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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와 거리두기-73화 (73/119)

73화

일어나서 한 건 밥하고 숙소에 온 것밖에 없는데 은호를 마주한 일이 꽤 스트레스를 줬는지 벌써부터 피곤했다. 마른세수를 한 대현이 거실을 둘러보며 안으로 들어섰다. 다들 아직 자나. 그러고 보니 이른 시간이긴 했다. 시간을 확인하려 핸드폰을 들여다보던 그가 시간 위에 붙은 날짜를 보고는 멈칫했다 그도 잠깐, 익숙하게 시선을 뗀 그가 소리를 죽여 방으로 향할 때였다.

“앗, 앗뜨! 아, 씨발!”

욕설과 함께 들린 우당탕 소리에 깜짝 놀라기도 잠깐, 정신을 차린 대현이 소리가 들린 곳으로 달려갔다. 소음의 출처는 부엌이었다. 제 눈을 믿지 못한 대현의 걸음 속도가 느려졌다. 낯선 광경에 입까지 벌린 채 부엌의 입구에 선 대현이 눈앞의 등을 멍하니 응시했다.

“한우람……?”

작은 부름에 뒤도는 사람은 정말 우람이 맞았다. 직접 보고 있음에도 믿기지 않아서 대현은 제 눈을 비비기까지 했다. 네가 왜…… 말을 잇기도 전에 우람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노란 병아리가 그려진 앞치마가 그의 벌어진 어깨에 우스꽝스럽게 끼어 있었다. 그 또한 믿기지 않는 광경이었다. 대현의 표정이 반쯤 경악으로 물들었다.

“너 왜 이제 와!”

“어, 나…… 근데 너 뭐 하는 거야?”

“뭐 하긴. 보이는 대로지.”

툴툴거리듯 뱉은 그가 대현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눈치채고는 매고 있던 앞치마를 거칠게 벗어 휙 던졌다. 그 광경까지도 넋을 놓은 표정으로 보고 있던 대현은 제 등을 붙잡은 우람으로 인해 얼떨결에 걸음을 옮기게 되었다. 무의식적으로 힘을 주려 했지만 생각해 보니 애초부터 견줄 수 있는 힘이 아니었다. 결국 반쯤 포기한 대현이 그의 손길에 이끌려 식탁에 앉았다. 대현이 도망이라도 갈 것 같았는지 옆에 바짝 붙어서 퇴로까지 차단한 우람이 눈썹을 꿈틀거렸다.

“야, 배고프지.”

“딱히?”

“…… 그럼 안 되는데.”

“왜 안 돼?”

“……몰라.”

뭐가 안 되는지는 말해주지도 않으면서 잔뜩 인상을 쓰는 얼굴을 본 대현이 우람 뒤의 풍경을 흘끔거렸다. 믿을 수는 없지만, 그러니까, 우람이 요리 비슷한 걸 한 모양이다. 앞치마부터 시작해서 아까 들린 소리도 생각해 보니 냄비가 바닥에 떨어지며 났던 소리 같기도 하고. 그러고 보니 밥 냄새도 났다. 추측을 마친 대현이 우람을 달래듯 말을 건넸다.

“근데 주면 먹을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진짜?”

“응.”

도대체 부엌에서 뭘 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태도로 보아하니 제게 먹이고 싶어 안달이 난 음식이 있는 듯했다. 무시무시한 맛일까 봐 무섭긴 하지만, 뭐 죽기야 하겠나. 요리라고는 할 줄 모르던 우람이 한 음식이라니까 궁금하기도 했다.

여전히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다만 그래도 죽상이 된 얼굴을 순식간에 바꾸어 눈을 초롱거리는 얼굴을 보니 잘한 것 같았다. 하여간 단순하다니까. 픽 웃은 대현이 외투를 의자 옆에 걸어놓고는 바쁘게 움직이는 우람의 등을 구경했다.

“도와줘?”

“됐으니까 그냥 앉아 있어.”

“뭐길래 그래, 근데.”

“지금 주려고 하는 거 안 보이냐? 기다리라고 좀!”

덩치가 커서 저렇게 부딪치는 건가. 살림이란 살림은 다 작살낼 기세로 이곳저곳 쿵쿵 부딪치는 등을 보고 몸을 일으키던 대현이 그의 눈빛에 결국 다시 엉덩이를 붙였다. 한바탕 소란이 일어나고 나서야 뚱한 표정을 한 우람이 양손에 그릇을 들고 다가왔다.

평소 다른 물건을 다루는 것처럼 거칠게 그릇을 내려놓을 줄 알았던 그가 조심스레 그릇을 옮기는 광경을 의외라는 눈으로 지켜보던 대현이 시선을 돌려 제 앞에 놓인 그릇 안 내용물들을 살폈다. 비주얼부터 남다를 줄 알았는데 걱정했던 것과 달리 평범한 밥과 국이었다.

“그…… 내 친구 놈이 운동 그만두고 요리사 할 거라고 학원 다니거든. 혼자 다니기 쪽팔린다고 해서 한번 따라가 줬는데. 아, 그러니까 내가 내 의지로 간 건 아니고! 그 새끼 때문에…… 어쨌든…….”

“…….”

“생각해 보니까 맨날 너만 요리하잖아. 우리 중에서.”

“…….”

“뭐, 가끔 나가서 나도 한두 개 배워오면 뭐…… 같이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아니면 나 혼자 해도…… 아, 그러니까! 너 편집 때문에 바쁘니까…… 요새 얼굴도 좀…… 별로 안 좋아진 것 같고…….”

민망한 표정으로 이야기를 늘어놓던 우람이 휙 돌아 다시 부엌으로 돌아갔다. 까먹을 뻔했다며 중얼거리는 그의 손에는 계란찜 비슷해 보이는 것이 담긴 그릇이 들려 있었다. 아까처럼 식탁 위로 그릇을 조심스럽게 내려놓은 그가 대현의 반응을 살폈다.

앞에 놓인 접시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는 대현의 얼굴은 조금의 미동도 없었다. 우람이 헛기침을 했다. 머리를 긁은 그가 대현의 옆 의자를 거칠게 빼고 앉았다.

“보기엔 별로일지 몰라도. 맛은…… 내가 만들어서 하는 말이 아니라…… 먹을 만해.”

“…….”

“원래 첫 주부터는 대단한 거 안 알려준대. 나중에 그 뭐냐, 갈비찜 하는 법도 알려준다더라. 너 고기 좋아하지 않냐? 아닌가. 캥거루 새끼가 좋아했었나 그건.”

“…….”

“어쨌든 그렇다고. 내가 이거 너 먹이려고 어제부터 얼마나……! 아니다.”

입을 열지 않는 대현 덕분인지 혼자 이런 저런 말을 늘어놓던 우람이 결국 입을 다물고는 그를 살폈다. 슬쩍 수저를 건네자 그제야 대현의 시선이 우람의 손을 따라온다. 말없이 수저를 건네받는 얼굴을 보던 우람이 초조한 눈빛을 했다.

한참 수저를 쥐고만 있던 대현의 숟가락이 가장 먼저 향한 곳은 국그릇이었다. 숟가락으로 흐물흐물한 미역을 건져 올린 그가 천천히 입으로 가져갔다.

“……먹을 만하지?”

“…….”

“왜. 별로야?”

몸이 달은 우람의 반응에도 대현은 여전히 입을 열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러고 보니까 이 새끼 아까부터 왜 이렇게 말이 없어. 한쪽 눈썹을 꿈틀거린 우람이 대현의 옆얼굴을 의심쩍게 응시할 때였다.

“…….”

“…….”

우람의 표정이 당황으로 물들었다. 그의 손이 급하게 대현의 어깨를 잡아챘다. 동시에 빽 소리를 지른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야, 너 왜…… 왜 울어! 그렇게 맛없어?”

“…….”

“짜? 짜서 그래? 아닌데. 내가 맛 봤는데. 아깐 분명히…… 야, 먹지 마!”

우람이 대현의 볼에 흐르는 눈물을 차마 닦아낼 엄두는 못 내고 낑낑댔다. 그 와중에도 대현은 우람이 뺏으려는 숟가락을 꼭 쥐고 국그릇에 든 미역을 건지는 중이었다. 마치 눈에서 무언가가 흐르고 있다는 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우는 애가 힘주어 잡고 있는 것을 강제로 뺏을 수도 없고. 차마 힘을 써 뺏지 못한 우람이 곤란한 얼굴로 대현을 응시했다.

“내가 나중에 많이 배워서 더 좋은 거 해줄게. 어? 야, 그만 먹으라니까!”

이제 반쯤은 애원하는 어조로 변한 우람의 말에도 꿋꿋이 숟가락을 입으로 가져가던 대현이 멈칫했다. 그 틈을 타 그의 손에서 숟가락을 뺏은 우람이 당최 읽을 수 없는 대현의 얼굴을 살폈다. 허공에 뜬 대현의 손이 어색하게 움찔거렸다. 그리고 그제야 대현이 제 눈으로 손을 가져갔다. 하얀 손이 눈을 덮었음에도 가려진 눈 아래로 흘러내리는 굵은 눈물방울은 금방 잦아들 기세가 아니었다.

그리고 대현이 울음을 터뜨렸다. 한 치의 울음도 허용하지 않을 것 같이 다물렸던 입술이 열리고 정제되지 못한 불규칙한 숨소리가 울음에 섞여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아이처럼 엉엉 울기 시작한 그에 우람이 멍하니 입을 벌렸다. 그도 잠깐, 안절부절못하던 우람이 결국 제 가슴에 대현의 얼굴을 감싸 안았다. 그가 다급하게 외쳤다. 마구 던지는 말 중에 대현을 진정하게 할 수 있는 말이 있다면 무슨 말이라도 할 기세로.

“이지후. 울지 마. 미안해. 내가 미안해. 잘못했어. 어? 야. 울지 마…….”

1월 10일. 오늘은 대현의 생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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