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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와 거리두기-105화 (105/119)

105화

“야. 쟤 좀 그만 움직이라고 해봐. 사진을 못 찍겠잖아.”

“친구들이랑 인사하느라 그렇지. 좀 이따 사진 찍을 시간 따로 있을 거야. 그때 찍어.”

“아씨. 자연스럽게 찍혀야 잘 나온다고.”

얼마 전 장만한 카메라를 겨우 눈에서 뗀 우람이 툴툴댔다. 아직도 포기하지 못한 듯 놔두면 1층의 윤성에게 달려가기라도 할 기세인 그를 보던 대현은 결국 손을 뻗어 그의 카메라를 압수할 수밖에 없었다.

“아, 왜!”

“눈으로 봐. 눈으로. 카메라에 담느라 눈으로 못 보면 그게 진짜 남는 거야?”

“……허구한 날 영상 찍어야 된다고 끌고 나가는 놈이 할 말은 아니지 않냐?”

“그건 팬분들 위한 거니까 다르지.”

일단은 진정시켜야겠다는 생각으로 내놓은 논리지만, 우람의 반박도 나름 일리가 있어서 대현도 결국 어물쩍 시선을 돌렸다. 1층을 내려다본 대현이 눈에 들어온 인물들에 미소 지었다.

“저기 윤성이 동생들이다.”

“어디.”

“저기.”

정신없는 졸업식 현장. 같은 교복을 차려입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유독 튀는 윤성은 찾기가 쉬웠지만, 사람들 사이를 쏘다니는 두 명의 꼬마들은 그보다 더 눈에 띄었다. 뛰어가는 그들 뒤로 아까 인사를 나눴던 윤성의 부모님이 보였다. 각자 카메라를 하나씩 든 그들이 꼬맹이들을 따라 전력질주를 하고 있는 것까지 확인한 대현이 결국 우람의 팔을 툭 쳤다.

“도와드려야 될 것 같은데.”

“……우리가?”

“응. 어차피 지금 할 것도 없잖아.”

졸업식장에 도착하자마자 받아 든 브로슈어에 적혀 있던 졸업식 시작 시간은 아직 한참 남았다. 부정하지 못하는 우람은 그러면서도 망설이는 기색이었다. 아까 우람을 보자마자 눈물을 터뜨린 윤성의 어린 여동생 때문이리라. 주려고 했던 사탕은 주지도 못하고 머쓱하게 돌아서던 얼굴을 떠올리니 절로 웃음이 났다. 웃음을 꾹 참은 대현이 우람의 팔을 끌었다.

“에이씨. 나 애들 잘 못 보는데.”

투덜대는 우람은 그러면서도 그의 뒤를 착실히 따라왔다. 1층으로 내려가자마자 마주한 윤성의 부모님은 벌써부터 지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대현이 돕겠다는 말을 하자 그럴 필요 없다고 손을 휘휘 저으면서도 서로 시선을 교환하는 그들을 본 대현이 눈을 휘어 보였다.

“윤성이 사진 많이 찍어주세요. 저희가 2층에서 안전하게 데리고 있을게요. 그치, 우람아?”

“아…… 네. 뭐.”

이어진 설득에 결국 눈을 반짝이며 대현의 손을 꼭 붙잡고 아이들을 부탁한 그들은 어딘가 홀가분해 보이는 표정으로 떠났다. 아까도 느꼈지만 정말 누가 봐도 윤성의 부모님 같으시다. 순해 보이는 성격은 말할 것도 없고, 그러고 보니 얼굴도 진짜 어머님, 아버님 딱 반반 섞어놓으면 윤성이가 나올 것 같다. 뭐, 실제로 나오기도 했고.

이제 남은 건 호기심 어린 눈으로 지후와 우람을 번갈아 응시하는 이 두 꼬마뿐. 일곱 살이랬나. 말 안 듣는다고 유명한 나이처럼 앞니가 하나씩 빠진 똘망똘망한 얼굴들을 내려다 본 대현의 얼굴에 자연스러운 웃음이 걸렸다.

“윤이랑 성이랬지?”

경계하는 눈빛으로도 손을 내준 두 꼬마의 눈높이에 맞춰 무릎을 굽힌 대현이 환하게 웃었다.

“엄마 아빠 잠시 볼일 보러 가신 동안만 우리 같이 있을까?”

웃으며 잡은 손을 흔들자 작은 손이 꼬물꼬물 그의 손을 힘주어 잡는다. 아직도 옆에서 어색하게 선 우람을 본 대현이 먼저 앞의 윤을 안아 들었다. 아침에 한 번 울렸으니 당장은 우람에게 안겨줄 수 없었다. 자신도 안아달라는 듯 팔을 번쩍 드는 성을 본 대현이 우람에게 얼른 안아주라며 턱짓을 했다. 한숨을 쉰 우람이 성을 안아 들었다. 사람이 꽤 몰린 계단을 헤쳐 원래 앉았던 자리로 돌아오자마자 보인 얼굴에 대현이 멈칫했다.

“어…….”

“윤성이 동생들이에요?”

“응. 근데 빨리 왔다, 너.”

“뭐야. 벌써 왔냐?”

부드럽게 미소 지으며 대현의 품에 안긴 윤의 머리를 쓰다듬는 얼굴은 이렇게 빨리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지 못한 식이었다. 미팅 때문에 새벽같이 집을 나섰던 그를 떠올린 대현이 눈을 깜빡거렸지만, 언제나처럼 그가 의식하기도 전에 옆에 다가와 앉은 얼굴은 그게 당연하다는 듯 행동하고 있었다. 또 항상 그랬듯 그게 싫지만은 않아서, 대현은 간질거리는 마음을 모른 척 그의 옆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근데 형은 왜 이렇게 뚱뚱해?”

“뚱뚱하다니. 네가 뭘 몰라서 그러는데 이건 뚱뚱한 게 아니라 근육…….”

“아냐. 뚱뚱한 거야!”

“근육이라니까. 이 조그만 게 진짜.”

“그뉵이란 건 업써!”

“근육이 왜 없어. 야. 요새 유치원에서는 근육 안 배우냐?”

그 사이에 옆에 앉은 우람과 성은 만담까지 하고 있었다. 식도 들었는지, 노골적인 비웃음을 흘리며 우람을 바라보았다. 귀가 빨개진 우람이 성을 사탕으로 회유하며 말을 돌리려 했지만, 사탕을 받아먹으면서도 뚱뚱이라는 소리를 멈추지 않는 성 덕에 주위의 시선까지 몰리고 있었다. 다 큰 어른을 쩔쩔매게 하는 제 쌍둥이 형제를 응원하듯 까르르 웃는 윤까지.

정신없다면 정신없는 풍경을 보던 대현의 입에서도 결국 웃음이 터져 나오고 말았다.

“내가 제일 좋다고 할 때는 언제고 뒤도 안 돌아보네.”

윤과 성의 뒷모습에서 시선을 떼지 못한 우람이 중얼거렸다. 특히 그의 시선은 윤성의 아버지 목에 대롱대롱 매달린 성에게서 유독 오래 머물렀다. 씁쓸한 표정을 짓는 그가 누굴 생각하고 있는지 알 것도 같아서, 대현은 그의 옆얼굴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우람의 아버지는 우람이 데뷔를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가셨다. 언젠가 본 적 있던 우람의 고등학교 졸업식 사진에서 비워져 있던 그의 자리를 떠올린 대현의 표정도 우람처럼 가라앉았다. 가족의 죽음은 시간이 지난다 해서 잊혀지지 않는다. 그냥 잊은 척을 더 잘 할 수 있게 될 뿐이다. 그렇기에 대현은 우람이 느끼고 있을 감정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한우람.”

“어.”

“넌 좋은 아빠가 될 거야.”

“……뭐래, 갑자기.”

“그냥. 아까 윤이랑 성이랑 놀아주는 거 보니까 그런 생각 들더라.”

그랬기에 가장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말로 위로를 건넬 수 있었다. 갑작스러운 말에 미간을 찌푸리며 돌아본 얼굴은 그래도 싫은 기색은 아니었다. 쓸데없는 소리를 다 한다며 중얼거리던 얼굴은 이내 대현을 흘끔 보고 툭 볼멘소리를 내뱉었다.

“애 낳을지 안 낳을지도 모르는데 무슨. 낳는다고 다가 아니다. 어떻게 키우냐. 요즘 같은 위험한 세상에.”

멤버들 중 은근히 가장 현실적인 그다운 태클이라, 대현은 방금 전까지 나름 심각했던 것도 잊고 픽 웃을 수밖에 없었다. 잠시 고민하던 그가 다른 선택지를 내놓았다.

“뭐, 정 그러면 좋은 삼촌 해도 되고.”

“미친. 너 결혼하게?”

창백한 얼굴로 돌아보는 그를 본 대현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야, 나 너랑 동갑이거든. 스물셋이 무슨 결혼이야.”

“그럼…….”

“나중에 말야. 뭐…… 사실 할지, 안 할지도 모르지만.”

말을 잇던 그의 시선이 운동장 옆, 윤성의 학교 교사들에게 둘러싸여 싸인을 하고 있는 등에 멎었다. 그린 듯한 미소를 짓고 사진까지 찍어주는 얼굴을 잠시 훑은 대현이 코를 찡긋하며 고개를 돌렸다.

“만약에 낳으면 이름을 우람이로 지어도 좋겠다.”

“……미쳤네, 완전.”

“왜. 씩씩해 보이고 좋잖아. 삼촌이랑 이름이 같다면 좋아할지도 몰라.”

“아서라. 이우람이 가당키나 하냐.”

손에 잡히지도 않는 먼 미래를 이야기하는 둘의 입에는 어느새 나란히 웃음이 걸려 있었다. 아까보다 훨씬 풀린 우람의 얼굴을 본 대현이 그의 어깨를 툭 쳤다. 지지 않고 더 세게 어깨를 쳐 오는 우람 덕에 잠시 이어진 유치한 몸싸움은 그에게 온 전화로 인해 끝났다. 금방 오겠다며 멀어지는 우람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던 대현이 제 앞으로 진 그림자를 눈치채고 시선을 올렸다.

“팬미팅은 끝났어?”

어딘가 지친 것 같은 얼굴에 농담처럼 건넨 말은 씩 웃으며 어깨를 으쓱한 그로 인해 완성될 수 있었다.

“형은요.”

“응?”

“그래서 애기 이름은 다 지으셨어요?”

“……들었어?”

숨길만한 이야기도 아니었지만, 유치한 대화를 들었을 거라 생각하니 어딘가 부끄러운 것도 사실이었다. 어색하게 웃던 대현이 갑자기 거리를 좁혀 다가오는 식에 주춤했다.

“제 의사는 물어보지도 않으시고.”

투정을 부리듯 말해오는 얼굴에는 장난기가 잔뜩 묻어 있었다. 가면 갈수록 능글맞아지는 것 같다, 어째. 덩달아 장난기 어린 표정을 지은 대현이 팔을 교차해 팔짱을 꼈다. 가까이 다가온 얼굴과 시선을 마주하던 그가 곧 어깨를 으쓱했다.

“말해봐 그럼. 반영해 줄게.”

“음…… 윤성이처럼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도 좋을 것 같고.”

식의 말을 듣자 아까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윤성의 이름은 윤성의 부모님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온 거라고 했다. 그리고 윤성의 동생들은 윤성의 이름을 하나씩 나눠가졌다고 했다. 이름을 나란히 적어 모아놓으면 알 수 있는 그것들은 가족이라는 테두리를 더 공고히 해주는 것도 같았다.

그러게. 그것도 있었지. 생각에 빠져 있던 대현이 이내 한쪽 눈썹을 들어올렸다.

“그럼…… 대식?”

식의 말처럼 나름 조합을 해 나온 이름은 뱉자마자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앞에 선 식의 어이없는 표정을 보니 더 웃겼다. 허리까지 접어가며 웃는 대현을 바라보던 식도 결국 바람 빠진 웃음을 뱉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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