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5화 (36/37)

 35.

 계단 옆 벽면을 가득 메운 인등(引燈)이 노르스름하게 빛나고 있었다. 뱀 신이 새겨진 금향로에서 올라오는 연기가 인등의 빛을 담고 너울거리다가 제실 안에 퍼졌다. 뱀 신의 신상이 새겨진 제단 앞에서 한 여인이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신께 기도를 드리고 있었다.

 황태후였다.

 황자의 발인의식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그녀는 최선을 다해 신께 그 자그마한 아이를 잘 부탁드린다며 기원을 드리고 있었다. 사실 그렇다고 말만 들었을 뿐, 그런 그녀를 등뒤에서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는 제아겸은 그녀가 진실로 그런 생각을 하며 기원을 드리고 있는지 진심으로 의아했다.

 사실 그녀는 아무 생각을 하지 않는 게 아닐까. 자신 말고 관심이 있기는 과연 있을까, 의문이었다.

 화려하게 치장한 황태후가 마침내 기도를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짤랑짤랑, 그녀의 머리며 옷에 달린 보석 장신구들이 서로 부딪혀 청명한 소리를 냈다. 제아겸과 눈이 마주치자 그녀가 생긋 웃는다.

 “어째 요새 뒤숭숭한 일만 자꾸 일어나는 것 같습니다.”

 “.......황태후마마의 말씀대로 그런 것 같습니다.”

 그 뒤숭숭한 일들을 대체 누가 다 꾸민 일인지 제아겸은 알고 있었다. 허나 눈앞의 여인이 알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눈앞의 여인이 그의 정체를 알게 되면 무어라 소리치며 성을 낼지 알 수 없었다. 여인이 아무리 아름답게 치장하고 곱게 옷을 차려 입어도 제아겸은 그녀의 본 성질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 나라에 정녕 잘 어울리는 여인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

 “허면 나머지 날에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예.”

 예를 올리고 그는 미끄러지듯 제실을 빠져 나가는 여인의 뒤를 따라 갔다. 보후전 제실을 막 나와 접객실까지 왔을 때였다. 기다렸다는 듯이 갑자기 한 여인이 쪼르륵 달려 나와 태상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 말을 들은 태상의 얼굴이 살짝 굳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습니까?”

 여인이 의아한 얼굴을 지으며 묻자 제아겸은 곧 ‘아닙니다.’ 대답하며 고개를 내저었다.

 “그냥, 사람이 찾아왔다 알리는 소리였습니다.”

 “사람이 찾아왔는데 큰 소리로 고하지 않고, 태상께 그리 고하십니까.”

 “제가 큰 소리를 내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마마.”

 최대한 태연하게 대답하며 제아겸은 ‘어찌해야 하나.’ 고민을 했다. 하필이면 이때에 찾아올 게 무어람, 허나 최근에 큰일이 많았던 이였다. 그러니 이전처럼 두문불출하지 않고 자주자주 찾아주는 걸 좋아해야 할지 모른다.

 게다다 하고 다니는 양이 아슬아슬해서 지켜보는 이로서 걱정이 안 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곁에 오래 있어주지는 못하지만 이런 식으로 자주자주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안심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잘 찾아왔다, 잘 못 찾아왔다.’에서 고른다면 당연 ‘잘 찾아왔다.’였다.

 허나 역시 황태후와 함께 있을 때에는 좀 피해주면 좋으련만.

 “그럼 새 손님도 오셨다니, 저는 이만 돌아갈까 합니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그러나 그런 기색이 드러날까 감정을 꾹 억누르며 제아겸은 ‘알겠습니다.’하고 평탄한 어조로 대답했다. 그런 제아겸을 태후가 방긋이 웃으며 쳐다보다 이내 자신의 시중을 드는 궁인들을 불러 나갈 채비를 하였다. 태후처럼 꽃같이 치장한 궁인들이 우르르 태후의 곁으로 몰려들었다.

 황자가 숨을 거두었다. 해서 궐내의 사람들이 예장 기간 동안은 새까맣고 칙칙하며 단정한 장례복으로 갈아입고 있었다. 그에 아랑곳없이 평소처럼 환한 옷치장에 제아겸은 눈살을 찌푸렸다. 황태후가 매일 빠지지 않고 황자의 명복을 비러 이 수안궁에 오고 있지만 실상 아무래도 상관없으며 그저 할 일없이 소요하기가 지루하여 방문하는 것이라는 게 잘 드러나는 옷차림이라고 할 수 있었다.

 황태후의 화사한 옷차림은 가는 곳마다 화제였으나 아무도 그녀에게 무어라 하지 못했다. 하다못해 귀비도 ‘옷이 참 아름답지 않습니까. 이번에 새로 산 옷이오.’라고 황태후가 물어도 ‘아, 네.’하고 겁에 질린 얼굴로 대답을 하는 판이었다.

 궐내에 사는 자들은 궐 구석구석까지 미치고 있는 황태후의 권력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

 보후전을 나와 궁 후원을 지나칠 때였다. 이미 왔다는 이야기를 홍이가 벌써 들어버렸는지 그녀가 모든 몸단장을(그래봤자 예장기간이라 옷깃을 잘 여미고 머리를 단정하게 한 데에 그쳤지만) 하고 제아겸을 기다리고 있었다. 보후전에서 나오는 제아겸을 보고 홍이가 환히 웃었다가 이내 황태후를 보고 그 웃음이 쑥 들어가 결국 나무 뒤에 숨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황태후가 ‘저 아이는?’하고 묻는다. ‘전에 주웠다던 그 아이입니다. 궐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어 예법에 서투릅니다.’ 황태후가 홍이에게 관심을 거두기를 바라며 제아겸은 답했다. ‘오호라, 그 빨리 죽는다던 아이.’ 그것만은 용케 기억하고 있었는지, 황태후가 고개를 끄덕이며 홍이에게서 시선을 치운다.

 그리고 그녀는 나지막하게 중얼거렸다.

 “아이를 낳고 죽으면 좋으련만.”

 “예?”

 “모처럼 여인의 몸으로 태어났는데, 자기를 똑 닮은 아이라도 남기고 죽으면 짧은 인생이라도 후회 없지 않겠습니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 그만.”

 누군가 잘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예전에 아이를 낳지 못했던 황태후를 떠올리며 ‘아, 그러시구나.’하고 고개를 끄덕일 이야기였다. 허나 설마 그녀가 그럴 리가. ‘이전’까지는 어쨌는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그녀는 전연 그런 데에 미련이 없었다. 당연하지 않은가.

 현재 그녀는 자신의 배로 낳은 아이가 없는데도 불구하고 당대 최고의 권력을 누리고 있음이었다. 왕의 아이를 갖는 것이 곧 궐 여인들의 권력의 척도라면, 그녀는 그런 척도에서 한참을 벗어나 있었다. 그녀에게 아이는 필요 없었다.

 그러므로 저 말 또한 아이를 낳지 못한 자신을 생각하며 한 말이 아니리라. 그냥 저 말은 단순히 ‘생산성’의 문제였다. 상당히 모욕적이고 오만하며 저급한 말인 것이다.

 “아이가 아직 어리지 않습니까?”

 “요새는 아이가 어려도 아이를 가질 수도 있다고 하더이다.”

 “.......가뜩이나 몸이 약한 아이라, 아니 될 말씀입니다.”

 태상이 딱 잘라 말하자 황태후가 ‘어머!’하고 웃는 낯으로 놀란다.

 “저는 그냥 그렇다는 것이지, 저 아이를 어찌 하겠다는 소리가 아니었습니다. 저도 그냥 생각만 해 보았을 뿐입니다. 안 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지요. 암, 그렇고말고.”

 “.......”

 “태상께서 허락을 해주시지 않으신다면 저 또한 수안궁에 손을 댈 생각이 전연 없습니다.”

 생긋 여인이 웃으며 태상을 돌아보았다.

 “그렇게 하도록 하기로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지요.”

 입 안에 쓴 맛이 맴돌았다. 어느새 수안궁에 다다라 그 입구의 가까이까지 왔다. 황태후가 ‘그럼 후에 다시 뵙겠습니다.’라고 말했고 태상 또한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았다. 수안궁을 나서다 말고 황태후가 태상을 돌아보며 ‘저 이가 그 손님입니까?’라고 묻는다. 해서 태상은 발을 옮겨 황태후가 가리키는 쪽을 보았다.

 연서강이 황태후와 자신을 보고 놀란 눈을 하고 있었다.

 “.......네.”

 못 본지 며칠밖에 안 되었는데 그새 또 얼굴이 상했다. 실시간으로 몸을 해쳐가는 게 이리 눈에 잘 보이는데 걱정이 어찌 안 될 수가 있나. 자신도 알아볼 수 있는 것을 홍이가 모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아프고 고통스러운 이를 억지로 자리에 앉혔다가 맛난 것을 먹이고 침상에 눕혀 자장가를 불러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변방이었다면 그게 가능했을 지도 모른다. 감시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자신도 마음껏 그에게 참견할 수 있었을 터인데, 허나 여기는 수안궁. 궐 내부였다.

 궐내에서 자신은 수안궁에 스스로 갇힌 채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약조했다.

 바로 눈앞의 여인과 약조한 일이었다.

 연서강의 시선이 황태후를 따라가는 것이 보였다. 궁인 중 하나가 ‘무례하다, 태후마마이시니!’하고 호통을 치자 겨우 그가 당황해하며 ‘죄, 죄송합니다.’하고 고개를 숙인다. 보기 드물게 인자한 미소를 띠며 태후가 ‘되었네.’하고 분노하고 있는 궁인을 말렸다. 그리고 연서강을 힐끗 바라 보며 ‘궐내에 들어 온지 얼마 안 되어 보이는데 모를 수도 있지 않느냐.’ 중얼거린다. 황태후마마의 행렬이 주르륵 미끄러지듯 수안궁을 빠져나갔다.

 그리고 연서강은 다시 고개를 들어 그 뒷모습을 말끄러미 바라보는 것이었다. 마치 뭔가에 홀린 듯한 눈이었다.

 “연서, 연서?”

 제아겸이 불러도 못 듣는 것처럼 보였다. 결국 부르는 것을 포기하고 제아겸은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의 눈앞에다 팔랑팔랑 제 손을 흔들어 보였다. 그제야 연서강이 ‘핫!’ 놀라며 시선을 거둔다.

 “제태상.......”

 언제 자신의 곁으로 왔는지도 모르는 눈치였다.

 “왜 그런가.”

 그러자 또 연서강이 황태후가 사라진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순간, 머릿속에서 말이 들렸습니다.”

 “말?”

 연서강이 인상을 썼다. 날이 많이 써늘한데도 그의 이마에는 땀이 송송 맺혀 있었다. ‘자네, 어디 많이 아픈 것 아닌가?’ 제아겸이 물었지만 연서강은 대꾸하지 않았다. 다만 신음과도 같은 목소리를 길게 흘리다, 이내 부들부들 떨었다. ‘자네?’ 제아겸이 의아해져 연서강을 한 번 더 불렀다.

 연서강이 입을 열었다.

 “저 여자다!! 하고.”

 “......”

 “말이 들렸습니다.”

 제아겸은 미간을 좁혔다. ‘저분은 황태후마마이시네.’ 황태후마마, 하고 연서강이 입술을 달싹였다. 어딘지 멍하고 얼이 빠져 있는 모습이라 제아겸의 표정은 점점 더 안 좋아졌다.

 “연서, 자네 무슨 일이 있었나?”

 “.......”

 “참. 기연조가 비교적 근처에 있는 지역으로 간 것은 아나? 성남지역이라네.”

 그나마 그의 관심을 끌 만한 화제가 무어가 있을까, 해서 노심초사하며 꺼낸 말인데 다행이랄지 불행이랄지 연서강은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황태후마마, 하고 한 번 더 말을 중얼거릴 뿐이었다.

 저 분이 황태후마마.

               * *

 여름이 다 지나갔기에 수안궁에서 내오는 차도 따뜻한 것으로 바뀌었다.

 저번에 왔을 때에는 연서강이 사온 차로 내왔었고, 이번에 내오는 차는 국화차였다. 수확제가 열리는 것으로 계획이 세워지고 언제 열린다고 공포가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수안궁으로 선물로 들어온 차였다. 가을 햇 국화를 따다가 공기 좋고 청량한 바람이 불어오는 들판에서 소중히 그 꽃잎을 말려서 만든 국화차였다.

 연서강이 오기 전에 이미 수안궁 식구들과 함께 시음한 적이 있었는데 그 그윽한 국화 향과 함께 더할 나위 없이 깔끔한 뒷맛, 또한 은근하게 느껴지는 단 맛에 마신 사람들 전부가 좋아한 상등품 차라고 할 수 있었다.

 다만 그때 불만을 표한 사람은 홍이 한 사람일 뿐, 그녀의 감상도 ‘다 좋은데 .......아리는 마시기 싫어할 것 같아요. 생선차나 닭다리차는 없나요?’였다. 그 이후로 뭔가 거창한 이름이 붙어 있었던 것도 같은 국화차는 닭다리차로 불리고 있었다.

 “차, 드시게.”

 청화 백자 잔에 국화차를 따르고 제아겸은 연서강의 앞에 그 잔을 두었다. 몽글몽글 새하얀 김이 올라오는 차는 보기만 해도 무척 뜨거워보였다. ‘향이 좋습니다.’ 연서강이 의례적인 말인 듯, 감상인 듯 애매모호한 말을 해서 제아겸이 ‘그렇지.’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

 그가 조심스레 차를 식혀 한 모금 들이킨다. 그것을 제아겸은 숨을 죽인 채 바라보았다. ‘어떤가?’ 다 마시고 나서 감상을 물으니 연서강이 당황한 듯 웃으며 ‘괜찮습니다.’라고 아주 평범한 감상을 내렸다.

 “금번에 들어온 차(茶) 선물 중 이게 가장 좋은 듯 하네.”

 ‘그리고 저번에 들어온 차 선물 중에는 자네의 차가 가장 좋고.’ 뭔가 ‘너도 옳고 나도 옳다’라는 결론처럼 보여 연서강이 웃었다. ‘뒷말은 진심이 아닌 듯 합니다?’

 “헌데....... 황태후마마께옵서 수안궁에 오시고 계셨군요.”

 기분 좋게 향이 좋은 차에 대한 화제로 계속 이야기를 하면 좋으련만, 아무래도 그렇게는 안 될 듯 했다.

 제아겸이 다소 시큰둥한 얼굴로 ‘뭐, 그렇지. 근래에 안 좋은 일이 많지 않은가.’라고 대꾸했다. ‘별로 안 좋아하신 듯 합니다?’

 현재 자리에는 황태후가 부재중이기 때문에 솔직하게 좋고 싫음을 표시할 수 있었다. 방금의 자리에서는 그것조차 내색하지 못해 얼마나 괴로웠는지. ‘그렇다고 볼 수 있네.’하고 냉큼 대답했다. ‘사실 궐내에서 내놓으라는 권자들은 다 좋아하지 않고 있으니, 별 의미 없기도 하지만.’

 “황후마마께옵서도 다녀가셨다고 들었습니다.”

 “아, 오시고 계시지.”

 “두 분이 마주친 적은 있습니까?”

 “가끔은, 그럴 때면 은근 공기가 얼어붙어 별로 내키지 않네.”

 “두 분의 사이가 좋지 않으신가요?”

 “좋은 것은 아닌 게 분명하지. 황후마마를 추천해주신 분이 현 황태후마마로 알고 있네. 허나 귀비마마를 추천해주신 분도 또한 현 황태후마마시지. 그래서 분위기가 미묘하다네. 자네에게 따로 왜 미묘한지 설명은 안 해도 되겠지?”

 연서강이 입을 다물고 잠시 생각에 빠진 듯 했다. 거기에 제아겸은 탁자 위를 손가락으로 두드렸다. 그리고 연서강이 입을 채 열기 전에 제아겸이 먼저 선수쳐서 입을 열었다.

 “.......정치에 대한 이야기는 이만 그만 하고 싶네.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으러 오는 것이면 굳이 수안궁에 오지 않아도 된다네. 무언가, 조사하는 것도 아니고. 자네의 부친이나 형님께서 시키시던가?”

 “아니요. .......죄송합니다.”

 자신 역시 너무 많은 이야기를 물어봤다고 생각했는지 연서강이 금방 수긍하며 사과해왔다. 허나 완전히 이야기가 끝난 것은 안니 것 같았다. ‘다름이 아니오라.’하고 그가 백자 잔을 손가락으로 매만지며 입을 연다.

 “이상한 꿈을 꿔서.”

 “이상한 꿈?”

 연서강이 고개를 끄덕이며 미간을 좁혔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예전에 변방에서 있었던 일인 듯도 하고.”

 “흠.”

 아직도 그 기억을 꿈으로 꾼단 말인가. 침음하며 제아겸은 팔짱을 꼈다. 제아겸으로서는 연서강이 변방에서의 일을 계속해서 꿈으로 꾼다는 이야기가 썩 달갑지 않았다. 당연했다. 변방에서의 일이라면 예의 그 구덩이에 떨어진 일이지 않겠는가. 뱀 신님이라고 추정되는 백사가 나오는 꿈은 안 꾸는 게 좋았다.

 불길했다.

 “.......혹시 태상경께서는 되돌아 온 자를 저만 보신 게 아니지 않습니까?”

 두연 묻는 말에 제아겸은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곧 표정을 수습했지만 이미 허를 찔린 후였다. 제아겸이 인상을 쓰며 되물었다. ‘왜 그리 묻나?’ 연서강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그냥 저를 대하는 말이나 행동 등이 저 같은 자를 한 번만 본 게 아닌 듯 했습니다. 그래서 물어봤으니, 너무 신경 쓰지 마십시오.“

 제아겸의 머릿속을 순간 스쳐지나간 장면은 바로 방금 수안궁 입구에서 있었던 일이었다. 황태후마마를 유심히 보던 연서강 말이다. 그때, 이름을 불러도 모를 정도로 정신이 팔린 채 보고 있지 않았나.

 “.......황태후마마는 왜 그리 보았나?”

 연서강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답했다. ‘머릿속에서 그냥 목소리가 울려서 보았었습니다.’

 “그 여자다, 하고.”

 “.......”

 제아겸이 입을 다물었다.

 “아, 그러고 보니 꿈의 내용이 그랬던 것 같습니다.”

 “무엇이?”

 제아겸이 그를 보고 묻자 연서강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백사가 ‘그 망할 연놈들이 제멋대로 맺은 약속 때문에 근 스무 해가 넘도록 지루하였도다.’라고 말하는 꿈이었습니다.”

 제아겸의 표정이 굳었다. 그는 말을 읊는 연서강을 믿을 수 없는 것을 보는 눈으로 쳐다보았다. 적갈색 눈동자에 혼란이 묻어나왔다.

 “심심하시다고, 저보고 실로 오랜만에 열리는 연회라고 하더군요.”

 “자네, 방금 내게 꿈 내용이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던 것. 거짓말이었군.”

 슬며시 웃으며 연서강은 찻잔을 매만졌다. 달칵달칵, 찻잔과 손톱이 부딪혀 소리가 났다.

 “아주 거짓말은 아니었습니다, 제태상. 실제로 여기 오기 전까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았습니다.”

 “허면.”

 연서강이 고개를 들어 제아겸을 바라보았다. 순간 제아겸은 자신도 모르게 눈살을 찌푸리고 말았다. 연서강이되 연서강이 아닌 것이 그 얼굴에 서려 있는 듯 보였기 때문이었다. 희미하게 위화감이 들었다.

 “방금 황태후마마를 보자마자 또렷이 기억났습니다. 저 여자다, 하고 소리쳤던 목소리가 .......꿈에서 들었던 것과 똑같다고요.”

 “자네.......”

 제아겸은 신음을 흘렸다.

 신을 가까이에서 모시는 자로서 신의 기적이라는 ‘신자’들을 보호하고 있기는 했지만, 사실 제아겸은 한 번도 신의 존재를 느껴본 적은 없었다. 권능은 남아있지만 실재가 없는 신. 그게 제아겸이 느끼는 뱀 신이었다.

 실재가 없다고 하나 그가 남긴 권능은 엄청난 재앙이라서 신자들이 얼마나 박해를 받고 또 괴롭힘을 당했으며 희생을 강요당했나. 뱀 신님이 실제로 계신다면 제아겸은 무어라 욕을 퍼부어주고 싶을 정도였다.

 그랬기에 제아겸은 연서강이 말하는 꿈의 실체가 진실로 신의 전언인 것인지 아니면 단순한 개꿈인 것인지 알 수 없다. 제아겸이 알 수 있는 것은 다만, 되돌아오는 자의 기운을 자신은 감지할 수 있다는 것이고 되돌아오는 신자들이 되돌려 보낸 시점에서 죽는다는 사실이었다. 연서강이 말하는 것은 그도 딱 잘라 말할 수 없는 미지의 것이었다.

 “해서 제태상 딱 하나 물어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무엇인가.”

 안타깝게도 꿈에서 느껴지는 불길함은 맞아떨어졌던 모양이다.

 “선대 황제께서는 누구에게 ‘신자’들에 대해서 말하였습니까?”

 “.......”

 “아니, 말을 달리 하지요. 현재 ‘신자’들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현 황제가 아닌 다른 사람이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제아겸은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목구멍이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아무도, 그런 사실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할 줄 알았다. 당연했다. 설사 연서강이 되돌아온 자라고 해도 황제에게 가서 자신은 되돌아온 자라고 밝히며 혹시 자신에 대해 아냐고 물어볼 리는 없는 것이다. 황제가 안다고 해도 큰일, 모른다고 해도 큰일이니 말이다.

 그래서 너무 안이하게 있었던 게 문제였던 것인가. 그가 그 ‘꿈’에서 그런 말을 들었을 줄은 몰랐다. 정확히는 실재하는 뱀 신님이 없다고 생각했기에 이런 일이 생길 줄은 몰랐다.

 “.......왜 그렇게 생각하나?”

 그러나 그렇다고 솔직하게 말해줄 수 없었다.

 심지어 눈앞에 있는 자는 되돌아온 자였다. 뱀 신님이 작정하고 보낸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서투르고 어설펐지만 열심히 노력하고 애쓰는 자였다. 그리고 그의 주변 또한 범상치 않은 인연들로만 가득 채워져 있었던 것이다.

 “황태후마마께옵서 황제와 황후를 일부러 갈라놓으셨다는 것을 우연찮게 깨닫게 되었습니다. 해서 의문이 들었을 뿐입니다. 어째서 황상께오서는 황태후마마께 양친이 모두 독살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신자’들을 사용하지 않은 것일까, 하고요. 나라에 우환이 닥치면 명을 받잡고 그 우환을 바로잡기 위해 되돌아가는 것이 아니었습니까. 허나 지금 어떤지 보십시오. 황태후가 뒤에 자리 잡고 황제와 황후가 다투며 그 아래에 있는 자들도 따라서 서로 다투고 있습니다. 기연조가 그렇게 말하더군요. 황상께오서는 황태후마마의 손에 죽임을 당할까봐 일부러 어리석은 척, 하고 있다는.”

 “.......”

 “해서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연서강은 눈을 내리깔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혹시 현재 ‘신자’들에 대해 알고 계신 것은 황태후마마께서가 아닐까.”

 “.......”

 “선대 황제의 총애를 받았다니, 그 말도 혹시 들어보았던 게 아닐까....... 하는 의심이오.”

 ‘그리고.’하고 연서강이 고개를 들어 눈앞의 제아겸을 바라보았다. 제아겸은 입을 꾹 다문 채 연서강이 하는 양을 듣고만 있었다.

 듣고만 있어도 괜찮았다, 그는. 자신의 부친과 달리 제태상은 비교적 솔직하신 분이셨다. 대답이 없다는 말은 즉 ‘긍정’을 받아들여도 될 일이라.

 “태상께서는 황태후마마와 뭔가 약조를 하신 게 있습니까?”

 -그렇다면 약속을 합시다.

 연서강의 말과 함께 제아겸은 한 여인의 목소리를 겹쳐 들었다. 우아하고 기품 있는 목소리였으나 표독스럽고 욕심이 많은 목소리이기도 했다.

 “혹시 뱀 신님이 말씀하시는 ‘그 망할 연놈들’이란 것이 제태상과 황태후마마를 말씀하시는 겁니까?”

 자신이 뱀 신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기 위해 ‘약조’를 맺었을 때, 뱀 신은 결코 가만히 있었던 게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뱀 신이 구덩이에서 다시 새 생명을 주고 꿈을 통해 전언을 주었으며 이제는 그 ‘여인’이 지나가자마자 ‘저 여자다.’라고 가르쳐 준 청년이 제아겸의 눈앞에 있었다.

 제아겸은 ‘나는.’하고 입을 열었다.

 자신은 아무것에도 관여하지 않고 아무것도 하면 안 되면 그 어떤 것에 관심을 보여서도 안 된다. 그리 결심했었다. 헌데 앞에 앉은 청년이 눈에 밟힌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가까이에 두고 관심을 보였던 모양이었다.

 허나 어쩔 수 없지 않은가. 그는 ‘닮았다.’

 신자의 힘 때문에 고통스러워한다는 점이. 그래서 가만 둘 수가 없었다.

               * *

 수안궁의 선대 주인, 즉 선대 태상은 현 태상이 아직 성인 되지도 않았을 때 일찍 목숨이 끊어졌었다. 때문에 현 태상은 태상 직을 맡기에 어린 나이임에도 수안궁의 주인이란 그 자리를 떠안게 된 것이었다.

 선대 태상의 갑작스런 죽음은 비밀에 휩싸여 있었다. 평상시의 지병이 악화되었다는 소문도 있었고, 갑작스런 발진으로 손 쓸 틈도 없이 세상을 뜨고 말았다는 소문도 있었다.

 하지만 소문은 늘 실제 있는 일보다 부풀러지기 마련인지라, 실상 선대 태상의 죽음은 별 괴아한 점 없이 그냥 ‘심장 마비’였다. 어느 날 밤에 잠자듯 돌아가셨다고 당시 미성년이었던 태상이 모여든 사람들에게 말을 전했다. 부검의 결과도 별반 이상한 점이 없었기에 선대 태상은 대대로 수안구의 주인이 안치되는 장지(葬地)에 묻혔다.

 그러나 정말 괴이한 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건강하던 사람이, 바로 어제까지 제 아들과 하하호호 노닐었던 사람이 갑작스레 죽음을 당하다니, 더 의심하면 뭔가 나올 듯도 했지만 안타깝게도 그에 대한 자세한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새로이 수안궁의 태상이 된 제아겸이 거절했으며, 또 비슷한 시기 즈음에 어린 황제가 즉위를 했었기 때문이었다. 그 섭정은 황태후였으며, 그녀가 섭정을 맡는 데에는 아무도 반대하는 자가 없었다. 한 제국의 황제가 바뀌던 때와 겹쳐져서 일어난 흉사는 금세 사람들의 기억 속에 사라져 그저 근거 없는 소문으로만 남아 있었다.

 태상직은 특수직이기에 대대로 그 핏줄에 따라 내려왔다. 때문에 선대 태상은 현 태상 제아겸의 모친이 되는 이이기도 하였다.

 “아무것도 몰랐다, 나는.”

 제아겸은 씁쓸한 듯 시선을 내리깔았다. 정녕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였지.“

 현 황태후가 황후였던 시절, 황귀비가 죽고 선대 황제가 죽고 그런 흉사가 잇따라 일어났을 때 그 일을 왜 어머니께서 대신 괴로워했었는지. 현 황태후가 정권을 잡는다고 피바람이 한 번 일 때마다 어찌해서 제실에 들어가 하루 종일 신께 기도를 드렸는지.

 또한 하나뿐인 아들에게 왜 그리 각별하게 아끼고 사랑하고 안아주었는지도.

 “.......분명 자신의 목숨이 얼마나 남았는지 알기 때문이었을 테지.”

 선대 태상의 숨이 멎은 다음 날, 많은 사람들이 수안궁을 방문했다. 장례 준비도 장례 준비였지만 어서 비어있는 수안궁에 새로운 태상을 앉혀야 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장례 준비가 끝나기도 전에 제아겸은 태상직위를 받아 새로운 수안궁의 주인이 되었다. 그렇게 정신이 없던 나날들이 지나가고, 어느 정도 여유를 되찾았을 때 수안궁에 어느 한 사람이 찾아왔다.

 현 황태후였다.

 당시 황후로서 그녀가 수안궁에서 해야 할 일은 이미 모두 끝난 직후였다. 때문에 제아겸은 왜 그녀가 자신을 찾아왔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그녀를 대접하기 위해 차와 다식을 준비하고 그녀를 접객실로 안내했을 때였다.

 돌연 그녀가 풋, 웃음을 터뜨렸다.

 제아겸은 의아해 그녀를 보았고 그녀는 ‘어린 태상님.’하고 제아겸을 불렀다.

 ‘기억나지 않으십니까?’하고.

 그때를 기억하면 제아겸은 절로 꽉 주먹이 쥐어졌다. 갑작스레 모친과 사별하고 실의에 빠져 있는 자신을 찾아와 그런 말을 흘리다니. 지금 생각해 보면 고의로 그런 것이 아닌가 여겨졌다. 화사하고 고운 생김새 뒤에 존재하는 그녀의 본 모습을 그 날 밤, 어린 태상은 확인하고 말았다.

 “현 황태후마마께옵서 말씀하시더군. ‘선대 태상님께 참으로 감사하다고. 그렇게 전하고 싶었는데 참으로 늦게 왔습니다. 허나 어린 태상님께서 이리 계시니 어린 태상님께 전하도록 하지요.’”

 고운 미소를 지으며 그녀가 입을 열었다.

 “저를 되돌려 보내 주셔서 감사합니다.”

 “되돌아 와, 이미 지워진 과거이기에 나는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네. 허나 황태후마마께옵서 그러시더군. 내 목숨을 위협했더니 선대 태상께서 자신을 되돌려 보내주셨다고.”

 어둡게 가라앉은 제아겸의 얼굴은 몹시도 서글퍼보였다. ‘태상경.’하고 연서강은 그를 조심스레 불렀다. 제아겸은 쓴웃음을 지으며 연서강에게 시선을 주었다. ‘다 지난 일이네.’

 “선대 황제께옵서, 황태후마마께 말을 흘렸던 모양입니다.”

 “황태후마마께옵서도 그렇다 하시었네. 참으로 어리석고 못된 양반이지. 어찌 여인에 눈이 멀어 나라의 극비(極秘)를 알려주신다 말인가.”

 허나 이미 일어난 일, 후회해도 소용없었다. 가르쳐준 장본인이 황태후의 손에 결국 독살 당했으니 극비를 흘린 벌을 이미 받은 것과 마찬가지였다.

 “내 모친이 돌아긴 날이....... 아마도 황태후마마께옵서 되돌아오신 날이겠지.”

 “그러시다면, 원래 그 날은.......”

 “어찌 된 일인지 몰라도 그 날, 현 황태후마마께옵서 위급하시었던 날이라 여겨지네. 지금은 세력 판도가 전연 다르지만, 되돌아오기 전에 현 황태후 쪽의 세력이 미비하고 황귀비마마의 세력이 더 컸을 수도 있지. 황귀비마마를 지지하는 기씨 문중의 공격을 받았을 수도 있고....... 모르네. 어찌 되었던 일인지. 아마 황태후마마께서만 아시는 일이겠지. 확실한 것은 황태후마마께옵서 되돌아오신 이후, 권력에 집착했다는 것이네. 되돌아온 이후 자신을 두 번 다시 해칠 수 없도록 정적들을 모두 숙청하고 권력으로 몸을 에워싸신 것을 보면.”

 그리고 제아겸은 연서강을 보았다.

 “자네처럼, 두 번 다시 되돌아오기 전에 있었던 일을 체험하기 싫으셨나 보지.”

 권력을 쌓아 당시 정적이라 할 수 있는 황귀비를 대담하게 살해하고, 5년 후에는 선대 황제까지 죽인 다음, 황귀비의 아이를 황제로 만들어 뒤에서 조종하였다.

 되돌아왔기 때문에, 신음처럼 그 말을 흘리며 연서강은 고개를 숙였다.

 “지금도 자신의 목숨과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계속하고 계신 것 같군요. 황제와 황후를 갈라놓아.”

 “자신에게 결코 대들 수 없는 상황으로 만든 것도 모자라 귀비를 황제에게 추천해 그 싸움이 더더욱 진흙탕이 되도록 만들었지. 그리고 자신은 고고하게 저 높은 곳에서 젊은이들이 흙탕물을 튀기며 싸우는 것을 즐기는 것이다. 실제로 자기네들끼리 견제한다고 정신이 없어 황태후마마를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 않은가. 이 나라 최고 권력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사람인데.”

 제아겸이 시선을 모로 흘리며 찝찝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아마도 그녀는 계속해서 그런 식으로 자신의 권력을 유지해 나가겠지.”

 “허면.”

 연서강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제아겸 쪽이 먼저였다. 그는 연서강이 무슨 이야기를 꺼내려는지 이미 아는 듯 했다.

 “허나 나는 상관없네. 그녀가 계속해서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든, 말든.”

 “.......무슨 소리십니까?”

 매정한 그 말에 제아겸이 잠시 입을 다물었다. 연서강은 그런 그를 아연한 얼굴로 쳐다보았다.

 상관이 없다는 말이 진심이신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황태후마마는 태상경의 모친을 돌아가시게 한 분이 아니십니까.’ 연서강이 그리 말하자 제아겸이 얼굴을 찌푸렸다. ‘아네, 나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네. 허나 연서야.’ 제아겸이 고개를 들어 연서강을 보았다.

 “뱀 신에게 벗어나려면 황태후마마의 협조가 필요하네.”

 “협조?”

 기이한 것을 들었다는 듯 연서강이 반문했다. 제아겸은 다만 다시 시선을 내리깔며 ‘그렇네.’하고 대꾸할 뿐이었다. 홍색이 섞인 갈색 눈동자에 우울한 빛이 서렸다.

 “그때, 나를 찾아왔던 그녀와 약조했네. 알고 있는 사실을 황제에게 알리지 말라고. 되돌아온 신자에 대한 이야기 말일세. 황제에서 황제에게로 내려오는 이야기야. 당금의 황제는 그 이야기를 전혀 알지 못하네. 그러니 황태후마마만 입을 다물어 주신다면.”

 연서강은 제아겸의 괴로운 얼굴에서 단 하나의 소망을 향한 절절함을 읽어냈다.

 어린 나이에 수안궁의 태상이 되어 돌보아왔던 여러 어린 신자들. 홍이를 처음 데리고 왔을 때 그가 했던 말들이 연서강은 생각났다. 가엾다. 희생양이다. 어린 생명들이, 그런 말들을 사용하며 그가 신자들에게 보인 애정은 얼마나 각별한가.

 “그 분만 입을 다물어 주신다면, 이 궐내에 신자의 능력에 대해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게 되네.”

 연서강은 어째서 그가 되돌아온 자신에게 누누이 ‘가만히 즐기게. 다시 삶을 얻으니 참으로 좋구먼, 하고 살란 말일세. 신경 쓰지 말게. 아무것도 애쓰지 마시게. 발버둥을 치는 것을 즐기는 고약한 신이신데 그대로 발버둥을 치는 것은 분하지도 않나.’ 등등의 말을 꺼냈는지 알 것 같았다.

 그것은 연서강을 걱정해서 하는 말이기도 했지만, 태상경이 가슴속 깊숙이 묻어둔 소망과 직결되는 것이기도 했던 것이다.

 “태상게서는, 뱀 ‘신’님의 권능을 이 땅에서 없애버릴 작정이십니까?”

 그 말이 그 말이었다. 신자의 능력을 아무도 아는 이가 없어져 버린다. 허면 신자들은 더 이상 황제에게 복종하지 않아도 되며, 능력 때문에 억지로 희생당하지 않아도 된다. 그 능력 때문에 얽매어 평생 저당 잡히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평화스럽고 자유롭게, 현재 수안궁에서 살아가는 것처럼 뱀 신님을 모시는 평범한 ‘인간’으로 살아가면 된다.

 “나는 모친께서 괴로워하시는 것을 곁에서 봐왔네. 나는 되돌아온 자가 무슨 기분인지 잘 모른다네. 허나 내 목숨을 구하기 위해 모친께서는 황태후마마를 데리고 다시 돌아왔네. 그 후로 황태후가 저지르는 악랄한 짓에 모친께서는 참으로 많이 절망하고 좌절하였지. 모친께서는 죽는 그 날 밤까지 황태후가 죽인 수많은 생명들에게 사죄하는 기도를 올리다 돌아가셨네. 나는 그런 사람을 다시 만들고 싶지 않아.”

 말을 마치고 제아겸이 연서강을 보며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

 “연서나 홍이와 같은 이도.”

 황태후는 제아겸의 말을 흔쾌히 승낙했다. 그녀는 그 대신에 당금의 황제는 물론이고 다른 누구에게도 신자의 능력에 대해서 발설하지 말라고 제아겸에게 말했다. 또, 수안궁의 태상이 정치의 어떤 부분에도 관여하지 않기를 바랐다.

 종교적인 부분에 있어서 태상의 권력은 가히 황제를 능가한다고 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이번 대의 태상은 수안궁에 조용히 틀어박혀 세상사에 아무 관심도 없다는 듯이 살았던 것은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황태후는 자신의 ‘밖’에서 어떤 짓을 벌이든 ‘안’에서 지켜보기만 할 뿐, 아무것도 손대지 말며 아무것도 건들지 말라고 제아겸에게 경고했다.

 그래서 제아겸은 계속 그렇게 살아왔다. 수안궁의 안에서 숨만 쉬듯 조용히 유영하듯 살아왔다. 이제까지 죽, 언젠가 뱀 신님의 저주에서 신자들이 해방되기를 바라며.

 “내가 자네를 발견하고 얼마나 놀랐는지 아는가. 수안궁 내부의 신자들은 이래봬도 철저하게 관리가 되어왔네. 헌데 보지도 듣지도 못한 어린이 신자와 그 어린이가 되돌려 보낸 자라니. 자네를 길에서 발견하고 정말 뒤로 콱 넘어질 뻔 했어.”

 희미하게 웃으며 제아겸은 연서강을 보았다. 연서강은 어찌해서 제아겸이 그리 세상 돌아가는 일이 관심이 없는지 알 것 같았다. 그것은 본디 이 분의 성격이 그래서이기도 하겠지마는 그보다는 더 황태후와 나눈 약조 때문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제아겸이 신자를 해방시켜 주려고 하는 마음을 연서강도 잘 알 수 있었다. 자신 역시 신자들의 삶이 얄궂고 몹쓸 것이라 생각한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신과 홍이와 같은 자가 생기지 않기를, 연서강도 바라지 않았던가. 제아겸의 말대로 되면 참으로 좋을 듯 했다. 앞으로 자신과 홍이와 같은 자들이 생기지 않는다니 얼마나 좋겠는가.

 사람 구경하기 좋아한다는 뱀 신님이, 어찌하여 태상과 황태후가 비밀리에 맺은 약조를 깨달라고 자신에게 말했는지도 연서강은 알 것 같았다. 태상과 황태후가 서로 동시에 입을 다물어 그 때 이후로 한 명도 되돌아 간 자가 없을 터이니 얼마나 심심했겠는가.

 그리고 자신이 얼마나 반가웠겠는가.

 그래서 그런 것일까. 이 짧은 몇 달 동안 그토록 많은 고통을 받은 것은.

 연서강은 제아겸을 보고 흐릿한 얼굴로 웃었다.

 “하지만 제태상. 그러면 황태후마마에게 희생되는 사람들은 어떻게 됩니까?”

 태상의 말씀도 일리가 있었다. 그 절절함도 알겠다.

 허나 때문에 황태후마마께옵서 지금까지 활개를 치고 계신 게 아닌가. 황태후마마에 의해서 두 사람이 독살 당했으며, 황제는 바보 병신 노릇을 하고 있고, 황후는 죽을 뻔 했었다. 죽을 뻔한 게 어디 황후뿐이랴, 황제도 마찬가지 아니었던가. 서로가 서로를 오해하면서 형성된 지금의 정치 알력 다툼이 .......결국은 연서강을 그 눈발 날리던 날에 죽게 하였다.

 기연조도 죽게 되었고, 자신 역시 돌아오게 되었다.......

 “태상께서, 당금의 황제에게 말을 하지 않으셔도 황태후마마는.”

 그에 제아겸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지금, 내게 수안궁의 신자들을 죽이라고 하는 것인가!”

 “.......”

 놀란 연서강은 입을 다물었다.

 제아겸이 그러나 다음 순간, 바로 고개를 푹 떨구었다. ‘알고 있네.’ 그리 주억거렸다.

 “신자들을 희생시켜서라도 황태후마마를 막았더라면 이 사태까지는 오지 않았겠지. .......그리고 연서 자네도.”

 허나, 제아겸은 숨을 들이마셨다. 허나 무슨 비난을 받더라도 꼭 이루고 싶은 게 하나쯤은 있는 법이었다.

 제아겸이 연서강을 바라보며 슬픈 얼굴로 미소 지었다.

 “.......역시 자네에게 신경 쓰지 말 것을 그랬네.”

 그랬더라면 오늘같이 이리도 서글픈 날은 오지 않을 것을.

 “미안하지만, 나는 황태후마마와의 약조를 어길 생각이 없다네. 만약 뱀 신님께서 자네에게 약조를 깨 달라 애원하였다고 한다면, 더더욱 들어줄 생각이 없네.”

 “.......”

 “자네보다 나는 수안궁이 소중하네.”

 태상의 성격이 다정하고 오지랖이 넓은 데에 비해, 어째서 다른 사람들의 일에 한발자국 물러서서 관망하듯 보고 있는지 연서강은 그 마지막 말을 듣고 이해했다.

 그는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그 소중한 것을 지키려면 신자가 아닌 자들을 경계하고 의심해야 함은 물론이고, 필요 이상으로 남의 일에 참견도 하지 말아야 했다.

 제태상은 실로 수안궁의 주인이란 말이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장소의 소중함을 알며 그에 사는 사람들을 어떻게든 지키려고 했다. 그는 되돌아 갈 수 있는 신자들에게 있어 인자하고 다정한 보호자와 같은 사람이었다.

 연서강은 숨을 천천히 들이마시었다.

 가슴속이 무척 시렸다. 

 하하하, 하하, 버림받았다.

 그렇게 연서강의 귓가에 떠드는 목소리가 있었다. 남녀가 섞인 그 목소리는 연서강에게 속삭였다. 그 여자, 그 여자, 그 여자, 그 여자!

 약조를 깨다오.

 그러면 새로운 세상을 네게 줄 터이니.

 연서강은 어두운 눈으로 고개를 숙였다.

               * *

 연서강은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저 멀리서 자신이 기다리던 사람이 왔기 때문이었다. 연서강이 자신을 보러 올 것이라고 는 전혀 생각지 못한 모양인지 무미건조한 그의 얼굴에 놀라움이 떠올랐다. 연서강으로서는 당연한 일인데도, 사실 그 사람을 아는 자라면 깜짝 놀랄 일이었다. 늘 주변에서 냉랭하고 무심한 표정만을 짓고 있다고, 그것도 아니면 못마땅하거나 불쾌한 표정을 짓는다는 말을 듣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무슨 일로 여기로 온 거냐.”

 구릉벽 근처 담장 아래였다. 이 시간이면 연무강은 항상 금륜관을 들렀다가 이 구릉벽 쪽으로 왔었다. 허니 연서강이 자신을 찾아온 것이 맞으리라. 더욱이 자신을 발견하고 자리에서 일어서지도 않았나. 연무강은 그리 생각하며 물었다.

 연서강이 앉아 있던 자리에는 새빨간 단풍 나뭇잎들이 잔득 쌓여 탑을 이루고 있었다. 힐끗 그것에 시선을 주었더니 ‘나비라오.’하고 연서강이 대꾸한다. 나비? 처음의 형태야 어찌되었든 지금은 너무도 많은 수의 단풍이 쌓여 단지 단풍을 모아놓은 산으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나중에 궐내를 청소하는 궁인이 군밤 등을 구워먹는데 사용하자며 불을 놓을 정도로 두텁게 쌓여 있었다.

 “오래 기다렸던 것이냐.”

 등 뒤에 따라붙은 부관을 손을 저어 먼저 보내고 연무강은 물었다. 연서강이 고개를 내저었다.

 “형님.”

 그가 다소 묵직한 목소리로 연무강을 불렀다. ‘왜 부르느냐.’

 해서 연무강도 대답했다. 연서강이 말끄러미 그를 쳐다본다. 그 눈동자에서 연무강은 아무런 뜻도 찾아낼 수가 없었다. 속을 짐작할 수 없는 새까만 눈동자 위로 자신의 모습이 아로새겨져 있었다.

 “.......제가 원하는 것은 모두 들어주신다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랬었지.......”

 한참 후에 꺼내는 말이 그거였다. 그러자 안심이 된 듯 연서강이 희미하게 웃었다.

 “그럼 도와주십시오.”

 “.......”

 올 것이 온 듯 했다.

 긍정의 말을 꺼내기 전에 연무강은 연서강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얼굴 근육은 웃고 있으나 그의 눈은 전혀 웃고 있지 않았다.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문득 연무강은 자신이 기연조였더라면 그가 쉬이 속마음을 털어놓았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 자신 혼자 고민하다가 결론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알았다.”

 연무강이 고개를 끄덕이자 연서강이 미묘한 표정으로 웃었다.

 “뭘 할 작정이냐고 묻지 않으십니까?”

 “네가 나에게 도와 달라 하지 않았느냐. 그러니 물을 필요가 없다.”

 “무슨 소리이십니까?”

 “내 눈앞에서 갑자기 사라질 리가 없으니 물어보지 않는다는 말이었다.”

 연서강이 입을 다물었다. 자신의 말을 믿어야 할지 믿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는 눈치였다. 연무강은 그 얼굴에서 자신의 시선을 치웠다. 자신을 불신하는 자를 짝사랑하는 것이 이리도 힘든 일인지 몰랐다. 무엇보다 그를 힘들게 하는 것은 이리 해도 연서강이 자신에게 마음을 놓는 날이 오지 않을 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참으로 어려웠다.

 이제까지 어떤 힘든 일들이 있어도 무리 없이 해낼 수 있었는데, 어찌 해야 할지 감도 오지 않고 그냥 무턱대고 그를 여전히 사랑하며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래도 괜찮을 것이다. 연무강은 자신의 눈앞에 있는 연서강을 보았다.

 다친 이마가 아직 다 낫지 않았다. 연무진이 연서강을 칼로 내리치려는 것을 보고 어찌나 마음이 다급했던가. 하마터면 눈앞에 있는 자가 자신의 친동생인 연무진이라는 것도 잊을 뻔 했다. 간신히 이성을 되찾을 수 있었던 것은 연서강을 어서 안전한 곳으로 옮겨야 한다고 필사적으로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연무진 놈을 신경 쓰는 시간도 아까웠다.

 연무강은 자신도 모르게 연서강의 이마를 가리고 있는 머리카락을 손을 들어 올려 치워주었다. 연서강이 흠칫 몸을 굳히는 것이 느껴졌다. 새하얀 이마를 가리고 있는 까만 머리카락이 어여뻐서 연무강은 그대로 사락사락 그의 머리를 쓸어 넘겼다.

 손을 그대로 내려 그의 귀와 볼을 만지고 싶었다. 목과 귓불에 입을 맞추고 여린 턱살을 깨물고 싶었다. 그리고.......

 “혀, 형님.”

 그것을 멈춘 것은 연서강이 거부의 소리를 냈기 때문이었다. 연무강은 자신의 욕심을 억누르며 연서강을 만지던 손을 떼어냈다. 아쉬움에 그는 꾹 주먹을 쥐었다. 당장 허리를 잡고 들어 올려 상의를 벗기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랬다가는 자신이 이제까지 참고 인내하며 끌어왔던 시간들이 물거품이 되어버리기에.

 싫어하는 사람이 몸을 만지면 당연히 불쾌하겠지. 문득 떠올린 생각에 가슴 한구석이 뻐근해졌다.

 “한 가지 약조를 해다오.”

 “무엇입니까?”

 연서강이 연무강이 만지작거렸던 부분을 손으로 쓸며 되물었다.

 “너는 내가 밉겠지.”

 “밉기만 하겠습니까?”

 거침없이 나오는 대꾸가 오히려 속 시원했다. 연무강은 빙긋이 웃었다. 이상하게 가슴 속은 아픈데 즐거웠다.

 “그렇다면 부탁을 들어주는 대신 함께 가자꾸나. 네놈이 무엇을 할런지는 모르겠지만, 필시 기분이 좋을 일은 아니겠지. 허나 네가 가자고 한다면 그것이 불구덩이 속의 침봉으로 덮인 땅이라도 걸어갈 터이니, 네가 가고자 하는 그곳에 나도 데리고 함께 가다오.”

 연서강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함께?’

 “진흙탕일 텐데 말입니까?”

 어째서인지 경계하며 묻는 그 말에 연무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상관없다.”

 그곳이 지옥이라 하더라도 연서강과 함께 갈 수 있다면 그것으로 무방할 터였다. 저 이가 무엇을 할 적정인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르면 모르는 대로 되었다. 연서강이 무얼 하든 함께 한다면 그게 무엇이든 곁에 있을 수 있지 않겠는가.

 “제가 무얼 할 작정인지 모르시는데도 말입니까?”

 “그렇다.”

 연서강이 다시 입을 다물었다. 이윽고 그가 대답했다.

 “형님께서 그때에 가서도 똑같은 대답을 하신다면,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여전히 의심이 깃든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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