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5화 (16/37)

 15.

 -그게, 무슨 노래입니까?

 한참을 앓고 난 뒤에야, 줄곧 귀에 노래 소리가 들렸었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연서강이 무심코 묻자, 기다렸다는 듯이 냉큼 제아겸이 대답한다.

 -고기 요리는 찜 요리가 가장 좋다는 노래라네. 구운 요리, 끓인 요리, 훈제 요리, 전부 다 맛있지만 역시나 여러 가지 재료를 넣고 보글보글 끓는 찜 요리가 제일 좋지요~.

 -.......

 이상하다. 연서강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한참 아파서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때는 몹시 처연하고도 아름다운 노래로 들렸었는데. 자신이 저딴 노래를 ‘아, 아름답다!’하고 생각하며 듣고 있었단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연서강은 ‘다른 것 같은데요?’라고 반박했다.

 그러자 또 제아겸이 기다렸다는 듯 반색하며 말했다.

 -사실은 생선 요리에 관련된 내용이었다네. 생선은 눈도 동그랗고 비늘은 반짝반짝, 꼬리가 튼실튼실. 우리 그이처럼 힘도 좋아. 에고에고 좋아라~.

 -.......

 차라리 아까 고기 노래가 나을 뻔 했다. 기가 막혀 아무 대꾸도 없이 그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제아겸이 ‘흠?’하며 제 턱을 쓸었다. ‘아니지, 꼬리가 꿈틀꿈틀이었나?’ 심지어 즉흥 자작곡이었나? 연서강이 얼굴을 찌푸리자 제아겸이 여태껏 잡고 있던 연서강의 손을 놓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여기는 맛난 게 없어 오래 버티기 힘들군.

 -.......죄송합니다.

 맛난 음식에 대한 그리움이 저 괴악한 노래를 낳았나 싶어 연서강은 조심스럽게 사과했다. 제아겸이 수도에 돌아가지 못하고 여기 의경에 발이 묶여 있는 것이 순전히 자신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더불어 연서강은 노래에 관해서도 생각을 고쳐 하기로 했다. 가사는 대단히 괴악하지만 음이 좋고 흥얼거리는 제아겸의 목소리도 좋아서 앓고 있을 때 들으면 위로가 되고 도움이 되는 것도 사실이었으니까.

 제아겸이 연서강의 말을 듣고 쓰게 웃었다.

 -자네는 다 좋은데 너무 사과만 하는 것이 문제야.

 그 말에 반사적으로 또 사과하려다가 연서강은 흠칫 입을 다물었다. 제아겸이 흘리듯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로 말했다.

 -사과만 해도 좋으니 얼른 괜찮아지기나 하게나.

 연서강은 웃으며 ‘네.’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게 너무 신세만 지는 것 같아 미안하고 또 고마웠다. 마치 녹우당에 있을 때의 기연조를 보는 듯 했다.

 “.......”

 연서강은 가물가물한 의식을 차려 가까스로 눈을 떴다. 오랫동안 눈을 감고 있었던지 시야의 어둠은 쉬이 걷히지 않고, 한참동안 머물다가 겨우 사라졌다. 물방울이 툭 터진 듯 어지러운 광경이 이내 명확하고 또렷해지기 시작했다.

 맨 처음 눈에 들어온 광경은, 천장이었다.

 “깼구나.”

 그리고 곧 그의 귀에 들려온 것은 누군가의 목소리였다. 서늘하고도 건조한 목소리가 귀에 익숙했다. 연서강은 고개만 돌려 소리가 들려온 쪽을 보았다. 보드랍게 넘실거리는 이불의 바다 너머로 한 사람이 찻잔에 물을 따르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가 든 도자기 주전자도 어딘지 익숙했다.

 “.......”

 멍하게 있노라니 그가 찻잔을 연서강에게 건네며 물었다.

 “물은 마실 수 있겠나?”

 그 말에 고개를 저으려다 그것마저도 힘이 들어서 연서강은 조금 인상을 썼다. 제대로 표현도 안 된 거절임에도 상대방은 익숙한 듯 쉬이 알아듣고 찻잔을 다시 탁자 위에 두었다. ‘그럼 나중에 내키면 마시려무나. 약과 함께.’ 어찌 되었든 자신은 알 바 없다는 듯 무심한 목소리는 여전했다.

 “.......의진 형님?”

 간신히 목소리를 내어 말하니 상대방이 희미하게 웃었다.

 “내가 누군지 아는 것을 보니 많이 회복된 모양이군.”

 그 말에 연서강은 자신이 사리 분별조차 할 수 없는 심각한 상태까지 갔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깨닫는 순간 든 생각은 홍이가 걱정할 텐데,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연이어 생각이 수안궁의 태상에게까지 가 미쳤다. 그 분께는 의경에서도 잔뜩 폐만 끼쳤는데, 수도로 돌아와서도 이런 소식을 가장 먼저 전하게 되는구나. 또 기연조 생각도 났다. 눈앞에서 그런 꼴을 보았으니 많이 놀랐겠지.......

 “어지럽진 않으냐?”

 사실 가벼운 현기증을 느꼈지만 연서강은 고개를 저었다. ‘그래?’하고 눈앞의 사내가 연서강을 응시하다가 이내 ‘잘 되었네.’하고 말을 매듭지었다. 그런 그를 연서강이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연의진.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는 것은 백의궁 영의전(靈醫殿)에서 일하고 있는 셋째 형인 연의진이었다. 연서강은 지금쯤 백의궁에 있어야 할 연의진이 왜 이곳에 와 있는지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평소에는 백의궁 영의전에서 집으로 잘 돌아오지도 않는 그였다. 그런데 왜 지금 그가.......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연서강은 곧 자신이 바보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가 왜 여기에 와 있겠는가. 연씨 문중 안에 환자가 생겼으니 왔겠지. 그리고 그 환자란 바로 자신이었다.

 연서강은 입을 다물고 지금까지의 일을 떠올렸다. 녹우당에 간 것은 기억났다. 거기서 연조와 재회하고 그 기쁨을 얼마간 나눴던 것도. 그러다 연무강 형님이 갑자기 녹우당 안으로 들어왔고, 그리고 또. 몇 마디 말이 오간 후 자신이 무강 형님에게 멱살을 잡혀 이리저리 다툼을 벌이다가 결국 어깨의 상처가 터졌다.

 “.......”

 그러다 숨이 막혀 정신을 잃고 말았지, 까지 기억을 해내고 연서강은 표정을 딱딱하게 굳혔다. 이제 더 이상 무강 형님의 앞에서 기가 죽거나 그를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았는데. 또다시 그러고 말았다. 칙칙한 패배감과 무력감이 연서강의 가슴 속에서 동심원을 그리며 퍼졌다.

 언제쯤이면 그의 앞에서 떨지 않을 수 있지? 얼마나 긴 시간이 흘러야 그의 앞에서 당당해질 수 있을까. 하필이면 연무강의 앞에서 정신을 잃은 자신이 연서강은 너무도 실망스러웠다.

 그렇게 연서강이 자기 자신에게 화가 나서 꾹 입을 다물고 있노라니 문득 연의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굉장한 일을 했다고 들었는데.”

 하는 말에 무심결에 쳐다보자, 연의진이 앉은 자리 앞에 놓인 탁자 위에는 이름을 알 수 없는 약초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연서강이 자신을 쳐다본 것을 물을 달란 말로 오인했는지, 연의진이 다가와 다시 그에게 물이 담긴 찻잔을 내밀었다. 연서강이 물을 거부하자 연의진은 이내 자신이 앉아 있던 의자로 돌아가 약초들을 마저 손질하기 시작했다.

 줄기와 어린잎을 분류하고 어른 잎은 조그마한 바구니에 담는다. 아마도 줄기는 약초 물을 우리기 위해, 어린잎은 복용약으로 쓰기 위해, 어른 잎은 곱게 빻아 바르는 약으로 사용하기 위해 저리 분류하는 것일 것이다.

 그러다 연의진이 하던 일을 멈추고 연서강 쪽을 돌아보았다.

 “정말이더냐?”

 방금 전 했던 말의 연장선상이었다. 그 사이, 여러 가지 생각으로 다소 멍하게 있었던 연서강은 돌연 날아온 질문에 ‘예?’하고 반문했다.

 “영의전에 들어가 두 귀를 막고 있어도 들릴 소식은 들리길 마련이거든. 네가 변방에 가서 의경의 고립을 해결하여 언양을 회복하는 데 큰 도움을 줬다 하더구나. 그러다 그곳에서 크게 다쳐 행방불명되었었다는 이야기도 들었고.”

 “.......”

 “그게 정녕 맞는 이야기냐고 영의전 사람들이 내게 묻더구나. 헌데 나도 마땅히 대답할 말이 없어서. 그 이야기를 지금 처음 듣는다고 대답했더니, 한 가족이 맞기는 하느냐는 쓴 소리도 들었었다.”

 연서강은 자신의 바로 위의 형인 연의진을 연의향 만큼이나 어려워했다. 연의향과 연의진, 이 두 사람은 모두 각각의 자신의 할 일에만 골몰할 뿐 주변의 다른 일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유형의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연서강은 연무강과 다른 의미로 연의진과는 서먹서먹한 사이였다. 말을 붙여 본 적도 손에 꼽힐 정도였다. 연의진이 영의전으로 들어가고 나서부터는 더욱더 그랬다.

 “.......그렇습니다만.”

 ‘그러냐?’, 연서강의 불성실한 대답에도 연의진은 뭐라 더 묻는 말없이 다시 제 할 일을 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언뜻 드는 생각에 연서강이 입을 열었다.

 “의진, 형님께서 절 돌봐 주신 겁니까?”

 “네 어깨를 열어 환부를 도려내고 모자란 피를 보충하고, 벌어진 상처를 수습하느라 이틀을 종일 고생한 사람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그래. 나다.”

 이야기만 들어도 사지의 힘이 쭉 빠졌다. ‘.......감사합니다.’하고 연서강은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연의진이 어른 잎이 든 바구니를 탕탕 털어 정돈하며 ‘무얼.......’하고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로 대꾸했다.

 “도전과 모험이 공존하는 아주 유익한 시간들이었다. 지금 네 상태를 보니 잘 치료된 것 같아 흡족하기도 하구나.”

 하고 말하는 목소리가 여전히 굴곡 하나 없이 평탄하기 그지없어서, 연서강은 연의진의 저 말이 진심인지 아니면 ‘너 때문에 개고생 했다.’라는 말을 비비 꼬아 말하는 것인지 좀체 알 수가 없었다. 평소에 그와 이야기라도 많이 나누어 봤다면 연의진이 어떤 방식으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인지 알 테니 저 속뜻을 가늠이라도 할 수 있었을 텐데. 자신으로서는 도저히 알 길이 없다.

 그때 연의진이 자리에서 일어나 물이 담긴 찻잔과 함께 종이 포장에 싸여있는 환약을 들고 왔다.

 “물이 적당하게 식은 것 같으니, 약과 함께 마셔라.”

 “예.......”

 지금쯤이면 물을 넘길 수 있을 것 같아, 그리 대답하면서 상체를 일으키는데 어깨와 등이 너무도 아팠다. 자신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가 그게 더 아파서 연서강은 얼굴을 사정없이 구겼다. 마치 자신의 둥과 어깨를 누군가가 철침으로 박아대는 것 같았다. 아픈 등을 연신 움찔거리며 연서강은 조심스럽게 일어나 잔과 약을 받았다. 적당히 식은 잔은 딱 기분 좋을 정도로 따끈따끈했다.

 “어지럽니?”

 한 번 더 연의진이 묻는다. ‘네, 좀.’하고 대답하며 연서강은 물을 조심히 마셨다. 연의진이 자신의 이마를 짚어왔다. ‘체온이 간신히 정상이 되었구나.’, 하고 말한 연의진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연서강을 향해 경고했다.

 “앞으로 이틀은 꼬박 주는 음식 잘 먹고, 침대에서 내려오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내 말을 지키지 않았다 길거리에서 객사해도 나는 책임지지 않겠다. 만약 마음이 갑갑하여 견딜 수 없을 정도로만 이 주변만 사람을 대동해 거닐도록 하여라.”

 그리고 연의진이 방문을 열었다.

 “먹을 만한 걸 가져오마.”

 마치 정해진 순서를 밟아 말하는 것처럼 지극히 사무적인 목소리였다. 의진 형님이 이런 성격이었던가, 하고 생각하며 연서강은 ‘네.’하고 조용히 대답했다. 언뜻 의향 누님과 비슷하다 기억하고 있었는데 지금에 와서 보니 좀 다른 것도 같았다.

 마지막으로 연의진이 밖으로 나가기 전에 입을 열었다. 말할까, 말까 그는 조금 망설이는 것 같았지만, 이윽고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 결론지었는지 연서강을 돌아보며 말했다.

 “그리고, 무강 형님을 보면 고맙다고 하렴.”

 “.......네?”

 의외의 말에 연서강은 미간을 좁혔다. 그 얼굴을 본 연의진이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 모습이 마치 ‘아예 말을 말 것을 그랬다.’고 생각하는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연의진도 저 손아래 남동생과 큰형님의 사이를 아주 모르는 것도 아니었으니. 그러나 어차피 엎질러진 물이었고, 이왕 이렇게 된 바에야 끝까지 말을 하는 편이 나았다. 이 일로 말미암아 두 사람의 관계가 조금이라도 호전된다면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연의진이 대답했다.

 “너를 치료할 때, 무강 형님도 옆에 계셨다. 환부를 째고 도려내면서 네가 너무 이를 악물어서, .......무강 형님이 대신 자신의 손을 물게 하셨어. 네가 형님을 붙잡고 놔주지 않아서 궐에 제 때 입궁하지도 못하셨지.”

 기억나지 않는다. 연서강은 황망한 얼굴로 ‘그랬습니까?’하고 반사적으로 중얼거렸다. 연의진이 그런 연서강을 응시하다 ‘그럼.’하고 대답한 후에 방밖으로 나갔다.

 탕. 곧 문이 닫히고 방안은 적막해졌다. 그제야 연서강은 여기가 어딘가, 싶어 주변을 찬찬히 돌아보았다. 처음에는 눈에 서먹하여 여기가 어딘가 싶었지만 곧 이곳이 어디인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바로 연무진 형님의 방. 자신이 녹우당에서 나오겠다고 선언한 뒤 기거하게 된 곳이었다.

 연의진이 한 말을 찬찬히 머릿속에 떠올리며 연서강은 현재 자신이 수도로 돌아온 지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생각했다. 차마 연의진에게 묻지는 못했지만 기연조는 그 이후로 어떻게 되었을까. 무척 궁금했다. 혹여 무강 형님이 그에게 해코지라도 한 게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허나 만약 무강 형님이 정말 기연조에게 해코지를 했더라면 의진 형님이 그에게 무어라 말을 했을 것 같기도 했다.

 그렇다면 무사히 돌아갔나? 자신이 갑자기 쓰러져서 크게 놀라지는 않았을까? 걱정하고 있을 것 같은데. 연쇄적으로 떠오르는 생각에 연서강의 마음 한 구석이 싸해졌다. 어서 기연조를 만나 자신은 괜찮다고, 이제 상처는 다 치료했다고 말하고 싶었다. 허나 녹우당에 가서 모씨 아줌마에게 심부름이라도 시키지 않는 이상은 그에게 소식을 전하기는 힘들 것 같았다.

 앞으로, 또 이틀.

 연서강은 종이 포장을 뜯어 그 안에 든 환약을 입에 넣었다. 환약을 삼키고 바로 물을 마셨지만 이미 쓴 맛이 입 안 가득 퍼지고 만 뒤였다. 얼굴을 찡그리며 연서강은 제 손안에 들린 허연 종이 포장을 매만졌다. 손바닥 안에서 종이가 바스락거린다.

 “.......”

 무강 형님의 손을 물었다.

 불현듯 떠오른 생각이 연서강의 속을 칙칙하게 만들었다. 연서강은 손을 들어 손가락 끝으로 조심조심 제 입가를 매만졌다. 허나 입술이 온통 까슬까슬하게 일어난 것 외에는 무엇을 문 흔적 따위는 없었다. 당연했다. 기억에도 없는 일인데, 또 시간이 지나도 한참을 지났을 일인데 지금까지 그 흔적이 남아 있을 리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연서강은 자신도 모르게 손등으로 입술을 훔쳤다.

 연의진의 말에 따르면 자신이 연무강을 꽉 잡고 놔주지 않았다고 한다.

 “.......”

 욕이 절로 치솟아 오른다. 아무리 정신을 잃었다곤 하지만 어떻게 그를 의지하고 버틸 생각을 다 했느냐고. 이율배반적인 자신의 몸에 연서강은 오싹, 소름이 끼쳤다. 대체 당시의 상황이 어땠을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연서강은 연의진에게 묻고 싶었다.

 ‘형님이, 절 내치진 않으셨나요?’

 정말로 자신이 그를 물었다면 그가 가만히 있을 리가 없는데. 붙잡거나 매달리는 족족 사정없이 바닥으로 내던질 인간이었다. 그런데 어째서? 생각하며 연서강은 고개를 아래로 숙였다. 기괴한 예감이 들어 마음이 조급해졌다. 찌직, 그의 손에 들려 있던 종이가 반으로 찢어졌다. 그러나 그마저도 곧 여의치 않게 되었다.

 힘을 준 어깨가 너무 아팠다. 제대로 된 치료가 된다고 하더라도 이전과 같은 상태가 되기를 바라지는 말라하던 말은 정말이었다. 다친 팔을 위로 들어 올릴 수가 없었다. 힘을 줄 수도, 주먹을 꽉 쥘 수도 없었다.

               * *

 그 날, 궐 안에는 연위사가 드물게 손을 다쳤더라는 소문이 돌았다. 오른손에 그리 심하지는 않았지만 붕대를 감고 연무강이 입궁했기 때문이었다.

 그의 손에 난 상처가 물건에 의한 것인지 사람에 의한 것인지 아직 확실해지지도 않았는데, 소문은 빠르고 엉뚱하게 ‘교관들이 새벽에 위사님을 습격했다고 하더군!’이라 났다. 연무강 때문에 몸져누웠었던 궐내의 교관이 앙심을 품고 어둠을 틈타 그를 습격했다는 것이다. 전번의 일로 실제로 연위사를 보는 무술 교관들의 눈이 퍽 곱지 못했기 때문에 소문은 금시에 생명력을 띠고 궐내에 퍼졌다.

 그러나 그 소문은 불과 반나절 만에 뒤집어졌다. 무술 교관 중 한 명이 소문을 듣고 ‘어느 미친놈이 그런 헛소리를 해?! 진짜 누구 죽는 꼴이 보고 싶으냐! 그렇다면 내가 그 놈을 먼저 죽여주겠다!’라며 길길이 날뛰며 화를 냈기 때문이었다. 소문은 즉각적으로 수정되었고, 새로운 내용이 되어 또 다시 퍼졌다. ‘위사님 동생인 연무진이 앙심을 품고.’ 대상만 달랐지, 내용은 같았다.

 그리고 그 소문을 들은 연무진은 역시 무술 교관들과 마찬가지로 비명을 지르며 제 형에게 달려갔다. 얼토당토 안 한 소문의 내용보다는 그 소문이 제 무서운 형의 귀에 들어갈까 그는 무서웠다.

 “대체 뭐하다 다친 거요?!”

 저녁 무렵, 대대의 정비를 끝낸 연무진의 연무강의 집무실까지 쳐들어와 물었다. 덧붙여 그는 작은 목소리로 ‘내, 내가 흘린 소문은 아니외다.’하고 말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아침부터 궐 전체에 파다하게 퍼졌던 소문은 정작 본인은 비켜간 모양인지, 연무강은 무슨 소리냐며 미간을 좁혔다.

 성혼을 치렀겠다, 분가도 했겠다. 이만 하면 철이 들 때도 되었건만 연씨 문중의 차남 연무진은 성정 자체가 가벼워 그러지 못했다. 때문에 연무강은 자신의 바로 아래 아우인 연무진을 막내인 연서령을 대할 때와 똑같이 대하곤 했다. 연무강의 생각에 그 둘은 성별만 달랐지 근본적으로는 똑같은 인간이었다.

 “소문대로 형님이 누군가와 싸움박질 했다가 다친 것 같지는 않고.”

 “대련을 하다가.”

 “참 나! 알았소. 누군가와 대련을 하다가! 하이고, 쌈질이나 대련이나 치고받는 건 그게 그거 아니요. 여하튼 정말로 누군가랑 치고 박고 싸운 건 아니지요, 형님? 혹시 형님께서 진 거요? 그래서 아무 말도 못하는 겁니까?”

 연무강은 진심으로 짜증을 냈다.

 “쓸데없는 소릴 지껄이려면 나가라, 연무진.”

 싸늘한 연무강의 목소리에 연무진이 합 입을 닫고 찔끔 어깨를 움츠렸다.

 연무진은 예나 지금이나 자신보다 네 살 많은 맏형이 무서웠다. 어렸을 때 무술이나 검술 대련을 할 때, 매 번 그 상대역이 되어 두들겨 맞은 경험이 있어서 그런지도 몰랐다. 한 번도 공부도, 훈련도, 연습도 게을리 한 적 없는 형이라 진심으로 지독하다 혀를 내두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 그럴지도 모른다. 여하튼 연무진에게 있어 연무강이란 정말로 무섭고, 정말로 괴물 같고, 정말로 두렵고, 정말로 적이 되고 싶지 않은 상대였었다. 친형이라 정말로 다행이었다.

 부친인 연무의가 맏형인 연무강만 신뢰한다는 느낌을 줘도 연무진은 그것을 질투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자신이 아버지였어도 형이 듬직하고 믿을 만 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연무진에게 연무강은 그런 형이었다. 그런 형이, 매 년 무술 대회를 독식하다시피 하는 잘난 형이 어디에서 다쳐 돌아오다니 이거 별일이다 싶었다.

 연무진은 조심스레 다시 입을 열었다.

 “진실로 궁금해서 그렇소. 어쩌다가 다쳤소?”

 끈질기다고 생각했던지 연무강의 얼굴 표정이 썩 좋지 않았다. 그러나 연무진이 연무강의 성미를 잘 알듯이 연무강 또한 제 동생 놈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이대로 대답하지 않는다면 연무진은 제멋대로 생각하고 상상하며 결론을 내릴 것이다.

 거기서 그친다면 연무강도 연무진이 무슨 오해를 하든 개의치 않고 내버려 두겠지만, 연무진 저 놈이 어디 그럴 놈이던가. 이번에도 분명히 저 놈은 제 부인에게 고스란히 이번 일을 말해버릴 것이 뻔했다.

 연무진의 이런 가벼운 성격을 몹시도 귀여워하는-이 부분에서 연무강은 생각했다. ‘세상천지에 둘도 없는 악취미.’- 연무진의 부인은 국내의 유명한 칠보 공예장인이자, 고위 귀족들만 상대하는 고급 장신구점의 점주이기도 했다. 웬만한 귀족 여인네들의 장신구들은 그녀를 통해 만들어지고 유통되었기 때문에, 그녀에게 말이 잘못 흘러가면 그 날로 경내의 모든 여인들에게 몹쓸 말이 퍼질 수가 있었다.

 “.......물렸다.”

 고민하다 연무강은 대답했다. 쓸데없는 말이 퍼지기 전에 자신의 선에서 일을 잘라버리는 것이 나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리 숨기려고 유난을 떨 일도 아니지 않은가. 그렇게 결론을 내리고 나니 자신이 왜 말하기를 꺼려했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개에게 말이오? 형님, 아무리 성질이 나도 개를 차면 안 되오. 개란 놈은 머리가 좋아서 원한을 오래 기억하기 마련이거든.”

 “.......”

 연무강은 연무진을 차가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저러니 부친인 연무의가 저 놈 하는 짓을 보시곤 종종, ‘저런 똥강아지 같은 놈을 봤나!’하고 역정을 내시는 것이리라. 연무강은 한숨을 길게 내쉬며 손에 들고 있는 서책을 덮었다. 연무진이 또 움찔, 연무강의 눈치를 살피며 뒤로 물러났다.

 “나, 나는 형님이 걱정 되어서 그렇지.......”

 연무강의 기분이 나빠졌다는 것을 깨달은 그가 급히 말을 돌렸다.

 “허, 헌데, 참, 형님도 들으셨소? 연서강이 돌아왔다고 하던데.”

 그러나 그 말에는 가만히 한숨만 쉴 수 없었다. 드디어 연무강이 관심을 보이자 칭찬을 들은 강아지마냥 신이 나서 연무진이 말을 이었다.

 “그럼 그것도 들으셨소? 의경의 사관이 드디어 제대로 된 보고서를 만들어서 제출했다 하오. 그것이 당장 아버님의 손에도 들어갔는데, 아버님께서 그 보고서를 보시고는 ‘오호, 거 참!’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하더이다. 혹시 아시오? 벌써 들으시었소?

 “.......”

 보고서가 제출되었다는 것은 알지 못했지만, 부친이 그 보고서를 보고 어떤 표정을 지었을지는 연무강은 보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분명 일전에 자신과 대화를 나눴을 때처럼 허허, 웃으셨겠지. 이거 재미있게 일이 돌아간다고 말씀하셨던 것도 기억하고 있었다.

 “.......아버님의 반응이 너무도 좋아 기분이 좀 거시기하오.”

 마침내 연무진이 하던 말을 끝맺었다. 팔짱을 끼고 서서 음음, 하며 머리까지 끄덕거리는 꼴을 보아하니 하고 싶었던 말은 저것이었나 보다. 저놈의 말본새는 대체 어느 나절에 가문의 위신에 맞게 고쳐지는가. 연무강은 그게 의문이었다. 이상하면 이상한 것이지 거시기한 것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허나 연무강은 그것이 어떤 기분인지 추궁하지 않았다. 물어 봐야 이해할 수 없는 말만 나올 것이 뻔했기 때문이었다.

 연무진이 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말을 이었다.

 “형님은 그렇지 않소?”

 어렸을 때 제 형을 따라 연서강을 괴롭혔던 전적이 있었던 지라, 연무진은 부친인 연무의가 연서강에게 호감을 보이는 게 영 불편한 모양이었다. 혹여 연서강이 자신에게 보복이나 하지 않을까 염려하는 듯 했다. 연무강은 문득 제 오른손을 내려다보았다. 하얀 붕대에 싸여진 오른손은 지금도 주먹을 꽉 쥐면 욱신거렸다.

 보복.

 “.......그러고 보니 노는 왜 그놈을 괴롭혔느냐?”

 연무강이 새삼스럽게 묻자 연무진이 팍 인상을 썼다. 왜 그런 것을 물어보느냐는 얼굴이었다. ‘그야 당연히.’하고 성급하게 입을 열었던 연무진이 다음 순간 안색을 달리하며 주변을 둘레둘레 돌아보았다. 다행스럽게도 지금 방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낮은 목소리로 그는 이어서 말했다.

 “그놈이, 연우비 고모의.......”

 그러나 마지막 말은 차마 잇지 못한다. 연무진 또한 그게 얼마나 구차한 변명인지 알고 있는 탓이었다.

 어렸을 때야 ‘다르다’라는 인식으로 인해 당연하다는 듯 괴롭혔다지만, 지금은 달랐다. 어째서 자신이 그렇게까지 했던가. 돌이켜보면 의아해져서 연무진은 사실 연서강의 얼굴을 보기가 꺼려졌다. 연서강이 행여 ‘어째서 자신을 그렇게까지 괴롭혔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어서였다.

 머뭇거리던 연무진이 변명처럼 말했다.

 “.......그, 어, 하지만 형님도 서강일 막 대하지 않으셨소? 나는 그냥, 형님 따라.”

 “내가 죽으면 너도 죽을 테냐?”

 여상하게 묻는 말에 연무진이 억울한 얼굴을 해보았다. ‘그런 말이 아니잖습니까.’ 그 얼굴이 꼭 같은 편에게 배신당한 자의 것 같아서 연무강은 차게 웃었다. 언제 어느 사이에 자신이 저 놈과 같은 편이 되었는지 모를 일이었다.

 연무강은 ‘그래, 잘 알았다.’하고 대답했다. 그 말에 연무진이 발끈해서 ‘무얼 잘 알았단 말이오?’라고 묻기에 연무강은 혀를 차며 말했다. ‘네놈이 얼마나 생각 없이 사는가를.’ 대답을 들은 연무진의 얼굴이 사정없이 구겨졌다. 또 무어라 항의하려는 연무진의 말을 가로막고 연무강이 먼저 입을 열었다.

 “잘 알아들었다. 네놈이 나와는 다른 이유였다는 걸.”

 “.......그게 무슨 소리요?”

 그 말에 연무강은 연무진을 바라보았다. 날카롭고 단려하게 생긴 집안 용모가 어디 가지는 않았지만, 성격의 영향을 받아서 그러한지 연무진은 개중 묘하게 맹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참으로 신기했다, 연무강은. 연서령도 그러하고, 연무진 또한 연씨 문중의 사람다우면서도 답지 않은 용모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날이 선 듯 냉랭한 분위기가 좀 덜 했다. 조금 더 부드럽고 활동적이며 온유한 얼굴이었다.

 물론 얼굴이 다르기를 친다면 연서강이 제일이긴 했다.

 “네놈이 연서강에게 아무 생각이 없다는 걸 잘 알았다는 뜻이다.”

 자신과 달리.

 여전히 연무진은 의아한 표정으로 연무강을 보았다. 저 놈이 ‘나름 생각이 많소이다.......’하고 중얼거리는 소리가 뒤늦게 들렸지만 그래봐야 연무강에게는 중요치 않은 사안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놈은 성혼을 해 어여쁜 아내도 있는 놈이었다. 괜한 날을 세웠다 싶어 연무강은 시선을 모로 흘렀다.

 “나는 보복을 해와도 상관없다.”

 연무강이 그렇게 말하자,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연무진이 ‘나는 싫소.’하며 질색을 한다. 역시 이놈은 자신과 달랐다, 하는 생각을 굳히며 연무강은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나는, 그래. 굳이 따지자면 오히려 놈이 보복하러 왔으면 좋겠군.”

 연무진처럼 껄끄럽다 회피하는 것보다 차라리 그게 나았다.

 ‘형님, 정말로 서강이를 싫어하시는군요.’하고 연무진이 중얼거렸다. 싫어한다고? 그래, 싫어하다마다. 연무강은 입을 다물고 붕대가 감긴 오른손을 꾹 쥐었다. 특정 부위에서 느껴지는 아릿한 아픔이 손등을 타고 손목까지 전해졌다. 손목을 타고 가슴 속 깊숙한 심장까지, 시리고 쑤셨다.

 모씨가 연의진을 불러온 이후 계속 난리였다. 재빨리 지혈 등의 간단한 처치를 한 뒤 예전 연무진의 방으로 연서강을 옮겼었다. 연서강의 상처를 본 연의진이 얼굴을 찌푸리며 ‘이것은, 나 혼자선 못 해.’하고 중얼거려 급히 또 그를 도와줄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난리도 그런 난리가 또 없었다. 뜨거운 물과 깨끗한 수건이 계속해서 방안으로 들어왔고 분주하게 의료 도구들도 드나들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연무강은 조금도 움직이지 못했다.

 연서강이 붙잡고 있는 것도 붙잡고 있는 것이었지만, 잠시라도 자리를 비우면 연서강이 ‘죽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얼굴이 허옇게 질린 채 정신도 못 차리고 헉헉거리는 연서강을 보니 그랬다. 연서강의 상태는 어깨의 상처를 쨀 때 더더욱 심해져 그때는 숨도 제대로 삼키지 못하는 것 같았다. 연무강은 자신도 모르게 ‘이대로 죽는 거 아니냐?’하고 물었다. 연의진도 그에 제대로 된 대답을 하지 못했다.

 그는 다만 연무강에게, ‘형님, 그쪽을 잘 살펴주시오.’라고 부탁했을 뿐이었다. 무슨 뜻으로 한 말인지는 다시 묻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연서강이 고통으로 이를 악물고 있는 게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이대로 두었다간 상처 치료는 고사하고 턱과 이빨이 모조리 상할 것만 같았다.

 연의진이 출혈을 최소화하며 고름이 들어찬 환부에 칼을 가져다 대었다. 악, 연서강이 소리를 질렀다. 소리는 짧았고 칼이 움직이자 소리를 지르다 못해 다시 이를 악문다. 다시 연서강이 이를 악물기 직전에 연무강은 놈의 입 안에다 자신의 손을 가져다 대었다. 연의진이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떴지만 어쩔 수 없었다. 연서강의 두 손은 자신을 잡고 있었고, 그 자리를 차마 자유로이 떠날 수는 없었다. 주변에는 놈의 입을 막을 만한 것도 눈에 뜨이지 않았으니 당시에는 정말 그 수밖에 없었다.

 콱, 연서강이 그의 손을 물었다. 놈의 이가 자신의 손등을 단단히 파고들었으나 연무강은 아픔을 느끼지 못했다. 연의진이 재빨리 환부를 잘라냈다. 시뻘건 선혈을 머금은 살덩어리가 잘려나갔다. 몸이 미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피가 상처에서 펑펑 쏟아졌다. 새로 가져온 하얀 수건은 금세 붉게 물들었다. 이대로 과다출혈로 숨지지 않을까 염려가 되었다.

 해서 연무강은 손등의 아픔보다는 연서강의 무는 힘이 약해질까 봐 걱정했다. 무는 힘이 약해졌다는 것은 정신을 잃었다는 것이었다. 극심한 고통을 못 참아 정신을 놓는다는 가능성도 있었지만, 과다출혈로 심장이 충격을 받아 그럴 수도 있었다.

 연서강이 연무강의 왼팔을 꽉 잡았다. 잔뜩 힘이 들어간 손이 허옇게 변색되어 있었다. 연무강은 자신을 붙잡은 연서강의 손을 말끄러미 바라보았다.

 .......어쩐지 마음 속 한 구석이 묵직하게 가라앉았었다.

 기연조의 손을 걱정 말라는 듯 두드리던 연서강이 떠올랐다. 이내 그가 자신의 손을 피했었던 순간까지도. 이런 ‘경우’가 아니라면 연서강 쪽에서 자신을 먼저 잡아주거나 만지지는 않겠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하기는, 미치지 않고서야 자신을 죽이고 싶어 했던 자에게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그 깨달음은 묵직하게 가라앉았던 속을 이내 냉랭하게 만들었다.

 ‘됐습니다.’하고 연의진이 말하며 연무강을 보았다. 그에 번뜩 연무강은 정신을 차리고 연서강을 내려다보았다. 어느새 연서강은 정신을 잃었는지 미동조차 없이 조용했다. 연의진 또한 상처를 모두 꿰매고 그 뒤 수습을 하고 있었다.

 연의진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그래도, 이 어깨....... 이제 못 쓰겠는걸.’ 연무강은 침묵했다. 그는 조심스레 연서강의 입에서 제 손을 꺼냈다. 연서강의 이에 깨물린 손등은 치열 모양으로 피가 배어나오고 있었다. 연의진이 그것을 보고 조치를 취하기 위해 붕대를 꺼냈다.

 연무강은 그 자국을 연의진이 붕대를 감기 전까지 오랫동안 응시하고 있었다.

 문 자국이 마치 독기를 품고 문 것처럼 지독하게 남아 있었다. 쌍두뱀 신을 모시는 나라라 그런지 연무강은 문득 뱀의 독니가 생각났다. ‘뱀인가?’하고 중얼거렸더니 연의진이 ‘네?’하고 되묻는다. 연무강은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서 그는 연서강의 얼굴을 보았다.

 정신을 잃은 연서강의 얼굴은 피를 많이 흘려서 그런지 몹시도 창백했다. 원래도 바깥에서 노는 것보다는 방 안에 틀어 박혀 있기를 즐겨하던 놈인지라 낯빛이 허연 놈이었다. 그런 놈이 아파서 누워 있으니 마치 잘 만들어진 밀랍 인형을 보는 것만 같았다. 만지면 바삭, 마른 벌집처럼 부서질 것 같았다.

 그래서 연무강은 조심조심, 방금은 거부당했었던 제 손을 그의 볼에 가져다 대었다. 파르르, 정신을 잃은 와중에도 연서강의 속눈썹이 떨렸다. 정신을 잃은 와중에도 ‘거부’하는 것인가 싶어서 실소가 나왔다.

 그때 ‘형님.’하고 연의진이 그를 불렀다. 고개를 돌려 그를 보니, 괴이한 것을 다 봤다는 얼굴을 한 연의진이 중얼거린다. ‘형님은 서강일 싫어하지 않으셨습니까?’ 연무강은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싫어한다.

 유모 서씨의 일이 어쨌든 간에 그는 쭉 그래왔다. 지금에 와서 어떤 감정이 들든, 무엇을 깨달았든 간에 그간 해온 짓이 변하는 것은 또 아니었다. 연무강은 실신한 연서강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얼굴이 자신이나 자신의 친동기들과는 생김새가 사뭇 달랐다. 고모인 연우비의 얼굴이 과연 저랬던가 싶었었다.

 -.......

 저것, 을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연무강은 생각에 빠졌다. 연씨 문중의 ‘장자’로서의 연무강은 일단 ‘싫다.’라고 대답했다. 허면 ‘자신’은 저것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 건가. 확실한 것은 자신이 놈을 어떻게 대하든 이제까지 해온 짓이 있으니 저것이 결코 ‘자신’을 좋아해줄 리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과연 연서강이었다. 연무강은 차게 웃었다.

 그 사실이 너무도 싫어서 연무강은 ‘연씨 문중’에 돌연 짜증이 났었다.

               * *

 그로부터 나흘 후, 성헌당에서 연서강을 불렀다.

 간신히 그가 운신할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되자 연무의가 그를 불러 자초지종을 듣고자 했던 것이다. 집으로 돌아온 지 칠일도 넘는 시간이 흐른 뒤였다. 너무 늦은 감도 없잖아 있었지만, 연서강은 기대에 차 성헌당에 들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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