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logue
꼬마 정난우네 동네는 부촌과 멀었다. 빛바랜 헌집들이 무수히 꼬리를 물고 새카맣게 탄 어린아이들이 뛰어노는 작은 마을이었다. 낮은 건물들의 그림자에 잠긴 사람들의 정체된 일상에 작은 변화가 찾아온 건, 헌집 두 개가 헐리고 새 집이 지어지기 시작했을 때였다.
인부들이 벽돌과 목재를 나르며 낮에 뚝딱거리는 동안, 새 집은 어느 새 동네사람들의 관심거리가 되어 있었다. 점점 형태를 갖춰가는 골격은 2층 전원주택이었다. 뼈대 위로 살이 붙듯 시멘트가 발리고 창문이 달렸다. 지붕도 얹혔다. 내부공사가 끝났는지 담장이 섰고, 그 안쪽으로는 파릇한 나무가 심겼다. 몇 식구인지도 모를 새 이웃은 이사도 오기 전에 이미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날이 왔다. 동네 어귀에 용달차가 들어선 순간, 마을 사람들은 부산스레 그 소식을 여기저기 전했다. 동화처럼 예쁜 새 집의 주인이 이사를 오는 거였다. 생활고에 찌들려 아이들 학원도 맘대로 못 보내는 주부들도, 매일 놀이터에서 새카맣게 탄 얼굴로 놀기 바쁜 어린애 들도 단내 맡은 벌떼처럼 모여들었다.
사람들의 예상대로 용달차는 새 집 앞에 멈춰 섰다. 그 안에서 내린 남자는 작업복 차림의 용달기사였다. 그가 끈을 풀고 뒤쪽 프레임을 내리는 동안 승합차와 반짝이는 승용차 한 대가 그 뒤에 차례로 섰다. 인부들이 먼저 승합차에서 내렸고, 곧이어 승용차의 운전석이 열렸다.
집주인이었다. 건장한 체구에 이목구비가 또렷했지만 좋은 인상은 아니었다. 왼쪽 눈썹 옆에 길게 남은 흉터가 안 좋은 인상에 단단히 한몫 하고 있었다. 그는 운전석 문을 닫고 보조석으로 돌아가려 했다. 하지만 그가 막 당도하기도 전에, 보조석 문이 벌컥 열렸다.
그 안에서 무언가가 쏟아져 나왔다. 아니, 쏟아져 나오듯이 누군가가 튀어나왔다. 여자였다. 몇 달 내내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었던 그녀, 꿈같은 새 집의 안방마님이었다. 그녀는 품에 젖먹이 아이를 안고서 날듯이 뛰어갔다. 활짝 열린 대문이 순식간에 그녀를 집어삼켰다.
구경꾼들의 호기심 어린 눈동자가 일제히 얼어붙었다. 사람들의 시야에는 환상처럼 잠시 머물다 사라진 그녀의 잔상만이 어른거렸다. 어디가 아픈가?
털모자를 눌러 쓴 그녀의 목덜미는 잔머리 하나 없이 매끈하고 희었다. 얼굴은 핏기 없이 창백했고 입술은 귀기 어릴 만큼 새빨겠다. 흐느적거리는 긴치마 아래 언뜻 보인 발목은 바람 한 자락에 부러질 것처럼 가늘었다. 상체를 휘감은 파카는 낡고 두툼했다.
그날은 한여름이었다.
정적 속에서 그녀의 뒷모습을 시선으로 좇던 남편은 얼어붙은 구경꾼들의 호기심을 녹여줄 생각이 없어 보였다. 뒤따라온 청년 두 명이 형님형님 하며 굽신거리는 모양새에 그 누구도 말을 걸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리고 그날부터, 동네에는 발 없는 소문이 빠르게 퍼지기 시작했다. 남자는 건달이고 여자는 항암 치료를 견뎌낸 병자쯤으로 인식되어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남자는 늘 험상궂은 사내들과 어울려 다녔는데 서로를 부르는 호칭이 웬 살벌한 도구들이었다. 이를 테면 도끼라든지, 상칼이라든지, 뭐 미친개나 흑곰 같은 동물도 더러 있었다. 그게 아니면 형님이었다.
여자는 거의 두문불출했다. 마을사람들은 그날 본 괴이쩍은 외형을 확인하고 싶어 했지만 그녀는 외출을 하지 않았다. 식료품이나 생활용품은 모두 남자가 사 오는 듯했다.
마을사람들이 그녀를 겨우 볼 수 있게 되었던 건, 젖먹이였던 아기가 어린이집에 다닐 나이가 되어서였다. 평소에는 거의 남편을 따라다니는 사내들이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데려오고 했는데, 그게 여의치 않았는지 그녀가 집 밖으로 나왔다.
그녀는 이사 오던 날과 한 치의 오차도 없는 외형을 하고 있었다. 털 모자도 두터운 파카도 발목에서 하늘거리는 치마도 그대로였다. 어린이집의 노란 승합차를 기다라는 내내 여자는 매우 불안해 보였다. 새카맣게 빛나는 눈을 연방 허공에서 굴려댔다.
그리고 용기를 낸 학부모 한 명이 슬쩍 말을 걸며 팔을 건드렸을 때, 그녀가 갑자기 발작을 보였다. 찢어질 듯 울부짖으며 비명을 질러댄 거였다. 말 건 이는 혼비백산해 물러났고, 행인들은 그녀에게서 멀리 떨어졌다. 여자는 주저앉아 계속해서 울었다. 제 아들의 이름만 끊임없이 부르짖으며 온 몸을 떨어댔다.
잠시 뒤 노란 승합차가 정차하고, 그 안에서 아기들이 하나 둘 아장아장 걸어 나왔다. 땅바닥에 걸인처럼 앉아 통곡하는 그녀의 울음에 전염된 아기들은 덩달아 목청 높여 울기 시작했다.
엄마들은 얼른 제 아기를 찾아 품에 안고 그녀에게서 멀어졌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 자리를 떠나지는 않았다. 저열한 호기심은 각자 아이를 달래는 와중에서도 수그러들지 않았던 거다.
딱 한 명 울지 않고 서 있는 아기가 그들의 시선을 분산시켰다. 엄마를 닮아 희고 고운 얼굴, 엄마를 닮지 않은 단정한 머리와 표정의 사내아이였다.
어린이집 학부모들은 그 아이를 잘 알았다. 예쁘고 순하고 얌전해서 애들은 서로 그 애와 놀려고 다툰다고 했다. 그러나 학부모들은 정작 제 아이들에게 그 애와는 놀지 말라고 누차 당부했다. 그 자그마한 아이가 그 여자와 건달 사내의 아들이었기 때문이었다.
오도카니 선 채 한동안 그녀를 바라보던 아이는, 이내 종종걸음으로 다가갔다. 아이는 제 옷소매를 잡아 빼서 그녀의 눈물로 흥건한 얼굴을 조심조심 닦아냈다.
운동화 신은 아이의 자그만 발을 한쪽씩 꽉 쥐고 있는 그녀의 손은 바싹 마른 고목나무처럼 앙상했다. 그녀의 손등에 하얗게 불거져 나온 뼈는 이해할 수 없을 만큼 처절하고 필사적이었다.
아이는 고사리 같은 두 손을 뻗어 제 엄마의 얼굴을 가슴에 품었다 헝클어진 머리를 그 작은 가슴에 기대고. 여자는 정말 슬프게도 울었다.
「난우야…… 난우야…….」
그녀가 바로 꼬마 정난우의 엄마였다. 정난우는 아무 말 없이 그렇게 제 엄마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엄마를 안아주기만 했다. 지켜보던 학부모들은 어린애 같지 않은 아이의 표정이 소름끼친다고 수군거렸다.
바람이 들춘 치맛자락 아래 훤히 드러난 그녀의 다리는 빨갛고 푸르스름한 멍이 가득했다. 눈물 젖은 얼굴로 아기를 품에 안아 쫓기듯이 집으로 향하는 그녀의 뒷모습에 대고, 사람들은 미친 여자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그녀의 집에 들이닥친 비극에 대해 정확히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저 어느 날 갑자기 다시 이사를 가던 식구가 둘로 줄어 있음에 소문만 무성했을 뿐이었다. 떠나가는 이들 속에 여자는 없었다.
눈에 띄게 수척해 진 남자의 얼굴에는 절망의 냄새가 가득했다. 몇 날을 정리하지 않아 덥수룩해 진 턱과 지저분한 차림새는 부랑자처럼 보였다.
아들을 먼저 차에 태운 남자는 다리를 절고 있었다. 틈만 나면 찾아왔던 험상궂은 사내들도 언젠가부터 보이지 않아, 건달 짓이나 하던 남자의 일이 틀어진 게 틀림없다고 사람들은 숙덕거렸다.
보조석에 안전벨트를 매고 얌전히 앉은 아이는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었다. 그리고 몇 년 동안 제가 살았던 집을 계속 뒤돌아보았다. 차는 서서히 출발했다. 탐스러운 검은 머리카락이 오전 햇살 속에 물결쳤다. 멍하니 돌아보는 그 시선이 너무나 아파, 마을 사람들은 차마 그 자리에 오래 서 있을 수가 없었다.
어린 것이 벌써부터 눈물 참는 법을 배웠어.
구멍가게 노파가 한숨 속에 실어 보낸 말이었다. 허공에 부유하던 점잖은 책망의 잔여물들이 사람들의 가슴에 끈덕지게 엉겨붙었다.
미친 여자의 아들이라고 어린이집에서 강제로 아이를 쫓아낸 공범자들의 맘속에 죄책감이 싹텄다. 그러나 그 누구도 입 밖에 내 인정하지는 않았다. 그녀의 가족들은 오염되어 있었고, 그들은 그것들을 제 울타리 내에 방치되어 있도록 바라지 않았을 뿐이었다. 주민들은 그렇게 스스로를 합리화했다.
병든 가족들이 사라진 이후, 사람들은 빠르게 그네들을 잊어갔다. 그녀의 괴기스러웠던 외형도, 남자의 폐인 같던 몰골도, 고운 아이의 물기 어린 눈동자도.
그들이 여자와 아이를 본 건 손에 꼽을 정도였으니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 그래서 꼬마 정난우가 훗날 브라운관과 지면 가릴 것 없이 무수히 얼굴을 비추는 동안, 그들은 단 한 명도 그의 모습을 과거 저들의 동네에 살았던 아이와 겹쳐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