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화 (15/37)

 14.

 연서강이 진통제를 삼키는 것을 제아겸은 한가롭게 응시했다. 하루에 여섯 알. 그가 의원에게 제한받은 진통제 수였다.

 제아무리 화살촉을 빼냈다고 해도 도려내지 못한 환부는 여전히 고름과 고통을 생성하고 있었다. 고름이 차는 대로 다시 빼내고는 있지만 생살을 째서 행해야 하는 시술이라, 어깨의 상처는 아직도 낫지 못하고 있었다. 비릿한 고름 냄새가 연서강의 몸에서 떠나지 않고 있었다. 때문에 그는 제아겸이 수도에서 가져온 향초를 피우고 밥을 먹고 잠을 잤었다.

 하지만 그것도 고통이 덜한 날의 경우였다. 진통제를 모두 먹고 난 다음에도 통증이 가라앉지 않는 밤이면 그는 이를 악물고 비명을 참아내야 했었다. 그럴 때면 제아겸이 연서강의 손을 잡아주곤 했다. 그는 때로는 옛날이야기를 해주고, 또 때로는 노래를 부르며 연서강의 아픔을 달래주었다. 그런 날이 몇 날이 이어져도 그는 결코 연서강더러 수도로 돌아가는 게 어떠냐고 묻지 않았다. 그냥 묵묵히 그의 옆에 있어 주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한 날도 끝이 났다.

 이어 연서강이 물을 마시자 제아겸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자, 이제 수도로 돌아갈까.”

 그 목소리에 묻어나온 반가움과 즐거움을 읽은 연서강이 그를 보며 살짝 웃었다. 내심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그가 그간 얼마나 수도로 돌아가고 싶어 했는지가 느껴져서였다. 연서강이 ‘네, 제태상.’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도 태상의 마음과 다를 바 없었다.

 연서령이 붙잡은 인질을 본 연의향은 의아한 얼굴을 했다.

 언양을 수복했으니 국경을 회복하기 위한 전쟁은 이제 끝이 났다고 볼 수 있었다. 당분간 이곳 국경을 탄탄히 하기 위한 작업으로 몇몇 작은 전투를 해야 하겠지만, 그것은 그것이고 일단 큰 전투는 끝난 것이 맞았다. 때문에 지금 이 시점에서 어째서 연서령이 인질을 굳이 생포해 왔는지 그녀는 이해하지 못했다. 연서강이 시켰다는 연서령의 말을 듣고 더더욱 의문에 빠졌다.

 그런 그녀에게 연서강이 말했다.

 -수도로 돌아가고 싶지 않으십니까, 누님.

 당연했다. 변방에 처박힌 채 의미 없이 반복되는 싸움을 대체 몇 날, 몇 년을 해왔던가. 자신을 이곳, 변방에 처박은 조정대신들이 생각났다. 부친인 연무의의 세력이 커지는 것을 염려하여 그의 한 발을 묶어두려는 목적으로 자신을 변방에 처박아 두고 제대로 된 지원도 해주지 않았던 그들. 어떻게든, 길게 이어지는 전투를 끝내기 위해 여러 의견을 냈으나 들은 척도 하지 않았던 그들. 생각만 하면 연의향은 분노로 이가 갈렸다. 부친인 연무의는 이 참에 경험이나 쌓거라, 하며 허허 웃고 말았지만 그녀는 생각이 달랐다.

 그런 연의향의 얼굴을 보며 연서강이 이어 말했다.

 -이들을 경국의 조정에 넘기십시오.

 -경에?

 -그리고 그 대신에 국경 너머의 땅을 불태울 수 있게 해 달라 요청하십시오.

 -.......

 -부친의 세력이 커지는 것이 두려워 조정에서 아무 결정도 내리지 않는다면, 경에다가 요청을 해보도록 하십시오.

 일찍이 이 의미 없고 지루한 싸움은 하와 경의 알력 다툼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경이 뒤늦게 국내의 반란군을 저지하기 위해 도움을 요청했지만, 하제국이 전의 일로 경을 괘씸하게 여겨 도와주지 않은 데서 시작한 싸움이었다. 하제국이 경을 도와 반란군을 토벌하던가, 혹은 반란군을 은밀하게 도와 경을 무너트리던가, 원래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해서 해결해봐야 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경이 곤란함을 겪는 걸 원해 하제국은 모른 척 하기로 했다.

 거기에 연씨 문중을 적대하는 세력이 얽혀 연의향과 연서령이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연의향은 벌써 여러 번 수도로 돌아가고 싶다 연통을 넣었으나 조정에서는 그를 받아주지 못했다. 연대장군이 떠나도 서진군이 주둔하고 있는 변방 지역이 여전히 안정될 것이란 보장이 없는 이상 인사이동을 해주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길게 이어지는 싸움이니 오래 그 지역을 지휘한 연대장군이 계속 맡는 게 옳지 않냐는 게 또 조정의 의견이었다.

 허울만 좋은 변명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완전히 반란군의 뿌리를 뽑기 위해 지원을 해달라는 연의향의 말을 들어주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런 중앙의 미적지근한 반응에 연의향이 얼마나 속을 태웠던가.

 -반란군 중 변방 요직에 있는 자들을 생포했다고 경국에 알리면 경국에서 당연히 데리고 가려고 할 겁니다.

 경국의 정치는 여전히 어지러워, 반란군을 소통하기는커녕 아직 그 규모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고문을 통해 정보를 얻어낼 수 있는 귀한 인질을 데려 가지 않을 리가 없었다.

 -인질을 요구하면 경국 조정에 국경 너머의 땅을 불태울 수 있게 해 달라 말씀하십시오.

 -말하면?

 -그들이 보기에 그 땅은 불모지입니다. 불모지를 태워 땅을 고르게 하여 시야를 넓힌 다음, 국경을 넘는 도적떼를 잡기 위해 그렇다고 말씀드리십시오. 그리고 도적떼를 잡는 족족 경국에 넘기겠다고 약조까지 해주시면 아마 경국에서도 누님의 의견을 받아들일 것입니다.

 경국에서는 어찌 보면 나쁠 것 하나 없는 조건일 것이다. 물론 하제국에서 주권을 침해하니 마니 하는 소리가 나올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에게 당장 급한 것은 하제국의 주권 침해가 아니라 국내에 도사리고 있는 반란군 떼들이었다. 잠시간 고민이야 하겠지만 경국의 기득권층은 분명 제 일신만을 생각하며 흔쾌히 허락할 것이리라.

 아무리 도움을 요청해도 얼버무리며 회피하는 하제국의 조정보다야 대답이 빠를 게 분명했다.

 -눈앞을 가리는 수목을 태우고 나면 시야가 확보될 것입니다. 분명 도적떼들에게도 눈과 귀가 있다면 섣불리 국경을 넘는 일을 하지 못할 테지요. 땅의 면적이 넓어 태우는 일이 처음은 힘들겠지만, 이후 돋아나는 풀들만 계속 불태운다면 앞으로 국경을 정리하는 것이 한결 쉬워질 겁니다.

 연서강의 말에 연의향은 멍해졌다. ‘그리하면?’ 그녀가 묻자 연서강이 싱긋 웃었다.

 -이번 가뭄이 기회라고 제가 그랬었지요.

 -.......그랬지.

 마침내 연서강이 그녀가 그토록 원했던 말을 해주었다.

 -그렇게 하신다면 못해도 겨울에는 국경을 어지럽히는 도적떼를 근절할 수 있을 겁니다.

 -.......

 아무 말도 못하고 선 연의향에게 연서강이 고개를 한 번 주억거리고 말을 이었다.

 -겨울에, 수도에서 뵙겠습니다. 의향 누님.

 연의향은 그제야 연서강이 어째서 인질을 붙잡으라고 연서령에게 시켰는지를 깨달았다. 연서강의 말대로 겨울까지는 무리더라도 봄이 되면 확실히 그녀는 국경이 안정되었다고 중앙에 보고할 수 있을 것이고, 그렇다면 어지러운 국경을 빌미로 그녀를 변방에 잡아두려 했던 세력들도 할 말이 없어지게 될 것이다. 내세울 명분이 없어지게 되면 그녀는 이 지긋지긋한 변방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것도 국경을 온전히 정리한 채.

 -.......고맙다.

 연의향은 연서강의 손을 붙잡고 말했다. 연의향은 그를 절대 의심하지 않았다. 분명 제 부친께서 도움이 되라고 연서강을 보낸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그를 처음에 의심하며 믿지 못하고 윽박질렀던 자신을 반성하며 그녀는 온화하게 웃음 지었다.

 -그래. 적어도 봄에는 널 보러 가마.

 밖에는 이미 많은 사람들이 배웅을 나와 있었다. 마차에 오르기 전에 연의향이 대표로 제아겸에게 예를 표하고, 연서강을 보았다. 그녀는 ‘몸조심하렴.’이라 짤막하게 말을 남긴 후 연서강과 악수를 했다. ‘누님도 몸조심하십시오. 서령이에게도 안부 전해주시길 바랍니다.’ 연서강이 말하자 연의향이 살풋 웃음 지었다.

 배웅은 서회에서 이루어졌다. 의경에 있었긴 했지만 결국 서회에 당도한 뒤, 다시 수도를 향해 가야하기 때문에 그냥 서회에서 출발하기로 했었다. 연서령은 의경을 방비하는 일이 막중했기에 당연히 서회로 와 연서강을 배웅하지 못했다. 의경을 떠나는 연서강에 그녀는 서운한 티를 내지 않도록 노력하며 가을에 보자고 말을 남겼었다.

 가을이 되면 하제국에서는 수확제가 열렸다. 그때, ‘수확’이란 말에 알맞게 온 나라 안 관리들의 한 해 공적을 논해 특별히 상을 주는 공치식(功致式)이 열렸다. 또 관리가 아니더라도 공적이 특출하다 여겨지는 사람이 있으면 수도에 불러다 그 공적을 치하하는 자리도 마련되어 있었다. 그리고 특별히 과거시험을 시행하여 성적이 우수한 자에게 막대한 상과 관직을 주기도 했다.

 때문에 연서령이 가을에 보자고 말했던 것이다. 수확제가 열릴 시기가 되면 중직인 연의향은 자리를 비우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연서령만큼은 잠깐 본가로 돌아올 수 있을 터였다.

 그러나 그 가을은 연서강이 어느 정도 ‘기연조의 죽음’에 대해 추측이 가늠해야만 할 시기이기도 했었다. 그래서 겨울을 어떻게 지내야 할지 고민해야 할 시기였었다. 연서령에게서 그 말을 듣고 연서강은 그녀와 다른 의미로 가을을 기대했다.

 이제 전쟁은 끝이 났다.

 돌아가게 되면 자신의 부친인 연무의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그는 몹시 궁금했다. 연의향과 헤어져 서회를 빠져나오는 마차 안에서 연서강은 내내 그 생각만을 했었다. 아버지는 무어라고 하실까. 이제 자신이 쓸모 있다고 생각을 바꾸셨겠지. 또 무강 형님은 자신을 보고 뭐라고 생각할까. 생각을 할수록 자꾸만 좋은 쪽으로 연상이 되어 연서강은 벽에 기대어 평온한 얼굴로 잠이 들었다.

 전쟁터로 가게 되면 맥없이 죽을 것이 분명하다는 추측을 뒤엎고 자신은 살아남았다.

 어디 살아남기만 했는가. 연의향과 연서령의 기뻐하는 얼굴이 아른거렸다. 그곳의 병사들이 자신을 보고 감사하다고 전한 말들도 떠올랐다. 수도로 향하는 그의 몸속에는 연의향이 부친인 연무의에게 특별히 전하는 편지도 들어 있었다. 종이봉투를 찢어 읽지 않아도 연서강은 거기에 무슨 내용이 적혀있는지 알 것 같았다. 분명히 자신과 관련된 내용들일 테지.......

 생각 중간 중간에 끔찍한 장면과 기억들이 스쳐지나갔지만, 모두들 마지막에 와서는 아름답고 온화하게 치장되었다.

 잘 되었다.

 그 말 한마디로 연서강은 의경에서 있었던 모든 고역들을 모두 잊을 수 있었다 .참으로 잘 되었따. 어깨는 여전히 아프고 어쩌면 앞으로 영영 못쓰게 될지도 모른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참으로 정말 잘 되었다. 이제껏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행복한 충만함이 그의 현재 뼈아픈 고통과 어둑했던 순간들을 가리었다.

 후회도, 자책도 많았지만 참 잘 되었다.

 “.......”

 그리고 그러한 생각을 하면서 잠이 든 연서강의 얼굴을 제아겸은 내내 침묵하며 지켜보고 있었다. 그는 참으로 잘 되었다고 생각하는 연서강과는 달리 여러 가지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해 보였다. 제아겸이 턱을 쓸며 한숨 같이 한 마디를 내뱉었다.

 “.......하얀 뱀이라.”

 잠이 든 연서강에게서는 어렴풋이 피비린내와 소독약 냄새가 났다. 그 냄새들이 자아내는 지독한 ‘죽음’의 자취에 연서강은 내내 향초를 피우지 않으면 제대로 된 잠을 이루지 못했었다. 때로는 멍청하게 벽을 바라보며 어떤 몹쓸 생각에 초조해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구덩이에서 구해질 당시의, 그 황망했던 얼굴.

 제아겸은 긴 숨을 내쉬며 두 눈을 감았다. 연서강의 고집대로 그가 전쟁터에 머무를 수 있도록 도와주었지만 과연 그게 옳았던 일인지는 제아겸도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렇게 해주지 않으면 당장에라도 접시에 코 박고 죽을상이라 어찌할 수가 없었다. 당장 제 감정을 못 이겨 숨질 바에는 차라리 고집대로 해주어 잠깐이라도 희락을 맛보게 해주는 게 낫다, 생각이 들었었기 때문이었다.

 “뱀.”

 하얀 뱀에 대해서는 그가 아는 건 없다. 다만 ‘뱀’이라고 하면 알 듯도 했다.

 그는 연서강을 찾아 헤맸던 당시의 시간들을 떠올렸다. ‘되돌아 온 자’의 자취를 찾아 더듬어 길을 걷던 그 순간을. 시체들로 가득한, 죽음으로 뒤덮여 고요하기 짝이 없는 계곡을 지나 사리분별을 할 수도 없을 정도의 깊은 숲속을 헤맸다.

 하지만 순간, 속세의 것이 아득하게 느껴질 정도로 깊은 숲속에서 제아겸은 딱 한 번 연서강의 ‘자취’를 놓쳤었다. 연서강의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되돌아 온 자’의 특유의 느낌이 뚝 끊긴 것이다.

 그럴 경우, 제아겸이 내릴 수 있는 판단은 딱 하나 뿐이었다.

 죽음.

 그러나 곧 얼마 되지 않아 다시 ‘자취’를 좇을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잠깐 자신이 몸이 곤권하여 잘못 느꼈었나 보다, 단순히 생각하였었다. 느낌만을 믿고 찾아다녔으니 예민해진 감각이 피곤해서 그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만약 그것이 아니었더라면.......

 “.......”

 제아겸은 슬그머니 눈을 뜨고 눈앞의 연서강을 바라보았다. 안도한 얼굴로 깊은 잠에 빠진 그는 웬만한 소란에도 꿈쩍을 하지 않을 것만 같았다. 야윈 얼굴에, 몹시도 순하게 생긴 이목구비가 안쓰럽기 그지없게 느껴졌다. 한 번 죽음이 드리웠던 사람답게 낯이 생기 하나 없이 창백하다.

 제아겸은 깊은 한숨을 쉬었다.

 “제발 내가 더 이상 자네 일에 관여하지 않을 수 있게 도와주게.......”

 연서강에게도 간절한 뜻이 있겠지만 그것은 제아겸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 뜻은 그가 오로지 숨만 쉬고 그 외의 다른 일은 벌이지 않아야만 이룰 수 있었다. 자신이 이번에 연서강을 도와준 것이 엉뚱한 곳으로 튀어 자신의 삶을 비틀지 않길 그는 빌었다.

 제아겸은 다시 눈을 감았다. 곧 신도 버리고 달아날 만큼 아득한 어둠이 그의 시야를 점령한다. 시작도 끝도 없는 어둠은, 마치 ‘그때’와도 같아서 그는 살짝 인상을 썼다.

 마차는 계속해서 말을 바꿔 달리며 수도를 향해 달렸다.

 그로부터 나흘이나 지나서야 마차는 마침내 수도에 닿았다.

 부상이 중하다는 소식이 먼저 수도에 닿았기 때문에 연서강은 제아겸과 달리 제 집으로 바로 갈 수가 있었다. ‘연서는 좋겠군. 고단한 몸을 이끌고 황상께 보고를 올리러 가야 하는 나와는 달리 집에서 푹 쉴 수 있으니.’ 너스레를 떠는 태상을 어색한 웃음으로 배웅하고 나서 그가 제일 먼저 향한 곳은 부친이 계시는 성헌당이 아니었다.

 녹우당이었다.

 집안 가솔들이 본채를 지나쳐 녹우당으로 급하게 가는 그를 보고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잠시 후에야 ‘막내 도련님이 오셨어요!’ 부산을 떨며 연무의에게 알리러 가는 사람들을 연서강은 무시했다. 당연히 옆에 따라 붙어 ‘도련님, 주인님께 먼저 인사를 드리고.......’라 말하는 사람들도 무시했다.

 수도에 도착했을 때부터 빨리 돌아가고 싶어 참을 수가 없었다. 그가 돌아가고 싶던 곳은 당연히 집이 아니었다. 그에게 있어 본채는 자신의 집이 아니었다. 그에게 있어 집이라 진실로 칭할 수 있는 곳은 바로 ‘녹우당’뿐이었다. 십 몇 년을 유희하며 지냈던 그곳이 바로 연서강이 그리워할 장소였다.

 허나 단순히 그곳이 ‘녹우당’이기 때문에 이리도 그리운 것은 또 아니었다. 십 몇 년 동안 거처했던 곳이라 그곳이 마냥 평온하고 아늑하게 느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하나 더 그를 서두르게 만드는 이유가 있었다.

 나흘이나 되는 긴 여행길로 피곤해질 대로 피곤해진 몸이 무거웠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있을 테니까. 거기에.

 녹우당으로 통하는 길로 들어서자마자 녹우당에서부터 흘러나오는 꽃향기가 걸음마다 자욱하게 깔렸다. 이제 완연히 여름이 된 녹우당은 봄과 종류가 다른 갖가지 꽃들이 가득 피어 있었다. 메꽃, 한련화, 자화문, 금불초, 만수국, 촉계화 등이 피어난 녹우당의 정경은 단려한 봄과 달리 화려하고 다채로운 미가 만개하여 있었다. 교태부리는 기녀의 치맛자락처럼 곱디고운 녹우당의 모습이 연서강은 반갑기 그지없었다. 비수리와 싸리나무에도 소담스런 꽃이 피어 그를 맞이했다.

 한 떨기 꽃바구니와도 같은 정경의 한 가운데.

 그 한 가운데에서, 연서강은 미리 연락을 받고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고운 이를 보았다.

 “.......연조!”

 하고 소리치자 초조하게 정원을 서성이던 남자가 자신을 돌아보았다. 그가 자신을 보고 웃는다. 해서 연서강도 따라 웃었다. 무겁던 발걸음이 순식간에 구름 위를 걷는 것 마냥 가벼워졌다.

 겨우 한 달 남짓 못 보았을 뿐인데 무척이나 그리웠다. 아니, 실질적인 시간은 고작 한 달 남짓 밖에 되지 않았더라도 연서강에게 있어 그 시간은 삶과 죽음을 오가는 무섭고 참혹한 순간들이었다.

 기연조를 보자마자 연서강은 깨달았다.

 그 피비린내 나는 전쟁터에서 진실로 싸웠던 것은 연서령과 병사들뿐이었다고 잘못 생각했었다. 자신은 그저 편안한 자리에서 싸움을 둘러보았을 뿐이라고 허튼 착각을 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자신도 역시 그 전쟁터에서 싸웠던 것이었다.

 어떻게든 공을 세워야겠다, 어떻게든 살아야겠다, 어떻게든 .......또 쓸모가 있어져야겠다고.

 치열한 의지 속에서 나온 묵직한 압박감과 그는 줄곧 싸우고 있었다. 그 압박감을, 그는 지금에서야 겨우 벗어던진 것이었다. 자신과의 악전고투를 치르고 겨우 승리하여 맛본 과실은 고생한 만큼 달았다.

 연서강은 기연조가 내미는 손을 잡았다.

 제 것과 하나 다를 것 없이 투박하기 그지없는 남자의 손이었지만 연서강은 그걸 ‘상’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더 열심히 한다면 눈앞의 남자는 그 겨울을 지내고도 살아 있으리라. 그리고 또 다시 자신을 만나러 오고 웃어 주리라. 목표 하나를 무사히 성공해냈다는 기쁨이 그로하여금 앞으로를 낙관적으로 바라보게 만들었다.

 “어서 오게.”

 “보고 싶었어.”

 .......정말로 보고 싶었다.

 기연조가 연서강의 말에 ‘나도 그랬다네.’하고 대답했다. 연서강은 그 말에 고개를 저었다. 아니, 기연조는 상상조차 못할 것이다. 기연조가 자신을 보고 싶어 했던 것보다 훨씬 더 자신이 그를 그리워했다는 것을. 이 마음의 크기 차이가 연서강을 못내 씁쓸하게 만들었으나 지금은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왜 그리 걱정만 끼치나, 자네는!”

 지금은 기연조가 그렇게 말해주는 것만을 기뻐하기로 했다. 연서강은 ‘미안하네.’라고 답하며 웃음 지었다. 다른 것들은 일단 모두 뒤로 미뤄두고 지금은 기연조를 다시 보게 되었다는 그 기쁨만을 만끽하고자 했다.

 여름의 녹우당은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형형색색의 요초(妖草)들이 저마다의 꽃들을 피우고 그 농염한 향기에 이끌려 벌과 나비들이 날아들었다. 한가로이 나는 나비의 날개는 비단결처럼 곱게 반짝인다.

 바깥의 소란으로 인해 녹우당 밖에 나온 모씨 아줌마가 연서강을 보고 눈물을 흘렸다. 기연조와 연서강은 그런 그녀를 달랬다. 오늘 분의 진통제를 아직 먹지 못했지만 연서강은 더 이상 진통제를 먹지 않아도 될 듯 했다. 녹우당과 기연조. 그게 오늘 연서강의 진통제였다.

 꿈꾸듯 아름다운 귀환이었다.

               * *

 “돌아왔다고?”

 하인에게서 말을 전해 받은 연무의는 혀를 쯧쯧 찼다. 명색이 명문가의 도련님이라는 녀석이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어른께 인사를 하러 오기는커녕 바로 녹우당으로 내뺐다니 한심하기 짝이 없었다. 아무리 집안의 천덕꾸러기로 내버려두었다곤 하나 그리 예의 없게 굴라 가르친 적은 없었거늘.

 생각하며 연무의는 옆으로 시선을 돌려 입을 열었다.

 “앉아라. 커다란 놈이 벌떡 서있으니 정신이 사납구나.”

 그 말은 하인이 아니라 줄곧 그의 옆에 앉아 있었던 연무강에게 한 말이었다. 연서강이 돌아왔다는 말에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났던 연무강이 연무의의 말에 다시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 앉은 그가 낮은 목소리로 ‘죄송합니다.’하고 말했다.

 “죄송할 게 또 무어고, 놀랄 만도 하지. 죽었다는 놈이 돌아왔으니.”

 짐짓 대수롭지 않게, 그러나 내심 큰 녀석이 저리 동요하다니 별 일도 다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연무의가 중얼거렸다. 연무강이 그 말에 살짝 인상을 썼다. ‘놀란 것은.’하고 말을 잇는 연무강에게 연무의가 손을 내저어 보였다. 되었으니 더 이상 쓸데없는 말을 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나가보도록 해라.”

 연무의가 손을 휙휙 내저으며 책장을 넘기자 하인이 고개를 갸웃했다.

 “부르지 않으셔도 됩니까?”

 “괜찮다. 어차피 알아서 제 발로 올 녀석을 굳이 부를 필요가 무에 있느냐. 어깨 부상이 심각하다 들었었는데 고 놈 하는 행동을 보아하니 그다지 심각하지는 않은 것 같구나.”

 또한 제대로 된 훈련도 받지 못한 골샌님 녀석이 전쟁터에서 죽을 뻔도 했다니 잠시잠깐 제 마음대로 하게 내버려두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어여쁜 정인(情人)이라도 있으면 그 처자나 찾아가 무사 귀환한 기쁨을 나눌 터인데, 고 놈은 녹우당에 들어가 돌아온 기쁨을 누리는 것이 고작이라니. 연무의는 웃음기 섞인 목소리로 ‘세상천지에 그런 산와(山蝸: 달팽이) 같은 놈을 다 보았나.’하고 중얼거렸다.

 그다지 화가 나지 않은 듯한 연무의의 목소리에 하인은 그가 괜찮다 한 말이 진실이라는 걸 깨닫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명줄이 참으로 길기도 하지.”

 하인이 완전히 물러간 것을 보고 연무의가 문득 중얼거렸다. 참으로 길기도 해. 이제까지 했던 대로 녹우당에 처박혀 소요하고 노닐었다면 그 목숨을 길게 부지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니, 전쟁터에 나가 고생하고 목숨의 위협을 받기는 했으나 그 보람이 없잖아 있었다 할 수 있겠다. 연무의의 말에 연무강이 그에 동조하는 것인지, 아니면 마땅히 더 할 말이 없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얼굴로 침묵했다.

 “.......”

 묘하게 조용해진 연무강에게 연무의가 흘깃 시선을 던졌다. 눈을 내리깐 연무강은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도 했다. ‘무강아.’하고 연무의가 일부러 그를 부르자 연무강이 퍼뜩 고개를 들고 ‘네. 말하십시오.’라고 대답한다. 그 모습을 보니 완전히 넋이 나간 것은 아닌 듯 했다. 얄궂게 웃으며 연무의가 입을 열었다.

 “왜. 그냥 거기서 죽었으면 했었느냐?”

 평소에도 막내아들을 못 잡아먹어 안달이었던 연무강이었으니 충분히 그럴 법도 했다.

 집안을 위해서라면 제 간과 쓸개도 빼줄 듯이 구는 첫째이기에 연무의는 연무강이 연서강이라면 질색하는 이유를 어느 정도는 이해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더라도 역시 연서강을 대하는 장남의 태도에는 지나친 감이 없잖아 있기도 했었다. 허나 그에 대해서 연무의는 깊이 고민하지 않고 그저 연서강이 첫째에게 몹쓸 짓이라도 했겠지, 생각하고 말았다. 어쩌면 그저 성격상 맞지 않을 수도 있었다.

 “허나 이미 살아서 돌아온 것을 어찌 하겠느냐. 하늘이 고놈을 예쁘게 보았나보지.”

 사실 태상이 의경에 갔다는 소식을 접했어도 연무의는 이미 그른 일이라고 생각했다. 연무의는 연서강이 틀림없이 죽었다고 생각했다. 굳이 자세한 사정을 듣지 않고 연의향이나 연서령이 보내온 연통만 봐도 사는 것보다는 죽는 것이 당연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고놈은 산속을 헤매다 어디서 천년 묵은 영지나 산삼이라도 캐어 먹었는지 어찌어찌 긴 시간을 견뎌냈고, 또 태상이 그런 녀석을 발견해 주었다고 한다. 운이 참으로 좋은 녀석이었다.

 “.......”

 그러나 평소 같으면 ‘예.’하고 대답하고 말았을 첫째가 오늘은 지나치게 조용했다. 그것이 이상하게 느껴져 연무의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처음 하인이 연서강이 돌아왔다는 말을 전했을 때부터 연무강의 반응이 심심했었던 것 같았다. 불같은 첫째 녀석의 성격으로는 말을 전해 듣기가 무섭게 ‘어찌 오랜 만에 집에 돌아왔는데도 아버님을 만나지 않고 바로 녹우당으로 향했느냐.’며 성을 냈어야 마땅했다.

 “네가 쓸모없고 하찮다 생각한 연서강이 변방에서 활약했다는 소식을 접하니 마음이 좋지 않으냐?”

 다음으로 할 수 있는 생각은 바로 그거였다. 거기에는 연무강이 단박에 반응을 보였다. ‘그런 농담일랑은 하지 마십시오.’하고 평소처럼 무뚝뚝하게 대답한다. 여기서 더 침묵했다간 이보다 심한 말도 듣겠다 싶었는지 연무강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저, 조금 놀랐을 뿐입니다.”

 “하긴 꼼짝없이 죽었을 거라 생각했던 놈이 살아 돌아왔으니.......”

 연무의는 턱을 쓸며 중얼거렸다. 서회와 의경의 상태야 급박하기 이를 데가 없었겠지만, 거기서 전해져 오는 소식만 기다리는 여기는 아니었다. 그간 자매가 보내왔던 서신의 내용들을 토대로 이것저것 생각해보기에 충분했던 것이다. 연무의는 눈을 가늘게 좁혔다.

 “쓸모없지 않다.”

 연무의는 행방불명되었던 연서강을 찾아낸 직후 연의향이 보내왔던 서신의 내용을 떠올렸다. 이전보다 한결 정돈된 연의향의 글씨는 서신에서, 그에게 ‘연서강을 찾아냈으며 어깨의 상처가 극심하다. 바로 수도로 돌려보내 치료를 받기를 원했으나, 연서강이 스스로 언양을 회복할 때까지 있길 바랐다. 자신 역시도 연서강이 아직 쓸모가 있다 고민 끝에 이곳에 머무는 것을 허락하였다.’라고 간략히 전하고 있었다.

 연무의는 연서강이 구해지자마자 바로 수도로 돌아올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리 한다 해도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 아이라면, 그가 어깨의 부상과 죽을 뻔했다는 공포로 몸과 정신이 모두 엉망진창이 된 채 돌아온다 해도 연무의는 그저 그렇구나, 하며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허나 연의향의 서신은 놀랍게도 그런 연무의의 예상을 완벽히 뒤집는 내용으로만 이루어져 있었다.

 놀라운 것은 비단 내용만이 아니었다.

 아직 변방의 사관이 제대로 된 보고서를 작성하지 않은 상태라 시시콜콜한 이야기까지 모두 알 수는 없었지만, 대충의 경과정도는 연무의도 연의향 연서령 자매가 보내온 서신을 읽어 파악하고 있었다.

 “.......쓸모가 있다.”

 “예전보다 나아졌나 봅니다.”

 연무강이 딱딱하게 대꾸했다. 슬며시 웃으며 연무의가 중얼거렸다.

 “쓸모 있는 건 많으면 많을수록 좋지.”

 슬하에 자식들이 모두 유능한 것은 사실이나, 연무의는 도무지 연무강을 제외한 다른 아이들에게는 제대로 된 일을 맡길 수가 없었다. 둘째인 연무진과 막내 연서령은 성격이 가볍고 덜렁거려 중요한 사실을 함부로 알릴 수가 없고, 셋째인 연의향은 그 둘보다는 낫지만 융통성이 다소 부족해 뭔가 켕기는 일을 맡기려고 할 치면 퍽 탐탁지 않아 했었다. 한 술 더 떠 넷째인 연의진 녀석은 자신은 아무것도 못 들은 척, 못 본 척 하겠으니 발을 빼게 해 달라 말까지 한 참이었다.

 “참으로 재미있구나.”

 그에 연무강이 고개를 들어 연무의를 바라보았다.

 “무엇이 그리 재미나십니까?”

 책을 덮으며 연무의가 가벼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쓸모없어 버린 패라 생각했던 것이 돌연 돌아와 숨겨져 있던 제 사용법을 가르쳐주니, 어찌 재미가 안 생기고 배기겠느냐?”

 게다가 연서강은 일찍이 연무의에게 이리 고한 적도 있었다. 전쟁터에서 무사히 돌아오게 되면 자신을 조금이라도 쓸모가 있다고 봐주시겠느냐고. 연무의는 과연 전쟁터에서 무사히 돌아오게 된 연서강이 이번에는 무슨 말을 할지 기대가 되었다.

 “보아라, 무강아. 의경이 고립무원에서 벗어나게 되고 그 아이가 무사히 돌아오게 되면 무척 재미난 일이 생길 거라 내가 말하지 않았더냐.”

 “.......저는 아버님께서 무엇이 그리 즐거운지 잘 모르겠습니다.”

 무심한 대답에 연무의가 쓴웃음을 지으며 첫째를 돌아보았다. 연무강은 여전히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대부분의 상황에서는 누구보다도 유능하고 믿음직스러운 첫째건만, 연무의는 이럴 때만큼은 그에게 좀 아쉬운 감정을 느꼈다. 이럴 대에는 차라리 조금 입이 가벼워도 말 많은 둘째가 나았다.

 “.......의진이를 불러오도록 하겠습니다.”

 더 이상 제 아버지와 이해할 수도 없는 동문서답을 주고받고 싶지는 않았던지 연무강이 불쑥 말을 내뱉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처리해야 할 일도 모두 끝났고 볼일도 모두 끝난 참이었던지라 연무의도 더 이상 그를 잡지 않았다. 연무의가 ‘알겠다. 어서 부르도록 하렴.’하고 돌아보지도 않고 대꾸했다.

 연의진은 연무진의 셋째 아들로 어의(御醫)인 태의령의 밑에서 일하고 있었다. 이번에 연서강의 어깨가 크게 다쳤다는 소식을 듣고 아무래도 집안사람이 바깥사람보다는 낫지 않겠냐 싶어, 연무의가 특별히 태의령에게 부탁해 연의진으로 하여금 연서강의 상처를 보도록 하였다.

 사람의 병과 상처를 보듬는 일이 다망하기는 어디나 마찬가지라서, 태의령은 탐탁지 않아하는 눈치였지만 태위인 연무의의 부탁을 거절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해서 연서강이 돌아오는 즉시 연의진이 그의 상처를 보기 위해 집으로 오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원래부터 그리 약속되어 있었던 일이긴 하지만 연무의는 방을 나가는 연무강의 등을 보며 작은 의구심을 느꼈다. 아무리 그렇다하더라도 연의진을 저 놈이 직접 부르러 간다니 별 일이 다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무강이 끔찍이 연서강을 싫어하는 것은 집안 가솔의 어린 아기도 다 아는 사실이 아니었던가.

 “혹 집안에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을 달리 하게 된 것인가.”

 연무진이 할 수 있는 추측이라고는 고작 그 정도였다. 연서강이 변방에서 활약했다는 이야기는 궐 안에도 이미 퍼진 이야기였다. 빼어난 연씨 문중의 자제들 중 유일하게 못났다던 막내아들도 실은 전혀 못난 것이 아니었다더라. 그런 소문이 퍼지자 연무의는 본의 아니게 주변 사람들에게 막내아들의 출중함을 몰래 숨겨둔 사람으로 취급받게 되었었다. 당연히 연씨 문중의 평판 또한 올라갔다.

 그런 상황이니 연씨 문중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여 연서강을 배척했었던 연무강의 입장이 묘해질 만도 했다. 해서 그러한가....... 허나 연서강에 대한 적대감과 멸시 외에는 평소 감정을 드러내는 적이 드물었던 첫째인지라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연무의로서도 더 이상 추측하기가 힘들었다.

 -돌아왔습니다.

 연무강은 머릿속으로 하인의 보고를 되뇌며 걷고 있었다.

 “연서강이.......”

 그놈이 돌아왔다고? 집으로?

 사실 그리 놀랄 것도 없는 말이기도 했다. 연무강도 변방에서 일어난 일을 실시간으로 전달받고 있었던 차였기 때문이었다. 태상이 의경에 갔을 때부터 서진군이 언양을 회복했다는 소식까지 그는 모조리 전해 듣고 있었다. 해서 연서강이 언양 수복 후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는 소식은 그에게 그리 놀랄만한 것도 아니었다.

 찾았다, 소리를 들었으니 마땅히 전쟁이 끝난 후 돌아와야 했다.......

 돌연 일전에 부친이 보여주었던 서신이 떠올랐다. 그것은 연의향이 보낸 서신으로, 연서강을 찾았다는 내용과 함께 어깨 부상이 중하지만 연서강 자신이 언양을 회복한 이후 귀환하겠다고 의견을 밝혀 그렇게 하기로 결정 했다는 내용이었다. 부친인 연무의는 그때도 의미모를 미소를 만면에 띠우며 연무강을 향해 말했었다.

 -보거라, 무강아. 향이가 무어라고 하는지.

 연무의는 연서강을 찾았다는 사실보다는, 연서강이 부상을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그곳에 남아 있기로 고집을 부렸다는 것에 더 의미를 둔 것 같았다. ‘의향이가 이 아비에게 거짓을 고할 리도 없으니 이 소식은 진실인가 보구나.’ 그렇게 후에 덧붙이는 것을 보니 확실히 그랬다.

 최근의 연무의는 이전과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이는 연서강을 무척이나 재미있어 하는 듯 보였다.

 유용성. 그래, 빌어먹을 유용성.

 자신의 부친은 그 망할 놈에게 어떤 ‘쓸모’를 발견한 것 같았다.

 허나 흥미로워 하는 부친과 달리 연무강은 하나도 즐겁지 않았다. 연무의가 연의향이 보내준 서신을 보여주었을 때도 그는 그러했다. 서신을 보여준 연무의의 뜻과 달리 연무강의 시선을 끈 것은 ‘연서강을 찾았다.’라는 대목이었다.

 -.......찾았군요.

 그렇게 말하고 나서야 연무의가 그제야 ‘그랬나 보구나.’하고 중얼거린다. 연무강은 어째서인지 그 문장을 보자마자 속이 차갑게 가라앉았었다.

 이상하게 연무강은 그 이후로 줄곧 그랬었다. 연서강이 죽었다는 소식을 접한 이후, 그는 세상만사가 죄다 불쾌하고 화가 났었다. 그 불쾌함의 정도는 태상을 만나고 온 이후로 더욱 심해졌었다. 연무의의 명으로 수안궁의 태상에게 서신을 전하러 갔었다가 태상에게서 어처구니없는 말을 들었던 것이다.

 정말 연서강이 죽길 바라냐고? 당연하지 않은가. 몇 번이나 속으로 되뇌었던 말이 아니지 않은가 싶었다. 그건 불변과도 같은 사실이었다. 허나 어째서인지 연무강은 그리 묻는 태상의 면전에다 바로 ‘당연하다.’라고 대답하지 못했다.

 ‘나’는 연서강이 죽길 바라나? 정말?

 .......그 물음에 나온 대답은 어쩐지 변명과도 같은 이유였다. 그 놈은 연씨 문중을 위해서라도 거기서 죽어주는 게 낫다는. 대답을 들은 수안궁의 태상은 ‘그렇군.’하고 간단히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었다. 연무강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 대답에는 자신의 ‘의지’가 배제되어 있었다. 그것을 수안궁의 태상이 눈치 챈 것만 같았다. 어째서 태상의 앞에서는 그리 대답했었는지 그도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허나 틀린 말은 아니었다. 자신은 ‘집안’ 때문에 연서강이 죽어주길 바란다.

 그렇다면 ‘나’는?

 연무강은 수안궁에 나온 이후로 내내 께름칙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인계의 것이 아니라 신계에 속했다 풍문이 도는 수안궁에서 인간이 아닌 무언가가 자신의 가슴속에 들러붙은 것만 같았다. 그 무엇이 자꾸만 연무강의 마음을 깔짝거리며 괴롭혔다. 사각, 사각, 긁어내렸다.

 그 께름칙한 기분이 계속되면 계속될수록 연무강은 자신이 점점 초조해지는 것을 느꼈다. 이 초조함을 없애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해야 할 것 같은데 무얼 어떻게 해야 할지 당최 알 수가 없어 더더욱 그는 화가 나고 조급해졌다.

 -.......

 답답함에 때때로 책상을 내리쳤더니 그때마다 부관이란 놈이 와들와들 사시나무 저리 가라정도로 떨며 자신의 눈치를 살폈다. 그 꼴을 하루에 몇 번이나 보는 것도 넌더리가 나고 짜증이 일어서 다음에는 궐 안의 부대들을 모아 훈련의 정도를 정비했었다. 그러나 부대들을 정비하고 나니 연무강은 나태하고 군기 빠진 부대의 병사들에 더더욱 화가 났다. 해서 훈련 교관들을 불러 훈계한 뒤에 새로이 훈련 일정표를 짜주었다. 새 일정을 받아든 훈련 교관들은 어째서인지 얼굴이 시퍼레진 채 그 자리를 떠났었다.

 그 얼굴이 어떤 뜻이었는지 연무강은 동생인 연무진이 허겁지겁 달려와 ‘형, 형님. 이, 이러면 퇴근이 세시진이나 늦어지게 되니, 무, 무리라고....... 교, 교관들이.’라고 말했을 때에야 깨달았다.

 할 말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할 것이지 이런 식으로 동생에게 전해 대신 말하게 하다니. 훈련 교관들의 정신 상태는 물론이요, 그 말을 듣고 허겁지겁 달려와 교관들이 시키는 대로 말을 전하는 동생 놈의 마음가짐도 글러먹었다. 연무강은 분노하며 무술 강습을 핑계로 교관들과 연무진을 먼지 나도록 두들겨 팼다. 덕분에 교관들이 모조리 몸져누워 결국 연무강이 새로 짠 훈련 일정표는 실시되지 못했다.

 며칠 내내 하루하루가 매 번 그런 식으로 지나갔었다. 그나마 부친인 연무의의 앞에서는 냉정을 찾을 수 있었지만. 사실 그것은 냉정을 찾았다고 하기 보다는 오히려 정신을 빼놓고 있는 것에 가까웠다. 몇 번이나 부친인 연무의가 그를 ‘무강아, 무얼 그리 생각하고 있느냐?’하고 물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었다. 연무의를 보면 자연스레 연서령이 보낸 서신의 내용이 생각났었기 때문이었다.

 연서강이 죽었다는.

 머릴 떨어져 있으니 연서령과 태상이 그 변방에서 무슨 짓을 하고 있을지 가늠조차 할 수 없다는 것도 그는 짜증이 났다. 놈의 시체를 찾았을까, 아니, 아직은 아니다. 시체를 찾았다면 즉각 찾았노라, 수도로 연통을 넣었을 것이 분명했다. 아니, 진정해라, 연무강. 태상이 변방으로 내려간 지 겨우 사흘밖에 지나지 않았다. 아직 태상은 의경에 도착도 하지 않은 시간인 것이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초조해지고 다급해져서 연무강은 깨닫고 보면 자신도 모르게 책상을 손가락으로 두들기고 있었다.

 시체, 시체, 그놈의 시체.

 자신의 두 눈으로 그놈의 시체를 보지 않는 이상은 놈이 죽었다는 말을 믿기 어려웠다.

 그랬다! 어쩐지 계속해서 기분이 좋지 않고 불쾌하기 짝이 없다 싶었더니, 역시나 그런 이유에서였던 것이다. 자신의 두 눈으로 연서강의 시신을 확인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리도 초조한 기분이 드는 것이리라.

 연무가은 그렇게 자신의 요즘 정신 상태에 대한 원인을 규명했었다. 허면 이 더러운 기분에서 벗어날 방법도 간단히 찾아진다. 연서강은 죽었다. 놈은 죽은 게 확실하니 더 이상 여기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으면 되었다. 부친인 연무의도 말하지 않았나. 녀석은 죽은 게 당연하다고.

 그러니 자신은......, 더 이상 그것에 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하지만 날이 지나고 또 지나도 그 께름칙한 기분은 도무지 사라지지 않았었다.

 그러던 중에 연무의가 연의향이 보낸 서신을 그에게 보여주었던 것이었다. 연무강은 ‘찾았다.’라는 부분을 몇 번이고 보고 또 보았다. 연서령이 보낸 서신의 내용 중 ‘실종 되었다.’라는 부분을 보고 또 보았듯이. 뭐라 딱히 다른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냥 연무강은 계속해서 그 글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숨이 찰 정도로 부글거리던 속이 순간 가라앉은 것도 그때였다. 무작정 일을 하고, 다른 물건에 화풀이 하고, 미친 듯이 속으로 ‘당연하다. 당연하다!’ 말을 씹고 씹으며 삼켰어도 풀리지 않던 기분이 그 문장을 보자마자 일순 정지했었다.

 정말로 오랜 만에 찾아온 정적 속에서 연무강은 중얼거렸었다.

 -살, 았다는 말입니까?

 -하늘이 도운 게지.

 연무의는 연무강의 손에서 편지를 거두어 간 뒤 그것을 차곡차곡 접어 서랍 속에 넣었다. 살았다. 연무강은 그 말을 속으로 곱씹으며 연무의가 하는 행동을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살았다?

 -혹여 수안궁의 태상이.

 생각나는 사람이 있어 말하자 연무의가 ‘그 치가 정말로 그 아이를 찾을 수 있을 줄은 몰랐거늘.’하고 말했다. 연무강은 반사적으로 갈색 눈의 태상을 떠올렸다.

 순간, 그의 속은 다시 뒤집어졌었다.

 “.......”

 연무강은 가던 걸음을 멈추고 자신이 이제껏 걸어온 길을 돌아보았다. 제법 걸었다고 생각했는데 부친이 계신 성헌당 언저리를 겨우 벗어났을 뿐이었다. 지나가던 하인 하나가 ‘궐로 돌아가십니까? 마차를 부를까요?’라고 묻는다. 궐로 돌아가는 길이 맞긴 했다. 허나 연무강은 잠깐 망설였다.

 “아니, 되었다.”

 그 대답에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하인은 ‘그러시면 필요할 때 불러주십시오.’하고 말하고는 다시 제 가던 길을 갔다.

 “.......”

 그런 하인의 등을 응시하며 연무강은 자신의 행동에 의아함을 느끼고 있었다. 어서 입궁하여 연의진에게 연서강이 녹우당에 가 있노라는 말을 전해야 했다. 그럴 작정으로 성헌당을 나온 것이 아니었던가. 그런 자신이 왜 지금 마차를 부르겠다는 하인의 말을 거절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뒤늦게 아차, 싶어 하인을 부르려고 했지만 그는 일이 바쁜 듯 벌써 저 멀리로 사라진지 오래였다. 또 자신이 멍하게 서 있었나 했다.

 요즘 따라 연무강은 자신이 대체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완연한 여름이 된 지금, 본채 주변도 완전한 여름의 빛깔을 띠고 있었다. 매화나무 꽃이 모두 지고, 대신 뻗은 나뭇가지 끝마다 푸르른 잎이 매달려 푸른 그늘을 바닥에 드리우고 있었다. 그 잎사귀 사이로는 벌써부터 동그란 매실도 보였다. 화단에 언뜻 언뜻 핀 꽃들도 모두 매년 여름이면 보는 것 여름 꽃들로 바뀐 지가 오래였다. 내리쬐는 햇볕 또한 부드러운 바람을 머금은 봄바람에서 어느덧 축축하고 따가운 것으로 그 성질도 달라졌다.

 “.......”

 무슨 생각에서인지 연무가은 언뜻 녹우당이 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니, 사실은 자각하고 나니 자신이 녹우당 쪽을 보고 있었다는 말이 옳았다. 자신이 녹우당 쪽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직후 또 한 차례 울컥 짜증이 치솟았다. 잠시간 ‘살았다.’라는 말로 사그라졌던 께름칙한 기분이 또 다시 부글부글 수포처럼 끓어올라 가슴속을 채우기 시작한다.

 그래서 그는 녹우당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가슴 속에서 부글거리고 있는 이 이름 모를 기분이 연서강으로 하여금 생긴 불쾌함이라면 그의 얼굴을 한 번 봐 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더불어 놈의 얼굴을 보고 놈이 ‘살아 있다.’라는 것을 자신의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나면 이 불쾌함이 다른 어떤 것으로 변질되겠지 싶기도 했다. 그 ‘다른 어떤 것’이 어떤 것인지는 짐작조차 할 수 없지만 그것이 무엇이 되었건, 지금 느끼고 있는 이 께름칙한 기분보다야 나을 것이다.

 어차피 마차를 불러줄 하인도 멀리 사라졌으니.......

 그렇게 녹우당으로 통하는 길로 들어서니 예의 짙고 묵직한 꽃향기가 연무강의 코끝을 괴롭혔다.

               * *

 어렸을 때부터 연무강은 원하는 것이 없었다.

 그가 기억하는 최초의 기억이 바로 그것에 관한 일이었다. 그의 생일 날, 어머니께서 그에게 인자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우리 강이는 무엇을 원하니?’하고 물어보시던 것. 대략 자신이 여섯이나 일곱 살쯤 먹었을 때의 일이었을 거라고 연무강은 생각했다.

 당시의 기억을 좀 더 자세히 떠올린다면, 당시 자신의 옆에는 네 댓살 정도 된 연무진이 와, 하는 탄성을 지르며 털신을 주무르고 있었다. 그 털신은 연무강이 그 해 생일 선물로 받았던 것이었다.

 그것은 북국(北國)에서만 서식한다는 종류의 담비 털로 만든 털신으로, 눈에 미끄러지지도 않고 눈이 녹은 물이 스며들지도 않는 좋은 물건이었다. 북국에서 온 행상인더러 특별히 주문해 만든 것이라 들었었다. 이전에 지나가면서 연무강이 무심코 흘린, ‘검술 연습할 때, 얼음에 미끄러졌어요. 좋은 신발이 있으면 좋겠는데.......’라는 말을 어머니께서 듣고 기억을 하셨던 모양이었다. 참으로 고마운 선물이었다.

 허나 신발을 본 연무진이 ‘나도, 나도.’하며 울음을 터뜨렸고 어머니께서는 돌연 울음을 터뜨린 둘째를 안고 어쩔 줄 몰라 하셨다. ‘무진아, 저 신은 형님 것이니 나중에 무진이 것은 따로 사줄게.’하고 어머니께서 어르고 보채셔도 연무진은 울음을 쉬이 그치지 않았다.

 연무강은 그에 짜증이 났었다. 동생이 제 것을 탐하려 든다는 사실에 짜증이 난 게 아니라, 언제 그칠지 알 수 없는 울음소리가 짜증이 났었다. 연무강은 ‘가져.’하고 연무진에게 선물로 받은 신발을 주었다. 연무진은 바로 눈물을 뚝 그쳤다.

 어머니는 당황하셨지만 이내 칭찬하듯 연무강의 머리를 쓰다듬으셨다. 그러더니 ‘저것을 동생에게 주어도 정말 괜찮겠어?’하고 물으셨다. 연무강은 의아해졌다. 못 줄 것은 또 무어란 말인가. ‘안 그러면 무진이가 또 울 것 아닙니까.’하고 대답했더니 어머니께서는 묘한 얼굴로 웃으셨다. 그리고 물으셨다. ‘그럼 무엇을 원하니? 그걸로 주마.’

 거기에 자신이 뭐라고 대답했는지 연무강은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연무강은 이렇게 대답했었다.

 -무진이가 울지 않는 것. 그것으로 족합니다.

 연무강의 어머니는 연무강을 두고 가끔 그런 말을 하시곤 하셨다. ‘애가 벌써부터 너무 어른스러운 게 아닌가요.’라고. 상대는 남편인 연무의였다. 물론 연무의는 그런 그녀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기곤 했었다.

 장남인 연무강은 어른들의 말을 잘 듣고 맡은 제 일을 묵묵히 해냈으며 결코 떼를 쓰거나 게으름을 부리지 않았었다. 그런 연무강은 연무의의 자랑이며 이상적인 아들의 형태 그대로였다. 그러나 연무가의 어머니인 그녀는 그렇게 생가하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그런 어머니가 연무강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신이 뭔가 그녀의 말을 어긴 것이 있었던가. 아니면 자신이 동생인 연무진의 본보기가 되지 못하는 어떤 일을 했었던가. 그렇지 않으면 학문이나 훈련을 게을리 했던가. 자신은 늘 부친이 시키는 대로 했고, 원하는 대로 행동했지만 그녀는 좀체 근심을 풀지 않았었다.

 그러나 가끔, 자신들의 동생들을 보고 있노라면 연무강은 모친이 자신에게 무엇을 바라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기도 했다. 잠시 무례하기도 하며, 조금 게으름을 피우기도 하며, 반찬 투정도 가끔씩 하고, 수업이나 훈련 시간에 도망도 한 번씩 쳐줘야 했던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를 만족시켜 주기 위해 그런 짓들을 일부러 할 수는 없었다.

 연무강은 항상 그랬었다. 부친이 엄격한 얼굴로 ‘너는 이 연씨 문중의 장자이니, 항상 몸가짐을 바로 하고 수행을 게을리 해도 안 되며, 또 언제 어디서나 다른 사람들의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하고 말한 것을 그는 늘 마음속에 새겨 기억하고 있었다.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그렇게까지 할 수 있느냐고 동생 연무진이 물은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말은 오히려 연무강이 그에게 묻고픈 말이었다. 너는 어떻게 그렇게까지 할 수 있느냐. 연무강은 아무 것도 원하는 것이 없었다. 그저 부친의 말을 듣고 그대로 행하며 살아가는 게 편했다. 연무진처럼 일일이 짜증내는 것이, 게으름을 피우는 것이, 도망치는 것이 더 귀찮았다. 그래도, 가끔은 불쑥 화가 나거나 답답하지 않소? 연무진이 물었었다. 연무강은 네가 그리 묻는 게 더 화가 난다, 라고 대답했다. 연무진은 대답을 듣자마자 윽, 얼굴을 찌푸렸다.

 ‘그 날‘은 그러한 날들 중 하나였었다.

 검술 훈련을 마치고 연무강은 땀에 젖은 몸을 씻으러 가던 중이었다. 진검이긴 했지만 길이가 짧은 소년용 장검을 들고 그는 행랑채 옆으로 난 담 아래를 가고 있었다.

 그가 아무 생각 없이 늘 지나치는 이 길을 연무진은 ‘짜증난다.’라고 했었다. 검술 훈련이 끝나고 몸을 씻고 나면 바로 고문(古文) 수업이 시작되었다. 그러니 이 담은 하루의 빡빡한 일정 중 겨우 3분의 1이 끝나면 지나가는 담이었던 것이다. 이 담만 보면 연무진은 깨알 같은 글로만 가득 찬 고문이 생각난다고 했다. 또 시간이 아직 이것밖에 지나지 않은 것인가 싶어 화도 난다고 했었다. 연무강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들이었다. 그 날도 역시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담 아래를 지나가고 있었다.

 연무강은 이제까지는 담 아래를 지나치면서 도중에 다른 곳으로 샌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그 날은 조금 달랐다. 어디선가 아기 울음소리가 났었고 아무 생각도 없이 그는 도중에 그 길을 일탈했다. 처음 해 본 ‘일탈’이었지만 가슴 두근거리는 긴장은 없었다.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연무강은 담 아래를 지나칠 때처럼 역시 무감각하게 우는 아이에게로 다가갔다.

 그 다음에 바로 ‘그 일’이 일어났던 것이다.

 유모 서씨가 나타나고 시끄럽게 아이는 울었다. 악귀처럼 외치는 유모 서씨의 눈은 적의와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연무강은 그녀의 그 악의와 아이의 울음소리 때문에 머릿속에 새하얗게 비는 것을 느꼈다. 아무런 행동도 할 수가 없었다. 다만, 그 자리에서 얼어붙은 채 유모 서씨를 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어진 소란에 다른 사람들이 달려올 때까지 그는 그렇게 서 있었다. 

 그때의 일은 의외로 그에게 깊숙이 각인되었던 모양이었다. 이후 연무강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고문 수업을 듣고 글씨 연습을 한 다음 책을 읽고 저녁 식사를 마쳤다. 그러나 호롱불의 불을 끄고 이불의 아래에 들어간 순간 그는 확 얼굴에 열이 올랐다. 당혹감과 두려움, 실망과 .......또 무어라 아이로서는 아직 이름을 알 수 없었던 여러 가지 감정들이 그의 가슴에 사무쳤다. 뚝뚝 눈물을 흘리며 그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

 처음이었다. 그런 적은.

 “.......”

 연무강은 꼭 그때처럼 숨을 들이마셨다. 흠, 하고 힘을 줘 다문 입술 사이로 무거운 숨이 이내 스르륵 흘러나갔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눈앞의 광경을 응시했다. 그러나 그것은 마주 보고 있는 두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즐거운 듯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두 사람은 연무강의 모습을 발견하자마자 우뚝 모든 언행을 멈추었다.

 뭐라 말을 섞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 둘은 연무강의 등장에 당혹스러워 하며 그를 ‘거부’하고 있었다. 화기애애하던 정원의 분위기가 삽시간에 얼어붙은 것을 보며 알았다. 아니, 사실 ‘거부’하고 있는 것은 연무강일지도 모른다. 둘의 분위기가 연무강을 보고 경직되기도 전에 먼저 그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기 때문이었다.

 “.......”

 연무강은 비릿하게 웃었다. 녹우당에 오자마자 이 꼴을 보게 될 줄은 또 몰랐다. 과연 연서강이다, 싶어 그는 어이가 없었다. 그 변함없는 어리석음에 분노가 지나쳐 웃기기까지 했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녹우당에 처박히는 것이야 저 놈이 아버님 말씀대로 ‘달팽이 같은 놈’이라 그렇다 치자. 허나 그 옆에 당연하다는 듯 박혀 있는 저 놈은 또 뭐란 말인가? 

 더할 나위 없이 차가운 목소리로 연무강이 연서강을 조롱했다.

 “죽지 않고 돌아와서 제일 먼저 만나는 게 기연조라? 그것 참으로 대단하구나.” 

 그 말에 기연조가 미간을 좁혔다. 옆에서 녹우당의 살림을 총괄하는 모씨가 안절부절 못하는 게 연무강의 눈에 들어왔다. 그의 말에 기연조가 나직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제가 찾아온 것이니 연서강에게는 아무 잘못이 없습니다, 연위사님.”

 “퍽도 그러시겠지.”

 그의 말을 들으며 연무강은 머릿속 한 구석이 냉하게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어렸을 때야 그렇다 치지만 커서는 이 둘이 한 데 있는 장면을 본 적이 없었는데, 그러다 그는 곧 깨달았다. 연서강이 녹우당에 들어간 이후로 자신이 아예 녹우당에 걸음한 적이 없었으니 그럴 만도 했던 것이다. 집안 가솔들이 기연조가 왔었더라, 수군거리면 그제야 녹우당 쪽을 응시하며 이를 갈았던 그였었다.

 그간 녹우당에 걸음하지 않길 천만 다행이었다. 기연조 놈이 왔노라는 소식이 들릴 때마다 녹우당으로 갔었더라면 자신은 참지 못하고 연서강을 억지로 바깥으로 끌어내 흙바닥에 저 얄미운 얼굴을 처박아 버렸을 것이다. 집안의 품위를 지키기 위해 타인의 앞에서는(그것이 저 기연조의 앞이라고 해도) 일단 점잖게 있어야 한다는 것도 잊고 말이다.

 정말 천만 다행이었다. 다 자라 나이가 먹을 만큼 먹은 지금도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처럼 속이 부글부글 끓고 있건만, 아직 머리가 덜 자랐을 젊을 때 저런 꼴을 봤으면 어쩔 뻔 했단 말인가. 그렇게 생각하며 연무강이 이어서 내뱉었다.

 “그리고 네놈이 찾아온 것이 먼저였던지 아니었던지, 내가 언제 물어보았더냐. 내가 지금 비난하는 것은 집안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조차 잃고 행동하고 있는 연서강, 저 놈이지. 네놈이 아니다.”

 그는 기연조를 노려보다 이내 고개를 돌려 연서강을 응시했다. 기연조보다 두어 발자국 정도 뒤에 서 있는 그는 연무강의 등장에 적잖이 놀란 듯 보였지만, 내색하지 않고 내내 무심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 빤빤한 얼굴을 보자니 연무강은 또 ‘저 녀석이 큰 형님인 나를 보고도 인사조차 하지 않아?’란 생각에 이를 으득 갈았다.

 변방에 가서 죽을 뻔했다는 게 거짓은 아닌 모양이다. 떠나기 전보다 간이 더 배 밖으로 나온 듯 행동하는 그 모습이 과연 죽음을 지척에 두었다 돌아온 사람다웠다. 게다가 확실히 그의 얼굴은 변방으로 떠날 때보다 많이 상해있었다....... 전쟁터에서 좋은 음식을 먹었을 리 만무하고, 어깨에 큰 상처를 입은 채 며칠 간 행방불명되었다고도 하니 충분히 이해가 가는 몰골이었다. 말랐던 몸이 더 마르고 낯빛은 더더욱 칙칙해졌다.

 참으로 꼴 보기가 싫은 몰골이지 않나. 연무강은 얼굴을 찌푸리며 이어 입을 열었다.

 “참으로 잘 하는 짓이군, 연서강. 아버님께 먼저 인사드리는 것도 잊고 친구 놈을 만나는 게 먼저더냐.”

 이번에는 연서강의 얼굴이 굳을 차례였다. 연무강은 적어도 그의 낯빛이라도 변할 줄 알았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연서강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기연조와 달리 얼굴을 일그러트리지도, 찌푸리지도 않았다. 대답하는 목소리조차 담담했다.

 “송구합니다. 소제가 여독이 아직 덜 풀려 자식으로서의 예의를 망각하고 행동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기연조와 담소를 나누고 있을 때의 얼굴과 비교하면 확연히 좋지 못한 표정이었다. 멀리서 연서강이 기연조와 즐거이 이야기를 나누던 모습을 이미 봤었던 차라, 연무강은 그만 기분이 나빠졌다. 얌전히 사과를 하는 것에 더더욱 화가 치밀었다. 저 딱 잘라 말하는 본새가 빨리 당면한 문제를 해치우고 여길 떠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이럴 거면, .......!”

 분노로 무작정 내뱉던 연무강은 순간 말문이 막혀 입을 다물었다. 그 뒤에 뭐라고 할 말이 있었는데 그 말을 생각하자마자 돌연 머릿속이 새하얗게 되면서 잊고 말았다. ‘무슨 말’을 할 참이었는지 한 글자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러자 다음 순간, 그가 잊었던 말을 연서강이 대신 이어서 말했다.

 “이럴 거면 전쟁터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그랬습니까?”

 “.......”

 맞다. 그 ‘말’이었다. 

 차가운 연서강의 말에 기연조가 ‘강아!’하고 소리쳤다. 연서강의 말보다는 그 옆 기연조의 반응이 더 신경이 쓰여 연무강은 설핏 눈살을 찌푸렸다. 연서가이 다시 말했다.

 “제가 죽지 않아 형님께서는 정말로 유감이시겠습니다만, 저는 이렇게 살아 돌아왔습니다.”

 도발하는 듯한 목소리가 불쾌했다. 이와 같은 목소리를 연무강은 이전에도 들은 적이 있었다. 연서강이 변방 전쟁터로 가기 전에 자신을 향해 소리쳤을 때였다. 카랑카랑하게 울렸던 그의 말과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생생했다.

 그러나 이상하게 연무강, 자신의 상태가 그때와는 조금 달랐다. 이전의 자신 같으면 주제도 모르고 건방진 말을 지껄여대는 연서강에게 당장 모욕을 주고 그를 윽박질렀을 것이었다. 헌데 지금은 할 말이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 여전히 자신의 눈앞에 있는 사람은 멍청하고 어리석고 한심한 연서강이었는데도, 그런데도 그랬다.

 “.......유감.......?”

 더불어, 연서강의 말을 듣고 텅 빈 머릿속에 불현듯 괴이한 사실이 머릿속에 떠올라 연무강은 그만 황망해지고 말았다. 유감? 유감, 이라.

 “.......”

 그렇다. 그랬어야 했다. 헌데, ‘내’가 지금까지 한 번이라도 유감이라 생각했던 적이 있었던가?

 연무강이 잠시 철벽같던 이성을 잃고 황망해하는 틈을 타 대신 그의 머릿속을 장악한 것은 예의 그 ‘께름칙한 기분’이었다. 지난 몇 날간, 그가 무슨 행동을 하고 무슨 말을 해도 결코 풀리지 않고 오히려 뱀이 똬리를 튼 듯 속에 쌓이고 쌓이기만 했던 그 감정들. 어떻게든 원래대로 상태를 되돌리고 싶었지만 어떻게 해야 될지 그 방도조차 떠올리지 못했던.

 연무강은 그제야 깨달았다.

 그 께름칙한 기분이, 사라졌다가 지금 다시 자신을 찾아왔다. 이 짜증나고 불쾌한 감정이 다시 가슴 속에 차오른 지금에서야 연무강은 깨달았다. 자신은 방금 전까지는 이 감정을 느끼고 있지 않았다.

 지금의 이 감정은 바로 기연조를 보고 생긴 것. ‘녹우당’에, 자신의 집에, 연서강의 곁에 당연한 듯 자리하고 있던 기연조로 인해 생긴 것들이었다.

 .......그렇다면, ‘여기’에 연서강만 있었더라면 자신은 어땠을까?

 문득 떠오른 물음에 연무강은 입을 꾹 다물었다. 언뜻 피어오른 위기감에 그의 머리가 본능적으로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을 회피했다.

 “.......?”

 연무강이 오래도록 침묵하고 있자, 연서강이 이상하다는 듯 살짝 인상을 썼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연서강은 곧 무어라 제 안에서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렸는지 차게 웃으며 말했다.

 “제가 죽지 않고 멀쩡히 살아 돌아온 것이 그렇게까지 믿기지 않으십니까? 충격이라도 받으셨습니까?”

 아니다. 연무강은 순간 자신도 모르게 속으로 대답했다.

 -자네 정말 연서강이 죽었으면 좋겠는가?

 수안궁의 태상이 의미심장하게 물었던 질문이 그때 연무강의 머릿속을 번개처럼 스치고 지나간다. ‘정말’ 죽었으면? 연무강은 눈앞의 연서강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저 놈이 ‘정말’ 죽으면, 그 께름칙한 기분이 언제까지고 자신을 따라다니는 것인가?

 정말이지 연무강은 요즘 자신이 대체 ‘무엇을’ 하고 싶은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자신이 어째서 녹우당으로 온 것인지. 또 왜 자신이 직접 불러올 필요도 없는 연의진을 데리러 가야한다는 이유로 성헌당을 나온 것인지. 그리고, 그보다 더 앞서 왜 연서강이 살아 돌아왔다는 소리에 튀어오를 듯 앉은 자리에서 일어섰던 것인지. 그 모든 행동이 ‘무엇’ 때문에 그랬던 것인지. 자신이 한 행동인데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잘도, 살아 돌아왔구나.”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내내 침묵하고 있던 연무강이 천천히 입을 열어 중얼거렸다. 그렇게 말하는 목소리는 목구멍 아래에서 기름이 튀는 것처럼 나지막하고 거칠고 어딘가 위험하게 들렸다. 마치 위협하는 듯한 목소리. 그러나 그 위협이 향하는 방향은, 실상은 연서강이 아닌 연무강 자신이었다. 새빨간 경고의 불빛이 눈꺼풀 안쪽에 들러붙어 번뜩거린다.

 더 이상, 생각하지 마라.

 한편, 연무강의 대답을 들은 연서강의 표정은 한층 더 냉랭해졌다. 그가 대답했다. ‘예. 덕분에 죽지 않고 잘 살아 돌아왔습니다.’

 그 대답을 듣자 더 이상 깊이 생각하지 말자고 결정한 보람도 없이 그런 생각이 들었다. 연무강은 지금 자신의 눈앞에 있는 치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이제야, 정말로 연서강이 살아서 돌아왔구나 하는 실감이 들었다.

 살아 돌아온 연서강의 모습을 자신의 두 눈으로 본 다음에야 겨우. 허나 썰물과 밀물이 교차하듯 어지럽게 술렁거리는 자신의 머리는 그보다 더 확실한 것을 요구했다. 진짜로 그가 살아 돌아온 것이 맞는가, 더 확실한 증거를, 눈으로 보는 것보다 더 확실한-.

 내, 손으로.

 해서 연무강은 자신도 모르게 손을 올려 연서강의 얼굴로 가져갔다.

 “.......!”

 그 순간, 연서강의 얼굴이 시퍼래졌다. 연서강이 뒷걸음질을 쳐서 연무강의 손길을 피했다.

 반사적으로 나온 행동이었는지 곧바로 연서강의 몸이 균형을 잃고 비틀거리자, 옆에 있던 기연조가 ‘강아.’하고 그의 이름을 부르며 연서강의 몸을 부축해 주었다. 연서강의 몸에 기연조의 손이 닿았다. 그러자 연서강이 ‘아니, 괜찮아.’하고 말하며 안심하라는 듯이 기연조의 손등을 살짝 두드렸다.

 그리고서 연서강은 조심스러운 시선으로 연무강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런 연서강의 눈에 어려 있는 빛은 예전보다야 약하지만, 연무강에게는 익숙한 것들이었다. 두려움, 초조함, 그리고 강렬한 거부.

 연서강이 이런 눈으로 그를 쳐다볼 때면 연무강은 늘 흡족한 마음이 들었었다. 저 작은 머리통 속에 든 것이 오로지 자신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 밖에 없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허나 지금은 심기가 뒤틀렸다.

 무엇보다 그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아직도 연서강을 붙잡고 있는 기연조의 손이었다. 그 손은 당장이라도 자신들의 앞에 도사리고 있는 ‘재앙’에게서 연서강을 보호하려는 듯 잔뜩 힘이 들어가 있었다. 더불어, 여차하면 연서강을 자신의 뒤로 숨기고 대신 자신이 연무강의 앞에 나설 심산이 그대로 드러나 보이는 기연조의 표정이 어릴 때와 너무나 똑같아서 연무강은 이가 갈렸다.

 “.......너는, 지금!”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어져서 연무강은 연서강의 멱살을 붙잡고 자신에게로 확 끌었다. 역시 예상대로 기연조가 그의 팔을 붙들고 막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무인도 아닌 나이 어린 청년의 힘에 밀릴 만큼 연무강의 완력은 약하지 않았다. 연무강의 힘에 되레 기연조가 밀려났다.

 큭, 소리를 흘리며 연서강이 그의 가까이로 끌려왔다. 숨통이 조이는지 연서강의 얼굴이 고통스럽게 일그러졌다. 하얗게 질린 그의 얼굴을 보며 연무강은 뭐라 할 수 없는 충동에 고함을 내질렀다.

 “네놈은 연씨 문중을 얼마나 욕되게 만들어야 직성이 풀린단 말이냐?!”

 하고 말하면서 연무강은 자신이 ‘왜 이렇게’까지 하고 있는 것인가, 하는 회의감을 느꼈다.

 애초에 자신에게 못난 아우가 하나 둘도 아닌데 어째서 연서강에게만 이러고 있는 것인지. 이유는 맹백했다. 연서강이 연우비의 자식이라서 그런 것이다. 자신의 고모인 연우비가 이 집안에 얼마나 큰 폐를 끼쳤는지 생각만 하면.......! 부친이 그녀의 행동 때문에 얼마나 많은 고뇌를 했었어야 했는가! 또한 황후마마께서도, .......!

 “놓으십시오!”

 그때, 연무강의 팔을 기연조가 잡았다. 연무강은 이를 북 갈았다.

 “놔!”

 그러나 아무리 당겨도 연무강의 단단한 팔이 꼼짝도 하지 않자 마음이 다급해졌는지 기연조가 소리쳤다. ‘놔!’ 비명처럼 내질러지는 소리와 함께 자신에게 잡힌 연서강이 ‘컥!’ 괴로운 소리를 지른다. 놔 달라. 몸부림을 치며 있는 대로 자신을 거부한다. 연무강이 하는 일이라 이제까지는 아무런 말도 못하고 안절부절 못하고 있던 모씨까지도 이 소란에 가담했다.

 “놓아주세요, 제발! 이러다 죽겠습니다!”

 이 소란이 연무강은 익숙했다. 자신의 앞에 있는 연서강, 그를 놔 달라, 살려 달라 애원하는 주변 사람들까지.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동시에 ‘그때’처럼 마음 한 구석이 싸하게 내려앉았다.

 어째서?

 연묵아의 속을 시꺼멓게 채운 말은 그것 하나였다. 그때, 새하얀 얼굴이 연서강이 겨우 손을 들어 올려 제 멱살을 틀어쥔 연무강의 손을 잡았다. 마치 어린 아이의 체온처럼 뜨거운 그 손에 연무강은 흠칫 몸을 떨었다.

 연무강은 얼어붙은 얼굴로 연서강을 내려다보았다. 오랜 여행과 고생으로 메마르고 까칠해진 연서강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그는 새까만 눈으로 연무강을 보고 있었다. 그 눈에는 눈앞에 있는 자에 대한 원망과 독기가 도편(陶片)처럼 박혀 있었다.

 어째서?

 기연조가 소리를 지른다. ‘강아!’

 연무강은 그제야 연서강의 상태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지막 힘을 다해 바르르 몸을 떠는 풀벌레처럼, 그가 연무강의 손을 꽉 잡았다가 축 늘어졌다. 실이 끊긴 꼭두각시 인형처럼 툭 힘이 끊기는 몸은 그대로 허무하게 무너질 것만 같아서 연무강은 놀라 연서강의 멱살을 놓아주었다. 연서강의 몸이 푹 바닥으로 꺼진다. 그 몸이 완전히 쓰러지기 직전에 연무강은 가까스로 그 몸을 안았다.

 그리고 연무강은 감싸 쥔 연서강의 등이 축축하다는 것을 느꼈다. 한 손으로 연서강의 등을 안은 채, 연무강은 자신의 나머지 한 손을 살폈다.

 그 손이, 온통 붉었다.

 “어깨!”

 모씨가 울부짖었다.

 “어깨가!”

 붉어진 제 손을 봤을 때 멈췄던 연무강의 머리가 겨우 움직였다. 그래, 어깨의 상처. 무척 상태가 심각하다고 들었었던 그 상처. 터져버린 어깨의 상처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기연조가 연서강의 팔을 붙잡고 연무강을 차갑게 노려보았다.

 “놓으십시오! 정녕 이 이를 죽여야 마음이 편하시겠습니까?!”

 그걸 보며 연무강은 다시 ‘어째서?’하고 속으로 읊조렸다.

 어째서인가?

 어째서, ‘자신’은 안 된다는 것인가.

 지금 이 ‘상황’이 연무강에게는 몹시도 익숙했다. ‘그때’와 같았다. 어린 연서강과 유모 서씨의 비명 소리. 모여드는 사람들과 유모 서씨의 발작.

 꼭 그때와 같은 소란스러움에 연무강은 ‘그때’처럼 굳어버렸다. 주변의 모든 소음들이 마치 자신에게 ‘안 된다.’라고 악다구니를 쓰는 것처럼 들렸다. 아니, 착각이 아니다. 기연조라는 놈의 행동이, 모씨의 비명이, 녹우당에 가라앉아 있는 피비린내 섞인 향기들이, 피로 얼룩진 채 쓰러진 연서강까지.

 그 모든 것이 다 연무강을 ‘거부’하고 있는 것이 맞았다. 안 된다고 악을 쓰는 것이 맞았다. 어째서? 연무강은 ‘그때’처럼 황망한 심정으로 제 손에 들린 연서강을 내려다보았다. 어째서? 어째서 안 된다는 것인가? 그때, 자신은 그때!

 그저 이놈의 웃는 얼굴을 보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왜, 왜, 왜?!

 환각처럼 번쩍, 유모 서씨의 애원이 그의 귀를 스쳐지나갔다.

 -죽이면 안 됩니다, 도련님! 제발 살려주세요!

 아니, 아니다. 자신은 죽이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저 자신을 보고 웃으려고 했던 아기는 저 녀석이 처음이라서. 그것이 유별나다고 생각하면서도 너무도 좋아서.......

 -잘못 한 게 없지 않습니까! 불쌍한 생명입니다. 연우비 아씨의 아이에요. 도련님의 사촌 아우구요!

 너무도 좋아서 가까이에서 보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제발 살려주세요, 도련님!

 “놓으십시오!”

 서씨의 마지막 비명소리가 기연조의 목소리와 겹쳐져 혼미하던 연무가의 정신을 번쩍 깨웠다. 연무강은 흡, 숨을 멈췄다. 그는 재빨리 연서강의 얼굴을 보았다. 연서강의 얼굴은 여전히 파리했고, 어깨에서 흘러내린 피로 그의 등은 여전히 축축하고 붉었다. 그의 목을 잡아 확인해보니 호흡도 약해져 있었다.

 목을 잡는 행동을 보고 연무강이 연서강의 목을 조르는 것으로 오해했는지 기연조가 소리를 질렀다.

 “무슨 짓입니까!”

 그가 연무강의 팔을 붙잡으며 악을 썼다. ‘당장 연서강을 놔!’

 그 모습이 자신에게서 연서강을 지키려고 하는 유모 서씨를 닮았다. 연무강의 심장이 다시금 뛰었다.

 왜, 자신은 안 된단 말인가.......?

 그 사실에 몹시 화가 났다. 아니, 자신은 줄곧 화가 난 상태였었다.

 “의진이를 불러라.”

 연무강이 모씨에게 돌연 소리쳤다. 화들짝 놀란 모씨가 ‘네, 네!’하고 대답하고는 재빨리 녹우당을 빠져나갔다. 그녀도 연의진이 태의령 밑에서 일할 정도로 실력 있는 의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빠른 속도로 작아지는 그녀의 등을 응시하다가, 불현듯 연무강은 기연조를 노려보며 내뱉었다.

 “나는 참으로 네놈이 마음에 안 든다.”

 기연조의 얼굴이 구겨졌다.

 “적인 네놈은 되는데, 어째서 나는 안 된다는 거지?”

 시기로 따지자면 자신이 먼저였다. 가족들 중에서도 자신이 그를 제일 먼저 발견했고, 자신이 가장 먼저 호의를 보였다. 그런데 어째서 적인 저 놈은 가능하고 자신은 안 된단 말인가? 왜 자신이 연서강에게 접근하는 것은 안 된단 말인가? 더 위험한 것으로 치자면 가족인 자신보다는 응당 적인 기연조가 더 위험할 터인데. 왜, 기연조는 되고 자신은 안 된단 말인가?

 그러나 연무강도 알고 있었다.

 그때는 충분히 유모 서씨가 오해할 만한 상황이었고, 부친인 연무의가 생각이 있어 기연조와 연서강이 친해지는 것을 막지 않았으니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다고. 알았다. 알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당연하다.’, 당연하다. 알고 있었다. 그래서 속으로 삭혔다. 하지만!

 머리가 아득한 기분에 연무강은 이를 악물었다.

 그는 기연조를 노려보며 말했다.

 “집안의 일이다. 죽고 싶지 않으면 꺼져라.”

 자신이 정말 죽이고 싶은 것은 어쩌면 ‘유모 서씨’일지도 모른다.

 처음이었다. 그런 적은.

 무언가에게 호의를 품고 다가간 것도 처음이었고, 기대를 안고 무언가를 주시했던 것도 처음이었다.

 또, 아무 짓도 하지 않았는데 일방적으로 타인에게 적의를 받아본 것도, 오해로 악인이 된 적도 처음이었다.

 .......그리고 누군가를 ‘없애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도.

 연무진의 울음을 그치게 하기 위해 그에게 털신을 줘버린 것처럼 연무강은 아이를 계속 보기 위해 유모 서씨를 당장 없애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던 것은 유모 서씨를 없애도 자신이 기대했던 ‘무언가’는 이미 볼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아, 이런 기분이었구나. 연무강은 그제야 어릴 적 연무진이 했었던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돌연 불쑥 짜증이 치솟고 화가 나는 것이 이런 기분이었구나. 너무 답답해서 하면 안 될 일을 저지르고 마는 게 이런 거였구나.

 어머니가 불어보았던 것도 이런 거였구나. 자신도 모르게 원하고 마는 것.

 -무얼 원하니?

 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었다. 또한, 원해도 안 되는 것이었다.

 연씨 문중의 장자인 자신만큼은, ‘절대’ 원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솔직하게 그것을 원했다가는 도무지 몇 명이나 ‘없애야’ 할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응어리 진 울분에 화가 났다. 그래서 그 화를 풀기 위해서는 연씨 문중의 장자인 연무강은 차라리 원인 ‘하나’를 없애는 게 낫다고 생각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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