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8화 (9/37)

 8.

 정확히 이 달 초아흐렛날. 태상이 홍이를 데려가려 녹우당을 방문했다.

 숲은 내두고라도 하다못해 홍월정이라도 좀 정리하고 관리할 수 없겠냐며 다시 입고 온 옷이 엉망이 된 태상이 투덜투덜 불만을 토했었다. 그런 그에 연서강은 볼을 긁적이며 ‘저어, 그런데 이미 아버님과 형님은 눈치 채신 듯 합니다.’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지은 태상은 얼굴이 참 볼 만 했다.

 태상은 우는 것도 아닌, 화를 내는 것도 아닌 얼굴로 ‘자네는, 그러니까, 지금 내가 정문으로 들어와도 괘찮았단 말을 하고 싶은 건가?’라고 물었다. 거기에 ‘예.’라고 대답하면 가지고 있는 재력이든 권력이든 동원해서 눈앞에 있는 자를 처단하겠다는 비장한 각오가 보여, 연서강은 그만 말을 말았다. 대신 ‘죄송합니다.’라고 얌전히 사과했더니 태상이 얼굴을 두 손으로 가리며 매우 가련하게 우는 척을 했다.

 홍이가 태상을 향해 뭔가 아는 것도 없이 무심한 얼굴로 ‘불쌍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태상은 정말 슬퍼보였다.

 그래도 홍이를 데리고 떠날 땐 제대로 된 훈훈한 작별을 해주었다. 홍이는 ‘꼭 보러 와요.’라고 말했고, 태상은 시큰둥하게 ‘얘가 그렇다네. 그러니까 꼭 무사히 돌아오게. 기다릴 테니.’라고 말했다.

 그 모습을 보며 연서강은 ‘아.’하고 소리를 냈다. 전부터 계속 태상과 홍이를 보면 뭔가 연상되는 게 있어 무얼까, 고심했었는데 그게 뭔지 드디어 깨달은 것이다.

 부녀.

 태상은 딸을 매우 사랑해 다른 건 눈에 안 들어오는 아버지이고, 홍이는 그런 아버지의 노력과 눈물을 알지 못하는 딸이다.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태상은 절로 아버지를 연상케 할 정도로 극심하게 홍이를 대해주었다.

 그렇게 생각하던 연서강은 연달아 질문을 하나 떠올렸다. ‘그렇다면 자신의 위치는 무엇인가?’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떠올린 질문이라 답을 내릴 새 없이 질문은 곧 그의 머릿속에서 지워졌다.

 그리고 마침내 그 달 초열흘일.

 우여곡절 끝에 연서강은 변방으로 출발하게 되었다.

               * *

 연의향과 연서령이 있는 변방은 경(傾)이라는 나라와 국경이 맞닿아 있는 곳이었다. 제국인 하와 달리 경은 몹시 가난한 나라였다. 몇 대째 외척이 정치를 좌지우지 하고 있는 탓에 경 곳곳에서는 탐관오리가 들끓었고, 또 세 해째 지독한 가뭄이 들어 경국 백성들의 삶은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져 있었다. 때문에 부유한 제국 하와 맞닿아 있는 부근에서는 국경을 넘나드는 도적떼가 크게 발생했다.

 문제는 경의 정치가 몹시 혼란스러운 탓에 경국 조정에서 이런 도적떼조차 제대로 때려잡지 못한 데에 있었다. 하에서 거듭 경으로 국경을 넘나드는 도적떼를 처리해 달라 요청했지만 경국에서 이를 들어줄 여력이 있을 리가 만무했다. 그런데다 경은 제국이 경의 국경을 넘어 도적떼를 숙청하는 것은 또 원치 않았다.

 이에 하는 하 국경을 넘어오는 도적떼들만 처치하게 되었고, 근원을 아예 없애지 못해 끈질기게 살아남은 도적떼들이 수십이 넘게 되었다. 그리고 이 도적떼는 이내 썩어빠진 국가를 전복시키고자 꾀하던 지방의 유지 세력과 합쳐져 거대한 반역 세력이자 범죄 조직으로 자라게 되었다.

 그러자 우스운 사건이 터졌다. 경국 조정에서 자신의 나라를 위협하는 도적떼를 처치해 달라 하에게 요청한 것이다. 일전에 하가 도적떼를 근절하게 도와 달라 여러 번 요청했던 것을 떠올린 경은 제국을 찾아가 이제 도적떼를 소탕해야겠으니 제국의 군사력을 빌려주십사 사정했다. 당연히 그 요청에 하나라는 콧방귀만 뀌었다. 하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그대들 나라가 도적떼에게 넘어가든 말든 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러니 앞으로도 하는 제국의 국경을 어지럽히는 도적떼만을 상대하겠다. 그 외엔 경이 알아서 대처토록 하라.

 물론, 썩을 대로 썩어 있던 경에서 거대하게 자라나 조직화된 도적떼를 근절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경국의 사신은 화를 내며 돌아갔지만 하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조금 시간이 지나 다시 아쉬운 마음이 들어 경이 한 번 더 하에게 도움을 요청했으나 하는 또 거절했다. 해서 경과 손을 맞잡아 한 번에 숙청해버리면 될 도적떼 문제를 몇 년이 지난 아직도 하는 해결하지 않고 있었다.

 사실상 이제는 단순한 도적떼 문제가 아니라, 경국과 경에서 따로 독립하려고 하는 새로운 국가 세력 간의 싸움이었다. 그 주변에 터전을 잡고 사는 자들은 차라리 하나라가 그냥 도적떼 세력을 새로운 독립국가로 인정하고 정복해버렸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그러나 과거 경이 보여주었던 괘씸한 행태에 아직도 칼을 갈고 있는 하의 생각은 달랐다. 하 조정에서는 은근히 도적떼 세력에게 경이 넘어가기를 바라고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괴로워진 것은 경과 맞닿은 국경지대를 수비하고 있는 병사들이었다.

 이미 전투는 단순한 도적떼를 막는 수준이 아니라 경에서 떨어져 나온 새로운 국가와 벌이는 수준으로 격상되어 있었다. 도적떼들의 목적 또한 단순한 약탈에서 정복으로 바뀌었다.

 그들이 자꾸 제국의 경계를 건드리는 이유는 다음과 같았다. 제국에서 귀찮다 싶어 협상이라도 요청하면 그것을 빌미로 군사를 지원받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하가 과거 경이 저지른 괘씸한 행태 때문에 아직도 경국 조정에게 마음이 상해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니 어떻게 잘만하면 경을 집어 삼킬 수 있는 군사력을 제국에게서 지원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여긴 것이다.

 또, 약탈의 목적도 여전했다. 그들은 하만 눈 감아 준다면 은근슬쩍 국경의 척박한 땅을 집어삼킬 생각도 하고 있었다. 여러모로 귀찮게 된 것이다.

 해서 연태위의 세 번째 자식이자 장녀인 연의향은 벌써 몇 해째 이 전투에 몸이 묶여 있었다. 가녀린 여성의 몸으로도 훌륭하게 무운을 쌓아 서쪽 국경을 지키는 대장군의 지위까지 오른 그녀였지만, 나라에서 별 다른 지시가 없는 한은 대규모의 정벌도 도적떼의 숙청도 할 수 없었다.

 이에, 지금으로부터 일 년 전 연태위의 여섯째 자식이자 계녀인 연서령이 제 언니를 돕겠다며 스스로 변방으로 갔었다. 중장군인 연서령이 변방으로 온 후, 변방의 상황은 썩 좋아졌지만 그것도 일시적인 것일 뿐, 알아드는 하루살이 떼 같은 전투는 끊이지 않고 지긋지긋하게 반복되고 있었다.

 아무리 경이 괘씸하다고는 하지만, 이런 식으로 계속 변경의 살림을 황폐화 시키는 것은 장기적으로 하에게도 좋지 않은 일이었다. 자칫 하면 제국의 위신을 깎아 먹을 수도 있는 일인 것이다. 그러나 변방의 사정을 하에서 적극적으로 해결해주지 않는 데엔 또 하나의 이유가 더 있었다.

 황제가 현 황후의 큰 아버지인 연태위의 권세가 승승장구하는 것을 염려해, 그나마 직위 상 이동이 자유로운 연씨 자매를 변방으로 보내버린 것이다. 말로는 출세였지만 그 속사정은 좌천이나 다름이 없었다. 물론 눈치 빠른 연태위는 물론, 연의향을 비롯 웬만큼 생각이 있는 연씨 문중의 사람들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사실 연의향이 제 부친에게 일부러 편지를 부쳐 사람을 하나 보내 달라 부탁한 것은 종이에 써진 그대로 심부름꾼을 보내달란 소리가 아니었다. 이 지긋지긋한 전투를 종결시킬 수 있는 인재 하나를 지원해달란 소리를 에둘러 그리 표현한 것이었다. 중앙에 부탁해봤자 그를 들어줄리 만무하니 이런 식으로 비밀리 부친 연무의에게 부탁하는 수밖에 없었다.

 연의향은 자신의 부친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부친이 자신의 편지에 적혀 있는 그 이상의 뜻을 능히 추측하여 자신에게 마땅한 인재를 보내줄 것이라 믿었다. 그녀는 현명하고 명석한 부친을 신뢰하였다.

 허나-

 “.......아버님께서 자식들을 상대로 농을 치는 걸 좋아하셨던 걸 잠깐 잊었었군.”

 연의향은 투구를 벗어 탁자 위에 올려놓으며 긴 한숨을 쉬었다. 그 말에 그녀의 앞에 있던 청년이 살짝 미간을 좁혔다. 연의향의 말이 못마땅하다는 게 아니라, 그녀의 말을 동의는 하지만 자신의 입장이 차마 동의를 표할 입장이 아닌지라 지은 미묘한 표정이었다. 연의향은 슬쩍 청년 쪽을 바라보고는 의자에 앉았다.

 “그래서, 너로 뭘 할까.”

 그녀의 서늘한 중얼거림에 청년은 잠깐 표정을 굳혔다.

 연의향이 움직일 때마다 그녀가 입은 갑옷에서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났다. 수도의 무장들 것과 달리 연의향의 갑옷은 색이 약간 바래 있었다. 과시용, 혹은 예의상 갖춘 수도에 무장의 갑옷과 달리 연의향의 갑옷은 실제 사용하고 있는 중이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좋은 금속을 사용해도 사람의 피와 땀이 계속해서 묻으면 금속이 상하기 마련이다. 딱히 다른 걸 보지 않아도 청년은 연의향의 갑옷만으로도 그녀가 얼마나 바삐 움직이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연의향이 입술을 비틀며 여전히 차게 중얼거렸다.

 “.......짜증나는군.”

 연의향이 있는 서회(西回)는 크고 작은 산과 그 산을 둘러 흐르는 강이 있는 도시였다. 그 아래로 여러 개의 읍이 존재했는데 전부 군사적 목적으로 지어진 요새였다. 연의향이 있는 서회는 그 여러 개의 읍과 교차하는 길목에 있어 각 지역에서 재빠르게 소식을 전해들을 수 있음은 물론, 각종 군사적 물품이나 식료품들을 조달받기도 편리한 교통적 요충지였다.

 도적떼가 각 지역에서 들끓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중책을 맡은 연의향은 서회에 머무르는 수밖에 없었다. 반면 중장군인 연서령은 가장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는 의경(宜暻)에 있다고 했다. 나이도 어리고 경험도 없는 연서령이 의경에 있는 것이 의아하긴 했지만, 달리 생각하면 저돌적인 성미에 아무리 힘든 일을 해도 쉬이 지치는 기색이 없는 그녀가 제격인 듯도 했다.

 본래 연의향의 생각은 그랬다. 이번에 부친이 보내준 사람을 연서령이 있는 의경으로 보내 어째 몇 달간 만이라도 그 도적떼들을 소탕해보자고. 연서령이 있는 의경은 그 앞에 첩첩산중을 두고 있어 국경인 동시에, 도적떼들의 소굴이기도 했다. 의경 쪽의 도적떼만 좀 어떻게 근절한다면 아마 내년까지는 들끓는 도적들도 얌전해지지 않을까, 연의향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질긴 전투에 지친 듯한 연서령이 엊그제 ‘언니, 나 여기에 조금만 더 있었다간 그만 이성을 잃고 산으로 쳐들어갈지도 모르오.’하고 꽤나 감정 섞인 필체로 휘갈겨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이제까지 잘 버텨왔던 연서령이지만 어린 나이란 건 그만큼 인내심도 없다는 뜻이기 때문에 연의향은 어찌 이번 가을이 오기 전에 승부수를 던져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연의향은 다시 한숨을 내쉬며 저녁에 제 앞으로 배달되어 온 청년을 보았다. 아주 오랜만에 보는 동생이었다. 녹우당에 간다, 소리한 후 거의 보지 못했으니 이곳의 병사들보다도 얼굴이 낯선 동생이다. 무엇보다.......

 연의향은 거기까지 생각하고 입을 열었다.

 “아버님께서 널 아예 내치기로 마음먹었나 보구나.”

 “.......”

 그 말에도 눈앞의 청년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평소와 같다, 라고 생각할 법도 하지만 연의향은 좀 의아해졌다. 그런 말을 들으면 저 청년은 꾸중을 들은 아이처럼 주눅이 들곤 했었다. 얼굴을 살짝 찡그리며 맞기라도 한 듯이 뒤로 물러나기 일쑤였었다. 연의향의 기억 속 청년은 항상 그랬었다.

 그러나 지금은 조금 달랐다. 연의향이 혀를 차며 한 타박에도 청년은 낯빛 하나 변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다 그가 잠깐 침묵 뒤 입을 열었다. 긴장한 듯 목소리가 약간 쉬어 있었지만, 말을 더듬거나 주저하지는 않는다.

 “아닙니다, 누님. ........제가 보내달라고 부탁드린 겁니다.”

 되레 그 말에 연의향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부탁?”

 관심 없다는 목소리로 불성실하게 반문하며 연의향은 탁자 위에 펼쳐진 커다란 지도를 보았다. 지필묵으로 그려진 지도는 여러 군데 새빨간 색으로 가새표가 쳐져 있었다. 바로 이 근래에 일어난 전투에 대해 기록한 지형도였다. 언뜻 봐도 연서령이 있는 의경에 많은 전투가 일어났음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연의향의 시선이 향해 있는 곳으로 청년의 시선이 향했다.

 “.......”

 지형도를 바라보는 연의향의 시선이 뾰족해졌다.

 사실 그랬다. 연의향은 현재 부친인 연무의의 결단에 몹시 실망한 상태였다. 어린 연서령을 위해서도 이 끝나지 않는 전투의 맥을 잠시 끊어놓는 것이 중요했다. 또 연의향은 자신과 자신의 부친인 연무의를 경계하여 이 변방으로 보내버린 수도의 대신들만 생각하면 이가 갈렸다. 부친 연무의는 ‘뭐, 좀 젊으니 수도의 쉬엄쉬엄 경험 쌓는다 생각하고 갔다 오련.’이라 그녀를 타일렀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연의향은 분을 삭일 수 없었다.

 이 황무지에서 대체 몇 년이나 처박혀 썩어있었는지!

 연의향은 자존심이 강했다. 그럼에도 부친 연무의에게 도움을 요청한건 당장 막내 연서령의 인내심이 바닥나기도 했지만, 연의향의 인내심도 슬슬 바닥이 보이고 있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연의향이 부친의 성미를 잘 알듯이 연무의 또한 딸의 성미를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편지를 보내 은밀히 도와 달라 말했을 정도면 지금 그녀이 상태가 어떤지 부친 연무의라면 단박에 눈치 챘을 것이다.

 그런데도.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자신의 부친이 한두 번 그런 일을 한 것도 아니니 반쯤 포기한 상태이기도 했다. 연무의는 자식들에게 가끔 이런 식으로 농을 치면서 그들이 갖고 있는 능력을 시험하곤 했다. 연의향은 자신의 부친이 이 상황을 타파할 인재로 녹우당에서 무위도식하며 지내던 쓸모없는 존재, 즉 연서강을 보낸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라 여겼다.

 부친 연무의는 평소에도 연의향을 불러 ‘너는 너무 다른 사람의 능력을 무시하는구나. 네가 다른 사람의 능력을 빌리지 않아도 전부 해낼 수 있다는 건 알지만, 가끔 모자란 척 다른 사람의 능력을 추켜 세워줄 필요도 있단다.’라 충고하곤 했었다. 아마 굳이 연서강을 보낸 것은 그 충고와 관련 있을 것이다.

 “기가 차는군.”

 냉랭하게 중얼거리며 연의향은 제 앞머리를 쓸어 올렸다. 아버지의 뜻은 분명히 알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아무 도움도 안 될 게 뻔한 아우를 전쟁터, 어디에서 어떻게 쓰란 말인가. 부친은 연서강이 이곳 상황에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하고 보낸 것은 맞는가, 아니면 그저 약올리는 것인가.

 하지만 무슨 연유로 이곳에 왔던 간에, 부친의 명으로 온 동생이다. 네 놈에게 맡길 일은 없다는 이유로 곧바로 집으로 보냈다간 무슨 꾸지람을 들을지 모른다. 또 꾸지람도 꾸지람이지만, 부친이 웃으며 ‘아무리 너라고 해도 어찌할 도리가 없었나 보구나.’라고 말할 것 같아서 연의향은 짜증이 났다.

 “여기까지 와서도 동생 뒷바라지를 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결국 혀를 차며 연의향은 연서강에게 말했다.

 “저 뒤편으로 가면 부상자들이 모인 의원(醫院)이 있다. 거길 가서 심부름이라도 하련.”

 아마도 거기라면 연서강도 충분히 제 할 일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연의향의 그 말에 주변에 있던 병사들이 움직였다. 그들 중 한 명이 청년에게 ‘의원을 안내하겠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청년은 여전히 선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의 시선은 여전히 연의향이 보고 있던 지형도에 내리꽂혀 있었다.

 연의향이 한숨을 깊이 내쉬며 ‘서강아.’하고 제 못난 아우의 이름을 불렀다. 그때였다.

 “아닙니다, 의향 누님. 저는 누님에게 도움이 되려고 왔습니다.”

 여전히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였지만, 확실한 발음으로 그리 청년이 말했다. 연의향의 눈이 슥 가늘어졌다.

 연씨 문중의 셋째이자 첫째 딸인 연의향은 그래도 그 위 형제들에 비하면 매우 온유한 성격이긴 했다. 그녀는 과단성 있고, 엄격한 첫째 연무강보다, 다소 성미가 급해 일을 그르치는 둘째 연무진보다 생각이 유연했고, 또 신중했다. 그래봤자 연씨 문중, 이란 소리가 있긴 하지만 굳이 비교하자면 그랬다. 때문에 연의향은 그 말도 안 되는 허튼 소릴 듣고도 비교적 차분한 얼굴로 청년을 응시할 수 있었다.

 “어떻게?”

 연의향은 물었다. 도움이 된다, 말했으니 도움이 될 만한 일을 해 봐라, 그런 식의 질문이었다. 바로 연의향이 그 방법을 물어볼 줄은 몰랐는지 청년의 얼굴이 살짝 찡그러졌다. 말할 내용을 정리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아무 생각이 없어 순간 당황해 머릿속이 백지장이 되었는지 모를 청년을 보며 연의향은 입을 다물었다.

 “.......”

 연의향에게 있어 청년, 연서강은 아무런 인상도 없는 무르고 약한 아이였다. 그렇다고 형제들의 괴롭힘을 받았던 연서강을 딱히 가엽다고 여긴 것은 아니었다.

 연의향은 연서강을 눈엣가시처럼 고까워하는 큰 오라버니 연무강의 심정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의 말과 행동이 다소 지나치다고는 생각했다. 그리고 큰형이 연서강을 얕잡아 보고 무시한다고, 따라 신나서 연서강을 괴롭힌 둘째 오라버니 연무진에 대해서는 ‘.......생각 없긴.’하고 혀를 차곤 했었다. 그리고 나는 저렇게는 되지 말아야지, 하고도.

 결국, 결론을 내리자면 연의향에게 있어 연서강은 그저 사정이 딱한, 그러나 그 이상의 관심을 보일 가치는 없는 인상이 흐릿한 동생일 뿐이었다.

 또-, 어쩌면 친동생이 아닐지도 모르는 동생.

 부친에게 확언을 듣지 못해 그렇다고 못을 박을 수는 없지만 아마도 거의 그럴 것이다, 라고 연의향은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하니 더더욱 관심이 가지 않았다. 그 증거로, 연의향은 지금도 자신의 코앞에 연서강을 두고 있음에도 ‘저 아이가 저렇게 생겼었나.’ 따위의 생각을 하고 있었다.

 “됐다. 뭔가 계책도 없으면서 입을 열었단 말이냐.”

 연의향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연서강에 서늘하게 말했다. 다소 마른, 선량하게 생겼지만 그 낯빛이나 눈빛 어딘가에서 절박함이 느껴지는 청년이 연의향의 말에 와작 입술을 깨물었다. 분해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연의향은 신경 쓰지 않았다. 연서강은 연의향에게 아무래도 상관없는, 그런 가족이었으니.

 그래서 연의향은 그를 그대로 내버려두고 옆에 군사를 불러 내일 어찌 할 것인지 의논하기로 했다.

 “보고하라.”

 명을 받은 군사가 서진군의 병사 수와 연서령의 군대의 상태, 기타 읍에 주둔하고 있는 군대가 어떤 상태에 놓여 있는지 빠르게 보고했다. 이어 새로 군량미가 도착했다는 말도 했다. 군사의 말을 모두 들은 연의향은 지형도를 내려다보며 잠시 생각에 빠졌다.

 현재 가증 큰 문제가 그거였다.

 -다음은 어디인가.

 여러 개의 산과 강이 있는 이곳 지형은 천연 요새이다. 동시에 적이 숨어들어 와 있으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도 있는 위험한 지형이기도 했다. 국경을 넘나드는 도적떼들은 원래 이 주변에 살던 산적들이 대부분이었다. 산적들에게 일반 백성이 붙고, 관리가 붙으며 지방유지 세력이 붙었다. 그렇기에 그들은 여기 이 지형을 무척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마치 제 집 앞마당처럼 산들을 오가는 도적들에 연의향이 몇 번이나 골머리를 썩였던가.

 쳐들어 올 곳을 미리 안다면 어떻게 미리 군사를 배치해 처단이라도 할 것을, 어디를 어디로 쳐들어올지 아직도 감이 잡히지 않아 여러 읍에 군사들이 분산되어 배치되어 있다. 때문에 한 번에 밀어붙이지 못하고 늘 쫓아내는 데에만 그치게 된 것이리라.

 또한 그것이 이 지루한 싸움이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는 원인이기도 했다.

 “적들이 어디로 올 거라 생각하나?”

 “아마도 다음은 지백(地白)이 될 거라 예상됩니다.”

 군사의 말에 연의향은 잠깐 침묵했다. 군사의 말이 탐탁지 않아서가 아니다.

 “지백의 다음은?”

 연의향이 묻자 군사의 표정이 흐려졌다.

 “언양(?陽)이나 황지(黃地)가 아닐까요.”

 자신 없는 소리로 군사가 대답했다.

 도적떼들이 성가신 이유가 하나 더 있다. 그들은 기가 막힐 정도로 연계 공격에 능숙했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는 그들에 혼비백산이 된 병사들이 그나마 줄줄이 패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을 지휘하는 장군들의 능력이 훌륭하기 때문이다.

 연의향은 군사의 말에 쓰게 중얼거렸다. ‘이거야 원, 당해보지 않으면 예측도 할 수 없나.’ 불쾌해진 연의향이 고개를 들어 아직 그 자리에 서 있는 연서강을 보았다. 얼굴을 와작 구기며 연의향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무안을 줬다.

 “아직 거기 서 있었나? 어서 가지 못할까.”

 “황지입니다.”

 그때, 연서강이 잔뜩 경직된 목소리로 대답했다. 연의향이 얼굴을 구겼다.

 “무슨 소리지?”

 그녀가 묻자 연서강이 제 손바닥에 찬 땀을 옷에 닦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황지. 다음에 언양입니다. 그리고 의경.”

 “.......”

 “그렇지만, 실제로 제일 적이 많이 배치된 곳은 언양입니다. 의경이 한참 공격당할 때, 언양도 다시 한 번 한꺼번에 들이닥칠 겁니다. 의경에서 싸우는 것처럼 하면서 황지에서 후퇴한 적들이 언양으로 갈 겁니다.”

 연서강이 연의향을 보며 마지막 말을 했다.

 “이걸 막지 못하면 언양을 뺏길 겁니다.”

 연서강의 말에 방안이 삽시에 조용해졌다. 모두들 말을 잃은 채로 연서강을 응시했다. 그것은 연의향도 마찬가지였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은 적이 어디로 쳐들어 올 것이라 의견을 제시하는 것도 조심스러워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자칫 잘못 예측했다간 수많은 병사들이 허탕을 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확신을 갖고 제 의견을 말하고, 나아가 읍을 빼앗기게 될 것이란 불길한 말까지 하는 연서강에 모두들 경악한 것이었다.

 어떻게 그런 허무맹랑한 말을, 그것도 이제 막 타지에서 여기 도착한 도련님이 할 수가 있나. 그리고 연의향은 덧붙여 ‘내가 적들이 연계 공격이 특기라고 이야기했던가?’라는 생각을 하고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막 이곳에 도착한 연서강은 이곳 지리도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 텐데?

 “무, 무슨 근거로 그런 말을 하십니까?!”

 침묵을 깬 것은 연의향의 옆에서 조언을 해주던 군사였다.

 자신의 예상이 전면으로 부정당한 군사는 입술을 벌벌 떨며 분노했다. 당연했다. 이래봬도 이 변방에서 수없이 많은 전투를 치루며 경험과 무운을 쌓은 능력 있는 군사였다. 그런 자신의 의견에 수도에서 온, 더구나 이쪽으론 일자무식일 게 뻔한 애송이가 반박했으니 자존심에 금이 갈 만도 했다.

 “그 의견에 마땅한 근거가 있을 것 아닙니까?! 어떻게 그리 예상했는지 말씀해주십시오.”

 그 말에 연서강의 얼굴이 흐릿해졌다. ‘.......근거.’ 마치 그런 식으로 따져 물을 줄은 몰랐다는 식의 얼굴이었다. 연서강은 지형도를 바라보았다. ‘그러니까.’하고 그가 입을 열었으나 차마 조리 있게 말할 자신은 없는지 도로 입을 다물었다.

 “아무런 근거도 없으면서 함부로 말을 놀리다니!”

 “군사.”

 연의향이 한 손을 들어 군사를 막았다. 여전히 구겨진 얼굴로 군사가 입을 다물었다. 연의향은 연서강을 힐끗 쳐다보고 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했지?”

 “그건, .......”

 비교적 부드러운 목소리로 연의향이 물었지만 연서강은 여전히 대답하기를 주저했다. 그것으로 됐다고 생각했는지 연의향이 한 손으로 탁자를 무겁게 탁, 쳤다. 연의향이 연서강을 노려보며 날카로운 소리로 꾸짖었다.

 “마땅한 근거가 없으면 말하지 말거라. 여기는 전장이다. 네가 말한 말에 얼마나 많은 병사들이 움직일지 생각해 본 적이나 있느냐. 의견을 말하는 것은 막지 않아. 허나 의견을 제시하려면 타당한 근거를 함께 대거라.”

 연서강은 지형도를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었다. 연의향은 미간을 좁혔다. 어떻게 연서강이 적들의 특기가 연계 공격이라는 것과, 이곳의 지리에 대한 것을 알고 있는지 여전히 의문이 풀리지 않았다. 해서 좀 더 이야기를 들어보고자 했는데, 연서강으로선 여기까지가 고작이었던 모양이다.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어서 연의향은 다시 한 번 더 탁자를 손으로 쳐 주의를 환기시켰다.

 “됐다. 너는 어서 의원(醫院)으로 가서 심부름이나 도와. 여기는 네가 함부로 개입할 곳이 못 된다. 나를 도와주고 싶다면 차라리 의원의 심부름이나 돕는 게 낫겠구나.”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그제야 연서강이 입을 열었다.

 “언양이, 언양의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사방에서 공격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또, 계곡을 따라 움직이면 금방 의경에 도달합니다.”

 연의향의 눈이 슥 가늘어졌다. 연서강의 말대로 언양의 주변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어 사방에서 공격하기 쉬웠다. 그래서 특별히 언양을 지키는 장군으로 오랫동안 전장에 있어 경험이 풍부한 노장으로 택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뒤의 말은.

 “군사.”

 “네, 장군님.”

 “언양에서 계곡을 따라 움직이면 금방 의경으로 통하나?”

 연의향의 말에 군사가 ‘그것은.’하고 말끝을 흐렸다. 더 이상 대답을 듣기는 힘들 듯 하여 연의향은 눈을 돌려 지형도를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지형도에는 연서강이 말한 계곡 따위는 표시되어 있지 않았다.

 연의향이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안 연서강이 다시 입을 열었다.

 “작은 계곡 두 개가 이어져 있습니다.”

 “그걸 네가 어떻게 알지?”

 연의향은 다소 차갑게 연서강에게 물었다. 연서강의 얼굴이 구겨졌다. 그러다 그가 한참 후에 ‘읽었습니다.’하고 대답했다. ‘읽었다고?’ 연의향이 기가 차단 듯 중얼거렸다. ‘읽었다.’ 연서강의 대답을 다시 되뇌던 연의향은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어디에서?”

 지금 연의향이 갖고 있는 지형도는 이 주변 지리에 가장 근접한 지형도였다. 전쟁을 치루면서 발견한 지리와 지형을 그때마다 새로 기입해 그려나갔다. 때문에 수도가 아무리 문물이 발달했다고 하더라도 지금 연의향이 갖고 있는 지형도보다 더 자세한 지도를 얻을 수 없는 게 당연했다.

 연서강의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다.

 “그저 관심을 끌려고 했던 말이더냐? 가서 의원의 일이나 돕거라.”

 연의향의 차가운 말에 연서강이 ‘아니.’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연의향이 일갈했다.

 “닥쳐라!”

 그녀의 고함소리가 좁은 방 안에 쩌렁쩌렁 울렸다. 사람들의 어깨가 한꺼번에 움츠려들거나 흠칫 떨렸다. 연의향의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져 있었다. 그녀는 잠깐이나마 연서강의 말에 귀를 기울인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생각해보니 애초에 왜 그의 말 따위에 귀를 기울였나 싶었다. 이런 백수 놈의 말을.

 “나가.”

 새파랗게 질린 연서강을 노려보며 연의향은 여기서 나가라고 손짓을 했다. 그녀는 바빴다. 못난 동생의 한낱 공상 따윈 들어줄 시간이 없었다. 부친의 명도 있으니 당분간은 연서강을 데리고 있겠지만, 그것도 한 달 뿐이다. 그 이후엔 가차 없이 수도로 돌려보낼 것이다.

 그렇게 연의향은 생각했었다.

               * * 

 아무리 서회라고 해도 전장의 참혹함이 덜한 것은 아니었다. 서회를 둘러싼 여러 읍이 직접적인 주공격의 대상인 것은 맞지만, 그에 반해 치열한 전장과 좀 떨어져 있는 서회는 실제 전장에서 처리가 불가한 여러 난건들이 판을 치는 곳이었다.

 우선 부상병 문제가 그러했다. 급박한 전투가 일어나고, 또 적이 언제 덮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만연한 여러 읍에서는 아무래도 큰 부상을 입은 병사들의 치료가 요원치 못했다. 그리 심하지 않는 타박상이나 찰과상 등은 즉시 치료하여 다시 움직일 수 있게 하면 될 일이지만, 팔다리가 부러지거나 칼에 깊게 베인 상처들은 채 살펴볼 여유가 되지 않았다. 그러니 그런 참혹한 상처를 입은 병사들은 바로 서회로 와 치료를 받게 되는 것이다.

 또 잡힌 적들 중 다소 중책을 맡고 있는 자들이 서회로 옮겨졌다. 졸병들은 그 즉시 목을 베어 사형에 처하는 반면, 그런 자들은 적진에 대해 뭔가 쓸모 있는 정보를 쥐고 있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그 정보를 얻기 위한 고문도 서회에서 행했고 필요 없어진 자들을 죽이는 것도 서회에서 이루어졌다. 이 외에도 본보기로, 또는 부상병들의 사기를 북돋우기 위해 사로잡은 적들을 공개처형 하기도 했었다.

 하루에도 몇 번이나 수도 없이 많은 병사들이 움직이고, 급변하는 정세에 즉각적으로 대처하기 위해 말을 탄 병사들이 오갔다. 무얼 알리는 지도 모르는 북소리가 계속 들리기도 했고, 봉화를 올리기도 했다. 오랜 전쟁으로 인해 향수병에 걸린 병사들도 있었으며 저 너머로 들려오는 흉흉한 소식에 신경이 날카로워진 병사들도 있었다.

 그 모든 게 그래도 그나마 의경이나 언양, 황지, 지백 등의 지역보다 나을 것이라는 게, 가장 연서강을 우울하게 만들었다.

 연서강은 서회에 도착하자마자 정신없는 도시의 분위기에 놀랐다. 물론 수도도 정신없긴 했다. 하지만 수도가 먹고 살기 바쁜 사람들의 복작거림 때문에 시끄럽고 정신이 없었다면, 서회는 죽음과 맞닿아 있는 사람들이 오늘 하루 더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치느라 정신이 없는 것이었다. 그들을 보고나서야 연서강은 비로소 연무강이 어째서 자신더러 ‘네 놈이?’하고 비웃었는지 알 것 같았다.

 공기부터가 달랐다, 수도와.

 연서강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공기였다. 숨이 가쁠 정도로 무겁고 절로 뱃속 내장이 오그라들 정도로 매서운 공기였다. 땅에선 짙은 피비린내가 났으며 바닥은 풀 한 포기도 없이 온통 진흙탕이었다. 나무는 말을 달리는데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사정없이 베어져 있고, 건물도 딱 필요한 부분만 있어 거칠고 피폐하기 그지없었다. 동물이라곤 인간과 병충해를 옮기고 다니는 파리와 모기, 그리고 그 유충인 구더기, 또 타고 다니는 말과 식량인 돼지뿐이었다.

 서회는 이제까지 그가 지냈던 수도와, 녹우당과는 완전 딴 세상이었다. 폐허나 다름없는 홍월정도 여기에 비하면 매우 포근하고 평화스러운 곳이었다.

 뼈만 남은 듯 앙상한 건물 외벽에 붉은 핏자국이 길게 찍혀 있는 것을 보고 연서강은 숨을 멈추었었다. 그런 연서강을 보며 길가를 가던 병사들이 낄낄 숨죽여 비웃는다. 같은 사람이었지만 수도의 사람들과는 사뭇 다른 눈빛을 가지고 있었다. 아무리 명령이라고 하지만 사람을 죽여 본 사람들의 눈빛은 그렇지 못한 이들과는 사뭇 달랐다. 병사들 서로서로는 그저 아무렇지도 않게 웃고 말하며 눈을 마주치지만, 그 눈빛이 수도 사람들에 비해 몹시 살기등등했다. 여기에서 사는 사람들에게는 흔치도 않은, 평범한 눈빛이었지만 이제 막 수도에서 서회에 도착한 연서강은 그걸 느낄 수 있었다.

 연서강은 곧 그의 누님인 연의향의 앞으로 안내되었다. 병사들이 연서강을 힐끔거리며 뭐라 속삭였지만, 그의 형제들처럼 대놓고 앞에서 뭐라 하지는 못했다. 아마도 연의향이 이곳의 책임자이기 때문이리라. 혈육의 정은 느끼지 못했지만, 혈육이 출세해 그 덕은 톡톡히 느낀다싶어 연서강은 씁쓰레하게 웃었다.

 그리고 연서강은 연의향이 있던 방에서 그녀가 응시하던 지형도를 보게 되었다. 또, 군사의 보고를 바로 옆에서 들었다.

 그 말을 들으면서 연서강은 머릿속으로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연서강이 한번 죽기 전 병법서를 수번쯤 읽은 곳은 맞지만, 그리 큰 관심은 없었기 때문에 읽었던 병법서의 내용이 생생이 기억나지는 않았다. 하지만 변방에서 일어난 일이라면 그도 주워듣고 읽은 것이 있었다. 다름 아닌 집안의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어깨에 활을 맞아 부상을 입은 연서령이 요양 삼아 집에 돌아와 집안사람들에게 제 무용담을 자랑한 것을 전해 들었고, 또 가을에 연시 문중에서 그 무용담을 정리하여 서책에 기록해놓은 것을 가져와서 보곤 했었기 때문이었다.

 연서강은 전쟁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그래도 제 누이들이 한 일인지라 억지로나마 변방에서의 일을 기록한 서책을 읽었다. 서책을 보며 자신이 한 짓도 아닌데 연서강은 괜히 뿌듯하고 자랑스러웠다. 또 내용을 외워 후에 기연조에게 자랑하기도 했었다. 제 누이들이 참으로 용감하고 기특하지 않느냐며, 특히나 막내 연서령이. 그 아이는 나이도 어린 것이 어쩌면 그리 용맹할까, 연서강이 한탄을 섞어 중얼거린 적도 있었다.

 .......전부 연씨 문중이 자신을 이용해먹고 버릴 것이라 상상조차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지금은 어리석다 생각하다 못해 실소까지 흘러나올 일이지만.

 그래도 연서강이 그때 변방에서 일어난 전쟁에 대해 듣고 읽어서 다행이었다. 그렇지도 않으면 연서강은 군사의 말에 반박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지형도를 보고 알았다. 전투가 어디까지 진행이 되었는지. 이어 군사의 말을 듣고 확실해졌다. 동시에 연서강은 이후에 전투가 어떻게 진행될지 기억해냈다. 이야기로 듣고, 서책에서 봤던 내용들이 희끄무레하게 떠올랐다. 불명확한 기억은 지형도와 군사의 말에 힘을 얻어 연서강의 머릿속에서 실체를 가지게 되었다. 이어 이후에 어찌될 것인지 한줄의 문장이 되어 그에게 보여주었다.

 이후엔, -언양이 빼앗길 것이다.

 순간 떠오른 문장에 연서강은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연서강이 겨울에 죽기 전, 지금은 연의향의 책상 위에 있는 지형도는 새로 다시 그려져 연씨 문중의 서재에 보관되었었다. 새로 그려진 지형도엔 연의향이 빼앗긴 언양을 탈환한 후 적들의 이동통로가 된 두 개의 계곡이 기록되었었다.

 언양을 빼앗긴 후 적들은 이 두 개의 계곡을 통해 의경에 아주 손쉽게 들락날락하게 되었다. 그들은 우선 의경을 고립시켜 의경과 서회의 연락망을 끊어놓았다. 그리고 착실하게 의경에 주둔하고 있는 연서령의 부대를 압박해나갔던 것이다. 연서령은 이 전투에서 꽤나 고전하게 된다. 여름의 끝자락에 연서령이 적이 쏜 활에 어깨를 맞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물론 빼앗긴 언양은 연의향이 직접 출두하여 빼앗긴 지 한 달 만에 다시 탈환하게 되지만, 연의향은 언양을 빼앗겼다는 사실 만으로도 큰 수모를 당했다고 여겼다. 그리고 그녀는 분노로 바르르 떨며 지형도에 작은 계곡, 조그마한 특징적인 지형까지도 모두 빠짐없이 기록하라 명했었다.

 전부 ‘이후’에 일어날 일이다. 지금은 ‘아직’이다. 그러니 지금의 지형도에 그 계곡이 기록되어 있지 않은 건 당연했다. 자신의 말을 듣고 연의향이 비웃은 것도 그렇게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연서강은 연의향의 비웃음을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었다.

 그는 다만 지도 위에 아로새겨진 ‘언양’이란 지명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무슨 짓을 해서든 무훈을 세워 부친의 신뢰를 얻어야 했다. 그래야 연씨 문중이 품고 있는 꿍꿍이가 무엇인지 자신 또한 가담해 들을 수 있지 않겠는가. 황후가 관련되어 있다면 그 황후의 곁으로 갈 수 있을 정도는 되어야, 그렇지 않다면 어찌.

 .......어찌 기연조를 구할 수  있지 않겠는가.

 기씨 문중에 속한 기연조를 괴한의 습격으로 꾸며 죽일 정도라면 중대한 일이 아닐 수가 없다. 기연조를 죽이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기연조가 연씨 문중에게 ‘방해’가 되었다는 소리다. 연씨 문중이 그런 치사하고 극단적인 술수를 쓸 정도라면 기연조가 무언가 연씨 문중을 해할 중대한 걸 잡고 있었다는 게 아닌가. 그래서 기연조를 죽일 수밖에 없었던 건 아닌가.

 그게 뭐지?

 연서강이 서회로 오기 전 내내 생각하고 있었던 물음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게 뭘까. 기연조를 죽이면 안 될 정도로 연씨 문중에게 치명적인 ‘무언가.’

 그걸 알기 위해서라도, 어떻게 기연조가 그걸 쥐게 되었는지 알기 위해서라도 연서강은 반드시 연씨 문중의 신뢰를 받을 필요가 있었다. 원인을 알아야 기연조를 구할 수 있었다.

 그러니 무슨 짓을 해서라도.

 해서 연서강은 ‘언양’을 보던 시선을 거두고 이를 악물었다. 고작 지도다. 지도 위의 지명이고 그 위엔 아무 사람도 없다. 몇 명의 사람들이 살아 있는지 표시도 없다.

 .......고작, 종이일 뿐이다.

 연의향이 꺼낸 ‘네가 말한 말에 얼마나 많은 병사들이 움직일지 생각했느냐.’란 말에 순간 흠칫하긴 했었지만, 넘어가지 않았다. 간신히 억누른 마음이 불쑥불쑥 솟아나와 심장을 괴롭히는 걸 연서강은 입술을 깨물며 참아냈다.

 언양이 빼앗긴다. 아니, 언양은 반드시 빼앗겨야 한다.

 그래야....... 연의향 누님이 자신의 말을 들어주지 않겠는가.

 “.......”

 연서강은 병사를 따라 의원으로 향하며 하늘을 보았다. 벌써 깊은 밤이 되었는지 달과 별빛이 눈이 부셨다. 어둔 하늘만이 여기가 수도보다 나은 듯 했다. 뭔가를 태우는 시꺼먼 연기가 하늘의 한 구석에서 흩어졌지만, 달과 별의 빛들은 여전히 찬란했다.

 “어서 오십시오.”

 하늘을 올려다보는 바람에 다소 걸음이 느려진 연서강을 그를 안내하는 병사가 얼굴을 찌푸리며 퉁명스럽게 재촉한다. 그래서 연서강은 고개를 내려 병사를 보았다. ‘죄송합니다.’라고 대답하며 그는 머릿속으로 다른 생각을 했다.

 시꺼먼 생각이다.

 언양은 분명 빼앗긴다. 마치 아침 저잣거리에서 일어난 난동처럼 반드시 일어날 일이다. 거기서 연서강은 미리 기연조를 불러, 그를 저잣거리의 난동에서 무사히 보호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때문에 기연조가 아닌 다른 사람이 대신 다치게 되었다. 기연조는 그 사람이 다친 것이 무척 마음이 아픈 듯했지만, 연서강은 아니었다. 기연조가 다칠 바엔 차라리 모르는 다른 사람이 다치는 게 낫다. 그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때와 마찬가지인 것이다.

 기연조를 구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이 변방에서 무훈을 쌓아 부친에게 인정을 받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남진군의 대장군인 연의향에게 자신이 쓸모가 있다는 사실을 각인시켜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연의향은 자신을 잡 심부름만 시키다 마땅한 시간이 되면 집으로 돌려보낼 것이다. 그렇게 되선 절대 안 된다.

 “.......”

 연서강은 의원 주변에서 절뚝절뚝 걸음 하는 한 병사를 보고 얼굴을 찌푸렸다.

 그는 내일 언양이 빼앗기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을지 알고 있었다. 책에 ‘이 전투로 짤막하게 몇 명이 사망하고 몇 명이 부상하였다.’하고 덧붙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책으론 한 줄, 연서령의 무용담에선 몇 마디.

 그 일이 내일 일어난다.

 그는 지금이라도 당장 연의향을 찾아가 언양이 내일 빼앗기게 되니 어떻게든 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었다. 아니면 연의향 몰래 언양에 기별이라도 넣어 내일 전투에 대비하도록 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연서강은 이를 악물고 병사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자신은 이미 불특정 다수를 구하기보다 기연조를 구하는 쪽을 택했다. 기연조야 정의롭고 올곧은 이이니 둘 중 누구를 택하라고 하면 ‘능력껏 모두를 구하겠네.’라 대답하겠지만, 자신은 달랐다. 자신은 보잘 것도 없고 능력도 없는 인간이라서 고작 한 사람만을 구하는 것도 벅차다. 고민은 망설임을 낳고 이어 무른 마음을 낳아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

 그러니 독해져야만 한다, 자신은.

 “.......”

 언양을 지도상으로만 봐서 차마 다행이었다. 그저 종이 지도 위라, 일어난 전투도 고작 붉은 색의 그림표시라 그 위에 어떤 잔혹하고 험악한 일이 있었을까 상상만으로 그치게 만들었다. 아무리 그렇게 결심했다고 해도 지도가 아니라 실제 언양의 사람들을 보았다면 연서강도 그리 모질게 언양에서 시선을 치울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일부러 미심쩍은 듯, 답답하게 굴지 않고 정말 필사적으로 연의향에게 매달려 구해야 한다고 사정했을 지도 모른다.

 “괜찮아.”

 연서강은 또 다시 자신의 심장을 찌르는 죄악감에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언양이, 정복당하는 건, 원래 정해져 있는 일이지 않나.

 자신은 그것보다 내일 연의향이 놀라 자신을 불렀을 때, 어떤 반응을 보여야 하는지, 그것을 신경 써야 한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한 번도 가본 적도 없는 언양보다야, 기연조의 일이 자신에겐 더 시급하다. 어찌 되었든 주어진 기회를 활용해 자신은 연씨 문중의 신뢰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 스스로를 설득시키며 연서강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 * 

 “언양이 적들의 손에 넘어갔다.”

 이른 오후, 연의향이 참담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녀를 앞에 둔 연서강은 아무 말 없이 입을 다물고 있었다. 지금은 함부로 입을 놀릴 때가 아니었다. 연서강은 차분하게 연의향이 어제 있었던 일을 모두 떠올리고 자신을 바라볼 때까지 기다렸다.

 유월 중순을 달려가는 시점인지라 바깥 날씨는 몹시 무더웠다. 하지만 그 더위가 무색하도록 이 방안의 온도는 싸늘했다. 언양의 비보(悲報) 전한 병사와 그 보고를 들은 이들, 즉 연의향, 군사, 부대의 대장들까지 아무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마치 초상이라도 치루는 듯 가라앉은 분위기는 쉽사리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초유의 사태이긴 했다. 이제까지 몇 년을 서회에서 국경을 지킨 연의향이었지만, 한 번도 이쪽 땅을 점열당한 적은 없었다. 끝나지도 않고 계속되는 싸움이 지긋지긋하긴 했지만 충분히 무찌를 수 있을 정도로 허접한 것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연의향은 언양을 지키고 있는 노장을 믿고 있었다. 그가 그리 쉽게 넘어갈 줄은 몰랐던 것이다. 그런 무의식중의 방심이 이번 패전을 부른 것이라, 연의향은 생각하고 이를 부득 갈았다.

 “.......”

 아무도 그런 그녀를 다시 되찾으면 될 일이라고 위로하지 못했다. 당을 빼앗긴 것이 문제가 아니라 빼앗겼다는 사실 자체가 그녀의 자존심에 큰 상처가 되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연의향은 분노하며 이를 갈았고, 나머지 사람들은 그런 연의향의 눈치만 살폈다.

 특히나 군사가 그랬다. 자신의 예상이 틀린 데다 괜한 병사들만 왔다갔다 허탕을 치게 만들었다. 제 실수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깨달은 군사의 얼굴은 이미 새파랗게 변한 채였다.

 계속해서 할 말은 찾지 못하고 서로의 눈치만 살피는 바람에 방안의 침묵은 오랫동안 이어졌다. 사람들은 이 침묵을 깨뜨리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이대로 있다가는 이 침묵이 끝도 없이 이어질 것만 같았다.

 그래서 연서강은 용기를 내어 입을 열었다. 이윽고 펼쳐질 일이 눈에 선한 그는 지금 이렇게 충격에 휩싸여 우왕좌왕할 시간이 없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저는 왜 부르셨습니까, 누님?”

 그렇지만 바로 연의향에게 ‘이런 일이 생길 테니 이렇게 해야 한다.’하고 말하지 않았다. 방안의 분위기가 어떻든, 언양이 정복을 당했든, 연의향의 자존심이 상처를 입었든 상관없이 연서강에게는 자신의 목표가 있었다. 그걸 위해서라도 연서강은 연의향의 속을 좀 긁을 필요가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모르는 척 묻는 연서강에 연의향이 와작 얼굴을 구기며 소리쳤다.

 “네놈이 귀가 있으면 들었을 것 아니냐? 지금 언양이 당했다고! 눈치가 없는 것도 정도가 있지!”

 “그게 저를 부른 이유입니까?”

 격앙된 연의향의 목소리와 대비되어 담담한 연서강의 목소리가 매우 무심하게 들렸다. 이어 연서강이 시선을 내리깔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하지만 어제 제 말을 채 들어보지도 않고 쫓아낸 것은 누님이 아니십니까.”

 책망하는 목소리가 아니었는데도 연의향은 부친에게 뭐라 꾸지람을 받은 듯 얼굴을 찌푸렸다. 뭐라 울컥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것이 있는지 연의향이 입을 열었다가 이내 다물었다. 연서강의 말이 옳았기 때문이었다. 여기서 ‘네놈이 답답하게 말하지 않아서 그러지 않았느냐!’하고 외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어 연의향은 부친 연무의가 자신에게 했던 충고가 떠올라 입술을 깨물었다. ‘너는 너무 다른 사람의 능력을 무시하는구나.’라는, 속을 좀 진정시킨 뒤 그녀는 입을 열었다.

 “.......네놈의 말대로 되었다. 이른 새벽부터 황지, 언양, 의경의 순서대로 전투가 일어났었다.”

 거기까지 말하고 연이향이 실소했다. ‘무슨 점쟁이도 아니고.’ 그녀가 기가 찬다는 듯 중얼거리는 말에 연서강은 속으로 고소를 머금었다. 점쟁이? 차라리 점쟁이가 질이 좋을 것이다, 자신보다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연서강은 ‘그래서 또 어떻게 되었습니까?’라고 묻자, 연의향이 이를 으득 갈았다. 으르렁거리는 듯한 소리로 그녀가 대꾸했다.

 “의경에서 전투를 치르는 중에 언양이 다시 공격 받았다. 네놈이 말한 대로 언양에 적의 수가 가장 많았다.”

 “.......”

 연서강은 무심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하고 심심한 대답을 하며, 계속 냉정한 반응인 연서강을 상대하다 연의향이 마침내 인내가 바닥을 쳤는지 쾅, 주먹으로 탁자를 세게 내리쳤다. 그 소리에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움찔 어깨를 떨었다.

 그러나 연서강은 다만 고개를 돌려 그녀를 봤을 뿐이었다.

 “대체 어떻게 안 거지?!”

 새된 목소리의 물음에 연서강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아닙니다, 누님. 지금은 그 이유를 알아봤자 소용이 없지 않습니까. 이미 지나간 일인데.”

 연서강의 말에 연의향의 눈썹이 구겨졌다. 인정하기 싫지만 아우의 말이 옳았다. 그 옳다는 아우의 말조차도 인정하기 싫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인정해야 한다.

 현재 연서강이 도움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누님이 지금부터 하셔야 하는 일은 고립된 의경을 구하는 일입니다.”

 “.......고립?”

 “제가 어제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언양엔 두 개의 작은 계곡이 있다고. 그 계곡을 통해 적들이 의경으로 이동할 겁니다. 의경을 에워싸고 압박을 줄 생각으로 말입니다.”

 빈틈없이 완고하게만 보이는 그녀에게서 작디작은 균열을 찾아낸 연서강은 여유를 가지고 말하기 시작했다. 천천히, 그리고 차분하게. 그 말의 속도는 어제 그녀가 답답하다 여긴 그때와 다를 바가 없었지만, 지금은 아무도 연서강을 닦달하지 못했다. 연의향 또한 ‘닥쳐라!’라고 소리치지 못했다. 그저 그가 말을 끝낼 때까지 집중하며 듣고 있을 뿐이다.

 그 감각에 연서강은 묘한 즐거움을 느꼈다. 실로 처음 느끼는 감각이었다.

 “의경을 인질로, 그들이 의향 누님께 식량을 요청할 겁니다.”

 연의향이 그 말에 입을 한 일자로 다물었다. 뜻밖이라면 뜻밖이었고, 당연하다면 당연한 말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원래 도적떼로 시작된 무리로, 평소에도 주변 읍을 공격해 원하는 물품들을 갈취하곤 했다. 그러나 연서강이 대수롭지 않은 이야기를 일부러 꺼낸 것은 아닌 것 같았다. 해서 연의향은 물었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연서강은 잠깐 침묵했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그 약간의 침묵 사이에도 아무도 연서강을 빨리 말하라고 다그치지 않았다. 하물며 저 연의향조차도!

 연서강은 희미하게 미소 지었다.

 “가뭄입니다, 누님.”

 “맥령(麥嶺)!”

 현재 경은 겨울부터 시작된 지독한 가뭄에 시달리고 있었다.

 날이 따뜻해 벼로 이기작을 하는 남쪽 나라야 몰라도 서쪽은 벼와 보리의 이모작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경은 하의 서쪽에 있는 나라로 당연히 벼와 보리의 이모작을 하는 나라였다.

 이모작을 하는 농사 사정이야 다들 비슷했다. 작년 가을에 저장했던 곡식들을 겨울과 봄에 걸쳐 소비하고, 봄에 심은 보리를 5~6월에 수확해 벼를 수확하는 가을까지 소비한다. 그리고 하곡의 보리가 여물지 않는 4~5월에는 필연적으로 겨우내 저장했던 곡식이 모두 떨어져 춘궁기(春窮期)가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을 농민들은 맥령(麥嶺-보릿고개)이라 불렀다.

 물론 하에도 이모작을 실시하는 지역에선 이 춘궁기가 존재했다. 하지만 하는 이기작을 하는 남쪽 지역까지 포섭한 거대 제국인지라, 저장한 곡식들의 양이 경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무엇보다 나라가 기울어져 가는 경과 달리 하는 아직까지 나라의 정세가 멀쩡했던 것이다. 백성을 구휼(救恤)할 여력이 없는 경과 달리 하에선 여러 가지 구휼제도가 마련이 되어 있었다.

 지금은 6월 중순이다. 바야흐로 4~5월의 맥령을 겨우 지내고 하곡의 보리를 수확해 그 동안의 굶주림을 메울 시기인 것이다. 하지만 경은 그럴 수가 없었다. 겨울부터 시작된 가뭄은 봄비마저 없앴고 때문에 심어놓은 보리마저 모조리 말라비틀어지게 만든 지 오래였기 때문이다. 말 그대로 경은 현재 곤궁(困窮)의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건 경에서 해방을 부르짖고 있는 세력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렇군.”

 연서강의 말에 연의향이 그제야 눈치를 챘다는 듯 턱을 쓸었다. 그래서였던 것이다. 어쩐지 오랑캐의 움직임이 본격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들은 굶주림으로 절박했던 것이다. 그래서 언양을 점령해 의경을 고립시켜, 의경을 미끼삼아 연의향에게 식량을 요구할 정도로. 생과 사의 기로에 선 그들이 이제야 비로소 이판사판으로 덤빈 것이 연의향은 이해가 갔다.

 “.......”

 그런 연의향을 연서강은 가만히 지켜보았다.

 얼마나 설득력이 있을 것인가-.

 연서강이 생각하고 있는 것은 바로 그것뿐이었다.

 사실 맥령(麥嶺)에 관한 이야기는 연서강도 그렇지 않을까, 예상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연서강이 아는 것은 적들이 의경을 고립시킨 것, 그래서 연의향이 연서령과 연락이 끊어져 꽤나 발을 동동 굴렸다는 것, 그것뿐이다.

 아무리 서책을 읽고, 연서령의 무용담을 들었다고 해도 기억나는 부분이 있고, 확실치 않은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연서강이 알아서 추리해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행위의 ‘결과’를 알고 있기 때문에 행위의 ‘원인’에 대해서는 쉬이 추리할 수 있었다. 문제를 봤을 때 답을 도출하기까지의 과정이 설사 어렵다 해도 답을 알고 있으면 어느 정도의 과정을 끼워 맞출 수 있는 것과 비슷했다.

 연의향의 반응을 내심 주의 깊게 살피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전쟁을 끝내고 싶으십니까, 누님.”

 그 말에 연의향이 고개를 들어 연서강을 보았다. 그 눈에 담긴 강직한 빛이 무얼 의미하는지 연서강은 굳이 답으로 듣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당연한 걸 일부로 물어본 것이니 연서강도 딱히 그 답을 듣고 싶지는 않았다.

 설득력.

 오직 그것 하나만 생각하며 연서강이 그녀를 향해 말했다.

 “지금이 싸움을 끝낼 적기입니다. 후에 그들의 요구를 누님께서 들어주신다면 싸움은 더더욱 길어질 겁니다.”

 “.......”

 연의향은 여전히 아무 말이 없었다. 그녀는 연서강을 바라보며 당연히 뒤에 이어질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당연한 말을 연의향은 물론이고, 아무도 입에 올리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연서강은 의아하게 생각하며 묵직하기 그지없는 말을 꺼냈다.

 “.......지금 이 가뭄을 이용해 필히 싸움을 끝내야만 합니다.”

 연서가의 말에 언양을 빼앗겼다는 비보로 침울해져 있던 사람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그렇다. 지금이 기회다. 이 지긋지긋한 싸움을 종결시킬! 작은 목소리로 누가 그렇게 수군거렸다. 연의향도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연의향은 아직도 고집스럽게 입을 꾹 다문 채 연서강을 응시하고 있을 뿐이었다.

 최종 판단을 내릴 상대가 침묵에 빠져 있어 연서강은 다시 입을 열었다.

 “누님이 지금 해야 할 일은 의경을 돕는 것입니다. 지금 이렇게 분노하고 계실 시간이 없습니다. 의경이 고립되기 전에 지원을 보내야만 합니다.”

 “.......그렇군.”

 비로소 연의향이 고개를 끄덕였다. 연서강은 그에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비로소 인정한 것이다.

 “네 말이 맞구나.”

 자신이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연서강은 연의향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조용히 속삭였다.

 “감사합니다.”

 이어 의경을 돕기 위한 대책 회의가 이루어졌다. 그 회의에 참석할 수는 있게 되었으나 연서강은 회의 내용엔 관심이 없었다. 해서 그는 다소 의욕 없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회의의 내용도 뻔했고 일의 진척과정도 연서강에게는 뻔했다. 마치 역사책 속에 있었던 일들이 제 눈앞에서 펼쳐진 것 마냥 회의는 그랬고, 해서 연서강도 관람하는 기분으로 회의를 지켜보았다.

 연의향은 우선 연서령이 있는 의경에 사람을 보냈다. 가서 의경의 상황이 어떤지 알아보고 연서령에게 앞을 대비해 군대를 정비하라 말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처음부터 한 부대를 보낼까 생각했지만 언양이 함락된 이후로 줄줄이 적이 출몰했다는 새로운 소식이 여기저기서 들려와 함부로 기존의 자리에서 부대를 빼낼 수 없었다. 적도 사정이 급했던지라 어떻게든 연의향의 눈을 의경에서 다른 곳으로 돌리게 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듯 했다. 게다가 아무래도 의경을 주시하고 있는 적이다. 연서령을 지원하기 위해 부대를 파견했다간 금방 적들의 눈에 띄어 제지를 당하게 될 것이다.

 해서 보낸 사람이건만, 그 사람은 하루도 지나지 않아 서회로 돌아왔다. 적들이 이미 벌써 의경으로 가는 길목에 진을 치고 있었다는 게 그 사람의 말이었다. 연의향은 ‘재빠른 놈들.’이라 말하고 이를 으드득 갈았다.

 그런 자신의 누이를 보며 연서강은 그녀의 치아가 몹시도 걱정이 되었다. 회의 중에 그녀가 대체 몇 번이나 이를 가는지, 분한 마음은 알겠지만 그 분함 때문에 누이는 쉬이 제 몸을 상하게 하는 것 같아 연서강은 안타까웠다. 치아는 부모님이 주신 오복(五服) 중 하나이거늘.

 .......따위와 같은 실없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 연의향이 연서강을 보았다.

 “너는 별 다른 의견이 없느냐?”

 회의가 시작된 이후 연의향이 처음으로 연서강에게 묻는 말이었다. 연의향의 질문에 회의를 하고 있던 여러 사람들도 일제히 연서강을 쳐다보았다. 그 시선엔 아직은 경계의 빛이 남아 있었지만 동시에 기대의 빛도 깃들어 있었다.

 연서강은 순간 깜짝 놀랐다. 그는 이제까지 타인의 기대를 받았던 적이 한 번도 없었다. 하도 괄시와 냉대만 받아 그런 시선에만 익숙해져 있었던 터라, 그는 준비된 말이 있음에도 잠시 긴장해 바로 입을 열지 못했다.

 “서강아?”

 이어 연의향이 그를 불렀다. 그에 또 기이한 느낌이 들어 연서강은 연의향을 바라보았다. 투구를 벗어 검고 긴 생머리를 갑옷 위에 늘어뜨린 연의향이 의아한 얼굴로 ‘왜 그러지?’하고 묻는다. 연서강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그저....... 누님에게서 처음으로 다정하게 이름을 불린 것 같다고 생각이 들어서.”

 “.......”

 쓸데없는 감상이라는 듯 연이향이 설핏 눈살을 찌푸렸다. 연서강의 생각도 그와 비슷했다. 이제야 가족에게 다정하게 이름 불리었다고 기뻐할 때가 아닌 것이다. 한 번 죽기 전의 자신이었다면 기뻐했을지 모르나 지금은 아니다.

 그는 이내 마음을 다잡고 입을 열었다.

 “누님. 저를 의경에 보내주십시오.”

 그 말에 연의향이 얼굴을 와작 구겼다.

 “이제까지 논의한 걸 허투루 들은 게냐?”

 “아닙니다. 심부름꾼이 그냥 되돌아왔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제대로 들었으니, 걱정 마십시오.”

 “허면 어쩐 연유로 그리 말한단 말이냐?”

 ‘이유’를 묻는다는 점에서 어젯밤과 같지만 그 말투가 굉장히 달라져 있었다. 어제는 들을 가치도 없다는 듯 한 번 말해볼 거면 말해보라는 식이었는데, 지금은 진심으로 그 연유를 듣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 변화로도 연서강은 충분했다.

 연의향이 자신을 조금이나마 신뢰하기 시작했다는 증거로 말이다.

 자신의 말에 설득력이 있어 믿을 수 있다, 연의향이 그리 판단했다면 이후엔 일이 쉬이 풀릴 것이다. 적어도 연의향이 자신의 말을 허무맹랑한 것으로 치부하여 아예 무시하진 못할 테니까, 지금 원하는 것을 그녀에게 말하면 그녀가 들어줄 가능성도 있다.

 그리 생각하며 연서강은 신중하게 말을 골라 다시 입을 열었다.

 “현재 함부로 군대를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잘 압니다. 하지만 작정하면 아주 소수의 사람들은 의경에 들이는 게 가능하지 않을까요. 적들도 소수의 인원 정도는 의경에 흘러들어가는 것을 막지 않을 겁니다. 고작 소수의 인원으로 무얼 할까, 생각이 들어 방심을 하겠지요. 게다가 의경에 들어가는 사람이 많으면 많을수록 인질도 그만큼 많아지니 적들은 오히려 괜찮다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연서강의 말이 무슨 뜻인지 파악한 연의향이 딱딱하게 대꾸했다.

 “너를 굳이 작정하고 의경으로 보내야 할 가치가 있을까?”

 연의향에게 아직 연서강은 천덕꾸러기 남동생이었다. 어째 언양이 함락되어 그의 말이 진실이라는 게 드러났으나 그 한 가지로 무턱대고 이 남동생을 믿기는 힘들었다. 어제 오늘, 이제까지와는 사뭇 다르게 보이는 남동생이기는 하지만 지금까지 그녀는 십 수 년을 연서강을 한심한 남동생으로 알고 살았다. 그 십 수 년의 믿음이 갑자기 깨지지는 않았다.

 좌중을 둘러보며 연의향이 중얼거렸다.

 “너를 보낼 바엔 차라리 여기에 있는 다른 인재들을 보내는 게.”

 “그들은 얼굴이 알려져 있을 것 아닙니까.”

 낫지 않겠느냐, 라고 말을 이으려고 했던 연의향은 갑작스럽게 제 말을 자르고 반박하는 연서강을 보고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연의향이 분노나 다른 감정들을 미처 느끼기 전에 연서강이 재빠르게 다시 말을 이었다.

 “누님. 누님과 여기에 앉아 계신 분들이 몇 년째 전투를 임하고 계십니까? 적들에게 얼굴이 알려져 있고도 충분히 남을 시간입니다. 왜 적들이 의경을 인질로 삼을 생각을 했다고 생각하십니까? 의경이 물론 제일 선두의, 가장 치열한 전투가 이어졌던 곳이긴 합니다만 .......그것보다 누님이 여기 책임자이기 때문이라고는 생각 안 해보셨습니까?”

 “.......”

 “적들은 의경에 주둔하고 있는 자가 연서령인 걸 알기에 의경을 노린 겁니다.”

 언양을 이용해 의경을 고립시키는 것은 적들의 철저히 계산된 행동이었다. 그들은 혹시나 자신들의 요구를 거절할 연의향을 고려해 특별히 혈육인 연서령이 있는 의경을 노린 것이다. 그래도 제 혈육이 위험에 빠졌다는 데 도움을 안 줄 수가 있을까. 그들은 그렇게 계산했던 것이다.

 그 말이 맞았다. 연의향과 연서령은 연무의의 자식들 중 유일한 자매로서 연의향은 의기양양하다 못해 다소 오만방자한 구석까지 있는 동생 연서령을 나름 귀여워하고 있었다. 연서령도 언니 연의향을 제 오빠들과 달리 존경하며 잘 따랐었다. 그랬기 때문에 자존심 강한 연의향이, 연서령이 도와주겠답시고 변방을 지원했을 때 순순히 받아들였던 것이다.

 “.......”

 연서강의 말에 연의향은 잠깐 침묵했다. 만에 하나 적들이 연서령을 사로잡아 인질로 삼는다면, 그렇다면, 연의향은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수 없게 될지도 모른다. 물론 연서령이 쉬이 인질이 될 거라 생각지는 않았다. 연서령도 충분히 실력 있는 무장이었다.

 -하지만, 언니의 입장으로 볼 땐 한없이 모자란 동생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지금은 의경의 상황을 전혀 모르게 된 시점인 것이다. 만약 적들이 연서령이 무사하지 않다고 말해도, 연의향에게는 그 말의 참과 거짓을 따질 근거가 없게 되는 것이다.

 “.......적들도 누님이 어떻게든 의경에 지원을 보낼 거라 예상하고 있을 겁니다. 그런 적들이 과연 얼굴을 알 정도로 중책을 역임한 자를 의경으로 순순히 흘러 보낼까 의문이네요.”

 그 말도 맞았다.

 설핏 연의향의 눈에 망설임이 스친 것을 본 연서강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제가 안 된다면 누님이 한 번 추천해주십시오. 의경으로 보낼 사람으로 누가 타당한지, 적들이 얼굴을 알지 못할 만한 사람으로. 그러나 확실하게 의경에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을.”

 그에 연의향은 자신도 모르게 싸하게 가라앉은 좌중을 살펴보았다. 의경으로 간다는 것은 상당한 중임(重任)이다. 그런 중대한 임무를 맡길만한 사람은, 그것도 의경에 도움이 될 만한 사람은 몇 되지 않는다. 물론 당연히 연의향의 부대에서 중책을 역임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무명의, 그러면서도 의경에 도움이 될 만한 인재는 연의향이 알고 있는 하-.

 답은, 없다.

 아니, 찾으면 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시시각각 의경의 위태로움이 커져가는 상황에 느긋하게 하나하나 병사들을 굽어 살펴 인재를 찾을 수는 없는 것이다.

 지금 당장, 의경에 보낼 사람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의경에 어제 도착한 연서강을 보낼 수는 없는 노릇이기도 했다. 연의향은 연서강을 돌아보며 마뜩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내가, 너를, 뭘 믿고?”

 말하고 나니 괴이했다, 이 상황이.

 연의향은 이제까지 단 한 번도 제대로 이 남동생과 대화를 해본 적이 없었다. 그녀가 본 것은 연무강과 연무진의 괴롭힘과 괄시, 냉대에 의기소침해져 늘 구석에 처박혀 있던, 내내 얼굴도 들지 못하던 작은 아이일 뿐이다. 그런 남동생을 연의향도 은근히 그를 무시하고 냉대했었다. 그런데 현제, 그랬던 자신이 남동생의 말을 진지하게 듣고 있었다.

 이 상황과 이 감각이 너무도 낯설고 괴이쩍어 연의향은 나쁜 도깨비가 한낮에 장난이라도 치는 것 아닌가,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여전히 나쁜 도깨비가 장난을 치고 있는지, 연의향의 질문에 그 어리석고 둔하고 의기소침해 얼굴도 채 못 들고 다녔던 동생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 미소의 끝자락에는 여유와 믿음이 섞여 있었다. 연의향이 결국 제 말을 들어주리란, 자신감에서 발로된 미소였다.

 그리고 그런 남동생의 얼굴을 연의향은 처음 보았다.

 “누님. 제가 처음부터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저는 누님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아버님께 부탁드린 거라고.”

 “.......”

 연의향의 머릿속에 부친의 충고가 맴돌았다. 자신이 부친 연무의에게 ‘도움이 될 사람’을 보내달라고 요청한 건 맞았다. 그런 용도로 편지를 썼었다. 그랬다. 그랬는데, 온 건 못나서 오랫동안 괄시 받았던 남동생이었다. 연의향은 그게 부친이 자신에게 친 농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농이, 아니었어?”

 불현 듯 그녀가 중얼거린 말에 연서강이 ‘누님?’하고 부른다. 그에 연의향은 얼굴을 와작 구겼다. 어떻게 된 것일까. 보기 드물게 연의향의 판단력이 흐려졌다. 부친이 정말로 연서강이 도움이 될 걸 알아 보낸 것인가? 아니면 그저 자신의 능력을 시험해 보기 위해 장난질을 한 것인가. 알 수 없었다. 알 수가 없어서 연의향은 그저 연서강의 얼굴을 말끄러미 바라보기만 했다.

 혼란으로 가득 찬 자신과 달리 연서강의 얼굴을 매우 정갈했다. 약간 말라 갸름한 턱에 순하고 부드러운 얼굴 생김새를 가진 연서강은 이런 전쟁터와 매우 어울리지 않아 보였다. 그저 신선놀음이나 하며 소박하게 자라온 도련님이니 당연했다.

 연의향은 입술을 깨물었다.

 정녕 저 놈을 보내야만 한단 말인가?

 생각과 동시에 연의향의 입에서 말이 흘러 나왔다.

 “너, 는 어째서 여기까지 왔느냐, 왜 아버님께 여기로 보내달라고 했지? 내게 도움이 되고 싶다고? 어째서? 녹우당에서 그저 편히 있으면 좋을 일 아니냐. 어째서 도움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지?”

 그에 연서강이 말갛게 웃었다. ‘농담도.’하고 그가 중얼거렸다. 그것을 연의향은 여전히 괴이한 것을 보듯 바라보았다. 연서강이 조용한 목소리로 타이르듯 연의향에게 대답했다.

 “누님과 서령이는 제 가족이니 당연하지 않습니까.”

 그 말도 맞았다.

 너무도 옳은 말이라서 연의향은 더더욱 혼란에 빠졌다. .......하지만 수백 번을 생각해도 결론은 같았다. 맞는 말이다.

 “.......”

 그래서 연의향은 입을 열었다.

 “서령이를, .......잘 부탁하마.”

 연서강이 부드러이 웃어보였다.

               * *

 연서강을 의경으로 보내기 위한 만반의 준비가 갖추어졌다.

 말을 몰 줄은 알지만 빠르게 달릴 수 있을 정도는 아닌 연서강을 위해 연의향은 기마병 한 명을 붙여 주었다. 기마병대에서도 특별히 말을 잘 다루기로 정평이 난 병사였다. 날렵하고 빠른 말도 무론 주어졌다.

 병사가 먼저 말에 올라타고 연서강이 그 병사의 뒤에 탔다. ‘꽉 잡으십시오.’하고 병사가 단단히 충고했다. ‘떨어지셔도 저는 그냥 달릴 뿐입니다. 죽고 싶지 않으니까.’ 그렇게 덧붙이는 목소리에 진정성이 묻어나와 연서강은 자신도 모르게 꿀꺽 침을 삼켰다. 긴장한 얼굴을 애써 피며 연서강은 ‘잘 부탁드립니다.’하고 병사를 향해 대답했다.

 작전은 간단했다. 서회에 주둔하고 있는 병사와 황지와 지백의 병사들 약간을 모아 의경으로 통하는 길을 잠깐 뚫는다. 의경으로 통하는 길이 뚫리면 절대 안 되기에 적들은 분명 황지와 지백을 동시 공격할 게 분명했다.

 그러니, 잠깐.

 잠깐이다. 길이 뚫리는 건.

 길을 뚫는 데 시간을 지체하여 황지와 지백마저 언양처럼 빼앗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잠깐 길을 뚫고 황지와 지백의 병사들은 제 위치로 다시 돌아갈 예정이었다. 그리고 잠깐 길이 뚫렸을 때 연서강을 태운 말이 달려 단숨에 의경을 향한다. 서회에서 온 병사들만 남아 연서강을 태운 말이 의경까지 돌파할 수 있도록 적의 시선을 끌며 전투할 예정이었다.

 거기서부터 작전의 성공 여부는 말을 모는 병사의 능력과 적이 연서강을 얼마나 하찮게 보느냐에 달려 있었다. 적을 잘 따돌려 의경 가까이에만 간다면 더 이상의 문제는 없다. 의경에 주둔하고 있는 연서령의 부대가 말을 발견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말엔 아군이란 표식이 달려 있으니 연서령이 발견만 한다면 뒤의 적군은 그녀가 알아서 쫓아낼 것이다. 아무리 적들이 의경을 둘러싼 상황이라고 해도 의경의 전력은 아직 막강하다. 아마도 적은 섣불리 의경 가까이 접근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말을 뒤쫓는 걸 포기하게 될 것이다.

 적절한 때에 말을 전속력으로 몰아야 됨은 물론이오, 신속한 판단력도 중시되는 작전이었다. 그러나, 그런 중책을 맡았음에도 불구하고 말에 올라탄 병사의 얼굴엔 긴장이라고는 한 터럭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이런 작전들이 익숙한 듯 기마병대의 대대장으로부터 뭐라 충고를 듣고 그저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반면, 연서강은 심장이 찌그러들 것 같은 압박감을 느꼈다. 스스로 지원했다. 이미 던져진 주사위라 해내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내심 속을 달래보아도 시간이 가까이 올수록 점점 더 긴장할 수밖에 없는 건 당연했다.

 애써 태연을 가장하고 있는 연서강에게 연의향이 밀서를 건넸다. 이제 막 쓴 듯 밀서를 봉한 비단 주머니에선 묵 냄새가 났다.

 “서령이에게 전해주게.”

 말은 그것이 전부였다. 연서강은 품안에 밀서를 넣은 뒤 고개를 끄덕였다.

 이윽고 서회에서 부대가 출발하고, 연서강을 태운 말도 출발했다.

 “긴장되십니까?”

 병사의 물음에 연서강은 살짝 얼굴을 찌푸렸다. 병사가 작게 웃으며 덧붙였다. ‘잡은 손으로 떨림이 전해집니다.’ 그 말을 듣자 거짓말을 해봐야 그것이 통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연서강은 솔직하게 ‘네.’하고 대답했다. 앞에 탄 병사가 다시 작게 웃었다.

 “걱정 마십시오. 그냥 잠깐 달리다 보면 끝날 겁니다.”

 그 나름의 위로였지만 연서강은 차마 그를 따라 웃을 수 없었다.

 병사의 말이 맞긴 했다. 연서강은 그저 병사가 몰 말에 타고 있기만 하면 될 일이다. 전투를 하는 것은 다른 다수의 병사, 그 전투를 지휘하는 것도 연의향이었고, 하다못해 말을 모는 사람도 이름 모를 병사였다. 연서강은 그저 병사가 잘 달리기를 기원하며 말에서 떨어지지 않게 용을 쓰기만 하면 될 일 인 것이다.

 가장 쉬운 일을 맡았으면서 제일 긴장하다니, 그런 자신의 꼴이 우스워서 연서강은 웃을 수 없었다.

 “.......죄송합니다. 이런 일은 처음인지라.”

 “대장군님의 아우 되시는 분이라 들었습니다. 집에서 서책만 들여다보다가 어제 막 여기에 도착하셨다고.”

 뭔가 굉장히 왜곡되어 있는 듯 하면서도 가장 진실에 가까운 것 같기도 했다. 이제 처음 본 사람에게 자세한 사정 이야기를 할 필요는 없어보여서 연서강은 ‘네.’하고 대답했다.

 “대대장에게 동생을 구하러 의경에 간다고도 들었습니다.”

 “.......”

 그러나 그 말에는 차마 ‘네.’라고 대답할 수 없었다. 연서강이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자, 등만 보이는 병사가 묘하게 유쾌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저도 동생이 있거든요. 동생이 위험한 곳에 있으면 걱정되는 건 누구나 같나 봅니다.”

 “.......그렇지요.”

 정말 순수하게 동생이 걱정되어 가는 거라면 이리도 찝찝하지도 않을 터인데.

 연서강은 입술을 말며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이율배반적이게도 정말 동생을 위해 힘내자고 마음먹은 것도 아닌데도, 들끓던 긴장이 차분해지는 게 느껴졌다.

 연서강은 고개를 들어 눈앞의 광경을 바라보았다.

 그들이 지금 있는 곳은 서회와 의경이 통하는 평원이었다. 평원을 넘고 산을 돌아 넘어가는 강을 따라 달리다보면 의경으로 통하는 관문이 나온다고 들었다. 그들은 지금 한창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지는 곳에서 좀 떨어져 의경으로 통하는 길이 열렸다고 알려줄 기수를 응시하고 있었다. 붉은 깃을 든 기수가 깃을 아래로 내리면 그때부터 일직선으로, 전투가 한참인 평원을 뚫고 지나가야만 했다.

 눈앞에 수많은 병사들이 소리를 지르며 싸우고 있는지라, 뒤에 물러나 있는 연서강은 대체 앞이 어떤 상태인지 파악이 되지 않았다 그저 짙은 피비린내와 날카로운 강철 소리, 금속이 서로 부딪치는 소리가 마치 종소리처럼 넓게, 잘게 울려 퍼지고 있었다.

 연서강이 꽉 병사의 갑옷을 쥐었다.

 “.......걱정 마십시오. 그렇게 긴장이 되면 차라리 눈이라도 감고 계십시오. 제가 됐다 할 때까지 눈을 감고 계시면 그저 바람 소리만 들릴 것입니다.”

 병사가 다시 부드럽게 말했다. 차라리 그것이 나을 것 같아서 연서강은 두 눈을 감았다.

 그때 병사의 등이 긴장하는 것이 느껴졌다.

 “준비하십시오.”

 그리고 마침내, 수초 내로 연서강이 타고 있는 말이 앞으로 번개같이 튀어나갔다.

               * *

 귓가에 쉴 새 없이 사람들의 고함 소리, 비명 소리, 신음 소리가 들렸다. 귀와 뺨을 스쳐지나가는 바람은 너무도 매서워서 살점이 떨어져 나갈 것 같다.

 순간, 피융- 화살이 바로 옆을 스쳐지나가는 소리도 들렸다.

 스쳐지나가고 나서야 ‘화살이다.’ 생각이 들어 뒤늦게 오싹 소름이 끼쳤다. 덕분에 앞사람의 갑옷을 틀어쥔 손에 단단히 힘이 들어갔다. 말은 멈추지도 않고 달렸고, 싸우는 사람들 사이를 누비며 전진했다. 그 수많은 소리 때문에 가슴속이 일렁거렸다.

 그래서일까, 갑자기 기억이 떠올랐다.

 자신이 죽기 직전의 가을이었다. 작년보다 일조량이 풍부하고 맑은 날도 많았던 덕분에 마당엔 단풍이 한창이었다. 여러 가지 이름도 다양한 나무들이 색색깔 고운 잎들을 자랑하며 새파란 하늘을 가리고 있었다.

 잠깐 본채의 서재로 책을 갖다 놓을 일이 있어 연서강은 그날 드물게 녹우당을 나와 집안을 걷고 있었다. 가급적이면 그는 본채의 사람들을 피하고 싶었기 때문에 건물의 뒤로, 격자무늬 꽃담을 따라 조용히 발을 옮기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붉은 벽돌로 지어진 굴뚝 옆에서 연서령을 보았다.

 당시 연서령은 오랑캐와의 싸움으로 인해 어깨에 화살을 맞고 그 부상을 치유하기 위해 집으로 돌아와 있었다. 어깨에 박힌 화살은 금방 제거되었지만 후유증이 상당하여 변방 전투의 일선에서 물러나게 된 것이다.

 집으로 돌아온 연서령은 부상자라는 말이 어울리지 않게 매우 밝고 쾌활하게 생활했다. 나이 어린 가솔들을 마당으로 불러 주춧돌에 올라가 ‘이런 일이 있었지!’하고 마치 동네 골목대장처럼 으쓱대며 자신의 무용담을 자랑했었다. 또 부상당한 어깨를 돌리며 ‘아아, 몸을 움직이지 않으니 좀이 쑤시네.’하고 말해 부상을 걱정하는 주변 사람들의 안색을 새하얗게 만든 적도 있었다. 그런 연서령을 보며 연서강은 나이도 어린데 참 밝고 건강하다, 감탄을 하곤 했었다.

 하지만 그때 보았던 그녀는 그렇지 않았다. 붉은 벽돌로 만들어진 굴뚝 옆에서 몸을 움츠리고 앉아 있었던 그녀는 바닥에 떨어진 붉은 단풍을 보고 뚝뚝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집안사람을, 그것도 동생인 연서령과 마주친 것도 놀라운데 그런 연서령의 모습은 연서강으로 하여금 할 말을 잊게 만들었다.

 -뭘 봐?

 연서령이 이내 연서강을 발견하고 그를 노려보았다. 뾰족한 그녀의 말에 연서강은 ‘아니.’하고 고개를 저었다. ‘지나가던 중이었는데.’하고 어물쩡거리며 연서강이 말을 잇자 연서령의 얼굴이 구겨졌다.

 -태평하긴!

 그런 연서강의 얼굴이 싫었는지 연서령이 소리를 버럭 질렀다. 그녀는 곧 눈물을 훔치고 홱 몸을 돌려 가버렸다. 걸음하는 그녀의 등을 보며 연서강은 입을 다물었다. 어째서? 이유를 생각하던 그는 곧 연서령이 앉아 있던 자리에 놓인 .......그녀가 버리고 간 물건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은 연습용 목도였다.

 그제야 연서강은 연서령이 집으로 돌아와서는 한 번도 무술 연습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검술은커녕, 기마술도, 활도 쏘지 않았다. 그게 무엇을 뜻하는지 아무리 둔한 연서강이래도 눈치를 못 챌 수가 없었다.

 팔랑, 하고 연서령이 있는 자리 위로 또 붉은 단풍이 하나 떨어져 내렸다. 그 낙엽을 보고 연서령이 무엇을 생각했을지 알 것 같아서, 연서강은 한동안 그 자리에 아무 말 없이 서 있었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었다.

 그러한 -기억.

 화살이 공기를 가르는 소리가 또 날카롭게 들렸다. 피융-.

 이제는 어느 정도 조용해진 주변 때문에 콱, 하고 이어 땅바닥에 화살이 박히는 소리도 들렸다. 화살이 날아가는 힘이 얼마나 대단한지 직접 맞아보지 않아도 충분히 가늠이 되었다.

 아마도 동생인 연서령은 이런 소리가 쏟아지는 전쟁터를 누비며 큰 소리로 병사를 호령했겠지.

 문득 든 생각에 연서강은 입술을 깨물고 두 눈을 어렵사리 떴다. 풍경이 재빠르게 지나쳐 가고 있었다. 헉, 헉, 달리는 말의 거친 호흡과 함께 투다닥 달리는 소리가 함께 들렸다. 연서강은 말이 달려 나가는 시야 사이로 칼을 들고 싸우는 사람들을 보았다. 한 사람이 칼에 베이고, 또 다른 사람이 창으로 방패를 뚫으며 시체를 밟고 활을 쏘고, .......또 칼을 빼들어 날아오는 활을 베었다.

 격전지를 벗어났음에도 말이 달리고 있는 곳은여전히 아비규환이었다.

 “가라!”

 그리고 절규처럼 소리치는 누군가의 고함 소리.

 “가!”

 길을 뚫은 병사들의 외침에 연서강은 꽉 갑옷을 부여잡았다.

 “가!”

 말이 -쏜살같이 강물이 흐르는 곳 옆을 달려 나갔다. 병사들의 외침과 비명을 등지고. 지도 위에서 느끼지 못했던 현장감이 바로 여기에 존재하고 있었다.

 붉은 피가 강물을 타고 흐르는 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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