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1화 (22/37)

 21.

 처음부터 ‘독(毒)’을 사용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다.

 정적을 제거하는 데 독을 사용하는 것은 아주 오래 전부터 즐겨 사용된 방법 중 하나였다. 돌연사나 의문사로 사망한 치자(治者)들의 기록을 살펴보다보면 그 중 대부분이 정적에게 독으로 살해당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그런 까닭에 독을 사용하는 데에는 특별히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했다. 즐겨 사용된 방법이기 때문에 의심 받기 가장 쉬운 방법이 또 독이었기 때문이다.

 허나 역사상 독이 정적을 제거함에 그리 애용된 이유 또한 분명 존재했다. 독 중에는 사용하면 반드시 그 흔적이 나타나는 것이 대부분이었지만 개중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는 독도 있었다. 그 독은 무색(無色), 무취(無臭), 무미(無味)임은 물론이요, 심지어는 사후 시신의 몸에 아무 표징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야말로 상대를 남몰래 죽이는 데에 특화된 ‘무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전에 현 황제의 선군(先君)이 갑작스레 붕(崩)하시었을 때도, 또 황귀비가 숨을 거두었을 때에도 이러한 독이 사용되었을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었다. 그렇기에 현 황태후가 그 둘을 독살시켰음에도 아무런 증거가 남아 있지 않아 범인을 붙잡지 못하는 것이라고, 세간의 사람들은 수군거렸었다. 마치 전설처럼 떠도는 풍문에 불과한 말이었지만.

 허나, 결론만 말하자면 그런 독은 확실히 존재했다.

 멀리 동방에서 왔다는 이 독에는 정확한 명칭조차 없었다. 어떤 천재적인 약제사가 조합해낸 것인지, 아니면 자연 상태에서 그래도 채취되는 것인지 밝혀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나 그 효력만큼은 확실했다.

 ‘신후(神後)’ 혹은 ‘신후단(神後團)’이라고 불리는 이 독은 생김새가 꼭 쥐똥처럼 동글동글하고 색이 노랬다. 음용을 할 때에만 그 효력이 나타나는데, 복용했을 때 나타나는 증세는 열감기와 비슷했다. 탈수 증세가 나타나고 온 몸에 열이 오르며, 복용한 사람의 체질에 따라서는 고투와 발진을 유발하기도 하였다. 해서 처음에는 그저 고뿔에 걸렸겠거니, 하고 고뿔약을 복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아무리 좋은 약을 먹고 몸을 쉬어도 차도는 없으니 마침내 사람이 탈진하게 되는 것이다.

 허나 만약 ‘신후’를 한 번 더 복용하게 되면 그 증세는 씻은 듯 사라지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낫는 것은 아니었다. 며칠이 지나면 다시 비슷한 증세가 나타나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여러 번을 복용하게 되면 마침내 몸 속 장기에 열이 쌓여 출혈이 생기고, 결국 죽게 되는 것이었다.

 신후의 악독한 점이 바로 이거였다. 신후를 한 번 음용한 사람은 이후 신후를 다시 복용하지 않아도 탈진해서 죽음에 이르게 되고, 탈진을 막고자 신후를 복용해도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다. 즉, 어떻게 해도 ‘죽음’으로 귀결되는 약이라는 것이었다. 해서 이 ‘독’은 ‘독’을 먹게 된 그 순간부터 생사가 신의 손에서 벗어나 ‘독’에게 달려 있게 된다는 뜻에서 암암리에 ‘신후’로 불렸다.

 황후가 이 독을 손에 넣게 된 경위는 간단했다. 바로 옛날, 이 독을 약재로 선물 받았었기 때문이었다. 당시 체기가 있어 늘 속이 불편했던 황후를 걱정해 황제가 여러 귀한 약재들을 모아 난전에 보내주었었는데, 그 ‘독’이 거기에 들어 있었다.

 황후가 이 ‘독’을 발견한 것은 정말 우연이었다고 한다. 그 당시에 아직 황제와 사이가 좋았던 황후는 황제가 보낸 약재 상자에 감동하며 포장을 풀고 그 안에 든 것을 손수 하나하나 살펴보았었다. 여러 방면에 두루 박식했던 그녀는 약학에도 그 지식이 상당했다. 그 쓰임과 음용방법에 따라 궁인들을 시켜 약재를 분류하던 그녀는 문득 도통 무엇인지 알 수 없는 환약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게 무엇인가, 하고 물어보았더니 심부름을 온 궁인은 그저 ‘약탕과 함께 드시면 체기가 금세 사라진다고 들었사옵니다.’하고 대답했을 뿐이었다. 그 대답을 듣고 ‘그렇구나.’하고 넘어갈 수도 있었으나, 그녀는 어디선가 본 듯도 한 생김새의 환약이 무척 꺼림칙하게 느껴졌다고 하였다. 해서 ‘알았다.’하고 심부름꾼을 보낸 뒤, 그녀는 자신이 소장하고 있는 책들을 긴 시간에 걸쳐 다시 들춰보았다고 하였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황후는 그 책들 사이에서 수상한 환약에 대한 정보를 찾을 수 없었다. 허나 책장을 넘기면서 그녀는 어린 날 공부했던 나날들을 떠올렸고, 그 나날들 중 그녀의 스승이 농담 삼아 해준 이야기도 기억해냈다. 그렇다. 당시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었던 ‘신후’에 대한 이야기를 그녀의 스승이 해준 것이었다.

 그때, 스승께 들었던 신후의 생김새가 수상한 환약과 완벽히 일치한다는 것을 깨달은 그녀는 순간 머릿속이 아찔해졌다고 한다. 아니, 설마. 그럴 리가. 아니, 그 분께서 어째서? 그녀는 혼란에 빠졌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고 환약을 꺼내 작은 동물들에게 시험 삼아 먹여 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는 사흘 후에 잔혹한 진실을 하나 알게 된다.

 황제가 자신을 죽이려고 한다는 것을.

 게다가 그때의 그녀는 황제의 아이를 잉태하고 있었던 중이라고 하였다.

 처음에 그녀는 깨달은 진실을 외면했다. 신후는 보통의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극약 중 하나였다. 허니 황제께서 무엇을 잘못 알고 섞어 보내셨겠지, 하고.

 그러나 그녀도 귀가 있었다. 황태후 마마께서 선군을 어찌 하셨는지, 또 황귀비 마마께 어찌 했었는지 들은 바가 있었다. 그때 퍼뜩 그 풍문이 그녀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황태후의 치마폭에 싸인 채로 황태후가 하는 말이라면 뭐든 고개를 끄덕이던 황제의 모습도 그 뒤를 따랐다. 섬뜩해졌다. 만약 황태후 마마께옵서 정말로 선군과 황귀비 마마를 신후로 죽인 것이라면......., 황태후 마마의 꼭두각시 인형이나 다름이 없는 황상께서도 신후에 대해 알고 계실 확률이 있지 않을까?

 하지만 어째서, 황상께서 자신을 죽이려고 하신단 말인가? 그것도 자신의 아이를 회임한 자신을. 

 그렇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고, 황제가 비씨에게 귀비 첩지를 내린 뒤 난전으로 행차하지 않게 되자 황후의 생각은 흔들리게 되었다. 그리고 이윽고 황제가 비씨의 장자를 황태자로 새로 정하고 싶다는 뜻을 비쳤을 때에는 황후도 마음을 정하게 되었다.

 자신 역시 가만히 있을 수 없다고.

 자신의 친정인 연씨 문중이 지나치게 세력이 커졌다는 것을 황후도 알고 있었다. 황후 또한 자신의 친정이 중앙 정계를 완전히 휘어잡는 것을 원치 않았다. 어디까지 그녀가 원하는 것은 조화와 균형이었다. 하제국의 국모로서 그녀는 부끄럽지 않은 황후로 남고 싶었고, 하제국이 번영하길 진심으로 바랐다. 그것이 그녀가 이제껏 받았던 교육의 전부였다.

 허나 황제가 자신의 친정과 자신, 심지어는 자신의 아이까지 적으로 돌리기로 마음먹었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황후는 당장 자신이 어떤 입장을 취해야할지 결정해야만 했다.

 “귀비 비씨의 아이가 황태자로 세워지면 그 뒤를 봐주는 기씨 문중과 황태후 마마의 세력이 더더욱 커지겠지.”

 하고 말하며 연무강은 준비된 청자 술잔에 국화주를 따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고아한 국화향이 철 이른 여름밤 방안을 가득 메웠다.

 문득 굳게 닫힌 창 너머로 매미 울음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와서 연서강은 새삼스레 여름이 깊어졌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평소라면 녹우당에서 피고 지는 꽃들을 보고 계절을 실감했을 터인데, 본채로 돌아온 이후로는 그것이 좀체 되지 않았다.

 뜨거운 바람에 나뭇잎들이 부딪혀 스스스, 소리를 냈다. 그 소리 위로 연무강의 목소리가 다시 깔렸다.

 “정확히는 현 황상에 이어 다음 대 황제까지 황태후 쪽 세력이 좌지우지 할 수 있게 된다는 소리가 된다. 지금에야 연씨 문중과 황후마마의 세력 때문에 가까스로 중도를 유지하는 것 같지만, 그 판도가 앞으로 어찌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지.”

 “.......그래서 귀비마마의 아이를 독살하고자 마음먹으셨단 말입니까?”

 연서강이 조심스레 묻자 연무강이 술잔을 들어 흔들며 웃었다. ‘허면 우리 마마께오서 그 어리석은 황제에게 달려가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부디 그러지 말라, 애원이라도 해야 했단 말이냐?’ 잔속의 술이 찰랑거리자 국화 향은 더더욱 짙어졌다.

 향기로우나 사람을 몽롱하게 만드는 주향(酒香)에 연서강은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기연조와 술자리를 자주 가진 탓에 술 냄새 자체는 익숙했다. 하지만 요새는 전혀 그런 자리를 갖지 못했기 때문에, 낯설어진 술 냄새가 부담스럽게 다가왔다.

 “약은 잘 들었냐고 묻는 황제에게 마마께서는 애써 웃으며 ‘양이 너무 많아 저와 비슷한 증세를 가진 궁아들에게도 나눠 주었습니다.’하고 둘러댔다고 하시었지. 그리고 신후를 비단에 꽁꽁 싸매어 벽장 깊숙한 곳에 보관하셨다고 한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황제가 국저를 새로이 세우고 싶다는 발언을 했을 때, 황후는 ‘아, 이러려고 내가 그 흉악한 것을 고이 간직하고 있었구나.’하고 깨달았다고 하였다. 자신에게 준 신후이니, 자신이 어떻게 사용하든 상관없지 않은가, 먹고 죽으라며 황후에게 줬었던 독약이 자신이 그토록 익애하는 귀비의 아이를 죽게 만들면 황제는 무슨 생각이 들까. 그 사실을 알아도 과연 황제는 자신을 벌할 수 있을까.

 어림없는 이야기였다. 자신이 독약을 썼단 증거는 아무 곳에도 남지 않을 터이니.

 해서 황후는, 황제가 한 그 문제의 발언 때문에 ‘어찌 해야 할까.’ 고민 중이었던 연무의에게 신후의 존재에 대해 알렸다고 했다.

 처음부터 ‘독’을 사용하려고 한 게 아니었다.

 “마마께서도 일종의 복수를 하고 싶으셨던 거겠지.”

 마치 남의 일처럼 이야기하며 연무강은 술잔을 입에 가져다 대었다. 연서강은 다만 얼굴을 찡그린 채로 그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독(毒).

 자신이 추리했던 일부가 시실임이 드러났지만 마냥 즐거워하기엔 참으로 잔혹한 이야기였기 때문이었다. 황제가 준 약재들 사이에서 신후를 발견한 황후의 심정이 어땠을지 상상조차 가지 않았다. 그는 며칠 전에 만나 뵈었던 여인의 얼굴을 떠올렸다.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모친과 사이좋게 지내셨다는 황후마마.......

 “.......해서 신후의 존재를 알게 된 아버님께서는 어떻게 하시기로 했습니까?”

 “글쎄.”

 연무강이 다시 술잔에 국화주를 따른 다음에 그것을 들고 연서강에게로 다가왔다. 침대 위에 오도카니 앉아 있던 연서강은 연무강이 다가오자 흠칫, 어깨를 떨었다. 오늘 밤 연무강을 만난 것이 단지 그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가 아니란 사실이 떠오른 탓이었다. 이야기에 열중하다보면 혹시 큰 형님이 본래의 목적을 잊어버리지 않을까, 하고 바랐지만 역시 부질없는 소망이었나 보다.

 “이 다음의 이야기는 대가를 받고 들려주도록 하지.” 

 “.......”

 그 말에 반사적으로 든 생각이란 게 그거였다. 이번에 대가를 치루고 나면 대체 어디까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까. ‘일’에 대한 전반적인 이야기는 들을 수 있게 되는 것인가.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 돌이킬 수 없게 된 거래이니, 이왕이면 적은 대가로 많은 정보를 얻고 싶었다.

 “어디까지.”

 “계획의 전반과 일이 어디까지 진행이 되었는지.”

 해서 입을 열자 연무강이 아직 말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대답한다. 여전히 자신의 머릿속을 훤히 들여다보는 듯한 연무강의 행동에 연서강은 다시 입을 꽉 다물었다. 불현듯 초조함이 몰려왔다. ‘형님은.’하고 연서강은 숨이 조일 것 같은 긴장을 이기지 못하고 주섬주섬 말을 꺼냈다. 

 “이래서 형님께서 얻는 것이 대체 무엇입니까? 전에도 말했었지만 저를 괴롭히고 싶은 것이라면 차라리 변태 자식이라고 비웃고 조롱하시는 게 더 낫지 않습니까. .......배신을 할지도 모르는 사람을 도와준다는 것은.”

 “연서강.”

 남자의 서늘한 목소리에 연서강은 말을 멈추고 이맛살을 찌푸렸다 고압적인 태도로 연무강이 연서강의 턱을 붙잡아 들었다. 연무강의 등 뒤로 호롱불의 불안한 빛이 만들어낸 그림자가 천장에 걸려 벽까지 길고 흐리멍덩하게 늘어져 있었다.

 억지로 마주 하게 된 연무강의 눈은, 여전히 매섭고 냉랭하기 그지없었다. 검은 눈동자를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니, 연서강은 마치 끝도 없는 심곡(深谷)에 떨어지는 기분이 들어 오싹했다. 남자에게로 끌려들어가는 것 같았다.

 돌연 연무강이 희미한 미소를 머금었다.

 “네가 말해주지 않았느냐. 내가 너를 좋아하는 것 같다고.”

 그런 말을 한 적은 있었지만 진정으로 그렇다 여겨져 한 말은 아니었다.

 “그래서 내가 또 말하지 않았느냐. 내가 너를 좋아한다면 너를 위해 못 할 일이 또 뭐가 있겠느냐고.”

 “그 말을 듣는 순간, 연서강은 연후정에서 들었었던 그 괴기한 느낌을 떠올렸다.

 여름의 습하고 끈적끈적한 공기처럼 자신의 살을 핥고 지나갔던 흉물스런 예감 말이다. 의진 형님이 했던 말도 다시금 떠올랐다. 또 정말 영문을 알 수 없었던 연무강의 요구도. 심장의 고동이 점점 빨라졌다. 손가락 끝이 바늘에 찔린 것 마냥 움찔거렸다.

 좋아한다?

 “.......그.”

 연서강은 입을 열었다가 다시 다물었다. 찰나에 번뜩였던 머릿속이 순식간에 모래더미 속으로 잠기듯 감각이 무뎌져갔다. 어찌 하려고, 무어라고 말할 생각이었던가. 그 무엇이, 무엇이다 라고 확인하게 되면 자신은 안정을 되찾을 수 있는가, 아니면, 아니면.

 더더욱 혼란에 빠지게 되는 것인가.

 답을 알 수 없어 연서강은 그저 고개를 돌려 연무강의 손아귀에서 제 턱을 빼왔다. 저절로 시선이 아래로 가라앉았다. 그는 제 옷자락을 꽉 잡은 채로 입술을 깨물었다. 더 이상 아무것도 물어보고 싶지 않았다. 확인도 하기 싫었다. 그게 무엇이든 자신이 알 바 아니기도 했다. 또 .......참으로 터무니없는 생각이라는 비웃음이 난 탓이기도 했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저 사람은. 큰 형님은, 나를 죽인 사람이다.

 “.......제가 무얼 생각하는지 알고 도와주시는 겁입니까?”

 간신히 꺼낸 말에 연무강이 낮게 웃는다. 머리 위에서 들리는 그 웃음소리가 전혀 다정하지도, 상냥하지도 않아서 연서강은 두 눈을 감았다가 떴다.

 칼 날 위에서 균형 잡기를 하듯 아슬아슬한 느낌에 속이 괜히 울렁거렸다. 괜찮다. 그런 속을 그는 애써 다독였다. 괜찮아, 이 이상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말은 저리 하지만 분명 큰 형님은 무슨 꿍꿍이가 있어 이러는 것이 틀림없다. 그러니 자신이 해야 할 일은 방심하지 않는 것뿐이다.

 이 이상 변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죽기 전과 달라지는 것은.

 곱씹으며 연서강은 다시 고개를 들었다. 그런 그의 앞으로 연무강이 술잔을 내밀었다.

 “그리 긴장이 된다면 술이라도 한 잔 하는 게 어떻겠느냐?”

 “아니요.”

 아무래도 복잡한 머릿속을 술을 마셔 곤죽으로 만들고 싶지 않았다.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연서강은 고개를 저었다. ‘마시고 싶은 기분이 아닙니다.’ 지금 여기서 술을 입에 대었다간 큰 사달이 날 것 같았다. 또 술에 취해 느슨해진 모습을 보이고픈 상대도 아니었다.

 허나 연서강은 한 가지 사실을 간과하고 있었다. 눈앞의 남자가 싫다는 말 한 마디로 곱게 돌려보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연서강이 거부하자 연무강은 손에 들고 있던 술잔을 자신의 입에 가져가 술 한 모금을 머금었다. 그리고 곧바로 연서강의 어깨를 한 손으로 눌렀다.

 “훗!”

 공교롭게도 아픈 어깨를 건드린 것인지 연서강이 날카로운 숨을 삼켰다. 남자의 손에 잡힌 어깨가 짓이겨지는 듯한 고통에 연서강은 침상 위를 어깨를 감싸며 뒹굴었다. 그러나 아프다는 소리도 미처 내지 못한 채 연서강은 바로 연무강에게 턱이 잡히고, 몸이 짓눌려졌다.

 “잠, 깐!”

 제 몸 위로 드리워지는 사람의 그림자에 놀리기도 전에 입술에 연무강의 입술이 닿았다. 턱을 잡은 손이 역시 경고 없이 그의 볼을 잡고 눌러 억지로 입을 벌리게 만들었다. 벌려진 입술 사이로 국화주가 흘러들어왔다. 연무강의 숨과 입술에서 흐붓한 국화의 향과 함께 술 특유의 누룩향이 났다.

 그렇게 연서강에게 입안에 있던 국화주를 먹인 다음, 연무강의 입술은 떨어져 나갔다. 미처 다 삼키지 못해 흘러내린 술을 손등으로 훔치며 연서강은 연무강을 보았다. 목구멍으로 삼킨 술이 뜨거웠다. 연무강이 물었다.

 “더 마시겠느냐?”

 여기서 자신이 거절하든 응하든 상관없이 방금 전과 똑같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상체를 뒤로 빼 연무강의 몸 아래에서 기어 나오며 연서강은 대답했다.

 “제, 제가 마시겠습니다.”

 연서강의 대답이 마음에 드는지 연무강이 비로소 미소를 지었다.

 “그래?”

 그리고 그는 몸을 움직여 술병이 있는 탁자 쪽으로 걸어갔다. 그런 남자의 등을 보며 연서강은 거칠어진 숨을 가다듬었다. 갑작스런 접촉으로 입술이 달달 떨렸다. 국화주를 머금어 달달해진 남자의 타액이 아직도 자신의 입안에 남아있는 것 같았다. 몇 번이고 침을 삼켰지만 그 잔여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삼킨 양은 분명 얼마 되지 않을 터인데, 놀라서인지 피곤해서인지 확 취기가 올라왔다.

 “.......”

 손등으로 입술을 훔치며 흐트러진 옷을 서둘러 정리하는데 연무강이 술병과 술잔을 들고 다가왔다. 크게 출렁였던 마음을 다 잡았다고 생각했던 것도 잠시, 연무강이 술잔을 내미니 연서강은 또 제 심장이 펄떡 뛰는 걸 느꼈다. 얼굴까지 열이 올라 귀 끝까지 너무나 뜨거웠다.

 진정을, 진정을 해야......., 그리 생각하고 생각했지만 자꾸만 소란스러워 지는 가슴속과 벌겋게 달아오르는 두 뺨을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연서강은 연무강이 내민 술잔을 잡았다. 술잔을 잡은 손끝이 떨렸다.

 “술을.”

 하고 그는 서둘러 입을 열었다.

 “꼭 마셔야 합니까?”

 느낌이 좋지 않다. 자기 몸 상태는 자고로 자신이 제일 잘 아는 법이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지 알았기 때문에 더더욱 마시고 싶지 않았다.

 연서강의 말에 연무강이 제 상의의 옷끈을 풀다말고 그를 보았다.

 “허면 그 표정부터 좀 풀어 보든가. 무서워 벌벌 떠는 사람을 취하자니 꼭 범죄자가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군.”

 “.......”

 해서 연서강은 입술을 깨물며 술잔을 연무강의 앞으로 내밀었다. 행위를 빨리 끝내기 위해 필요한 것은 자신의 기분 따위가 아니었다. 연무강의 기분이 중요했던 것이다. 그의 흥이 식어봤자 행위를 하는 시간만 길어질 뿐이니, 연서강에게도 좋을 일이 하나 없었다.

 어차피 해야 할 일이고, 또 언젠가 지나갈 일이다. 연무강의 말이 맞았다. 언제까지 이리 움츠려들 생각인지, 자신의 몸인데도 도통 자신의 말을 듣지 않아 난감하지 짝이 없었다. 앞으로 몇 번이나 더 이런 순간을 맞이해야 할지도 알 수 없는데, 몸을 겹칠 때마다 심장이 이리 계속 요란스레 뛰어서야 목적을 이루기도 전에 가슴이 뻥 저텨 죽을 것 같았다. 빨리 익숙해져야 했다.

 “주십시오.”

 그렇지만 잔을 내밀고 기다려도 상의를 모두 벗은 연무강은 술을 따라주지 않았다. 술병을 든 채 침대 위에 있는 연서강을 빤히 바라보고만 있는 것이다. 거기에 의아함을 느낀 연서강이 고개를 들고 연무가을 보았다. ‘형님?’하고 조그맣게 소리 내어 그를 부르자, 그가 갑자기 연서강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흠칫 놀라 연서강은 두 손으로 술잔을 든 채 상체를 뒤로 물렀다.

 “서강아.”

 “.......네, 형님.”

 그리고 그가 연서강의 입술에 가벼이 입을 맞추었다. 그저 닿기만 하고 떨어지는 것인데도 연서강은 크게 놀라 어깨를 들썩였다. 그런 그를 보며 연무강이 빙그레 미소 지었다.

 “어디 한 번 잘 마셔 보거라.”

 연무강이 들고 있던 술병을 허공에서 기울였다. 허나 그 아래에 있는 것은 연서강이 들고 있는 술잔이 아니었다. 침대 위였다. 이불 위였고, 연무강의 허벅지와 사타구니, 배 위였다.

 툭, 툭, 연한 황색의 투명한 액체가 연무강의 배 위와 허벅지 위를 적시고 그 아래로 떨어졌다. 그 광경을 연서강은 새하얗게 질린 채 바라보고 있었다. 연무강이 대체 자신에게 무엇을 바라고 술을 흘린 것인지 깨달은 탓이었다.

 “형, 님.......”

 “스스로 마실 수 있다고 하지 않았나?”

 그 대답이 이런 식으로 돌아올 줄 연서강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 경악으로 잔을 든 손이 힘없이 아래로 떨어졌다. 연무강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더 말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그 모습에 연서강은 자신이 어떤 말을 해도 연무강의 마음이 변하지 않을 것이란 걸 알았다.

 긴장으로 침이 저절로 꿀꺽 삼켜졌다.

 “.......”

 방안에 국화꽃 향기가 너무 짙어 머리가 어지러웠다. 아니, 머리는 진작부터 어지러웠었다. 공기 중에 떠도는 누룩 냄새가 그를 취하게 하고 방금 조금 삼킨 술이 그의 사고를 멈추게 만들었다. 일렁일렁 시야가 사정없이 흔들리는 호롱불빛에 맞춰 엉망으로 춤췄다.

 고요함과 국화꽃 향기로 젖은 방안의 공기는 마치 깊은 바다 속과 같았다. 모든 게 불투명하고 멍멍하게 다가왔으며 현실 같이 느껴지지 않았고, .......또 가만히 앉아 숨을 쉬는 것조차도 힘들었다.

 연서강은 천천히 연무강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의 몸 가까이 다가가자 국화주 향내가 확 났다. 아직까지 연무강의 배 위에는 투명한 국화주 방울이 남아 있었다. 자신의 것과 달리 무술 단련으로 탄탄하게 다져져 있는 배였다. 뚝, 하고 술이 또 한 방울 연무강의 배 위에서 아래로 떨어졌다. 그의 아래에 있는 비단 이불은 이미 술에 흠뻑 젖어 있었다.

 연서강은 입을 열고 혀를 내밀었다. 그리고 술에 젖어 있는 연무강의 배를 핥았다. 얼굴에 오른 열이 상당한지 혀에 닿은 연무강의 살이 차갑다고 여겨질 정도였다. 젖은 배에서는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국화주의 맛도, 사람의 살맛도. 그저 무른 자신의 혀에 비해 단단하다는 생각과 함께 자신의 입을 상대의 살에 가져다 대었다. 살짝만 갖다 대고 떼었을 뿐인데, 자신이 저지른 일에 두 손이 벌벌 떨렸다.

 이 이상 어떻게 해야 할지. 잠깐 고민하자 머리 위에서 명령이 내려왔다.

 “그 아래도.”

 하지만, 어떻게? 연서강은 고개를 들고 연무강을 보았다.

 “하, 한 번도 해 본 적 없어서.......”

 자신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수치스러워서인지 말끝이 절로 흐려졌다. 애초에 연서강은 타인의 몸을 본 것도 연무강이 처음이었다. 사내를 연모했다고 하지만 그것은 오로지 마음만으로 연모한 것이었다. 기연조를 상상하면서 수음을 해 본 적도 없었다.

 밖으로 산보를 나가거나 무얼 사러 갈 적을 제외하면 거의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모씨 아줌마와 녹우당에서 보냈고, 연서강을 만나러 오는 유일한 이는 건전함을 온 몸에 휘감은 듯한 기연조와 어린애인 홍이가 전부였다. 음행(淫行)에 관해서는 건너건너 들은 것이 전부였고 책에서 본 게 전부였던 것이다. 누군가의 몸과 이어진다는 것 역시 연후정에서 연무강을 마주치지 전의 연서강으로서는 망상조차 해본 적 없는 일이었다.

 그러니 타인의 성기를 핥아본 적도 당연히 없었다.

 “어, 어떻게 하, 하면 될지......”

 말을 마치는데 갑자기 당혹감과 서러움이 동시에 북받쳐 연서강은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그때, 연무강이 연서강의 몸 위로 자신의 상체를 기울이면서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예?”

 그 말을 잘 듣지 못했던 터라, 연서강은 자신도 모르게 반문했다. 그에 연무강이 작게 웃었다.

 “나 역시 마찬가지라고 하였다.”

 말을 마침과 동시에 연무강이 연서강의 팔을 붙잡고 일으켜 입을 맞추었다. 가벼이 두어 번 입을 맞춘 뒤 연무강은 연서강의 목을 세게 물었다. ‘읏!’하고 연서강이 아픈지 어깨를 움츠렸다. 움츠려든 어깨 사이와 목 아래로 움푹 드러난 쇄골을 핥고 연무강은 연서강의 상체를 밀어 침대에 눕혔다. 연무강의 아래에 몸이 깔리자 지난 일들이 떠올랐는지 연서강의 얼굴이 금시에 새파랗게 질렸다. 

 “이번이 벌써 세 번째다, 연서강. 국화주를 더 마셔야 그놈의 어색함이 사라지겠느냐?”

 “아, 아닙니다.”

 연무강의 말에 연서강이 다급히 대답했다. 연무강은 손을 아래로 내려 연서강의 바지춤 안으로 집어넣었다. 연서강이 숨을 삼키며 허리를 비틀었다. ‘형님.’하고 연서강이 딱딱하게 경직된 목소리로 연무강을 불렀다. 그러나 연무강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바로 연서강의 것을 찾아 쥐었다. 연서강이 허리를 비튼 것도 모자라 다리를 움츠렸다.

 일전의 일도 있으니 아무리 참으려 해도 성기를 자극 당하면 반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은 모양이었다. ‘놔주십시오!’하고 그가 연무강의 손을 잡았다. 연서강으로서는 아파 죽어도 상관없으니 연무강이 바로 삽입을 하는 것이 나았다. 전희든 뭐든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고통과 수치, 공포, 자책만 늘어날 뿐이었다. 하지만 연무강은 그렇지 않았다.

 연무강은 연서강의 바지를 벗겼다. 연무강이 무얼 할 작정인지 눈치 챈 연서강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있는 힘껏 허리를 비틀었다. ‘싫습니다!’ 비명과도 같은 소리가 그의 입술 사이에서 터져 나왔다. 그래서 연무강은 한 손으로 그의 입을 막고, 다른 한 손으로는 침상 위에 엎드리기 위해 바르작거리는 연서강의 허리를 잡았다.

 연무강은 이만 연서강도 느끼는 것을 보고 싶었다.

 그는 연서강의 성기를 혀로 핥았다. ‘흣!’하고 연서강의 막힌 입에서 소리가 비어져 나왔다. 생리적 혐오감이 섞여 있었지만 그래도 생생한 아픔만이 느껴지는 것보다는 나았다. 연무강은 연서강의 성기를 입안에 넣고 가볍게 빨아 보았다.

 연서강의 손이 다급하게 내려와 연무강의 어깨를 밀었다. ‘거부’가 분명했지만 입이 막혀 있어 연서강은 불분명한 발음으로 울음소리를 냈다. 더 당혹해 하라고, 울어 보라고 연무강은 입안에 든 연서강의 성기를 혀로 최대한 부드럽게 굴렸다. ‘힉, 힉!’ 상체를 동그랗게 말며 연서강이 고개를 저었다.

 자신이 하는 행동에 일일이 반응을 보이는 연서강이 연무강은 재미있었다. 혀를 움직이는 속도를 느리게 하면 바르르 몸을 떨었고, 속도를 빨리 하면 자신의 어깨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며 탁한 소리를 흘린다.

 물론 그것은 연무강도 마찬가지였다. 자신이 혀를 움직일 때마다 돌아오는 연서강의 반응에 연무강은 일일이 흡족해 했고 또 조급해했다.

 계속되는 자극에 결국 연서가의 성기가 반응했다. 학, 학 밭은 숨을 내뱉으며 연서강이 주어지는 쾌감에 허리를 비틀려고 했다. 하지만 연무강이 골반을 잡고 눌러 그러지 못하게 하자 연서강은 안달하듯 허리를 흔들었다. 혀, 님....... 연무강을 제대로 부르지 조차 못하고 으흣, 가쁜 숨을 삼킨다. 열이 달아올라 벌겋게 달아오른 그의 육체가 땀으로 축축해졌다.

 연무강의 손은 이제 더 이상 연서강의 입을 막지 않고 있었다. 하아, 학, 거친 숨을 내뱉는 연서강의 벌어진 입 사이로 연무강의 손가락이 들어갔다. 비정상적으로 뜨거워진 혀가 꿈틀거리며 그의 손가락을 밀어내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잔뜩 젖은 손가락으로 연무강은 연서강의 어깨에 이어 마른 허리를 매만지고 그 아래의 둔부까지 더듬었다. 이쯤 되면 연서강으로부터 ‘그만.’하고 거부의 소리가 나올 법도 한데, 연서강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흔들 뿐 말은 하지 않았다. 흘러나오는 소리는 흐느낌이 전부였다. 그러는 것도 당연했다. 연무강의 집요한 애무에 연서강의 남성은 거의 사정 직전까지 와 있었기 때문이었다.

 배출하고 싶은 욕구 때문에 연서강의 허벅지가 벌벌 떨렸다. 연서강이 연무강의 어깨를 잡다 못해 손톱으로 긁으며 울었다. 차마 남자의 입안에서 파정할 수 없어 연서강은 참고 참았다. 그러나 예민해진 자신의 성기를 연무강의 혀가 감싸고 있었다. 따뜻하고 질척거리는 것이 자신의 성기를 비비며 절정의 끝으로 인도하고 있다.

 “.......형, 님!”

 울부짖으며 연서강은 연무강을 불렀다. 제발, 제발 놔주세요. 제발!

 “이해할 수 없군. 참는 게 더 좋다면 실컷 참고 참아 보거라.”

 꺼질 것만 같은 의식의 끝에 연무강이 문득 연서강을 놓으며 그리 말했다. 허나 완전히 해방된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연무강은 연서강의 성기를 꽉 잡고 있었다.

 “흣!”

 아파. 아팠다. 그러나 그 아픔보다 답답함과 애달픔이 먼저였다. 파정하지 못해 힘든 것이 먼저였다. 이제까지 스스로의 의지로 참고 참았던 것이, 이제는 타인의 압력에 의해 억지로 하지 못하는 것으로 변하자 견딜만했던 욕망이 당장 터질 것 같이 튀어 올랐다. 사정할 수 있는 권한이 자신에게서 타인에게로 넘어간 탓이었다. 스스로 참고 안 참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제 상대방이 허락을 해 줘야 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이었다.

 그 사실이 그를 애원하게 만들었다.

 “어흑, 흑, 형, 형님, 형님! 제발! 제발!”

 연서강은 자신의 것을 붙잡고 있는 연무강의 손이 원망스러웠다. 남 앞에서 그런 모습을 보이는 것은 절대로 안 된다고 고집을 부렸던 방금까지의 자신은 어디론가 날아간 지 오래였다. 해방되지 못한 쾌감에 온 몸이 따끔따끔 거리면서도 근질근질 거렸다. 몸이 저절로 뒤틀리고 안달이 나 허리가 흔들렸다. 머릿속이 새까맣게 물들었다. 여기가 어디인지, 자신의 앞에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 이제 참말로 모를 지경이었다.

 반사적으로 연서강은 눈앞의 사람을 부르고 또 불렀다.

 “무강 형님, 형님. 제발, 제발!”

 쉬이, 서강아. 조금만 더 참으렴.“

 울부짖고 상대를 부르며 자신을 붙잡고 있는 손에서 벗어나는 일에 급급했기 때문에, 연서강은 연무강이 자신의 엉덩이 사이로 손가락을 집어넣는 것도 알지 못했다. 끈적끈적한 유액 같은 것이 떨어져 흠칫 했던 것도 잠시, 지나치게 열이 오른 몸 위로 부어진 액체가 너무 차갑고 미끄러워 소름이 오싹 돋는다.

 달아오른 몸은 차가운 액이 제 몸 위를 타고 흐르는 것과 몸속으로 들어오는 이물감조차 찌르르한 간지러움으로 받아들였다. 애달프고 끈질긴 쾌락이 되었다. 숨이 막혔다. 가슴 속이 답답하고 몸이 뜨거웠다. 잠시 후 비로소 연서강은 연무강이 자신의 엉덩이 사이로 뭔가를 바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그것조차 별로 중요하게 생각되어지지 않았다.

 그저, 그저, 그저, 그저. 자신은.

 “형님, 형님! 무강 형님, 형님!”

 어떻게 좀, 어떻게든 이 감각을 해소시켜 주었으면!

 “그래, 그래. 서강아.”

 하는 말과 동시에 연서강의 엉덩이가 벌어졌다. 그리고 그 사이로 연무강의 성기가 들어왔다. 삽입과 동시에 연무강은 연서강의 성기를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읏, 입술을 깨물며 연서강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사정과 동시에 그는 빙글, 시야가 한 바퀴 도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온 몸의 근육이 전부 바짝 긴장하며 움츠려들었다. 때문에 그는 자신의 몸속에 들어와 있는 남자의 성기도 조이고 말았다. 덕분에 그 크기와 두께가 생생하게 느껴져 신음소리가 절로 흘러나온다.

 “흐윽.......”

 끝도 없는 해방감을 느끼며 늘어지는 육체를 남자가 바로 잡고 성기를 밀어 넣는다. 무엇을 발랐는지 거침없이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오는 남자의 성기가 연서강의 몸속을 긁었다. 내벽이 성기의 움직임에 따라 주루룩 내려가고 곧 올라가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미친 듯이 살과 살이 비벼지고 있다. 아, 아. 연서강은 울음을 터뜨리며 제 두 손으로 시야를 가렸다.

 이상했다. 이상해.

 배가 터질 것 같은 압박감이 느껴졌지만, 고통은 그다지 없었다. 벌써 자신의 몸은 남자에게 익숙해져 버린 것인가. 힘을 덜 들이고 아픔도 없으니 다행이라 여겨져야 할 일이었지만, 어쩐지 연서강은 무언가 상실한 듯한 기분이 들어 가슴속에 서글픔이 사무쳤다.

 추적추적 내리는 가을비를 닮은 참담함과 동시에, 그리고 .......사정하기 전에 느꼈었던 여러 가지 감각들도 꾸물꾸물 밀려들어왔다. 정액과 유액으로 범벅이 된 내부가 마찰되자 사정의 여운에 잠겨 있던 몸이 다시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도망쳐야 할지 응해줘야 할지 알 수 없는 감각이었다.

 이상해. 이상하다.

 아픔이 덜 하니 상대적으로 여유를 되찾아야 할 터인데 오히려 그 전보다 조급한 기분이 들었다. 몸속에 있는 연무강의 성기가 너무도 뚜렷하게 느껴져 가슴 속이 저릿했다. 이상하고 기묘한 감각이었다. 숨이 절로 거칠어졌다. 어쩐지 조바심이 나고 초조해져 자신도 모르게 연무강의 팔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갔다. 사정 전과 비슷하게 안달이 났다.

 정말 이상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연무강이 자신의 허리를 잡고 안으로 깊숙이 성기를 찔러 넣었을 때, 연서강은 하던 생각도 그만 둘 수밖에 없었다. 저릿한 기분이 척추를 타고와 목덜미를 간질였다. 순간적으로 연서강은 ‘흣!’하고 숨을 들이켰다.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연무강이 그런 그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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