 눈이 조금 어지러웠다. 강박적으로 되풀이해 묻는 그의 내심이 피부에 스며오는 듯했다.

 “나, 못 미더워요?”

 “조금 그래. 넌 사람들 의심도 안 하고 말을 너무 잘 들으니까. 뭣보다 너보다는 다른 음흉한 놈들을 더 못 믿겠고.”

에녹은 솔직하게 제 속을 뒤집어 까 보였다. 정난우는 물끄러미 올려보다가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 가만히 흔들자 그가 의아한 표정을 짓더니 얼떨결에 한 손을 내 주었다.

매트리스를 짚은 한쪽 팔로 그의 묵직한 체중이 옮겨갔다. 육감적인 팔의 근육들이 팽팽하게 부푼 채 꿈틀거렸다. 정난우는 훔쳐온 그의 손에 새끼손가락을 가져다 대고 꽉 얽었다.

 “무슨 말 하는 건지 알아요. 처음엔 잘 몰랐는데, 이젠 알겠어요.”

열렬히 바라보자 그의 눈가가 꿈틀했다. 미세하게 흔들리는 그의 눈동자에도 제 안에서 일렁이는 작은 불꽃이 옮겨가 붙었다.

 “다른 사람이 못 만지고, 못 올라타게 약속할게요. 그러니까…….”

정난우는 열은 긴장으로 타 들어가는 입술을 혀로 축였다. 그리고 용기 내서 차분히 뒷말을 엮었다.

 “에녹 역시 다른 사람은 안 만졌으면 좋겠어요. 나한테 그랬던 것처럼 뜨겁게 만지고 안게 해 달라고 조르고 그러면 나도 슬플 것 같아요. 나하고만, 이렇게 있어요. 욕심내 달라고 했으니까 나 이런 말 해도 되는 거 맞죠?”

그는 꽤 오랫동안 침묵했다. 후끈한 정적이 안개처럼 사위를 둘러쌌다. 표정이 사라진 얼굴에서 그의 파르스름한 안광만이 도깨비불처럼 일렁거렸다.

긴장과의 사투가 시작될 무렵, 그의 눈동자가 아주 느리게 움직였다. 불길 같은 시선은 미끈한 동선을 그렸다. 눈, 코, 입술, 이마, 뺨, 어느 한 곳 빠짐없이 물고 늘어졌다.

얼굴은 점점 달아오르고 간질거렸다. 괜스레 숨이 차올랐을 때 쯤 종착역이 정해졌다. 다시금 눈이 마주치고, 몇 초 뒤 그가 돌연 몸을 일으켰다. 꽉 쥐고 있던 손가락도 자연스레 풀렸다.

그는 침대가 딱 붙은 벽에 등을 기대앉았다. 무릎을 굽혀 두 팔을 헐렁하게 걸친 그가 느리게 고개를 돌렸다. 비스듬히 떨어진 눈길은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배회하다 결국 허공에 내던져졌다.

그의 옆얼굴은 조각처럼 미려했다. 창백한 조명이 가파른 콧날 위로 미끄러졌다. 하염없이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가 문득 제 머리카락을 험하게 쓸어내렸다. 그리고 낮게 잠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 지금 완전히 녹아웃이야.”

에녹의 뺨에는 희미한 열기가 번져 있었다. 미묘하게 비틀린 입술은 웃는 듯 짜증내는 듯 아리송한 곡선이었다.

 “대답은 해 줘야겠고, 그런데 당장 내 속 다 털어내면 다시 짐승이 될 것 같으니까 오 분만 대기해.”

아장아장 잘 따라오다가 꼭 이렇게 한 번씩 치명타를 날린다. 사람 정신 못 차리게.

 “알았어요. 오 분.”

짧은 대답 뒤 정난우가 조용했다. 시선도 느껴지지 않았다. 힐긋 살폈더니 벽시계를 빤히 주시하고 있었다. 표정은 자못 진지했다. 초 단위로 5분 정확히 재고 있을 기세였다.

무거운 한숨이 폐 깊숙한 곳에서 끓어 올라왔다. 에녹은 망연히 정면의 허공에 시선을 붙박았다. 맘속으로 시답잖은 음모론을 제기했다.

쟤 이상해. 모든 게 다 함정 같아. 진짜 이상하다고.

정난우는 저를 돌게 하려고 조물주가 특별 맞춤제작을 한 게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럴 수는 없었다. 저 녀석이 작정하고 휘둘러대면 저는 여생을 호구로 살다 갈 거다. 그리고 죽는 순간까지 제 놈이 호구로 살았음을 조금도 깨닫지 못하겠지.

열 섞인 현기증에 에녹은 이마를 한 번 거칠게 쓸어 올렸다. 맘 같아서는 다시 홀랑 벗겨서 한 입에 심키고 싶었다. 잔뜩 부은 구멍에 제 걸 구겨 넣으며 ‘여기로는 당연히 나만 받아야 되고’ 따위의 기타 등등 음탕한 말을 속삭이고 놀면 극락이 따로 없을 거다. 이 지경으로 안달하는 제 속내가 어이없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그렇게 대답을 듣고 싶으면 기다릴 게 아니라 조르면 된다니까. 와서 슬쩍 키스라도 한 번 해 주면 내가 그냥 녹아내릴 거 아냐. 미련하기는.”

에녹은 괜히 날 선 핀잔을 늘어 놨다. 정난우가 곧바로 상체를 일으켰다. 따가운 시선이 옆얼굴에 느껴지자마자 얼른 한 손을 뻗어 제지했다.

 “아니. 지금은 안 돼.”

 “…왜요?”

맹한 질문에 에녹은 앓아눕고 싶었다. 사납게 머리를 헝클었다.

 “왜긴 왜야. 내가 지금 위험하니까 그렇지.”

정난우는 빨갛게 된 에녹의 귓바퀴를 말끄러미 보다가 다시 시계를 올려다보았다.

2분 남았다. 1분 59초, 1분 58초…….

기다림은 의로운 건 줄 알았다. 이별을 맞이하기 직전에 오는 적응의 시간이었다. 그렇게 애타게 잡고 싶었던 이들은 돌아와 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바보처럼 포기가 안 돼 끝끝내 기다리다가 결국엔 홀로 남겨지는 거였다.

이 낯선 설렘은 에녹이 가르쳐 준 거였다. 다른 이들과는 다르게 그는 이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달콤한 보상을 건넬 거니까.

5초. 4초. 3초, 2초, 1초. 됐다.

정난우는 에녹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오 분 됐어요, 그렇게 말하려고 입을 벌렸을 때였다. 어둑한 그림자가 해일처럼 덮쳐왔다. 나가는 것보다 들어오는 게 먼저였다.

말캉한 살덩이가 허겁지겁 침략해 들어왔다. 그의 커다란 두 손이 얼굴을 아플 정도로 감쌌다. 뜨거운 숨결이 인중과 안쪽 점막을 무참히도 짓뭉겠다. 고개가 뒤로 꺾였다.

무릎걸음으로 선 그는 위에서 찍어 누르듯이 키스했다. 야만스럽게 움직이는 혀가 온갖 군데를 들쑤셨다. 강하게 빠는 힘에 입술은 얼얼했다. 초점 흐린 차가운 눈동자가 탁하게 풀어진 채 섬광 같은 시선을 쏘아 보냈다.

그가 고개를 꺾어 더 깊이 파고들어왔다. 갈고리처럼 휜 혀는 입천장을 긁어내고 볼 안쪽의 살점을 비볐다. 흡, 목구멍에 고인 타액을 힘겹게 삼켰다. 젖은 마찰음에 쭈뼛거리는 등으로 소름이 달렸다.

어수룩하게 꿈틀거리는 혀를 그가 세차게 빨아들였다. 그의 잇새로 쑥 밀려가 쭉쭉 빨렸다. 헐떡이는 호흡이 점차 위험수위 아래 넘실거렸다.

몸이 뒤로 훌쩍 넘어갔다. 탄력 있는 스프링에 얽혀 있는 몸뚱이들이 함께 출렁거렸다. 그가 밀어낸 건지 제가 무너진 건지 구분이 안 됐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두 번째로 잔뜩 뒤엉킨 타액을 받아 삼켰을 때였다. 휘몰아치던 뜨거움이 빠르게 한 뼘 물러났다.

정난우는 한껏 입을 벌린 채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흐리멍덩한 시야에 그의 야성적인 눈빛이 궤적을 남기며 가까워졌다.

그는 무너지듯 얼굴을 어깻죽지에 묻어 왔다. 헐떡이는 리듬이 그의 근사한 등을 가파르게 오르내렸다.

예민한 고막엔 그가 내뿜는 신음 섞인 숨소리만 진득하게 고여 들었다. 그의 구부러진 등과 닿지 않은 가슴이, 마치 거대한 늑대의 습격을 맞닥뜨리고 있는 것 같았다.

 “안 해. 참는다고. 이 까짓 거 충분히…….”

그의 알 수 없는 혼잣말들이 거친 호흡에 섞여 나왔다. 날뛰는 심장고동도 여전했다. 어쩔까 고민하다가 그의 등을 끌어안았다. 팔에 닿는 그의 등 근육들이 소스라치며 수축했다.

에녹은 몇 번 크게 숨을 들이켰다. 그리고 한참 후에야 말했다.

 “하나만 이해해 줘. 나 촬영할 때는 맘 없는 상대랑 키스도 하고 몸도 겹쳐. 그런데 그거 일이니까, 그 외에는.”

그의 목소리 끝이 헌 빗자루처럼 갈라졌다.

 “아무도 안 만지고, 아무도 안 올라타. 너한테만 쌀게. 진짜 약속.”

쇄골 위로 눅눅하게 흐트러진 숨결이 엉겨붙어왔다. 그가 흠씬 들이마실 때마다 몸 안에서 뭔가가 한 줌씩 그에게 끌려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그게 뭔지 고민해 볼 필요도 없었다. 아마도 마음일 테니까.

 “네. 약속.”

정난우는 다시 에녹의 손을 끌어와 새끼손가락을 꽉 여몄다. 세차게 뛰는 혈맥을 그렇게 나눠가졌다.

마지막으로 폐 속을 가득 채운 그가 상체를 세웠다. 날카로운 콧대 옆의 음영이 조금 깊어졌다. 그는 얽힌 손가락에 입을 맞췄다. 정돈된 호흡과 달리 그의 눈은 여전히 뜨겁게 타올랐다.

 “나 이번 영화 끝날 때까지 너 샌프란시스코 집 정리해.”

 “집을요?”

 “그래. 다 정리하고 오렌지카운티에서 같이 살자. 전에 집 가 봤잖아. 거기 지금 내가 틈나는 대로 가구 골라서 친구한테 들여놔 달라고 부탁하고 있어. 너 들어오면 명의도 나눌 거야.”

정난우는 조금 당황해서 고개를 흔들었다.

 “아뇨. 같이 사는 건 좋지만 명의 같은 건 딱히…….”

 “거절하기 전에 이유부터 물어야지.”

까짓 호구 좀 돼 주면 어떠냐 싶었다. 이렇게 정신 못 차리게 반하게 하는데 안 넘어가겠다고 버티는 게 멍청한 거다.

 “왜…….”

 “나중에 내가 뭐 섭섭하게 하거나 질리게 한다거나 그랬을 때, 잘 생각 해 볼 계기가 될 거야. 네가 나랑 헤어지려면 그 반의 권리를 팔아야겠지? 그걸 판다는 건 내가 사는 집에 네가 낯선 사람을 밀어 넣는 셈이고. 그럼 자연히 상상이 돼?”

정난우의 표정은 묘하게 찌푸려졌다. 그리고 천천히 눈이 커졌다.

에녹은 정난우를 일으켜 마주앉았다.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건성으로 쓱쓱 쓸어 넘겨주며 눈을 내리떴다.

 “그래. 네가 내 품에 다른 사람을 안겨주는 거라고. 그런데도 손톱만큼도 맘이 안 아프면 떠나는 거고, 아니면 좀 미워도 영영 같이 사는 거고.”

 “…….”

 “난 상상만 해도 속에서 천불이 나. 네가 나 말고 어떤 씹 새끼 밑에서 오늘 새벽처럼 운다고一”

정난우는 얼른 손을 뻗어 에녹의 입을 틀어막았다. 휘둥그레진 눈엔 화들짝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 거 생각하지 말아요, 까만 눈동자가 절박하게 뜻을 전해 왔다.

에녹은 뻗어나가려는 불쾌한 생각의 가지를 단번에 절단 냈다. 그리고 그 따끈한 손바닥에서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래. 그만하자.”

낮은 목소리가 울리자 정난우는 볼에 덴 듯 손을 거뒀다. 에녹은 불그스름해진 뺨을 살짝 꼬집어 흔들었다.

 “그러니까 잔말 말고 내 말대로 해, 알았지?”

너두 당당하게 서로에게 족쇄를 채우자고 하니 머리가 어지러웠다. 정난우는 맞잡은 손가락을 꿈지럭거리다가 슬쩍 물었다.

 “저기, 근데요…….”

 “왜. 또, 뭐.”

 “그거 제 재산으로 정식 양도 받기는 좀 힘들죠?”

 “…이게 날 뭘로 보고!”

에녹의 눈썹이 사납게 일어났다. 뺨 꼬집은 손에도 콱 힘이 실렸다. 정난우는 으앗, 하며 얼굴을 찡그렸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빼려다가 다른 손에 사정없이 붙들렸다. 퇴로가 막혔다.

 “너 내 앞에서 한 번만 더 돈 얘기 해. 침대에서 기어나가지도 못하게 만들어서 이제 공연도 다 말아먹게 해 버릴 테니까. 밥줄 다 끊겨 봐야 그런 소리 안 하지?”

잘못했어요, 정난우는 눈 꼬리에 찔끔 눈물까지 매달았다. 에녹은 쉽게 봐주지 않고 밀어붙였다.

 “그렇게 할 거야, 안 할 거야.”

 “하, 할게요. 아, 아니, 저기 생각할 시간을 좀……앗!”

 “아직도 정신 못 차렸어. 예스야, 노야. 그것만 말 해.”

 “할게요! 할게요!”

몇 번이나 반복해 듣고서야 에녹은 손을 뗐다. 정난우는 순식간에 벌겋게 변한 뺨을 빠르게 문질러댔다. 에녹은 그 꼴을 빤히 노려보다가 미간을 찌푸렸다.

 “어디 봐.”

그 언젠가와 같은 흐름이었다. 다만 그 때와 다른 게 있다면 그가 꼬집은 자리를 열심히 핥아줬다는 거다. 병 주고 약 주고. 좀 얄밉긴 했지만 정성스런 그루밍에 또 몸도 맘도 노글노글하게 풀어졌다.

 “그냥 잠자코 내가 주는 것들 받아 챙기라니까. 이것도 일종의 학습인데 왜 자꾸 고집을 부려.”

에녹이 낮게 한숨 섞어 말했다. 정난우는 해저에 심긴 미역처럼 몸을 흐느적거리다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

 “무슨 학습이요?”

 “대가 없이 주는 것만 하지 말고, 대가 없이 받는 것도 해 보라고. 다른 놈이 하는 말은 무조건 믿지 말고 의심도 좀 하고.”

 “…의심? 어떤 식으로요?”

정난우는 멀거니 눈만 껌뻑거렸다. 에녹의 한숨이 한층 깊어졌다.

 “적어도 너 그 지겹게 생각하는 ‘네 탓이야’ 같은 거. 더 멀리 가 보자면 ‘그런 건 하면 안 돼.’ 같은 것도 있고.”

 “……아아.”

 “아 씹, 생각하니까 또 열 받네.”

에녹은 조금 사나운 어투로 곧장 말을 이었다.

 “그래. 말 나온 김에 묻자. 너 시신경 수술 직후에, 눈이 다시 보이게 되면 가장 하고 싶었던 게 뭐냐고 물어봐 준 사람은 있어?”

정난우는 멍하니 대답을 못했다. 그럴 줄 알았다며 에녹은 이를 갈았다.

 “가고 싶은 데는 없었는지, 하고 싶었던 건 없었는지, 눈이 안 보였을 때는 못 했던 많은 것들이 있을 거 아냐. 그저 광장에 나가서 빼곡히 흘러가는 인간들만 구경해도 신기했을 때잖아. 평생 놀이공원 같은 데도 못 가봤을 거고.”

 “…….”

 “그런 거 안 해 봤어? 너 도대체 뭐 했는데?”

정난우는 느리게 과거를 되짚어 보았다. 떠올려 보려 애썼다. 그러나 아무리 샅샅이 파헤쳐도 딱히 인상적인 건 없었다.

 “유학 준비를…….”

오정수의 회사와 매니지먼트 계약을 하고 유학 준비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 외의 일상은 거의 같았다. 천지가 뒤집어지는 격변이라도 있을 것 같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정난우는 변명처럼 덧붙였다.

 “어머니는 기뻐하셨어요. 좋은 대학 가고 공연도 많이 하고, 제가 바라던 삶을 맘껏 살 수 있을 거라고…….”

 “그게 네가 바라던 삶이라고 네가 말한 적 있어?”

정난우는 또 한차례 말문이 막혔다. 물론, 그런 적은 없었다. 꿈이라는건 맹인의 닫힌 시야 너머 바라보는 별과 같은 거였다. 결국에는 가질 수 없는 것, 애초에 내 것이 아니었던 것.

 “너의 크리스는 뭘 했는데.”

에녹의 목소리가 살벌한 금속성을 품었다 서늘한 눈동자도 차츰 끓기 시작했다.

 “크리스는…….”

어머니도 강도영도, 심지어 오정수나 오정연, 그들 모두가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자신을 도자기 인형처럼 조심스레 대했다. 조금 급하게 걸을라치면 깜짝 놀라 품에 안기부터 했다.

 “제가, 제가 사람들한테 더 상처받을까 봐, 저는 더 이상 장님이 아니니까 모른다는 걸로 용서해주지 않는다고. 사람들은 그렇게 차갑고 냉정하다고…… 실수 같은 거, 하면 안 되고. 철저하고 완벽하게 보여야 얕잡아 보지 않는다고…….”

그래. 역시 그 새끼였다 이거지?

기가 찼다. 제 예감이 들어맞았음에도, 에녹은 먼지만큼의 희열조차 못 느꼈다. 그 놈이 정난우를 두고서 억압부터 가르친 거다.

그러니까 안 그래도 잔뜩 억눌려 살아왔던 녀석은 점차 조심스러워졌겠지. 조심스럽다 못해 과민하게 주위 반응을 살폈을 거고.

걸음마도 못 땐 애한테 마라톤을 시킨 꼴이다. 중간에 주저앉지 않으면 그게 오히려 기적이다. 어딘가 잔뜩 비틀린 놈이 같잖은 신 흉내나 냈으니,  정난우가 건강한 사고의 기반을 가질 수 있을 리가 없었던 거였다.

에녹은 모서리가 갈리도록 어금니를 사려 물었다. 잠시 그러고서 울분을 가라앉혀야 했다. 해서 독이 될 말은 안 하는 게 낫다. 에녹은 결국 반쯤 맘에도 없는 말을 혀끝에 실어 보냈다.

 “그 새끼 욕하는 거 아냐. 아예 잘못 됐다는 것도 아니고. 소중한 상대에게 애정을 쏟는 방식이나 지켜주는 방식은 모두가 다르겠지. 나 역시 내 생각을 강요할 생각은 없어.”

정난우는 마치 제가 죄 지은 것처럼 낯을 흐렸다. 에녹은 깨질 것 같은 턱을 한 손에 조심히 쥐었다. 초점 뭉개진 까만 눈동자를 찌르듯 들여다보았다. 반쯤 나가버린 혼을 제 안으로 불러들였다.

이윽고 다시금 완전히 눈빛이 마주쳤다. 에녹은 정난우를 끌어올려 제 다리 위에 앉혔다. 틈 없이 맨가슴을 맞댔다. 전해져오는 맥박은 완만히 빠른 곡선을 탔다.

 “지금도 안 늦었어. 내가 물어봐 줄게.”

한 뼘도 안 되는 거리에서 열은 숨결이 뒤엉켰다. 언제나 물기가 흐르는 까만 눈동자는 간헐적인 미동을 보였다.

 “뭐가 제일 하고 싶었어? 말만 해. 가고 싶었던 곳, 하고 싶었던 거. 다 데려가 주고 다 하게 해 줄게. 나 그 정도 능력 있어.”

에녹은 또 램프의 요정에 빙의되었다. 거창한 소원을 읊어 깜짝 놀라게 해 주고 싶었는데, 사실은 떠오르는 게 없었다. 다만 한 가지만 계속 뇌리를 맴돌았다.

어느 순간, 정난우는 흐리게 웃었다. 살짝 튀어나온 목울대가 몇 번이 침을 삼키느라 끄덕거렸다. 에녹은 제 가슴 속에서 피어오르는 건강한 고동을 전해주며 잠자코 기다려 주었다.

 “달려 보고 싶었어요.”

에녹의 눈시울이 살짝 벌어졌다. 그리고 몇 초 후, 풍성한 속눈썹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가시 같은 그림자 속에 갇힌 그의 바다 같은 눈동자에도 낮게 숨죽인 파랑이 스쳤다.

정난우는 담담하게 말을 이어 붙였다.

 “숨이 가빠서 쓰러질 만큼 전력으로, 뛰어 보고 싶었던 적, 있었어요.”

그 허름한 대답이 흉기로 돌변해 가슴을 사납게 갈랐다. 에녹은 그 쓰라린 통중을 능숙하게 제 안에 갈무리해 넣었다. 뺨을 맞붙이며 그 상처투성이 몸을 강하게 조여 안았다.

그래, 계속 생각해. 다 해 달라고 그래.

움찔거리는 귓속에다가 끝도 없이 뇌까렸다.

네가 그간 잃어버린 것들, 같이 하나하나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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